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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 똑소리나는 귀농귀촌] 귀농귀촌, 어떻게 준비할까?유미예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우리는 은연중에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을까'란 말을 쉽게 한다. 그만큼 귀농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귀농은 이민 가는 것 보다 어렵다. 실제로 무작정 귀농 하였다가 실패한 이들도 많다. 현재 우리 사회의 귀농 현상은 인구구조의 변화, 웰빙 트렌드, 농업에서 블루오션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흐름이 합세한 현상이라 한다. 하지만 귀농귀촌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생활양식, 일, 환경적인 측면 등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동반하는 결정이므로 철저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똑소리나는 귀농귀촌'은 실제 귀농을 준비하고 있거나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이다. 15인의 시골생활 정착기이 책은 귀농 준비에서 귀농귀촌 사례, 귀농 관련 정보와 Q&A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귀농의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는 1장은 귀농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를 세심하게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도시적 사고로 자기 땅에 영역표시를 한다고 말뚝을 박거나 하는 행동은 지역주민들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성공 귀농귀촌 사례로 소개된 15인의 정착기 중 영월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한 귀농인은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농해서 여러 위기를 겪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농사를 하며 흘리는 땀방울과 수확된 포도송이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농사도, 요리도 모르던 그의 부인도 지금은 재래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장아찌와 효소 등 건강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또한 그의 세 아이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여 그들이 쓰던 책상, 걸상에서 배움을 익히고 앎의 세상을 열어 간다. 그 밖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개인의 성공보다 마을 공동체의 내일을 함께 모색하며 전통장류를 만드는 귀농인, 귀농으로의 정착은 실패했지만 영농조합법인의 대표이사가 되어 귀촌에 성공한 귀촌인, 나이 마흔이 넘어도 '새댁'으로 불리었다는 귀농인 등 15인의 시골생활 정착기가 실려 있다. 귀농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관련 정책이나 관련기관, 귀농 교육, 농가주택 신축과 농지 구입 등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또한 농촌 전문가들이 소개하는 귀농생활의 유용한 팁 등도 알려준다. 농촌의 현실을 담은 귀농 매뉴얼한 귀농인의 말처럼 농촌에 오면 누구나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귀농을 '시골살이' 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와서 농사를 짓든 전원생활을 하든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내면 그것이 귀농귀촌이 아니겠는가" 라는 책속 내용처럼 마음먹으면 귀농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없앨 수 있다. 이제는 귀농도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만큼 지원 받을 수 있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책이 성공적인 귀농귀촌 생활로 발걸음을 내딛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고래미디어 / 권경미, 김부성 지음유미예 국립중앙도서관 사서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
- 박정희청와대 보면 ‘박근혜청와대’ 보인다? 비서실장 지낸 김정렴의 1997년 회고록 주목청와대 축소·책임장관제·가신 배제 등 서술박 당선인 벤치마킹 가능성 관심김정렴(90)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 1997년 박정희시대를 기록한 '아, 박정희'를 펴냈다. "박 대통령 시책의 공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절실하다"며 낸 책이다. 책 내용의 진위여부를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기장' 안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박근혜시대를 점칠 수 있는 신빙성 높은 잣대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 내용 가운데 박정희청와대의 역할과 활동을 중심으로 박근혜청와대를 전망해봤다. ◆전문성 보완 위한 특보제 = 김 전 비서실장은 책의 1장과 2장에서 자신의 임명과 청와대 비서실 운용에 대해 기술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10월 3선개헌안 통과 직후 개각을 단행했다. 당시는 6·25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로 불리던 때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상공부장관이던 김 전 비서실장에게 "본인은 국방과 안보외교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경제에 눈돌릴 여유가 없으니 비서실장이 경제문제를 대신 잘 챙겨달라"며 임명장을 줬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역할분담을 한 대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9년3개월간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 전 대통령 통치기간(18년5개월)의 절반에 달하는 기간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번 일을 맡기면 충분히 시간을 주는 스타일이었다.김 전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동의 아래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과 위상을 변화시켰다. 우선 청와대 비서실을 부처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닌 '서비스'하는 조직으로 바꾸려했다. "부처의 애로사항 해결 및 부처간 윤활유 역할에 주력" "총리에 능동적으로 협조" "비서실장은 경제부총리를 적극 지원" 등으로 표현됐다. 김 전 비서실장이 상공부장관 시절 청와대 비서실의 개입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었던 기억을 반영한 대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규모와 위상도 대폭 줄였다. △수석 1명과 비서관 10명 감원 △수석을 장·차관급에서 차관으로 낮춰 임명 △공무원 부처복귀 때 특진 금지 △행정관 최소화(9년간 청와대 정원 유지) △명함 금지를 실시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실무화·정예화를 통해 호가호위를 막고 일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 한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특보제도 활용했다. 국내외 정치, 문화, 교육, 경제, 사회 전문가를 특보로 기용해 그들의 전문성을 국정에 반영했다. 청와대에서 가신은 배제됐다. 박 전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있는 비서실 직원은 두세명에 불과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가신들은 하나도 없었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주장했다.대통령이 여론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창구는 강화됐다. 학계와 언론계 중진들로 이뤄진 '수요회'는 수시로 모여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할 쓴소리를 쏟아냈다. 수요회에서 '남북대화 촉진과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적십자회담 제의' 같은 아이디어가 건의됐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전했다.김 전 비서실장은 개각에 대한 기억도 되살렸다. "개각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내무·법무·국방과 무임소장관을 제외한 각 부처 장관에 대해 나에게 복수로 물색해 보라는 분부가 있어서"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장관임명 권한을 비서실과 나눴다는 얘기다. 김 전 비서실장은 개각논의 과정에서 민정수석을 배제했다. "경쟁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정보와 첩보가 홍수처럼 밀려들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장관을 임명할 때는 "출신도별 안배도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고 김 전 비서실장은 전했다.박 전 대통령은 장관에게 차관이하 인사권을 일임했다고 한다. "과장 이상 차관까지의 발탁·승진의 인사권을 장관에게 일임했기 때문에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라는 폐단은 일어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대통령 면담일정은 대통령 본인에게 맡겨 '인의 장막' 논란을 원천차단했다. 비서실이 대통령 일정에 개입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을 없앤 것이다. 대통령 공식일정에는 비서실장이 원칙적으로 배석했다. ◆일부는 역행 우려도 = 박 당선인은 아버지시대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측 인사는 "김 전 비서실장이 서술한 박정희시대 청와대와 국정운영은 (박 당선인에겐)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박 당선인이 대선 직후 내놓은 국정운영 방향에선 박정희시대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 규모를 줄였다. 기획관 6명과 비서관 10명이 감소됐다. 행정관 30~40명도 감축될 전망이다. 박 당선인이 꾸렸던 캠프나 인수위는 명함을 만들지 않았다. 책임장관제도 거론된다. 박 당선인은 "국무총리와 부처장관이 책임있게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묘사한 △청와대 위상 축소 △특보제 도입·여론청취 활성화 △개각권한 분할 △출신지역 안배 △장관에 인사권 부여 △가신그룹 배제 △공식일정에 비서실장 배석 등을 벤치마킹할 지는 미지수다. 아직 벤치마킹 움직임이 보이질 않거나 일부 역행하는 듯한 모습도 비쳐 우려를 사기도 한다.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12
- 화성시문화재단 꿈나무안심학교 신입생 모집 화성시문화재단은 2013년 꿈나무안심학교 제5기 신입생을 모집한다. 꿈나무안심학교는 맞벌이, 저소득층 가정 자녀의 방과 후 돌봄과 교과학습 등을 실시하는 경기도 최초 학교 밖 보육·교육이다. 8일까지, 화성시 관내 맞벌이가정 및 저소득층 가정 초등1~6학년을 대상으로 모집 받는다. 맞벌이가정은 월 교육비 8만원, 차상위계층, 저소득층 가정 등은 전액 무료다. 문의 031-267-8761~3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9
- 이근철의 ‘효과적인 영어학습법’ 무료특강 수원시평생학습관은 영어교육의 허와 실을 파헤치고, 내게 적합한 영어학습법을 찾아볼 수 있는 이근철의 ‘효과적인 영어학습법’ 무료특강을 준비했다. 15일(금) 오후4~6시 학습관에서 이근철영어문화연구소 이근철 소장의 강의로 진행된다. 홈페이지에서 접수받는다.문의 070-4477-2344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9
- 엄마표 영어학습의 성공 길라잡이 ‘귀가 열려야 말문이 터진다.“ ”1만 시간을 채워라, 최소한 3천 시간을 투자해라.“ ”영어책을 매일 읽어줘라.“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여줘라.“ ”영어는 공부가 아니다. 모국어 습득 방식으로 익혀라.“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라면 귀가 따갑게 듣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잘한다는 학원을 알아보고 아이에게 숙제를 들이밀고 결국은 영어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이야기. ”엄마표로 했더니 되더라.“ 정말 될까?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엄마표 영어학습의 성공 길라잡이로 떠오른 ’아이보람‘ 춘천센터를 찾아가봤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영어 환경 봄내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 잡은 ‘아이보람’ 춘천센터. 넓은 센터 내에는 영어 DVD와 영어 책만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 학원도 아니고,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증이 앞섰다. “춘천에서는 아직 엄마표 영어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학원인 줄 알고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인터뷰를 시작한 김선영 원장은 “쉽게 말해 엄마들에게 효과적인 영어 교육법을 알려주고 각 가정으로 돌아가 모국어식 영어 환경을 조성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센터를 소개를 시작했다. 엄마표 영어교육법이란 영여 교육에 필요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내용 이해하기, 문법, 영어적 사고력 등의 모든 요소를 우리말 배우는 과정과 동일하게 진행하는 교육법. 이미 많은 언론에서 그 효과를 선보이면서 전문사이트나 서적 등을 통해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도 호불호가 확실히 나뉜다. 한글 책과 다름없이 영어 원서를 읽어내고 원어민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생각처럼 안따라온다’며 중간에 포기하는 엄마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이보람’ 춘천센터 김원장은 “엄마표 영어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효과를 의심하는 분들은 없어요. 단지 엄마가 구체적인 정보를 다양하게 얻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또 무엇보다 꾸준히 해낸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곳이 저희 센터인 셈이죠. 실제로 혼자서 엄마표 영어를 하다가 힘들다며 찾아오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체계적인 커리큘럼 ‘아이보람’에서는 매주 한 번씩 엄마들의 모임을 갖는다. 아이보람의 단계별 커리큘럼에 맞춰 피드백을 받고 정보를 얻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는지, 아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기적절하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교재부터 노하우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도를 확인받고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도 얻어간다. 물론 모든 단계에서 원어 DVD와 오디오, 컴퓨터 프로그램, 원서 등으로 아이들에게 영어 환경을 조성해 주기 때문에 영어를 모르는 엄마도 문제없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재료와 자료들은 아이들의 영어 습득 진도에 따라 단계별로 제공된다. 단계마다 테스트도 진행되며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얻어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김원장 역시 자신의 두 아들의 영어 교육을 ‘아이보람’으로 진행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어가네요. 저도 시작할 때는 참 의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아이 두 명의 만만치 않은 학원비를 아껴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큰 아들 2학년 때 시작하면서 3년만 해보고 안되면 그 때 학원 보내도 크게 늦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2013-02-08
- NEAT 대비 전문 ‘우태어학원’ 춘천 입성! 교육과학기술부가 2018학년도 대입수능시험부터 영어영역을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National English Ability Test)’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건의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NEAT가 교육현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수능 영어 대신 NEAT가 대학입시의 필수요소가 된다. 이미 지난해 전국 7개 대학이 NEAT 성적을 수시모집에 정식으로 반영했고, 올해는 이 숫자가 전문대를 포함해 36개로 늘었다. 듣기·읽기·말하기·쓰기 교육을 똑같이 중요시한다는 NEAT 체제에 대한 대비는 수능 영어와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학부모들에게 NEAT 대비 전문 교육을 표방하고 나선 우태어학원만의 해법을 소개한다. 바른 영어교육에 대한 분명한 철학, NEAT 3월 4일 개원을 앞둔 우태어학원(원장 김우태)은 설명회와 학부모 간담회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김 원장은 대치, 개포, 분당 등 대한민국 교육 1번지로 불리는 곳에서 강의와 어학원 경영을 통해 20년 영어교육의 노하우를 펼쳐온 장본인이다. 이 학원의 기본 커리큘럼은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즉 NEAT 대비이다.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9단계의 레벨로 나눠 NEAT 대비 전문교재로 수업을 진행한다. 가장 높은 단계는 NEAT 2급 고득점을 노릴 수 있는 고등학교 2~3학년 수준. 차분하게 진행하면서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능히 소화해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우리의 영어교육은 이론에 치우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필기고사 형식의 영어시험에서 탈피해 입시에서도 NEAT에 적합한 교육방식인 말하기, 쓰기, 듣기가 강화되어야 영어교육 자체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지론. “저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나가야할 길이 NEAT와 부합된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은 시작 단계라 부분적으로 혼선도 있지만 방법적으로도 보완이 될 겁니다.” 정작 유치원 때부터 듣고 말하는 질 좋은 교육을 받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실질적인 영어에서 밀려나는 것이 시험지로 평가되는 영어교육 자체의 문제라는 판단. 아울러 NEAT가 지향하는 4가지 영역의 고른 발전만이 답이라고 강조한다. 목표를 세운 후엔 절대 타협해선 안 돼 말하기, 쓰기, 듣기가 강화된 영어교육을 위해 김 원장은 자신이 직접 맡은 강의 외에도 한국인 강사와 더불어 각각 영국과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2명의 교포 강사를 포진시켰다. “외국인 강사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제대로 된 교육, 그리고 시험에 응함에 있어 특정 학생이 어디가 약하니 무엇을 더 강조해야 할지 꿰뚫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아이들의 영어실력 향상에 대한 욕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한국어와 영어 2개를 동시에 모국어로 가진 능수능란한 강사진에게선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김 원장의 세심함과 경륜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평상시 카리스마 넘치는 김 원장이지만 아이들에게 마냥 엄하지만은 않다. “목표치에는 반드시 따라와 줘야 한다는 철칙이 있어요. 간혹 스파르타식이라는 이미지로도 비치지만 아이들이 무계획적으로 느슨하게 공부한다는 걸 용납할 수는 없지요. 우리학원에서 목표를 세운 후엔 절대 그 누구와도 타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원설명회 3회 예정, 매일 학부모 간담회 진행 중 오는 2월 14일과 15일, 3월 4일 총 3회에 걸쳐 개원 설명회(매회 오전 11시)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는 레벨테스트 예약도 받는다. NEAT라는 것이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이해도 측면에서도 시험 대비가 가능하고, 또한 영어에 대한 기본이 잡혀있어야 하기에 충분한 사전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NEAT 테스트 특성상 단순히 종이 시험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한 말하기 수준 측정도 실시한다. 또한 김 원장은 현재 학부모 간담회(월~금, 매일 오후 2~3시, 사전예약제)를 진행 중이다. 아이들의 영어공부 방법, 습관, 앞으로의 대처법 등 자신이 20년 동안 영어교육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춘천 학부모들에게 오픈하는 기회다. 꼭 학원 수강생이 아니더라도 지역 학생들의 영어교육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김 원장의 바람으로 계획되었다. 문의 264-0533김연주 리포터(fa1003@naver.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
- [내일시론] 하지도 않은 청문회 논란 (문창재) 박근혜정부 출범이 2주일 남짓 남았는데 인적구성은 윤곽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당장 중요 인사구상이 발표되어도 청문회 절차에 20일이 넘게 걸리게 되어 순조로운 출범이 어렵다. 기다리다 못해 여당에서도 조바심이 터져 나온다. 대통령 당선인이 사람은 내놓지 않고 가혹한 청문회 타령만 되풀이한다는 불만이다.박 당선인은 엊그제 새누리당 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불만을 또 쏟아놓았다. "인사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상처내지 않고 능력과 소신을 밝힐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 묻어났다.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특별한 뜻을 담긴 것으로 들렸다.김용준 총리 후보가 언론검증 단계에서 자진사퇴한 뒤 새누리당 의원들과 대면한 '식사정치' 모임에서 그 말이 몇 번 되풀이되었다. 비공식 자리에서 하던 말이 공개석상에서 반복되어 제도개혁 논의로 번지자, 관련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인사청문회는 열린 일이 없는데 가혹한 청문회 타령이 앞서니 앞뒤가 바뀐 셈이다.언론검증 넘지 못하면 본무대는 가보나 마나사퇴한 김 총리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간 일이 없다.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갖가지 의혹에 시달리던 후보자 본인의 사전선택이었다. 그러므로 인사청문회가 개인 인격에 상처를 낸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청문회를 두고 한 말이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박 당선인 측과 협의했다지만 그를 지명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따라서 "가혹한 청문회 때문에 훌륭한 인재가 공직을 꺼린다"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이 후보자 지명이 당선인 작품이라면, 그런 불평을 할 계제가 아니다. 김 총리후보 지명까지 아우르면 그런 사람들을 선택한 인사권자 책임이 먼저다. 이동흡 후보자의 경우 언론에 제기된 의혹이 20가지가 넘었다. 청문회 역사상 그렇게 많은 의혹이 드러난 사례는 없었다. 김 후보자의 경우도 '단골'이라 불리는 의혹들이 망라되었다.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해서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일에 그토록 의혹이 많은 사람을 고른 것은 우선 인사권자의 허물이다. 국민에게 미안한 뜻을 밝히고 나서 "검증을 좀 누그러뜨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순서다. 국민이 보기에 자격이 없는 사람을 쓰지 못 하게 되었다고 인사검증을 탓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청문절차가 필요한 인사는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검증업무를 맡은 정부기관이나 자료를 충분히 활용해 훑고 또 훑어 내놓아야 한다. 언론검증 과정을 넘지 못 했다면 본 무대는 가보나마나 아닌가. 언론사 검증은 너무 기초적이고 표피적이다. 공개된 재산신고 자료나 학력 경력 등을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경로로 취재해 제기하는 의문 정도다.그러나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정부기관은 더 내밀하고 구체적인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인사위원회나 경찰 국정원 등의 존안자료만 활용해도 웬만한 결격사유는 걸러진다. 그런데도 결격 있는 사람을 골랐다면 인사권자 말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당선인 의중을 받들듯 새누리당은 후보자 도덕성에 관한 사항은 청문회에서 비공개로 하고, 능력 자질 비전 등에 대한 것만 공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도덕성 검증 비공개'는 청문회 하지 말자는 얘기그러나 미국은 우리보다 더 가혹하다. 공직 후보로 지명되면 백악관 인사국과 연방수사국(FBI) 공직자윤리위원회 국세청 등 관계기관이 샅샅이 도덕성을 검증한다. 본인과 가족에 관한 검증사항이 61항목, 직업 및 교육배경 61항목, 세금납부 32항목, 전과 및 소송 35항목, 교통범칙금 등 경범 34항목 등, 무려 233개 항목을 훑어보고 흠결이 큰 사람은 지명에서 제외한다. 비리의혹 있는 후보가 지명될 수 없는 구조다. 그러고도 청문절차가 무려 3개월이다.'아니면 말고' 식의 질문, 답변기회를 주지 않는 일방적인 다그치기 등 청문회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것은 청문회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국가대사를 맡을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은 아무리 철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고위공직자 자격이 없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
- 춘천캠프페이지 주말농장 “봄내뜨락” 분양외 제목: 캠프페이지 주말농장 “봄내뜨락” 분양춘천시는 캠프페이지 개발공사 전 부지 재활용계획에 따라 봄 파종기에 맞춰 시민 주말농장을 개방키로 하고 사전 분양에 들어간다. 시민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농사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것. 주말농장 조성지는 금강로 춘천역 방향 왼편 격납고에서 근화동사무소 쪽 담장을 낀 7천6백여㎡이다. 개장 시기는 봄철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나 4월 중하순이 예상되고 있으며 11월 말까지 이용할 수 있다. 분양면적은 개인은 33㎡단위로 150명, 단체는 165㎡ 15개 자리다. 개인 분양은 춘천시민, 단체분양(10인 이상)은 각 단체, 초등학교, 어린이집 등이 대상이다. 개인, 단체 모두 분양만 받고 실제 농사를 짓지 않아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전 보증금 납부제로 운영한다. 33㎡ 당 10만원을 받아 5만원은 사용료로 받고, 5만원은 나중에 돌려준다. 다만, 불성실 경작자에 대해서는 5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대리경작 비용으로 쓴다. 신청은 18일~ 22일까지 춘천시 홈페이지 온라인 접수 또는 농정과 방문 제출. 신청 초과 시 컴퓨터 공개 추첨. 분양자 3월6일 춘천시홈페이지에 게시. 문의: 250-3371 제목: 찾아가는 재활용체험교실 운영 춘천시는 지난해 시작한 재활용체험교실이 어린이들의 높은 호응을 얻은데 따라 3월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상은 지역 내 유치원, 어린이집(6~7세기준)이다. 1회 교육인원은 약30~50명이다. 10분정도 환경 애니메이션을 보고나서 30여분동안 놀이식으로 실제 분리배출을 해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사전 신청을 받아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아간다. 오는 22일까지 춘천시 청소행정과에 방문, 우편, 팩스로 신청하면 된다. 40기 선착순 마감.문의: 250-3155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
- [신문로] 실험의 현장, 베트남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연초에 최초의 베트남 출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식 업무는 중부 해안지대에 있는 다낭외국어대학과 쾅남성협동조합연맹을 방문해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과 교류 협정을 맺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협동조합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어 사회를 관찰하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도입하고 대외개방을 추진하는 실험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행운이었다. 베트남으로 가는 여객기에는 아이를 동반한 국제결혼 가족이 많았다. 엄마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통로를 뛰어 다니는 아이를 말리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에게 한국어만 쓰고 있었다. 다낭에 도착해보니 한국의 4월 말이나 5월 초 정도의 기온이었다. 우기라는데 이슬비가 잠시 내리다가 멎는 정도여서 활동에 큰 지장은 없었다. 시가지는 깔끔했고 호텔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잘 통했다. 전력 사정도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한국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한국어과의 입학 정원은 100명이었다. 학과 연구실의 칠판을 보니 한국 대학의 교수, 학생과 교류하는 일정이 12월 중순부터 가득 차 있었다. 호치민의 흉상을 모신 회의실에서 교류 협정을 마치고 시내를 둘러보니 한국계 대형 마트와 빵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한국 기업의 공장과 협력업체가 들어서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주력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모두 일본제였다. 바닷가 언덕에 있는 영은사(靈隱寺)라는 절에는 2010년에 세운 10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백색의 관음보살이 태풍을 막는 영험을 발휘하고 있었다. 1975년에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이 되었지만 수천 년 내려온 민간신앙은 건재하다. 사회주의 견지하며 대외개방 추진쾅남성의 성도인 탐키로 가는 도중에 소가 논을 갈고 농민들이 허리를 굽혀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가끔 경운기도 보였다. 학교와 병원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원조한 대형 병원도 있었다. 농가는 모두 깔끔한 양옥으로 개량되어 있었다. 협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소탈하고 헌신적인 농촌운동가였다. 호치민의 지도 하에 본래 항불 운동 조직으로 출발하였다는 협동조합은 농업, 제조업, 무역, 전력, 의료, 관광 등 모든 산업과 생활 편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었다. 등나무 공예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협동조합에 가보니 덴마크가 제공한 폐수 처리시설을 가동하고 있었다. 노동자 월급이 170달러 수준이니 개성공단의 2배였다. 비료와 종자의 확보, 농업용수 관리와 같은 영농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농협은 공예품 원료인 등나무 가공 공장, 벽돌공장, 정수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약 3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소수력발전소 협동조합은 생수와 농업용수를 판매하고 댐 아래 계곡을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직기 120대를 가동하는 면방직 협동조합에서는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민간 공장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호소를 들었다. 즉,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접촉하는 경계 지점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한국 해병대가 주둔한 격전지였던 쾅남성은 독일, 일본, 프랑스,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개발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지역이다. 즉, 웬만한 지원 프로그램은 다른 외국팀이 모두 시도했을 것이므로 늦게 참여한 한국팀은 참신한 발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과거사 직시하는 고통 피할 수 없어물론 컴퓨터 사용법 교육이나 중간 이윤을 배제한 공정무역과 공정여행에 대해서는 베트남측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사회가 워낙 탄탄하게 조직화되어 있고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므로 구태의연하게 도움만 제공하는 지원은 곧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 뻔하다. 필자는 오히려 한국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이질적인 사회체제를 체험해 보고 전쟁이 남긴 불행한 역사의 흔적도 찾아보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설픈 교류 행사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하던 베트남 교수도 나흘을 같이 보내고 나서야 이 지역에는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많다는 얘기를 꺼냈다. 진정한 국제교류가 이루어지려면 과거사를 직시하는 고통을 회피할 수 없는 법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
- [주말을 여는 책 | ‘마르크스의 사랑’] 궁핍 속에 피어난 따사로운 가족애 윤재석 칼럼니스트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저작을 보면서 이따금 '그들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러다 그들이 표방한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과 달리 표리부동한 삶의 궤적을 발견하곤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뇌물 주고받기의 명수로 단기간에 차장검사에서 대법관에 오를 만큼 명예욕의 화신이었던 프란시스 베이컨,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했던 바람둥이 볼테르, 나폴레옹의 정복욕을 상찬한 간통남 헤겔. 그 정도는 약과다. 자연중심의 교육이념을 설파한 교육소설 '에밀'을 비롯,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 수다한 걸작을 저술했으면서도, 난잡한 성생활과 아이 다섯을 고아원으로 보낸 장 자크 루소에 이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이자 '자본(Das Kapital)'의 저자로 온 세상을 흔들었던 카를 마르크스의 삶은 어땠나? 그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저작이 번역돼 나왔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인 피에르 뒤랑이 1970년 발표한 'La vie amoureuse de Karl Mark'이 그것.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의 삶은, 거의 전 생애가 지독한 궁핍, 걸핏하면 이삿짐을 싸야 했던 유랑, 그리고 이산(離散)을 거듭하는 신산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내에겐 평생의 연인이자 동지요, 자녀들에겐 따사롭고 정겨운 아빠였다. 책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공산당 선언의 사자후를 토한 혁명가답지 않게 열정적인 남편이자 자상했던 아빠로 일관했던 '자연인 마르크스'를 들여다 본 전기다. 그래서 책 제목은 원제인 '마르크스의 사랑의 삶'이 더 적확할 것같다.친가, 외가를 모두 유대교 랍비 가문으로 둔 평민 카를은, 12세 때 고향 트리어의 귀족 루드비히 폰 베스트팔렌의 딸 예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예니는 카를 누나의 친구로 네 살 연상이었다. 그런데 재색을 겸비했다. 당연히 사교계에서 청년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두 사람에겐 신분 차이도, 나이 차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만이 둘을 감쌌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김나지움을 졸업한 카를이 본과 베를린으로 잇따라 유학을 감에 따라 둘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둘 사이를 더욱 단단히 묶는 계기가 됐다. 1835년 카를과 예니는 비밀 약혼을 했다.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갔다. 카를이 베를린대 재학 중이던 1836년 한해에만 무려 3권의 연시집(戀詩集)을 보낼 정도였다. 예니 또한 못지않았다. 카를에 대한 예니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서신의 일부.'오 카를, 당신의 그처럼 아름다운, 그처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그처럼 정열적인 사랑, 당신의 그처럼 아름다운 고백이 내 마음을 졸이게 해요. (하략)'하지만 1837년 카를이 예니와의 결혼 의사를 밝히자 문제가 생긴다. 베스트팔렌 가문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치게 된 것. 예니는 낙담하여 앓아눕고 온천장으로 장기 요양까지 간다. 카를은 예니에게 역사를 공부하라고 주문하고 예니는 카를의 주문에 성실히 따른다.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1841년)를 딴 카를은 본에 정착해 반정부지인 '라인신문'이 폐간될 때까지 편집장으로 일한다. 이때 마르크스주의의 공동설계자이자 아낌없는 후원자가 될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나는 행운을 잡는다.드디어 1843년 6월 카를과 예니는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속물주의와 질식하게 하는 반동,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을 졸렬하게 탄압하는 프로이센 당국의 검열에 신물이 난 카를은, 그해 10월 '독불연보' 발행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간다. 평생을 이어갈 유랑의 시작이었다.이듬해 사랑의 첫 결실(첫딸 예니-엄마와 이름이 같다)이 태어났지만 기쁨도 잠시, 마르크스 가족은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프로이센 왕의 요구로 프랑스 정부가 카를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것.벨기에에 입국하면서 카를은 어떤 글도 신문에 기고하지 않겠다고 서약했고, 경찰의 감시 또한 삼엄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을 뻔했지만 오래지 않아 엥겔스가 브뤼셀에 합류함으로써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예니는 둘째딸 라우라, 첫아들 에드가르를 연년생으로 낳으면서도 카를의 충직한 비서였다. 악필인 카를의 '공산당 선언' 텍스트를 정서해 인쇄소에 넘김으로써 1848년 2월 영국 런던에서 햇빛을 보게 했다.공산당 선언이 세상에 나온 직후 파리에선 2월 혁명이 일어났다. 브뤼셀에서도 노동자 봉기가 일어났다. 벨기에 정부는 카를 가족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파리의 혁명 상황을 몸으로 체감하던 카를 가족과 엥겔스는 조국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봉기에 합류하기 위해 귀국, 쾰른에서 '신라인신문'을 창간한다. 이 신문 또한 1년 만에 폐간되고, 카를 가족은 다시 파리로 갔으나 프랑스 정부가 그들을 벽지로 유배하려 하자, 영국 런던에 정착한다.런던에서의 삶은, 엥겔스의 지속적인 후원에도 불구하고 습관화된 궁핍의 표본이었다. 그것은 자녀의 연이은 사망으로 입증된다. 1849년에 태어난 차남 귀도가 돌 지나 숨지고, 1851년 태어난 셋째딸 프란치스카 역시 1년 만에 사망한다. 장남 에드가르는 9세 되던 1855년에 숨졌다.그런 불행의 연속 속에서도 카를은 남은 자녀들에게 끔찍한 사랑을 쏟았다. 카를 부부는 아이들에게 전인교육을 시켜주려 애썼다. 문학과 고대사에 흥미를 가진 맏딸 예니에겐 무용과 음악을 배우도록 했고, 시 쓰기를 좋아하고 어학 실력이 출중하며 요리와 스포츠에 자질이 있던 둘째딸 라우라에겐 마술(馬術)을 가르쳤다. 막내딸 엘리아너에겐 아이가 갖고 있는 문학성을 키워 주었다.심지어 라우라가 성인이 돼 쿠바 출신 의대생과 연애할 때, 사위 후보생에게 결혼과 관련해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설파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부성애를 발휘하기도 했다.카를의 이 같은 자녀 사랑은 훗날 그대로 그에게 되돌아온다. 예니는 제1인터내셔널 결성 당시 카를을 도왔고, '자본'을 집필할 때도 신문 스크랩과 노트를 준비하고 각주를 다는 등 비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라우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한편, 이들의 문헌을 출판하는 일에도 관여했다. 엘리아너 역시 '자본'의 영역본 출판 때 책임편집을 맡았고, 엥겔스 사후 그가 '뉴욕트리뷴'에 실었던 논문을 모아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이라는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추방과 망명으로 궁핍 속 유랑의 삶을 거듭했던 '불온한' 사상가 카를. 하지만 그 속에서 꽃핀 단란한 부부애와 따사로운 가족애는 그의 삶이 결코 불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두레 / 피에르 뒤랑 지음 / 신대범 옮김 / 1만3000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3-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