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의' 검색결과 총 3,330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국민은행 ‘주식로또’ 불법 발매 (국민은행이 불법 사행사업 ) 로또사업자 선정 의혹으로 최근까지 검찰수사를 받았던 국민은행이 이번에는 주무기관 승인없이 인터넷 주식로또를 발매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복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복권위 승인을 얻지못한 상태에서 사업시행자인 국민은행이 (주)레드폭스아이와 재수탁계약을 맺고 지난 2일부터 개별 주식 종목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로또 749’를 불법적으로 발매했다. ‘주식로또 749’는 49개 주식 종목 가운데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상승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 7개를 순서에 상관없이 골라 맞히는 방식이다. 주식로또 가격은 1장당 1000원이며 당첨금이 누적된다는 점에서 온라인 로또와 동일하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복권을 발행할 경우 복권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어기고 사업을 시행했다. 또한 당초 복권위원회에 제출한 계획서에 따르면 연간 발매금액을 6억원으로 제한하겠다고 했으나 1회차와 2회차 복권 발매금액만 10억원을 넘어섰다. 레드폭스아이에 따르면 1회 로또는 5억4000만원 어치가 팔렸고, 2회에는 5억6000만원어치가 발매됐다. 복권위원회는 관계자는 “주식로또 사업은 위원회 승인도 거치지 않고 수탁자와 재수탁자가 제멋대로 진행한 것”이라며 “국민은행이 지난 7일 사업자인 레드폭스아이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했지만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첨이 끝난 1·2회차와 현재 발매중인 3회차 주식로또 모두 법적 자격이 없는 업체가 임의대로 발행한 복권에 불과해 일반인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복권사업부 관계자는 “복권위원회 인가 여부에 대해서 현재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조만간 언론에 자료를 내고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전국 25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도박산업규제및개선을위한전국네트워크’는 ‘주식로또 749’의 판매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한편 국민은행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이진호 집행위원장은 “복권위원회의 승인없이 로또 사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연간발행한도 승인 금액인 6억원도 초과했다”며 “국민은행은 무분별한 복권발행을 중단하고 복권위원회는 의혹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2006-02-20
- 지방선거 경쟁력 ② 현역 단체장 <시리즈 첨가>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구청장 후보 선정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역 단체장의 재도전이 대세를 굳혀 가고 있다. 서울시 구청장 25명 중 3선연임 제한으로 출마하지 않는 4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1명의 구청장은 재출마 의사를 굳힌 상태다. 이들은 정당 공천을 희망하고 있지만, 설령 공천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무소속으로 주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다. 정당공천제가 적용되는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감행할 수 있는 이들의 경쟁력은 단순한 자존심이나 체면에서 나온 일시적 반응이 아니다. 이들의 경쟁력은 현역단체장이라는 데 있다. 구청 행정을 이끄는 고유 업무 자체가 크게 보면 정치활동의 연장이 된다. 선거법의 제한이 있다고는 하나 예산과 행정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도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역단체장은 ‘돈 받으면서 선거운동 하는’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간 지역 곳곳을 누벼 인지도 측면에서는 독보적이다. 특히 재수 혹은 삼수를 통해 단체장에 당선된 구청장의 경우 15년 이상 한 지역을 활동거점으로 삼아 사실상 안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북지역의 한 구청장은 한 곳에서 관선·민선구청장을 모두 지낸 후 3선을 노리고 있어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 인지도만 높은 것이 아니다. 10년 이상 지역행정을 이끌면서 유대관계를 맺고, 친밀감을 높여 온 주민단체가 막강한 후원세력으로 버티고 있다. 물론 현역단체장이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주민과의 친밀도가 높은 대신 자신이 공천을 받은 정당과의 관계에서는 지방의원이나 기타 정치인보다 떨어진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당이 다른 경우, 지역 사업을 위해 협력과 공조관계가 필수적인데 정당인의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단체장은 총선이 끝난 후 타 당 공천으로 당선된 국회의원 환영회를 열었다가 당 관계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또 하나는 당 관계자들 특히 해당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현역 구청장들은 잠재적인 경쟁자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선에 도전하는 한 단체장은 “3선까지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젊은 단체장이 갈 길은 정해져 있다”고 말해, 국회의원과의 경쟁관계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에도 불구, 현역단체장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경쟁력에 속한다. 서울시 25개 구청장 20명의 구청장을 보유한 한나라당내에서 ‘당 기여도’ 등을 들어 대대적 물갈이 공천설이 나돌자 구청장들이 ‘해 볼 테면 해보자’며 전의를 다지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다. 한나라당 소속 한 구청장은 “20년 가깝게 지역터전을 일궜는데 맞대결 구도라면 누가 나와도 해 볼만 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25
- <신문로 칼럼>서울 땅속은 역사의 보물창고다(김홍식 2006.02.13) 서울 땅속은 역사의 보물창고다 명지대 건축대학교수 김 홍 식 수년 전 종로의 육이전(조선조 상가)을 발굴한 적이 있다. 100년 전, 200년 전, 임란·병란 후, 조선 전기, 드디어 지표 아래 약 5m 지점에서 조선초의 상가를 거의 완벽한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구들과 고방이, 뒤퇴에는 길게 봉당이 놓이는 4간집 전포가 불에 탄 채 남아 있었다. 육이전이란 이것을 하나의 단위로 한 긴 장랑(줄행랑)이었다. 이런 건물이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줄지어 있었다는 얘기다. 내가 발굴한 이 집은 나중에 돈을 벌었는지 이웃집을 사서 내부에서 서로 통행할 수 있도록 튼 구조였다. 그 뒤 100년이 지나 불이 났고, 그 위에 재건축한 상가가 들어섰는데 길을 잡아먹으면서 앞으로 증축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하수도를 크게 확장한다. 이렇게 밀고 당기기를 여러 차례 한 끝에 1910년이 되면 결국 길 쪽으로 한 칸을 먹고 상가가 들어선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도로도 로마처럼 박석(넓적한 돌)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혹은 보셨는지 … 발굴 과정에서 금은 세공을 하던 집이며 수정으로 갓끈을 만들던 집, 무슨 일인지 불이 났는데 금고 안의 돈조차 꺼내가지 못했던 현장도 발견됐다. 5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신던 일본 ‘게다’같이 생긴 신발도 나왔다. 나는 이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어느 학회에서 발표했는데, 조선시대 상가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는 “그 건축물은 절대 상가일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상가에는 ‘구들’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므로 아마도 상가 안쪽의 ‘살림채’일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앞 도로쪽을 발굴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자료를 가지고 확증해 줄 수가 없었다. 종로 바닥은 지하철을 파면서 다 파괴해 버렸으니 어떡할 것인가? 얼마 전 남대문 주변을 새롭게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정비를 위해 바닥을 판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대문의 원 바닥이 1.5m 아래에서 발견됐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도 이 깊이까지 표토를 제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모양이다. 우리가 지금 지상에서 보고 있는 동대문, 종루, 창덕궁 앞 인정문 등은 모두 땅속에 묻혀 있다. 최근에 복원한 경복궁 역시 조선 초기 유적은 전부 땅속 깊이 묻혀 있기 때문에 결국은 고종 때의 지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근간에 서울 시내에 지어졌던 수많은 건축물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역사의 흔적이 커다란 굴삭기 삽날 아래 파괴되었을까 소름이 끼칠 정도다. 지금 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표조사 범위는 3만㎡ 이상이다. 이 정도라면 상당히 큰 재개발지구나 해당할까, 규모가 상당히 큰 빌딩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일반 건축물은 포함되지 않는다. 재수 없게(!) 문화재에서 100m 이내에 있어 문화재심의를 받게 되는 경우, “문화재 시굴조사를 해보세요”라고 권고해야 마지못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이런 발굴조사는 민원 때문에 많은 사람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발굴조사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공사자들은 발굴조사기관을 얻지 못해 볼멘 민원을 제기하고 있고, 학자들은 매달 쏟아지는 발굴보고서를 일별조차 못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건축역사가가 알고 싶은, 역사시대 이후의 마을주거지 혹은 도시시설물들에 대한 발굴보고는 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역사시대 이후의 유적지는 사람들이 계속 같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이전 시대의 유구가 파괴되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장 많이 파괴되었을 것 같은 서울에서 오히려 옛 유적이 잘 남아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혹, 발굴을 전공으로 하는 고고학자들의 주된 관심분야가 선사시대에 치우쳐 있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서울은 조선 600년의 고도일 뿐 아니라 2000년 전 옛 백제의 도읍지로도 알려져 있다. 성 안에만 조선초에는 10만이 살았다고 하고 조선후기에는 30만이 살았고, 한 나라의 도읍지로서 조선조 800만 인민이 세금을 내고 명운을 같이 하던 곳이다. 이런 역사도시의 특정한 지역은 비록 개발면적이 적고 주변에 지정된 문화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표 및 발굴조사를 해서 기록이라도 할 수 있도록 지표조사구역으로 지정해 둘 필요가 있다. 역사시대의 연구도 모두 문헌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발굴조사 기록은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다. 문헌에 없는 역사적 보물이 모두 땅속에 실존하기 때문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2-08
- 관악구, 평생학습센터 종합정보시스템 개통 서울 관악구는 관악구평생학습센터 종합정보시스템을 4개월간에 걸친 구축작업끝에 완료했다. 관악구 평생학습센터 홈페이지의 정보종합시스템은 학교를 비롯한 교육청 등 교육관련 기관으로부터 관악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까지 바로 연결 할 수 있다. 봉천동 신림동 등 각 동사무소나 문화의 집, 사회복지 기관의 전 프로그램을 바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검색은 강좌·강사·기관별·자료실별로 나누어 원하는 조건에 맞춰 해당 프로그램을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홈페이지에는 서울대 교수부터 그동안의 명강의를 강사들의 동영상이 올라있고, 홈페이지상에서 재수강이 가능하다. 김성배 기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06
- 보험왕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ING생명 도곡지점 서 민(36) 보험왕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ING생명 도곡지점 서 민(36) 제목: “세 번 퇴짜 맞고 진짜 보험맨 됐어요” 중국 고전 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가득하다. 극적인 장면과 함께 소개되는 사연들은 얕게 보면 처세술이지만 깊이 보면 철학에 가깝다. 영웅과 호걸이 넘쳐나고, 간사한 자들과 모리배들이 동시에 판치는 어지러운 난세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삼국지를 시종일관 꿰뚫고 있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역시 사람의 중요성. 제대로 된 인재를 하나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과 같은 무게감으로 묘사되고 있다. 추운 겨울 유비가 눈길을 헤치고 제갈량을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가서 극진히 모셔오는 그 유명한 삼고초려가 감동을 더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계약보다 사람이 우선 = 삼국지 교훈이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특히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영업 분야에서 사람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ING생명 도곡지점의 FC(재정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서 민(36)씨는 이런 점에서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경우다. 서 씨는 보험업에 뛰어든 초기 한 명의 고객에게 연거푸 세 번의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냥 재수 없는 고객이라고 치부하면서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다른 어떤 고객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기가 아니라 오기를 택했다. 결국 끈질긴 근성에 감탄한 그 고객은 다시 주요한 고객이 됐다. 병원 원장인 그 고객과 지금도 가끔씩 웃으면서 당시를 얘기하곤 한다. 그 고객은 “당시에 사정이 있어서 계약을 해약하게 됐는데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믿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서 씨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서 씨는 이에 대해 “영업은 결국 사람”이라면서 “계약을 쫓는 FC보다는 사람을 쫓아가는 FC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얻었죠” = 서 씨는 2002년 12월에 ING생명에 입사했다. 옮기기 전에는 외국계 회사에 7년 정도 다녔다. 이직을 생각하던 차에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ING 교육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서 씨는 당시 교육을 받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매일 시계추처럼 단순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이 아니라 평생을 일할 업(業)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 것이다. 아무런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업을 택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 씨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은 보험업을 한다니까 극구 만류했다. 그래도 안 되니깐 6개월 안에 MDRT(백만불원탁회의) 회원에 가입하면 그때부턴 자신이 나서서 열심히 돕겠다고 할 정도였다. 서 씨는 MDRT 약속을 지켰고, 그 친구는 지금 서 씨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있다. 당시 서 씨의 부인도 보험설계사를 한다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서 씨를 믿었기에 별다른 불평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 씨는 요즘도 주말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주로 주말에는 지방출장을 다녀오고 있다. 이 때 묵묵히 신뢰를 보내주는 아내가 서 씨에겐 큰 힘이 된다. ◆마음으로 전문가 집단을 공략하라 = 서 씨의 보험업 경력은 아직 초보다. 만 4년이 안됐으니 신참에 가깝다. 그렇지만 실적까지 초보는 아니다. 쟁쟁한 선배들 못지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서 씨는 입사한지 단 5개월 만에 MDRT를 달성했고, 2003년부터 3년 연속으로 ING 썸머 페스티벌 및 연도대상(convention)에 참석했다. 우수 설계사 집단인 ING 라이온 클럽 회원으로 가입했고, ING 변액유니버셜 판매우수 FC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일주일에 3건씩 신계약 체결하는 3W를 107주 동안 유지했다. 현재는 MDRT 가운데서도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COT 멤버다. 물론 억대 연봉의 고액수입이다. 이렇게 성과를 내면서 ING생명 홍보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ING PEOPLE 선정돼 사내 온라인강사를 하기도 했다. 방송사에 출연해 상품에 대한 설명과 보험에 대한 자문을 해준 적도 여러 차례다. 남들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많은 성과를 낸 비결은 남들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전문가 집단을 집중 공략한 것. 이 과정에서 사내 교육시스템과 매니저의 도움이 컸다. 특히 매니저인 곽희필 도곡지점 부지점장은 3년 동안 같이 일해 온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서 씨는 곽 부지점장에 대해 “마치 등산을 할 때 정상에 오르는 것은 엄홍길씨 같은 산악인들이지만 그 뒤에 셀파 같은 존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곽 매니저가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서 씨의 고객은 다른 FC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변호사, 의사 등 고액연봉의 전문가 집단이 많다. 지금도 가장 큰 조력자 중에 상당수가 의사들이다. 한 고객은 처음에 서 씨를 단순한 보험영업사원으로 봤는데 지금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형수와 조카들까지 소개시켜주고 ‘내가 없어도 믿고 상의해’라고 말할 정도다. 서 씨는 “컨설턴트라기보다는 가족처럼, 또 친구처럼 다가갈 때 고객들이 마음 열어주는 것 같다”면서 “금융 지식이나 상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장수 FC 되고 싶어” = 서 씨는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험업도 계약위주로 고객을 만나기보다는 만남 자체를 더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전무가로서의 자부심도 크다. 특히 외국계 생보사에 근무하면서 국내 보험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긍지가 있다. 그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정과 인생에 대해 조언하고 함께 설계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생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요소가 보험”이라면서 “보험은 과할 필요도 없지만 없어서는 알 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 씨는 한동안 혼자서 반짝 잘나가가다 수명이 다하는 설계사가 되고 싶지 않다. 고객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FC가 되고자 노력한다. 계약을 떠나 고객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자신이 연결자가 되고자하는 것이다. 실제 다양한 고객들의 문제에 대해 상담과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재정적 서비스 못지않은 다양한 부가서비스인 셈이다. 가령 전라도 광주에 땅만 많이 소유한 고객이 있는데 하루는 자신의 땅에 빌딩을 세우려고 하는데 내부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구상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 다른 고객 중에 마침 멀티플렉스 쪽 담당하는 분이 있어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줬다. 현재도 상담이 진행중이다. 서 씨는 어릴 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고등학교 때 집안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죽하면 대학교 때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아야 할 형편에까지 처했다. 입사할 때 자기소개서에 밝힌 아르바이트 기록만 60여 가지가 넘을 정도였다. 젊은 나이지만 다양한 인생굴곡을 겪은 터라 마음 씀씀이 또한 따뜻하다. 홀트 아동복지회, 음성 꽃마을에도 수년 째 정기적인 후원과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올해엔 어린이들 소원을 들어주는 재단에 대한 후원도 계획하고 있다. 서 씨는 “후원이나 봉사활동도 혼자 하는 것 보다는 고객들과 함께하고 싶다”면서 “고객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FC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2-02
- ‘9급 공무원에서 차관까지’ 신임 이기우 교육차관은 9급 공무원에서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차관까지 올라온 ‘고졸 9급 신화’의 주역이다. 빈농 출신으로 부산고에 입학한 그는 객지에서의 궁핍한 고학 생활에 병까지 얻어 고교를 4년 만에 졸업했고 대학진학도 실패했다. 돈을 벌면서 재수하겠다는 생각에 그는 1967년 9급시험을 통해 부산 대연동우체국 서기보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다시 시험을 거쳐 고향인 거제군교육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그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1998~1999년 교육장관을 역임하면서 개혁정책을 쏟아낼 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교육환경국장으로서 개혁정책을 보좌, 능력을 인정받았다. 후임 장관에 의해 기획관리실장에 발탁돼 교육부 수장이 7번 바뀌는 3년 반 동안 줄곧 기획관리실장을 맡아 대국회 업무를 처리했다. 이 차관은 1989년 과장으로 국회 파견 근무를 할 때부터 “이기우를 통해서도 민원이 안되면 애당초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고 ‘발 치수 320㎜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특유의 친화력은 정·관가에 알아주는 이 차관의 장점이다. 일례로 2003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있을 때 직원 300명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업무처리가 치밀해 깐깐하다는 이 총리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공무원”이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이 차관은 국민의 정부부터 인사 때마다 하마평에 올랐지만 전임 장관들이 잇따라 영남출신이 발탁돼 상피제에 걸려 번번이 좌절됐다가 끝내 교육차관에 올랐다. △경남 거제(58) △안양대 행정학과 △부산대 교육대학원 △문교부 행정사무관 △교육환경국장·교육자치지원국장 △기획관리실장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2-01
- 세 번 퇴짜맞고 진짜 보험맨 됐죠 중국 고전 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가득하다. 극적인 장면과 함께 소개되는 사연들은 얕게 보면 처세술이지만 깊이 보면 철학에 가깝다. 영웅과 호걸이 넘쳐나고, 간사한 자들과 모리배들이 동시에 판치는 어지러운 난세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삼국지를 시종일관 꿰뚫고 있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역시 사람의 중요성. 제대로 된 인재를 하나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과 같은 무게감으로 묘사되고 있다. 추운 겨울 유비가 눈길을 헤치고 제갈량을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가서 극진히 모셔오는 그 유명한 삼고초려가 감동을 더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계약보다 사람이 우선 = 삼국지 교훈이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특히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영업 분야에서 사람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ING생명 도곡지점의 FC(재정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서 민(36)씨는 이런 점에서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경우다. 서 씨는 보험업에 뛰어든 초기 한 명의 고객에게 연거푸 세 번의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냥 재수 없는 고객이라고 치부하면서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다른 어떤 고객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기가 아니라 오기를 택했다. 결국 끈질긴 근성에 감탄한 그 고객은 다시 주요한 고객이 됐다. 병원 원장인 그 고객과 지금도 가끔씩 웃으면서 당시를 얘기하곤 한다. 그 고객은 “당시에 사정이 있어서 계약을 해약하게 됐는데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믿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서 씨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서 씨는 이에 대해 “영업은 결국 사람”이라면서 “계약을 쫓는 FC보다는 사람을 쫓아가는 FC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얻었죠” = 서 씨는 2002년 12월에 ING생명에 입사했다. 옮기기 전에는 외국계 회사에 7년 정도 다녔다. 이직을 생각하던 차에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ING 교육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서 씨는 당시 교육을 받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매일 시계추처럼 단순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이 아니라 평생을 일할 업(業)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 것이다. 아무런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업을 택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 씨의 친구 가운데 한 명은 보험업을 한다니까 극구 만류했다. 그래도 안 되니깐 6개월 안에 MDRT(백만불원탁회의) 회원에 가입하면 그때부턴 자신이 나서서 열심히 돕겠다고 할 정도였다. 서 씨는 MDRT 약속을 지켰고, 그 친구는 지금 서 씨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있다. 당시 서 씨의 부인도 보험설계사를 한다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서 씨를 믿었기에 별다른 불평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 씨는 요즘도 주말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주로 주말에는 지방출장을 다녀오고 있다. 이 때 묵묵히 신뢰를 보내주는 아내가 서 씨에겐 큰 힘이 된다. ◆마음으로 전문가 집단을 공략하라 = 서 씨의 보험업 경력은 아직 초보다. 만 4년이 안됐으니 신참에 가깝다. 그렇지만 실적까지 초보는 아니다. 쟁쟁한 선배들 못지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서 씨는 입사한지 단 5개월 만에 MDRT를 달성했고, 2003년부터 3년 연속으로 ING 썸머 페스티벌 및 연도대상(convention)에 참석했다. 우수 설계사 집단인 ING 라이온 클럽 회원으로 가입했고, ING변액유니버셜 판매우수 FC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일주일에 3건씩 신계약 체결하는 3W를 107주 동안 유지했다. 현재는 MDRT 가운데서도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COT 멤버다. 물론 억대 연봉의 고액수입이다. 이렇게 성과를 내면서 ING생명 홍보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ING PEOPLE 선정돼 사내 온라인강사를 하기도 했다. 방송사에 출연해 상품에 대한 설명과 보험에 대한 자문을 해준 적도 여러 차례다. 남들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많은 성과를 낸 비결은 남들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전문가 집단을 집중 공략한 것. 이 과정에서 사내 교육시스템과 매니저의 도움이 컸다. 특히 매니저인 곽희필 도곡지점 부지점장은 3년 동안 같이 일해 온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서 씨는 곽 부지점장에 대해 “등산을 할 때 정상에 오르는 것은 엄홍길씨 같은 산악인들이지만 그 뒤에 셀파 같은 존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곽 매니저가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서 씨의 고객은 다른 FC들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변호사, 의사 등 고액연봉의 전문가 집단이 많다. 지금도 가장 큰 조력자 중에 상당수가 의사들이다. 한 고객은 처음에 서 씨를 단순한 보험영업사원으로 봤는데 지금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형수와 조카들까지 소개시켜주고 ‘내가 없어도 믿고 상의해’라고 말할 정도다. 서 씨는 “컨설턴트라기보다는 가족처럼, 또 친구처럼 다가갈 때 고객들이 마음 열어주는 것 같다”면서 “금융 지식이나 상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장수 FC 되고 싶어” = 서 씨는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험업도 계약위주로 고객을 만나기보다는 만남 자체를 더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전무가로서의 자부심도 크다. 그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정과 인생에 대해 조언하고 함께 설계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한 “인생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요소가 보험”이라면서 “보험은 과할 필요도 없지만 없어서는 알 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 씨는 한동안 혼자서 반짝 잘나가가다 수명이 다하는 설계사가 되고 싶지 않다. 고객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FC가 되고자 노력한다. 계약을 떠나 고객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자신이 연결자가 되고자하는 것이다. 실제 다양한 고객들의 문제에 대해 상담과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재정적 서비스 못지않은 다양한 부가서비스인 셈이다. 서 씨는 어릴 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고등학교 때 집안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죽하면 대학교 때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아야 할 형편에까지 처했다. 입사할 때 자기소개서에 밝힌 아르바이트 기록만 60여 가지가 넘을 정도였다. 젊은 나이지만 다양한 인생굴곡을 겪은 터라 마음 씀씀이 또한 따뜻하다. 홀트 아동복지회, 음성 꽃마을에도 수년 째 정기적인 후원과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올해엔 어린이들 소원을 들어주는 재단에 대한 후원도 계획하고 있다. 서 씨는 “후원이나 봉사활동도 혼자 하는 것 보다는 고객들과 함께하고 싶다”면서 “고객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FC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2-02
- 예비고3-재수생-학부모 초청 대입성공 학습법 공개특강 강남구청수능방송, 박재원씨 초청 … 인터넷 방송도 예정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edu.ingang.go.kr)은 예비고3, 재수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2월 4일부터 3회(매주 토요일)에 걸쳐 ‘2007학년도 입시 대비 학습법 공개 특강’을 서울 삼성동 수능방송국 대강의실에서 실시한다고 최근 밝혔다. 강사는 수능학습법 전문가인 박재원씨(‘서울대쯤은 누구나 갈 수 있다’ 저자)다. 이번 특강은 4일에는 예비고3 수험생, 11일에는 재수생, 18일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각각 열린다. 박재원 강사는 “예비고3 대상 강의에서는 수시와 정시 입시전략에 관해, 재수생 대상 강의에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입시전략에 관해, 학부모 대상 강의에서는 명문대 합격생들의 공부비결과 부모의 역할 등에 관해 강의를 할 것”이라며 “특히 일문일답을 통해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는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며, 30분 강의 후 일문일답을 1시간30분 이상 진행한다. 특강참여 신청은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edu.ingang.go.kr)을 통해 오늘까지 접수하면 된다. 특강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각 강의는 수능방송 홈페이지에 게시할 예정이며, 특강 강의자료도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공개한다. 문의 1577-9100.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30
- ‘진학’만 있고 ‘진로’는 없다 10명 중 6명,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 종사 청소년, 1만2천개 직업 중 272개만 관심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에 따르면 대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현재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58퍼센트가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고됐다. 자신의 적성이나 앞날에 대한 희망과 상관없이 오직 성적순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는’ 대학만을 선택한 결과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재수생 남윤하(19·서울 서초동)군은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면서 적성과 관심보다는 점수를 먼저 고려했다. “사람들이 전공을 묻지 않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에만 관심을 두잖아요. 학교가 좀 뒤쳐진다 싶으면 무시하는 빛이 역력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폼 나는 학교에 입학한 후에 제 적성에 맞는 공부를 부전공으로 하든가, 학원을 다니든가 하려고요.” 남군의 말처럼 대학입시에서 개인의 적성이나 관심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점수에 따라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느냐다. 이렇다보니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입시를 치르거나 겨우 졸업한 후에 다시 편입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또 1학년을 마치고 도망치듯 군대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말잡링크(www.joblink. co.kr)가 대학생 18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1%(985명)만이 ‘전공 선택에 대해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66.1%(1226명)는 ‘다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의 전공을 바꾸겠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5.8%(439명)는 ‘적성에 안 맞아서’를 전공을 바꾸고 싶은 이유로 들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해도 취업문턱에서 많은 학생들이 좌절감을 맛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 기간은 평균 11개월가량 걸린다. 어렵게 성공한 취업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직업에 대한 정보도 턱 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직업 수는 1만200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의 숫자는 고작 272종류에 불과하다. ◆‘내 길’ 찾은 젊은이들 = 최근 자신의 적성에 맞춰 원하는 학과나 직업학교를 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은영(43·서울시 신림동)씨 아들도 이런 경우다. 지난해 고3이었던 이씨 아들은 희망하는 학과를 가기 위해 서울대를 포기했다. 대학에 다니다 전공을 바꾸기 위해 다시 입시를 치르는 사람도 많다. 우석대 한의과에 다니는 김영욱(28)씨는 한의학을 전공하기 전에 전자공학도였다.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중 떠난 배낭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다. 김씨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는데,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을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며 “나만을 위한 삶보다는 사회에 기여하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새로운 선택을 설명했다. 정은주(33·경기도 고양시)씨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버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다. 취업난 속에서 얻은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정씨는 5년 만에 사표를 냈다. 현재 정씨는 편입을 통해 한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만학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뉴욕에서 의상디자이너로 일하는 박금미(39·미국 앤클라인 디자이너)씨는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증권회사에 취직해 몇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녀는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 결국 사직하고 관심 있던 복장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박씨는 뉴욕주립대에 진학했으며 결국 디자이너의 꿈을 실현했다. ◆미래, 성적순 아니다 = 교육컨설팅 업체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는 일”이라며 “아이가 어떤 성향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다음이 미래를 내다보는 부모의 안목”이라며 “현재 유행하는 학과가 아니라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미래에 유망한 직업이 무엇일지, 그런 직업이 찾는 인재는 어떤 모습일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미경 리포터 서울시에 살며 고등학교 3학년 아이의 엄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24
- 메인 진학’만 있고 ‘진로’는 없는 우리 교육풍토 되짚기 대학은 가도 앞길은 깜깜, 마이 웨이는 어디에? 최근 어느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조사는 현재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58퍼센트가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자신의 적성이나 앞날에 대한 희망과 상관없이 오직 성적순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는’ 대학만을 선택한 결과다. 재수를 하고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남윤하(19·서울 서초동)군은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면서 적성과 관심보다는 점수를 먼저 고려했다. “사람들이 무슨 공부를 하느냐를 묻지 않고 어느 학교 다니는지에만 관심을 두잖아요. 내가 아무리 소신 있게 공부를 한다고 해도 학교가 좀 뒤쳐진다 싶으면 무시하는 빛이 역력하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폼 나는 학교에 입학한 후에 따로 제 적성에 맞는 공부를 부전공으로 하든가, 따로 학원을 다니든가 하려고요.” 남군의 말처럼 대학입시에서 개인의 적성이나 관심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점수와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느냐다. 이렇다보니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입시를 치르거나 겨우 졸업한 후에 다시 편입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또 1학년을 겨우 마치고 도망치듯 군대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말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가 대학생 18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1%(985명)만이 ‘전공 선택에 대해 만족한다’고 응답했으며 66.1%(1226명)는 ‘다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현재의 전공을 바꾸겠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5.8%(439명)는 ‘적성에 안 맞아서’를 는 전공을 바꾸고 싶은 이유로 들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해도 취업문턱에서 많은 학생들이 좌절감을 맛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의 기간은 평균 11개월가량 걸린다. 직장을 잡은 앞길엔 산이다. 일반 실업률보다 높은 청년실업률만 봐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약 11개월은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성공한 취업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약 6명은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직업에 대한 정보도 턱 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직업 수는 1만200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의 숫자는 고작 272종류에 불과하다. ◆‘내 길’ 찾은 젊은이들 = 이런 가운데 자신의 적성에 맞춰 대학의 명성보다는 원하는 학과나 직업학교를 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은영씨(43· 서울시 신림동)의 아들도 이런 경우다. 지난해 고3이었던 이씨의 아들은 희망하는 학과를 가기 위해 서울대를 포기했다. 대학에 다니다 전공을 바꾸기 위해 다시 입시를 치르는 사람도 많다. 우석대 한의과에 다니는 김영욱씨(28)는 한의학을 전공하기 전에 전자공학도였다.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중 떠난 배낭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다. 김씨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는데, 인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들을 보면서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며 “나만을 위한 삶보다는 사회에 기여하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새로운 선택을 설명했다. 정은주씨(33·경기도 고양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버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경우다. 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다. 취업난 속에서 얻은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정씨는 5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정씨는 편입을 통해 한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만학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뉴욕에서 의상디자이너로 일하는 박금미(39·미국 앤클라인 디자이너)씨는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증권회사에 취직해 몇 년 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녀는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다 결국 사직하고 관심 있던 복장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박씨는 뉴욕주립대에 진학했으며 결국 디자이너의 꿈을 실현했다. ◆미래, 성적순 아니다 = 교육컨설팅 업체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아이의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는 일”이라며 “아이가 어떤 성향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다음이 미래를 내다보는 부모의 안목”이라며 “현재 유행하는 학과가 아니라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미래에 유망한 직업이 무엇일지, 그런 직업이 찾는 인재는 어떤 모습일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재 박미경 리포터 | 사진 이의종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