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 검색결과 총 3,335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24시간 철야근무에 휴일은 없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전·의경들이 뜻하지 않게 생존권을 부르짖는 농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피로에 지친 젊은이들이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직업경찰을 보조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지만 어렵고 힘든 시위현장에서는 오히려 전·의경이 직업경찰을 대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집회경비는 정규경찰이 맡고 전·의경은 집회경비 보조업무만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서울경찰청 기동단 특수기동대 창신지구대는 3개 중대 350여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기자가 현장체험을 위해 찾아간 20일 오후 창신지구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시위현장으로 출동 나가서다. 서둘러 기동복으로 갈아입고 종로구 미근동 경찰청 앞 시위현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수많은 전·의경들과 시위대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1시간 52분 = 시위대와 전경대가 대치하는 지점 제일 앞이 기자가 배치 받은 78중대다.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 대열에 자리를 잡자마자 시위대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험으로 이런 풍경이야 익숙했지만 시위대가 아닌 전·의경 입장에서 서니 느낌이 새롭다. 다행히 시위는 고성이 오고가고 가벼운 몸싸움 정도로 정리됐다. 부대로 복귀해 저녁점호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11시 15분. 집회가 늦게 마쳐 부대 복귀 이후 청소 등 간단한 주변정리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옆자리에 누운 구본형 이경에게 말이라도 붙여볼 생각으로 돌아누우니 이미 잠이 든 상태. 하루 동안 찬바람에 시달린 구 이경의 볼이 달아올라 있다. 특수기동대 78중대는 지난 11월 한달 동안 하루평균 11시간 52분을 근무했다. 하루도 출동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출동 지역도 전국구다. 지난 5월 울산 플랜트노조 시위를 필두로 11월 부산 에이펙에도 출동했다. ‘좀 한다’는 집회현장은 서울청기동대의 몫이다. 78중대장 박영희 경감은 “24시간 시설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출동한 적도 있다”며 “나이 어린 대원들에 대해 미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기동대 내무반은 ‘기대마’= 전·의경이 타는 경찰버스를 ‘닭장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에 철망을 둘러친 모습이 닭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버스를 ‘기대마’라고 부른다. 기동대가 타고 다니는 말, 즉 버스라는 것이다. 버스라고 하지만 기대마는 사실상 기동대원의 ‘내무반’이나 마찬가지다. 기대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무반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시위현장에 나가 대기할 때나 시설보호 근무에서도 근거지가 되는 것은 기대마다. 78중대 우지현 상경은 “기대마는 우리의 보금자리나 마찬가지”라며 “24시간 철야근무 때는 ‘기대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덜덜덜 = 체험 이틀째인 21일 기상은 아침 6시. 기동대원들은 어제 저녁 늦게 상황이 끝났지만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늘의 임무는 시설경비. 오전 8시에 시작해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 근무다. 제주도 출신 홍제호 상경과 두달전 입대한 이정훈 이경과 함께 무궁화동산 유동근무(걸으며 수행하는 경계근무)를 나섰다. 방패를 들고 길목을 지키는 것 보다는 걸으며 순찰하는 것이 덜 추울 것 같아 서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방한털모자까지 뒤집어썼지만 30분 만에 코끝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자하문터널에서 내려오는 겨울 칼바람은 철원 군복무 시절 추위 저리가라였다. ‘덜덜덜’ 이빨이 부딪히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홍제호 상경은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 같다”며 “지급해 주는 장비 이외에 집에서 부쳐온 내복을 껴입어도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대사관 경비는 싫어 = 시설근무 중에서도 각국 대사관은 기동대원들이 싫어하는 근무지다. 복잡한 도심에 위치해 근무여건도 열악하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500여 미터 이상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나마 빌딩 화장실을 섭외해 사용하더라도 100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사용하다 보면 건물 관리인들로부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한다. 특히 일본대사관은 기피 근무지 1호. 우지현 상경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시위를 막다보면 오히려 ‘이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시위대에 뛰어들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정규경찰 투입해 상황대처능력 높여야 = 기동대원들은 요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시위대와 경찰이 접촉하는 지점에는 정규경찰을 투입해 상황대처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집회경비의 개념이 진압과 해산이 아니라 보호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동대원들은 올해 들어 부쩍 지휘관들로부터 인권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있다. 안전하게 시위대 보호하는 게 기동대의 임무라는 사실도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다. 지난달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때 기동대원들에게 부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기동대원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이 되는 사람들이었던 데다 왜 집회를 하게 됐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격한 행동을 하는 시위대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하고 있을 뿐인데도 모욕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역을 1개월 앞두고 있는 김세호 수경은 “과격한 시위는 한 해에 몇 차례 안 되지만 그때마다 아찔아찔하다”며 “시위대가 침을 뱉거나 심한 욕설 등을 듣게 될 때는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3
- 최루탄 사라졌지만 폭력은 여전 90년대를 끝으로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은 사라졌지만 폭력은 여전하다. 지난달 15일 집회에는 경찰차량 7대가 불탔고 수백명의 농민과 전·의경이 부상을 당했으며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하는 등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과거에 비해 폭력의 정도는 약해졌지만 폭력의 결과는 여전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시위현장은 전투에 가까웠다. 화염병과 돌이 새카맣게 날아다니고 최루탄 발사차량인 페퍼포그가 뿜어낸 ‘지랄탄’을 붙잡아 경찰 쪽으로 다시 던지는 일도 많았다. 경찰은 최루탄 발사기로 직격탄을 쏴 시위대를 위협했다. 결국 87년 이한열 열사가 직격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 폭력시위는 사라지는 듯 했다. 경찰도 더 이상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고 폴리스라인을 지키면 시위대를 제지 하지 않는다. 촛불집회, 1인 집회 등 집회 양상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폭력의 빈도는 줄어든 반면 강도는 여전하다. 쇠파이프 대신 물푸레나무를 들긴 했지만 타격강도는 마찬가지고 로마전차같은 날카로운 쇠파이프를 단 수레전차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시위대를 보호해야 할 경찰도 아직까지 보호보다 진압과 해산 위주의 작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패 등을 사용해 무리하게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수기동대 모 대원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폭력이 오가면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시대와 경찰모두 폭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3
- [박석무 칼럼]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 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2005.12.22)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1896년 음력으로 8월 중순, 그 2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후폭풍으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던 가운데, 갑오경장(甲午更張)까지 겹쳐 나라가 뒤숭숭하던 무렵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라도 무안(務安)의 젊은 선비 한 분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도보로 천리 먼 길인 경기도 포천의 가채리를 찾아갔다. 가채리는 당대의 거유(巨儒)이자 한말의 의병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 1833-1906)이 태어났던 고향이다. 면암이 다른 곳에 이사가 살다가, 64세이던 그 해에 마침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면암의 제자가 되려는 욕심과 자신의 선조 비문(碑文)을 받아오려는 임무를 띠고 먼 길을 여행한 선비는 민재(敏齋) 박임상(朴琳相 : 1864-1944)으로, 그때 33세의 시골 서생이자 향학열에 불타던 젊은 한학자의 한분이었다. 그때부터 109년이 지난 올해 11월 30일, 민재의 증손자인 필자는 강원도 철원에 일이 있어 다녀오던 귀로에 포천시내로 들어오자 교통표지판에 ‘가채리’라는 방향 표지를 발견했다. 드디어 평생의 숙원이던 그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면암 최익현, 그가 누구이던가. 가채리에서 경주 최씨의 후손으로 태어나 14세에 대학자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 큰 학문을 얻고,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여러 벼슬을 거쳐, 30세에는 충청도 신창(新昌 : 지금은 아산시) 현감으로 승진하고 사헌부의 지평(持平)과 장령(掌令)에 오른다. 이때 36세의 나이로 하늘을 찌르던 대원군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렸으니 이른바 ‘무진소(戊辰疏)’라는 명상소였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지 10년째이던 41세에 면암은 또 대원군의 독재를 규탄하는 ‘계유소(癸酉疏)’를 올려 대원군이 끝내 권좌에서 물러나는 대사건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정3품 당상관의 동부승지에 올라 있던 면암은 곧바로 정2품 호조참판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대원군과 고종 부자의 사이를 이간시켰다는 죄목으로 마침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떠나는 불행에 봉착하고, 3년의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다. 다음 해인 44세에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광화문 앞에 도끼를 들고 조약반대를 위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감행하였다. 상소의 요구를 들어주든가 아니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는 무서운 상소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를 죽이지 못하고 머나먼 흑산도로 유배시켜 4년의 세월을 보내게 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온 나라에 이름이 가득하던 면암을 조야에서 숭앙하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저 먼 시골의 선비가 면암을 찾아 16일 만에 선생 앞에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골짜기에 가득한 가을바람 나무 사이로 이는데 공경스럽게 선생님 뒤따르며 천천히 걷노라. 당당한 기상이야 산처럼 무거워서 온 세상에 바르지 못한 의논 허용되기 어렵다네. (滿壑秋風隔樹生 敬隨杖屨故徐行 堂堂氣像如山重 當世難容鄭衛聲) ‘선생님을 모시고 마을 뒷산인 채산(茝山)에 올라(陪勉菴崔先生登茝山)’라는 제목의 민재의 시다. 위풍이 당당하기로 유명하여 그분의 영정을 보면 모두가 호랑이 상처럼 무섭다던 면암, 그 위세에 눌려 아무도 허튼 수작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구절이 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68세의 고령으로 충청도의 정산(定山 : 지금의 청양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면암은, 74세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이유로 전라도 순창에서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일본의 헌병에 붙들려 대마도로 압송되어 거기서 일본의 쌀인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다 끝내 노환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채리에 들렀더니 ‘채산사(茝山祠)’라는 조그만 사당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을 뿐이다. 당당한 기상으로 천하를 압도하던 면암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고 문을 걸어잠궈 들어갈 수도 없는 쓸쓸한 3칸의 사당 한 채가 있었다. 면암의 혼을 모신 사당이란다. 나라가 망해 36년을 식민통치에 시달렸고, 그 후유증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60년이 다 되는 지금,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혼을 살려내자던 면암의 혼이 그렇게 쓸쓸해서야 되겠는가. 증조할아버지 스승의 고향이자 혼이 서린 가채리, 세상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거기에 ‘척사위정’의 당당한 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100여년전 면암과 민재의 만남이 그림처럼 떠오르고, 필자의 가슴을 꽉 채우는 것이 있었다. 면암 그렇게 외로워서는 안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2
- 위헌요소 다분 과감한 업무 조정 필요 농민 시위로 2명의 농민이 숨졌다.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는 과잉진압을 이유로 경찰 수뇌부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참에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경찰 일부에서도 현재의 전 의경 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다. 전·의경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 봤다. 편집자 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의무 복무하고 있는 전·의경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전용철씨와 홍덕표씨 사망으로 경비에 나섰던 전·의경들이 졸지에 폭력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례적으로 농민단체는 “폭력에 가담한 전·의경을 밝혀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의경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헌재 5대4 합헌 결정 = 전투경찰대가 창설된 것은 한국전쟁 시절이다.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지구 경찰대가 창설됐다가 55년에 해체 됐다. 70년 전투경찰대설치법이 제정되면서 전투경찰이 부활했다. 주 임무는 대간첩 작전이다. 75년에는 법개정을 통해 경비임무도 추가됐다. 이때부터 대간첩 작접보다는 반정부 시위, 파업현장, 학원가에 투입되는 업무가 주가 됐다. 본연의 업무보다는 과거 독재정권의 방패막이 구실로 전락했다. 82년에는 법이 개정돼 치안업무 보조 역할의 의무경찰제도가 도입됐다. 의무 경찰 역시 방범순찰, 시설경비, 집회 방어 등 1인 3역을 맡고 있다. 이런 전투경찰대설치법은 위헌이라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 왔다. 인권연대 허창영 간사는 “국방의 의무 때문에 군에 입대한 청년을 무작위로 차출해 ‘ 시위 진압을 나서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자진해서 지원한 의경들도 별반 다른지 않다. 규정에는 치안보조가 주업무로 되어 있지만 방범보다는 집회장으로 내 몰리기 일쑤이다. 전북대 법대 송기춘 교수도 “전투경찰제도는 군사와 치안의 분리를 전제한 헌법에 반한다”며 “시위진압은 보조적 업무가 아닌 경찰 본연의 업무이므로 전·의경을 동원해 대처할 것이 아니라 현직 경찰관을 확충해 대응할 문제”라고 말했다. 91년 당시 전투경찰 박석진씨가 전투경찰제는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 했다. 95년 헌법재판소는 “대간첩작전은 범죄예방 진압 등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경찰 본연의 임무와 관련 있다”며 5대4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4명의 소수 의견은 “무장공비가 준동하는 사태가 없는 한 통상의 불법집회시위 진압 등은 순수한 전투경찰대의 임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위헌적 요소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전투경찰을 없앤다면 공백을 어떻게 감당하냐”며 “전투경찰의 빈자리를 정규경찰로 메울 수 있다면 경찰청도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궂은 일 도맡아 전담 = 전·의경들은 과도한 업무에 심신이 괴롭다. 최근들어 APEC(에이펙)을 치루면서 테러에 대비해 밤낮으로 업무에 시달렸다. 이후 계속되는 농민집회와 노동계 비정규직 집회는 전·의경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서울 기동단의 김 모 대원은 “APEC 이후 5시간이상 자 본적이 없다”며 “항상 몽롱한 상태에서 근무한다”고 토로했다. 2004년 기준 전·의경의 숫자는 작전전투경찰(전경) 1만8000여명 의무전투경찰(의경) 3만2000명이다. 총 5만명의 전·의경이 근무하고 있다. 실제 이들은 경찰 본연의 임무 상당수를 대치하고 있다. 24시간 기숙을 하며 대기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찰 시설과 국가 주요 시설에 대한 경비를 담당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들 전투경찰을 정규 경찰관으로 대체할 경우 현재 전투경찰 인원보다 3배를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규 경찰관의 경우 주 40시간 근무제에 따라 일일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전·의경들이 담당하고 있다. 일각에선 노동착취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건국대 법대 한상희 교수는 “국제노동기구의 8개 기본협약 가운데 강제노동 금지협약에 위반되는 요소가 많다”며 “국가가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볼 때 전·의경들이 국가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 부족으로 대처능력 떨어져 = 경찰청은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전·의경 제도 폐지에 동의하지 못한다. 경찰청은 △집회시위 관리 차질로 사회혼란 우려 △민생치안 악화 △안보와 대테러 역할 약화 △재정부담 가중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대형 시위의 양상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 인원으로도 경비업무가 빠듯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도 과도한 업무가 몰려 있는 전·의경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의경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 부분이다. 고도로 훈련되지 않은 전·의경들은 집회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해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사고를 막기 위해선 집회에서 전·의경 역할문제를 제고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천안대 경찰행정학과 김상균 교수는 “전·의경 제도를 당장 폐지하지 못한다면 역할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며 “현재 시위진압의 최선봉에 서 있는 전·의경의 역할을 보조 임무로 돌리고, 잘 훈련된 정규 경찰인력이 집회장에서 주 업무를 맡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직접 대면하는 부분은 정규경찰이 맡고 전·의경은 교통정리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며 “경찰의 현장 상황 대처 능력을 높이면 불필요한 충돌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용 허신열 기자 sy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2
- 조폭단속 검·경 협력에 보내는 박수 조직폭력사범 전담 서울지역 합동수사부는 지난 15일 폭력조직 ‘이글스파’를 적발해 31명을 구속기소하고 행동대원 등 24명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남부지역에서 활동한 이글스파는 공짜로 마신 술값만 1억8000여만원에 이를 정도로 서민들을 괴롭혀 왔다. 공사 이권에 개입하고 보호비도 뜯었다. 이글스파는 80년대 초반부터 활동한 ‘토착 조폭’으로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1개월간 진행된 이번 수사는 ‘법 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인식을 심어준 조폭을 일망타진해 ‘법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특히 합동수사부는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지방경찰청의 협력 수사기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도 합동수사부 공동본부장을 맡은 조영곤 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과 주상용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근 들어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구경 중에 싸움 구경이 최고라는 말이 있지만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국민들을 짜증스럽고 불안하게 했다. 검·경이 모두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다수는 ‘수사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다. 이런 가운데 서민을 괴롭히던 토착조폭 수사에 검·경이 힘을 합쳤다는 것은 칭찬을 받을만한 일이다. 국민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이나 분쟁과 관련한 소식보다 검경이 힘을 합쳐 민생을 돌보는 소식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다. /기획특집팀 허신열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19
- 울산북구청 120민원기동대 민원 응급해결사로 인기 울산북구청 120 민원기동대가 민원 응급해결사로 활동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북구청은 올해 11월말까지 현재 4635건의 주민불편 사항을 처리했다. 이는 지난 해 연간 총 처리건수인 4597건을 훌쩍 넘은 것으로 처리율도 98%에 달한다. 120 민원기동대가 활성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북구청 민원기동대는 순찰과 동시에 보수가 이루어지는 기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민원기동대원들은 용접과 목공 기능 등을 갖춘 40대로서 지난 1999년부터 7년째 같은 업무를 맡고 있어 북구 관내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환하다. 이들은 보안등 수리나 불법 투기된 쓰레기 수거 등의 활동 뿐 아니라 동별 경로잔치나 저소득층 장례지원과 이사에 도움을 주는 등 소외계층에도 각종 도움을 주고 있다. 기동대원 조규호(42)씨는 “앞으로도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면 언제 어디든지 달려가서 빨리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울산 송진휴 기자 jhso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1
- “전쟁터에서 살아온 느낌입니다” 인터뷰 : 허리부상으로 퇴직한 전 119 구급대원 박정호(38)씨 제목 :“전쟁터에서 살아온 느낌입니다” 부제 : 허리장애에 36만원 보상 전직 119구급대원 박정호(38)씨는 소방현장을 전쟁터로 비유했다. 박씨는 구급대원 재직 당시 목격했던 끔찍한 장면이 떠오를 때면 불면증이 도지곤 한다. 퇴직후에도 한참 동안 화마에 그을려 몸이 붙어버린 환자나, 사고로 턱이 잘려나간 사람 등 끔찍한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환각에 시달렸다. 박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헌신적으로 일하던 소방대원의 모습에 반해 비교적 안정적이던 우체국에서 8급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97년 소방관에 입문했다. 박씨는 화재진압현장에서 베테랑들이 근무하는 직할대에 처음 배치됐지만, 구급대원으로 이내 자리를 옮겼다. 당시 관악소방서는 출동 건수가 많아 하루 평균 12건이 넘는 출동을 했다. 출동해서 1건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시간으로 환산하면 하루 15시간이 넘는 격무에 시달렸다. 5년간 박씨가 출동한 횟수는 모두 5000건에 달했다. 1년에 1000건이 넘는 횟수다. 소방관을 천직으로 여기던 박씨가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허리부상 때문이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게 허리부상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한번은 건물옥상에서 고추를 널다 추락한 아저씨를 구하기 위해 담을 넘다 균형을 잃어 밑으로 떨어졌다. 허리부상은 더욱 깊어졌다. 침을 맞으려 다녔지만, 연일 계속되는 격무로 인해 허리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얼마 후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구급대원 불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내렸다. 박씨의 허리에 대한 공식 병명은 ‘추간판 내장증’이었다. ‘추간판 내장증’은 무거운 것을 많이 드는 사람들이 걸리는 직업병이다. 그는 퇴직 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측으로부터 25%의 신체결손률로 장애 12등급을 받아 매달 장애연금 36만원을 받고 있다. 박씨는 “다치면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고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24시간 맞교대에 휴일 잔무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에게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요즈음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림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박씨는“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소방관들을 홀대하는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0
- <박석무 칼럼>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2005.12.22) 가채리(嘉茝里) 기행(紀行) 1896년 음력으로 8월 중순, 그 2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의 후폭풍으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던 가운데, 갑오경장(甲午更張)까지 겹쳐 나라가 뒤숭숭하던 무렵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라도 무안(務安)의 젊은 선비 한 분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도보로 천리 먼 길인 경기도 포천의 가채리를 찾아갔다. 가채리는 당대의 거유(巨儒)이자 한말의 의병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 1833-1906)이 태어났던 고향이다. 면암이 다른 곳에 이사가 살다가, 64세이던 그 해에 마침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면암의 제자가 되려는 욕심과 자신의 선조 비문(碑文)을 받아오려는 임무를 띠고 먼 길을 여행한 선비는 민재(敏齋) 박임상(朴琳相 : 1864-1944)으로, 그때 33세의 시골 서생이자 향학열에 불타던 젊은 한학자의 한분이었다. 그때부터 109년이 지난 올해 11월 30일, 민재의 증손자인 필자는 강원도 철원에 일이 있어 다녀오던 귀로에 포천시내로 들어오자 교통표지판에 ‘가채리’라는 방향 표지를 발견했다. 드디어 평생의 숙원이던 그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면암 최익현, 그가 누구이던가. 가채리에서 경주 최씨의 후손으로 태어나 14세에 대학자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들어가 큰 학문을 얻고,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여러 벼슬을 거쳐, 30세에는 충청도 신창(新昌 : 지금은 아산시) 현감으로 승진하고 사헌부의 지평(持平)과 장령(掌令)에 오른다. 이때 36세의 나이로 하늘을 찌르던 대원군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독재를 비판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렸으니 이른바 ‘무진소(戊辰疏)’라는 명상소였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은 지 10년째이던 41세에 면암은 또 대원군의 독재를 규탄하는 ‘계유소(癸酉疏)’를 올려 대원군이 끝내 권좌에서 물러나는 대사건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정3품 당상관의 동부승지에 올라 있던 면암은 곧바로 정2품 호조참판이라는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대원군과 고종 부자의 사이를 이간시켰다는 죄목으로 마침내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떠나는 불행에 봉착하고, 3년의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다. 다음 해인 44세에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광화문 앞에 도끼를 들고 조약반대를 위한 지부상소(持斧上疏)를 감행하였다. 상소의 요구를 들어주든가 아니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는 무서운 상소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를 죽이지 못하고 머나먼 흑산도로 유배시켜 4년의 세월을 보내게 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온 나라에 이름이 가득하던 면암을 조야에서 숭앙하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저 먼 시골의 선비가 면암을 찾아 16일 만에 선생 앞에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골짜기에 가득한 가을바람 나무 사이로 이는데 공경스럽게 선생님 뒤따르며 천천히 걷노라. 당당한 기상이야 산처럼 무거워서 온 세상에 바르지 못한 의논 허용되기 어렵다네. (滿壑秋風隔樹生 敬隨杖屨故徐行 堂堂氣像如山重 當世難容鄭衛聲) ‘선생님을 모시고 마을 뒷산인 채산(茝山)에 올라(陪勉菴崔先生登茝山)’라는 제목의 민재의 시다. 위풍이 당당하기로 유명하여 그분의 영정을 보면 모두가 호랑이 상처럼 무섭다던 면암, 그 위세에 눌려 아무도 허튼 수작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구절이 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68세의 고령으로 충청도의 정산(定山 : 지금의 청양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면암은, 74세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이유로 전라도 순창에서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일본의 헌병에 붙들려 대마도로 압송되어 거기서 일본의 쌀인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단식하다 끝내 노환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채리에 들렀더니 ‘채산사(茝山祠)’라는 조그만 사당이 을씨년스럽게 서있을 뿐이다. 당당한 기상으로 천하를 압도하던 면암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고 문을 걸어잠궈 들어갈 수도 없는 쓸쓸한 3칸의 사당 한 채가 있었다. 면암의 혼을 모신 사당이란다. 나라가 망해 36년을 식민통치에 시달렸고, 그 후유증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60년이 다 되는 지금,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혼을 살려내자던 면암의 혼이 그렇게 쓸쓸해서야 되겠는가. 증조할아버지 스승의 고향이자 혼이 서린 가채리, 세상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거기에 ‘척사위정’의 당당한 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100여년전 면암과 민재의 만남이 그림처럼 떠오르고, 필자의 가슴을 꽉 채우는 것이 있었다. 면암 그렇게 외로워서는 안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2
- 울산북구청 ‘120민원기동대’ 인기 울산북구청 120 민원기동대가 민원 응급해결사로 활동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북구청은 올해 11월말까지 현재 4635건의 주민불편 사항을 처리했다. 이는 지난 해 연간 총 처리건수인 4597건을 훌쩍 넘은 것으로 처리율도 98%에 달한다. 120 민원기동대가 활성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북구청 민원기동대는 순찰과 동시에 보수가 이루어지는 기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민원기동대원들은 용접과 목공 기능 등을 갖춘 40대로서 지난 1999년부터 7년째 같은 업무를 맡고 있어 북구 관내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환하다. 이들은 보안등 수리나 불법 투기된 쓰레기 수거 등의 활동 뿐 아니라 동별 경로잔치나 저소득층 장례지원과 이사에 도움을 주는 등 소외계층에도 각종 도움을 주고 있다. 기동대원 조규호(42)씨는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송진휴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1
- 2006학년도 전문대 지원전략 취업률·통학거리·적성 고려하라 무제한 복수지원 가능 … 3~4개 대학 선택이 이상적 전문대의 경우 대학의 간판보다는 취업률, 통학거리, 적성 등을 잘 고려해 대학·학과를 선택해야 한다. 전문대학은 무제한 복수지원이 허용되므로 선택의 폭은 상당히 넓다. 그러나 너무 많은 대학에 지원해 전형 일정이 중복되는 등의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전문대학은 학과가 실무중심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선택의 폭이 넓고 취업률이 높다는 등의 이점으로 경쟁률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수험생들은 각 대학의 입시요강이나 학과별 예상 합격선, 이전 취업률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복수지원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심사숙고해 자신의 수준에 맞는 3~4개 대학정도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소신지원하라 = 취업률을 기준으로 보면 간호과와 관광계열, 치기공, 방사선과, 유아교육과, 안경광학과, 정보통신계열, 컴퓨터관련학과 등이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들 학과는 지역에 관계없이 높은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서울·수도권의 대학들은 통학의 이점 때문에 기본적으로 높은 경쟁률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너무 경쟁률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점수대에 맞는 대학 및 학과에 소신지원 하는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 전형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수능 성적을 40%이상 반영하고 있으므로 수능 위주로, 특별 전형은 학생부 위주로 지원하되 자신의 적성과 미래의 취업 전망을 고려해 자신에게 유리한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경기공업대와 두원공과대, 웅지세무대, 주성대, 충청대, 한국관광대, 한림성심대는 수능성적 100%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따라서 수능점수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학생부성적이 낮은 학생이 지원하면 유리하다. 반대로 강릉영동대학(학생부100%), 대원과학대(면접100%) 등 24개 대학은 수능성적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학의 전형을 유심히 살펴보면 수능과 학생부의 반영비율에서 차이가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다. ◆이색학과 및 취업률 상위학과는 2∼3점 상향지원 = 4년제 대학에 개설되어 있지 않고 취업 전망이 밝은 이색적인 분야인 부사관학과, 테마파크디자인과, 연예산업경영과, 웰빙테라피과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망이 밝은 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지난해보다 2∼3점 가량 합격점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복수 지원을 많이 하면 합격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보통 3∼4회 정도가 적당하다. 특히 복수 지원 시에는 면접, 실기 등이 중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확인하고 지원해야 한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은 복수지원에 따른 높은 경쟁률에 겁을 먹고 지원을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쟁률에는 허수가 많으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특별전형(주간)의 경우 127개 대학이 학교생활기록부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특별전형(야간)은 86개 대학이 학생부 성적만으로 선발한다. 학생부에 자신 있는 수험생은 특별전형에 도전해볼 만하다. 또 실업계 학생은 전문대학과 실업계고교가 교육과정을 연계해 운영하는 대학의 특별전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기능대학의 경우에는 학비도 저렴하고 전체 학생의 20%가 국비장학금 등 다수의장학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주목할 만하다. 일반전형의 경우에는 수능 미 응시생도 지원이 가능하므로 특별전형에 해당사항이 없다면 지원해 볼 만 하다. ◆유의사항 = 지난해 실기성적을 반영했다가 올해는 실기를 제외한 채 수능과학생부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들이 있는 만큼 디자인계열 등 실기가 포함됐던 학과에 지원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 실기가 제외된다면 합격점수는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학과명이 같아도 취업률이 높은 학과는 3년제로 운영되는 곳이 많으며 유아교육과라 하더라도 대학에 따라 남녀를 구분해 모집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모집요강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대부분 대학이 인터넷 접수와 창구접수를 동시에 시행한다. 이에 다라 인터넷 원서접수의 경우 마감 당일에는 지원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될 수 있는 만큼 지원하려는 대학과 학과가 결정되면 최소 하루 전에 접수하는 것이 좋다. ◆점수대별 지원 전략 △최상위권 = 485점 이상(표준점수 800점 기준)의 점수대로 국립의료원간호대, 한국철도대, 농협대 등 수도권 최상위권 학과에 지원 가능한 점수대다. 이들 대학은 모두 취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요즘같이 취업난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경쟁률과 합격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상위권 = 470점 이상의 점수대로 서울보건대, 인덕대 등의 서울 수도권 상위권대학의 상위권 학과에 지원 가능한 점수대다. 4년제 학과의 지원 가능 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취업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학생이 많을 경우 취업이 잘되는 학과의 경쟁률은 높아질 가능성도 많다. 이에 따라 타 수험생들의 지원성향을 면밀히 지켜보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위권 = 423점 이상의 점수대로 수도권 중상위권 전문대학이나 지방의 상위권 전문대학에 지원 가능한 점수대로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과 연관된 보건계열 등의 상위권 학과는 경쟁률이 다소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 점수대는 복수지원에 의한 거품 경쟁률이 많기 때문에 경쟁률에 현혹되지 말고 소신지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하위권 = 401점 이상의 점수대로 수도권 하위권 전문대학과 지방 중위권 전문대학에 지원 가능한 점수대다. 이 점수대의 경우 복수합격에 의한 미등록 현상을 염두에 1~2개 대학 정도는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소신지원하며 나머지 3~4 정도는 일반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위권 = 290점 이하의 점수대로 지방의 하위권 전문대에 지원 가능한 점수대로 이 점수대의 학생은 하위권 전문대학에 지원하거나 전문대의 모집방법이 수능성적이 낮아도 진학이 가능한 대학과 학과가 많으므로 특별전형이나 수능 이외의 전형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료제공 : 고려학력평가연구소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