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강남 이주의 문화소식 뮤지컬/오페라 ♠모노 드라마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 일시:9월8일~10월31일 평일8시, 토 공휴일3시/7시, 일3시 장소:대학로 예술마당 3관 입장료:일반석4만원 문의:1588-5212 ♠2009 악극 ‘모정의 세월’ 일시:10월22일~11월2일 평일3시30분/7시30분, 일3시/6시30분 장소:장충체육관 입장료:VIP석10만원 R석7만원 문의:02-769-1032 ♠뮤지컬 ‘두 드림 러브’ 일시:9월25일~12월31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2시/6시 장소:대학로 라이브극장 입장료:일반석4만원 문의:02-747-0094 연극 ♠굿 닥터 일시:10월8일~11월15일 화수금8시, 목2시/8시, 주말3시 장소: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입장료:S석3만5천원 A석2만5천원 문의:02-3672-3001 ♠꿈의 연극 일시:10월29일~11월2일 평일8시, 주말4시/7시 장소: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입장료:일반3만원 대학생2만원 문의:02-745-4566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일시:10월20일~10월25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4시 장소: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입장료:R석3만원 S석2만원 문의:02-766-6925 클래식/콘서트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 내한공연 일시:10월29일 오후8시, 31일 오후7시30분 장소: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입장료:VIP석25만원 R석21만원 문의:02-548-0733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 일시:10월27일~10월28일 오후8시 장소: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입장료:VIP석7만7천원 R석5만5천원 문의:02-3991-700 ♠국립국악 관현악단 기획공연-사랑방 음악회 일시:10월29일 오후7시30분 장소: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입장료:으뜸석2만원 문의:02-2280-4114 전시 ♠Wall Painting, 기억의 풍경화 일시:7월2일~12월31일 장소:세오갤러리문의:02-583-5612 무용 ♠2009 임수정 전통춤판 ‘무향(無香)’ 일시:10월27일 오후7시30분 장소:서울남산국악당 입장료:일반석3만원 문의:02-2261-0513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제목: “해양사관으로 역사를 이해해야” 부제: 해양문화, 세계를 하나로 잇는 길 2009년 8월5일 해양문화재단(이사장 최낙정)은 한국대학생 104명과 함께 ‘국토해양대장정’ 길에 오른다. 13일 동안 이들은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 동해바다 독도를 뜨거운 가슴으로 안았다. 단한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백령도 뱃길에서 서해교전(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으로 숨진 젊은 넋을 위로했다. 2002년 6월 29일 오전10시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남북 함정이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박동혁 병장을 비롯, 5명이 전사했다. 해양대장정길에 오른 이들은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던 바다가 더 이상 갈등과 전쟁터가 아닌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했다. 푸른 바다에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남도 섬을 지나면서 해양부국론을 주장한 다산 정약용을 떠올렸다. 조선의 땅이 비좁아 북으로는 2천리 남쪽은 1천리에 불과하다며 해양에 대해 관심 없는 조정을 비판한 다산. 당시 다산은 남쪽바다 1000여개의 섬을 보물로 여겼다. 다산은 섬을 관장하는 해양총괄관청인 유원사(綏遠司)를 설치 ‘남방경영론’을 경세유표에 제안했다. 청년들은 제주에서 ‘하멜표류기’를 다시 생각했다. 육지사관으로 보는 하멜이 아니라 바다에 나가 해양사관 관점에서 하멜을 다시 보는 독해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도착지인 독도에서 청년들은 독도의 뿌리인 3000미터 심해에서 요동치며 솟구치는 독도바다를 끌어안았다. 해양문화재단 최낙정 이사장은 “해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치는 살아있는 현장 교육이었고, 바닷길을 통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는 무한한 꿈을 꾸었다” 며“젊은이들이 과거 해양역사를 통해 인류가 살아갈 청사진을 그린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국토해양대장정이 단순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젊은이들이 해양에 대해 올바른 역사관을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이사장은 “해양문화는 해양을 둘러싼 자연과 인간간의 문화현상을 총망라하는 개념”이라며 대륙중심의 사고에서 해양중심 사고로 전환을 강조했다. 진취적이고 활발한 해양 정책을 폈던 고구려나 고려가 번창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세계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고대 그리스 에게문명부터 동양의 해양문화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중국 명나라 때의 정화함대는 함선 100여척과 2만8000여명의 병력으로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했다. 2005년에는 정화 600주년을 기념하며 해양시대를 선포했고 상해 앞바다에 제2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중국이 다시 해양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우리는 아직 해양문화와 역사에 대해 적극적인 이해가 미비한 실정이다. 해양문화라는 이름도 최근에야 쓰이기 시작했다. 이미 선진국들은 해양을 통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해양과학, 해양동`식물학, 해양생태계, 환경 등 해양문화가 해양에 관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이 속에서 문학과 예술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뒤엉켜 공존한다. 최 이사장은 “바다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거듭 강조했다. “왜구 침략 후에도 바다를 버렸고 이순신이 죽은 후에도 바다를 두려워하며 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아직도 옷만 바꿔 입은 신왜구가 나타나고 해양영토분쟁이 지속되고 있다”며 우리도 진취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한`중`일 바다 선긋기 싸움은 지속될 것이고 2028년 대륙붕 협상이 끝나면 바다영토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20년, 30년 100년 후를 설계하고 준비하며 전문가를 키워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어린이 동화책에 왜 ‘해적’이야기가 나오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친해지도록 교육시키는 강대국들의 정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해양에 관한 관심과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 교과서에도 해양관련 인물과 역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우리 해양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나라가 강국의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 독도를 찾은 안용복은 영웅이 아니라 귀양살이로 생을 마감했고 울릉도(삼봉도)를 개척한 김경한은 극형에 처했고 딸은 노비로 팔려갔다. 반면 해적에게 ‘경’의 칭호를 주고 해양제국건설 길잡이로 내몬 영국과 서양제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최고의 어보(魚譜)를 쓴 정약용도 18년이란 세월을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최 이사장은 해양을 통한 국가발전론을 역설한다. 문학과 역사, 관광, 산업을 하나로 묶어내는 변화와 융합정책을 강조했다. 2차원이 아닌 4차원의 입체적인 해양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조선산업도 부가가치가 높은 요트와 크루즈 산업으로 눈을 돌리라고 말한다. 또한 육상 정유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고 따라서 해상구조물 시대를 준비하고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양문화재단은 다음 국토해양대장정에는 외국학생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동해바다 끝 외로운 섬 하나’라는 노랫말이 틀렸음을 지적한다. 독도는 우리에게 신비한 존재로 남아야 하고 러시아와 일본을 넘어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국내외 젊은이들이 느끼기를 원한다. 최 이사장은 “세계속의 한국은 바다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청소년들이 바다에서 꿈을 실현시키며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말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최낙정 이사장은 -고려대학교 법학과 (법학사) -영국웨일즈대학교 대학원 졸(해양법석사)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해사법학과 졸업(법학박사)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해양수산부 장, 차관 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행정법무대학원 초빙교수 해양문화재단 이사장 ‘독도가는 길’펴냄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조계사 경내에 대형 반야심경 등장>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가로 14m, 세로 7m 크기의 대형 반야심경 조형물이 등장했다. 미술가 이종섭(54)씨가 만든 이 반야심경은 철판에 스테인리스 용접기를 이용해반야심경 260자를 쓰는 방식으로 만든 조형물로 12월 초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이씨가 추진하는 ''I&KOREA'' 시리즈의 첫 프로젝트로 이씨는 "앞으로 2-3년 내에 주기도문을 명동성당에서 전시하고, 국민교육헌장을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섭씨는 14-27일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나무'' 찻집에서 제작과정을 담은 전시회를 연다. 이씨는 "2년에 걸쳐 하루에 2-3자 정도를 철판에 새겼다"며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내려오는 문자를 사람이 만든 것 중에서 제일 강하다는 상징성을 지닌 쇠에 새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철판에 녹이 스는 것도 자연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세월이 흘러 바탕이 녹슬어도 스테인리스로 쓴 반야심경의 내용은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또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aehee@yna.co.kr(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3
- 시론 용산참사 눈물을 닦아 주었나 (시론) ^정운찬 국무총리가 추석 날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갔다. 국회 청문회 때 한 약속을 지키는 모양새여서 많은 국민이 “잘 했다”고 평가하였다. 참사 현장에서 추석을 맞은 희생자 유족들 손을 잡고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위로한 것도 모처럼 희망을 걸게 하는 언사였다. ^참사 9개월이 다가오는 시점에 총리가 피해자들을 찾아가 ‘책임’을 입에 담았으니 일이 잘 풀려가겠구나 싶다.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몇 자 적어왔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은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위로한 말과 표정에 진정성이 묻어났다.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데 실망하면서도, 해결을 위해 총리실에 연락통로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 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증좌라 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정부와 집권당 내부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이다. 취임하자마자 민생현장으로 달려간 총리의 행보가 ‘약속장에 도장 찍는 일’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반쪽짜리 기대나마 마저 꺾어지지 않도록,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신뢰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 ^지난 1월 20일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 추진으로 생업의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의 농성현장을 강제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용산참사다. 30여명의 철거 상인들이 철거대상 건물 옥상에 농성장을 만들고 정당한 보상과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나선지 25시간 만에, 공중으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게릴라 토벌하듯 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원인과 경과야 어떻게 되었건,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정부가 마땅히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는가. 먹고살기 어려운 영세민들을 굶어죽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정부의 책임일진대, 생계대책을 요구하다가 죽고 다친 사람들과 그 유족에 대한 뒤처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 ^참사가 일어난 뒤 정부는 사고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뒤집어 씌워, 농성장에서 살아나온 사람과 농성 주도자들을 구속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하였다. 과잉진압에 책임이 있는 공직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가해자 측으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철거 용역회사 직원 몇 사람이 구속 기소되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부당한 이런 처사에 분격한 유족들과 지지자들이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과와 보상을 요구한 세월이 9개월이다. 부자가 같이 농성을 하다가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탈출하다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아들이 병상에서 경찰에 끌려가 구속되어, 설과 추석을 감옥에서 지낸 것이 용산참사의 실상이다. ^유족들은 아직 죽은 이들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 하고 있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이대로 갈 태세다.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가. ^정부의 사과, 생계대책 마련, 수사기록 공개를 바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어느 것 하나 부당한 것이 없어 보인다. 멀쩡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이 경찰의 강제진압이었고, 그로 인하여 생계대책이 없어졌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수사기록을 보자는 요구의 어디가 부당한가. ^행정책임은 지방자치단체의 일이고, 보상 문제는 재개발 조합의 일이니 직접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정부가 몸을 사리는 동안 문제는 더 커졌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어떤 화약고가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무서운 일은 지금도 제2, 제3의 용산참사 가능성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멀쩡한 고급주택들이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전국 곳곳에 집단민원이 일고 있다. 아파트는 선이고 단독주택과 저층건물은 악인가. 적법한 개인재산을 ‘다수주민이 원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철거가 용납되는 법률이 살아 있는 한, 용산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유재산을 행정폭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예방의 첫 걸음이다. ( 문 창 재 논설고문 )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9
- 특집 - 안티 에이징(Anti-Aging)을 잡아라 한 항노화 전문가는 ‘좀 더 천천히, 멋지게, 제대로 늙기’가 진정한 안티에이징(Anti-Aging)이라고 했다. 이젠 얼마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나이보다 젊고 멋있게 사는 일이 최대 화두다. 세월을 가름할 수 없는 젊은 외모와 활력 넘치는 건강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과 관심 그리고 투자에 달렸다. 누구나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름을 지우고 노안을 교정하고 임플란트를 심는 안티에이징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된다. 본 지는 이에 대한 기사를 기획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노안교정술 돋보기를 벗어 던지면 젊음을 얻는다 노안 온 중장년층 돋보기는 싫어…교정 위해 안과 찾아, 백내장 시력 돋보기 동시에 해결 얼굴 주름과 함께 찾아오는 세월의 또 다른 흔적은 바로 노안이다. 아무리 좋은 시력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45세를 전후로 찾아오는 노안은 자신이 바로 늙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노안은 누구에게나 오며 아무도 피해 갈수 없다. 갑자기 잘 보이던 신문이 앞이 침침하고 보이지 않는다면 노안을 의심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오는 노안은 한창 일할 나이의 40대 중반부터 50대들에게 불편함이 더하다. 직장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업무상 많은 지장을 줘 주의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실제 승진에도 문제가 생기며 심지어 직장에서 쫒겨나는 이른바 ‘사오정’ 신세가 되기도 한다. 노안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노안교정술이다. 돋보기를 벗어던지고 눈의 젊음을 되돌리는 노안교정술은 그래서 찾는 이들이 점점 많다. 노안은 젊음 유지의 가장 큰 걸림돌 ‘노안’이란 40대 후반을 전후로 하여 가까운 거리가 잘 안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눈의 렌즈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탄력을 잃어 초점을 이동시키는 힘이 약해져서 온다. 요즘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많아져 눈을 쓰는 일이 늘어나면서 40세 전반으로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보통 노안은 45세를 전후로 나타나지만 원시인 사람은 조금 일찍 근시인 사람은 조금 늦게 나타난다. 노안이 오면 근거리 시력장애가 나타나 시야가 흐려지는 증상부터 시작된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물체를 분간하지 못하거나 작은 글자를 읽기 어렵고, 먼 것과 가까운 것을 교대로 볼 때 반응이 늦다. 또 어두운 환경에서 시력장애가 나타나고 피로할 때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만약 노안을 그대로 두고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는 등 근거리 작업을 계속하면 두통에 시달린다. 노안은 55세까지 계속 진행되고 그 이후부터는 큰 변화가 없다. 노안의 가장 대중적 대응 방법이 돋보기 착용이다. 그러나 갑자기 나이들어 보이고 평소 안경을 끼지 않았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더 불편함을 겪는다. 무엇보다 심리적 상처가 크다.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원장은 “여성들의 경우 10~20년은 젊어보이는 웰빙시대에 살면서 노안은 나이를 들어보이게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강해 노안교정술을 찾는다”고 말했다. 원거리 근거리까지 한번에 잡아 돋보기 안녕 노안 시력을 교정하는 노안교정술은 ASA노안수술, 레스토렌즈 삽입술(노안교정용 특수렌즈 삽입술), 커스텀뷰, CK교정술 등이 있다. 각 교정술마다 방법이 다르고 장단점 등이 있다. GS안과 김무연 원장은 “노안교정술은 크게 3가지로 나누는데 백내장과 노안을 동시에 고칠수 있는 ‘레스토 렌즈삽입술’과 백내장이 없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레이저시술’, 그리고 ‘커스텀뷰’가 있다”고 설명했다. ‘레스토 렌즈 삽입술’은 대개 50대부터 70대까지가 대상이다. 레이저시술은 라섹수술 하듯이 비교적 간단하게 노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안교정술 중 ‘ASA 노안수술’은 그동안 난치로 간주되었던 노안을 치료할 수 있는 레이저 수술기법이다. 김무연 원장은 “시력교정 소프트 웨어 ASA80을 사용하여 초점 심도를 증가시킴으로서 수술 후 원거리 및 근거리를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교정을 한다”고 설명했다. 수술 받는 사람이 백내장이 없는 경우라면 ASA노안수술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안전한 시력개선 수술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안과 백내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수술법으로 알려진 ‘노인교정용 특수렌즈 삽입술’은 근거리 원거리를 동시에 볼수 있게 하는 특수렌즈를 눈 속에 넣어주기 때문에 백내장도 치료하고 돋보기까지 모두 해결이 된다. 박영순 원장은 “노인교정용 특수렌즈 삽입술은 시력과 백내장 그리고 돋보기까지 모두 벗어던질 수 있는 1석3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노안교정술”로 “렌즈표면의 중심부를 머리카락 두께의 1/50 정도로 정교하게 깎아서 이곳에 빛의 회절 현상을 이용하여 원거리와 근거리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백내장이 없어도 돋보기를 벗기 위한 수술로도 가능하다. 시술에 대한 지나친 환상은 금물 안과계는 지금 안티에이징의 추세 속에서 레이저를 이용한 굴절 수술까지 결합되면서 미세하게 존재하는 수차까지 완벽하게 교정할 수 있는 한층 최첨단화된 노안수술을 내놓고 있다. 노안교정술이 돋보기를 벗게 하고 불편함 해소는 물론 젊어보이게 하는 시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지나친 환상은 조심해야 한다. 김무연 원장은 “수술은 기술이지 마술이 아니므로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노안수술 후 오는 일시적인 불편함도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조언했다. 불편함 뒤에 오는 편안함과 기쁨이 훨씬 더 크기에 작은 고통은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노안 수술을 고려 할 때 그 시술법에 정확한 대상자가 아닐 경우는 시술을 받지 말아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무리 유명한 수술법이나 기기라 할지라도 거기에 맞는 대상자인 경우에만 보다 성공적인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민자 리포터hmj647@empa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권화섭의 글로벌 경제진단 권화섭의 글로벌 경제진단 강한 달러, 약한 달러의 딜레마 “달러 가치의 하락은 반가운 뉴스다. 그것은 글로벌 시장의 안정을 반영하며 미국의 수출을 유리하게 해 줄 것이다.”(폴 크루그먼) “약한 달러는 무역이득을 압도하는 자본유출로 인해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생기는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경제적 몰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데이비드 맬퍼스 전 베어스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강한 달러, 약한 달러의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은 여전히 ‘강한 달러’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더 이상 강한 달러의 다짐을 지킬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오늘날 미국의 경제상황은 강한 달러가 미국의 이익과 합치하는지도 전혀 확실치 않다. 금값 1천 달러 돌파는 국제적 달러 불신의 반영 미국의 방관적 ‘약한 달러’ 정책에 대해 비판자들은 ‘달러화는 미국 돈인데 달러화의 문제점은 다른 나라들에게 떠넘긴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미국은 더 이상 그런 몰염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미국경제와 달러화에 대한 국제적 불신이 폭발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최근 국제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를 훌쩍 뛰어 넘고, 장기적으로는 35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예측(이코노미스트 10월8일자)까지 나오는 데서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흔히 금값 상승은 인플레이션 헤징이나 안전투자 수요 등으로 설명되지만 이번에는 달러화의 약세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한 나라의 통화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력의 반영이다. 그리고 다른 요인이 일정할 경우 단기적으로 통화가치는 금리 수준에 따라 바뀐다. 즉 지금 달러화의 하락을 멈추게 하려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제로금리 정책을 버리고 금리를 올려 달러화 자산의 매력을 높여야 하지만 이른바 ‘더블 딥’(겹치기 불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전혀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미국 달러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미국의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에서 기인한다. 지난 1971년 이른바 ‘닉슨 쇼크’로 불리는 달러화의 금태환 중지 및 평가절하를 가져왔던 해묵은 문제점이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험악한 모습으로 미국과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올해 및 내년에 각각 1조7000억 달러와 1조4000억 달러의 예산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까지 적자 규모를 5330억 달러로 감축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민간예측기관들은 2019년까지 연평균 1조 달러의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그런 달러화의 약세를 그냥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극적 조치를 통해 강한 달러 정책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선택의 문제에 관해 크루그먼은 한 가지 흥미 있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른바 ‘금본위제 향수’(gold standard mentality)가 그것이다. 크루그먼은 경제사학자 피터 테민의 분석을 인용해 1930년대 대공황의 한 가지 핵심적 원인이 바로 그 향수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이런 인사들의 특징으로 “단순히 통화가치의 안정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디플레이션 와중에서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며, 경제적으로 신용확대가 절실한 때에 신용완화에 반대하고,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데도 ‘인위적’ 회복이라고 반대한다”고 설명한다.(뉴욕타임스 10월12일) ‘강한 달러’ 주장은 금본위제 향수에 젖은 위험한 발상 이에 대해 맬퍼스는 통화가치의 하락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제3세계적 자원배분 방식”으로 영국병과 카터 병증(病症), 멕시코 위기, 러시아 사태를 답습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강한 달러를 지키며 쌍둥이 적자를 크게 줄이려면 미국인들은 1980년대 ‘볼커 충격’에 비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그런 희생을 요구할 수 있을까.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인터뷰]“해양사관으로 역사 다시 이해해야” 평화·번영 기원 ‘국토해양대장정’ 해양문화, 세계를 하나로 잇는 길 2009년 8월 5일 대학생 104명이 해양문화재단(이사장 최낙정)과 함께 ‘국토해양대장정’ 길에 올랐다. 13일간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 동해바다에 다다른 대학생들은 독도를 뜨거운 가슴으로 안았다.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백령도 뱃길에서는 서해교전(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으로 숨진 젊은 넋을 위로했다. 해양대장정길에 오른 이들은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피 흘렸던 바다가 더 이상 갈등과 전쟁터가 아닌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했다. 푸른 바다에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남도 섬을 지날 때는 ‘해양부국론’을 주장한 다산 정약용을 떠올렸다. 다산은 ‘조선의 땅이 비좁아 북으로는 2000리, 남쪽은 1000리에 불과하다’며 해양에 대해 관심 없는 조정을 비판했다. 당시 다산은 남쪽바다의 섬 1000여개를 보물로 여겼다. ‘경세유표’에서는 섬을 관장하는 해양총괄관청인 유원사(綏遠司)를 설치하자는 ‘남방경영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하멜표류기’를 다시 생각했다. 육지사관이 아닌 해양사관으로 하멜을 다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종착지 독도에서 청년들은 독도의 뿌리, 3000m 심해에서 요동치며 솟구치는 독도바다를 끌어안았다. 최낙정 이사장은 “해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치는 살아있는 현장 교육이었고 바닷길을 통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는 무한한 꿈을 꾸었다”며 “젊은이들이 과거 해양역사를 통해 인류가 살아갈 청사진을 그린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토해양대장정이 단순한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젊은이들이 해양에 대해 올바른 역사관을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이사장은 “해양문화는 해양을 둘러싼 자연과 인간간의 문화현상을 총망라하는 개념”이라며 대륙중심 사고에서 해양중심 사고로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강대국의 해양정책 주목해야 = 진취적이고 활발한 해양 정책을 폈던 고구려나 고려가 번창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사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에게문명부터 동양의 해양문화까지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중국 명나라때 정화함대는 함선 100여척과 2만8000여명 병력으로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했다. 2005년 중국은 정화 600주년을 기념하며 해양시대를 선포했고 상하이 앞바다에 제2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해양을 통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해양과학, 해양동·식물학, 해양생태계, 환경 등 해양문화가 해양에 관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이 속에서 문학과 예술 등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뒤엉켜 공존한다. 우리는 아직 해양문화와 역사에 대해 적극적인 이해가 미비한 실정이다. 해양문화라는 이름도 최근에야 쓰이기 시작했다. 최 이사장은 “바다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거듭 강조했다. “왜구 침략 후에도 바다를 버렸고 이순신이 죽은 후에도 바다를 두려워하며 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아직도 옷만 바꿔 입은 신왜구가 나타나고 있고 해양영토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도 진취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최 이사장은 “한·중·일간 바다 선긋기 싸움은 지속될 것이고 2028년 대륙붕 협상이 끝나면 바다영토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20~30년, 100년 후를 설계하고 준비하며 전문가를 키워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어린이 동화책에 왜 ‘해적’이 등장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바다와 친해지도록 교육시키는 강대국들의 정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해양에 관한 관심과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교과서에도 해양 관련 인물과 역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 이사장은 “가까운 우리 해양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강국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진단한다.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 독도를 찾은 안용복은 영웅이 아니라 귀양살이로 생을 마감했고 울릉도(삼봉도)를 개척한 김경한은 극형에 처했고 딸은 노비로 팔려갔다. 한국 최고의 어보(魚譜)를 쓴 정약용도 18년이란 세월을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반면 영국을 비롯한 서양제국은 해적에게 ‘경’의 칭호를 주고 해양제국건설 길잡이로 내몰았다. ◆‘세계 속 한국’ 바다 통해서만 가능 = 최낙정 이사장은 해양을 통한 국가발전론을 역설하고 문학과 역사 관광 산업을 하나로 묶어내는 변화와 융합정책을 강조했다. “2차원이 아닌 4차원의 입체적인 해양정책이 절실하다. 조선산업도 부가가치가 높은 요트와 크루즈 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최 이사장은 “육상 정유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며 “해상구조물 시대를 준비하고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문화재단은 다음 국토해양대장정에는 외국학생들과 함께 독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동해바다 끝 외로운 섬 하나’라는 노랫말이 틀렸음을 지적할 작정이다. 독도는 우리에게 신비한 존재이자 러시아와 일본을 넘어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외 젊은이들이 이를 느끼기 원한다. 최 이사장은 “세계 속의 한국은 바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청소년들이 바다에서 꿈을 실현시키며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책임이고 의무”라고 말했다. 최낙정 이사장은 -고려대학교 법학과 (법학사) -영국웨일즈대학교 대학원 졸(해양법석사)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해사법학과 졸업(법학박사)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해양수산부 장, 차관 -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행정법무대학원 초빙교수 -해양문화재단 이사장 -‘독도가는 길’펴냄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앤틱 가구 가을비가 한번 내리고 나니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바뀐 계절 탓일까.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문득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분해진 가을 날씨와 달리 마음은 소용돌이친다. 가끔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는데 집안에 있는 물건도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고 위안이 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빛나는 앤틱 가구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차로 10분. 만종역 가는 길에 만종 가구단지가 보인다. 그 곳에 앤틱과 리프로덕션 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어 가 보았다. ## 앤티크 앤티크(aneique)는 라틴어의 ''antiqus'' 가 어원으로 ''오래된 것, 구식의 것''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최소 100년 이상 된 고물건을 뜻한다. 흔히 가구점에서 흔히 듣게 되는 ‘앤틱’이라는 의미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제뉴인(genuine), 리프로덕션(reproduction), 페이크(fake)가 그것이다. 여기서 제뉴인(genuine)은 당대에 만들어진 진품을, 리프로덕션(reproduction)은 진품의 분위기와 기법을 살려 현대에 만들어진 것, 페이크(fake)는 진품으로 팔기 위해 만든 모조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래 됐다고 다 ‘앤틱’은 아니다. ‘앤틱’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어야 하고 보존도 잘 되어야 한다. 흔히 시중에서 거래되는 ‘앤틱’ 제품은 당대의 귀족들이 사용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 보존도 잘 되어 있고 시대상도 잘 반영하고 있다. 흔히 가구점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앤틱’은 ‘제뉴인’ 분위기를 내 옛날 공법 그대로 현대에서 만들어진 ‘리프로덕션’이라고 말할 수 있고 대부분 ‘리프로덕션’을 줄여 ‘리프로’라고도 한다. ##러시아, 프랑스 등지의 앤틱 소품들도 많아 심소영 앤틱 갤러리 권순영 대표는 “리프로 제품은 옛날 당대 사람들이 가구를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만듭니다”라며 “해가 갈수록 나무가 색을 자연스럽게 먹어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죠”라고 말한다. 매장을 돌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는 ‘심소영 앤틱 갤러리’ 안주인 심소영씨의 설명을 듣고보니 앤틱 가구의 발 하나 하나 장식 하나 하나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앤틱’이 세월과 함께 지혜를 터득한 약간은 투박한 할머니라면 ‘리프로’는 그 할머니의 그런 반듯한 모습을 보고 자란 손녀딸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심소영 앤틱 갤러리에는 가구뿐만이 아니라 도자기, 유리제품, 접시 등 각종 소품이 있어 갤러리에 와 있는 듯 볼거리가 가득하다. 프랑스 루이 18세에 만들어 졌다는 콘솔은 당대 유행했던 발이며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줘 보는 이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속이 꽉 찬 북미산 단풍나무로 국내 제작 가구 관련 일만 15년 째 하고 있는 권순영씨는 “이곳에서 심소영 앤틱 갤러리를 한지 8년이 됐는데 아직 한번도 A/S가 들어와 본 적이 없다”며 “전통 수작업을 통한 짜맞춤 공법으로 만들어져 가구가 단단하고 튼실하다”고 말한다. 워낙에 좋은 원자재를 가지고 수작업을 하다 보니 처음 접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하지만 한번 구입한 손님은 다시 구매하러 올 정도로 물건에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심소영씨에게 가구를 살 때 잘 살 수 있는 요령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가구를 살 때는 마감, 즉 안 보이는 부분을 유심히 보라”고 귀띔해 준다. 보이는 부분이야 다 신경 써서 만들지만 정말 좋은 가구는 안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 쓴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올 가을 고풍스러운 앤틱 가구 하나로 집안 분위기 한번 바꿔볼까. 문의: 747-2231, 017-366-1909 이지현 리포터 1052jee@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7
- [내일시론]용산의 눈물을 닦아주었는가(문창재) 용산의 눈물을 닦아주었는가 정운찬 국무총리가 추석 날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갔다. 국회 청문회 때 한 약속을 지키는 모양새여서 많은 국민이 “잘 했다”고 평가하였다. 참사 현장에서 추석을 맞은 희생자 유족들 손을 잡고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위로한 것도 모처럼 희망을 걸게 하는 언사였다. 참사 9개월이 다가오는 시점에 총리가 피해자들을 찾아가 ‘책임’을 입에 담았으니 일이 잘 풀려가겠구나 싶다.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몇 자 적어왔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은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위로한 말과 표정에 진정성이 묻어났다.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데 실망하면서도, 해결을 위해 총리실에 연락통로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 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증좌라 할 것이다. 경찰 과잉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일 … 정부 책임 느껴야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정부와 집권당 내부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이다. 취임하자마자 민생현장으로 달려간 총리의 행보가 ‘약속장에 도장 찍는 일’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반쪽짜리 기대나마 마저 꺾어지지 않도록,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신뢰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 지난 1월 20일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 추진으로 생업의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의 농성현장을 강제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용산참사다. 30여명의 철거 상인들이 철거대상 건물 옥상에 농성장을 만들고 정당한 보상과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지 25시간 만에, 공중으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게릴라 토벌하듯 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원인과 경과야 어떻게 되었건,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정부가 마땅히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는가. 먹고 살기 어려운 영세민들을 굶어죽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정부의 책임일진대, 생계대책을 요구하다가 죽고 다친 사람들과 그 유족에 대한 뒤처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 참사가 일어난 뒤 정부는 사고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뒤집어 씌워, 농성장에서 살아나온 사람과 농성 주도자들을 구속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였다. 과잉진압에 책임이 있는 공직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가해자 측으로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철거 용역회사 직원 몇 사람이 구속 기소되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부당한 이런 처사에 분격한 유족들과 지지자들이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과와 보상을 요구한 세월이 9개월이다. 부자가 같이 농성을 하다가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탈출하다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아들이 병상에서 경찰에 끌려가 구속되어, 설과 추석을 감옥에서 지낸 것이 용산참사의 실상이다. 유족들은 아직 죽은 이들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이대로 갈 태세다.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가. 고층아파트는 선이고 단독·저층은 악인가? 정부의 사과, 생계대책 마련, 수사기록 공개를 바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어느 것 하나 부당한 것이 없어 보인다. 멀쩡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이 경찰의 강제진압이었고, 그로 인하여 생계대책이 없어졌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수사기록을 보자는 요구의 어디가 부당한가. 행정책임은 지방자치단체의 일이고, 보상 문제는 재개발 조합의 일이니 직접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정부가 몸을 사리는 동안 문제는 더 커졌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어떤 화약고가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무서운 일은 지금도 제2, 제3의 용산참사 가능성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멀쩡한 고급주택들이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전국 곳곳에 집단민원이 일고 있다. 고층아파트는 선이고 단독주택과 저층건물은 악인가. 적법한 개인재산을 ‘다수주민이 원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철거가 용납되는 법률이 살아 있는 한, 용산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유재산을 행정폭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예방의 첫 걸음이다. 문창재 논설고문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9
- 현대가 맏며느리 이정화 여사는 ‘조용한 내조’로 현대·기아차 성장에 큰 몫 지병으로 별세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부인 고 이정화 여사는 현대가 며느리들의 전형적인 모습대로 평생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정 회장이 현대·기아차를 세계 5~6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로 키워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여사의 ‘조용한 내조’가 큰 몫을 했다는 게 현대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한에 고향을 둔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로 알려진 이 여사는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1남 3녀를 길러냈다. 숙명여고를 졸업한 후 현대건설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정 회장을 만나 연애결혼을 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장남 정의선씨는 최근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영훈의료재단선병원 이사장인 선두훈씨와 결혼한 맏딸 성이씨는 현대·기아차그룹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고문을 맏고 있다. 둘째 딸 명이씨의 남편 정태영씨는 현대캐피탈 사장이고 셋째 딸 윤이씨의 남편 신성재씨는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 여사는 다른 재벌가에 비해 유난히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남편을 내조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 고 변중석 여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여사는 특히 손위 동서인 이양자씨가 1991년 암으로 세상을 뜬 이후로 범 현대가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해 왔다. 서울 한남동 자택에 살던 이 여사가 정 명예회장 생전에 시댁인 청운동으로 매일 새벽 3시30분이면 달려가 아침 준비를 하곤 했던 일은 잘 알려진 일화다. 시어머니인 변 여사가 1989년부터 18년간 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에 식구가 많기로 유명한 현대가의 아침 준비는 이 여사 등 며느리들의 몫이었다. 이 여사는 현대차 및 관계사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드물었던 대신 병석에 누워 있던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헌신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정과 가문을 돌보는 일에 30~40년 세월을 바쳤던 이 여사가 재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3년부터이다. 당시 이 여사는 현대차그룹의 레저분야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 이사직을 맡은데 이어 2005년에는 대표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