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 - 의약분업 생활 체험기

“의약분업이 뭐야, 밀어 부치면 다 되나”

지역내일 2000-08-28
2주전쯤 이던가.
아이들과 물놀이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이 영 개운치 않아 면봉으로 깨끗이 닦아냈다.

며칠 후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밤새도록 귀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은 폐업중.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 내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으니 원평동에 있는 무료 진료소를 가보라고 했다.

휴, 다행이다.

“염증이 생겼어요. 귀에 물들어갔다고 염증이 생기지는 않아요.
찝찝하다고 물리적 자극을 가하니까 생기는 거죠.”
“굉장히 아픈데... 괜찮을까요?”
“염증정도는 약 이틀 먹으면 다 나아요.”

약 이틀분을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약값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틀분의 약을 다 먹었는데도 병이 호전의 기미가 없다.
끙끙 앓았다.
5살난 딸내미가 묻는다.

“엄마, 왜 병원안가?”
“으응. 의사선생님이 화나셔서 진찰을 안 해준데.”
“그럼, 엄마가 잘못했다고 빌어. 사과하면 용서해 줄거야”
“엄마한테 화내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
누가 빌고 용서해야 하는건가.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책임있는 사과를 했는가.

의사들의 폐업이 오전 진료로 바뀌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전과 달라진 진료실 풍경.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다.
진료비 2천2백원을 먼저내고 진찰실로 들어섰다.

“치료는 받았었나요?”
“무료진료기간에 받았는데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더 심해지네요.”
“염증은 지속적이고 적절한 시기의 치료가 중요해요. 가볍게 보면 안되요. 심하면 턱 주변으로 진물이 흘러 골수염이 되죠”

순간 열이 확 받는다, 누가 모르나.
치료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병을 키우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간호사가 묻는다.

“어느 약국을 이용하시겠어요?”
“그걸 왜 묻죠?”
“아 ! 요 밑에 약국을 이용하면 저희가 처방전을 하나만 쓰면 되는데 다른 약국을 이용하시면 처방전을 두 개 써야하거든요.”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의사가 조금 힘들더라도 믿을 수 있는 약국을 이용하는 게 낫지.

평소 잘 아는 약사를 떠올리며 그 약국으로 얘기했다.
“주사약투입이 있군요. 가서 사오시겠어요?”

순간 난감해졌다.
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또 다시 병원에 와야하다니.

간호사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설명을 덧붙인다.
“요 밑에 약국을 이용하시겠다면 저희 병원에 미리 주사약을 갖다놓았으니까 가서 굳이 사오실 필요 없어요. 약값 계산 때 함께 지불하면 되거든요.”

그래, 번거롭다.
그냥 이 약국을 이용하지 뭐.

과정이 어떠했든 최종적으로는 내가 선택했으니까 잘못되면 내 책임이야 하며 주사를 맞고 약국으로 내려갔다.

분주하기는 약국도 마찬가지.

5명 정도의 사람이 처방전 받고 기록하고 조제하는데 약사가운을 입은 사람은 조제를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뿐.

바빠서 가운을 안 입었나 아니면 저 사람만 약사인가.

궁금해도 참는다.
너도나도 목청높이는 사람들뿐인데.
내세울 것도 없는 소시민이 뭔 말을 해.
가당치도 않지.

약 대기시간은 최소한 20분 정도.
인근에 병원이 3∼4군데 되는데 모두 여기로 오는지 약국은 만원이다.

그 와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약사에게 다가가 얘기한다.
“3살난 아이인데 콧물이 자꾸 나오고 보채네요.”

저 아주머니는 왜 병세를 여기서 얘기해.
이제부터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이 순진했던가
“콧물 오래 갑니다. 이 약하고 이 약을 써보세요.”

아, 이게 임의조제라는 거구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철이 엄마가 약국에 들어선다.
“여기 사람이 많아서 집 앞에 있는 약국에 갔더니, 아 글쎄 약이 없다고 하잖아.”
“거긴 금방 망하겠더라. 한사람도 없어.”

“글쎄, 의약분업인지 의약담합인지. 동네약국이 없어진다는 게 이런 건가봐”

한참을 또 기다려 약을 탔다.
약값 1천원.

의사들의 장기폐업으로 병을 키워 가며 기다렸고 오전 진료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진찰을 기다리고 약을 타느라 기다리고.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참는다. 왜? 의약분업이 올바른 것이라고 누구나 얘기하니까.

시민들은 아픈 상처를 보듬어가며 기다리는 미덕을 가졌건만 정부나 의사들은 조급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니.

구조조정이다, 개혁이다 해서 사회의 모든 부문이 다 변하는 시대에 누가 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버겁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변하면 그에 맞는 행동도 바뀌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구체적으로 따라줬으면 한다.

/홍혜경(형곡동·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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