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현기영 문화예술진흥원장

“돈되는 문화만 강조하면 경박해져”

지역내일 2004-01-14
소설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지 1년을 맞고 있는 현기영(63·사진) 문예진흥원장은 여전히 문학가다. 창작활동은 못하고 있지만 예술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작가시절보다 훨씬 뜨겁기 때문이다. 낮에는 원장, 저녁에는 소설가로 애써보겠다는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으나 다양한 예술 장르에 대한 이해와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된 것은 글쓰기 이상의 기쁨이었다.
진흥원 행정이 예술현장과 ‘동거’를 할만큼 밀착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현 원장은 문예진흥위원회로의 구조개편이야말로 문화예술의 일대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문화예술계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산영화 외 다른 분야는 불황을 면치 못한 것 같던데요?
문학출판의 경우 판매량이 3분의 2가 줄어들었습니다. 연극이나 무용, 영화 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이 빈사상태에 처해있어 콘텐츠의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연극도 불황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문학선진국 프랑스의 경우는 영화배우보다 연극배우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으며, 연극의 활성화로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초예술인 문학 연극 등에 대한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임하신지 1년이 돼가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의 현장에서 활동하실 때와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며 진흥원을 운영하시면서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글쓰는 것밖에 관심이 없었으나 음악 미술에까지 눈을 돌려야 돼서 정신이 없습니다.
직원들에게는 관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장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의복과 용모, 예술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분위기, 예술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으로 거래식 만남, 행정적인 만남을 지양하고 예술현장과 동거·거주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로의 전환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는데 진흥원 구조개편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세요?
지난해말 정기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못해 다소 아쉽습니다. 2월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합니다.
위원회 전환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취지를 잘 모르거나 오해가 있어 처음에는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차츰 오해가 풀리면서 문화예술계 내부는 이제 위원회 전환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원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는 체제로는 변화무쌍한 문화환경에 대응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각 장르별 상황은 현장에 몸담고 있는 예술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는 적재적소, 적임자에게 지원이 안돼 예술진흥이 어렵습니다.
위원회는 11인의 위원이 협의해 운영하는 방식이므로 권한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며 위험도 분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예진흥정책의 변화 필요성과 가장 크게 변화되어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돈 번 다음에 문화다’라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돈만 벌려고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 선진국 시민들만큼 문화의식이 예민하지 못합니다. 정부도 정치 경제가 먼저라고 생각하면서 문화예술은 문화부나 문예진흥원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정부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도 돈 된다, 문화야말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런 슬로건으로만 접근하면 경박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뒷받침하는(내용을 채울 수 있는) 기초예술을 등한시하게 됩니다. 기초예술을 진작시켜야 돈이 되는 문화도 만들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기초예술에 지원함으로써 다른 콘텐츠에 파급 지원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방식의 지원정책을 펼 생각입니다.

문화산업발전을 위해서도 순수예술의 진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인데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정책의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요?
진정으로 뛰어난 예술작품을 고르고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연간 270억원의 진흥기금을 조금씩 여러 군데 나눠주는 ‘소액 다건주의’ 지원방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단순 기계적 배분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창의적 배분 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저변확대도 중요하지만 문화분야에서는 봉우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펠로우십 등의 방법을 통해 독일의 괴테나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브랜드 아티스트를 키우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문화예술지원 정책 결정을 예술가들에게 맡기면 획일주의나 권위주의가 확대되리란 우려도 있는데요?
예술가들은 자기의 작품세계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기 작품세계 이외의 경향 등에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볼 우려가 있습니다. 설득을 안 당하려고 하기 때문에 심사 토론 과정에서 예술가들간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새로 탄생할 문예진흥위원회에는 각 장르를 대표하는 예술가뿐 아니라, 예술행정가 및 향수권을 갖고 있는 시민대표자도 참여하게 될 것이며 전문 역량을 지닌 우리 직원들도 충분히 조정자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예진흥기금 모금제도가 올해부터 폐지되고 통합복권법에 따라 대체 재원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문제점은 없는지요?
모금제도를 대체할 재원이 마련돼 다행이지만 배분율이 정해지지 않는 등 불안한 점이 있습니다. 물론 예산은 증액되리라고 보지만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 지원정책을 펴왔으나 앞으로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에게는 메세나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공연단체나 예술가 개인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시민 모임이 활성화 되도록 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좋은 창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민예총·예총 등 성향에 따른 분류 등 문화예술계의 잘못된 관행이나 구조에 따라 문화예술의 발전이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국규모의 예술단체는 독재국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 된 사회에서는 그러한 조직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런 조직은 집행부를 비롯한 상부구조만 남아 있지 현장의 예술가들은 자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예총과 민예총을 구분하거나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진흥원의 기금심의위원 선정과정에서도 전국규모의 단체 대표나 집행부 등 편향된 섹트의식이 농후한 경우에는 심의위원으로 선정하지 않았고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역시 11인 위원회나 소위원회에는 그런 인물들은 배제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건의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요?.
예술가는 배고파야 된다고 하지만, 배고프면 상업주의적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약간의 자존심을 부여하고 수입이 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을 공교육에서 시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이나 미술 등 실기를 가르치는 예능교사는 있지만 연극이나 무용, 창의적 글쓰기나 문학작품을 읽도록 지도하는 문예교사는 아직 없습니다. 이들을 학교교육에 활용하는 정책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펴나가 제도화해 주길 바랍니다.




/황인혁 기자 ihhw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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