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이 모택동과 달리 화교를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180도 전환한 이후에 중국의 자본이 축적되고 외국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 화교자본이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의 80%를 차지했고 지금도 50%를 넘는다.”
권병현 재외동포재단 전 이사장(사진)은 등소평과 화교 이야기로 인터뷰를 서두를 풀어나갔다. 권 전 이사장은 어떤 서구자본도 중국에 눈을 돌리지 않던 시기에 중국경제의 기초를 쌓아줬던 세력이 화교자본임을 간파하고 이사장에 취임한 직후 ‘한상’이라는 단어를 창조해 냈다.
“이사장을 맡은 후 살펴보니 우리 정부의 동포에 대한 정책이 중국의 화교정책과 180도 달라 있어서 이를 벤치마킹해봤다.”
지난 3년간 재외동포재단을 이끌어왔던 권 전 이사장은 지난주 금요일 이사장직을 전 서울대 교수인 이광규 신임 이사장에 넘겨주고 모든 공직을 떠났다. 외교관 출신인 그는 주중국대사를 역임하며 수교 이후 한중관계의 기반을 쌓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공직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12일 오후에도 그는 중국의 58개 소수민족지도자를 국내에 초청, 이와 관련된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후 동포들이 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엄청난 자산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사장을 맡을 때만 해도 동포들은 내버려진 존재와 같았다”며 “이들을 주워서 갈고 닦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우리의 6백만 동포는 (우리 민족에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다”고 이사장 취임 직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가 밝힌 재외동포들의 가치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이들은 한민족 중에서 가장 용기있는 자들이다. 우리 민족은 자기 동네만 떠나도 죽는줄 아는데, 이들은 과감하게 조국을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간 개척자들이다. 둘째, 재외동포들은 어머어마한 시련을 겪었다. 만주, 일본, 사할린, 하와이, 멕시코,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인생의 한계를 넘어선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도 다 살아남았고 엄청난 경쟁력이 생겼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들이 겪은 시련을 쇠를 만드는 과정에 비교했다. 용광로에서 달궈진 후 두들겨져 단단해지는 쇠처럼 “신이 인재를 만들 때는 반드시 엄청난 시련을 줘서 달구어내고 난 다음에 만든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외동포들이 구축해 놓은 지식 인프라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들이 밖에 나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학교를 짓는 것이었다”며 “김좌진 장군도 군관학교만 지은 것이 아니라 일반 학교도 지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투자로 “지금 정보화시대에 모두 다 정보화된 최고급 지식인이 돼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모두가 독립운동한 애국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정리한 재외동포 가치에 대한 주장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 ‘한상’ 만들기, 재외동포센터 건립 등이다. 그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10월 국정연설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지원 약속을 하도록 했다. 그의 한상 만들기 계획은 2002년과 2003년의 세계한상대회로 결실을 맺는다.
이제는 재외동포사업을 떠난 권 전 이사장은 정책당국자들에게 “한상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자신이 재외동포 네트워크화를 위해 구축한 코리안닷넷도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재임 기간중 못 다 이룬 재외동포센터 건립도 당부했다.
권 전 이사장은 “지금 재외동포들이 보내는 직접송금액이 연간 50억달러를 넘고 이는 전 외국인 직접투자액수의 60%”라며 “재외동포 송금액의 100분의 1으로도 재외동포센터를 짓고도 남는다”라고 말해 자신이 계획한 사업을 못 다 이룬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끝으로 등소평이 화교를 끌어들여 중국경제를 부흥시킨 것은 “가장 단순한 곳에서 기본적인 진리를 찾아낸 것”이라며 등소평은 “인간의 본성은 결국 고향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잡아냈다”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몸담았던 외교가를 떠난 지금 권 전 이사장이 가장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가장 평범한 진리였다.
/ 진병기 기자 ·연제호 기자 jin@naeil.com
권병현 재외동포재단 전 이사장(사진)은 등소평과 화교 이야기로 인터뷰를 서두를 풀어나갔다. 권 전 이사장은 어떤 서구자본도 중국에 눈을 돌리지 않던 시기에 중국경제의 기초를 쌓아줬던 세력이 화교자본임을 간파하고 이사장에 취임한 직후 ‘한상’이라는 단어를 창조해 냈다.
“이사장을 맡은 후 살펴보니 우리 정부의 동포에 대한 정책이 중국의 화교정책과 180도 달라 있어서 이를 벤치마킹해봤다.”
지난 3년간 재외동포재단을 이끌어왔던 권 전 이사장은 지난주 금요일 이사장직을 전 서울대 교수인 이광규 신임 이사장에 넘겨주고 모든 공직을 떠났다. 외교관 출신인 그는 주중국대사를 역임하며 수교 이후 한중관계의 기반을 쌓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공직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12일 오후에도 그는 중국의 58개 소수민족지도자를 국내에 초청, 이와 관련된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후 동포들이 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엄청난 자산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사장을 맡을 때만 해도 동포들은 내버려진 존재와 같았다”며 “이들을 주워서 갈고 닦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우리의 6백만 동포는 (우리 민족에게) 어마어마한 자산이었다”고 이사장 취임 직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가 밝힌 재외동포들의 가치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이들은 한민족 중에서 가장 용기있는 자들이다. 우리 민족은 자기 동네만 떠나도 죽는줄 아는데, 이들은 과감하게 조국을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간 개척자들이다. 둘째, 재외동포들은 어머어마한 시련을 겪었다. 만주, 일본, 사할린, 하와이, 멕시코,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인생의 한계를 넘어선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도 다 살아남았고 엄청난 경쟁력이 생겼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들이 겪은 시련을 쇠를 만드는 과정에 비교했다. 용광로에서 달궈진 후 두들겨져 단단해지는 쇠처럼 “신이 인재를 만들 때는 반드시 엄청난 시련을 줘서 달구어내고 난 다음에 만든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외동포들이 구축해 놓은 지식 인프라다. 권 전 이사장은 “재외동포들이 밖에 나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학교를 짓는 것이었다”며 “김좌진 장군도 군관학교만 지은 것이 아니라 일반 학교도 지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투자로 “지금 정보화시대에 모두 다 정보화된 최고급 지식인이 돼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모두가 독립운동한 애국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정리한 재외동포 가치에 대한 주장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 ‘한상’ 만들기, 재외동포센터 건립 등이다. 그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10월 국정연설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지원 약속을 하도록 했다. 그의 한상 만들기 계획은 2002년과 2003년의 세계한상대회로 결실을 맺는다.
이제는 재외동포사업을 떠난 권 전 이사장은 정책당국자들에게 “한상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자신이 재외동포 네트워크화를 위해 구축한 코리안닷넷도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재임 기간중 못 다 이룬 재외동포센터 건립도 당부했다.
권 전 이사장은 “지금 재외동포들이 보내는 직접송금액이 연간 50억달러를 넘고 이는 전 외국인 직접투자액수의 60%”라며 “재외동포 송금액의 100분의 1으로도 재외동포센터를 짓고도 남는다”라고 말해 자신이 계획한 사업을 못 다 이룬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끝으로 등소평이 화교를 끌어들여 중국경제를 부흥시킨 것은 “가장 단순한 곳에서 기본적인 진리를 찾아낸 것”이라며 등소평은 “인간의 본성은 결국 고향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잡아냈다”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몸담았던 외교가를 떠난 지금 권 전 이사장이 가장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가장 평범한 진리였다.
/ 진병기 기자 ·연제호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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