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조명훈, 정주영, 송두율의 망향병(안병찬 2003.10.10)

지역내일 2003-10-10 (수정 2003-10-10 오후 10:27:59)
조명훈, 정주영, 송두율의 망향병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재독 통일학자 조명훈 박사(전 함부르크대학 정치학 교수)가 2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그가 내게 귀향을 미리 알리려고 전사기(팩스)로 보낸 편지는 귀향의 기쁨이 밴 것이었다.
“제일 급한 보고는 ‘친구가 자꾸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다음보고는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의 소위 ‘한국문화체험프로그램’(10월 2일부터 5일까지)에 참가 초대를 받은 ‘사건’입니다. 이 기회에 그대를 꼭 다시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여행이 너무도 쓸데없게 됩니다. 50년을 서양에서만 산 조명훈이는 우리 민족의 감각도 없고 문화도 역사도 전혀 모른다는 ‘착각’을 가지고 계신 모양인 친구여 그대는 이번 내 여행을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조 박사는 ‘노스탈기’(독일어의 ‘향수’)에 젖어있다. 고향으로 가고자하는 간절한 마음 ‘노스탈기’는 사람이 가슴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한 옛 동독의 완고한 공산주의 서기장 엘리히 호네커의 마음도 사로잡을 만큼 마력이 있다. 호네커가 서독 지역에 있는 비벨스키르센 읍 향리를 처음으로 찾은 때는 서독 공식방문이 이루어진 87년 9월의 어느 날. 그는 고향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서독 경계선은 더 이상 두 독일 인민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합시키는 것이 돼야한다.” 그때는 완고한 국가지도자 호네커가 앓고 있는 ‘노스탈기’가 동서독 관계의 중요한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독일어에 젖어 사는 조명훈 박사이지만 남북이 문화공동체로 가는 빠른 길은 바른 우리말의 통일에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재작년에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 열린 ‘제2회 한민족 포럼’에서 그는 가슴에 담고 있는 ‘노스탈기’처럼 국어사랑은 표출되었다.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도 앓은 ‘노스탈기’
조 박사는 우리 겨레가 잃었던 민족공동체를 도로 찾는 과정을 가고 있으므로 문화공동체는 필수의 조건이 된다고 전제한다. 그는 존경받는다고 알려진 어떤 언론인이 사설에 ‘극적’이라는 표현대신 ‘드러매틱’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비판한다. 또 영어 암호인 듯 ‘DJ’ ‘JP’ ‘YS’로 표기하는 남녘의 기형적인 언론문화는 미국병 증세를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탓했다.
그는 반문한다. “어느 미국 신문이 빌 클린턴’을 ‘? ?’이라고 인쇄하던가요? 독일 주간지 ‘Die Zeit’가 한글로 ‘디 차이트’라고 인쇄합니까?”
결국 그는 우리의 통일은 합리주의·기능주의를 강조하는 피 없는 ‘로고스’만으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그 동안 남녘에 뿌리 박힌 나무가 더욱 깊고 튼튼하게 자라서 어느 날 북녘에서 자라난 나무와 본능적으로 접목하는데는 ‘감정이 담긴 이성’과 ‘우리말 찾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전 인민군 소좌 주영복 씨가 말한 ‘망향’을 기억한다. 그는 6·25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에 수용된다. 그는 북한 송환도 거부하고 남한에 남기도 거부하고 인도 행을 택한 76명의 인민군 포로 중 하나였다. 54년 2월 중립국 인도를 향해 출항할 때 주 씨는 돌아오지 못할 조국을 생각하며 몹시 울었다고 했다. 그때 스물 여섯의 청년이던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일시 귀향했을 때 소설 ‘광장’의 작가(최인훈)와 대담하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배가 움직이던 순간을 나는 평생 못 잊습니다. 아, 인천을 떠날 때 갈매기 50여 마리가 일제히 따라 오는 거예요. ‘야, 고향 갈매기가 따라오는구나’ ‘갈매기여, 우리와 함께 갑시다’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지요. 그런데 무정하게도 한 마리씩 이탈하고 마지막 두 마리가 마스트에 앉아 있어요.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마리가 배를 빙 돌더니 휙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갈매기가 없어진 하늘에 여자 둘의 얼굴이 나타나는 거예요. 야 이거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했어요.”

실정법 어긴 송두율, 망향의 가슴으로 포용해야
그 대목은 대담의 압권이었다. 한 여자는 주영복의 이북 약혼녀, 또 한 여자는 남쪽 수원에서 인연을 맺은 여성이다. 첫 여자는 대동강 전선에서 폭격으로 죽고 두 번째 여자는 부역자로 몰려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광장’의 독자라면 다 알겠지만 두 마리 갈매기는 ‘광장’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로 주인공 이명준은 주영복과 기막힌 우연의 일치를 보였다.
‘노스탈기’는 40여 년의 오디세이를 한 작곡가 윤이상의 가슴에도 박혀있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윤이상 음악제가 열리는 기간에 고국을 방문해 선산을 둘러보고 싶다”고 귀향하고 싶은 간절한 심경을 밝혔었다.
내 머리 속에는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망향상이 각인돼있다.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돌파한 ‘늙은 목동’의 동력이 실은 망향에 연유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남녘을 둘로 갈라놓은 송두율 파문도 ‘망향’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도 필경 회향병에 걸려 귀국한 인물이다. 실정법의 절차는 인정하되 ‘망향의 가슴’으로 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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