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인도, 기업이 높인다-2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자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들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며 이들 기업은 또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 앞장서 온 대표적인 기업의 하나로서 삼성전자의 해외 활동과 정부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국가 이미지 높이는 기업 브랜드
삼성전자의 해외 브랜드 마케팅 전략
지난 6월 29일 오후 1시 프라하 구시가 광장. 체코 필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대중스타들과 한국의 조수미, 난타 공연단 등이 참가한‘삼성오픈에어 콘서트’로 시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다음 날 오후에는 프라하시내 4.6㎞구간을 달리는‘런 투게더 프라하’가족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3만명이 시내를 가득 메운 채 달렸다.모두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결정하는 IOC총회(7.2~4)에 앞서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업체인 삼성전자가 펼친 이벤트였다. 비록 최종 투표에서 3표차로 캐나다에 지는 바람에 평창 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총회 기간 내내 한국 기업들은 프라하 시내를 부산히 움직였다. 한국 정부에서는 고건 총리가 현지에서 동분서주했지만 128명의 IOC 위원 중 만나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성 깃발은 총회장 주변을 뒤덮었고, 길거리 어디서나 삼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유치 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번 IOC 총회에서 드러난 바는, 아직도 우리는 국가 브랜드 홍보를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 걸친 삼성의 후원행사
프라하의 콘서트와 마라톤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올림픽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대표 후원사로 참여하였고, 여기에는 체코의 유수한 기업 뿐 아니라 자크 로게 IOC 위원장, 파벨 벰 프라하시장, 밀란 이라섹 체코 올림픽 조직위원장, 세르게이 부브카 IOC 선수위원장 등이 참석, 체코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삼성전자는 이런 방식으로 단독또는 공동으로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인 후원행사를 연중 행사처럼 진행하는 중이다. 지난 6월 27일에는 이란에서 25년만에 열리는 여성행사인‘올림픽의 날 달리기’대회를 단독 후원했는데, 당일 참여한 이란 여성이 13만 여명에 달했다. 또한 6월 21일 알제리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삼성전자는 즉시 초대형 물탱크와 주택 복구 비용 등을 현지 적십자에 기부하는 등 직접 구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는 미국에서‘희망의 4계절’이라는 자선 모금행사를 전개하고 있었다. 6월 18일 뉴욕 맨하탄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클린턴 전미국대통령을 비롯한 450여명의 사회 각계인사가 참석하였으며, 여기서 삼성은 총 모금액 20만달러를 각 자선단체에 전달했다. 소비자가 삼성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생기는 수익으로 삼성측은 지금까지 100만달러가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중국 정부가 사스 퇴치를 선언한 뒤인 지난 7월 13일 삼성전자는 베이징 최대 규모로 전개된‘2003 삼성전자배 베이징올림픽 러닝 페스티벌’을 후원했다. 10km 구간의 달리기 대회에는 베이징 당서기, 베이징 올림픽위원장을 비롯, 시민 2만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 제품을 알리는 로드쇼, 디지털 체험관, 디지털맨 선발대회 및 월드사이버게임즈 등 다양한 체험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이와 함께 이웃 홍콩과 대만에서도 대규모 로드쇼를 펼쳤는데, 행사기간 중 삼성은 역대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디지털 희망'' 프로그램을 마련, 인도,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의 비정부기구(NGO), 교육 기관등에 재정이나 기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제품·기업·국가 브랜드의 통합
삼성이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후원행사를 전개하는 것은 간접 홍보를 넘어서서 기업 차원의 판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해외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에 제품, 기업, 나아가 국가 브랜드를 통합한 이미지를 심어 최고의 판매 효과를 얻겠다는 고도의 마케팅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 초기 시장을 파고드는 데 위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예로 인도시장을 들 수 있다. 인도는 1995년 라오 정권의 개방정책에 따라 외국 기업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처음 진출할 당시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는 전무했다. 하지만 삼성은 외국기업이 아닌 인도 현지인을 위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주력함으로써 인지도의 열세를 역이용했다. 즉 여타 해외 기업이 낡은 모델을 들여온 것과 달리 삼성은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인도인을 위해 최신 모델을 들여왔고, 인도인들에 게 적합한 저음전용 스피커(woofer) 사운드 기술을 도입하는 등 R&D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삼성은 언제나 경쟁사보다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선 제품을 내놓았고, 인도인들에게 국내 가격으로 삼성 제품을 산다는 느낌을 갖게했다. 삼성과 함께 현대자동차, LG전자등도 이러한 마케팅을 펼침에 따라 인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져, 2000년 14위이던 시장점유율 순위가 해마다 급상승, 올해는 5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삼성 브랜드 전략이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예를 올해 5월 상영된 블록버스트 영화“매트릭스 리로리드(Matrix Reloaded)”를 배경으로 전개된 애니콜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이 영화의 범세계적 프로모션 권한을 가진 삼성은 워너브러더스사와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공동작업을 통하여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핸드폰을 개발했고, 이 핸드폰은 다시 영화에서 가상세계와 현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이로써 전세계 관객의 뇌리에 첨단 이미지의 애니콜 브랜드를 심으려 한 삼성의 의도를 관철시키려 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미국 뉴욕의 중심가인 타임스퀘어 광장에 옥외광고판을 설치한 것이나 CNN 시보광고에 기업광고를 결합하여 내보낸 것 등은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 구체화된 사례이다.
열 가지를 헤아리는 월드 베스트 제품
삼성전자의 부상은 세계 전자업계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삼성은 D램 부문에서 11년, S램 부문에서는 8년에 걸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TFT-LCD 부문은 1995년 양산 이래 4년만에 일본 샤프를 추월, 이후 노트북 분야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중이며 모니터용 LCD에서 LG필립스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반도체에 이어 삼성에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휴대폰은 2000년 5%에서 2003년에 10%로 두 배의 점유율 신장과 30%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 첨단 브랜드의 위상을 굳혀가는 중이며 전체 휴대폰 3위, CDMA 휴대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밖에 컬러모니터, VCR, 전자레인지, 컬러TV, 플레시메모리(NAND형), LDI 초박막액정표시장치 구동칩 등을 포함하면 삼성전자의 월드베스트제품군은 열 가지에이른다. 이러한 실적에 힘입어 삼성전자는지난 99년 31억달러로 100위권에 머물던 브랜드 가치를 4년만에 108억달러, 세계 25위로 끌어올렸다. 무엇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단기간에 이처럼 끌어올릴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인터브랜드 DC&A의 박상훈 한국지사장은 "그 비결은 최고경영층이 브랜드에 대해 눈을 뜨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라 단언한다.
글로벌 브랜드를 향한 길
지난 1996년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국제무대에서 D램으로 성공한 회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에 위기감을 느낀 삼성은 회장 특별 지시로 그룹 차원에서 브랜드 자산 관리를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글로벌마케팅실 산하의 브랜드 전략 그룹을 중심으로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에 따라 매년 4~5억달러를 들여 마케팅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에는‘삼성 밸류업 마스터’라는 독자적인 브랜드 평가 방법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삼성의 제품은 브랜드 상기도 및 인지도, 성능과기능, 가격 관련 연상 이미지, 기업문화 및 경영능력이 주는 이미지, 세련미나 신뢰성 등의 브랜드 개성, 구매의도나 지불가치 등의 행동 유발요소 등 다섯 가지 분야에서 타사 제품과 차별화 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삼성 브랜드 셋업 마스터’를 개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현재 이미지와 향후 이상적인 형태를 추적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삼성 해외 브랜드 전략에서 급선무는 글로벌 기업이미지(CI)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해외법인들이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55개의 광고대행사를‘푸트, 콘&벨딩 월드와이드’하나로 통합했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타 계열사가 삼성브랜드를 사용할 때는 그룹 브랜드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했고, 이를 위해 연간 1억달러 규모의 그룹 공동브랜드 기금도 조성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저가·저품질 이미지를 탈피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은 반도체, 통신, 가전,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그룹사의 다양한 핵심 역량을 하나로 융합하는‘디지털 컨버전스’전략을 통해 경쟁사 제품에 비해 실질적인 기술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또한 시장에서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나라별로 판매시점을 달리하던 방식을 탈피, 신제품으로 개발도상국을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결합된 후원행사, 자선마케팅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삼성의 이미지를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삼성제품은 중국 러시아아시아 남미 등에서 고부가가치 시장을 넓히게 되었고 브랜드의 위상도 따라서 높아졌다. 이와 함께 삼성은 스포츠마케팅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96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피선된 것을 계기로,삼성전자는 98년에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공식 올림픽 스폰서로 합류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무선통신분야 월드와이드 파트너(TOP)가 되었으며, 현재는 내년에 있을 아테네 올림픽 팀을 가동하고 있다. 그 과정인 2002년 2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애니콜이 모토롤라를 밀어내고 최고급 휴대폰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삼성의 스포츠마케팅은 해마다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
국가 이미지 제고, 기업에서 배워야
그러나 삼성전자의 독자적인 글로벌 경쟁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며, 앞으로는 국가 브랜드의 지원이 절실하다. 제품별로 초일류급 기업들과 별개의 경쟁을 펼쳐야 할 뿐 아니라 지펠, 파브, 애니콜 등 수성 단계에 접어든 브랜드까지 생겨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KOTRA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대한 국가 이미지 평점은 최고선진국을 100, 최빈개도국을 50으로 볼 때 77.9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월드컵 직후의 평점 78.4점과 비교하면 1년만에 이미지가 더 나빠졌음을 의미하는 수치이다.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에 국가 핵심비전으로 동북아경제중심 전략을 제시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전략은‘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과제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 2만달러 또한 삼성으로부터 배운 아이디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깝게는 중국만해도 해외의 자국 동포나 기업을 음양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는 국제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이번 베이징 6자회담에서 보듯이 국제정치의 중심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충분히 활용하는 중이다. 국가 브랜드, 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키워야 할 때다.
김선태·오승완 기자
2003년 9월 3일자 20면 게재
편집자주>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자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들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며 이들 기업은 또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 앞장서 온 대표적인 기업의 하나로서 삼성전자의 해외 활동과 정부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국가 이미지 높이는 기업 브랜드
삼성전자의 해외 브랜드 마케팅 전략
지난 6월 29일 오후 1시 프라하 구시가 광장. 체코 필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대중스타들과 한국의 조수미, 난타 공연단 등이 참가한‘삼성오픈에어 콘서트’로 시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다음 날 오후에는 프라하시내 4.6㎞구간을 달리는‘런 투게더 프라하’가족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3만명이 시내를 가득 메운 채 달렸다.모두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결정하는 IOC총회(7.2~4)에 앞서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업체인 삼성전자가 펼친 이벤트였다. 비록 최종 투표에서 3표차로 캐나다에 지는 바람에 평창 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총회 기간 내내 한국 기업들은 프라하 시내를 부산히 움직였다. 한국 정부에서는 고건 총리가 현지에서 동분서주했지만 128명의 IOC 위원 중 만나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성 깃발은 총회장 주변을 뒤덮었고, 길거리 어디서나 삼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유치 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번 IOC 총회에서 드러난 바는, 아직도 우리는 국가 브랜드 홍보를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 걸친 삼성의 후원행사
프라하의 콘서트와 마라톤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올림픽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대표 후원사로 참여하였고, 여기에는 체코의 유수한 기업 뿐 아니라 자크 로게 IOC 위원장, 파벨 벰 프라하시장, 밀란 이라섹 체코 올림픽 조직위원장, 세르게이 부브카 IOC 선수위원장 등이 참석, 체코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삼성전자는 이런 방식으로 단독또는 공동으로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인 후원행사를 연중 행사처럼 진행하는 중이다. 지난 6월 27일에는 이란에서 25년만에 열리는 여성행사인‘올림픽의 날 달리기’대회를 단독 후원했는데, 당일 참여한 이란 여성이 13만 여명에 달했다. 또한 6월 21일 알제리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삼성전자는 즉시 초대형 물탱크와 주택 복구 비용 등을 현지 적십자에 기부하는 등 직접 구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는 미국에서‘희망의 4계절’이라는 자선 모금행사를 전개하고 있었다. 6월 18일 뉴욕 맨하탄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클린턴 전미국대통령을 비롯한 450여명의 사회 각계인사가 참석하였으며, 여기서 삼성은 총 모금액 20만달러를 각 자선단체에 전달했다. 소비자가 삼성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생기는 수익으로 삼성측은 지금까지 100만달러가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중국 정부가 사스 퇴치를 선언한 뒤인 지난 7월 13일 삼성전자는 베이징 최대 규모로 전개된‘2003 삼성전자배 베이징올림픽 러닝 페스티벌’을 후원했다. 10km 구간의 달리기 대회에는 베이징 당서기, 베이징 올림픽위원장을 비롯, 시민 2만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 제품을 알리는 로드쇼, 디지털 체험관, 디지털맨 선발대회 및 월드사이버게임즈 등 다양한 체험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이와 함께 이웃 홍콩과 대만에서도 대규모 로드쇼를 펼쳤는데, 행사기간 중 삼성은 역대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디지털 희망'' 프로그램을 마련, 인도,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의 비정부기구(NGO), 교육 기관등에 재정이나 기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제품·기업·국가 브랜드의 통합
삼성이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후원행사를 전개하는 것은 간접 홍보를 넘어서서 기업 차원의 판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해외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에 제품, 기업, 나아가 국가 브랜드를 통합한 이미지를 심어 최고의 판매 효과를 얻겠다는 고도의 마케팅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 초기 시장을 파고드는 데 위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예로 인도시장을 들 수 있다. 인도는 1995년 라오 정권의 개방정책에 따라 외국 기업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처음 진출할 당시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는 전무했다. 하지만 삼성은 외국기업이 아닌 인도 현지인을 위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주력함으로써 인지도의 열세를 역이용했다. 즉 여타 해외 기업이 낡은 모델을 들여온 것과 달리 삼성은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인도인을 위해 최신 모델을 들여왔고, 인도인들에 게 적합한 저음전용 스피커(woofer) 사운드 기술을 도입하는 등 R&D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삼성은 언제나 경쟁사보다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선 제품을 내놓았고, 인도인들에게 국내 가격으로 삼성 제품을 산다는 느낌을 갖게했다. 삼성과 함께 현대자동차, LG전자등도 이러한 마케팅을 펼침에 따라 인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져, 2000년 14위이던 시장점유율 순위가 해마다 급상승, 올해는 5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삼성 브랜드 전략이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 예를 올해 5월 상영된 블록버스트 영화“매트릭스 리로리드(Matrix Reloaded)”를 배경으로 전개된 애니콜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이 영화의 범세계적 프로모션 권한을 가진 삼성은 워너브러더스사와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공동작업을 통하여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핸드폰을 개발했고, 이 핸드폰은 다시 영화에서 가상세계와 현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이로써 전세계 관객의 뇌리에 첨단 이미지의 애니콜 브랜드를 심으려 한 삼성의 의도를 관철시키려 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미국 뉴욕의 중심가인 타임스퀘어 광장에 옥외광고판을 설치한 것이나 CNN 시보광고에 기업광고를 결합하여 내보낸 것 등은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이 구체화된 사례이다.
열 가지를 헤아리는 월드 베스트 제품
삼성전자의 부상은 세계 전자업계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삼성은 D램 부문에서 11년, S램 부문에서는 8년에 걸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TFT-LCD 부문은 1995년 양산 이래 4년만에 일본 샤프를 추월, 이후 노트북 분야 부동의 1위를 고수하는 중이며 모니터용 LCD에서 LG필립스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반도체에 이어 삼성에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휴대폰은 2000년 5%에서 2003년에 10%로 두 배의 점유율 신장과 30%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 첨단 브랜드의 위상을 굳혀가는 중이며 전체 휴대폰 3위, CDMA 휴대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밖에 컬러모니터, VCR, 전자레인지, 컬러TV, 플레시메모리(NAND형), LDI 초박막액정표시장치 구동칩 등을 포함하면 삼성전자의 월드베스트제품군은 열 가지에이른다. 이러한 실적에 힘입어 삼성전자는지난 99년 31억달러로 100위권에 머물던 브랜드 가치를 4년만에 108억달러, 세계 25위로 끌어올렸다. 무엇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단기간에 이처럼 끌어올릴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인터브랜드 DC&A의 박상훈 한국지사장은 "그 비결은 최고경영층이 브랜드에 대해 눈을 뜨고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라 단언한다.
글로벌 브랜드를 향한 길
지난 1996년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국제무대에서 D램으로 성공한 회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에 위기감을 느낀 삼성은 회장 특별 지시로 그룹 차원에서 브랜드 자산 관리를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글로벌마케팅실 산하의 브랜드 전략 그룹을 중심으로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에 따라 매년 4~5억달러를 들여 마케팅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에는‘삼성 밸류업 마스터’라는 독자적인 브랜드 평가 방법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삼성의 제품은 브랜드 상기도 및 인지도, 성능과기능, 가격 관련 연상 이미지, 기업문화 및 경영능력이 주는 이미지, 세련미나 신뢰성 등의 브랜드 개성, 구매의도나 지불가치 등의 행동 유발요소 등 다섯 가지 분야에서 타사 제품과 차별화 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삼성 브랜드 셋업 마스터’를 개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현재 이미지와 향후 이상적인 형태를 추적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삼성 해외 브랜드 전략에서 급선무는 글로벌 기업이미지(CI)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동안 해외법인들이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55개의 광고대행사를‘푸트, 콘&벨딩 월드와이드’하나로 통합했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타 계열사가 삼성브랜드를 사용할 때는 그룹 브랜드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했고, 이를 위해 연간 1억달러 규모의 그룹 공동브랜드 기금도 조성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저가·저품질 이미지를 탈피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은 반도체, 통신, 가전,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그룹사의 다양한 핵심 역량을 하나로 융합하는‘디지털 컨버전스’전략을 통해 경쟁사 제품에 비해 실질적인 기술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또한 시장에서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나라별로 판매시점을 달리하던 방식을 탈피, 신제품으로 개발도상국을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결합된 후원행사, 자선마케팅은 소비자의 인식 속에 삼성의 이미지를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삼성제품은 중국 러시아아시아 남미 등에서 고부가가치 시장을 넓히게 되었고 브랜드의 위상도 따라서 높아졌다. 이와 함께 삼성은 스포츠마케팅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96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피선된 것을 계기로,삼성전자는 98년에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공식 올림픽 스폰서로 합류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무선통신분야 월드와이드 파트너(TOP)가 되었으며, 현재는 내년에 있을 아테네 올림픽 팀을 가동하고 있다. 그 과정인 2002년 2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애니콜이 모토롤라를 밀어내고 최고급 휴대폰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삼성의 스포츠마케팅은 해마다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
국가 이미지 제고, 기업에서 배워야
그러나 삼성전자의 독자적인 글로벌 경쟁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며, 앞으로는 국가 브랜드의 지원이 절실하다. 제품별로 초일류급 기업들과 별개의 경쟁을 펼쳐야 할 뿐 아니라 지펠, 파브, 애니콜 등 수성 단계에 접어든 브랜드까지 생겨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KOTRA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대한 국가 이미지 평점은 최고선진국을 100, 최빈개도국을 50으로 볼 때 77.9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월드컵 직후의 평점 78.4점과 비교하면 1년만에 이미지가 더 나빠졌음을 의미하는 수치이다.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에 국가 핵심비전으로 동북아경제중심 전략을 제시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전략은‘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과제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 2만달러 또한 삼성으로부터 배운 아이디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깝게는 중국만해도 해외의 자국 동포나 기업을 음양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는 국제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이번 베이징 6자회담에서 보듯이 국제정치의 중심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자신의 입지를 충분히 활용하는 중이다. 국가 브랜드, 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키워야 할 때다.
김선태·오승완 기자
2003년 9월 3일자 20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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