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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마당-평화적 시위문화 정착 어떻게 가능한가 6월까지 4730명 사법조치 경찰, 폭력시위 엄정대처 방침 올해 들어 전체 집회건수는 줄어들었으나 불법 폭력시위로 인한 사법조치 인원은 오히려 증가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 7월말까지 전국의 집회 건수는 5826회로 참가인원이 137만2529명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1만1036회의 집회에 292만8483명이 참가한 것에 비해 줄어들 전망이다. 전체 집회건수는 2002년 1만165회에서 2003년 1만1837회로 늘었다가 2004년 1만1338회로 감소하는 추세다. 참가인원도 2002년 268만여명에서 2003년 291만명, 2004년 303만명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부터 줄고 있다. 또 불법폭력시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2년 불법폭력시위 건수가 118건에서 2003년 134건으로 증가했으나 2004년 91건, 20005년 77건으로 급속히 줄었다. 올해 7월말까지 불법폭력시위는 30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구속·불구속입건·즉심회부·훈방 등을 포함한 사법처리 대상 인원은 급속히 늘어나 경찰의 대응이 엄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사법처리 인원은 2004년 5523명에서 지난해 7198명으로 30.3%(1675명)가 증가했다. 올해도 6월말까지 4730명이 사법처리됐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연말까지 사법처리 인원이 9000명을 크게 넘어설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폭력시위의 비율은 전체 시위의 1% 미만이지만 일부 대규모 연대집회의 경우 과격성을 띠기 때문에 사법처리 인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 등 대규모 집회가 있었으며 지난달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궐기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특히 5월 4일 새벽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퇴거(행정대집행) 과정에서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와 학생, 주민 등 400여명이 연행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지난달 전국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궐기대회 참가자에 대한 사법처리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법원은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궐기대회 폭력사태와 관련, 주최측 관계자 42명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체포영장을 모두 발부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집행부와 각 지역별 농민회 간부들에 대해 검거 전담반을 편성, 신병 확보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달 집회와 관련해 지금까지 모두 201명을 수사 대상에 올렸다. 이 가운데 조사를 받은 사람은 구속 6명, 구속영장 신청 1명, 불구속 입건 19명, 조사 후 일단 귀가 12명 등 모두 38명이다.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42명 외 121명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했으며 만일 출석에 계속 불응하면 추가로 체포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찰은 집회 신고사항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 집시법을 이용해 집회 금지 통고를 남발하고 있다”며 “신고사항과 집회 내용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법 집회로 간주해 개입하기 때문에 사법처리 인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시위대와 정부 함께 폭력시위 근절해야 안경률 국회의원 한나라당 연간 시위 발생 건수 1만1000회 이상에 전·의경 부상자수가 800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국정감사자료는 폭력시위 문화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전·의경 가족들은 군 복무 중인 아들이 시위진압대원이 돼 시위대가 던진 돌멩이를 맞아 이마에서 피가 터지고 죽창에 맞는 뉴스를 보면서 잠 못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전·의경 부모들이 폭력시위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겠는가. 폭력시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시위는 국민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폭력시위문화를 근절시킬 방안은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시위자,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째, 시위대는 자신들이 행하는 지나친 폭력시위가 결국 자신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폭력으로 시위 명분이 퇴색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 고립상태에 빠질 수 있다. 정부는 폭력시위를 비판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시위대가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폭력시위의 명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정권획득과정에서 정당성을 상실한 정권에 대해 시민적 항거가 발생했던 80년대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정권획득과정의 정당성 못지않게 정책결정과정의 정당성 또한 중요하다. 정부는 정책결정과정이 정당성을 상실하지 않게 해야 한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을 소홀히 하거나, 정부와 생각이 다른 것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사고는 폭력시위의 배양처가 될 수 있다. 셋째, 정부는 개개인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 어느 일방의 희생만 강요하면 안 된다. 생활터전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시대상황과 현실상황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정부는 소외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넷째, 경찰은 과잉진압으로 폭력시위를 촉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이상 경찰의 과잉진압은 일체 없어야 한다. 반면 불법폭력시위는 엄단해야 한다. 지난해 시위주동 수배자 7152명 중 미검거자가 2814명에 달하고 있다는 통계자료는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엄정대처라는 경찰의 방침과 거리가 있다. 전경들이 길거리에서 식판에 밥을 먹는 측은한 모습, 시위대에 의해 파괴된 건물과 전복된 차량들, 불타는 시위 현장, 경찰 버스 수십대가 바리케이트를 쳐서 시위대를 차단하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시위자와 정부 등 관련 주체들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발전도상에 있는 우리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국내·외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기업하기 좋은 투자환경조성이 화급한 일인데도 우리의 시위현장을 보면 눈앞이 깜깜하다. 투자자가 투자할 마음이 생기게 해야 한다. 글로벌시대에 우리끼리 일로 싸우다보면 세계는 더 멀리 앞서 달려갈 것이고 우리는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위문화를 바르게 정착시키는 일은 우리 모두와 나라의 장래를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집회 시위 범죄시하는 경찰 관행 개선 시급 손상열 활동가 평화인권연대 최근 경찰은 시민의 불편과 교통체증을 고려해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의 행복추구권이라는 두 가지 법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집회시위 자유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집회시위에 대한 정책이 너무 관대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말을 듣다보면 우리 사회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잉보장하고 있어서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 사회에서 집회시위 자유는 집시법이라는 악법중의 악법으로 가로막혀 있고 집회현장에서의 경찰의 대응관행과 경찰폭력에 의해 겹겹이 막혀 있다. 2004년 1월 개정된 집시법은 이미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이 법을 두고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개정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집시법의 독소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찰의 주장대로 집시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사실 한국에서 진행되는 모든 집회는 불법일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집시법에 소음을 80데시벨(db)로 제한하는 조항이 있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나는 소음이 60데시벨인 것을 감안할때, 사실상 2006-12-01
- 삼성차 관련 기사 2꼭지 문패: 삼성차 부채 논란 7년째 제자리걸음 제목: 이건희 회장 ‘대승적 결정’은 어디로 갔나 1999년 6월 30일.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이 ‘경영실패’를 인정한 순간이다. 채권금융기관과 협의조차 없었던 일이다. 한 가지 발표가 더 이어졌다. 채권단과 계열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사상최고액인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발표를 책임졌던 이대원 삼성그룹 부회장은 “최고경영자인 이건희 회장의 대승적 결정이며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7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삼성차 부채문제는 해결이 안 된 상태다. 그것도 모자라 채권단과 삼성그룹 간에 5조원 가까운 사상최대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삼성의 태도변화가 논란 불러 = 왜 이렇게 됐을까. 전 국민에게 공개한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결단은 채권단과 협의과정에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1999년 7월 12일 삼성측은 “삼성차 부채는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확정되는 정리계획상의 부채상환계획에 따라 의거 상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승적 결정’과 ‘희생을 감수한 결단’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초조해진 채권단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측의 책임 있는 약속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그러나 7월 23일 삼성측은 “이 회장이 약속한 것은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 일 뿐이지 이건희 회장이 2조 8000억원 상당을 책임지기로 한 적이 없다”고 번복했다. 또 “만약 (이 회장이 출연한) 삼성생명 주식이 2조 8000억원에 미달하더라도 이는 채권단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자 채권단도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삼성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위반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재무구조개선약정 6조에는 ‘삼성계열은 신규사업진출, 해외투자 등 중요한 영업활동에 관한 사항이나 회사정리·화의신청 등 계열 전체적인 재무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주채권은행과 사전에 협의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삼성측이 위반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이를 근거로 1999년 8월 11일 삼성측에 금융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삼성 측에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궁지에 몰린 삼성은 다시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1999년 8월 24일 채권단과 삼성이 맺은 삼성차 부채에 관한 손실보전 합의서다. 합의서에는 이건희 회장의 친필 사인과 도장 그리고 삼성계열사 대표이사 31명과 16개 채권금융기관 대표이사의 인감도장이 찍혀 있다. ◆삼성은 무슨 약속을 했나 = 합의서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삼성차 부채 문제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갑(이건희)은 도의적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병(채권단)에게 2000년 12월 31일까지 무상 증여한다. - 갑의 증여액이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갑은 50만주를 추가 증여한다. - 을(삼성계열사)은 갑의 50만 추가출연으로도 2조 4500억원에 부족할 경우 자본출자 또는 후순위채권 매입을 통해 손실을 보전한다. - 갑과 을은 2000년 12월 31일까지 위 조항을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을은 부족분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한다. 삼성차 부실로 인해 채권단이 떠안게 된 손실액 2조 4500억원에 대해 이 회장과 삼성측이 반드시 보전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처음 약속한 350만주로 부족하면 50만주를 추가로 증여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계열사들까지 나서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합의서 체결 훨씬 전인 1999년 7월 2일 삼성그룹이 몇몇 주요 일간지 1면에 낸 광고를 봐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삼성의 태도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으로 보건대 삼성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제는 자동차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2조 8000억원 상당의 사재(삼성생명 주식 400만주)출연하는 희생을 감수키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삼성은 기업의 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는 행위는 60여년간 국민의 사랑으로 커온 기업으로서 할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보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답게 기업부채를 국민의 짐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서 이행의지 과연 있나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측은 이마저도 부인하고 있다. 합의서 체결 당시 상황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압에 의해 작성됐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합의서는 무효이며, 도의적 책임은 있어도 법률적 책임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윤종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5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합의서 자체에 법적인 문제가 많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상법상으로나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회장의 사재출연 공개와 관련해서도 “이 회장이 사재 2조 8000억원이 아니라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1999년 7월 2일 대국민 광고를 낸 것에 대해서는 “광고를 낸 적이 있는 지 없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나중에 의원들이 광고문안(사진)을 실제로 보여주자 광고를 낸 사실은 인정했다. 또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삼성자동차 부실채무기업 조사결과에 따르면 “(삼성 측이) 기본합의서 이행은 최악의 경우로 판단해 실제 소송시 전액 패소하지는 않을 것임을 법률자문결과 확신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삼성측은 애초부터 합의서 이행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삼성그룹 홍보실 김석준 상무는 “삼성 측은 단지 합의서가 강박에 의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단순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무효주장을 하고 있고 그 외에도 합의서 해석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쟁점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항이므로 소송 외에서 언급하기가 부적절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비슷한 고통과 상반된 결과 = IMF를 전후한 과정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삼성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계열사와 그룹 간에 상호보증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그룹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그룹 총수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교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우 한보 기아 동아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 한 축에 있었던 삼성만은 예외다. 삼성차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문제로 그룹총수가 바뀐 것도 아니고, 삼성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다. 되레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을 주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사상최대치를 거듭 경신하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업들이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삼성자동차 부채는 경영판단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채무가 있느냐 없느냐 즉 계약서가 원인무효인가에 대해 사법부가 판단만 내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부채처리 문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소송 금액은 크지만 사안 자체는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 “법원의 의지에 달린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공적자금은 어떻게 됐나 = 삼성차 부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기업과 채권단의 이해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삼성차 부채로 채무를 떠안게 된 채권금융기관들이 대부분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채권단인 서울보증보험과 우리은행 두 금융기관에만 무려 18조 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들이 갖고 있는 삼성차 채권 잔액이 1조 4000억원 가량이 2006-12-03
- 떼배 타고 해양민족 우수성 세계에 알렸다 목숨 담보로 왕인박사 뱃길 재현 … 정부 지원·관심 없어 아쉬워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보면 미래가 보인다.” 시원하게 뚫린,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품은 바다는 문자 그대로 ‘블루오션’임이 분명하다. 해상왕 장보고가 그랬듯 일찌감치 바다를 벗 삼아 해양시대를 개척해나간 이들이 있다. 수산어업을 비롯해 해운물류 항만 해양과학·관광·환경·안전 분야에서 새로운 자산을 창출해내는 바닷사람들이다. 내일신문은 연속기획 ‘바다에서 희망을 찾다’를 통해 해양자원을 캐내고 있는 ‘장보고의 후예’를 만난다. 채바다. 62세. 직업은 떼배타고 바다탐험. 취미는 바다사랑. 이름도 바다다. 얼마나 바다를 사랑하는지 이름까지 바꿨다. 주변에선 그를 ‘바다에 미친 사나이’라 부른다. 어느날 고향 제주 성산포에 나타나 자리돔을 잡거나 동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떼배를 만들더니 그걸로 현해탄을 건넜다. 세 번이나. 현해탄을 처음 건널 때는 그도 겁이 좀 났나 보다. 1996년 5월 1차 항해 직전, 해병대 사령관을 찾아가 “바다에 던져도 한 열흘 살 수 있는 ‘짱짱한 놈’으로 대여섯명 꿔달라(?)”고 했다. 바다의 사나이 해병대 가운데도 최정예 병사 6명과 함께 뗏목에 몸을 실었다. 바다는 쉽사리 일본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풍 앞에 뗏목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들도 하나 둘 지쳐 나가떨어졌다. 오직 ‘채바다’만 파도타기를 즐겼다. 1997년 10월과 2001년 4월, 두 번 더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일본 상륙에 성공했다. 왕인호 타고 규슈로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채바다. 본명 채길웅. 고대사연구와 떼배에 ‘미치기’ 전인 1990년까지 사용하던 이름이다. “우리는 해양민족의 후예 아닙니까? 그런데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떼배는 해양문화를 발전시킨 원시 통나무배로 오늘날 배의 시조다. 선조들이 이 배를 타고 바다에 도전했고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 문화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게 채 소장의 설명이다. 김재근 서울대 박사는 거북선 바닥도 떼배를 원리로 한다고 설명한다. 채 소장은 고대에 선조들이 떼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가 고대일본발전을 주도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1600년 전으로 돌렸다.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임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폭풍쯤이야 못 견디겠습니까.” 통나무배에 몸을 실은 채 소장 일행은 2001년 4월 9일 전남 영암 대불항을 떠났다. 1600년 전 왕인(王仁 373~?) 박사가 단행했던, 고대 한반도와 일본 간 뱃길 탐사를 재현한 것이다. 고대 원시선박인 떼배 이름도 ‘왕인호’로 지었다. 항로는 왕인 박사가 이용했던 대불항-완도 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규슈(九州)지방 가라쓰 연안으로 정했다. 시속 1.5노트로 항해하는 떼배는 ‘바람따라 물결따라’ 일본으로 흘러갔다. 목숨을 담보로 한 험난한 항해였다. 대원들은 밤이면 전원 불침번을 섰고 낮에는 6시간씩 교대로 잠을 잤다. 탐험대장 채 소장은 떼배로 일본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정착했음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전남 영암이 당시 전남 서남해안 국제 교류 중심지였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탐사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일본 해상보안청 비행기가 뜨고 언론사들도 헬기까지 동원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들은 떼배가 고대에 한국문화를 싣고 일본에 전해졌음을 심층 보도했다. 채 소장은 떼배를 타고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뱃길을 따라 우리민족이 얼마나 우수한 해양민족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오사카에 있는 왕인 박사 묘역은 1938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이곳에 박사를 기리는 높이 5m, 너비 4m 백제 문을 세웠다. 벽랑국 신화를 좇다 채 소장은 10년 넘게 국내외 고대사 관련 자료를 뒤졌다. 제주의 탄생과 백제 인재들이 일본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라는 것을 찾아냈고 하나씩 밝혀냈다. 고지도와 문헌을 통해 벽랑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벽랑 기록을 찾았고, 그 흔적을 따라 현장을 찾았다. 탐라국(제주의 옛 왕국)에 문화를 전파한 벽랑국 유래를 찾기 위해 또다시 떼배를 타고 120㎞ 항해에 들어간 것이다. 6월 5일 채 소장은 한반도 고대인들이 탐라국을 왕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뱃길 탐사에 나섰다. ‘고(高) 양(梁) 부(夫) 삼성(三姓) 시조가 벽랑국에서 온 공주 세 명을 각각 아내로 맞이해 탐라국을 세웠다’는 기록에서 출발했다. 채 소장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벽랑국 탐사에 쓰인 떼배는 삼나무를 통으로 엮어 만든 길이 7.5m, 폭 2.5~2.9m짜리 배. 채 소장은 돛과 노의 힘만으로 400km가 넘는 뱃길을 탐험해 제주의 기원을 찾고 역사를 재조명했다. 838년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이나 실패했던 험난한 바닷길이다. 그는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일본까지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채 소장은 “제주의 기원인 탐라국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우리 뿌리를 찾고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지자체 지원 ‘0원’ 채 소장이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들을 조명할수록 경제적 어려움은 커졌다. 그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제적 도움을 준 적이 없다. 기업에 강연을 다니거나 혼자 힘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왔다. 2003년에야 해양수산부의 도움으로 ‘사단법인 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를 설립했다. 아직도 어렵긴 마찬가지. 채 소장은 “세계 강대국들은 해양 관련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바탕으로 오늘날 해양을 지배하고 있다”며 “한국도 해양연구 단체와 전문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와 고대사 연구에 미친 바다 사나이 채바다. 그는 지금도 제주-완도-영암을 오가며 왕인 박사를 일본 왕실의 스승이 아닌 해양민족이 배출한 세계적 석학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다. 채바다 소장은 제주도 성산포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미쳐’ 고대사 연구와 제주 뿌리찾기, 일본고대사 연구 등을 통해 왕인 박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첫 고대 뱃길탐험을 시작으로 3차례 한·일 뱃길탐험과 2003년 남북평화축전 성공기원 제주일주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에 바다박물관을 세웠다. 시흥포구에 떼배 4척을 정박시켜 ‘떼배체험 바당마을(www.ttebe.net)’을 운영하며 제주의 전통 뗏목이 가진 문화·역사적 가치를 전수하고 있다. 문의 : 064-782-1235 /제주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떼배는 해양문화 유산 떼배는 제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 원시형태의 배다. 원래 이름은 터배 터위 테위 테배 등 마을마다 달랐다. 고대부터 제주 사람들이 만들어왔고 1960년대까지 제주 연근해에서 고기잡이나 해녀들 해조류 채취에 이용했다. 떼배는 주로 삼나무를 이용한다. 길이 6.5m, 폭 3m, 선수 2.7m로 통나무 10여개를 엮어 만든다. 바람이 심한 겨울에는 배를 분해·보관하다 봄 여름에 다시 조립해 사용한다. 떼배는 세계 여러나라에 남아 있는 원시 배들과는 선재(船材)나 모양 크기 모든 면에서 다르다. 사료(史料)적 가치가 매우 높아 해양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Copyrig 2006-11-30
- 문패: 고대항해탐헌연구소장 채바다 제목: 떼배타고 해양민족 우수성 세계에 알렸다 부제: 죽음을 담보로 왕인박사 뱃길 재현....정부 지원 관심 없어 아쉬워 이름: 채바다 고향: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나이: 62세 직업: 떼배타고 바다탐험, 시인 직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취미: 바다사랑, 고대서적 뒤지기 이름도 바다다. 얼마나 바다을 사랑했으면 자신의 이름도 바다로 바꿔버렸다. 남들은 그를 ‘바다에 미친사나이’라고 부른다. 어느날 고향 제주 성산포에 나타나 앞바다에서 자리돔을 잡거나 동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떼배를 만들더니 그걸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그것도 세번씩이나.....남들이 보기에 분명 정상은 아니다. 11월 23일 폭우가 쏟아지는 성산포 해녀의집에서 그는 떼배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이더니 소주 두병을 단숨에 비우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그도 처음 현해탄을 건널 때 겁이 좀 났었나 보다. 1996년 5월 1차 항해 때 해병대 사령관을 찾아가 바다에 던져도 한 열흘 살 수 있는 ‘짱장한 놈’으로 대여섯명 꿔달라고(?) 했다. 바다의 사나이 최정예 해병 6명과 함께 뗏목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일본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풍에 뗏목은 그야 말고 추풍낙엽. 바다에 버려도 한 열흘 살 것 같은 특수부대 출신들도 하나 둘 지쳐 나가떨어졌다. 오직 채바다만 파도타기를 즐겼다. 1996년 5월, 1997년 10월, 2001년 4월 세 번씩이나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일본상륙에 성공했다. 채바다. 그의 명함에는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이라고 적혀있다. 본명은 채 길웅 이었다. 고대사연구와 떼배에 미치기 전인 1990년까지는. “우리는 해양민족의 후예 아닙니까? 그런데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떼배는 해양문화를 발전시킨 원시 통나무배로 오늘날 배의 시조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 배를 타고 바다에 도전했고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문화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게 채 소장의 설명이다. 서울대 김재근 박사는 거북선 바닥도 떼배의 원리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다사나이 채 소장은 고대에 우리선조들이 떼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고대발전을 주도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1600년 전으로 돌렸다. ◆백제 왕인박사 뱃길 따라 일본항해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임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폭풍쯤이야 못 견디겠습니까” 6.5m짜리 통나무 배에 몸을 실은 채 소장 일행은 2001년 4월 9일 전남 영암 대불항을 떠났다. 1600년 전 백제 왕인(王仁 373~?)박사가 단행했던 고대 한반도와 일본과의 뱃길 탐사를 재현한 것이다. 고대 원시선박인 떼배 이름도 ‘왕인호’로 지었다. 항로는 왕인박사가 이용했던 대불항-완도 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규슈(九州)지방 가라쓰 연안으로 정했다. 시속 1.5노트로 항해하는 떼배는 ‘바람따라 물결따라’ 일본으로 흘러갔다. 죽음을 담보로 한 험난한 항해였다. 대원들은 밤에는 전원 불침번, 낮에는 6시간씩 교대로 취침했다. 탐험대장 채 소장은 떼배로 일본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정착했음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또한 “전남 영암이 당시 전남 서남해안의 국제 교류 중심지였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탐사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 비행기가 뜨고 언론사들도 헬기를 타고 취재 경쟁을 벌였다. 요미우리 아시히 마이니찌 등 일본 언론들은 떼배가 고대에 한국문화를 싣고 일본에 전해졌음을 심층 보도했다. 오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 묘역은 1938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이곳에 박사를 기리는 높이 5미터, 너비 4미터의 백제문을 세웠다. 왕인박사는 일본서기에도 왕실의 스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문화 선각자로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채 소장은 떼배를 타고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뱃길을 따라 우리민족이 얼마나 우수한 해양민족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탐라국 탄생의 재조명--벽량국 신화를 좇다 채 소장은 10년 넘게 국내외 고대사 관련 자료를 뒤졌다. 제주의 탄생과 백제의 인재들이 일본의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라는 것을 찾아냈고 하나씩 밝혀냈다. 고지도와 문헌을 통해 벽랑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벽랑 기록을 찾았고, 그 흔적을 따라 현장을 찾았다. 탐라국(제주의 옛 왕국)에 문화를 전파한 ‘벽랑국’의 유래를 찾기 위해 또다시 떼배를 타고 120㎞ 항해에 들어간 것이다. 올 6월 5일 채 소장은 한반도 고대인들이 탐라국을 왕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뱃길 탐사에 나섰다. 고려사지 등에 따르면 ‘고(高)·양(梁)·부(夫) 삼성(三姓) 시조가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각각 아내로 맞이해 탐라국을 세웠다’는 기록에서 출발했다. 채 소장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벽랑국 탐사에 쓰인 떼배는 삼나무를 통으로 엮어 만든 길이 7.5m, 폭 2.5~2.9m짜리 배. 채 소장은 돛과 노의 힘만으로 400km가 넘는 뱃길을 탐험해 제주의 기원을 찾고 역사를 재조명했다. 이 뱃길은 838년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씩이나 실패했던 험난한 바닷길이다. 일본 고승이 돌아올 때도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일본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채소장은 “제주의 기원인 탐라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고 현실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금 0원” 채 소장이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들을 조명할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은 커졌다.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적 도움이 전혀 없었다. 기업에 강연을 다니거나 혼자 힘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2003년 해양수산부의 도움으로 ‘사단법인 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세계 강대국들은 해양과 관련한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바탕으로 오늘날 해양을 지배하고 있다”며 “한국도 해양을 연구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와 고대사 연구에 미친 바다 사나이 바다. 그는 지금도 제주-완도 -영암을 오가며 왕인박사를 일본 왕실의 스승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해양민족의 석학으로 알리는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다. (http:/www.ttebe.net 064-782-1235)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1-29
- 장보고8 떼배 타고 해양민족 우수성 세계에 알렸다 목숨을 담보로 왕인박사 뱃길 재현 … 정부 지원·관심 없어 아쉬워 이름: 채바다 고향: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나이: 62세 직업: 떼배타고 바다탐험, 시인 직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 취미: 바다사랑, 고대서적 뒤지기 이름도 바다다. 얼마나 바다를 사랑하는지 이름도 바다로 바꿔버렸다. 주변에선 그를 ‘바다에 미친 사나이’라 부른다. 어느날 고향 제주 성산포에 나타나 자리돔을 잡거나 동네 꼬마들이 타고 놀던 떼배를 만들더니 그걸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그것도 세 번이나. 남들이 보기에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3일 성산포 해녀의집에서 만난 그는 떼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더니 소주 두병을 단숨에 비우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처음 현해탄을 건널 때는 그도 겁이 좀 났었나 보다. 1996년 5월 1차 항해 직전, 해병대 사령관을 찾아가 “바다에 던져도 한 열흘 살 수 있는 ‘짱장한 놈’으로 대여섯명 꿔달라(?)”고 했다. 바다의 사나이 해병대 가운데도 최정예 병사 6명과 함께 뗏목에 몸을 실었다. 바다는 쉽게 일본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풍 앞에 뗏목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들도 하나 둘 지쳐 나가떨어졌다. 오직 ‘채바다’만 파도타기를 즐겼다. 1997년 10월과 2001년 4월, 두 번 더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일본 상륙에 성공했다. 채바다. 그의 명함에는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이라고 적혀있다. 본명은 채길웅. 고대사연구와 떼배에 미치기 전인 1990년까지는 그가 명함에 적었던 이름이다. “우리는 해양민족의 후예 아닙니까? 그런데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떼배는 해양문화를 발전시킨 원시 통나무배로 오늘날 배의 시조다. 선조들이 이 배를 타고 바다에 도전했고 섬과 섬, 섬과 육지 사이 문화이동이 이루어졌다는 게 채 소장의 설명이다. 김재근 서울대 박사는 거북선 바닥도 떼배를 원리로 한다고 설명한다. 바다사나이 채 소장은 고대에 선조들이 떼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가 고대일본발전을 주도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의 시간을 1600년 전으로 돌렸다. 백제 왕인박사 뱃길 따라 왕인호 타고 일본 규슈로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임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인데 폭풍쯤이야 못 견디겠습니까.” 통나무배에 몸을 실은 채 소장 일행은 2001년 4월 9일 전남 영암 대불항을 떠났다. 1600년 전 왕인(王仁 373~?) 박사가 단행했던, 고대 한반도와 일본 간 뱃길 탐사를 재현한 것이다. 고대 원시선박인 떼배 이름도 ‘왕인호’로 지었다. 항로는 왕인 박사가 이용했던 대불항-완도 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규슈(九州)지방 가라쓰 연안으로 정했다. 시속 1.5노트로 항해하는 떼배는 ‘바람따라 물결따라’ 일본으로 흘러갔다. 목숨을 담보로 한 험난한 항해였다. 대원들은 밤이면 전원 불침번을 섰고 낮에는 6시간씩 교대로 잠을 잤다. 탐험대장 채 소장은 떼배로 일본을 두 번이나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채 소장은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정착했음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전남 영암이 당시 전남 서남해안 국제 교류 중심지였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탐사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일본 해상보안청 비행기가 뜨고 언론사들도 헬기까지 동원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들은 떼배가 고대에 한국문화를 싣고 일본에 전해졌음을 심층 보도했다. 왕인 박사는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문화 선각자로 일본인들에게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서기에도 왕실 스승으로 기록돼 있다. 오사카에 있는 왕인 박사 묘역은 1938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이곳에 박사를 기리는 높이 5m, 너비 4m 백제 문을 세웠다. 채 소장은 떼배를 타고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뱃길을 따라 우리민족이 얼마나 우수한 해양민족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탐라국 탄생의 재조명 벽랑국 신화를 좇다 채 소장은 10년 넘게 국내외 고대사 관련 자료를 뒤졌다. 제주의 탄생과 함께 백제 인재들이 일본 문명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라는 것을 찾아냈고 하나씩 밝혀냈다. 고지도와 문헌을 통해 벽랑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벽랑 기록을 찾았고, 그 흔적을 따라 현장을 찾았다. 탐라국(제주의 옛 왕국)에 문화를 전파한 벽랑국 유래를 찾기 위해 또다시 떼배를 타고 120㎞ 항해에 들어간 것이다. 올 6월 5일 채 소장은 한반도 고대인들이 탐라국을 왕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뱃길 탐사에 나섰다. ‘고(高) 양(梁) 부(夫) 삼성(三姓) 시조가 벽랑국(碧浪國)에서 온 세 명의 공주를 각각 아내로 맞이해 탐라국을 세웠다’는 고려사지 등의 기록에서 출발했다. 채 소장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벽랑국 탐사에 쓰인 떼배는 삼나무를 통으로 엮어 만든 길이 7.5m, 폭 2.5~2.9m짜리 배. 채 소장은 돛과 노의 힘만으로 400km가 넘는 뱃길을 탐험해 제주의 기원을 찾고 역사를 재조명했다. 838년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이나 실패했던 험난한 바닷길이다. 그는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일본까지 돌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채 소장은 “제주의 기원인 탐라국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고 현실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어려움 크지만 정부·지자체 지원금 ‘0원’ 채 소장이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들을 조명할수록 경제적 어려움은 커졌다. 그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제적 도움을 준 적이 없다. 기업에 강연을 다니거나 혼자 힘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왔다. 2003년에야 해양수산부의 도움으로 ‘사단법인 한국해양탐험문화진흥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렵긴 마찬가지. 채 소장은 “세계 강대국들은 해양과 관련한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바탕으로 오늘날 해양을 지배하고 있다”며 “한국도 해양연구 단체와 전문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와 고대사 연구에 미친 바다 사나이 채바다. 그는 지금도 제주-완도-영암을 오가며 왕인 박사를 일본 왕실의 스승이 아닌 해양민족이 배출한 세계적 석학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다. 제주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해양문화 유산 ‘떼배’ 떼배는 제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 원시형태의 배다. 원래 이름은 터배 터위 테위 테배 등 마을마다 달랐다. 고대부터 제주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해왔고 1960년대까지 제주 연근해에서 고기잡이나 해녀들 해조류 채취에 이용됐다. 떼배는 주로 삼나무를 이용한다. 길이 6.5m, 폭 3m, 선수 2.7m로 통나무 10여개를 엮어 만든다. 바람이 심한 겨울에는 배를 분해해 마을에 보관하다가 봄이나 여름에 다시 조립해 사용한다. 원시 형태로 남아 있는 떼배는 세계 여러나라에 남아 있는 원시 배들과는 선재(船材)나 모양 크기는 다르다. 그러나 해양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사료(史料)적 가치가 매우 높아 그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다행히 제주도에 떼배 제작 기술자가 생존해 있어 이러한 장인들을 통해 떼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채바다 소장은 제주 성산포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원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990년부터 고대사 연구와 제주 뿌리찾기, 일본고대사 연구 등을 통해 왕인 박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첫 고대 2006-11-30
- 영어듣기 난이도·유형 지난해와 비슷 구술면접 지난해 수준 출제 대원외고는 난이도 높아져 외국어고등학교 2007학년도 특목고 입학시험이 지난 10월 31일 일반 전형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주요대학들이 논술 비중을 높이고 특기자 전형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특목고 출신이 2008년 이후 대입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인식의 확대로 특별전형에 이어 일반 전형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림피아드학원 양환주 원장과 함께 2007학년도 특목고 일반 전형 출제문제를 분석, 출제경향을 살펴보고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2 학생들에게 올바른 학습법을 제시해본다. ◆영어듣기 = 대원외고를 제외한 나머지 외고는 난이도와 문제 유형이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출제됐다. 대원외고의 경우, 난이도를 대폭 높였다. 질문과 선택지문을 모두 듣기로 출제하는 문항 수가 증가해 문제유형에도 큰 변화를 꾀하였다. 기존 기출유형의 문제만을 연습한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제들이라 까다롭게 느껴졌고 체감 난이도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외고는 공개된 예시문제 유형과 비슷한 형태의 국사 문제와 사회 문제를 각각 1문항씩 출제했다. 대일외고는 필독서 6권내에서 어휘 관련 문제(정의, 예문에서 찾기, 동의어, 다의어 등)를 24문항을 출제했다. 올해는 풍부한 어휘와 표현능력 실력을 측정하는 문제들이 모든 외고에서 골고루 출제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어휘력을 갖추고 기본 회화 표현을 꼭 익혀 놓아야한다. 3학년 1학기에는 고난이도 수능형 듣기 유형과 토플형 장문듣기 유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외고마다 다양한 배경 지식을 영어와 접목시켜 출제하는 문항수가 점점 늘고 있어 국사, 사회 및 시사적인 영역을 골고루 학습해야 한다. 영어 능력이 뛰어난 학생 중에 수리력을 갖춘 학생이 있다면 SAT식 수학문제 풀이를 연습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구술면접 = 공동 출제를 하고 있는 일반전형 구술면접에서는 출제 문항수와 실시 형태 그리고 난이도 면에서 전년도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항은 10~11문항이 출제 되었고 언어, 사회교과관련, 영어교과관련, 창의사고력 교과관련 문항들이 골고루 출제됐다. 영역별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언어, 사회 교과 관련 = 예년에 비해 난이도가 다소 상승했다. 특히 예시문의 상황 분석을 통한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상황판단 문제가 출제됐다. 한자성어(양금택목)·어휘력에 대한 문제와 어법능력을 측정하는 기사문 고쳐 쓰기, 단어 간의 관계 파악을 통한 어휘력 및 문학 감상능력을 측정하는 문제, 제시문 분석을 통한 국민의 권리 추론하기, 제시된 그림과 시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공통점등을 측정하는 문항들이 출제됐다. 언어구술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사회현상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키워야 함은 물론 그에 대한 비판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교과 관련 문제와 연관해 암기식 학습보다는 종합적 이해와 추론을 통한 접근이 요구되어진다. 어법이나 어휘력, 한자성어에 대한 학습은 꾸준히 기초 실력을 다져 놓아야 한다. △창의사고력 교과 관련 = 창의사고력 관련교과에서는 사회교과와 연관되어져 있는 알파벳, 기호관계문제, 시간을 구하는 논리적 사고력문제 그리고 달력과 연관된 경우의 수를 묻는 문항들이 출제됐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경우의 수 문제, 개념과 규칙성을 묻는 문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창의 사고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리적 실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한 기초지식부터 단원별 심화학습까지 중학교 내용을 충실히 공부 하고, 그 후 다양한 내용으로 된 사고력 문제를 많이 접하고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올해 출제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경우의 수를 구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창의사고력 유형이므로 심화문제를 통해 다양한 유형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영어교과관련 = 올해 구술면접 영어 관련교과는 주어진 글과 같은 서술유형 찾기, 사회현상 제시 후 같은 사례 찾기, 논리적 오류 찾기 문항이 출제됐다. 영어교과관련 구술에서는 단순한 독해 지문보다는 사회현상이나 논리 영역과 결합된 지문이 제시되고 영어 독해 능력과 더불어 논리성, 상식 등이 폭넓게 요구되는 문항들이 출제 되므로 기본적인 영어 독해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상식적인 배경 지식과 비판적 사고력이 요구된다. 또한 수학이나 언어 영역에서 접하는 내용들이 영어 지문으로 등장하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정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1-02
- 전국 13개 도시서 한미FTA반대 시위 22일 전국 주요 도시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제1차 범국민궐기대회’로 몸살을 앓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7만37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는 서울 부산 인천 울산 경기 등 대도시권보다 대구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격렬하게 진행됐다. 5000여 명이 참여한 전남지역 시위대는 이날 광주시청 마당에 진입해 행정동과 의회 등에 진출을 시도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11명 경찰 30명 시청직원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충남과 강원 전북 충북 경남 제주지역에서도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도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14명이 다쳤다. 경북도청이 있는 대구에서 농민 200여 명은 도청 본관 현관 앞까지 진입해 행정부지사와 면담을 요구하다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전국의 시위 현장에서 27명을 검거해 위법 행위를 조사 중이다. 서울 등 대도시는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행진하면서 퇴근길 시민들과 마주쳐 교통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오후 5시55분쯤 서울 중구 광교로타리 부근에서 시위대의 플래카드와 택시가 부딪히면서 충돌이 일어나 택시기사가 시위대 가운데로 끌려 들어가자 일부 시민들이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대규모 시위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로 진행된 이날 각종 사고도 잇따랐다. 서대전 시민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후 귀가하던 충남지역 농민 한 모씨는 논산시 연산면의 차량서비스센터 도크에 빠져 숨졌고 창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후 귀가하던 진주지역 농민 정 모씨는 진주 사봉농협 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최 모씨는 오후 3시10분쯤 서울광장에서 분신을 시도하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기도 했다. 광주에선 경찰 특공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전자충격기를 발사해 경찰이 레이저총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집회에 이어 오는 29일과 12월 6일에 제 2, 3차 전국 동시다발 궐기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경찰이 긴장하고 있다. 최근 평화시위 정착에 집중하고 있는 경찰은 29일 전국 각지에서 농민 1만 여명이 서울에 모여 집회를 열 때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노총도 25일 오후 1시 서울시청광장에서 2만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노사정합의 국회 입법관철을 위한 노동자대회를 열 계획이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1-23
- 구독 1.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30-2 티엔시빌딩 3층 퍼플디자인 02-2275-0470(내선 100번), 011-561-3636, 서호윤, 일간 1부 2.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769-33번지 1층 101호 전종태 011-792-6526, 일간1부 3. 이민자 서울 성북구 성북1동 106-28번지 도현블랑빌 B동 402호 02-3670-0419 / 016-402-3172 4. 박민호 서울 종로구 혜화동 55-5번지 10층 홍보팀 02-3670-0266 / 016-291-5620 5.이재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현대그린 5차아파트 213동 104호 011-9914-2215 6.박철홍 서울 종로구 혜화동 55-5번지 10층 사내방송 JBS팀 02-3670-0170 / 016-9640-0121 7.전대준 서울 노원구 월계2동 주공아파트 211동-1210호 011-892-8407 8. 정동균 서울시 신길5동 336-3682, 일간 1부, 011-411-0376 9.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90-7 정다운빌딩 III 4층 ㈜쎄듀 10.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507-1 풍림빌딩 5층 쎄듀어학원 1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158-1, 4층 쎄듀어학원 12.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86-8 목동 하버드 B/D 4층 쎄듀어학원 13.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456번지 르네상스빌딩 1107호 쎄듀 영어교육 연구센터 14.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영등포푸르지오 112-1602 남수진, 016-774-0610, 일간1부 15.서울시 양천구 목동 대원 칸타빌 301동 1301호 박은아, 011-1703-2870, 일간1부 16.서울시 노원구 상계3동 109-48 불암빌라 다동 202호 이미호 011-9184-6390 17. 서울 강서구 가양동 강나루현대 아파트 107동 804호 이장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0-31
- “5000번 출동해 5500명 구했어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119 구급대원 최경록(35) 소방교는 천생 소방관이다. 매일 야간근무와 긴급 출동에다 사고현장을 다니는 소방관 직무 때문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 소방교는 지난 10일 대전시 최고 소방공무원으로 뽑혔다. 대전시가 소방공무원 사기진작을 위해 올해 처음 마련한 ‘제1회 최우수 소방공무원 시상식’에서 최우수 소방공무원상을 받았다. 최경록 소방교는 1991년 5월 임용된 후 15년째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다. 임용 초기 화재진압 현장에서 5년을 근무한 뒤 11년째 119구급대를 지키고 있다. 근무기간 동안 최 소방교는 50여 차례 화재진압에 참여해 70여 명을 구조했다. 또 각종 사고현장에 5000여 차례 출동해 5500여명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등 꺼져가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독거노인 250여명에게 무선호출기를 설치하고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응급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활동을 해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전 기간에 걸쳐 경기장 안전요원으로 일했으며, 어린이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응급처치 훈련과 화재예방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최 소방교의 상급자들이 정리한 그의 공적만 A4용지 10여장에 빼곡하다. 최경록 소방교는 현재 고속도로 구급대원이다. 근무는 24시간 맞교대.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날 9시에야 퇴근한다. 하루 평균 네다섯번 이상 출동한다. 대부분 중·대형 사고인 고속도로 사고도 일주일에 서너 건을 처리한다. 가장 힘든 일은 역시 새벽출동. 24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를 이기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런 힘든 근무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방관인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가 가진 자격증도 이를 반증한다. 소방관이 된 이후 그가 취득한 자격증만 모두 9개. 소방설비기사 전기·기계 1급, 산업안전기사, 위험물 관리기사, 응급구조사 등 모두 소방업무에 필요한 것들이다. 24시간 맞교대라는 쉽지 않은 근무여건 속에서도 ‘훌륭한 소방관’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최 소방교는 “119구급대 일이라는 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라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사고현장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매 순간 느끼는 행복감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0-18
- 서울지역 특목고 일반전형 출제경향분석 및 학습전략 2007학년도 특목고 입학시험이 지난 10월 31일 일반 전형을 끝으로 마무리 됐다. 주요대학들이 논술 비중을 높이고 특기자 전형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특목고 출신이 2008년 이후 대입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인식의 확대로 특별전형에 이어 일반 전형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림피아드학원 양환주 원장과 함께 2007학년도 특목고 일반 전형 출제문제를 분석, 출제경향을 살펴보고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2 학생들에게 올바른 학습법을 제시해본다. 외국어고등학교 영어듣기 난이도·유형 지난해와 비슷 대원외고는 난이도 높아져 … 구술면접도 지난해 수준 ◆영어듣기 대원외고를 제외한 나머지 외고는 난이도와 문제 유형이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출제됐다. 대원외고의 경우, 난이도를 대폭 높였다. 질문과 선택지문을 모두 듣기로 출제하는 문항 수가 증가해 문제유형에도 큰 변화를 꾀하였다. 기존 기출유형의 문제만을 연습한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제들이라 까다롭게 느껴졌고 체감 난이도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외고는 공개된 예시문제 유형과 비슷한 형태의 국사 문제와 사회 문제를 각각 1문항씩 출제했다. 대일외고는 필독서 6권내에서 어휘 관련 문제(정의, 예문에서 찾기, 동의어, 다의어 등)를 24문항을 출제했다. 올해는 풍부한 어휘와 표현능력 실력을 측정하는 문제들이 모든 외고에서 골고루 출제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어휘력을 갖추고 기본 회화 표현을 꼭 익혀 놓아야한다. 3학년 1학기에는 고난이도 수능형 듣기 유형과 토플형 장문듣기 유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외고마다 다양한 배경 지식을 영어와 접목시켜 출제하는 문항수가 점점 늘고 있어 국사, 사회 및 시사적인 영역을 골고루 학습해야 한다. 영어 능력이 뛰어난 학생 중에 수리력을 갖춘 학생이 있다면 SAT식 수학문제 풀이를 연습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구술면접 공동 출제를 하고 있는 일반전형 구술면접에서는 출제 문항수와 실시 형태 그리고 난이도 면에서 전년도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항은 10~11문항이 출제 되었고 언어, 사회교과관련, 영어교과관련, 창의사고력 교과관련 문항들이 골고루 출제됐다. 영역별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언어, 사회 교과 관련 예년에 비해 난이도가 다소 상승했다. 특히 예시문의 상황 분석을 통한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상황판단 문제가 출제됐다. 한자성어(양금택목)·어휘력에 대한 문제와 어법능력을 측정하는 기사문 고쳐 쓰기, 단어 간의 관계 파악을 통한 어휘력 및 문학 감상능력을 측정하는 문제, 제시문 분석을 통한 국민의 권리 추론하기, 제시된 그림과 시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공통점등을 측정하는 문항들이 출제됐다. 언어구술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사회현상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키워야 함은 물론 그에 대한 비판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교과 관련 문제와 연관해 암기식 학습보다는 종합적 이해와 추론을 통한 접근이 요구되어진다. 어법이나 어휘력, 한자성어에 대한 학습은 꾸준히 기초 실력을 다져 놓아야 한다. △창의사고력 교과 관련 창의사고력 관련교과에서는 사회교과와 연관되어져 있는 알파벳, 기호관계문제, 시간을 구하는 논리적 사고력문제 그리고 달력과 연관된 경우의 수를 묻는 문항들이 출제됐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경우의 수 문제, 개념과 규칙성을 묻는 문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창의 사고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리적 실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한 기초지식부터 단원별 심화학습까지 중학교 내용을 충실히 공부 하고, 그 후 다양한 내용으로 된 사고력 문제를 많이 접하고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올해 출제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경우의 수를 구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창의사고력 유형이므로 심화문제를 통해 다양한 유형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영어교과관련 올해 구술면접 영어 관련교과는 주어진 글과 같은 서술유형 찾기, 사회현상 제시 후 같은 사례 찾기, 논리적 오류 찾기 문항이 출제됐다. 영어교과관련 구술에서는 단순한 독해 지문보다는 사회현상이나 논리 영역과 결합된 지문이 제시되고 영어 독해 능력과 더불어 논리성, 상식 등이 폭넓게 요구되는 문항들이 출제 되므로 기본적인 영어 독해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상식적인 배경 지식과 비판적 사고력이 요구된다. 또한 수학이나 언어 영역에서 접하는 내용들이 영어 지문으로 등장하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과학고등학교 탐구력구술고사가 당락 결정할 듯 응시자 내신편차 적어 … 수학·과학 문제, 4대 6 비율 출제 올해 과학고 일반전형은 한성과학고의 경우, 70명 모집에 480명이 지원해 6.8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과고도 70명 모집에 264명이 지원해 3.7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작년 입시에서 한성과고가 3.76대1, 서울과고가 3.7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특목고 열기를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일반전형은 내신 성적과 올림피아드 수상실적에 따른 가산점 그리고 탐구력 구술고사의 성적을 합산해 사정한다. 응시자들의 내신 성적 편차는 크지 않기 때문에 탐구력 구술고사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신 성적은 편차가 크지 않아도 기본적인 기본점수를 받지 못하면 절대 불리하므로 국·영·수·과의 내신관리는 철저히 해야 한다. 올해 탐구력 구술고사는 주어진 50분간 수학·과학 문제(10~11문제)를 풀고 5분간 구술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수학·과학 문제는 4대 6의 비율로 출제됐다. 수학은 중학교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대수, 조합, 함수, 기하부분이 통합적으로 출제됐다. 정확한 개념과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심화학습을 한 응시자들은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단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도 한 두 문제 출제돼 고득점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은 중학교 과정의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의 내용을 골고루 출제됐다. 선행학습보다는 중학교 교과서 내용의 정확한 원리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심화하고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돼 암기 위주로 공부한 학생들은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탐구력 구술고사의 난이도는 작년보다 약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커트라인은 작년보다 2~3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높은 경쟁률과 더불어 올림피아드 수상실적에 따른 가산점을 받은 학생들이 늘어났고, 저학년부터 과학고 준비를 치밀하게 준비한 학생들의 증가했기 때문이다. 즉 일반전형으로 과학고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내신 성적을 확보하고(국영수과 평균 석차백분률 3%선 유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올림피아드를 준비해 입상가산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꾸준히 탐구력 구술 고사 준비를 해야 한다. 영재전형은 영재교육원 수료자 전형으로 모집인원외로 학교별로 모집정원의 10%(14명씩)를 뽑는 전형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재교육원을 수료해야만 하므로 지원 자격이 극히 제한적이다. 한성과고의 경우, 창의성 구술고사의 성적만으로 영재 전형을 실시하므로 내신이 불리한 학생에게 유리하다. 서울과고는 탐구력 구술고사와 창의성 구술고사 성적을 합산해 사정한다. 그러나 영재교육원의 증가로 작년부터 영재전형의 경쟁률은 일반전형보다 훨씬 높으므로 영재전형만을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올해 경쟁률은 서울과고가 11.5대 1, 한성과고가 17.57대 1로 높았다. 영재전형을 통과하기 위한 학습 전략은 수학은 수학외적 문제들을 많이 접해보며 평소 다양한 사고를 통해 자기주도적인 창의적인 능력을 배양해야한다. 과학은 실생활에 이용되는 과학적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므로 교과서 외의 과 200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