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늘 푸르른 소나무처럼 내일신문이 창간된 지 어느 듯 16년이 흘렀습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내일신문도 언제나 변함없는 신문이고자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 스며든 소나무처럼 내일신문도 독자 속에 그렇게 녹아들고자 했습니다. 세월을 견뎌내고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꿋꿋이 서 있는 저 금강송처럼 내일신문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꿋꿋하게 서 있겠습니다. 그림은 현석 이호신 화백이 그린 ‘소광리 금강송’. 한지에 수묵담채. 87×231㎝.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9
- 이주의 추천 산 - 인제 방태산 높이 : 1,444m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상남면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과 상남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1,444m로, 깃대봉(1,436m), 구룡덕봉(1,388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지의 산이다. 골짜기와 폭포가 많아 철마다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다. 방태산은 여름철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수림과 차가운 계곡물 때문에 계곡 피서지로 적격이고 가을이면 방태산의 비경인 적가리골과 골안골, 용늪골, 개인동계곡은 단풍이 만발한다. 정상에 서면 구룡덕봉(1388), 연석산(1321), 응복산(1156), 가칠봉(1240)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형 암반과 폭포(이폭포와 저폭포), 그리고 소 등은 설악산 가야동계곡과 견줄 만한 뛰어난 풍광을 지녔다. 맑은 내린천이 동남녘의 산자락을 씻어 내리는 3둔4가리(살둔 월둔 달둔 연가리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가 소재한 비경의 심산인 방태산은 오랜 세월 세상에 그 모습을 숨겨왔으나 근래에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이 드문드문 찾고 있다. 산의 모양이 주걱처럼 생겼다고 해서 주걱봉이라고 부른다. 몇몇 지도에서 방태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주걱봉 서쪽의 봉우리가 방태산이다. 산행은 방동리나 미산리에서 시작한다. 방동리에서 시작하여 적가리골, 지당골을 지나 능선을 타면 삼거리에 닿는다. 적가리골 중류에는 높이 10m의 이폭포와 3m의 저폭포가 있다. 삼거리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주걱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삼거리에서 다시 북쪽 능선을 타면 대골에 이르며, 휴양림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13㎞ 거리로,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미산리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승두촌과 용늪골을 지나 깃대봉에 오르며 배달은석(1416m)을 거쳐 방태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개인약수로 내려와서 대개인동을 지나 승두촌으로 하산하면 된다. 약 19㎞ 거리로, 7시간 정도 소요된다. 구룡덕봉을 거쳐 오르는 코스도 있다. 개인약수에서 시작하여 모덤터를 지나 구룡덕봉에 오르고, 능선을 따라 정상에 도착한다. 하산은 구룡덕재를 지나 조경동으로 내려오는데, 8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방동리에는 1670년 심마니가 발견하였다는 방동약수가 있고, 야영장과 취사장 등의 시설을 갖춘 자연휴양림이 있다. ▶등산코스 ⓛ휴양림주차장 - 임도 - 공터 - 삼거리 - 방태산 - 삼거리 - 공터 - 임도 - 휴양림주차장(약 4시간 30분 소요) ②휴양림주차장 - 임도 - 공터 - 산림체험로이정표에서 좌회전 - 주능선삼거리(매봉령이정표) - 구룡덕봉 - 삼거리 - 방태산 - 삼거리 - 공터 - 임도 - 휴양림주차장(약 6시간 소요) ③미산리 - 용늪골 - 깃대봉(1435m) - 배달은석 - 정상(주억봉1443.7m) - 지당골 - 적가리골 - 방태산자연휴양림 (산행거리13Km. 6시간 소요) ▶문의 : 033-463-8169(인제국유림관리소) 서경숙 리포터 skiss72@hanmail.net 산행 tip 등산의 효과 (제목) 산에 오르면 엔돌핀 ‘쭉쭉’ 건강은 ‘쑥쑥’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등산은 비용이 저렴하면서 최대의 건강증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등산은 구체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등산의 운동 효과 주 3~4회·1년 간 하면 심박출량 12% 증가 등산은 평지를 빠르게 걷는 속보, 가볍게 뛰는 조깅과는 다르게 자연적인 높낮이에 맞춰 장시간 걷는 유산소운동이다. 운동 효과는 크게 심폐기능 향상, 근력강화, 정신적 만족감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심폐기능 향상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등산 초보자 38명을 대상으로 1주일에 3~4회(한 번에 2시간 이내) 등산을 6~18개월 시킨 후, 심박출량(심장이 한 번의 박동으로 피를 뿜어내는 양)을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심박출량이 등산 시작 전에 비해 12%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등산을 하면 체중부하로 인해 골격계에 자극을 주어 골밀도를 향상시키며 오르막과 내리막은 근육 강화에 매우 좋다. 특히 최대량의 75% 정도의 힘으로 장시간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근력보다 근지구력 향상효과가 크다.다른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산행 시 분비되는 뇌내 호르몬은 스트레스 해소, 우울증 예방 등에 많은 도움이 된다. 등산한 다음날 혈액 내의 베타 엔돌핀 양을 측정하면 그 전보다 10~20%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운동에 비해 소모되는 열량도 많다. 등산의 시간당 소모 열량은 600~1080㎉로 산보(120~300㎉), 빨리 걷기(360~420㎉), 수영 자유형(360~500㎉), 달리기(870㎉) 등에 앞선다. 한 예로 70㎏인 사람이 1시간 동안 산에 오른다면 약 735㎉를 사용, 1시간에 8~11㎞를 달리는 것과 맞먹는 운동효과를 낸다. 이는 통상적인 걷기(시속 3.2㎞)를 약 3시간 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하는 등산은 물론 건강에 좋지만 큰 운동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운동은 일주일에 최소 3일 이상 해야 비로소 운동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말에만 등산하는 사람들은 주중 3일 이상 한 번에 20~60분씩 달리기 등 비슷한 유산소운동을 해 주어야 등산효과를 제대로 얻을 수 있다. 산행안내 일시 목적지 산악회 연락처 11월1일(일) 양산 천성산 조운산악회 010-4135-6343 11월1일(일) 청송 주왕산 절골 울산풍문산악회 016-8528384 11월1일(일) 무주 적상산 희망산악회 011-887-7911 11월7일(토) 부안 변산반도 쉼터산악회 018-522-4542 11월7일(토) 문경 조령산 울산무룡산악회 010-3550-1133 11월7일(토) 장흥 천관산 한백산사랑산악회 010-4334-8303 11월7일~8일 정읍 내장산 가슴이따뜻한사람들 011-9520-9076 11월8일(일) 봉화 청량산 울산새천년산악회 010-2560-9157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7
- (사)환경과 자치 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인화씨 “에너지 절약하는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해요”16년간 환경활동가로서 묵묵히 환경 보존, 생태 도시 만들기에 전념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뭘까. 강렬함 못지 않은 저력은 꾸준함이다. 십 수년 동안 환경지킴이로서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는 최인화(42)씨를 만났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설기관인 (사)환경과 자치 연구소 책임연구원인 그에게서는 잔잔하고 단아한 인상이지만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일하며 단련된 강한 내공이 느껴졌다.“환경과 자치연구소는 환경운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연구해서 뒷받침하고 지원하는 곳이에요. 활동가 양성, 강연, 지자체의 환경 정책에 대해 긍정적 방향을 제시하는 세미나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일을 해요.”환경공학 전공 후 199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 중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며 전공과 관련한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한 그는 199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환경과 자치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로 육아 문제로 4년간 휴직 한 기간을 빼도 16년째 환경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연산동 제일화학 석면 노동자 문제를 통해 전국적으로 석면문제를 크게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위천 공단 저지 운동, 금정산 골프장 건립 반대 운동 등을 열정적으로 벌여 백지화시켜 내기도 했다.“특히, 1996년 위천공단 저지를 위해 단체의 성격을 총 망라해서 수많은 NGO 단체 회원들이 똘똘 하나로 뭉쳐 한달 내내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땐 정말 힘든 줄도 모르고 신바람 나게 일했어요. 지금 4대강 사업 반대 운동도 너무 중요한 현안인데 정부의 시민단체 탄압도 심하고 시민들의 참여도 저조해 매우 안타까워요.”기후변화 에너지 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 매년 개최해 그는 많은 문제들 중에 특히 온실가스 급증으로 인한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물에 잠기는 나라가 생기는가 하면 지진 태풍 가뭄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최근 10년 새 에너지 소비, 온실가스 증가율이 중국에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 소비에 대해 무감각해져 펑펑 사용하고 있어요. 대형가전제품의 소비를 줄이고, 가까운 거리는 걷고, 제철 우리 먹거리를 먹는 등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해요.”지난 9월 4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린 ‘기후 변화 에너지 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이런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 등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교육할 수 있는 강사 양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기후변화 에너지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를 개최해 오고 있다. 수료생들은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복지관, 학교 방과후 교실, 유치원 등에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엄마의 일 지지해 주는 두 아이와 남편의 사랑이 큰 힘두 아들을 키우면서 NGO 활동가로 오랜 세월 일해 올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일을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었다. 그는 환경단체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생태체험, 캠프 등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줬다. 자연의 변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철마에서 지천에 널린 꽃 보고 새 소리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가슴 아파 할 줄도 알고 자연을 보고 감동할 줄도 아는 감수성을 가졌다.고입을 앞두고 있는 중3년생 아들은 진로를 미처 구체적으로 고민해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엄마에게 “대신 엄마는 다른 많은 걸 가르쳐주고 느끼게 해 주셨잖아요”라며 따뜻한 위안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착한 아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회원이었던 남편도 환경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며 아내의 일을 지지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지금 생태도시 계획 공부를 위해 석사 과정을 밟으며 공부 중이다.“도시가 생태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해요. 도시든 집이든 계획 단계부터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 친환경적으로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요.”지속가능한 생태 도시를 향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2009-10-25
- 축구의 세계 만화로 담아낸 만화가 오일룡 한국 만화역사 100년. 우리나라에 처음 만화가 소개된 지도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의 PC방만큼 많았던 것이 만화책 대여방이었다. 동네 어귀, 지하로 쑥 들어가 있던 만화방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비오는 날 뜨뜻한 아랫목에서 만화책 한 질 쌓아두고 야금야금 읽는 재미’가 학생들의 휴식이자 어른들의 휴가였던 시절이었다. 요즘 텔레비전의 스포츠 채널을 대신했던 ‘스포츠 만화’는 소년과 성인 남성들에게 경기장에 와 있는 듯한 박진감을 안겨주었다.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인 존재로는 중견 만화가인 오일룡씨가 있다. 소위 ‘만화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두루 거치고 4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온 오일룡씨는 한국 만화의 흐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생의 3분의 2를 바쳤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혼자서 터득한 그림 실력, 미국 출판사에 인정받기도 1949년 평양에서 태어난 오일룡씨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충남 대전으로 피란 내려 왔다. 그 때 집에 남았던 3살 터울의 형은 아직도 평양에서 살고 있고,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만났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장남이 되어버린 오화백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접하기 시작한 만화책은 어느새 그의 습작용 교과서가 되어 버렸고, 부모님의 반대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미술 데생, 만화기법을 터득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미국의 유명 출판사로 보낸다. “그 때가 미국 만화책이 얇게 나오던 때였는데, 전 세계에 파견된 미군들이 한번 보고서 버리고 하는 바람에 만화시장이 굉장히 호황을 누리던 때였어요. 만화가가 많이 필요했던 때였죠. 저는 두 군데 출판사에 그림을 보내고서 모두 초청을 받았습니다. , 을 출판한 ‘마벨 코믹스 클럽’과 , 을 그린 ‘내츄럴 코믹스 클럽’입니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을 뿐, 영어도 못하는데 미국 가서 어떻게 만화가를 할까 싶어 포기했지요. 사람은 다 운명에 따라 살게 돼 있는 거죠, 뭐.”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 존재 1968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박광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시작한 그는 로 정식 만화가가 된다. 원래 오일룡 선생의 본명은 ‘오일룡’이 아닌 ‘오선일’이다. 성공하기까지 다양한 분야, 즉 SF, 역사, 순정, 스포츠 만화 등을 시도했고 그 때마다 필명을 바꾸었다. 만화 독자들은 ‘만화가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작품이 실패하면 다른 필명을 만들어 다시 도전했다. 초기 그의 그림체는 미국 만화풍으로 실제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림 솜씨는 훌륭했지만, 주인공이 뚜렷한 특색이 없어 다른 인물에 묻히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인기도 항상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83년 한국청소년대표팀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뤘던 일이었다. 지금만큼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이 쏟아진 이 경기는 그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았다. 오 화백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축구장의 감동을 지면에 그대로 담아내는 ‘축구만화’를 그렸다. , , , , , , , 등 실제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축구경기가 수없이 많은 스토리와 함께 탄생했다. 일산 백석동에 ‘오일룡 프로덕션’이 꾸려지고 98명이나 되는 문하생이 모여 만화를 대량생산해내던 시절이 이 때였다. 이 시기 오 화백의 그림은 훨씬 단순해지고 코믹해진다. 특히 주인공의 코가 뾰족해지면서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되어 독자들이 책장 넘기는 스피드가 빨라졌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과 만화 대본소 등에서 꾸준히 읽혀지는 ‘오일룡 만화’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축구 마니아의 꿈은 이뤄진다 “데뷔하고 15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컷이 많으면 품이 많이 드는데, 제 작품의 특징이 인물과 배경을 실제처럼 세밀하게 그리면서 컷을 많이 집어넣는 거였어요. 열심히 하니깐 중간정도의 인기는 유지했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죠. 그런데, 축구 만화를 그리면서 바로 반응이 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한번 감을 잡고 나서는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는 쉽게 떠올랐어요. 그 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일룡 화백은 축구 마니아다. 십여 년 전 자신이 만화 속에서 꿈꾸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대가 요즈음이다. 세계적인 축구 구단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고 있고,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시절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은 바뀌었다. 대량 생산하여 대본소에 공급하던 체제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다. 기회가 줄수록, 그가 다시 ‘축구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진다. 그의 말처럼, ‘만화가는 타고 나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는 그라운드를 다시 그릴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윈도우즈7 출시로 본 IT 공룡들의 격돌 OS·핸드폰에서 클라우드컴퓨팅까지 … 상대영역 쟁취 위한 전면전 예고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 가히 IT업계 공룡들의 전면전 양상은 이렇게 불러도 크게 틀릴 것 같지 않다. 윈도우즈(Windows)라는 히트작으로 컴퓨터 운영체제(OS)의 지존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검색엔진의 최강자 구글(Google), 독창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입지를 강화해온 애플(Apple). 서로 넘볼 수 없을만큼 영역구분이 명확해 보이던 이들 세 공룡이 상대의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있다. 22일 MS의 윈도우즈7 출시에 맞춰 IT업계 최고 강자들의 영역다툼을 재조명해 보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22일 야심작 ‘윈도우즈7’을 내놓는다. 비스타의 굴욕을 극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해 온 결과다. 종전까지의 거창하던 이름을 버리고 단순한 숫자 7로 되돌아간 데서 MS가 이번 출시에 거는 결의가 엿보인다(오른쪽 박스기사 참조). 하지만 MS가 칼을 가는 사이 시장환경도 변했고 경쟁자들도 더욱 강력해져 전면전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 MS의 최대 매출처는 컴퓨터 운영체제(OS)다. 그 동안 ‘OS는 곧 윈도우즈’라는 등식이 하등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윈도우즈7은 개인용 컴퓨터(PC)에 깔리는 마지막 운영체제가 될 지도 모를 운명에 처했다. 업계의 흐름이 ‘클라우드컴퓨팅(cloud computing)’을 향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구름을 의미하는 ‘클라우드’는 수천개의 서버로 구성된 데이터 센터를 뜻한다. 이메일, 업무용 프로그램, 미니홈피 등 네트워킹, 게임 등 PC가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클라우드는 PC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핸드폰 또는 넷북(소형 노트북) 등을 통해서도 접속 가능하다. 일반 휴대폰보다 50배나 검색횟수가 많은 스마트폰은 2007년 이미 PC 시장의 2배 규모로 성장했다. 곧 PC가 필요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PC에 윈도우즈를 깔 필요가 없게 된 세상. MS로서는 생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생존방법이란 기득권은 지키면서 상대시장은 뺏어오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MS가 올해 새로운 검색엔진(bing)을 내놓고 지난달 50만대가 넘는 서버로 구성된 2개의 데이터센터의 문을 열었으며 이달에는 스마트폰용 윈도우즈를 별도로 내놓는 등 발걸음이 분주한 이유다. 경쟁자인 구글과 애플 역시 공격적이다. 구글은 7월 윈도우즈에 대항할 독자적인 PC 운영체제로 크롬 OS(Chrome OS)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윈도우즈7 출시에 그 날짜를 맞췄다는 소문도 돈다. 검색엔진 구글에게 최강의 경쟁력을 제공했던 서버는 이제 전세계 2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 사실상의 데이터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구글은 이미 MS-워드와 MS-엑셀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상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스마트폰용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도 내놓았다. MS의 익스플로러(explorer)를 대신할 웹브라우저도 나와 있다. 서로 다른 운영체제끼리 정보이동이 가능토록 연구하는 구글의 부서명이 ‘데이터 해방전선(DLF)’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운영체제 등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순이익의 대부분을 내는 MS가 얼마나 긴장감을 느낄 지 짐작할 수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와 크롬의 소스코드도 공개해 누구든 기능개선에 참여토록 하면서 수요증대와 광고확대를 꾀하고 있다. 구글의 다양한 사업부문 가운데 핵심은 검색엔진이다. 구글맵스(Maps), 지메일(Gmail), 구글북스(Books), 구글헬스, 심지어 유튜브 중 누구도 순이익을 내지 못한다. 매출 220억 달러, 순이익 42억 달러의 98%가 검색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MS가 야후!(Yahoo!)와 손을 잡고 빙(bing)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검색엔진을 내놓은 것은 단순히 구글을 골탕먹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무료 인터넷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들이 클라우드컴퓨팅의 각종 서비스에도 요금을 지불하길 꺼려하고 결국 그 비용을 광고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고육지책이다. 빙은 지난 7월 현재 검색엔진 시장점유율 10%를 뺏어왔다. 애플의 사정은 어떤가. 아이폰, 아이팟 등 혁신적인 전자제품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애플은 인터넷상에서 아이튠(iTunes: 음악과 영화 판매), 애플 스토어(Apple Store: 이동기기용 프로그램), 모바일미(MobileME: 일체형 서비스)로 클라우드에 바짝 다가섰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10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센터를 새로 지었다. 싸움이 치열해지면 옛정도 멀어지기 마련. 지난 8월과 10월, 구글과 애플은 각각 이사회에 임원으로 받아들였던 상대측 인사를 쫓아냄으로써 돈독하던 관계의 끝을 맺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점점 더 구글이 애플의 핵심사업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구글은 검색창 옆에 원박스(one box)라는 이름으로 무료 음악 내려받기·듣기 서비스를 실시, 애플의 아이튠 고객과 구글의 빙 고객을 동시에 공략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IT공룡들의 대혈전이 임박했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세월따라 변해온 Windows 로고 변천사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MS-DOS서 시작해 윈도우즈7까지 MS 부침 대변 개인용 컴퓨터(PC) 운영체제의 최대 성공작 윈도우즈. 영국일간 ‘가디언’의 보도를 바탕으로 지난 20여년간 윈도우즈의 변화를 살펴봤다.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우즈 버전 1.01이 첫 선을 보인 1985년의 모습. MS사의 첫 작품이다. 1987년 두 번째 버전은 보다 세련된 로고를 보여줬다. 사용자환경(인터페이스)가 깔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법정다툼을 할 만큼 경쟁사인 애플사의 그것과 너무 닮았다. 물론 사용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윈도우즈 3.0은 예전보다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훨씬 향상됐다. 여전히 MS-DOS 환경에서 구동. 1990년 출시. 잇따라 나온 윈도우즈 3.1은 1992년 출시 몇 달만에 수백만 세트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로고에 그림자효과(drop shadow effect)를 준 것이 보인다. 이듬해인 1993년 윈도우즈 NT를 출시할 때 MS사는 꿈에 부풀었다. NT는 ‘새로운 기술(New Technology)’의 약자로 MS-DOS 환경에서 구현되는 모든 운영체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뚜껑을 연 결과는 참담했다. 주변에서는 NT가 ‘거기 없었다(Not There)의 약자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들렸다. 그리고 대망의 1995년. 윈도우즈 95은 기존의 컴퓨터 운영체제의 틀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놓았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윈도우즈를 돌리기 위해 DOS를 배울 필요가 없게 됐다. 파일을 깔고 지우는 일도 더 이상 명령어가 아닌 ‘클릭’으로 해결되는 길이 열렸다. 윈도우즈 98은 그 구동화면만큼이나 95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고 ‘새 천년판 (Millenium Edition)’인 Me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9월 출시된 XP는 NT 기반을 가정용으로 확장한 것으로 이 때 비로소 윈도우즈는 MS-DOS 기반 기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2007년 1월 윈도우즈 비스타가 출시됐지만 다년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너무 느렸고 이용자들은 강화된 보안장치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컴퓨터 제조사에 ‘다운그레이드’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비스타가 아닌 옛날 버전인 XP를 깔아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유럽 주요사 600곳 중 79%는 아직도 XP를 쓰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비스타 판매가 성공적’이라던 MS로서도 더욱 간단하고 깔끔하며 효율적인 윈도우즈를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XP에서 새 운영체제로 갈아타도록 만들어야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2일 출시되는 새 운영체제 윈도우즈 7은 이 같은 MS의 고민과 기대를 동 2009-10-22
- “다시 태어나도 골퍼의 길을..” 강산도 변할만한 시간을 극기복례의 자세로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다. 대회 참여 50~60회 와 각종 수상이 빛나는 9년 나이테의 골퍼청년. 총장배 우승으로 4년 전액 장학 용인대학생(2년)이 된 조상준 선수는 대방초등학교 명서중학교 창원공고를 졸업한 창원박이다. 국가 상비군을 거쳐 이제 PGA를 목전에 둔 세미프로로 “고2 때 TV 중계됐던 mbc청소년 전국 최강전이 제일 기억 남는다며 성적이 제일 좋다며 그 때를 회상하는 선한 미소 친근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싱겁게 시작한 골퍼,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중 1 때 농구 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골프를 권했다. 갈등했다. 아버지와 체력 대결에서 두 손 든 뒤 갈등을 내리고 아버지 뜻을 따랐다. “첨엔 전혀 관심 없었는데 이제는 다시 태어나도 골퍼로 살 거예요. 그러나 중 고 시절은 지나서 시작하고 싶다”며 일희일비 가늠케 하는데. 수천 개의 공을 치며 중1에서 고 1까지는 12시간 이상 연습장에서 살았으니 학창시절 맛있는 추억을 놓친 아쉬움이 가슴에 남은 까닭이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한 골프는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장애인 동시에 최고의 친구라며 자기 극복을 동반자로 하는 골프의 속성 골프의 매력을 알려준다. “차분함과 꾸준한 성격에 열심하고 조용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골퍼에게 적합한 성격이지요”라는 평을 들려주는 아버지 조현주씨. “아버지는 이해심이 참 대단하세요. 저는 아빠가 되어도 제 아이에게 그리 못할 것 같아요”라는 아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세상 최대의 든든한 빽이 또한 아버지라니, 조선수의 편안함이나 안정감 그리고 예의 바른 모습의 기반이리라. 외모보다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담백한 여자 친구가 좋겠다고 짓궂은 질문에 굳이 답하는 속이 옹골찬 부드러운 완소남이다. “하루라도 골프를 치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생겨 365일 중 하루라도 쉬면 감각이 10일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골프는 또한 여름에 시합이 많아 방학도 없이 지금도 매일 그랜드 골프장에서 하루 5시간 이상 라운딩한다. 처녀대회의 기억을 더듬는 조선수는 “마지막 홀에서 파를 쳐 99타 쳤어요. 첫 게임에 100타를 안쳤다고 축하 받았죠. 이어서 두 번째 시합에선 76타를 쳤으니 재능을 인정받은 것 같아요” 라며 아버지가 소유한 정신적 정서적 안정 기류가 자신의 집중도를 가꾸는 데 많은 작용을 한 것 같다고 한다. “4라운드를 시합하며 4일 동안 18홀을 계속치며 8킬로를 걸어야 하니 근력은 물론 지구력과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합을 앞두고는 수험생과도 같은 진장과 조절을 요하며, 상대가 없는 종목이라 더욱 자기를 향한 돌봄과 격려 등이 필수”라는 말도 빼지 않는다. 가슴 깊숙이 새긴 송삼섭 선생님 늘 좋은 선생님 좋은 분들이 옆에 계셨다고 말하는 조선수는 존경하는 분으로 북면 마금산 골프랜드의 송삼섭 선생을 꼽는다. “체력을 넘어 자기 한계를 뛰어 넘는 정신력을 심어주셨다”며 그분 가르침의 핵심은 정신력이라 정리한다. 본받고 싶은 선수로는 완벽한 면모의 타이거 우즈도 멋있지만, 파워풀한 모습의 안소니 킴을 점찍고 있다고. 같은 길을 동행하며 든든한 언덕으로 지지자로 신뢰와 우정의 길벗으로 함께 써가는 부자간의 골프여정(旅程)이 무엇보다 큰 힘이라는 조상준 골퍼. 다음 달 테스트를 통해 내년 시합의 시드를 받아 1부 투어에 나가는 것이 올해 목표, 그 후에 신인왕을 거쳐 세계로 이어질 행보가 앞으로의 계획이다. 골퍼로서 자기 이름을 걸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탑 프로가 되는 것이 플랜속의 최종 도착지이며 최고의 원트“라고 전한다. 조상준 선수 경력 2004년 경남골프협회장배 22회 3위 2005년 경상남도지사배 24회 준우승 2006년 경상남도지사배 26회 준우승 2006년 제 8회 에머슨퍼시픽그룹배 MBC미디어텍 청소년 골프최강전 남고부우승.종합우승 2007년 경남골프협회장배 28회 우승 2007년 제 8회 용인대총장배 우승 2007년 국가대표 상비군 2008년 세미프로 합격 조상준선수의 아버지 조현주씨는 반지동 민원센터 옆 극동실내골프(262-9777) 대표이다. 면벽하고 9년이면 도가 트인다는데.. 40년 세월을 도와 매너로 살았으니(태권도 20년 골프 20년), 현주씨 내면에 쌓였을 내공이 순하디 순한 표정에 담겼나보다. 골프는 귀족 운동이 아닙니다. 골프는 헬스클럽 가듯 실내 연습장에서도 얼마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요. 이곳에서 가르치며 4년 되었는데 교습비나 티칭에서 입소문과 평판이 좀 났지요. 골프가 궁금한 40~50대 직장인 등 성실한 서민층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골프하는 남편의 권유나 새롭게 도전해보려는 주부, 폼나게 즐기거나 사업상의 필요 등에 따라 다양한 부류가 골프를 즐기고 있어요. 초보가 가장 명심할 것요? 인내와 끈기의 마음자세입니다. 골프는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모두 사용하며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기에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몸이 만들어지고 맞추어 근육이 발달해 맛도 점점 들여가는 거지요. 골프는 힘을 빼고 하는 운동이라 초보자는 실내 연습장에서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필드에 나가 잘 치려면 부단히 연습해야합니다. 칭찬으로 티칭합니다.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힘도 칭찬에 있습니다. 골프는 특히 처음에 잘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자세와 스윙 등 몸에 맞게끔 구조를 맞추어 가는 것을 강조합니다. 2~3년 배우신 분들을 가르치기가 초보자보다 더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어요. 처음 입문할 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꼼꼼하게 가르치려는 자세가 제 티칭의 핵심이지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고 저 또한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태권도에서 골프로 건너간 까닭요? 태권도는 제 평생 직업(공인8단)이예요. 82년부터 반송에서 태권도장(극동체육관)을 했는데 그 때도 꾸준히 골프를 하고 있었죠. 참 매력 있고 좋은 운동이라 아이들에게 취미로 지도해보려는 의도로 3급 생활체육 자격을 땄어요. 그런데 인원수와 안전 등의 이유로 아이들에 게 제대로 적용하기 힘들었어요. 골프도 태권도와 같은 맥락에서 많이 연구 합니다. 신체적 구조에 의한 자연스런 스윙 등 좋은 자세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골프를 알고 즐기는 데 태권도가 좋은 지침이 된답니다. 겸손이 열쇠다. 자신을 낮추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 가두는 자기 안의 감옥을 벗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 힘 빼는 연습부터 해야한다”고 말하는 현주씨. 자신이 가진 힘을 드러내지 않을 때 더욱 성장하는 스토리 역시 골프에서도 확인하는 진리란다(783호) 윤영희 리포터 ffdd7777@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4
- 베트남, 드라마 ‘야망의 세월’ 방송 중단 지난 9월 베트남 TV에서는 한국의 옛 인기방송극 ‘야망의 세월’이 방영되고 있었다. 문광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뤄진 ‘한류 결실’이었다. 문광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앞두고 여기에 공을 들인 이유가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성공신화를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게다가 ‘야망의 세월’은 이 대통령을 대중적 정치스타로 만든 계기였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자신이 극중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청년 이명박’이 더 부각되자 측근들에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문광부로서는 현직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를 국빈방문 중 인기리에 방영함으로써 얻을 ‘정치적 이득’까지 고려했을 법하다. 정치권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유 장관이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 서울시장에 도전하려는 것이란 그럴듯한 해석까지 나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단 2번 방영되고 막을 내려야했다. 사정을 알아보니 베트남 당국의 결정이었다. 당국이 밝힌 종영 이유는 드라마 초기 5공화국을 묘사하면서 ‘반공이 국시’라는 표현이 나온 게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베트남전 참여를 ‘세계평화에 대한 기여’로 표현한 국내 유공자법 논란까지 맞물려 ‘조기 종영’이 됐다는 것이다. ◆신아시아 구상 성공의 필요조건 = 베트남이 유공자법안과 관련 이 대통령 국빈방문을 한때 거부하는 소동을 통해 우리 정부 외교자세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민시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구상하는 ‘신아시아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위주의 외교자세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베트남 현지에서는 우리 정부가 베트남 참전유공자법을 추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트남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인의 무시’ 사례와 맞물려 ‘반한류’ 조짐까지 확산되고 있다. 야망의 세월 방영을 기획한 문광부 또한 ‘베트남 정서’에 대한 작은 배려만 있었다면 ‘조기종영’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 오늘 베트남 방문 = 이 대통령은 20일 오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이 대통령은 20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을 시찰하고 베트남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갖는다. 21일에는 응웬 밍 찌엣 국가주석과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고위급 전략대화 체제를 구축하는데 합의할 예정이다. 또 이번 베트남 방문 기간에는 두산중공업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관한 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베트남 정보통신부간 방송통신 협력 MOU(양해각서)도 체결된다. 이 대통령은 이어 22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이동,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을 예방한 뒤 훈 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광물자원 공동연구와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 등에 합의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23일 태국 후아힌으로 옮겨 24∼25일 개최되는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와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5일 귀국한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0
- 국제경제_그 때를 아시나요 그 때를 아시나요 세월따라 변해 온 MS 윈도우즈 로고의 변천 가디언 영국일간 ‘가디언’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윈도우즈7 출시에 맞춰 지난 20여년간의 윈도우즈 구동화면을 되돌아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우즈 버전 1.01이 첫 선을 보인 1985년의 모습. MS사의 첫 작품이다. 1987년 두 번째 버전은 보다 세련된 로고를 보여줬다. 사용자환경(인터페이스)가 깔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법정다툼을 할 만큼 경쟁사인 애플사의 그것과 너무 닮았다. 물론 사용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윈도우즈 3.0은 예전보다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훨씬 향상됐고 예쁘기까지 했다. 여전히 MS-DOS 환경에서 구동. 1990년 출시. 잇따라 나온 윈도우즈 3.1은 1992년 출시 몇 달만에 수백만 세트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로고에 그림자효과(drop shadow effect)를 준 것이 보인다. 이듬해인 1993년 윈도우즈 NT를 출시할 때 MS사는 꿈에 부풀었다. NT는 ‘새로운 기술(New Technology)’의 약자로 MS-DOS 환경에서 구현되는 모든 운영체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뚜껑을 연 결과는 참담했다. 주변에서는 NT가 ‘거기 없었다(Not There)의 약자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들렸다. 그리고 대망의 1995년. 윈도우즈 95은 기존의 컴퓨터 운영체제의 틀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놓았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윈도우즈를 돌리기 위해 DOS를 깔 필요가 없게 됐다. 파일을 깔고 복사하고 지우는 일도 더 이상 명령어가 아닌 ‘클릭’으로 해결되는 길이 열렸다. 윈도우즈 구동화면에 처음 구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6년 나온 윈도우즈 NT 4.0은 업무용 OS라는 임무에 걸맞게 중후한 색깔을 채택했다. 보안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해커들의 기본상식이 될 때까지 수년간 기업들의 사랑을 받았다. 윈도우즈 98은 95와 그 로고만큼이나 별 차이를 보이지 못했고 2000년 역대 최악의 버전이라고 불리는 윈도우즈 Me가 고객들 손에 전달됐다. Me는 ‘새 천년 맞이 (Millenium Edition)’의 준말이다. 2001년 9월 출시된 윈도우즈 XP는 NT 기반을 가정용으로 확장한 것으로 이 때 비로소 윈도우즈는 MS-DOS 기반 기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출시 16년만의 일이다. 2007년 1월 가장 화창한 무늬의 윈도우즈 비스타가 출시됐지만 다년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너무 느렸고 강화된 보안장치 등에 적응하는 데 이용자들이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컴퓨터 제조사에 ‘다운그레이드’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비스타가 아닌 옛날 버전인 XP를 깔아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외적으로는 ‘비스타 판매가 성공적’이라던 MS사도 결국 더욱 간단하고 깔끔하며 효율적인 윈도우즈를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XP에서 새 운영체제로 갈아타도록 만들어야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22일 전세계적으로 출시되는 새로운 운영체제 윈도우즈 7이다. 종전까지 Me, 비스타, XP 등 거창해 보이는 이름을 버리고 단순한 숫자 7로 되돌아간 데서 MS가 이번 출시에 거는 결의가 엿보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1
- <밥일꿈> 이번 한가위엔 고향에 푸른 희망을 심자! 농촌진흥청 연구현장지원팀장 농학박사 박 동금 세월의 흐름은 무상하여 폭염과 장마의 계절이 엊그제 같은데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도는 완연한 가을이다. 들녁의 곡식은 하루가 다르게 누렇게 익어 물들어 가고, 콤바인 기계소리에 풍성한 결실의 계절임을 실감한다. 며칠 후면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한가위이다. 올해는 추석연휴기간이 짧아 극심한 정체가 예상되고, 신종 플루로 인해 부모형제와 조손(祖孫) 사이의 정(情)까지 가로막을까 걱정이란다. 하지만 신종 플루나 도로정체가 우리민족의 조상 섬김 정신과 고향 사랑의 실천인 한가위 대이동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시인 정지용 선생은 일찍이 향수라는 시에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라고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지내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우리 선조들은 삶이 힘들거나 슬플 때 고향에 대한 추억과 자연을 시와 노래로 달래며 슬기롭게 극복하였으며,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나라사랑으로 승화되어 오늘날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한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우리의 고향 농촌은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 가고,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곳으로 인식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에게 고향은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나라가 더 부강하려면 농촌은 더 아름답게 존재해야 하며, 고향이 우리에게 삶에 힘을 주는 에너지 재충전소로 역할을 다하도록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고향, 농촌을 아름답게 보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건강을 생각한 명품 농산물을 만들어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생태계 자원을 잘 가꾸어 도시민이 찾아오게 해야 한다. 우리 보다 잘사는 선진국의 농촌은 우선 아름답지 않은가? 잘살아서 아름답게 가꾼 것인지, 아름다워서 잘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우선 우리 농업인 스스로 주변 환경부터 깨끗하게 가꾸는 노력을 하고 도시 소비자와 함께 하는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깨끗한 금수강촌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선 마당 자투리땅에는 채송화, 봉숭아, 접시꽃을 심고, 마을 앞 공터에는 조롱박이랑 수세미오이와 같은 토종작물을 심어 농촌다운 아름다움을 만들고 찾아오는 이들의 쉼터로 이용해 보자! 감나무 골에는 감나무를 심고 밤나무 골에는 밤나무를 가꿔보자! 시인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고향 풍경도 재현해 보자 ‘실개천’은 실개천답게 복원하고 ‘청포도’ 시를 쓴 시인의 생가에는 청포도터널을 만들어 역사와 문화, 전통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자! 그다음 도·농 교류를 통해 농촌에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보탬이 되고 도시민들은 안전한 먹거리와 휴식공간을 제공받아 상생할 수 있도록 기존의 1사 1촌 뿐만 아니라 1아파트 1촌 운동, 나아가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1과 3촌 운동이 보다 내실 있게 실천되어야 한다. 아울러 고향이 농촌이 아닌 도시 가정을 위해 1농가 자매결연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농촌에는 활력이 생기고 아이들에겐 건강과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어 진정한 도·농 상생이 될 것이다. 이번 추석은 산업화 과정에 도시에 훌륭한 인재를 공급하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던 고향 들녘에서 도·농이 함께 지혜를 모아 농촌에 희망을 심어주고 돌아오는 넉넉한 한가위이길 기대해 본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9-30
- 바다야 기다려라 오리발 들고 내가 간다~ 여름 한 철이 지나고 나면 바다가 잠잠해 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바다 속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다이버들이 모여 장비를 챙기기에 바쁘다. 20여 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면 바다로 떠나는 ‘치악드림 스킨스쿠버’ 동호회를 만나봤다.환상적인 바다 속을 누비다 보면 세상 근심 잊어요.1988년 11명으로 처음 시작한 ‘치악드림 스킨스쿠버’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바다에 빠져 사는 사나이들이다. 22년 동안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내외 바다를 누비는 ‘치악드림 스킨스쿠버’ 회원들은 바다 없이는 살맛이 안 난다고 할 만큼 바다 사랑이 깊다. 처음 30대에 모인 회원들이 이제는 50대 전후가 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바다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다. 이성주 회장은 “처음 운동 삼아 시작했습니다. 물속과 물 밖의 세상이 다르다보니 물속에만 들어가면 걱정 근심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되니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지금은 물속이 내 집 안방처럼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다보니 한주도 안 빠지고 바다로 달려가게 됩니다”라고 한다.현재 11명 중 3명이 강사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나머지 회원 역시 마스터 급(실력에 따라 급이 나눠져 있음)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이의국 회원은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직업이 됐죠. 강의실 옆에 다이빙 풀장을 직접 갖추고 교육까지 하고 있습니다. 스킨스쿠버는 하면 할수록 빠져 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강의실에는 수중에 필요한 장비도 갖추어 필요할 때 구입할 수 있도록 갖춰 놓았습니다. 원주에는 마땅히 장비 구할 곳이 없는 형편이라 다른 동호회들도 이곳에서 정보도 교환하며 많이 모입니다”라고 한다.취미로 익히 스킨스쿠버, 구조대로 자원봉사강주영 회원은 “물속에 들어가면 환상적입니다. 물고기도 색색이고 산호초도 다양하죠. 무엇보다 사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중 촬영은 생활의 활력이 찾게 만듭니다”라고 한다.이의국 회원 역시 “전국수중사진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회원들이 모두 물을 좋아하는 만큼 수중 사진 촬영에도 관심이 많아 치악드림 스킨스쿠버 회원 중 입상 경력을 한번 쯤 은 갖고 있습니다”라고 한다.생활의 활력을 찾아주고 마음의 안정을 준다는 스킨스쿠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간단히 안전교육을 받고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수심이 깊은 저수지나 바다 등에는 실력과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위험하기 때문에 전문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킨스쿠버들이 아니면 구조대 활동이 쉽지 않다. 이의국 회원은 “치악드림 스킨스쿠버 회원들은 현재 횡성적십자구조대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구조대 활동으로 바쁘죠. 얼만 전에도 실종된 시신을 찾아 유족들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회원들 모두 자신들의 직업이 있으니 바쁘지만 구조대 활동을 할 때는 빠짐없이 참석 합니다”라고 한다.최근 다이빙 장소를 확대하는 등 정책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나는 스킨스쿠버. 그러나 2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정을 깨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치악드림 스킨스쿠버’ 동호회의 힘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취미로 이웃을 생각하는 봉사활동 때문일 것이다. 스킨스쿠버의 유래스킨스쿠버의 역사는 기원전 820년 아시리아 제국의 병사를 묘사한 한 장의 그림에서부터 유래한다. 양가죽 주머니에 채운 공기를 마시면서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이집트나 그리스는 그 당시 잠수로 진주를 채취하는 직업 다이버가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의 스쿠버다이빙 장비가 발명된 것은 1943년이다. 프랑스 해군 장교인 잭 이브 쿠스토와 엔지니어인 그의 친구 에밀 가니앙이 8년간 실험 끝에 발명했다.신효재 리포터 hoyjae@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