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검색결과 총 22,378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충무로서 영화 거리 축제 서울 중구는 영화의 날을 맞아 충무로 일대에서 영화의 거리 축제를 연다. 26일 명보극장 인근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품바공연·칵테일쇼·바디페인팅쇼·댄스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어린이예술단이 애니메이션 영화 주제가를 합창하고 챔버오케스트라 등도 출연한다. 전야제의 기념식과 한국영화 무료 상영(오전 11시부터 역도산·살인의 추억·주먹이 운다)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충무로는 1955년〈춘향전〉이 수도극장(현 스카라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후 영화의 메카로 발전했다. 그후 충무로3가 43번지(대원빌딩)~충무로3가 60-1번지(극동빌딩) 앞거리에 영화관련 업소가 밀집했지만 80년대 이후 영화관련 단체가 강남 등으로 이전해 위축되기도 했다. 현재 충무로 2·3·4가와 마른내길 · 돈화문로 일대에는 영화관련 단체가 9개소, 영화사 10개소, 극장 11개소, 공연장 26개소 등과 사진갤러리 6개소, 스튜디오 100여개소, 사진협회 및 출력협회 등 기타 상가 1000여개소가 있다. 김성배 기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3
- 국가 원로님께 드리는 고언 지난 10월 18일 국가 원로님들이 시국성명을 내셨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습니다. 강정구 교수 때문에 원로님들이 역정을 내고 계신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강교수가 아무래도 지나치게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군대 시절에 북한군과 전투를 해 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로 보아 6·25 전쟁은 아닌 것 같고 월남에도 북한군은 없었으므로 이상하다고 생각해 자세한 사정을 캐물었습니다. 1968년 가을에 터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 출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 교수 소대는 참혹한 피해를 입어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연이었는데,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원로님들도 일부 군 출신을 제외하고는 금시초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 때 고교 1학년이었는데 6·25날이 되면 학생들이 잔꾀를 내어 선생님께 전쟁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 선생님 중에는 학도병 출신의 상이용사가 여러 분 계셨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는 동상으로 손가락이 모두 없어져 간신히 남아있는 마디에 분필을 끼워 쓰시던 영어 선생님의 사연이었습니다. 겨울에 후퇴하다 북한군을 만나 뒤섞인 채 혼전이 벌어졌는데 앞에서는 미군이, 뒤에서는 중공군이 사격하는 통에 가운데 낀 남북한 군인만 죽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실전담을 많이 들었지만 주로 힘들고 어려웠다는 이야기였지 무공을 자랑하는 분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진짜로 체험한 사람은 평화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 전쟁 없어야 남북이 극한 대치하던 어두운 시절에 국가 원로님들이 지키려고 고생하시던 소중한 가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였습니다. 인권,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남북은 화해와 상생을 지향한 발걸음을 겨우 떼기 시작하였으며 아직도 주변정세는 살얼음판입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상품이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버젓하게 팔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분단 이후 60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발언도 대승적 견지에서 의견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 정도의 일로 강교수를 빨리 구속하라고 재촉하는 원로님들은 1972년에 “이념과 체제를 넘어 민족적 입장에서 통일한다”는 7·4 공동성명을 김일성과 같이 발표한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 일의 실무를 맡아 평양을 몰래 오고 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는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로님들은 국민저항권을 발동하여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좌파 정권을 끝장내자고 호소하셨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한 적도 없고,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나 민노당은 오히려 미국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문제로 노동조합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가 어째서 좌파입니까? 삼성 편법상속 조사나 강남 아파트값 안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진짜 좌파가 집권하고 있으면 모순이 폭발해 계급혁명이 일어 나도록 문제를 방치하거나 악화시켰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정권과 좌파정부 저는 33년 전의 10월 18일 아침에 목격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날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강제 해산했습니다. 10월 유신이라는 대통령 주도 군사반란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학생들은 서울대 개교기념 체육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던 태릉선수촌으로 등교했습니다. 선수촌 입구에는 기관총을 거치한 장갑차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장전된 노란 실탄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학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기약 없는 휴교에 들어갔고, 학생들은 분노 속에서 ‘국민적 저항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6·29 선언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복원되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는지 원로님들이 저보다 더 실감하고 계실 줄 압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가정을 하나 해보지요. 군사정권 시절 원로님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적 저항권을 행사하셨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종 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1
- ‘투명·공개경영’이 경쟁력 원천 입소문이 홍보전략 … 강사평가로 ‘교육의 질’ 유지 청솔학원 이재형 대표 6개의 직영학원과 수십 개의 프랜차이즈 학원을 이끌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난 첫 느낌은 ‘젊다’는 것이었다. 이재형 대표는 80학번 운동권 출신이다.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그랬듯이 이 대표는 1993년 학원 강사를 직업으로 삼았고, 영어과에서 꽤 이름을 날린 이른바 ‘유명강사’였다. 그런 이 대표가 1993년 설립된 청솔학원의 법인대표로 임명된 것은 1999년이다. 우리 나이로 막 40대에 접어든 이 대표가 법인대표가 된 이유는 단 하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솔학원은 경영이나 교육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변해야만 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대학입시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1993년 마지막으로 학력고사로 대입을 치렀고, 1994년에는 본고사와 수능을 동시에 치르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수능만으로 대학입시를 치르는 등 매년 선발방식이 변했다. 이렇게 입시제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은 재수생 전문학원이었던 청솔학원에게는 역경과 고난을 의미했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입시학원으로서 존립기반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 대표는 “변화를 필요로 하던 이들은 학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월급을 주는 직장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 학원’이라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아마 그런 애정과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란 주변의 기대감이 나를 대표로 추천한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야 무엇이었든 당시 청솔학원 구성원들의 선택은 옳았다. 이 대표는 취임 이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가며 청솔학원을 신흥명문학원으로 성장시켰고, 분원과 프랜차이즈 학원 등으로 사업규모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가 이끄는 청솔학원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 오너중심의 학원이 아니라 국내 학원가에서 보기 드물게 법인으로 등록된 학원이라는 점이다. 이 대표는 법인으로 등록한 이유에 대해 “교육기관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투명경영과 구성원 모두의 주인의식이 필요했다”며 “학원설립에 기여했거나 학원발전에 기여한 강사들을 주주로 영입했고, 지금도 영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처음 법인으로 출발했을 때는 10여명이었던 주주가 지금은 약 60명에 달한다”며 “초기 주주들 대부분이 직영학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후 합류한 주주들도 부원장 실장 등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솔학원 주주는 강사들 뿐 아니라 관리파트 직원들도 포함돼 있다. 이 덕분에 청솔학원은 구성원 모두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능동적인 자세로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런 변화는 바로 학원생들에게 전달됐고, 그들에게서 신뢰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학원과 강사에 대한 학원생들의 신뢰는 보다 ‘질 좋은 강의’로 이어졌다. 이결과 1998년 250명 수준이었던 강남 본원의 대학합격생 수가 1999년에는 450여명, 2000년에는 600여명, 2001년에는 700여명으로 증가했다. 이 대표는 “입시학원은 1년 동안 투자한 게 다음해부터 결실을 본다”며 “학원체질을 바꾸기 시작한 다음해부터 그 결실들이 눈에 띄게 커 나가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청솔학원 구성원들은 성공비결을 바로 ‘주인의식’에서 찾고 있다. 실력 있는 강사들이 주주가 되면서 또 주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강의의 질’이 높아졌고, 강의 이외에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아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보통 학원들의 입시지도가 배치상담 수준에 그치는 것과 달리 우리 학원에선 학습전략을 세워주는데 공을 들인다”며 “대부분 재수학원들이 오후 3~4시 정도까지 수업을 하고 강사들은 퇴근을 하는 시스템인데 반해 우리는 방과 후에도 개별적인 지도를 해주고 밤 10시까지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구성원들의 주인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청솔학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홍보 전략은 ‘입소문’이다. 청솔학원을 다녔던 학생과 학부모가 친척이나 친구 등 주변에 권유할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학원으로서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청솔학원의 전략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학원은 서비스 산업”이라며 “소비자인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과 그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마케팅의 기본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며 “고객을 만족시키면 입소문이 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데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진 ‘실력향상에 대한 기대치’를 청솔학원이 만족시켜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청솔학원의 강사 선발기준은 철저하게 ‘실력’이 검증된 사람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우리는 유경험자만 채용한다”며 “실질적인 수업자질과 함께 과거 근무했던 학원에서의 평판, 학생들에 대한 애정, 교육에 대한 열의를 꼼꼼하게 살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관적인 판단 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과거 근무했던 학원에서의 경험과 경력관리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설명이다. 또한 청솔학원은 철저하게 ‘강사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매년 2번씩 시행되는 설문을 통해 강사들은 수업 내용과 열정을 학생들에게 평가받는다. 평가결과는 다음해 재계약에서 일정부분 반영된다. 청솔학원은 학생들 뿐 아니라 강사들 사이에서도 한번쯤 근무해보고 싶은 학원이기도 하다. 이는 청솔학원이 직원 복지로도 입시학원가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강사료만 보더라도 학원가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모든 강사들이 주인의식으로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학원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따라서 이익은 당연히 직원복지, 근무조건 개선 등으로 직원들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솔학원과 이재형 대표는 학원이 어려울 때 강사와 직원들에게 어려움을 공개했다. 또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재를 털어 학원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런 투명경영 원칙 덕분에 청솔학원에는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어 학원가는 물론 다른 업종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4
- “송파신도시는 강남 대체가 목적” 이유택 송파구청장은 송파신도시 발표 이후 고민에 빠졌다. 신도시 발표로 지역개발 이득을 얻게 됐지만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 건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지역별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근본적으로 임대주택은 일자리가 있는 곳에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송파가 최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내놓은 친환경 프로젝트는. 송파는 자연환경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강을 타고 흐르는 곳에 남한산성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석촌호수가 들어서 있다. 물론 이같은 조건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가꾸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내천 복원이다. 요즘 청계천복원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밀접한 환경은 성내천에 조성돼 있다. 성내천 복원과 함께 석촌호수의 공원화 사업이 어우러져 친환경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 최근 송파신도시와 거여·마천뉴타운 등 한꺼번에 개발사업이 발표됐다. 송파의 모습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이는데. 송파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잠실지구 재건축사업부터다. 이때부터 개발바람이 불기 시작해 송파신도시라는 태풍을 만났다. 송파구 인구는 60만명을 넘는다. 잠실 재건축과 신도시, 뉴타운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면 인구는 100만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자연스럽게 송파구는 2개로 나눠질 것이다. 또 판교신도시와 인접해 행정구역의 변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과 인구유입 이전에 친환경성을 어떻게 지키면서 개발하느냐다. 성내천과 석촌호수를 중심에 놓고 구역별 개발을 구상해야 한다. - 송파신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송파신도시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송파신도시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신도시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한다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가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임대주택은 지역별 균형을 맞춰야 한다. 특히 직장이 밀집한 곳에 직주근접 개념의 임대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최소의 임대주택만 건설하고 나머지는 중대형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신도시의 기능도 가능해진다. - 도심속 녹지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녹지가 더 줄어들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다면 도심속 녹지는 도심공원을 말하는 것이다. 공원개념이 아닌 녹지율로만 보면 큰 산이 있는 자치단체가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러나 도심속 녹지공원은 개발을 하더라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송파에 예정돼 있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해 녹지가 줄어들 염려는 없다. - 제2롯데월드 등 굵직한 사업들이 개발제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개발제한에 대한 송파구의 입장은. 제2롯데월드는 세계 최고 높이의 호텔을 짓는다는 거대 프로젝트다. 그러나 군부대 등으로 각종 개발제한이 걸려있다.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일환으로 봐야할 일을 국가안보 개념으로 먼저 해석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호성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30
- 17면 캡션 이재용 환경부장관은 30일 오전 7시부터 8시50분까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대치역 앞)에서 정부과천청사(경기 과천)에 이르는 도로에서 자전거 타기 캠페인을 벌였다. 환경부자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일반시민들이 ‘자전거 타기’를 통해 건강도 지키고 대기오염 개선에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환경부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30
- [기획-송파]인터뷰- 이유택 송파구청장 이유택 송파구청장은 송파신도시 발표 이후 고민에 빠졌다. 신도시 발표로 지역개발 이득을 얻게 됐지만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가 불가피하게 들어서야하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지역별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근본적으로 임대주택은 일자리가 있는 곳에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도시 건설 발표로 ‘뜨고 있는’ 송파구의 미래를 구청장의 구상을 통해 그려보았다. 송파신도시 발표 이후 주거환경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친환경적 도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한다면 -송파는 자연환경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강을 타고 흐르는 곳에 남한산성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석촌호수가 들어서 전국 최고의 친환경 도시를 선언했다. 물론 이같은 조건이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가꾸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내천 복원이다. 요즘 청계천복원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밀접한 환경은 성내천에 조성돼 있다. 성내천 복원과 함께 석촌호수의 공원화 사업이 어우러져 친환경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송파신도시와 거여·마천뉴타운 등 한꺼번에 개발사업이 발표됐다. 송파신도시와 뉴타운으로 송파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게 되나 -송파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잠실지구 재건축사업부터다. 이때부터 개발바람이 불기 시작해 송파신도시라는 태풍을 만났다. 송파구 인구는 60만명을 넘는다. 잠실 재건축과 신도시, 뉴타운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면 인구는 100만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자연스럽게 송파구는 2개로 나눠질 것이다. 또 판교신도시와 인접해 행정구역의 변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과 인구유입 이전에 친환경성을 어떻게 지키면서 개발하느냐다. 성내천과 석촌호수를 중심에 놓고 구역별 개발을 구상해야 한다. 송파신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송파신도시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송파신도시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도시 건설을 반대했지만 송파구 입장에서는 신도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 신도시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한다는 주장이다. 그중 첫 번째가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임대주택은 지역별 균형을 맞춰야 한다. 특히 직장이 밀집한 곳에 직주근접 개념의 임대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지역에 필요한 최소의 임대주택만 건설하고 나머지는 중대형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강남을 대체할 수 있는 신도시의 기능도 가능해진다. 도심속 녹지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녹지가 더 줄어들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다면 -도심속 녹지는 도심공원을 말하는 것이다. 공원개념이 아닌 녹지율로만 보면 큰 산이 있는 자치단체가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러나 도심속 녹지공원은 개발을 하더라도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도심속 녹지는 어차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보존해야하기 때문이다. 송파에 예정돼 있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해 녹지가 줄어들 염려는 없다. 제2롯데월드 등 굵직한 사업들이 개발제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송파신도시 등을 건설하려면 개발제한이 풀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제한에 대한 송파구의 입장은. -제2롯데월드는 세계 최고 높이의 호텔을 짓는다는 거대 프로젝트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직장이 없는 송파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군부대 등으로 각종 개발제한이 걸려있다.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일환으로 봐야할 일을 국가안보 개념으로 먼저 해석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개발제한으로 고통받은 주민들에게 보상차원에서라도 군부대 등의 규제는 줄어야 한다. 전호성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29
- “1.6% 불과한 상업지역 대폭 늘려야” “ ‘강남 누르기’식의 서울 균형발전은 무의미 합니다. 강북지역을 살리는 실천적인 정책을 내놓는다면 정부의 균형발전론도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기재 청장은 “강북지역 자치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구 재정 자립도는 서울시 25개 구청 중 20위권에 불과한 노원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전체 구 면적의 1.6%에 불과한 상업지역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선 단체장 당선 이후 이 청장은 창동 차량기지와 도봉 면허시험장, 육군사관학교 이전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구 자체적으로 용역을 발주해 개발계획안도 마련했다. 면허시험장과 지하철 차량기지를 이전하고, 그 곳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자금을 유치, 복합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안이다. 또 육사부지 68만평을 활용해 도쿄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놀이공원을 조성하면 서울 강북지역과 경기북부지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휴식공간이 마련된다는 비전도 내놓았다. 이 청장은 “자치구가 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정부의 검토와 협력을 요청하면 최소한 한번쯤은 그 배경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는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를 질타했다. 그렇다고 노원구가 손을 놓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달 공릉동에 첨단 연구원 3000여명이 입주하는 첨단 벤처타운 조성공사에 착수한다. ‘서울 테크노폴리스’로 이름 붙여진 벤처타운은 상주인구만 1만여명에 달해, 단지가 완공되면 고려대쪾서울산업대쪾연세대쪾한양대 등 15개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방품질연구소 등 4개 기관 등이 참여해 공동 연구 및 정보 교류를 벌일 예정이다. 구는 서울 테크노폴리스가 초정밀 나노(NANO)단지로 자리잡아 상암동 첨단산업단지, 일산 LG필립스 등과 어깨를 겨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첨단 벤처타운, 놀이시설, 복합 상업단지와 개발이 확정된 상계동 뉴타운을 연계하면 노원구는 강북 최고 도시에서 서울 최고의 자치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명환 기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1
- “아이 교육위해 노원으로 이사왔어요” 부족한 산업시설, 첨단기술 벤처연구단지 조성으로 활로 서울 노원구 “노원엄마, 7시에 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요.” “원구는 어린이 영어교실 갔는데요.” 서울 노원구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가족과 함께 저녁시간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수준급의 공연을 감상하고, 어린이들은 구청에서 마련한 어린이 영어교실에서 원어민 강사들과 시간을 보낸다. 80년대 후반 정부의 물량위주 주택공급 정책으로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지어져 황량하기까지 했던 노원구가 문화와 교육열기가 넘치는 활력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서울시 자치구에서 가장 많은 63만여명의 구민들은 ‘강북 교육문화 1번지’라는 자부심을 키워 가고 있다. ◆지역 특성 고려한 교육 지원정책 = 노원구의 변화를 이끄는 힘은 교육에 대한 구민의 열정이다. 구 전체 면적의 85%가 주거지역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자연녹지로 상업과 생산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노원구는 ‘교육’에서 그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기재 구청장은 “주민들이 환경이 열악하니 얼른 돈 벌어서 이사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교육 여건은 노원이 최고여야 한다는 대명제를 세우고 관련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구는 우선 구청예산 가운데 한해 55억여원을 지역내 98개 초쪾중쪾고교에 지원했다. 학교가 몰려 있는 중계동 일대에는 교육환경 저해시설을 극도로 제한하고, 야간 조명시설과 버스노선을 늘려 학생들의 학습환경을 도왔다. 올 3월에는 삼육대학과 손잡고 ‘어린이 영어교실’을 열었다. 초등학교 3~6학년 어린이들을 선발해 월 4만5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원어민 학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 경기기계공고의 유휴시설을 활용해 과학고를 유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노원구는 강남 대치동에 버금가는 학원단지가 형성되었고, 강북을 넘어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교육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2005학년도 서울지역 특목고 입학생의 19.9%(987명)가 노원구에서 나왔다. 이는 강남(806명)·서초(633명)구를 한참 앞서는 수치다. 이 청장은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뿐이고, 노원 학생과 학부모 거둔 성과의 부분에 불과하다”며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아파트 단지별 문화예술의 열기 = 노원구의 변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힘은 수준급의 문화예술 인프라다. 2003년과 2004년 각각 어린이전용도서관과 노원문화예술회관을 개관한 데 이어 오는 11월에는 168억원을 들인 정보도서관을 연다. 이들 시설은 담 사이로 단절된 주민의 마음을 묶고 쾌적한 삶이 숨쉬는 도시로 만드는 1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노원 문화예술회관은 서울시 자치구 최고 수준의 예술회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중계본동에 위치한 이 곳은 지상 6층, 지하 3층, 약 4000평 규모로 245억5000만원이 들어간 핵심시설. 1층과 3층에 걸쳐 배치된 616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공연자 90명이 동시에 출연할 수 있는 160평 규모의 완전 입체형 무대다. 공연 효과 극대화를 위해 천정과 벽면에는 배경막 수십개와 투광실 등을 설치했다. 소규모 공연장으로는 드물게 오케스트라 전용무대도 갖추었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KBS 교향악단 연주회, 백건우 피아노 연주회, 조수미 송년 콘서트 등 내로라하는 유명 예술인들이 이 곳에서 노원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중계동 삿갓봉 공원 내 노원 어린이도서관은 설계부터 어린이를 고려한 전문도서관이다. 놀이기구 같은 원통형 엘리베이터가 오가고 열람식 바닥은 마룻바닥으로 설계했다. 유아열람실,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방, 유아전용 화장실, 전자책 1000여종 CD롬쪾DVD도 갖췄다. 11월 문을 여는 정보도서관은 정보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입실부터 퇴실까지 논스톱 무인서비스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구는 이 곳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문화강좌와 어학교실 등도 활발히 열 계획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1
- “중견기업금융 시장점유율 7%까지 확대”(사진) HSBC 릭 퍼드너 한국대표 ... 개인 자산관리서비스도 강화키로 HSBC가 앞으로 중소기업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고액자산가들의 자산관리서비스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은행을 인수해 영업망을 확대하는 방안은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대출모집인 등 대규모 비정규직 규모를 줄일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20일 릭 퍼드너 HSBC 한국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 중심의 기업금융서비스를 중견기업으로 대폭 확대, 기업금융시장 점유율을 5~7%로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본사에 기업금융센터를 설치했으며 지난달과 이달에도 강남 기업금융센터와 부산 기업금융센터를 개설했다. 릭 대표는 “중국 등 해외로 진출한 국내기업들의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져 있다”면서 “HSBC의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대출부터 해외진출기업 지원까지 모든 관련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HSBC는 또 글로벌 자산관리 서비스인 ‘HSBC 프리미어’ 서비스를 도입해 고액 자산가들도 적극적으로 공략할 생각이다. HSBS프리미어는 세계 120만명 고객의 자산관리 정보를 바탕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컨설팅해주는 서비스다. 종합저긴 재무진단보고서, 고객 자산보고서가 제공되고 고객별 추천 모델 포트폴리오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수정하는 작업도 거친다. 릭 대표는 “올 연말까지 하이파이브 한중 인덱스펀드, HSBC 인도주식형 펀드, 아시아시너지 펀드 등 8개의 투자상품 시리즈를 출시하고 HSBC 프리미어 고객은 현금인출 기능 이외에 전세계 HSBC지점에서 환전·송금수수료 우대 및 면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프리미어 카드와 HSBC 프리미어 핫라인 고객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SBC는 지난 5월 서울과 부산에 거주하는 25~65세 남녀 305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설문을 실시한 결과 고소득층의 대부분이 자산관리서비스를 가장 많이 요구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인수건에 대해서는 “은행 인수를 완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대형은행도 인수할 생각이 없다”면서 “연초 자생적 성장이 적합하다고 결정했으며 인천 대구 대전 등 3개 지점을 설치하는 등 지점설치 인가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출모집인 등 비정규직 직원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영전략”이라고 설명했으며 “비정규직 비율이 아주 높지 않고 나름대로 고용의 유연성 비정규직 직원수를 줄일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비정규직을 포함해 450명을 추가채용, 직원수를 1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금융노조는 ”HSBC가 대규모 비정규직과 대출모집인을 채용하면서도 구체적인 현황을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최근 금감원의 아웃소싱 확대방침 등으로 고용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1
- <신문로 칼럼>국가 원로님께 드리는 고언(이종구 2005.10.21) 국가 원로님께 드리는 고언 지난 10월 18일 국가 원로님들이 시국성명을 내셨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습니다. 강정구 교수 때문에 원로님들이 역정을 내고 계신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강교수가 아무래도 지나치게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군대 시절에 북한군과 전투를 해 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로 보아 6.25 전쟁은 아닌 것 같고 월남에도 북한군은 없었으므로 이상하다고 생각해 자세한 사정을 캐물었습니다. 1968년 가을에 터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 출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해 해설을 덧붙이면 이것은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하며 죽어갔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신화가 만들어진 때입니다. 강교수가 속한 소대는 참혹한 피해를 입어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연이었는데,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원로님들도 일부 군 출신을 제외하고는 금시초문일 것입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창피해서 전황 발표도 못했다는 기록을 회고록에 남겼습니다. 저는 그 때 고교 1학년이었는데 6.25날이 되면 학생들이 잔꾀를 내어 선생님께 전쟁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 선생님 중에는 학도병 출신의 상이용사가 여러 분 계셨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는 동상으로 손가락이 모두 없어져 간신히 남아있는 마디에 분필을 끼워 쓰시던 영어 선생님의 사연이었습니다. 겨울에 후퇴하다 북한군을 만나 뒤섞인 채 혼전이 벌어졌는데 앞에서는 미군이, 뒤에서는 중공군이 사격하는 통에 가운데 낀 남북한 군인만 죽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실전담을 많이 들었지만 주로 힘들고 어려웠다는 이야기였지 무공을 자랑하는 분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진짜로 체험한 사람은 평화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남북이 극한 대치하던 어두운 시절에 국가 원로님들이 지키려고 고생하시던 소중한 가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였습니다. 인권,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남북은 화해와 상생을 지향한 발걸음을 겨우 떼기 시작하였으며 아직도 주변정세는 살얼음판입니다. 학자라는 직업은 본래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상식을 뒤엎어보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상품이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뻐젓하게 팔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분단 이후 60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발언도 대승적 견지에서 의견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 정도의 일로 강교수를 빨리 구속하라고 재촉하는 원로님들은 1972년에 "이념과 체제를 넘어 민족적 입장에서 통일한다"는 7. 4 공동성명을 김일성과 같이 발표한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 일의 실무를 맡아 평양을 몰래 오고 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는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로님들은 국민저항권을 발동하여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속되고 있는 좌파 정권을 끝장내자고 호소하셨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한 적도 없고,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나 민노당은 오히려 미국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문제로 노동조합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가 어째서 좌파입니까? 삼성의 편법상속에 대한 조사나 강남 아파트값 안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진짜 좌파가 집권하고 있으면 모순이 폭발해 계급혁명이 일어 나도록 문제를 방치하거나 악화시켰을 것입니다. 저는 33년 전의 10월 18일 아침에 목격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날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강제 해산했습니다. 10월 유신이라는 대통령 주도 군사반란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학생들은 서울대 개교기념 체육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던 태릉선수촌으로 등교했습니다. 벌써 선수촌 입구에는 기관총을 거치한 장갑차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장전된 노란 실탄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학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기약 없는 휴교에 들어갔고, 젊은 학생들은 분노 속에서 "국민적 저항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의 6.29 선언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복원되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는지 원로님들이 저보다 더 실감하고 계실 줄 압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가정을 하나 해보지요. 군사정권 시절에 원로님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적 저항권을 행사하셨다면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