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하얀 치아로 매력적인 미소 찾는다 치아미백 전문가 미백과 자가 미백 병행으로 효과 최고…추가 미백 은 하얀 치아 유지시켜, 불소겔로 시린 증상 예방 치아가 눈부시게 흰 경우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또한 얼굴도 화사하고 젊어 보여 외모를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 멋진 몸매나 이목구비가 예쁜 얼굴도 자신 있는 외모를 만들어주지만 얼굴의 표정을 책임지는 미소야말로 하얀 치아가 기본이다. 누런 치아에서 매력적인 미소가 나올 수 없다. 하얗고 상큼한 미소를 책임져주는 치아미백을 해보자. 변색된 치아를 손상없이 하얗게 치아미백이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변색된 치아를 하얗게 만드는 것. 시술 원리는 카바마이드 퍼옥사이드(Carbamide Peroxide)가 분해되면서 산소를 방출하게 되는데 이 산소가 착색된 물질을 표백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치아를 전혀 삭제하거나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희고 밝게 만든다. 치아미백은 무조건 1~2회로 빨리 끝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필립치과 양주열 원장은 “미백을 시행하는 기간은 치아의 변색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보통 최대효과를 얻는데 4~6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전문가 미백과 자가 미백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오래 간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치아미백은 치과에서 전문의에게 받는 미백치료이다. 시술 과정은 먼저 스케일링을 한 뒤에 세척을 하고 치아 표면을 건조시킨 후, 고농도 미백제를 치아에 바른다. 시술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가량. 이때 반응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강한 빛이나 열을 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변색의 정도에 따라서 3~7일정도 간격으로 3~4회 시행한다. 자가미백은 치과에서 본(Impression)을 떠서 각 개인의 구강에 맞는 장치(tray)를 만들어 그 장치 안에 젤로 된 미백제를 넣고 집에서 밤새 끼고 자거나 낮에 2~3차례 수시간 끼어 미백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국내 치과의 대부분에서 시행되는 방법으로 최소 2~3주 치료 기간이 필요하며, 특정 치아만 변색된 경우는 치아가 일정하게 미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은 병원에서 미백한 후 다시 변색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번 치아미백을 하면 보통 5년 이상 효과가 유지된다. 그러나 치아미백 후 세월이 흐르면서 커피, 차, 담배 등의 색소가 진한 음식에 의해 새로운 변색이 일어날 수 있다. 새로운 변색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터치업(추가미백)을 시행 하면 최상의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터치업은 6개월~1년마다 1주일정도 시행한다. 불소겔 도포로 시린 증상 완화시켜 치아 변색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내부적 원인으로는 연령의 증가(노화)와 임신 또는 영유아기의 항생제 같은 약물 투여이다. 외부적 원인은 콜라, 커피, 차, 와인 등의 착색 유발음료가 가장 많고 카레, 초콜릿 같은 착색유발 음식과 흡연 등이다. 또한 치아의 외상, 충치 등에 의한 경우도 있다. 양 원장은 “치아미백이 필요한 경우는 선천적(유전적)으로 치아색이 누렇거나 나이를 먹으면서 누런색으로 변색된 사람, 깨끗하지 않은 치아색으로 미소 짓기가 두려운 사람, 결혼, 취업을 앞두고 누런 치아가 마음에 걸리는 사람 등”이라고 말했다. 이외도 커피, 담배에 의해 치아색이 변색됐거나 약물에 의해 또는 외상으로 치아가 검게 되었다면 치아미백으로 하얀 치아로 되돌아갈 수 있다. 치아 교정 기간 동안 변색이 된 경우도 치아미백 치료를 하면 좋다. 과거에 사용하던 미백제는 시린 증상이 심했으나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 그래도 치아크기가 작거나 치아에 균열이 있다면 시린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경부마모증이 있는 사람은 미백치료 전에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한 후 미백을 시행한다. 양 원장은 “전문가 치아미백을 받는 경우에 불소겔을 병행하면 시린 증상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자가치아 미백 시에는 일일 미백시간을 줄이고 하루 쉬고 하루 미백하는 식으로 미백 간격을 늘리면 된다. 잇몸자극 치석이 있거나 잇몸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 미백제가 잇몸에 닿으면 잇몸이 약해서 쉽게 자극을 받는다. 그러므로 치아미백을 시행하기 전에 스케일링을 받아서 잇몸을 튼튼하게 한 다음 치아미백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도움말 : 필립치과 양주열 원장 한민자 리포터hmj647@empa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2
- 대한민국 60년 기록물 부산지역 순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오는 25∼31일 부산역 광장에서 `대한민국 희망기록전-어제의 기록, 내일의 희망을 본다'' 기획전을 연다. 대한민국 60년 세월의 위기와 극복방법이 생생하게 기록된 전시회는 전쟁, 보릿고개, 오일파동, 외환위기, 태안 환경 재앙 순의 위기와 극복과정을 테마로 담은 약 250점의 기록물을 선보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2
- 성한표 칼럼 대법관과 ‘존엄한 퇴진’ 성 한 표 대법원은 어제(21일) 이른바 ''존엄사‘의 길을 열어 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 재판에서 신영철 대법관도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사전은 ‘존엄’을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하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이 바로 존엄한 자리다. 임명장에 의해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법관들의 신뢰 위에서 유지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신 대법관 문제로 전국의 판사들이 연일 회의를 열고 있으며 21일에는 서울고법 배석판사 회의가 열렸다. 서울고법은 가장 큰 규모의 고등법원인데다 배석판사들도 다른 고법과 비교해 경력이 높은 편이다. 이들이 대부분 모였다는 점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던 회의였다. 이날 6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는 `신 대법관의 행위는 법관의 재판독립 침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결론을 냈다. 고법판사들도 신 대법관 거취 논의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고, 외부에 알리지 말자는 다수 의견에 따라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장 판사들에 이어 고법 판사들까지 거취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에 대한 법관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모든 사건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법관이 법관들의 신뢰를 잃으면 대법관으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신 대법관은 이제 자진사퇴의 결단을 내릴 때다. 우선 그가 오랜 세월 몸담았던 사법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법부는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불러왔지만 이미 동료인 박시환 대법관이 사법부의 현 사태를 ‘5차 사법 파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현 사태가 ‘파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일반인의 시각이지 법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흔히 판사회의 같은 법 테두리 안에서 하는 의사표현은 파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연판장이나 집단사표 등을 통한 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의사표현 단계에 들어가야 파동이라고 부른다고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인 판사들의 움직임은 과거 이른바 사법파동에 비해 매우 신중하다. 그것은 사법부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지혜로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신 대법관이 스스로 물러나면 사법부는 법관의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하고 이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대법관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번에 보일 그의 처신에 따라 긴 판사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되어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법관은 그 직을 물러난다고 하여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계로 말하면 변호사 일을 통해 대법관 당시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직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예와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연이는 판사회의의 대상이라는 불명예를 얻었고, 더 이상 국가에 봉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어렵다. 자진사퇴가 명예를 지키는 길 그렇다면 아직도 신 대법관의 자진사퇴 결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고집일지도 모른다. 일선 판사들이 나를 비판한다고 해서 물러나면 나의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버텨보겠다는 고집을 나을 수 있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여론몰이를 통한 압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신 대법관은 지금 여론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중추인 판사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신 대법관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존엄사’의 길을 열어주자는 쪽에 손을 들었다. 이제 자신의 ‘존엄한 퇴진’을 생각할 때다. 존엄한 퇴진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퇴진이다. 대법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반 직장의 필부들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사표를 던진다. 사표는 곧 실직이고, 가족의 생계가 벼랑 끝에 서는 일임에도 그들은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지금이 자리에 연연하는 대법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2
- [이경형 칼럼]‘한국의 나오시마’를 생각한다(이경형 2009.05.01) ‘한국의 나오시마’를 생각한다 이경형 (언론인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녹슨 함석과 낡은 판자로 된 벽면에 경비행기 동체 같은 철제물, 나무 거울 간판 같은 오브제가 붙어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굴곡진 벽면이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2층으로 올라서면, 난데없는 자유의 여신상 상반신이 온 방을 채우고 있다.(오오타게 신로가 폐가를 설치작품화한 ‘혀 위의 꿈’). 옛날 미나미데라(南寺) 터에 시골 정미소 창고 같이 생긴 목조 건물이 나온다. 몇개의 꺾어진 벽을 더듬어 들어가면 그야말로 칠흑 같이 깜깜한 밀실이 된다. 공포의 암흑 방에 한참 갇혔다가 달무리 같은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 지난주 일본 나오시마(直島)로 미술 탐방을 다녀왔다. 나오시마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섬 사이의 세토 내해에 있는 3000개의 섬 가운데 면적이 8㎢로 서울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구리 제련소가 뿜어내는 공해로 황폐해진 가가와현(香川縣)의 이 섬은 주민이 한 때 200명으로 줄었다가, 한 기업가의 탁견과 주민의 협력과 건축가 예술가들의 기여로 이제는 주민이 3000명으로 늘어난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기업가와 주민의 합작품 연간 30만명이 넘는 미술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단지 미술품들을 감상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버려진 섬이 어떻게 하여 불과 20년만에 미술과 건축의 천국으로 변신했는지 알고 싶어서 오는 것일 게다. 이 섬 전체에 깃들어 있는 예술혼은 미래를 볼 줄 아는 기업가의 안목,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헌신적인 노력이 이뤄낸 합작품이다. 일본의 교육·실버사업그룹인 ‘베네세’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지난 1987년 10억엔 으로 버려진 섬의 절반을 사들여 2년 뒤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섬 곳곳에 예술을 심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나오시마는 4개의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마을 곳곳의 오래된 가옥이나 신사 등을 설치미술의 작품으로 만든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다. 둘째는 자연의 스카이라인을 그대로 살려 땅속에 건축한 ‘지중(地中) 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화가 클로드 모네,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 영상설치작가 제임스 터럴 3인의 작품을 사실상 영구전시하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맞춤형 건물이다. 셋째는 베네세 하우스로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미술관이 주(主)이고, 호텔은 부대시설로 보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야요이 쿠사마의 ‘노란 호박’을 비롯한 해변 잔디밭 절벽 언덕 곳곳에 놓여 있는 야외 조각품과 설치작품들이다. 나는 ‘나오시마 변신’의 핵심 요소는 기업가 후쿠다케의 기발한 발상과 섬 주민들의 자원봉사정신이라고 본다. 지난달 그가 방한했을 때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 섬에 투자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섬의 젊은이들은 모두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늙은이들만 남게 되어 마을이 공동화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다 현대미술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그룹 매출의 대부분은 학습지를 비롯한 교육사업에서 나왔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고령화에 맞춘 실버사업과 함께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곳곳에 있는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의 안내인은 이곳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다. ‘호왕신사’의 안내인은 30년 간 해군에서 근무하다 퇴역한 사람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일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미술품 감상 못지않게 마을주민들이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낡은 목조 건물의 귀퉁이에 대나무 통을 세우고 중간에 구멍을 파서 거기에 꽃을 심기도 했다. 세토 내해는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나 한려수도와 비슷하다. 나오시마도 거제 통영, 고흥 완도, 진도 인근의 작은 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통영의 욕지도(12.5㎢/인구 1700명)나 한산도(14.7㎢/인구 1400명), 완도의 보길도(19.3㎢/인구 2900명)등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세계적인 예술의 섬으로 가꿀 수 있다. 욕지도 한산도 보길도 등 대상 우리에게도 ‘경제는 문화의 시녀’라고 규정짓는 후쿠다케 회장과 같은 안목 있는 기업가, 아름다운 마을을 추구하고 봉사하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고 본다. 다른 게 있다면, 일본의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이고, 우리는 2만달러라는 경제력 차이다. 하지만 예술의 섬을 만드는 데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못된다. 문제는 생각의 틀을 크게 바꿔보는 용기다. 세기의 명화를 CF로 활용하고 있는 LG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대기업들은 ‘한국의 나오시마’를 만들 역량도, 안목도 있다고 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01
- 단주와 밥 술과 밥은 똑같이 곡식을 가지고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효과가 서로 보완적인 것 같으나 때로는 정반대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밥을 잘 먹으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술을 마시고 싶다가도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똑같이 함수탄소를 원료로 한 이 둘의 특성과 상호 작용을 잘 활용하면 단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60세인 K씨는 단주를 5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그 후로 복잡하게 얽혀 살아온 그가 10여 년 전에 처음 단주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지난 날 방식 그대로 매사를 지식과 논리로 대처하려고 하였다. 알콜 중독에 관한 서적들을 두루 탐독하고 지식을 쌓아 단주 모임 때마다 완벽한 논리로 잘 모르는 초심자들을 가르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알콜 박사’, ‘K 교수’ 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일 년 이상 단주하지 못하고 재발을 반복하였다. 파산한 후 그는 식구들과 떨어져 동생이 운영하는 외지의 공장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야말로 평생 처음으로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처음에는 식사도 대충 때우고 빨래도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갈 때까지 모아서 가져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손수 빨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일이 결코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주가 길어져 가고, 단순한 일과 속에서 혼자 조용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생각도 깊어졌다. 단주의 의미를 자각하고 삶에 대해서도 시각과 생각이 깊어졌다. 술과 밥에 대하여서도 생각이 바뀌었다. 술 없이 어떻게 사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술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가 이제는 술이란 것이 인생에서 꼭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더불어 밥에 대하여서도 생각이 바뀌었다. 단주한 지난 5년 몇 개월 동안 그는 딱 두 번만 끼니를 걸렀다 한다. 밥 먹는 것도 삶에서 몇 안 되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았고 술에 빠져 지낸 세월 동안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한번 놓쳐버린 식사의 즐거움은 결코 나중에 되찾아 누릴 수 없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 끼를 만족하게 먹고 나면 결코 술의 유혹에 빠질 리가 없더라고 덧붙였다. 한 끼 밥을 잘 먹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강원알콜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원주 연세대 의대 교수)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1
- 도시계획시설 지정 후 방치된 토지의 보상청구 제가 행정사건을 접하면서 항상 뭔가 문제가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계획을 하면서 무질서한 주택가를 없애고 직선 도로를 내거나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는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고시한 후 예산 부족으로 이를 방치하는 경우에 토지 소유자는 엄청한 재산상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상을 해 줄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심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일단 도시계획에서 도로부지로 결정되면 그 곳에는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고 기존의 주택도 증축이나 개축을 할 수 없어 흉물스럽게 방치되게 됩니다. 도심지에 아무런 개발도 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토지들이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도로부지로 지정되면 토지의 형질변경이나 건축행위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길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도로를 닦기 위하여 토지를 매수하거나 보상을 해 주고 집을 헐어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시에서 예산상의 문제로 도로시설 설치를 하지 못하고 몇 년씩 방치하는 경우에는 자유재산권을 침해받게 됩니다. 토지보상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 사유재산권을 보장한 헌법의 이념에 반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는 1999. 보상규정이 없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지이던 토지를 사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저한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하게 되므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0년 이상 아무런 보상없이 방치하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된다고 하였지만 임야나 전답의 경우에는 토지를 종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보상이 불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현행법은 10년 이내에 도시계획시설로 개발되지 않는 토지는 국가나 시에서 매수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수할 때 현금을 지급하여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돈이 없는 경우 채권(도시계획시설채권)을 발행하여 지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토지가 매수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목이 대지인 토지 및 지상 건축물에 한하여 매수청구권이 인정됩니다. 또한, 매수청구권 이외에도 도시계획시설결정이 고시된 후 20년이 지날 때까지 시설이 설치되지 않으면 그 도시계획시설 결정은 실효됩니다. www.law6000.co.kr 이재구 변호사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1
- [사람이 희망이다]“나이들어 다시 태어나는 기쁨” 내일신문은 연중기획 ‘사람이 희망이다’를 연재하며 ‘사람’에게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우리 이웃과 동료를 만나 그들이 일구어가는 희망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지면 만들기에 독자 여러분도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희망을 가꾸는 이웃과 동료를 소개해주세요. (문의:내일신문 자치행정팀 02-2287-2266) 이정순, 60세에 ‘날개’단 농촌 부녀회장 지역 어린이 위한 미술·목공교실이 꿈 “힘든 삶일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표현했어요.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담았어요.”(송경숙·38) “가끔 그림을 보는데 어려워요. 이 그림은 뭘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아요.”(박주리·41) 19일 저녁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성플라자를 찾은 인근 주민들이 전시실 ‘스페이스봄’에서 감탄을 연발한다. 20일 시작되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할머니 작가 ‘날개’ 달다 “변신 시리즈에 관심이 많아요. 새가 나무가 되고 사람이 꽃이 되고…. 사람과 자연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예요.” 이정순(60) 작가는 “그 교감을 그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올 봄에는 마당에 핀 목련을 보면서는 자신과 남편을 연상했다. 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은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로 되살아났다. 마당에 핀 동백을 보면서는 할머니, 작가 자신의 손을 떠올렸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꽃, 동백은 그의 작품인 셈이다. 이전에도 물론 자연을 그렸다. 이정순 작가는 “눈으로 보고 그리기만 하는 자연, 풍경화로서의 자연”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스스로가 자연과 동화된다. 1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변화가 시작됐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101세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1600여점을 그렸어요. 그림도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에요. 자수를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수를 놓을 수 없게 되자 그림을 시작한 거래요.” 미국 농촌을 화폭에 담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그린 듯한 따뜻한 작품은 어찌보면 꼭 이정순 작가의 그림인 듯싶다. 이 작가는 “남은 인생을 그림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앞으로는 해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겠다고. 목표는 일단 10년이다. 이번 전시회에도 지난해부터 그린 스물여덟 점을 들고 왔다. “이전까지 그림은 취미생활이었어요. 나를 송두리째 담지 않았어요.” 작가의 자신감에 ‘날개’를 달아준 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재단은 이 작가를 올해의 ‘여성작가날개달기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 전시 공간을 내주고 전시 준비 홍보까지 대행한다. 이장으로 부녀회장으로 그의 인생길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입시에 실패했고 첫 결혼에 실패했다. 도시내기가 전라도 땅끝 인근까지 들어와 살며 눈에 보이지 않게 배타적인 이웃에 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돌이켜보니 그 삶이 상상력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우연찮게 조폐공사에 취업했는데 몇 년간은 돈쓰는 재미에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날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죠. 그림이었어요.” 당장 아마추어 작가의 길을 택했다. 27살에는 추계예술학교에 입학, 정식으로 서양화를 배웠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는 17년 전 목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원동연 교수를 만나 새롭게 삶을 꾸리면서 선택한 곳이다. 농가주택을 구입해 생활하고 채마밭을 일구며 동화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친구들도 미덥지 않아 했어요. ‘3개월만에 돌아올 거야’라고 장담을 했다. 10년간은 정말 애를 먹었다. 문화적 차이가 가장 컸다. 주변에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옥수수며 고추며 채마밭 일구기에도 금세 시들해졌다. “1000원이면 둘이서 먹을 만치 상추를 살 수 있는데 왜 이 고생을 하며 농사를 지어야 하나 싶었죠. 나이 들어 시골구석까지 들어와서 살아야 하는가 원망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림도 돌파구에 불과했어요.” ‘동네 사람’이 되기 위해 이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에 걸쳐 이장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웃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여명 남짓 사는 조그만 동네가 두 패로 갈리는 듯했다. “동네분들이 참 완강했어요. 무작정 싫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거 있죠. 2년 전에 20년 이상 하신 이장이 병으로 쓰러지고 더이상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시켜줬어요.” 마을의 첫 여성 이장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1년 뒤 이사온 40대 초반 새내기 주민에게 이장직을 넘겨주고 그는 부녀회장으로 물러났다.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며 작가는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이들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는 “작은 행복과 바람을 안고 화폭 앞에 선다”. 11년을 앞서 사는 남편이 동지다. 남편은 그가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노부부는 작지만 큰 꿈을 품고 산다. 그 중 하나는 올 가을 ‘화원예술제’를 여는 것. 3년 전부터 지역 작가들과 힘을 합쳐 동네 폐교에서 개인창작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첫 예술제를 열었다. 교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지역 작가들 그림을 전시하고 노래와 춤이 있는 주민잔치도 열었다. “올해는 동네 아이들 그림과 유명 작가 작품을 함께 걸고 난타공연도 엮고 싶어요.” 폐교를 창작실로 계속 유지하는 일은 좀 더 어렵고 큰 바람이다. 예술가들이 주머니를 털어 연간 600만원 가량 되는 운영비를 대왔는데 무명인 지역 작가들로서는 한계에 부닥쳤다. 외부 지원이 절실한 참이다. “폐교를 살려 지역 작가나 농촌의 자연을 담고 싶은 도시 작가를 위한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지역 작가들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작가들이 힘을 합쳐 미술 소외계층인 동네 아이들을 위한 미술학교와 목공학교를 열 계획도 있어요.” 이정순 작가는 “전시회를 마치면 전남도청과 해남군청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로서는 예술가 지원에 어린이 예술교육, 나아가 관광자원까지 마련하는 셈이다. “남편이 오래도록 꿈꿔온 일인데 힘들 것 같아서 반대해왔어요. 그러나 이렇게 ‘날개를 다니’ 용기가 생겼어요.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죠.” 백발이 성성한 화가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20
- 나이가 든다고 몸매까지 늙을 수 있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외모 가꾸기는 이제 비단 20대 여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30~40대에서 50~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다. 과거 주조를 이루던 희생적인 어머니상 보다는,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와 여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성상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나오미족, 루비족, 나우족 등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실제 나이에 상관없이 운동과 다이어트로 건강과 몸매를 가꾸고 피부 관리로 젊음을 유지하며 과거의 아줌마와는 달리 자신을 꾸미는데 주저함이 없다. 특히 여성적인 매력을 부각시켜주는 가슴라인의 유지에도 관심이 많아 나이가 들면서 모양이 망가진 가슴을 가슴성형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떠나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지만, 노력을 기울이면 그것을 유지하고 가꿔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열려있다. 그동안 세월을 핑계 삼아 작아지고 처진가슴을 원망하면서 여성적인 매력을 포기해 왔다면, 맞춤형 가슴성형을 통해 멋지고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나 보는 것이 어떨까? 나를 위한 작은 투자는 나이가 들어도 빛나는 몸매를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군살들은 지금 당장 다이어트에 돌입할 수도 없고 몸도 마음도 시간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뱃살과 허벅지 종아리 살, 팔뚝과 옆구리 살 등 부분부분 신경쓰이던 살들이 괴롭힐 때 지방흡입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튜머센트 지방 용해 주사를 원하는 지방 흡입 부위에 주입해준다. 이 용액 자체만으로도 체내 지방은 분해되며 그 효과는 3개월간 지속된다. 그 외에도 출혈을 줄여주고 통증을 없애주며 신체에 전해질과 수분을 공급해 주는 역할도 하게된다. 더블 임펙트 고주파기계와 가느다란 고주파침을 이용하여 얕은 층의지방을 용해해 준다. 이는 표면이 울퉁불퉁해질까봐 얕은층의 지방에 대해서는 조작을 하지 않는 기존의 방법을 뛰어넘는 수술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초음파 지방흡입기(UAL), 전자동 특수진동파 지방흡입기(PAL), 레이져 지방흡입기(lipobeam)등 다양한 지방흡입 기계를 구비하여 기존의 단순 흡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부위와 지방흡입량을 개선하였다. 아주 작은 0.5cm미만의 절개창으로 흡입관을 넣어줌으로 흉터걱정도 거의 없다. 실력 있는 마취과 선생님들의도움으로 미용성형에 맞는 부드러운 마취를 받게 되시며 수술후 별도의 입원없이 당일퇴원이 가능하다다. 지방흡입이 끝난 이후에는 체형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지속적인 몸매관리와 피부를 받으실 수 있다. 2009-05-01
- <이경형칼럼> ‘한국의 나오시마’를 생각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녹슨 함석과 낡은 판자로 된 벽면에 경비행기 동체 같은 철제물, 나무 거울 간판 같은 오브제가 붙어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굴곡진 벽면이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2층으로 올라서면, 난데없는 자유의 여신상 상반신이 온 방을 채우고 있다.(오오타게 신로가 폐가를 설치작품화한 ‘혀 위의 꿈’). 옛날 미나미데라(南寺) 터에 시골 정미소 창고 같이 생긴 목조 건물이 나온다. 몇개의 꺾어진 벽을 더듬어 들어가면 그야말로 칠흑 같이 깜깜한 밀실이 된다. 공포의 암흑 방에 한참 갇혔다가 달무리 같은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 지난주 일본 나오시마(直島)로 미술 탐방을 다녀왔다. 나오시마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섬 사이의 세토 내해에 있는 3000개의 섬 가운데 면적이 8㎢로 서울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구리 제련소가 뿜어내는 공해로 황폐해진 가가와현(香川縣)의 이 섬은 주민이 한 때 200명으로 줄었다가, 한 기업가의 탁견과 주민의 협력과 건축가 예술가들의 기여로 이제는 주민이 3000명으로 늘어난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연간 30만명이 넘는 미술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단지 미술품들을 감상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버려진 섬이 어떻게 하여 불과 20년만에 미술과 건축의 천국으로 변신했는지 알고 싶어서 오는 것일 게다. 이 섬 전체에 깃들어 있는 예술혼은 미래를 볼 줄 아는 기업가의 안목,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헌신적인 노력이 이뤄낸 합작품이다. 일본의 교육·실버사업그룹인 ‘베네세’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지난 1987년 10억엔 으로 버려진 섬의 절반을 사들여 2년 뒤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섬 곳곳에 예술을 심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나오시마는 4개의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마을 곳곳의 오래된 가옥이나 신사 등을 설치미술의 작품으로 만든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다. 둘째는 자연의 스카이라인을 그대로 살려 땅속에 건축한 ‘지중(地中) 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화가 클로드 모네,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 영상설치작가 제임스 터럴 3인의 작품을 사실상 영구전시하기 위해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맞춤형 건물이다. 셋째는 베네세 하우스로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미술관이 주(主)이고, 호텔은 부대시설로 보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야요이 쿠사마의 ‘노란 호박’을 비롯한 해변 잔디밭 절벽 언덕 곳곳에 놓여있는 야외 조각품과 설치작품들이다. 나는 ‘나오시마 변신’의 핵심 요소는 기업가 후쿠다케의 기발한 발상과 섬 주민들의 자원봉사정신이라고 본다. 지난달 그가 방한했을 때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 섬에 투자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섬의 젊은이들은 모두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늙은이들만 남게 되어 마을이 공동화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다 현대미술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그룹 매출의 대부분은 학습지를 비롯한 교육사업에서 나왔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고령화에 맞춘 실버사업과 함께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곳곳에 있는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의 안내인은 이곳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다. ‘호왕신사’의 안내인은 30년 간 해군에서 근무하다 퇴역한 사람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일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미술품 감상 못지않게 마을주민들이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낡은 목조 건물의 귀퉁이에 대나무 통을 세우고 중간에 구멍을 파서 거기에 꽃을 심기도 했다. 일본 전통의 정원으로 아름답게 가꾼 개인 주택의 정원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민들의 마음이 나오시마를 성공시킨 토양이다. 세토 내해는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나 한려수도와 비슷하다. 나오시마도 거제 통영, 고흥 완도, 진도 인근의 작은 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통영의 욕지도(12.5㎢/인구 1700명)나 한산도(14.7㎢/인구 1400명), 완도의 보길도(19.3㎢/인구 2900명)등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세계적인 예술의 섬으로 가꿀 수 있다. 우리에게도 ‘경제는 문화의 시녀’라고 규정짓는 후쿠다케 회장과 같은 안목 있는 기업가, 아름다운 마을을 추구하고 봉사하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고 본다. 다른 게 있다면, 일본의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이고, 우리는 2만달러라는 경제력 차이다. 하지만 예술의 섬을 만드는 데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못된다. 문제는 생각의 틀을 크게 바꿔보는 용기다. 세기의 명화를 CF로 활용하고 있는 LG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대기업들은 ‘한국의 나오시마’를 만들 역량도, 안목도 있다고 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5-01
- 강부자의 <친정엄마와 2박3일> 우리 모두에게 큰 산과 같은 배우로 우뚝 선 그녀, 강부자. 그가 이번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고양어울림누리를 찾아온다. 이미 TV와 영화뿐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꾸준히 관객과 호흡하며 연희단거리패 ‘오구’(이윤택 연출)에서 그 특유의 고운 표정과 끼 넘치는 무대로 11년간 장수하는 레퍼토리를 만들어 낸 바 있는 그는 에서 때론 고집스러우면서도 푸근하고, 때론 큰 목소리로 화내면서도 속으로는 가슴 아파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연극 은 누구나 애잔하고 또는 가슴 뭉클하게 생각하는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렸을 때부터 잘나고 똑똑했던 딸과 그 잘난 딸에게 한 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것만 같아 항상 마음 아팠던 엄마.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친정으로 찾아온 딸과의 2박 3일 동안 둘은 과거의 회상과 서로의 독백, 그리고 사소한 말다툼을 오가며 삶과 인생, 그리고 숨겨두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조각보 이어가듯 엮어가며 펼쳐 보인다. 국민 어머니 최근 모녀 이야기로 성공리에 공연을 마친 연극 의 뒤를 이어 또 한 번 모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 줄 . 꽃잎 날리는 5월의 어울림누리에서 촉촉한 감동에 젖어보자!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딸을 낳은 것이라는 친정엄마와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딸 미란은 어느 날 연락 없이 시골 정읍에 있는 친정집을 방문한다. 모두들 타지로 떠나고 아버지도 없는 친정집에는 엄마 혼자 쓸쓸히 전기장판에 따뜻함을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혼자서는 밥도 잘 차려먹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궁상맞고 속상해 화를 내고, 엄마는 연락도 없이 내려온 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서로의 가슴속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으면서 엄마와 딸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아프기만 하다. 오랜만에 본 딸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아프고 피곤해 보임을 눈치 챈 친정엄마는 점차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던 중 여동생의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가족들이 하나 둘 시골집으로 도착하고, 이로써 가족의 따뜻함 속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 일시: 5월 23일~24일, 23일 오후 3시/7시, 24일 오후 2시 - 장소: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 티켓: R석 5만5000원/S석 4만4000원 - 문의: 1688-6675, (주)하늘이엔티 - 예매: 옥션, 인터파크, 티켓링크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