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남발달장애전환교육센터’는 하루하루가 바쁘다. 지난 3년여 교육을 시킨 1기 학생들이 정착하기 위해 마련한 농장에 올 봄부터 농사지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이날도 농장에 얼마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애완견들의 예방접종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 생산서 유통까지 = 2000년 성남시에서 임대한 부지에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전환센터는 당시 뜻을 같이 했던 특수학교 교사 2명,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 2명 그리고 특수학교에서 기사로 근무하던 1명 등 총 5 명이 시작했다.
현재 전환센터는 지난 3년간 근무 겸 교육을 받은 1기생의 사회진출을 위한 마지막 교육과 2기생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전환센터는 유기농을 통해 장애인 사회적응훈련과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적지만 월급을 받아 자립농장 설립을 위한 준비한다.
일과는 오전 9시 출근부를 찍으면서 시작된다. 오전에는 그날 판매할 채소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비장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판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솜씨는 숙련된 농군이다.
그러나 초등 6년, 중·고등 6년 그리고 전문과정 2년 등 많게는 14년의 교육과정을 마쳤지만 이곳에 차음 왔을 때 이들은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돌과 흙 그리고 풀과 채소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환센터의 재배작물은 고추와 토마토가 주종이다. 장애아들은 어려서부터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녹색과 빨강색은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재활센터 상품들의 주요 유통경로는 분당구 효자촌에 설치된 좌판. 재활센터 사정을 알고 난 효자촌 주민들이 단지 내 좌판설치를 허락해줬다.
오후 두시쯤에 시작된 장사는 오후 다섯 시 정도면 끝이 난다. 유기농 상품인데다 가격경쟁력도 갖추고 있어 단골도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님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먼저 농담을 건넬 정도로 변했다.
◆ 왜 농업인가 = 재활센터가 농업을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김관양 교사는 “임가공을 선택할 경우, 원청에서 계약을 해지하면 아이들은 당장 실업자가 된다”며 “일반인들에 비해 직업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인 산업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또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장애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환경호르몬과 공해다”며 “유기농을 선택함으로써 장애요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환센터는 공교육기관의 직업교육을 벤치마킹,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농업을 선택했다.
국내 특수교육기관들이 실시하고 있는 직업교육의 대부분이 공예 수예 등 ‘공과’ 중심 과목들이다. 그러나 공예품, 수예품의 경우 가격이 싼 중국산 상품 등으로 이미 판로를 잃어 버렸다. 과거에도 장애인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판로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12년간의 특수교육을 마친 장애인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 자활농장 마련 = 최근 전환센터는 경기도 광주에 농지를 마련했다. 1기생들이 들어가 생산 활동을 하며 살아갈 농장부지다.
이곳이 정상화되면 한 대형할인점에서 매장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물량이 부족해 포기했던 경험을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전환센터 식구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예산의 대부분을 시설비나 시설보수비로 사용하는 기존 특수학교와 달리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일반인들 속에서 교육 = 전환센터는 센터생들의 가장 큰 변화를 초보적 수준이지만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아침 아홉시면 어김없이 전환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물론 나 홀로 출근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3~6개월의 교육이 필요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전환센터의 입지조건.
전환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성남시 분당의 율동공원 내. 이곳은 인근 아파트단지는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공원이다. 이 곳에서 매일 실시된 반복적인 산채과 운동은 교육생들의 대인기피증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줬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할 때는 일반인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환센터 식구들이 자주 만나는 이웃일 뿐이다”라며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일반인을 만나도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최근 김 교사는 전환센터에서 생산품을 이용한 음식개발에 여념이 없다. 작은 공동식당을 개업하기 위해서다. 식당이 문을 열면 생산물의 소비는 물론 장기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이미 학부모 중 한 사람이 조리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요즘 김 교사는 곳곳으로 강의를 하러 다닌다. 또 전환센터의 성공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례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김 교사는 전환센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교육시스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은 게 김 교사의 소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 생산서 유통까지 = 2000년 성남시에서 임대한 부지에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전환센터는 당시 뜻을 같이 했던 특수학교 교사 2명,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 2명 그리고 특수학교에서 기사로 근무하던 1명 등 총 5 명이 시작했다.
현재 전환센터는 지난 3년간 근무 겸 교육을 받은 1기생의 사회진출을 위한 마지막 교육과 2기생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전환센터는 유기농을 통해 장애인 사회적응훈련과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적지만 월급을 받아 자립농장 설립을 위한 준비한다.
일과는 오전 9시 출근부를 찍으면서 시작된다. 오전에는 그날 판매할 채소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비장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판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솜씨는 숙련된 농군이다.
그러나 초등 6년, 중·고등 6년 그리고 전문과정 2년 등 많게는 14년의 교육과정을 마쳤지만 이곳에 차음 왔을 때 이들은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돌과 흙 그리고 풀과 채소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환센터의 재배작물은 고추와 토마토가 주종이다. 장애아들은 어려서부터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녹색과 빨강색은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된 재활센터 상품들의 주요 유통경로는 분당구 효자촌에 설치된 좌판. 재활센터 사정을 알고 난 효자촌 주민들이 단지 내 좌판설치를 허락해줬다.
오후 두시쯤에 시작된 장사는 오후 다섯 시 정도면 끝이 난다. 유기농 상품인데다 가격경쟁력도 갖추고 있어 단골도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님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먼저 농담을 건넬 정도로 변했다.
◆ 왜 농업인가 = 재활센터가 농업을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김관양 교사는 “임가공을 선택할 경우, 원청에서 계약을 해지하면 아이들은 당장 실업자가 된다”며 “일반인들에 비해 직업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인 산업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또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장애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환경호르몬과 공해다”며 “유기농을 선택함으로써 장애요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환센터는 공교육기관의 직업교육을 벤치마킹,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농업을 선택했다.
국내 특수교육기관들이 실시하고 있는 직업교육의 대부분이 공예 수예 등 ‘공과’ 중심 과목들이다. 그러나 공예품, 수예품의 경우 가격이 싼 중국산 상품 등으로 이미 판로를 잃어 버렸다. 과거에도 장애인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판로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12년간의 특수교육을 마친 장애인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 자활농장 마련 = 최근 전환센터는 경기도 광주에 농지를 마련했다. 1기생들이 들어가 생산 활동을 하며 살아갈 농장부지다.
이곳이 정상화되면 한 대형할인점에서 매장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물량이 부족해 포기했던 경험을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전환센터 식구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예산의 대부분을 시설비나 시설보수비로 사용하는 기존 특수학교와 달리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일반인들 속에서 교육 = 전환센터는 센터생들의 가장 큰 변화를 초보적 수준이지만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아침 아홉시면 어김없이 전환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물론 나 홀로 출근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3~6개월의 교육이 필요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전환센터의 입지조건.
전환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성남시 분당의 율동공원 내. 이곳은 인근 아파트단지는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공원이다. 이 곳에서 매일 실시된 반복적인 산채과 운동은 교육생들의 대인기피증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줬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할 때는 일반인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전환센터 식구들이 자주 만나는 이웃일 뿐이다”라며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일반인을 만나도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최근 김 교사는 전환센터에서 생산품을 이용한 음식개발에 여념이 없다. 작은 공동식당을 개업하기 위해서다. 식당이 문을 열면 생산물의 소비는 물론 장기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이미 학부모 중 한 사람이 조리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요즘 김 교사는 곳곳으로 강의를 하러 다닌다. 또 전환센터의 성공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례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김 교사는 전환센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교육시스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은 게 김 교사의 소망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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