룰라의 브라질에서 무엇을 배울까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정치사회학
브라질의 룰라하면, 한국의 권영길이 떠오른다. 금속노조 출신의 룰라가 4수만에 대통령이 되었다면, 언론노조 경력의 권영길은 두 번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원내정당인 노동자당과 달리 한국의 민노당은 아직도 국회에 의석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이 룰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 보인다. 이들의 전임자인 김대중과 까르도조는 정치인으로 박학다식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들은 애초의 기대와 달리 신자유주의 발전정책을 강력히 추구했다. 친노(親勞)적 성향에서 흡사한 룰라와 노무현은 그러한 신자유주의의 유산과 한계를 극복해야 할 어려운 과제를 공통으로 안고 있다.
“인간이라면 하루 세끼 밥은 먹어야 한다.” 땅콩팔이와 구두닦이 등 가난 속에 성장한 룰라의 기본 철학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되었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카르도조정권 말기 외환위기 때 300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한 IMF 이행각서에 묶여 있어 사회개혁을 위한 예산을 집행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카르도조집권 8년 동안 외채는 2500억 달러로 늘어나 브라질은 세계최대채무국이다. 원금만 갚는데도 매년 최소 3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룰라가 세계를 돌면서 브라질 제품을 세일즈하겠다는 것이 이해된다. 정부채무는 무려 GDP의 62퍼센트에 달한다. 긴축을 해도 모자라는 판에 대통령 공약사항인 ‘빈곤제로정책’을 쓸 여력이 별로 없다.
브라질의 고민은 빈부격차가 인종과 지역에 의해 벌려져 계급갈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데 있다. 혼혈계나 원주민은 백인이 세운 신분의 벽을 넘기 어렵다. 북동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 빈곤층은 인구 거의 인구 세 사람 중 하나 꼴이다. 실업률은 13퍼센트에 이른다. 빈곤퇴치를 위한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는데 국내외 투자가 저조하다.
사회개혁과 재정위기 사이에 낀 룰라
2007년까지 4년 동안 도로 철도 주택 발전소 등 사회간접시설에 640억 달러를 투자하여 인프라건설과 일자리확충을 꾀하겠다는 최근의 브라질판 뉴딜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국채발행 해외차입 민자유치에 의해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룰라는 분배를 앞세우는 민중주의를 일단 거부하고 성장을 위한 개방론을 편다. 다행히 그의 지지세력인 노동계, 카돌릭교회, 내수산업가, 수출산업가들은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물론 공무원들과 농민들의 저항이 눈에 띈다. 공무원들은 수혜폭이 줄어드는 연금개혁에 대해 반대한다. 땅을 원하는 농민들은 토지분배의 약속이 지켜지길 원한다. 그래서 룰라는 조세부담률은 높지만 고소득층에 유리한 현행 세제를 누진적인 방향으로 개편하여 세수를 늘이려 시도하고 있다.
“정치인은 바뀌어도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네. 행복은커녕 고통만 늘어가네…” 사웅파울로의 저자골목에서 여전히 들리는 노래다. 민초들은 생활은 아직 변한 게 없다. 지금으로부터 9년전 종속이론가 출신의 대통령 까르도조에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그는 금융과 무역의 개방을 가속화하면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려 했다. 결과는 인플레를 잡은 것을 빼놓고, 외채와 실업과 빈곤만 늘어났다. 농지개혁의 약속은 온 데 간 데 없고, 빈곤층은 인구의 삼분지 일로 증가했다. 부정부패와 조직범죄 또한 끊이지 않았다.
한국도 어렵지만 룰라정권도 안팎의 도전을 안고 있다. 그러나 룰라는 국정운영의 정책적 방향성은 있다. 노무현정권처럼 홍(紅)과 전(專) 사이를 왔다갔다 하지는 않는다. 물론 룰라의 노동자당은 분명 골수 사회주의 정당은 아니다. 임금소득층 즉, 근로자의 정당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붉은 좌파’에서 부드러운 정당으로 이미지를 바꾼 지 오래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접고, ‘연대’와 ‘성장’ 그리고 ‘약자보호’와 ‘대외개방’을 동시에 중시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인내와 실용
룰라는 유럽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네 나라가 만든 ‘남미남부공동체’(Mercosur)를 키워 ''미주자유무역협정‘(NAFTA)에 유리한 협상의 조건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선반공과 기업인이 함께 꾸려가는 나라를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그의 자존심이다.
우리가 룰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는 맑스, 레닌, 트로츠키의 상징에 의해 노동자당을 이끌지 않는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중 정체성을 밝히라는 전통 좌파들의 요구에, 그는 “나는 금속노동자일 뿐이다”라고 응소한다. 우리에겐 프로그램에 앞서 ‘성전’(聖典)이 앞선다. 사상의 자유와 이념의 논쟁은 필요한 것이지만, 정당과 정부는 정책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를 넘어 실용성과 신축성이 요구된다. 독일모델, 네델란드모델, 영미모델, 일본모델 등, 외국의 경험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브라질모델을 찾겠다는 노동자당의 현실적 자세에서, 우리도 한국에 적실한 모델을 만들려는 선취적 노력이 필요하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정치사회학
브라질의 룰라하면, 한국의 권영길이 떠오른다. 금속노조 출신의 룰라가 4수만에 대통령이 되었다면, 언론노조 경력의 권영길은 두 번 대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원내정당인 노동자당과 달리 한국의 민노당은 아직도 국회에 의석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이 룰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 보인다. 이들의 전임자인 김대중과 까르도조는 정치인으로 박학다식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들은 애초의 기대와 달리 신자유주의 발전정책을 강력히 추구했다. 친노(親勞)적 성향에서 흡사한 룰라와 노무현은 그러한 신자유주의의 유산과 한계를 극복해야 할 어려운 과제를 공통으로 안고 있다.
“인간이라면 하루 세끼 밥은 먹어야 한다.” 땅콩팔이와 구두닦이 등 가난 속에 성장한 룰라의 기본 철학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되었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카르도조정권 말기 외환위기 때 300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한 IMF 이행각서에 묶여 있어 사회개혁을 위한 예산을 집행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카르도조집권 8년 동안 외채는 2500억 달러로 늘어나 브라질은 세계최대채무국이다. 원금만 갚는데도 매년 최소 3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룰라가 세계를 돌면서 브라질 제품을 세일즈하겠다는 것이 이해된다. 정부채무는 무려 GDP의 62퍼센트에 달한다. 긴축을 해도 모자라는 판에 대통령 공약사항인 ‘빈곤제로정책’을 쓸 여력이 별로 없다.
브라질의 고민은 빈부격차가 인종과 지역에 의해 벌려져 계급갈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데 있다. 혼혈계나 원주민은 백인이 세운 신분의 벽을 넘기 어렵다. 북동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너무나 낙후되어 있다. 빈곤층은 인구 거의 인구 세 사람 중 하나 꼴이다. 실업률은 13퍼센트에 이른다. 빈곤퇴치를 위한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는데 국내외 투자가 저조하다.
사회개혁과 재정위기 사이에 낀 룰라
2007년까지 4년 동안 도로 철도 주택 발전소 등 사회간접시설에 640억 달러를 투자하여 인프라건설과 일자리확충을 꾀하겠다는 최근의 브라질판 뉴딜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국채발행 해외차입 민자유치에 의해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룰라는 분배를 앞세우는 민중주의를 일단 거부하고 성장을 위한 개방론을 편다. 다행히 그의 지지세력인 노동계, 카돌릭교회, 내수산업가, 수출산업가들은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물론 공무원들과 농민들의 저항이 눈에 띈다. 공무원들은 수혜폭이 줄어드는 연금개혁에 대해 반대한다. 땅을 원하는 농민들은 토지분배의 약속이 지켜지길 원한다. 그래서 룰라는 조세부담률은 높지만 고소득층에 유리한 현행 세제를 누진적인 방향으로 개편하여 세수를 늘이려 시도하고 있다.
“정치인은 바뀌어도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네. 행복은커녕 고통만 늘어가네…” 사웅파울로의 저자골목에서 여전히 들리는 노래다. 민초들은 생활은 아직 변한 게 없다. 지금으로부터 9년전 종속이론가 출신의 대통령 까르도조에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그는 금융과 무역의 개방을 가속화하면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려 했다. 결과는 인플레를 잡은 것을 빼놓고, 외채와 실업과 빈곤만 늘어났다. 농지개혁의 약속은 온 데 간 데 없고, 빈곤층은 인구의 삼분지 일로 증가했다. 부정부패와 조직범죄 또한 끊이지 않았다.
한국도 어렵지만 룰라정권도 안팎의 도전을 안고 있다. 그러나 룰라는 국정운영의 정책적 방향성은 있다. 노무현정권처럼 홍(紅)과 전(專) 사이를 왔다갔다 하지는 않는다. 물론 룰라의 노동자당은 분명 골수 사회주의 정당은 아니다. 임금소득층 즉, 근로자의 정당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붉은 좌파’에서 부드러운 정당으로 이미지를 바꾼 지 오래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접고, ‘연대’와 ‘성장’ 그리고 ‘약자보호’와 ‘대외개방’을 동시에 중시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인내와 실용
룰라는 유럽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네 나라가 만든 ‘남미남부공동체’(Mercosur)를 키워 ''미주자유무역협정‘(NAFTA)에 유리한 협상의 조건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선반공과 기업인이 함께 꾸려가는 나라를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그의 자존심이다.
우리가 룰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는 맑스, 레닌, 트로츠키의 상징에 의해 노동자당을 이끌지 않는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중 정체성을 밝히라는 전통 좌파들의 요구에, 그는 “나는 금속노동자일 뿐이다”라고 응소한다. 우리에겐 프로그램에 앞서 ‘성전’(聖典)이 앞선다. 사상의 자유와 이념의 논쟁은 필요한 것이지만, 정당과 정부는 정책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를 넘어 실용성과 신축성이 요구된다. 독일모델, 네델란드모델, 영미모델, 일본모델 등, 외국의 경험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브라질모델을 찾겠다는 노동자당의 현실적 자세에서, 우리도 한국에 적실한 모델을 만들려는 선취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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