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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자 기고 의료·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박윤원 변호사 법무법인 한강 최근 ‘의료산업 활성화‘와 맞물려, 의료관광 육성과 의약복합도시 건설 등 많은 이슈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료산업은 ‘그린(Green)산업’과 함께 21세기에 가장 관심 있는 테마이자 신성장동력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있어 연구개발이 부족했었고, 정책적 지원에서도 소극적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은 반가운 일이다. 이런 관심과 지원이 결국 경제적으로는 의료산업의 발전과 일자리창출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할 것이 있다. 의료산업 활성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의료·보건 선진화’이다. 즉, 단순한 경제적 수익창출만이 아니라, 관련 산업에서 형성된 인프라가 국민보건권 향상에 기여하고, 창출된 경제적 재원으로 사회보장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정부도 ‘의료·보건 선진화’의 일환으로 현재의 정책을 추진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적절한 사회보장제도로 국민의 생존과 건강을 보호하고 있는가? 쉬운예를 들어보자. 작년 말부터 연일 석면피해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피해지역인 충남 홍성군 덕정마을에는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적지 않은 마을주민이 폐암 등 병증으로 사망했고, 현재도 석면폐, 악성중피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약물부작용에 대한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동네에서 감기약을 사먹고 피부에 홍역과 같은 발진이 나고, 심하면 화상환자와 같이 피부가 짓물러 벗겨지며 실명까지 한다. 위 두 가지 예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동안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단지 개인적으로 산업재해나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적은 금액의 보상·배상을 받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적으나마 이렇게라도 구제되면 다행인 일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법적 보호의 밖에 머물러 있었고, 현재도 그렇다. 이런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불법행위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피해자의 구제가 필요한 경우. 바로 이런 상황에서의 문제해결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물론 ‘의료·보건 선진화’라는 목표를 단기간에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작은 관심과 사회·국가적 방안모색으로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문제들도 많다. 굳이 거창하게 한 번에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석면이나 약물부작용 피해자들에게는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작은 대안들의 연속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석면피해구제특별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하지만, 언제 국회에서 입법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계속적인 국회파행으로 민생관련 중요 법률안들이 계속 방치되고 있다. 과연 국회는 석면사태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2008년 기준으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급여액이 최소 2억4천만원에서 최대 14억4천만원으로 추산된다 한다. 즉, 이 정도의 기금,예산만으로도 약물부작용 피해자들의 시급한 치료나 생계비 보조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는 1991년 약사법에 규정된 이후로 19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의료사고피해구제법 또한 20여년의 세월 동안 방치되고 있다. 진정한 선진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전력질주 중인지를. 다음 세대에게 어떤 환경과 사회시스템을 물려주고 싶은지를. 2009-02-26
-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지킴이 최종인씨 ‘죽었다 살아난 호수’ 더는 없어야 시화호와 함께 한 15년 세월 … “최근 주변 개발로 또 걱정” 경기도 안산시청 공무원 최종인(55)씨.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시화호지킴이’다. 25일 안산시청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씨는 사진기와 동영상 촬영장비를 한가득 들고 있었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비디오테이프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은 그 장비로 찍은 것들이다. 그가 15년간 한결같이 담아온 시화호의 모습이다. 환경지킴이와 시화호가 만나다 최종인씨가 시화호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건 지난 1989년 안산으로 이사하면서다. 연이어 사업에 실패한 뒤, 안산과 시화호는 그에게 안식처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1994년 방조제가 들어선 뒤 시화호는 더 이상 그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다. 공사가 시작되던 1991년부터 갯벌의 물이 눈에 띄게 줄더니 방조제 건설 뒤에는 썩은 생선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가 됐다. ‘최악의 환경재앙’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씨도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호수’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그의 몫이 됐다. 떼죽음을 당해 허옇게 떠오르는 물고기며 조개류를 사진에 담고 동영상으로 전했다. 호수는 거무죽죽한 간장 색으로 변해갔다. 1997년 환경부에서 시화호 조사에 나섰다.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17.4ppm, 대부분의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에서는 호수 주변의 오염물질을 탓했는데 시화호가 죽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갯벌이었어요. 갯벌 속에서 수천만마리에 달하는 생물체가 죽어가면서 호수도 썩어간 거죠. 썩은 생물체가 시화호 60%를 죽였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정부는 여론에 등떠밀려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포기했다. 바닷물을 막은 거대한 간석지에 농업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담수호에서 용수를 공급하겠다는 개발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7년 사실상 바닷물이 시화호에 흘러들기 시작됐다. 1999년 2월부터 조개며 바지락 등이 조금씩 살아났다. 2002년에는 시화호 상류까지 숭어들이 살기 시작했다. 시화호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골치아픈 민원인’이 공무원으로 시화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최씨는 안산시청에게 가장 골치아픈 민원인 중 한명이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고발거리를 들고 시청에 달려왔기 때문이다. 밤에는 공공근로로 일하며 사업실패를 수습하고 낮이면 시화호와 시청을 오갔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당시 박강호 안산시 환경과장이다. “1999년 박 과장님이 아예 공무원으로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그 해에 그는 일용직으로 안산시청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전문직 공무원으로 전환, 지금은 지구환경과에서 일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가 공무원으로 변신한 뒤 어려움은 없을까. 최씨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부닥치는 게 많아요. 협의과정이 정말 힘들거든요.”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시민단체 회원일 때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공무원에 대한 시각이 우선 바뀌었다. 물론 공무원들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그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시민단체 일꾼에서 공무원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시화호에서 보낸다. 사진을 찍고 새들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감시한다. 여유가 생길 때면 ‘무리한 개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세상에 전하고 있다. 각종 강의에 참여, 자신이 겪은 일들, 환경에 대한 생각 등을 가급적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고기가 넘쳐나는 호수 시화호는 더 이상 죽음의 호수가 아니다. 최씨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물고기가 넘쳐난다. 잠수부가 한번 들어가면 수도 없이 소라를 건져내온다. 하지만 최종인씨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시화호는 살아났어요. 하지만 아직은 시화호에 대한 관심을 멈출 때가 아닙니다. 어찌보면 시화호로서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시화호는 요즘 때아닌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에 골프장 5개가 들어서고 북측엔 시화 멀티테크노밸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측엔 농경지가 조성되고 있다. “당장 갈대가 걱정입니다. 정화작용으로 시화호를 지켜주던 갈대가 개발과정에서 없어지면 오염물질이 다시 시화호에 들어올 거거든요.” 최종인씨는 요즘 또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죽음의 호수로 인식이 굳어져버린 ‘시화호’라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시화호는 원래 시흥시와 화성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에요. 이름에 목적이 없어요. ‘죽었다 다시 살아난 호수’라는 뜻을 담은 새 이름이 있었으면 해요.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의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6
-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초안) 사람이 희망이다 -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 제목 : “다시는 이런 잘못 되풀이 말아야죠” 부제 : 시화호와 함께 한 15년 세월 … “최근 주변 개발로 또 걱정” 최종인(55)씨를 만난 곳은 그가 근무하는 안산시청 작은 사무실이었다. 한눈에도 상당한 고가의 카메라와 동영상 카메라를 가득 들고 서 있는 그를 사무실 문 앞에서 만났다. 사무실 안은 예상대로 시화호와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비디오테이프가 정리돼 있고 벽면에는 그가 찍은 시화호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시화호 지킴이’.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다. ◆운명처럼 만난 환경지킴이와 시화호 = 최종인씨가 처음 시화호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인연은 지난 1989년 안산으로 이사오면서 부터다. 어린 시절 시작한 전기 기술에 인생을 걸었지만 사업은 연이어 실패를 거듭한 후였다. 그렇게 찾아든 곳이 안산이었고 바닷가가 있는 안산은 그에게 하나의 위안이었다. 그가 안산에 들어올 쯤 환경운동도 슬며시 찾아왔다. 안산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던 90년대 초반 송파구에서 발생한 민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환경운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화장실 물이 그대로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면서 악취가 발생한 민원이었다. 당시 공해추방운동본부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93년 환경운동연합에 정식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연합 안산 통신원으로 자리잡게 됐고 이런 인연은 자연스럽게 방조제가 건설되는 시화호로 그를 이끌었다. “94년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찾아간 시화호는 썩은 생선냄새로 진동했어요. 이미 공사가 진행되던 91년부터 갯벌의 물이 눈에 띄게 빠지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환경사태였던 시화호 사태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부터 최씨는 정신없이 이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수없이 죽어 떠오르는 물고기와 조개류 등 시화호는 말 그대로 간장색의 ‘죽음의 호수’로 변해갔다. 1997년 환경부 조사로 시화호의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17.4ppm이었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부에서는 시화호 주변의 오염물질이 결정적이라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화호를 죽인 것은 죽은 갯벌 속에서 죽어간 수천만마리의 생물체였습니다. 생물체의 썩은 물질이 시화호의 60%를 죽였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정부는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포기했다. 바닷물을 막은 거대한 간석지에 농업단지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담수호를 통해 용수를 공급한다는 개발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97년 사실상 바닷물 유통이 시작됐다. 99년 2월에 조개 바지락 등이 조금씩 살아났다. 2002년도에는 시화호 상류까지 숭어들이 살기 시작했다. 시화호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공무원으로 = 시화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최씨는 94년 본격적으로 시화호에 살리기에 나섰다. 부상당한 새들을 세 들어 사는 집 옥상에서 돌보기도 하고 시화호를 죽이는 온갖 인간들의 행위에 맞섰다. 1994년에는 안산환경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 이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안산시청에게 최씨는 골치아픈 민원인이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고발꺼리를 들고 시청에 달려왔다. 이런 그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당시 박강호 안산시 환경과장이 밤에는 공공근로, 낮에는 시화호로 달려가는 그를 보고 아예 공무원으로 일할 것을 권했다. 최씨는 이를 받아들여 99년 일용직으로 안산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전문직 공무원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안산시 지구환경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그가 공무원으로 변신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죠. 아직도 부딪히는 게 많아요. 협의과정이 힘들어요.”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시민단체 회원으로 부정적으로 보던 공무원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물론 공무원들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그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공무원이 됐다 해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시화호에서 보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새들을 보호하고 환경오염을 감시하는 역할은 그의 몫이다. ◆“시화호 이름을 바꾸고 싶다” = 이제 시화호는 더 이상 죽음의 호수가 아니다. 최씨의 말처럼 “물반 고기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넘쳐난다. 잠수부가 들어가면 소라를 수없이 건져낸다. 하지만 아직 그가 가야할 길은 멀다. “시화호는 지금 살아났어요.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시화호는 지금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화호는 요즘 때 아닌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에 골프장 5개가 들어서고 북측엔 시화 멀티테크노밸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측엔 농경지가 조성되고 있다. “당장 갈대가 걱정입니다. 정화작용으로 시화호를 지켜주던 갈대가 개발과정에서 없어지면 오염물질이 다시 시화호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는 최근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러 저러한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들, 환경에 대한 생각 등을 이들에게 알린다. 무리한 개발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그들에게 알리고 있다. 요즘 최종인씨는 시화호의 이름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화호는 원래 시흥시와 화성시의 합성어다. “이름에 목적이 없어요. 죽었다 다시 살아난 호수라는 뜻이 담긴,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의 이름을 만들고 싶어요.” 이 때문에 최근 논란을 빚는 경인운하나 대운하도 그에게는 근심거리다. “너무 급해요. 100년을 보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당장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5
- 임춘웅 칼럼 임춘웅 칼럼 ‘선진한국’ 캠페인을 시작해보자 한국사회가 다른 어느 사회보다 심히 갈등 구조적이고 이리저리 분열돼 있어 불안정한 사회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자주 소란스럽고 걸핏하면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된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지난 일년만 해도 쇠고기 수입문제로 물경 석달여나 촛불시위가 벌어졌고 요즘 좀 조용해 졌으나 용산참사 사건이 또 하나의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언론은 물론 여론주도층이 이런 문제에 다같이 고민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분열과 갈등의 원인부터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첫째는 이념갈등의 문제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세월이 지나며 순화되기보다 역으로 강화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이념갈등이 특별히 심한 것은 남북분단과 6·25전쟁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러나 최근 이념갈등의 강화현상엔 이념 자체보다 밥그릇 싸움의 수단으로 이념이 이용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어 보인다. 이념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를 굳이 수구반동이라하고 진보를 애써 좌파세력이라고 부르는 게 다 그런 연유에서다. 다음으로는 지역갈등이다. 영남당, 호남당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고 최근엔 충청당이 나타났다. 머지않아 강원도당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념, 지역 갈등은 배타적 이기주의 이념갈등과 지역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배타적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떡을 여럿이서 나눠 먹기보다 ‘우리끼리’ 먹어야 내 차지가 많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이기심은 논리가 아니라 원초적인 본능에 가깝지만 파당을 만들자면 논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념으로 호도하고 억지논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념갈등이 심화되는 이유이다. 조선조 때 당파끼리 제례(祭禮)의 복식문제 하나로 사생결단을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엔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갈등 요인이 하나 더 추가됐다. 계층간 갈등이다. 한국 사회에 계층문제가 그동안 비교적 조용했던 것은 빈(貧) 부(富)의 차이가 적어서가 아니라 빈부가 동반성장해왔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큰 불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용산참사는 계층갈등의 일단일 뿐이다. ‘이념’이나 ‘지역’은 다분히 허구적인 데 비해 계층갈등은 실제적인 데다 폭발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요즘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불황으로 중산층이 대거 빈민층으로 내몰리게 되면 상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계층문제는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풀지 않으면 안될 성질의 것이나 이념이나 지역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여론주도층이 바른 인식을 갖고 노력하면 개선될 여지가 있다. ‘선진화’ 운동, ‘선진한국’ 캠페인 같은 것을 전개해 보면 어떨까. 이념갈등 지역주의가 다같이 다분히 조장되고 부추겨진 측면이 크기 때문에 그 허구성만 제거하면 수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의식의 선진화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말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만 바뀌어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만 바뀌어도” 한국사회가 크게 바뀔 수 있다. 갈등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권력과 부를 불공정하게, 과점적으로 장악하려는 욕구나 이기심 같은 것들은 본능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전근대적인 심리요인들인 것이다. 전근대성 극복이 바로 선진화 선진사회란 보다 합리적인 사회다. 선진사회란 보다 품격있는 사회다. 쇠망치 국회, 물대포 진압만 없어도 한국사회는 한결 품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갈등의 근원인 정치권력과 부를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제도적인 선진화도 중요하지만 의식의 선진화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의식의 전근대성으로 해서 확대된 갈등요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진화’운동의 구체적인 내용,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진화의 개념 정립에는 다양한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선진한국’이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공동체가 추구할 목표가 뚜렷해지면 사회갈등 해소에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에는 메이지(明治)시대 ‘근대화’ ‘부국강병’과 같은 국가 목표가 있었다. 우리도 산업화 과정에서 ‘잘 살아 보세’가 있었다. 이제 다시 ‘선진한국’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보면 어떨까. 잘만 되면 뜻밖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른다. 선진국은 국민소득이 3만달러는 돼야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선진화’가 국민의 소득수준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문제는 국민소득과 직결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이 될 때가 됐고 우리 사회도 선진사회로 가야 한다. (2009년 2월 25일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4
-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 권력 기상도 ① 대통령형제-이재오, 일시 휴전 … “권력은 나누지 못하는 법” ② 대통령형제-박근혜, 여론 눈치에 부분협조할 듯 … 신뢰 붕괴 ③ 박근혜-이재오, 지속적인 긴장 … 당권 놓고 정면충돌 가능성 최근 정치권에선 권력내부의 ‘화해’가 화두다. 이명박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이 이재오계 의원모임에 참석하더니 박근혜계 의원들을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박근혜계와 끝없이 티격태격할 것 같던 이재오 전 의원은 “귀국하면 책이나 쓰겠다”며 몸을 낮췄다.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여권 내부에 평화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일까. 결론적으론 “아니다”는 답에 힘이 실린다. 이명박(이상득)-이재오-박근혜라는 3대 축이 겉으론 웃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처럼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여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정부 2년차의 권력기상도를 점검해봤다. ◆대통령 형제와 이재오 관계 = 이재오 전 의원은 개국공신이다. 이명박정부 지분의 3분의 1을 갖고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상득 불출마 쿠데타’ 실패와 총선 낙선과 함께 10개월간 원치않는 외유생활을 견뎌야했다. 그가 내달 중순이면 돌아온다.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이상득 의원의 역할 축소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측근은 “이상득 의원은 이 대통령을 대신해 당과 국회를 진두지휘하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으로 돌아오는 이 전 의원으로선 이상득 의원과 적절히 권력을 나눠야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 때문일까. 이 전 의원 복귀를 놓고 한때 대통령 형제는 ‘완곡히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의원 측근은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이 정쟁 와중에 귀국하는 것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재보궐선거와 당협위원장 교체 등이 맞물린 민감한 시기에 들어오지 말고 5월 이후 귀국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얘기다. 대통령 형제가 이 전 의원과 권력을 나눌 의지가 없는 정황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대통령의 걱정을 뒤로한 채 내달 귀국을 선언했다. 일단 바짝 엎드렸다. “조용히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상득 의원도 마지못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일시적 휴전이 성립된 것이다. 하지만 휴전은 말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측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귀국 뒤 대통령특사로 세월을 낚다가 10월 재보궐선거를 노리는 수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내년초 조기전당대회를 노리는 전략이다. 이 전 의원 측근일부는 4월 재보궐선거 이후 당 쇄신론을 앞세워 당권을 잡자는 주장도 한다. 대통령 형제는 내년 7월까지 박희태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형제와 개국공신간에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형제와 박근혜와의 관계 = 이상득 의원은 지난 21일 부산에서 친박 의원들을 만나 화합을 다짐했다. 2월말 입법전쟁에서 협조를 당부하는 성격이 강했다. 잠시지만 화해 분위기가 엿보였다. 이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법안협조 여부(2월말)-재보궐선거 공천(4월초)-당협위원장 교체(4월말)-원내대표 선출(이르면 3월초 늦어도 5월말)이라는 복병이 차례로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여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양측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인 협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집권 2년차부터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상득 의원 입장에서도 국정운영에서 친박세력 협조는 필수 요소다. 문제는 화해의 영속성이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양호하다고 강변하지만 양쪽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신뢰가 깨진지 이미 오래다. 서로에게 인간적인 실망이 겹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불편한 동거를 끝내는 선언의 순간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 박근혜와 이재오와의 관계 = 양측은 부분적 또는 일시적인 화해 가능성도 엿보기 힘들다. 끊임없이 긴장감이 흐르면서 언제 충돌할 것인가만이 관심사다. 원내대표 선출이 첫 관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측은 이미 안상수 의원을 대표선수로 내세웠다. 친박에선 불편한 표정이다. 당협위원장 교체도 관건이다. 이 전 의원측은 공동위원장안을 타협안으로 내놓으면서 “안되면 경선하자”는 식이다. 친박에선 “현역의원이 맡는게 상식”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초엔 당권을 놓고 맞대결할 가능성이 높다. 양쪽 수장이 직접 자웅을 겨눌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소장개혁세력의 위상 = 대통령 형제-이재오-박근혜라는 3대 축이 지분을 나눈 당에서 개혁소장파는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모습이다. 16대 미래연대, 17대 수요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18대에선 세력결집조차 어렵다. 그나마 4선 남경필 의원과 3선 권영세 원희룡 의원 등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어렵지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당내 3대 축을 중심으로한 권력투쟁이 심해질 수록 소장개혁세력이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열리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4
- 어깨 -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 권력 기상도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휴화산 ① 대통령형제-이재오, 일시 휴전 … “권력은 나누지 못하는 법” ② 대통령형제-박근혜, 여론 눈치에 부분협조할 듯 … 신뢰 붕괴 ③ 박근혜-이재오, 지속적인 긴장 … 당권 놓고 정면충돌 가능성 최근 정치권에선 권력내부의 ‘화해’가 화두다. 이명박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이 이재오계 의원모임에 참석하더니 박근혜계 의원들을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박근혜계와 끝없이 티격태격할 것 같던 이재오 전 의원은 “귀국하면 책이나 쓰겠다”며 몸을 낮췄다.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여권 내부에 평화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일까. 결론적으론 “아니다”는 답에 힘이 실린다. 이명박(이상득)-이재오-박근혜라는 3대 축이 겉으론 웃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처럼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여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정부 2년차의 권력기상도를 점검해봤다. ◆대통령 형제와 이재오 관계 = 이재오 전 의원은 개국공신이다. 이명박정부 지분의 3분의 1을 갖고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상득 불출마 쿠데타’ 실패와 총선 낙선과 함께 10개월간 원치않는 외유생활을 견뎌야했다. 그가 내달 중순이면 돌아온다.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이상득 의원의 역할 축소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이상득 의원은 이 대통령을 대신해 당과 국회를 진두지휘한다. 당으로 돌아오는 이 전 의원으로선 이상득 의원과 적절히 권력을 나눠야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 때문일까. 이 전 의원 복귀를 놓고 한때 대통령 형제는 ‘완곡히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의원 측근은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이 정쟁 와중에 귀국하는 것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재보궐선거와 당협위원장 교체 등이 맞물린 민감한 시기에 들어오지 말고 5월 이후 귀국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얘기다. 대통령 형제가 이 전 의원과 권력을 나눌 의지가 없는 정황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대통령의 걱정을 뒤로한 채 내달 귀국을 선언했다. 일단 바짝 엎드렸다. “조용히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상득 의원도 마지못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일시적 휴전이 성립된 것이다. 하지만 휴전은 말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측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귀국 뒤 대통령특사로 세월을 낚다가 10월 재보궐선거를 노리는 수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내년초 조기전당대회를 노리는 전략이다. 이 전 의원 측근일부는 4월 재보궐선거 이후 당 쇄신론을 앞세워 당권을 잡자는 주장도 한다. 대통령 형제는 내년 7월까지 박희태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형제와 개국공신간에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형제와 박근혜와의 관계 = 이상득 의원은 지난 21일 부산에서 친박 의원들을 만나 화합을 다짐했다. 2월말 입법전쟁에서 협조를 당부하는 성격이 강했다. 잠시지만 화해 분위기가 엿보였다. 이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법안협조 여부(2월말)-재보궐선거 공천(4월초)-당협위원장 교체(4월말)-원내대표 선출(이르면 3월초 늦어도 5월말)이라는 복병이 차례로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여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양측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인 협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집권 2년차부터 정면충돌하는 모습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상득 의원 입장에서도 국정운영에서 친박세력 협조는 필수 요소다. 문제는 화해의 영속성이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가 양호하다고 강변하지만 양쪽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신뢰가 깨진지 이미 오래다. 서로에게 인간적인 실망이 겹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불편한 동거를 끝내는 선언의 순간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 박근혜와 이재오와의 관계 = 양측은 부분적 또는 일시적인 화해 가능성도 엿보기 힘들다. 끊임없이 긴장감이 흐르면서 언제 충돌할 것인가만이 관심사다. 원내대표 선출이 첫 관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의원측은 이미 안상수 의원을 대표선수로 내세웠다. 친박에선 불편한 표정이다. 당협위원장 교체도 관건이다. 이 전 의원측은 공동위원장안을 타협안으로 내놓으면서 “안되면 경선하자”는 식이다. 친박에선 “현역의원이 맡는게 상식”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초엔 당권을 놓고 맞대결할 가능성이 높다. 양쪽 수장이 직접 자웅을 겨눌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소장개혁세력의 위상 = 대통령 형제-이재오-박근혜라는 3대 축이 지분을 나눈 당에서 개혁소장파는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모습이다. 16대 미래연대, 17대 수요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18대에선 세력결집조차 어렵다. 그나마 4선 남경필 의원과 3선 권영세 원희룡 의원 등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어렵지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당내 3대 축을 중심으로한 권력투쟁이 심해질 수록 소장개혁세력이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열리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4
- 도전과 비전 진로에 대한 조언이 과연 어떤 방향에서 의미가 있는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냥 놓아두기에는 너무나 어지럽고 복잡한 행태들 속에 우리의 아이들이 내맡겨져 있기에 조심스레 참견을 해 본다.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좋으나 걱정하지는 말자. 미래는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충실 하는 것이다. 어떤 꿈을 마음속에 담고 있던 지금 시기의 공부는 인간답게 살기위한 공부이며 후에 어떤 선택을 할지모르는 불확실성의 미래에 있어서 나의 선택의 폭을 넓게 해주며 많은 기회들을 잡게 하기 위한 준비라 해두자. 이런 시대에 어떤 분야로든 전망을 묻는다면 희망에 찬 답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고의 유망직종은 바로 적성분야이다. 내가 하고픈 일.... 적성에 맞는 일이 자신에게 최고의 유망직종이다. 이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요인(혹시 우연이라도 공부가 적성이 되기를 바래보는 것은 무리일까?)이 되며 따라서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조건이 되어준다. 사회생활 중 가장 무서운 경쟁자는 자신이 하고픈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며 자기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다. 『노력하는 자는 천재를 이길 수 없고......... 천재는 스스로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미래전망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우는 지혜로운 사고를 갖기 바란다. 특정 직업의 좋지 않은 이야기도 한귀로 흘려보내자. 그 직업의 모든 종사자가 같은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즉, 그 사람의 불만일 뿐이고 그 사람의 형편이고 그 사람의 취향일 뿐이다. 들리는 정보들은 좋은 이야기만 담기 바란다. 모든 직업에 있어서 선입견을 만들지 않는 현명한 사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죽어라 경찰공무원 시험을 도전하여 정의감을 가지고 강력계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박봉에 다치고 위험해서 경찰은 그냥 시켜줘도 싫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한 10여년의 시간이 들어가는 교육과정과 인턴과정을 마치고 의사가 되어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지키며 의술을 발휘하여 다치고 병든 자들을 돕는 데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의 피나 매일보고 묻히고 자기시간 없이 밤샘이 일쑤이고 아무리 도와도 병들고 다치는 사람은 끝이 없어서 의사는 그냥 시켜줘도 싫어 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특정 직업에 대해 다른 사람의 불만과 불평은 본인에겐 참고할만한 내용이 되지 못한다. 지금 시기에는 이러한 적성분야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기 이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노력은 그 이후라도 늦지 않다. 찾아낸 나의 적성분야 내가 하고픈 일에 대해 노력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어렵고 너무 싫다면 그건 적성분야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인생은 실험의 연속이다. 실험이 많을수록 좋은 인간이 된다. 법을 어기거나 특별히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잠깐이나마 경험해보자. 또한 이런 과정에서 형이나 선배, 부모님 등의 조언을 구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적성검사로 나온 결과 보다는 부모님을 포함하여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위사람의 한마디가 현실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울 것이다. 꿈은 크게 목표는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현재의 복잡한 세상 속에서 미래의 준비를 위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단기적 계획안과 행동방침을 설정하자. 구체적인 과정 설계가 없는 꿈과 목표는 그걸 이루고자하는 동기부여 및 열정을 유도해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매번 이루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목표들이 점점 꿈에 다가가게 해줄 것이다. 과연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소리를 왜 이렇게도 오랜 세월 지식인들의 생각 속에서 표현되어져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꺼리로 버려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모두가 이 당연한 논리대로 행하여 성공을 한다면 그다지 재미있는 삶은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공허한 외침으로 마무리를 지어본다. 모두가 같은 것을 모두가 다 똑같이 잘해야 하는 세상에서 나는 나만의 멋! 나만의 고집! 을 부려보려고 한다. ■ 21C의 비전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하루에 한 시간 반 이상을 매일 한결 같은 마음으로 3년간 한 뒤에 보여 지는 것은 아닐까? 함께 도전해보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23
- 밥일꿈 아내가 남편 흉을 보는 까닭은? 신아연 주부·호주 거주 엊그제, 60대 초반 연령의 대여섯쌍의 부부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우연한 계기로 합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 이름은 ‘AB’라고 하는데 그렇게 지은 사연이 재밌습니다. 멤버들이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가서는 밤에 남편들을 ‘재워놓고’ 아내들끼리 모여 남편 흉을 보기 시작했더랍니다. 모두들 입담이 여간 아니었던지라 야심한 시각까지 ‘성토’가 이어지면서 남정네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성미가 고약하고 까다로운 것이 혹시 혈액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며 급기야는 과학적 분석에 들어갔답니다. 결과는 공교롭게도 남녀 할 것 없이 회원 전체가 A형 아니면 AB형으로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순간 박장대소하며 망설임없이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모임 이름을 ‘AB’로 지은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또한번 왁자하게 웃는 것으로 보아 40대 초반에 결성되어 일점 퇴색함없이 20년을 줄창 이어온 저력을 오늘에 되살려 가일층 매진할 기세였습니다. 하기야 남편 흉 보기로 치면 20년 세월이 무색할 뿐 아니라 어디 ‘AB’ 모임 뿐이겠습니까. 남편이란 존재가 어디 혈액형 골라가며 미운 짓을 하는가 말입니다. 특정 혈액형 구분없이 AO모임, ABO모임, BO모임, AA모임, BB모임인들 생겨 마땅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겁니다. 저한테 모임을 소개하는 것을 빌미 삼아 또 한 번 남편들을 도마에 올리고 있건만 정작 듣는 남편들은 무심하다 못해 초연하게 한 무리로 모여 앉아 식사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남편이란 존재는 이래저래 애물 덩어리- 집에 두고 오면 근심 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걱정 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 덩어리’ 라고 하더니, 아마도 그 자리가 바로 ‘짐 덩어리’ 자리라는 자각 탓에 누구하나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모임이라지만 솔직히 제 눈에도 아내들 모임에 남편들이 따라온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남편은 긴장하기 시작한다는데 그나마 집에서 혼자 곰국을 데워먹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황감스럽다는 듯 말이지요. 제 대학 선배는 남편이 뉴질랜드 사람인데도 출타할 땐 곰국을 끓여놓고 나올 정도라니 한국 아내들의 위력은 가히 국제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앞다투어 남편 흉을 보는지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 경험으로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여인들의 결속력이자, 단결력, 소속감, 친근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술에 취한 느낌이랄지,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과장되고 왜곡된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재미로 그런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이 곧 실제’라는 믿음은 적어도 남편 흉보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진사가 렌즈를 바꿔가며 실체를 변형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있듯이, 남편을 흉보는 그 순간 스스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실체와 무관한 순전히 주관적인 인식작용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는 초년 목회시절, 여신도 모임을 인도할 때 그이들의 남편은 죄다 머리에 뿔이 서너 개쯤 달린 도깨비려니 했답니다. 모일 때마다 하도 가열차게 남편 흉들을 보길래 흉측해도 이만저만이 아니겠거니 했는데 웬걸, 막상 만나보니 모두들 그렇게 점잖고 멀쩡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 때부터 ‘아, 여자들은 남편들 좋다는 소리를 거꾸로 하는구나, 설혹 탐탁치 않다 해도 저렇게 드러내 놓고 남편을 흉볼 수 있는 한 그 부부관계는 건강하다는 증거구나’라는 큰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제대로 잘 깨달으신 겁니다. 아내들이 남편을 헐뜯는 내용은 사실과는 많이 다릅니다. 더구나 남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험담은 그저 여자들끼리 친해지자는 말의 향연일 따름입니다. AB 모임 회원들의 결혼 연수는 각자 최소 30년이며, 아내들이 남편 흉을 보아온 경력도 얼추 20년에 가깝습니다. 모일 때마다 아내들의 결속력과 친분이 그 정도라니 행복한 모임 아닙니까. 바로 옆에 앉아서 번갈아 가며 도마에 오르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남편분들의 20년 내공은 또 얼마나 멋집니까. 영원하리, AB 모임! AB모임의 영원 무궁을 기원하는 것으로 그 날의 밥값을 대신합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2-18
-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 넘치는 남포동 거리에 추억을 싣고 남편 친구 K씨, P씨는 대학시절 함께 남포동 미팅장소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들이다. 모두 깨졌지만 유일하게 성공해 결혼까지 한 커플이 우리 부부다. 눈치 없이 꼽사리 끼어 데이트를 방해하던 이들이 마나님을 모시고 새해 첫 주말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모두들 옛날이야기로 하하 호호 배꼽 잡다가 추억속의 자갈치 곰장어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나간 추억과 그 추억의 장소들은 영원히 그 시절에 멈추어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것 같다. 80년대 대학생 시절, 남포동을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사람들이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기투합해 모두들 남포동으로 go!go! 깡통시장의 유부전골과 단팥죽남포동은 대형 패스트푸드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최신 유행의 거리지만 곳곳에 추억의 음식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제일먼저 들린 곳은 ‘외제골목’이라고 불리던 수입상품 전문 깡통시장. 6·25 전쟁으로 부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들이 먹던 통조림 등 깡통음식들이 미군부대에서 대거 반출되면서 이 깡통 물건들을 난전에서 사고팔다보니 ‘깡통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예나 지금이나 깡통시장은 커피 술 과자 옷 등등 꼬부랑글로 씌어진 온갖 수입산 물건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짜 같은 짝퉁도 많아 더 신기하다.깡통시장하면 빠뜨릴 수 없는 먹거리는 단팥죽과 유부전골.외지 사람들도 물어물어 찾아오는 깡통골목의 ‘할매유부전골’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다. 유부전골을 주문하니 당면과 고기, 야채가 터질 듯 채워져 있는 유부와 어묵을 그릇 가득 담아주는데 개운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그 국물 맛을 잊을 수 없다.다른 곳보다 30% 이상 싸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이 많아 이것저것 사다보니 어느새 까만 비닐봉지가 여러 개. 꼭 도매시장에 물건 떼러 온 사람 같아 웃음이 나왔다.뿌리칠 수 없는 유혹.... 먹자골목의 노점 음식들국제시장을 지나 드디어 먹자골목으로 향하는데 돌고래 순두부집이 눈에 들어온다. 600원이던 순두부가 20년 넘게 지난 지금은 3천원. 그래도 싸다. 낙지볶음과 수중전골을 파는 개미집도 생각났다. 대학시절 남편과 연애할 때 자주 갔던 곳이다.드디어 먹자골목에 도착. 일명 ‘리어카 골목’으로 불리는 먹자골목의 노점 음식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오징어에 야채를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오징어무침, 떡볶이, 지짐이, 굵직하게 썰어 놓은 순대 등 어찌 그리도 변한 게 없는지... 먹자골목은 또한 아이쇼핑을 하기에 ‘딱’인 곳.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 칠 수 없듯이 길 양쪽에 죽 늘어선 옷집들을 우리 아줌씨들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모습이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났다. 남편과 남편 친구인 K씨, P씨, 모두들 까만 비닐 봉투 들고 마나님 따라 다니느라 고생이다.그날 남편들의 인내심 정말 대단했다. 위에서 부터 쭉 훑고 내려가는 우리 아줌씨들 때문 셋 남자들 길거리에 서서 오들오들 떨기까지 했으니...밤이 더 아름다운 광복동거리새로 단장된 광복동 거리는 낮보다 밤이 더 눈부시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노점상 불빛, 제각기 개성적인 인테리어를 뽐내는 가게들, 광복동 밤거리는 청춘 남녀들을 비롯해 기성세대들의 가슴에도 낭만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지난 19일 부터 ‘제1회 광복로 빛의 축제’가 열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각종 조명예술품들이 밤거리를 화려하게 밝히고 길거리 무대에서는 음악공연도 열리고 있어 더욱 활기찼다.추억의 빵집 ‘고려당’은 사라졌지만 쫄깃한 면발이 좋은 원산면옥과 ‘할매집 회국수’는 아직 그때 그 자리에 있다.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양은그릇에 소면을 담고 상추, 양배추와 함께 가오리 회를 댓 점 올려주는 회국수는 혓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엄청 맵다. 옛날만큼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호떡집에 불났다!남포동 PIFF광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극장거리다. 부산극장 맞은편에 18번 완당집 간판이 보인다. 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얇은 피가 특징인 만두집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왜 그리 배가 허한지, 또 영화와 주전부리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극장주변은 ‘주전부리의 천국’이다. 우선 오징어포 노점에는 여러 종류의 오징어포와 문어다리, 쥐포, 오징어다리 버터구이, 고구마튀김, 군밤 등속을 판다. 아가씨들을 위한 과일 관련 노점도 많다. 오렌지,파인애플,키위,바나나,멜론,딸기 등으로 과일꼬지를 만들어 팔거나 생과일 주스를 파는 노점도 많다. 호떡 떡볶이 김밥 등 온갖 먹을거리들로 넘쳐난다. 특히 호떡집에 불(?)난 것도 볼 수 있다. 길게 줄을 서야만 하는 호떡집이다. 호떡 안에 구멍을 내어 속에다 설탕과 견과류를 넣어주는데 쫀득하면서도 고소하다.자갈치 시장의 곰장어에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는 계속되고사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자갈치 시장에서 곰장어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다. 자갈치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꼼장어구이''아닌가.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포장마차 노점에서 짠 바다내음 맡으며 불판에 올려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 먹는 곰장어 맛은 자갈치 시장만의 매력이었다. 큰 양푼에 살아 있는 곰장어를 토막 내 대파, 양파 그리고 벌건 고추장양념을 듬뿍 넣고 쓱쓱 비벼서, 구멍 숭숭 뚫린 불판에 올리면, 꿈틀거리는 곰장어가 징그럽지만 입에 넣으면 매콤함과 오독오독 씹히는 질감에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그 구수한 냄새가 온 자갈치시장을 뒤덮다시피 했다. 신동아회센터를 지나 충무동 방향의 바닷가에는 수많은 곰장어 가게가 줄지어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연탄불이 아닌 가스불이란다.남편이 가끔 간다는 곰장어 집(오대양)에 갔는데 역시 2009-01-29
- [임춘웅 칼럼]북핵 해법, 하나의 공상(?)(임춘웅 2009.01.28) 북핵 해법, 하나의 공상(?) 임춘웅 (본지 객원 논설위원)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서 지루하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북한의 핵문제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있을까 하는 희망적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이번 핵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7년째에 접어들었고 93년 북한이 NPT(핵확산 금지조약) 탈퇴로 시작된 1차 핵파동부터 따지면 16년째가 되기 때문에 이제는 무엇인가 결말을 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막연한 소망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1차 핵파동 때 집권했던 정부로 파동 2년이 채 안돼 북한과 핵협상을 마무리했던 실적이 있다. 이런 여건들이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 기대와는 달리 북한과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벌써부터 기싸움을 시작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3일 외무성 담화문을 통해 “우리가 9·19 공동성명에 동의한 것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아니라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원칙적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의 근원적 청산 없이는 100년이 가도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벌써부터 북미간 기싸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도 현지시간 같은날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부시 정부 때의 원칙적인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북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유세 과정에서 북한의 핵검증에 앞서 북미간에 이익대표부를 먼저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미 압박용 애드벌룬을 띄웠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라고 해서 문제를 호락호락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일 것이다. 민주당의 클린턴 정부시절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까지 계획했던 사실이 있음을 기억해 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라도 전략적 사고의 틀을 바꾸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의 순서만 바꿔도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북미간의 핵게임을 유심히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게임의 실체가 매우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 공히 한반도의 비핵화란 원칙에는 동의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버리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반면에 미국은 북이 핵을 포기하면 북이 기대하는것보다 훨씬 큰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이란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며 테러지원국 지정(이미 해제됐음), 적성국 교역법 등으로 북한을 경제적으로 옥죄고 있는 정책을 말한다. 미국이 말하는 더 큰 보상이란 북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망라하는 것임은 물론일 것이다. 그런데 왜 결말이 나지 않는 것일까. 상호 불신 때문이다. 불신의 골이 깊어 서로가 “네가 먼저”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의 늪을 넘어 보자고 마련한 대안이 ‘행동대 행동 원칙’이다. 하나씩 하나씩 주고 받으며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핵시설 불능화 단계에 이르는 데 무려 6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핵 폐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일까. 북한이 먼저 핵을 버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미간 제네바 핵협상이 미국의 일방적 파기로 폐기되는 경험을 한 북한이 미국을 믿고 먼저 핵을 내놓을리 만무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을 진심으로 제거하려 한다면 미국이 먼저 북의 요구들을 충족시켜주는 방법이 있다. 북의 안보불안을 없애주고 북한에 대한 각종 경제제재를 풀어주는 것이다. 북한의 안보불안 요인은 북한 내부에 있지 외부에 있는 게 아니지만 북측은 군부를 달래기 위해서도 미국의 안보보장이란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발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북침할 이유가 없는 한 못해줄 것도 없을 것이다. 남는 것은 경제제재 뿐이다. 핵제거가 화급하다면 그 정도 양보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북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그에 상응한 보복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6자회담을 통해 북이 약속된 기간 내에 핵폐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5자가 완벽하게 대북 응징에 동참하기로 서약을 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은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른바 벼랑끝 전술 이외 다른 대응수단이 없으나 미국은 보복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해법이 하나의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발상을 바꾸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순서만 바꿨을 뿐인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