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법연수생 표현자유 보장해야

최원식 변호사

지역내일 2003-11-14 (수정 2003-11-14 오후 3:01:43)
1988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사법연수생이었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어느 서명지에 이름을 적었다.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으로 촉발된 민주화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었던 그 때, 사법부 역시 중요한 기로에 있었다. 당시 소장법관 100여명이 대법원장 사퇴 등 사법부쇄신을 요구하는 연대서명으로 집단적 의사를 표현하여 대법원장이 사퇴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고, 직선으로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후 대법원장후보를 제청하여 국회의 동의절차를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청된 분은 당시의 국민적 요구에는 미흡하다고 판단되어 예비법조인인 사법연수생들이 집단으로 서명하여 의사를 표현하게 된 것이었다. 그날 저녁 전국에서 모인 서명자대표들은 종로의 어느 뒷골목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명지를 정리하고 기자들을 만나 서명사실과 서명지를 알려 주었다. 이 집단서명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다음날 국회에서는 대법원장임명동의안이 부결되었고, 노태우 대통령은 다른 분을 대법원장으로 제청, 임명하였다.
이번 12일 사법연수생들 500여명이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헌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침략전쟁인 만큼 파병결정은 위헌임과 동시에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라크파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서에 연대서명을 하여 청와대에 전달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사법연수원 측은 연수생들이 국가 대사에 집단으로 의견을 낸 것은 공무원이자 피교육생 위치에서 적절하지 않고 경위를 파악한 뒤 규정위반부분이 드러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피교육생이 집단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를 보면 국비로 공부를 하는 성균관 유생들이 명륜당에서 상소형식으로 의사관철이 되지 않을 경우 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방법으로 항의하는 것을 권당이라고 했고, 성균관 유생들이 기숙사에서 탈출하는 것을 공제라 했으며, 성균관 유생들이 대성전 문밖에서 사배례를 한 후 퇴거하면서 동맹휴학을 하는 것을 공관이라고 불렀다.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무산되고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화를 당했던 기묘사화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권당을 하여 성균관이 텅 비었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는 이를 부당한 권력에 항거한 기개 있는 행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간 사법연수생이나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국가공무원법상 금지된 집단행위라고 보거나 품위유지위반이라 하여 징계를 하려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언론의 자유시장에서 견해의 자유경쟁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징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먼저 공무원이나 피교육생이라고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제한할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집단적 의사의 표현을 품위유지위반으로 보기도 어렵다. 의사의 표현을 행위로 폭 넓게 해석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와 집단행위금지의무를 규정한 취지는 공무원으로서의 공정한 공무처리를 위한 것인 바, 공정한 공무처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의사의 표현은 집단의 형식이라도 충분히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의견의 난립이 아니라, 침묵과 무관심이다. 의견의 난립은 언론의 자유시장이라는 속성상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 단점은 자유시장의 공정한 규칙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짊어 나갈 젊은이들이 국가대사에 침묵을 지키는 것, 무관심한 것은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권위주의정권은 국민들의 침묵과 무관심을 유도하여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현 정부가 광범한 국민참여를 모토로 하여 참여정부를 주창한다면, 공무원들이나 피교육생들의 집단적 견해표명을 백안시해서는 아니 된다.
파병의 찬반 여부를 떠나서 국가대사에 떳떳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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