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한국 노사관계 ⑤ 비정규직 문제 입법화 절실

외환위기 이후 증가세 가속 … 국제기준 도입 필요

지역내일 2003-11-28
지난 달 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지부장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분신, 사망에 이르면서 이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한달 째 파업중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공공연맹이 다시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공공연맹은 기자간담회에서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사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다”며 산하 노조를 참여시켜 파업수위를 높이겠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노동부는 “개별 사업장 사안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문제에 노동부가 개입하기는 어렵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확산일로의 비정규직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90년대 이래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다가 IMF 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기업측이 기존의 정규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야기되는 중이다.
우선 비정규직은 임금 수준에서 정규직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 해 통계청이 경제활동인구조사과정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월 평균임금에서 정규직은 182만원으로 비정규직의 96만원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높았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은 월 평균임금이 77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경실련과 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한 ''비정규 노동자 권리침해 백서''를 보면 수백건에 이르는 다양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침해 사례가 수록돼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마치 외지에서 온 이방인 취급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4년제 대졸자로 10년 가까이 디자인분야에 근무한 한 여성은 남자직원들이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과 달리 임시직으로 고용되어 임금이 절반에 불과했고 수당 등을 받지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여성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모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일을 하는 도 모씨와 조 모씨는 정년 63세를 10년 남기고 별다른 잘못도 없이 퇴직을 강요당했다. 역시 여성이라는 것이 이유라고 추정된다.
김 모씨는 95년 일류호텔의 조리부에서 시간제 사원으로 입사했다. 5년동안 다섯번에 걸쳐 계약을 반복 갱신하면서도 근속을 했는데, 어이 없게도 근무평점이 낮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무엇을 근거로 점수가 매겨지는 지 김씨가 알 리 없었다.
은행에서 주로 창구업무를 담당하는 다수 여직원들은 대표적인 비정규직원이다. 지난 해 금융노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정규직원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면 이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 적게 근무한다는 것 정도이다.

노사정, 개념규정에도 시각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현재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 1448만명 중 상용근로자는 735만명으로 50%를 갓 넘겼으며, 임시근로자 502만5000명, 일용근로자 210만4000명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직전인 96년도에 상용근로자 수가 749만명으로 임시(390만명), 일용(179만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비정규직의 범위와 규모에 대해서는 노동계와 재계 그리고 정부의 시각차가 크다. 노동계는 임시·일용직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간주하며 이에 따라 비정규직이 50%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및 재계는 종사상 지위별 분류가 아닌 고용형태별 분류에 따라 27% 정도만이 비정규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호근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은 이러한 논란과 관련, “우리나라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고용형태를 정하지 않는 관행이 많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속도 붙은 노동시장 유연화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는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시대적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인력감축을 선호하고 있다. 1980년대 GE 등 미국 기업이 주도해 온 이 관행은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쳐링 등의 개념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급기야 1990년대 들어와 종신고용의 원조격인 일본 기업들도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세계적 가전업체 소니사는 2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전후에 한국 기업들도 꾸준히 구조조정을 벌여 왔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명예퇴직 등을 통해 해마다 인원을 감축했으며, 얼마전 국민은행도 대규모 감원계획을 발표했다. KT는 최근 노사합의를 통해 5300명이라는 초유의 명예퇴직을 단행했다.
문제는 이들 감원된 정규직들이 회사에 남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고용형태를 달리 하여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들의 업무형태와 노동강도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재계는 다양한 방식의 외부인력 활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응 경총 상무는 “인건비 절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은 경기변동, 새로운 사업투자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규직이 고임금을 유지하는 데 따른 대체방안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노동시장 유연화가 대세라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 비정규직 채용이 비교적 쉽다는 선진국보다 한 수 위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세계은행 그룹(World bank group)이 발표한 ''Doing business in 2004, 근로자 고용과 해고''라는 보고서는, OECD 29개국 중 한국을 체코 다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기 쉬운 국가군에 포함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는 미국,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등이 포함된다.
그에 반해 해고 절차에 대한 규제는 12위, 고용 조건에 대한 규제는 6위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의 노동법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정규직에 대해 비교적 강력한 보호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강한 차등을 두는 국가로 비쳐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최소한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은 준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모 시청 일용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적 있다는 김모씨는 “당시 10년 내내 월급이 120만원이었기 때문에 내 자존심을 살릴 정도만큼만 올려달라고 했다가 계약 해지 통지를 받았다”면서 “그 정도 권리는 있을 줄 알았다”고 울분을 삼킨다. 최소한 두 딸 학원비는 제 때 마련하고 싶었다는 것이 김씨가 말한 자존심의 내용이었다.

정부가 비정규직 양산 앞장
비정규직으로 정규직을 대체하는 경우는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집회도중 분신한 이용석씨는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노동부 직업상담원 신분으로 지난달 파업까지 벌인 직원도 매년 계약을 갱신해 온 계약직원이었다.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노동부는 한 술 더 떠 전체 직원의 50%에 가까운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체국 상시집배원도 대표적인 비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체신노조에 따르면 이들 상시집배원이 전체 직원의 27%인 4200명이나 된다. 주영두 체신노조 법규국장은 “노사합의를 통해 3년내 전체 집배원의 1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1년에 800명 정도씩 단계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 등 교육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이 광범위하게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부와 공공부문이 비정규직의 양산에 앞장섬으로써 노정 갈등을 노출하자 정부는 기획예산처와 노동부를 중심으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완료하고 대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악이 예고되는 ‘개혁입법’
어쨌든 비정규직 대책에 앞장서 온 부처는 노동부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대책활동이 불행하게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노동부는 노사정위회 공익위원의 제안에 기초하여 ‘노사관계 개혁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비정규직과 관련, 파견근로제를 확대하고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지 않은 채 계약기한을 2년으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견제 근로는 노사정위원회 내부 공익위원안에서 이미 반대의견이 높았고, 기간제근로자 사유설정에 반대한 것은 경영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노동계의 반발이 커지고 파업과 분신이 잇따르자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노사관계 혁신방안을 확정지을 것”이라고 밝혔고, 노동부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노동계는 노동부가 아직까지 혁신의 내용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 주장한다. 이 문제를 다루는 노사정위가 24일까지도 정상가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선 상임위원은 “방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등 주요쟁점을 검토하는 1차 논의를 마쳤다”면서도 “아직 노사간에 본격적인 협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가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양자 사이에 조율할 내용이 거의 없고, 노사정위의 권위마저 이미 실추되어 누구도 협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배경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진원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연초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거의 모든 것이 충분히 논의되었고, 이에 근거한 공익위원들의 제안도 나름대로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9월 노동부가 내놓은 방안은 그 제안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노동부는 파견근로의 경우 경영계의 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네거티브 리스트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을 보면 노동부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이와 관련 지난 5월 화물연대 파업사태를 종결할 당시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는 정부 내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노동 편향이라면 편향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국제기준에 맞는 개선이라도
현재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보호입법은 크게 비정규직 억제와 차별 해소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2년이 경과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파견노동을 전 부문으로 확대하면서도 음성적인 파견노동을 적극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파트타이머와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대책 등도 준비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책마련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는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방향 설정에 노동권 보장이라는 핵심이 빠졌다고 지적한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노동법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설명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국장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과 같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핵심적인 문제 등이 빠진 정부대책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책 마련 이전에 정부는 당장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공공부문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라고 꼬집는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계속 대정부 요구를 강화할 태세이다. 특히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 노동조합의 조직률이매우 낮은 상태에서 노총이 비정규직 조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자구 노력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4% 수준이다. 조진원 소장은 “당장은 양대노총 중심으로 조직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 최소한 국제기준에 맞는 보호입법이라도 정부가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 김선태·백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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