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과 함께 하는 박철의 금융교실]‘부자만들기’로 전락한 금융교육

지역내일 2004-01-02
이 땅에 사는 부모 치고 아이들 교육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영어·수학은 기본이고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태권도까지 정말 가르쳐야 할 게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한 교육은 자꾸 생기게 마련이다. 요즘에 거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금융교육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금융교육 열풍에 대해 마냥 환영일색만은 아닌듯하다. 벌써 한편에서는 금융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한 어린이책 평론가는 얼마 전 신문의 기고문에서 어린이 금융교육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돈을 가르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도 경제활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삶에서 극히 작은 부분일 뿐더러 금융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금융교육의 본질에 대한 오해나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우리 금융교육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금융교육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은 ‘우리 아이 부자 만들기’, ‘미래 CEO 키우기’식의 거창한 구호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거창한 구호들은 IMF이후 열풍처럼 몰아친 부자신드롬 속에서도 ‘부자아빠’나 ‘부자엄마’가 되지 못한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부모들도 잘 모르는 경제·금융용어를 말해가면서, 그럴싸하게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주식투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든든한 보험을 들어 둔 것처럼 부모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철히 한번 주위를 둘러 보자. 카드대금을 제때 갚지 못하거나 휴대전화 요금을 연체해서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10대, 20대가 72만 명(11월 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모들의 기대처럼 부자나 CEO가 되기 보다는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우리 아이들이다.
‘스무살 이제 돈과 친해질 나이’라는 책자를 들춰보면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금융교육은 단순히『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금융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선택』과『의사결정의 책임』을 가르치는 데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금융교육은 이런 내용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한 어린이 경제캠프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례를 살펴보자.
캠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일정한 상황을 설정해주면 해결책은 아이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해서 제시하는 경제 상황극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아빠는 직업이 없이 집에서 놀고 있지만 가족들은 부유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새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자 아빠는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화가 난 할아버지는 “내일까지 네 가족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아오지 않으면 더 이상의 생활비를 대줄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이상이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이다. 과연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런데 한 조의 아이들이 토론을 거쳐 연극으로 표현한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다. 그 내용이란 유산도 받고 보험금도 타내기 위해 할아버지를 청부살인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청부살인업자에게 은밀히 수고비를 건네는 모습까지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다른 조의 아이들까지 이 연극이 재미있다며 ‘베스트 연극’으로 뽑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돈’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돈’을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벌든 상관이 없다. 그저 많이 벌면 최고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금융교육의 현 주소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돈은 책임감을 수반한다. 그래서 금융교육은 단순한 금융지식의 전달 차원을 넘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내가 한 경제활동이 어떻게 내 주변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또 나는 그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금융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돈은 가장 좋은 하인이며, 가장 나쁜 주인이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국민은행 연구소 금융교육 TF팀 박철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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