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 검색결과 총 3,335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단신]한국MS, 대원컴퓨터와 총판 계약 체결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유통 전문 기업인 대원컴퓨터와 일반유통 제품의 국내 총판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국MS는 MS의 하드웨어, PC게임 및 기타 일반 소비자 제품의 유통을 대원컴퓨터의 유통망을 통해 공급한다. 대원컴퓨터는 한국휴렛팩커드, 씨게이트, 도시바, LG전자 등의 제품을 유통해온 컴퓨터 유통 전문 회사로, 4000 여 개 이상의 전국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다. 2005-06-12
- <해외마케팅 ‘청년전사’ 1만명 양성하자>한국해외봉사단 15년 성과 코이카는 1990년 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봉사단 44명을 파견한 이래 15년동안 유럽 남미 아프리카 중동 오세아니아까지 34개 나라에 2280명을 내보냈다. 이 가운데 1259명이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고 지난해 말 현재 25개국에서 941명이 활동하고 있다. 파견 첫 해에는 체육교육 간호 잠업 등이 주를 이뤘으나 1994년 이래 10년간은 한국어교육과 컴퓨터 간호가 수위를 점하고 있다 남성보다는 여성 참가자가 많다. 총 2280명 중 1090명(47.8%)이지만 병역특례 협력요원 446명을 뺀 1834명 가운데는 열명 중 6명(59.5%)이 여성이다. 연령대는 만 20세 이상 61세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평균연령 29세로 20·30대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40대 이상 중·장년층 지원율은 6% 가량이다. 해외봉사단들은 제3세계와 한국을 잇는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앞선 기술을 전해 개도국 발전을 돕는 한편 우리 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왔다. 코이카에서 꼽는 모범사례 중 하나는 우즈베키스탄의 TV에 개설됐던 한국어 강좌. 97년 타슈켄트에 파견된 7기 대원들이 거둔 성과다. 매주 20분씩, 1년간 방송된 강좌는 20만명의 한인들에게 잊혀져가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강좌를 제작해 방송까지 담당했던 허혜란씨는 “고려인 중심의 수업이었는데 나중에는 다른 민족들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협력요원 3기로 스리랑카에 파견됐던 이기수씨는 태권도의 위상을 높인 주인공. 대통령 경호 임무를 수행하며 특수경찰요원에게 태권도를 전파했다.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한 그는 스리랑카 정부의 요청에 따라 태권도 사범으로 다시 파견됐다. 해외봉사단들의 성과는 이밖에도 다양하다. 인도네시아판 실용 농업서를 발간한 박창호씨(협력요원 4기), 네팔에서 시범 유치원을 열어 정부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강윤주씨(12기), 우크라이나에서 한국문화주간 행사를 연 이기관씨(협력요원 10기) 등이다. 지난 연말 동남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도 현지에 파견돼있던 단원들은 물론 귀국자들까지 동원돼 해외봉사단의 ‘능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코이카 국제협력 특별강사 강순씨는 “봉사단원은 경험이나 현장지식, 현지 생존능력, 문제 해결력 등에서 상위 5%에 꼽힌다”며 “국가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획특집2팀 신명식 윤영철 김진명 김은광 기자 msshin@naeil.com 2005-05-31
- <해외 마케팅 '청년전사' 1만명 양성하자>우수 인재 확보하려면 혜택 많아야 자이카는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참가자들의 신분을 유지하는 방안을 적극 활용한다. 공무원은 파견 휴직 출장의 형태로 봉사단에 참가할 수 있게 관련 법안이 마련돼 있다. 정부관계기관은 유급휴직을 준다. 민간회사는 대부분 노사협약을 통해 장기간 유급휴직으로 처리한다. 복직 후에는 승급이나 승진 불이익이 없다. 자이카가 인건비와 간접경비를 보전한다. 귀국단원 관리에도 적극적이다. 기업체 진출자의 45%가 자이카 국내 지부나 지원 단체의 소개로 직업을 갖게 됐다. 귀국 6개월 전에는 취업희망 조사를 하고 귀국 후에는 개별 진로상담을 거쳐 기업 등과의 면접 일정을 마련한다. 귀국 1개월 전에는 대원명부를 작성해 관련 기업에 보낸다. 지속적인 국제협력활동을 위해서는 전문가 대원 제도를 활용한다. 현지 경험과 전문 기술을 겸비한 귀국대원을 지역사회에 정통한 국제 전문가로 육성한다. 귀국단원들도 개인적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각 현마다 OB회를 조직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특히 개도국 민간협력 프로젝트나 중앙·지방 정부의 국제협력행사를 측면 지원한다. 개도국 인재를 민간차원에서 초청해 연수시키기도 한다. 평화봉사단은 11개 지역 사무국과 귀국자 네트워크에서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직업을 알선한다. 귀국 후 2년간 구인정보와 대학원 진학정보, 산업 전망 등이 실린 자체 정보지를 무료로 받아본다. 단원과 귀국자에 대한 각종 혜택이 풍부하다. 교육 과정이 특히 잘 갖춰져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1년 공부한 뒤 현지 활동을 하면서 학위를 딸 수 있게 한다. 봉사단 근무 중이나 귀국 후 대학에 진학할 경우 학비를 깎아주기도 한다. 귀국자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미국 사회의 각 영역에 고루 분포해있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일례로 평화봉사단 사무국 직원 40%가 단원 출신이다. 5년만 근무할 수 있다는 제한을 두었지만 지원자가 넘친다. 연방정부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기획특집2팀 신명식 윤영철 김진명 김은광 기자 msshin@naeil.com 2005-05-31
- 동농 김가진 일가의 4대에 걸친 나라사랑 동농과 그 후손들의 나라사랑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큰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는 임정의 안팎살림을 맡은 일꾼들이다. 그들의 외아들 김자동은 임정기념사업회장으로 독립정신 계승에 매진하고 있다. 동농의 차남 김용한은 의열단 사건에 관계됐고, 그의 아들 김석동은 임정 광복군에서 최연소 대원이었다. 동농의 후손들은 사회민주화에 나섰다. 김자동의 큰 딸 김진현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노조위원장이고, 그의 남편은 곽태원 전국사무금융노련 위원장이다. 둘째 딸 김선현은 1987년 이후 한국과 호주 땅을 떠들썩하게 했던 웨스트팩 은행 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동농 김가진 (1846~1922) 종1품 개화파 관료에서 무장독립투쟁 꿈 꾼 공화주의자로 변신 동농 김가진은 1846년(헌종 12년)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동농은 당시 안동부사였던 김응균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이른바 서얼이었다. 동농의 과거 응시가 불가능한 서얼 출신들과 교류하며 세월을 보냈다. 동농은 1877년(고종 14년) 11월 서얼 중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주어지던 규장각 검서관에 진출했다. 동농은 5년간 하급관리로서 한직을 돌아야 했다. 동농은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아문) 주사(6품)에 발탁되어 고종의 측근으로 부상하는 한편 대 러시아 비밀외교를 보좌했다. 갑오경장 주역 참여 독립문에 글씨 남겨 조선은 1884년 갑신정변 이후 비로소 적서차별을 타파했다. 동농은 1886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문과에 응시, 급제했다. 동농은 1887년 5월부터 4년간 주차 일본공사로 일본에 상주하며 반청자주외교를 펼쳤다. 이 때 동농은 이른바 ‘동양 삼국 공영론’을 받아들였으며, 일본을 조선 근대화의 모델로 생각했다. 1894년 박정양 김윤식 유길준과 함께 갑오경장의 주역으로 참여해 각종 개혁안을 추진했다. 이 때 동농은 ‘군주주도형 입헌군주제’를 꿈꾸었다. 이 시기 이조참판 병조참판 공조판서를 맡아 정경의 반열에 올랐다. 1896년 독립협회가 결성됐을 때는 독립문의 한자및 한글 글씨를 직접 썼다. 이후 농상공부 대신, 중추원 참의, 중추원 부의장, 충청남도 관찰사를 거쳐 1907년 11월 규장각 제학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동농은 1907년 11월 남궁억 장지연 권동진 오세창 등과 함께 대한협회를 만들었다. 대한협회는 애국과 실력배양을 표방했지만 일제의 억압으로 점차 정치적 성격을 상실했다. 동농은 1908년 7월 2대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대한협회는 일제 침략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개화지식인의 모임이었다.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주장하자, 대한협회는 국민대회를 열어 이를 규탄했다. 대한협회는 1910년 경술국치 후 해체됐다. 3·1운동 후 근대적 민주사회 지향 실의에 빠져 칩거하던 동농에게 3.1운동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농은 항일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맡았다. 대동단은 봉건적 사회지배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민주사회를 지향했다. 대동단은 1919년 3월부터 11월까지 지하유인물 배포와 같은 항일활동을 했다. 대동단 사건으로 투옥된 사람이 30명에 달했다. 대동단은 동농과 의친왕 이 강(고종의 다섯째 아들)의 상해망명을 계획한다. 두 사람은 사돈 사이다. 동농이 아들 김의한과 함께 1919년 10월 10일 상해에 도착하자 이동녕 김 구 등이 그를 환영했다. 동농의 망명은 국내외에 파문을 일으켰다. 현지 언론이 대서특필 했다. 당시 일제는 국제외교무대에서 ‘임정은 하층민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대신을 지낸 사람이 임정에 참여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 북로군정서 고문 추대 1921년 임정 안에는 다양한 노선이 대립했다. 동농은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해 북간도 독립운동 조직인 북로군정서의 고문으로 추대됐다. 동농이 1922년 7월 4일 사망하자 임정은 어려운 형편에도 장례를 성대히 치르고 만국공묘에 안장했다. 임정 국무위원 전원 이름으로 부고를 냈고, 홍 진 국무위원회 주석이 식사를 했다. 동농은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김의한 김용한 김정원(여) 김각한 김영원(여) 3남2녀를 두었다. 성엄 김의한 (1900~1964, 1990년 독립장 추서) 수당 정정화 (1900~1991, 1982년 애족장 서훈) 임정 안팎살림 묵묵히 떠맡았던 일꾼 국내잠입 여섯 차례 김의한(1900~1964)은 동농 김가진의 큰아들이다. 그의 부인 정정화(1900~1991)는 수원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2남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두 사람은 1910년 결혼해 외아들 김자동을 두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상해로 망명하자 정정화는 대담한 결심을 한다. 1920년 1월 시어머니에게는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와, 친정아버지가 준 800원을 갖고 서울 의주 봉천 천진 남경을 거쳐 열흘 만에 상해에 도착했다. 한 밤 중 압록강에 거룻배 띄워 탈출 대개 혼자 몸인 임정 요인들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부엌살림은 정정화의 몫이었다. 쪼들리는 살림에 애가 탄 정정화는 1920년 3월 임정의 비밀통신연락망인 ‘연통제’를 이용해 국내에 잠입했다. 20일 동안 모금한 약간의 돈을 갖고 한 밤 중 압록강에 거룻배를 띄워 조선을 탈출했다. 상해에 도착한 후에야 이 사실을 안 임정요인들은 정정화의 담력에 감탄을 했다. 정정화는 1921년 늦은 봄 역시 돈을 구하러 조선에 잠입했다. 1922년 6월 3차 잠입 때는 이미 임정의 비밀연락망이 붕괴되어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압록강 철교를 건너다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됐다. 서울 체류 중 동농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정화는 이후에도 세 차례 국내에 잠입했다. 1930년 여섯 번째 잠입을 했을 때 민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임정 간판을 들고 7년 떠돌이 생활 1930년대 들어 임시정부는 외교적으로 고립됐다. 국내와도 단절됐다. 백범 김 구는 애국단을 조직해 침략원흉들의 저격에 나섰다.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일왕이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졌다. 1932년 4월 29일 일제는 일왕의 생일인 이른바 천장절 행사를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었다. 이곳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침략원흉들을 응징했다. 당시 상해는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 조계 당국은 임정을 더 이상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임정 요인들은 임시정부의 간판을 들고 1939년 중경에 정착할 때까지 7년동안 중국대륙을 떠돌기 시작했다. 김의한은 임정 국무원 비서직을 맡아 비서장 차이석과 함께 살림을 맡았다. 임정의 안살림은 정정화가 맡았다. 정정화는 혼자 100명이 넘는 식구들의 식사를 차리면서도 웃음을 머금고 살았다. 해방, 그리고 개인자격 귀국 “왜적이 항복! 이것은 기쁜 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일이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군 유격대를 국내에 투입할 계획을 세우던 백범은 이렇게 탄식했다. 미군정은 임정요인들의 귀국을 허용했지만 개인자격이었다. 김의한 일가를 포함해서 중경에서 살던 임정 가족은 1946년 1월 하순에야 귀국길에 올랐다. 김의한 일가는 3월 초순 동농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의한 정정화는 몸 어느 구석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있는지, 그 많은 눈물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이 날의 참배가 마지막 성묘가 되고 말았다. 남북협상의 실패와 김의한의 납북 1948년 봄 단정 수립을 반대하던 한독당은 4월 19일 남북협상에 나섰다. 백범을 따라 김의한도 협상대표로 참가했다. 그러나 남북협상은 실패했고, 5월 5일 이들이 귀경했을 때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 2005-05-27
- 해경, 중국 어민에 쇠파이프로 맞아 서해안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해 불법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려던 해양경찰관 4명이 중국 어민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26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해경 경비함 501호(500t급)는 지난 24일 오전 1시쯤 중국 어선이 인천 옹진군 백령도 서방 27마일(50㎞) 해상에서 우리측 EEZ를 2.5마일(4.6㎞) 침범하자 나포 작전에 나섰다. 해경 대원 12명은 소형 보트를 타고 중국 어선에 올라 어선 1척(150t급)을 제압했다. 그러나 다른 어선을 제합하는 과정에서 중국 어민 18명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검거조장인 최익수(47) 경사는 이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고, 조상호(38) 경장 등 3명도 눈 밑이 찢어지는 등 부상을 당했다. 특히, 중국 어민들은 쓰러진 최 경사를 바다에 던져버렸고, 바다에 빠진 팀장을 구하기 위해 나머지 대원들이 바다에 뛰어든 틈을 타 어선 2척을 몰고 모두 도주했다. 부상을 입은 최 경사 등 경찰관 3명과 전경 1명은 사고 직후 긴급 이송돼 3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인천해경과 태안해경은 경비정 6척을 투입해 사고 해역을 중심으로 검문검색을 벌여 이날 오전 8시쯤 인천과 태안 경계해역에서 용의 어선 3척을 나포해 인천해경 부두로 압송,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해경은 사건 직후 중국 농업부 어정국에 이들 어선의 제원을 통보하고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한편, 27일 정보수사국 간부 1명을 중국에 보내 어선들에 대한 지도·단속을 강력히 요청할 방침이다. 해경은 “최근 중국 불법조업 어선에 대한 단속과 처벌수위를 높이자 중국 어민들의 저항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며 “불법조업 해역에 경비함정과 헬기를 집중 배치하고 단속 방해 어선에는 해경 특공대를 투입하는 등 강력히 대처 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2005-05-27
- 휴대용 게임기 시장은 벌써 한여름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닌텐도의 닌텐도DS가 한국어를 음성인식할 수 있는 게임타이틀 ‘닌텐독스’를 내놓았으며 소니의 휴대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 등 신제품이 어린이 날을 앞두고 출시된다. 휴대용 게임기 외에 각종 게임기능이 특화된 게임전용 휴대폰도 잇따라 출시된다. 삼성전자와 KTF에 서비스되는 삼성전자의 게임폰이 출시된데 이어 팬택앤큐리텔과 SK텔레텍의 제품이 선보이면서 국내기업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이들 제품은 손바닥만한 크기로 휴대가 용이하고 특정게임만을 즐기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선택. 구매해 즐길 수 있다. 또 기존 게임기와 달리 통신기능을 갖춰 무선으로 다양한 게이머들과 온라인 대전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MP3플레이어는 기본으로 갖췄고 게임폰은 고화질 카메라 기능도 갖춰 젊은층이나 청소년층으로부터 구매욕구를 높이고 있다. 우선 게임전용기중에 PSP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의 차기 제품으로 이미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는 지각 출시돼 네티즌들로부터 한국 소비자를 무시했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PSP는 4.3인치 LCD 화면을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동영상도 볼 수 있다. 또한 한국형 PSP는 네스팟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 다양한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거나 최대 16대의 PSP를 무선으로 연결,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다. 역시 일본에서 개발된 닌텐도DS도 많은 사용자층을 지닌 휴대용 게임기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어 한국형 전압에 맞지 않은 다량의 밀수품이 들어올 정도다. 닌텐도DS는 화면이 둘로 나뉘어져 있고 하나의 화면은 터치스크린이 가능하다. 특히 다른 게임기와 달리 음성인식을 할 수 있어 말로 게임을 진행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무선통신을 통해 근거리에 있는 사용자 최대 16명이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 닌텐도DS 한국총판인 대원씨아이는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서도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산 휴대용 게임기가 인기를 끄는 반면 한국 업체들은 게임폰을 통해 게임시장을 나누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게임폰의 그래픽 기능이 일본산 게임기에 버금갈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도 SK텔레콤과 KTF용으로 ‘3D 진동 게임폰’을 출시했다. 2.2인치 LCD화면을 통해 게임을 이용할 수 있고 손을 통해 직접 전달되는 진동이 특징이다. TV 출력 기능이 있어 TV에 연결하면 보다 큰 화면을 통해 실감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팬택앤큐리텔은 무선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도 근거리 통신이 가능한 블루투스 3D게임폰 ‘큐리텔 PH-S6000’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제품은 모바일 전용 게임사이트에 접속해 무선인터넷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은 물론 휴대폰끼리 무선으로 3D네트워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있다. 2인치 LCD화면을 탑재해 3차원 그래픽까지 소화할 수 있으며 SK텔레콤 모바일 게임 전용 게임 사이트에서 무선인터넷 및 PC를 통해 다양한 최신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SK텔레텍이 게임폰을 출시했으며 LG전자도 조만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2005-05-03
- 미국거주 10년, 대원외고 김지은양 “장애인 관련 NGO(국제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싶어 국내 대학 갑니다.” 조기유학, 학부과정 외국대학 진학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해외진학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국내 대학 진학을 선언해 주변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김지은(대원외고 3학년)양. 김양의 이름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유명 외국어고 재학 중, 토플 만점, 텝스 965점(990점 만점), 미국거주 10년 등이 김양의 경력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학생이나 부모는 외국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김양은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김양의 결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경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 이유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양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을 위한 NGO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라며 “NGO를 운영하기 잘하기 위해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최종의 목표는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학원은 외국으로 나가 로스쿨에 다닐 계획”이라며 “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양이 이처럼 NGO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것은 한 장애인복지단체와의 인연 때문이다. 김양은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 관악구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고1학년 2학기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양의 봉사활동은 경력만큼이나 특이하다. 김양은 매일 다양한 자료를 영문으로 컴퓨터에 입력해 복지관에 전자우편(이메일)으로 보낸다. 김양이 입력한 영문 자료는 일정한 과정을 통해 음성으로 전환돼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하게 된다. 거의 매일 조금씩 해온 봉사활동이 쌓여 총 350여시간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양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익힌 영문타자 실력을 나보다 어려운 여건의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고 한다. 김양은 박사과정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0살 때까지 9년을 생활했다. 그러나 미국생활 중에도 김양 가족은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 덕분에 귀국 후 국내 적응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한다. 요즘 병역을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양은 “자기는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아이를 본적이 있는데 한심해 보였다”며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김양은 “내 동생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다”며 “그러나 동생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나이가되면 군대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NGO 활동가로 세계무대를 누비는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김양의 모습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2005-05-24
- 서울시내 외고 특별전형 14.1% 증가 서울시내 외국어 고등학교들이 지난해보다 14.1% 늘어난 764명의 신입생을 특별전형을 통해 모집하기로 했다. ‘2006학년도 특수목적고·특성화고 신입생 전형요강’에 따르면 대원·대일·명덕·서울·이화여자·한영 등 6개 외국어고의 특별전형 모집인원이 지난해 656명에서 올해 764명으로 증가했다. 이를 학교별로 보면 대원외고가 16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대일외고156명, 명덕외고가 140명, 한영외고 131명, 서울외고 105명, 이화외고 63명 등의 순이었다. 또 전형분야별로 보면 성적우수자(389명), 외국특기자(170명), 학교장추천(166명) 등의 순이었다. 이들 6개 외국어고등하교의 전체 모집인원은 2100명이며 이중 1336명만을 일반전형으로 선발한다. 일반전형은 내신성적과 영어듣기평가, 구술면접시험으로 진행된다. 내신성적은 중학교 2학년 1·2학기,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며 출석과 봉사활동 경력 등도 포함된다. 특히 대원·대일·서울·이화외고 등은 중 2·3학년의 전체 교과성적 이외에 가중치 교과성적으로 중 3학년 국어·영어·수학 교과 등을 포함시킨다. 영어듣기평가는 학교별로 실시되며 구술면접시험은 서울지역 6개 외고 공통으로 출제된다. 특별전형일은 11월 7일이고 일반전형일은 11월 14일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2005-05-20
- “봉사 위해 한국대학 갑니다” “장애인 관련 NGO(국제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싶어 국내 대학 갑니다.” 조기유학, 학부과정 외국대학 진학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해외진학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국내 대학 진학을 선언해 주변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김지은(대원외고 3학년)양. 김양의 이름 앞에는 몇 가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유명 외국어고 재학 중, 토플 만점, 텝스 965점(990점 만점), 미국거주 10년 등이 김양의 경력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일반적으로 대부분 학생이나 부모는 외국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김양은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김양의 결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경력 때문이 아니라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 이유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양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을 위한 NGO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라며 “NGO 운영을 잘하기 위해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최종의 목표는 국제 변호사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대학원은 외국으로 나가 로스쿨에 다닐 계획”이라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권리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양이 이처럼 NGO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한 장애인복지단체와의 인연 때문이다. 김양은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 관악구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고1학년 2학기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양의 봉사활동은 경력만큼이나 특이하다. 김양은 매일 다양한 자료를 영문으로 컴퓨터에 입력해 복지관에 전자우편(이메일)으로 보낸다. 김양이 입력한 영문 자료는 일정한 과정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활용하게 된다. 거의 매일 조금씩 해온 봉사활동 시간도 쌓여 총 350여시간에 달한다. 이에 대해 김양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익힌 영문타자 실력을 나보다 어려운 여건의 이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고 한다. 김양은 박사과정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0살 때까지 9년을 생활했다. 그러나 미국생활 중에도 김양 가족은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킨 덕분에 귀국 후 국내 적응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한다. NGO 활동가로 세계무대를 누비는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김양의 모습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2005-05-22
- 독도 등 5개 지역 건강보험료 경감 보건복지부는 20일 신규가입자가 발생한 경상북도 독도 등 2개 도서지역 건강보험료를 50% 경감하는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복지부 고시에 따르면 인구감소로 대중교통이 축소된 강원도 인제 미산1리 5개 벽지지역도 건보료 경감대상 지역에 포함돼 모두 7개 도서·벽지지역 503명이 오는 7월부터 혜택을 받게 됐다. 이 가운데는 독도 경비대원 3명이 속해 있다. 이들 지역과 달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설치됐거나 도로가 개설되어 대중교통여건이 개선된 전남 목포 고하도 등 43개 지역이 건보료 경감대상 지역에서 제외됐다. 전북 임실군 용동은 섬진댐 건설로 새로운 도로가 개설돼 벽지지역에서 삭제됐다. 43개 지역 주민 499명은 도서·벽지지역 보험료 경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다만 지역가입자의 경우, 농어촌지역 경감대상으로 최소 22%(농어민의 경우 40%)의 보험료 경감은 계속 지원받을 수 있다. 복지부는 도서지역의 경우 정기여객선 운항소요시간 및 횟수, 지역내 의료시설 유무로, 벽지지역은 대중 교통수단 이용지점까지 거리 및 편수, 병원급 의료시설까지의 대중교통 소요시간 등을 경감대상 지역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200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