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후 노동자 사망이 잇따르면서 이에 항의하는 파업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20일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그 직접적 동기가 되어 온 손배·가압류 조치에 대해 개선방안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일반근로자의 급여 압류시 현행 1/2압류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최저생계비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민사집행법의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며, 이와 함께 조합비 일부의 압류제한, 신원보증인의 책임 범위 축소 등을 검토하고, 노사정위원회 내에 관련 기구를 구성하여 이 문제를 우선 논의할 계획이다.
손배·가압류 문제는 올해 노사문제를 노정문제로 전환시킨 촉발제라 할 수 있다. 연초 두산중공업 노조원 배달호씨가 손배·가압류 철회를 촉구하며 분신자살하자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노대통령은 회사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 것을 강조했다.
노동부장관의 중재로 사측이 철회를 약속하면서 파업은 끝이 났지만, 이 사건 이후 손배·가압류 문제는 한 해 내내 노정간의 불씨로 남았다. 이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민주노총은 지난 14일 ‘이제 남은 것은 대정부 전면투쟁 뿐’이라며 매일 전국 각지에서 거리 시위를 단행키로 하는 등 극한 처방을 내놓았다.
노조의 완승으로 끝난 현대차파업
이와 달리 지난 6월부터 50일에 걸쳐 이어진 현대자동차 파업은 정부 개입이 사실상 배제된 채 노사가 극적으로 타결한 경우다. 4월 18일 상견례를 가진 이래 지지부진하던 현대차 임단협은 6월 2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되면서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7월 내내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자 상황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한 회사가 굴복, 8월 5일 전격적으로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역대 최고액인 임금 9만8000원 인상,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 해외공장 설립시 노사 공동 심의 등 경영참여 내용이 포함된 합의안을 두고 정작 앞장 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쪽은 재계였다.
당시 전경련과 경총은 각각 성명을 발표하여 현대차 합의내용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지적했고,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재계 차원의 공동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도 장기파업을 달리 막을 방도가 무엇이냐는 회사측의 반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현대차파업과 손배·가압류 사태, 이 두 가지 사안은 한국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분배 중심의 실리주의가, 다른 한편에서는 ‘전투적 파업’이 중심이 되어 노동계가 양극단을 달리는 한편, 노사 모두 정부 개입에 기대는 현실이 그것이다.
양극단을 달리는 노동운동
먼저 노동계 내부에서 노사문제를 대하는 상반된 시각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얼마전 S 정유회사 노사는 가족을 동반한 기차여행이라는 이색 행사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협력적 노사관계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는 것이 노사 모두의 자평이다.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배일도) 등 서울지역 공기업들이 중심이 된 ‘노사정 서울모델’은 20일부터 이틀 동안 양평 한화콘도에서 워크숍을 갖고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는 중이다. 서울지하철노조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까지 파업과 분규로 몸살을 앓던 대표적인 공공부문 사업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노사 공동으로 국내 공기업의 임금과 근로조건 실태를 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교섭을 추진하며 이를 제도화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에 반해 지난 7월 22일부터 최근까지 노조의 총파업이 100일 이상 지속된 한진중공업 등은 극단적인 대결상태를 보인 사례다. 그 과정에서 10월 노조지회장이 자살하고, 한명의 전직 노조간부가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됐다. 역시 노조지회장이 분신한 충남 천안의 세원테크도 지난해 이후 2년동안 파업 농성등을 반복하며 극단적 대립이 지속된 경우다.
노동쟁의 늘어도 근로손실은 줄어
이처럼 노동계가 양극단을 달리는 현상은 올들어 다시 늘어난 노사분규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13일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30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6건에 비해 6.6%가 증가했다. 참가 인원도 13만156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만1500명에 비해 43.8%가 급증했다. 하지만 근로손실일수의 경우에는 124만3128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0만293일에 비해 17.1% 줄었다.
먼저 90년대 이후 감소추세에 있던 노사분규가 지난해 이후 증가추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신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노동계의 요구가 과도하게 분출된 데다 산별노조 전환으로 인해 연대파업 참여사업장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단위사업장 파업이 줄어든 대신 정치성 파업이 증가한 결과 분규는 늘었지만 근로손실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경총 홍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올초 정부의 친노동자정책이 가시적인 결과를 보이면서 대정부 협상력을 기대하는 노조들이 늘었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쉽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320여건을 기록한 노사분규중 80~90%가 민주노총 주도로 일어났다는 노동부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계와 정부, 애증의 한해
올해 노사분규의 증가는 노무현정부의 탄생으로 예고된 바나 다름없었다. 연초 노동계는 노무현정부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민주노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기대가 극적으로 충족된 경우가 두산중공업 사태였다. 정부의 가세로 유리한 해결을 이끌어낸 노동계는 이후 각종 사안에서 정부와 직접 담판을 요구했다. 4월의 철도파업 예고, 5월의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6월의 조흥은행 파업 등 굵직한 사안마다 정부가 협상에 나섰고 대부분 노동계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IMF 사태로 30대 기업 중 16개사가 몰락한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2~3%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재계의 불만은 날로 높아갔다. 여기에 연초부터 카드채 사태가 불거져 나오는 등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빈발하는 노사분규로 외국인들의 투자회피가 이어지자 정부로서도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6월 28일 잠정적 합의를 무시한채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그 즉시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와 노동계는 급격히 멀어졌다. 철도파업 당시 노동계는 노무현정부에게 ‘애초에 약속했던 노동개혁을 이행하라’고 주장했고, 청와대는 노동계에 ‘파업만 안 하면 훨씬 좋은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공공연히 노무현 정부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노대통령, 노동계 분리 대응 밝혀
지난 4일부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주도한 연대 파업이 폭력시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자 노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대화는 대화가 되는 사람들과만 한다”며 노동계에 대한 분리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불법 폭력 시위 주체와 협상 중단’, ‘ 상습적 불법 폭력 시위 지도부와 선량한 구성원 구분 대응’ 등 4대 원칙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며, 실제로 단병호위원장에게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반면 민주노총은 정부가 해결의지만 보여주었어도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단병호 위원장은 최근 좥노동과세계좦와 가진 인터뷰에서 “손배 가압류의 경우 정부가 먼저 의지를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지닌 자료로는 노조와 조합원에 부과된 전체 손배·가압류 액수가 140억원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정부기관과 공사 등 5개 사업장이 4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해, 먼저 공공기관에서라도 정부가 철회조치를 취해 줄 것을 기대했다(정부 집계로 가압류가 진행중인 사업장은 29개사 549억원). 이에 따라 총리와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회가 중재에 나서는 등 노·정 문제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분배중심 전투적 실리주의의 향배
한국 경제는 90년대 이래의 세계화 체제 속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이미 극심한 내수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업계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만이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지표에 따르면 노동투입량은 세계최고 수준인 데 반해 1인생산 부가가치는 미국의 절반에 불과한 전형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이며,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바닥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의 노사관계가 여전히 고도성장기의 단체교섭 구조를 답습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노동조합은 분배를 중심으로 보다 많은 임금확보를 위해 파업을 주무기로 사용자를 압박하며, 사용자는 현장근로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임금만 올려주면 된다는 식의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심해서, 임금·단체교섭 초기에는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명분을 앞세우다가도 정작 막바지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대폭 늘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결과 정규직과 임시직·일용직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19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8월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195만8000원으로 작년동기(176만9000원)보다 10.7% 상승한 반면, 임시직은 97만1000원에서 103만2000원으로 6.3% 오르는 데 그쳤다. 일용직은 76만원에서 75만9000원으로 오히려 0.1% 떨어졌다.
대의와 실리 사이를 오가는 노동계
현재의 노동운동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87년 7·8월 당시, 울산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노도와 같이 펼쳐진 파업투쟁은 폭발적인 규모의 노동조합과 평균 20~30%에 달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며 이전 시기와 완전히 구분되는 노사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와이대학 구해근 교수에 따르면 당시 노동운동은 ‘오랫동안 누적된 한의 분출’이자, ‘대단히 감정적이고 도덕적’이었으며, ‘수십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해 온 정부의 권위주의적 억압과 사용자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종결시켰다’는 데 일차적 의의가 있었다(『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266쪽).
이후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와 조직력 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전국적 규모의 연대로 대응하였다. 1996~ 1997년의 노동법개정 반대투쟁, 1998년 1월의 노사정위원회 설립, 그리고 올해의 ‘손배·가압류 철회투쟁’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계는 몇 가지 이유로 내부적인 분화 또는 갈등을 겪는 중이다. 예를 들어 첫째 기업규모의 차이에 따라 벌어지는 임금 격차, 둘째 이제는 전체 피고용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기에 이른 비정규적 문제, 셋째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노동운동가들의 자리를 실리적이고 비정치적인 노동운동가들이 차지하게 된 현실 들이 그 예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의 노사분규는 점점 예측불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종종 장기화한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90년대 이래 노동조합과 조합원수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사실과도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경쟁력 강화, 고용안정 지름길
무엇보다 고용 불안이 커지면서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노동운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한때 10% 가까이 치솟은 실업률로 평생직장·완전고용 개념은 의미를 잃고 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올 10월 들어 7.3%에 이른 정도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가 이전과는 달리 글로벌 경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노사 모두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이 설 자리가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운동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대기업 위주의 분배투쟁에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지켜내는, 보다 거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체제 하에서 기업경쟁력과 고용안정을 확보하려면, 노사간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말이다.
/ 김선태 ·백만호 기자
그에 따르면 정부는 일반근로자의 급여 압류시 현행 1/2압류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최저생계비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민사집행법의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며, 이와 함께 조합비 일부의 압류제한, 신원보증인의 책임 범위 축소 등을 검토하고, 노사정위원회 내에 관련 기구를 구성하여 이 문제를 우선 논의할 계획이다.
손배·가압류 문제는 올해 노사문제를 노정문제로 전환시킨 촉발제라 할 수 있다. 연초 두산중공업 노조원 배달호씨가 손배·가압류 철회를 촉구하며 분신자살하자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노대통령은 회사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 것을 강조했다.
노동부장관의 중재로 사측이 철회를 약속하면서 파업은 끝이 났지만, 이 사건 이후 손배·가압류 문제는 한 해 내내 노정간의 불씨로 남았다. 이 문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민주노총은 지난 14일 ‘이제 남은 것은 대정부 전면투쟁 뿐’이라며 매일 전국 각지에서 거리 시위를 단행키로 하는 등 극한 처방을 내놓았다.
노조의 완승으로 끝난 현대차파업
이와 달리 지난 6월부터 50일에 걸쳐 이어진 현대자동차 파업은 정부 개입이 사실상 배제된 채 노사가 극적으로 타결한 경우다. 4월 18일 상견례를 가진 이래 지지부진하던 현대차 임단협은 6월 2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되면서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7월 내내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자 상황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한 회사가 굴복, 8월 5일 전격적으로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역대 최고액인 임금 9만8000원 인상,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 해외공장 설립시 노사 공동 심의 등 경영참여 내용이 포함된 합의안을 두고 정작 앞장 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쪽은 재계였다.
당시 전경련과 경총은 각각 성명을 발표하여 현대차 합의내용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 지적했고,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재계 차원의 공동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도 장기파업을 달리 막을 방도가 무엇이냐는 회사측의 반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현대차파업과 손배·가압류 사태, 이 두 가지 사안은 한국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분배 중심의 실리주의가, 다른 한편에서는 ‘전투적 파업’이 중심이 되어 노동계가 양극단을 달리는 한편, 노사 모두 정부 개입에 기대는 현실이 그것이다.
양극단을 달리는 노동운동
먼저 노동계 내부에서 노사문제를 대하는 상반된 시각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얼마전 S 정유회사 노사는 가족을 동반한 기차여행이라는 이색 행사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협력적 노사관계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는 것이 노사 모두의 자평이다.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배일도) 등 서울지역 공기업들이 중심이 된 ‘노사정 서울모델’은 20일부터 이틀 동안 양평 한화콘도에서 워크숍을 갖고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는 중이다. 서울지하철노조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까지 파업과 분규로 몸살을 앓던 대표적인 공공부문 사업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노사 공동으로 국내 공기업의 임금과 근로조건 실태를 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교섭을 추진하며 이를 제도화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에 반해 지난 7월 22일부터 최근까지 노조의 총파업이 100일 이상 지속된 한진중공업 등은 극단적인 대결상태를 보인 사례다. 그 과정에서 10월 노조지회장이 자살하고, 한명의 전직 노조간부가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됐다. 역시 노조지회장이 분신한 충남 천안의 세원테크도 지난해 이후 2년동안 파업 농성등을 반복하며 극단적 대립이 지속된 경우다.
노동쟁의 늘어도 근로손실은 줄어
이처럼 노동계가 양극단을 달리는 현상은 올들어 다시 늘어난 노사분규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13일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노사분규 발생건수는 30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6건에 비해 6.6%가 증가했다. 참가 인원도 13만156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만1500명에 비해 43.8%가 급증했다. 하지만 근로손실일수의 경우에는 124만3128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0만293일에 비해 17.1% 줄었다.
먼저 90년대 이후 감소추세에 있던 노사분규가 지난해 이후 증가추세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신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노동계의 요구가 과도하게 분출된 데다 산별노조 전환으로 인해 연대파업 참여사업장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단위사업장 파업이 줄어든 대신 정치성 파업이 증가한 결과 분규는 늘었지만 근로손실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경총 홍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올초 정부의 친노동자정책이 가시적인 결과를 보이면서 대정부 협상력을 기대하는 노조들이 늘었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쉽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320여건을 기록한 노사분규중 80~90%가 민주노총 주도로 일어났다는 노동부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계와 정부, 애증의 한해
올해 노사분규의 증가는 노무현정부의 탄생으로 예고된 바나 다름없었다. 연초 노동계는 노무현정부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민주노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기대가 극적으로 충족된 경우가 두산중공업 사태였다. 정부의 가세로 유리한 해결을 이끌어낸 노동계는 이후 각종 사안에서 정부와 직접 담판을 요구했다. 4월의 철도파업 예고, 5월의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6월의 조흥은행 파업 등 굵직한 사안마다 정부가 협상에 나섰고 대부분 노동계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IMF 사태로 30대 기업 중 16개사가 몰락한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2~3%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재계의 불만은 날로 높아갔다. 여기에 연초부터 카드채 사태가 불거져 나오는 등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빈발하는 노사분규로 외국인들의 투자회피가 이어지자 정부로서도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6월 28일 잠정적 합의를 무시한채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그 즉시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했고, 이를 계기로 정부와 노동계는 급격히 멀어졌다. 철도파업 당시 노동계는 노무현정부에게 ‘애초에 약속했던 노동개혁을 이행하라’고 주장했고, 청와대는 노동계에 ‘파업만 안 하면 훨씬 좋은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공공연히 노무현 정부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노대통령, 노동계 분리 대응 밝혀
지난 4일부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주도한 연대 파업이 폭력시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자 노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대화는 대화가 되는 사람들과만 한다”며 노동계에 대한 분리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불법 폭력 시위 주체와 협상 중단’, ‘ 상습적 불법 폭력 시위 지도부와 선량한 구성원 구분 대응’ 등 4대 원칙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며, 실제로 단병호위원장에게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반면 민주노총은 정부가 해결의지만 보여주었어도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또한 단병호 위원장은 최근 좥노동과세계좦와 가진 인터뷰에서 “손배 가압류의 경우 정부가 먼저 의지를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지닌 자료로는 노조와 조합원에 부과된 전체 손배·가압류 액수가 140억원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정부기관과 공사 등 5개 사업장이 4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해, 먼저 공공기관에서라도 정부가 철회조치를 취해 줄 것을 기대했다(정부 집계로 가압류가 진행중인 사업장은 29개사 549억원). 이에 따라 총리와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회가 중재에 나서는 등 노·정 문제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분배중심 전투적 실리주의의 향배
한국 경제는 90년대 이래의 세계화 체제 속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이미 극심한 내수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업계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만이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지표에 따르면 노동투입량은 세계최고 수준인 데 반해 1인생산 부가가치는 미국의 절반에 불과한 전형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이며,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바닥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의 노사관계가 여전히 고도성장기의 단체교섭 구조를 답습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노동조합은 분배를 중심으로 보다 많은 임금확보를 위해 파업을 주무기로 사용자를 압박하며, 사용자는 현장근로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임금만 올려주면 된다는 식의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심해서, 임금·단체교섭 초기에는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명분을 앞세우다가도 정작 막바지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대폭 늘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결과 정규직과 임시직·일용직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19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8월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195만8000원으로 작년동기(176만9000원)보다 10.7% 상승한 반면, 임시직은 97만1000원에서 103만2000원으로 6.3% 오르는 데 그쳤다. 일용직은 76만원에서 75만9000원으로 오히려 0.1% 떨어졌다.
대의와 실리 사이를 오가는 노동계
현재의 노동운동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87년 7·8월 당시, 울산 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노도와 같이 펼쳐진 파업투쟁은 폭발적인 규모의 노동조합과 평균 20~30%에 달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며 이전 시기와 완전히 구분되는 노사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와이대학 구해근 교수에 따르면 당시 노동운동은 ‘오랫동안 누적된 한의 분출’이자, ‘대단히 감정적이고 도덕적’이었으며, ‘수십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해 온 정부의 권위주의적 억압과 사용자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종결시켰다’는 데 일차적 의의가 있었다(『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266쪽).
이후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와 조직력 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전국적 규모의 연대로 대응하였다. 1996~ 1997년의 노동법개정 반대투쟁, 1998년 1월의 노사정위원회 설립, 그리고 올해의 ‘손배·가압류 철회투쟁’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계는 몇 가지 이유로 내부적인 분화 또는 갈등을 겪는 중이다. 예를 들어 첫째 기업규모의 차이에 따라 벌어지는 임금 격차, 둘째 이제는 전체 피고용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기에 이른 비정규적 문제, 셋째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노동운동가들의 자리를 실리적이고 비정치적인 노동운동가들이 차지하게 된 현실 들이 그 예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의 노사분규는 점점 예측불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종종 장기화한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90년대 이래 노동조합과 조합원수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사실과도 관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경쟁력 강화, 고용안정 지름길
무엇보다 고용 불안이 커지면서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노동운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한때 10% 가까이 치솟은 실업률로 평생직장·완전고용 개념은 의미를 잃고 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올 10월 들어 7.3%에 이른 정도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가 이전과는 달리 글로벌 경제에 깊이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노사 모두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이 설 자리가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운동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대기업 위주의 분배투쟁에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지켜내는, 보다 거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체제 하에서 기업경쟁력과 고용안정을 확보하려면, 노사간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말이다.
/ 김선태 ·백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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