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지금 “한국이 슬프다”(정달영 2003.11.24)

지역내일 2003-11-24 (수정 2003-11-24 오전 10:43:50)
지금 “한국이 슬프다”
정달영 언론인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에서 중국동포 노동자 한 사람이 분신자살했다. 5년 전 봄이다. 그는 공장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유서를 써 남겼다. 자신을 사기한 ‘나쁜 놈’ 이름을 적어 저주한 뒤, 48세의 조선족 자살자는 이런 탄식을 덧붙여 썼다. “한국이 슬프다.”
중국서 달려와 남편의 주검 앞에 실신했던 아내는 보상 한 푼도 받아내지 못한 채 5개월을 허비하고 나서야 유골을 품고 중국 땅으로 돌아갔다. 떠나면서 그는 허망하게 끝난 코리안 드림을 이렇게 통곡했다고 한다. “왜 한국이 우리에게 슬픈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요즘 우리나라는 ‘한국이 슬프다’는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적어도 10만 명이 넘는 아시아인 이주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로 쫓기고 있다. 그 중에도 같은 핏줄인 중국동포들은 지금 닥쳐온 겨울 칼바람 속에서 여기저기 교회를 찾아 단식농성 중이다.
8개 교회에 흩어진 3천여 농성 중국동포들은 단식 열흘을 넘기면서 실신하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슬픈 정경이다. 그들의 요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와서 살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중국동포 노동자들은 국적 회복을 요구하는 헌법소원도 제기한 상태다. “우리는 누구의 핏줄입니까?”

외면 당하는 약자의 외침
외국인 노동자들 중 ‘불법’을 가리는 단속이 시작됐을 때, 강제 출국 위협에 쫓긴 두 명의 아시아인이 자살했다. 내년 8월 시행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정착을 위한 불가피한 단속이라고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가장 ‘약자 중의 약자’라고 할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마지막 궁지까지 몰아간 우리들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우격다짐은 없었던 것인지 돌아보고 싶다.
적어도 이 나라의 도덕적 권위는 지금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 앞에서는 설 곳이 없어 보인다. 외국인만이 아니라, 해외동포에 대해서도 사는 곳이 미국이냐 중국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이중적인 인식과 태도는 너무 부끄럽다. 세계화를 말하면서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배타적- 폐쇄적인 우리의 좁아터진 세계관도 여전하다. 단일민족 또는 순혈주의 미신은 21세기에도 깨져서는 안 되는 가치일 것인가.
통일되기 전 서독에서는 인구의 10%가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들이 경제 발전의 틈을 메워 독일을 견인했다. 우리가 보낸 광부, 간호사들도 그 일부분이다.
우리 땅에 와서 이른바 3D 업종의 험한 작업장을 채워주는 아시아 노동자의 수는 아직 우리 인구의 1% 미만이다. 그 1%가 우리의 산업 현장들을 굴러가게 한다.
그들에게는 지금 우리나라의 일터가 필요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로서는 그들의 노동력이 더 필요하고 소중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자살로 내모는 반인권적 상황으로는 한국에 진정한 세계화는 없다.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인구구조는 갈수록 고령화하고, 노동력 세대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으며,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노동력을 얻을 것인가.
중국동포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 3성에 2백만 명이 몰려 산다. 옛 만주 땅이다. 해방 무렵에는 그 동안 일제의 만주국 강제 이주정책으로 3백만 명의 동포를 헤아렸다고 한다.

중국 동포…고통과 한의 역사
19세기 중반 흉년으로 굶주린 조선의 유민이 두만-압록강을 건넌 이래 20세기 초에는 항일 무장투쟁 세력과 일제 수탈에 쫓긴 난민들이 자리 잡았고, 1932년 만주국 괴뢰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해마다 1만 가구 꼴로 강제 이주됐다. 민족의 고통과 한이 피로 맺힌 역사다.
1952년 조선족자치주가 출범하면서 중국동포는 모두 자동적으로 중국 국적을 가졌으나 굳이 말해서 “한국 국적도 포기한 일이 없으므로” 국적회복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국적 논란은 외교적 사안으로 중국과도 얽히는 문제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이다. 나라가 격을 세우기 위해서는 소수자, 소외자, 아시아인, 조선족 동포, 불법 체류자…, 이 모든 약자를 향한 인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온정주의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서로의 필요에 부응하는 합리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이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