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18년 정성을 뜨겁게 달궈진 돌솥에 담아 눈, 코, 입을 만족시키는 돌솥밥을 만나다 나혜석거리에 들어서자 ‘명가’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이는 통유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명가’의 주 메뉴는 돌솥밥정식이다. 전채, 주요리, 후식으로 이뤄진 정식은 영양돌솥밥과 해물돌솥밥 두 가지로 돌솥밥의 종류만 다르다. 전채로는 죽, 샐러드, 전과 튀김, 계란찜이 나온다. 진하지 않은 간과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전채를 다 비울 즈음, 20여 가지의 찬과 함께 돌솥밥 정식이 한상 가득 차려진다. 하양, 노랑, 빨강, 초록, 검정, 갈색 등 알록달록한 색깔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음식들을 사진에 담는 동안, 돌솥밥에서 풍기는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군침이 저절로 돈다. 해물돌솥밥은 새우와 굴, 다시마, 무 등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통통한 새우와 굴은 신선한 탓인지 특유의 비린 맛조차 없다. 영양돌솥밥은 인삼, 밤, 콩, 호박씨, 은행 등이 어우러져 고소하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후식으로는 계절음료가 나오는데, 가을에 접어들면서 감 주스가 상에 오른다. 감 주스는 ‘명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짭짤달콤한 맛이 신선하다. 연시보다도 맛있다. 전체적으로 ‘만원의 행복’이라고 할 만큼 만족스런 맛이다. 최상품으로 승부하는 정직한 고집의 맛 ‘명가’의 장영석 대표는 한정식과 돌솥밥의 18년 요리 한 길을 걸었다. 현재의 돌솥밥정식에는 그의 지난 세월이 녹아 있다. 정식에 따라오는 20여 개의 찬들은 맛과 색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정갈하다. 그 자체로 ‘작은 한정식’이다. 남다른 미각을 타고난 장 대표는 식재료에 대해서는 원칙을 고집한다. 그가 생각하는 맛은 ‘신선한 재료와 적당한 양념과 간 그리고 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추가루나 참기름, 젓갈 등은 최상품으로 씁니다. 양념은 주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편이나,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정품을 쓰는 게 오히려 ‘득’이 됩니다.” 돌솥밥은 들어가는 재료 중 한 가지만 잘못되어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늘 까다롭게 재료를 고르는 장영석 대표. 영양돌솥밥에 들어가는 밤은 일일이 껍질을 벗겨서 사용한다. 워낙 많은 양이 사용되기 때문에 미처 밤을 까지 못한 경우에는 고구마 등 대용품으로 밥을 짓는다. 작은 재료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장 대표의 정성이 ‘명가’만의 특별한 돌솥밥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Tip 문의 : 031-238-2288 위치 : 효원공원 건너편 인계동 나혜석 거리에 위치 메뉴 : 영양돌솥밥정식, 해물돌솥밥정식 외 영업시간 : 오전 11시 30분 ~ 오후 10시(설, 추석 연휴기간만 쉼) 인터뷰 - 명가 장영석 대표 전채만으로도 배부르겠다는 말에 ‘명가’의 장영석 대표는 “돌솥밥은 미리 만들어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주문하고 15~20분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시장기를 달래고 입맛을 살려주는 음식이 전채”라고 했다. 강릉의 돌솥밥을 먹고 난 뒤, 보름 동안 수십 가지 방법을 고안해 맛을 재연했던 때가 벌써 18년 전 일이라는 장 대표. 이제는 냄새만으로도 제대로 밥이 지어지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로 음식을 대한다. 식품영양학과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맛과 영양을 모두 고려한 최고의 돌솥밥 맛’은 그의 손과 입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김선경 리포터 escargo@empa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13
- <그림편지> 영산강-2 영산강-2 물굽이 따라 흐르는 진저리치는 세월 나주 영산포에서 구진포, 무안 식영정까지 … 호남평야 굽이치는 물굽이 … 하구의 물너울 사이로 힘을 내며 멸치젓을 실어 오던 못 생긴 똑딱선은 누이가 개짐을 빨던 그 근처의 모래톱에 물없이 먹은 된밥처럼 종종 걸리곤 했다 뱃놈 총각은 누이의 빨래터로 음(淫)한 휘파람을 속옷처럼 휙휙 벗어 던졌다 … 달밤이면 불 같은 사랑을 참지 못한 꽃게들이 예쁘게 차린 술집여자 모양 살을 섞으러 모여들었다 … 영산포에서 쌀을 바꾸어가던 뱃놈은 하구언공사로 뱃길이 막히는 바람에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다 바보 같이 소금을 먹지 못한 꼬막과 고둥은 소금처럼 허옇게 야위어 죽고 누이는 열 아홉 나이보다 한 개의 사랑 때문에 울었다 고 임찬일 시인의 ‘고향의 강’이란 시입니다. 영산강 하구가 하구둑으로 막히기 전과 막히던 시절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전설처럼 되살아납니다. 고 임찬일 시인은 이번 5대강 기행에서 만난 최고의 시인입니다. 백호 임 제 선생의 후손인 그는 백호의 기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천재시인이었습니다. 1986년 ‘월간문학’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임찬일 시인은 같은해 중앙일보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스포츠서울 시나리오 공모 당선 등 3관왕을 기록했습니다. 1992년에는 동아일보 신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6년에는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소설 시 시조 시나리오 등 주요 장르를 망라하는 5관왕을 차지했습니다. 문단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웠던 그는 47세였던 2001년 소설 ‘임제’(전 2권)를 탈고한 직후 지병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9세의 나이로 요절한 백호 임 제 선생을 뒤따른 것인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죠. 0000000000000000 임찬일 시인의 고향은 나주 영산포 하류 마을인 다시면 가흥리입니다. 구진포 임제기념관이며 물곡사(勿哭辭) 시비, 임제 묘소가 있는 신걸산(다시면 가운리)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죠.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오면/ 난 그쪽 하늘부터 바라본다/ 전라도 나주땅 다시면 가흥리/ 거기는 살아 생전에 바꿀 수 없는/ 내 서러운 본적지’(‘본적지’ 중) ‘저물어가는 포전에서/ 누이의 허벅지처럼 희고 긴 무를 뽑아/ 손아귀로 비틀어 남몰래/ 감추듯이 강물에다 내던지면/ 시퍼렇게 입술을 물고 쳐다보던/ 강의 눈빛/ 허기를 타고 올라오는 무트림에/ 내 가난한 시절은 진저리쳤다/ …’(‘누이가 있는 강’ 중) 영산포를 지난 영산강은 민물장어로 유명한 구진포, 임제기념관을 거쳐 임찬일 시인의 고향인 가흥리로 흘러듭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요즘 들어 유명한 관광지로 자리잡은 ‘주몽 촬영장’이 영산강 옆 절벽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일대 영산강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은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금강정 뒤로 난 산길을 따라 능선을 오르는 겁니다. 이 능선 절벽 위에 서면 멀리 영산포에서 구진포, 임찬일 시인의 고향마을인 가흥리 일대까지 세 번을 크게 굽이쳐 내려오는 영산강 본류의 대장정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이 지점을 안내해준 사람은 영암군청 기획예산실의 천재철 계장입니다. 이번 영산강 취재는 천 계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이호신 화백과 제가 내려오기 전 영산강 중류에서 하루에 이르는 중요한 문화유적과 전망지점을 미리 답사하는 등 철저한 준비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천 계장은 김홍남 전 중앙박물관장과 함께 영암 구림마을 문화복원사업을 추진했던 핵심 실무자로 문화 전반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습니다. 또 고등학교 때 영암에서 영산포가는 버스를 타고 영산포에서 걸어 임 제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을 정도로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또 3년 동안 이호신 화백에게 영암 지역을 안내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이 그림들을 모아 ‘영암의 빛과 바람’이란 전시회까지 성사시킨 천 계장은 정말 요즘 보기 드문 공무원이었습니다. 가장 고마웠던 것 중 하나는 천 계장이 3박4일 동안 어머니가 사시는 영암의 고향집을 숙소로 빌려주었다는 겁니다. 사실 남자들끼리 며칠씩 다니는 취재에서 제일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숙소입니다. 샤워시설 정도가 있는 민박집이면 딱 좋겠는데, 그런 숙소 구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2007년 여름 낙동강 취재 때 신문사 선배와 대구 화원나루 옆 모텔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인터넷은 써야겠고 주말이라 방이 별로 없었죠. 겨우겨우 방을 구해 들어갔더니 방을 다 차지한 디럭스침대가 하트 모양에 분홍빛이더군요. 00000000000000 영산정 일대 영산강은 지번과 지형이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금강정 북쪽 영산강 건너에 있는 석관정은 나주시 다시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더 하류로 내려가면 영산강 서쪽은 함평군 학교면이 되고, 동쪽은 나주시 동강면이 됩니다. 동강대교를 지나면 영산강 서쪽은 이제 무안군 몽탄면이 됩니다. 항공기에서 볼 때 ‘영산강의 한반도지형’으로 보이는 장구부마을 물굽이, 영산강 중류의 도도한 물줄기를 전망할 수 있는 식영정 정자도 모두 무안군 몽탄면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대 영산강 물빛은 온통 짙은 갈색입니다. 눈으로 그냥 봐도 수질 상황이 심각합니다. 환경부 수질측정에서 영산포(구진포나루) 지점의 수질은 2000년 이후 BOD 5~8ppm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구 이남의 낙동강보다 훨씬 더 나쁘고 농업용수로 쓰기에도 께름칙한 수준이죠. 영산강 수질이 이렇게 된 것은 영산강하구둑을 막은 뒤부터입니다. 서해바다가 만조일 때 영산포 일대까지 강물이 역류하고 여름엔 수해도 심각하다고 해서 1981년 12월에 하구둑을 막았죠. 그러나 그 뒤로 강 흐름이 막히면서 수질오염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임찬일 시인은 ‘종옥이의 강’이란 시에서 영산강의 변화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던 종옥이는/ 산골 촌놈이란 놀림이 죽기보다 싫어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해 여름방학에/ 맨 먼저 보란듯이 강물로 뛰어들었다가/ … / 종옥이는 물속 아래로 내려가 아직도/ 싱싱하고 탐스러운 꼬막을 잡고 있는 것일까/ … / 종옥이의 비명처럼 하얗게 죽은 고기들이 떠오르고/ 그것들을 떠메고 가는 강물에 발을 담근 채/ 갈대들이 일제히 상복을 입고 서서/ 만장 깃발 같은 갈꽃을 흔들고 있을 뿐/ 내가 아는 종옥이처럼/ 고향의 강도 지금은 죽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10
- [내일시론]숫자로 밀어붙이려 해서야(정세용 2008.11.11) 숫자로 밀어붙이려 해서야 세월은 정말 빠르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제1당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정기국회가 벌써 중반이란다. 국정감사도 끝났고 대정부 질문도 끝났다. 언제나 그랬다. 실망이었던 것이다. 18대국회는 과거 국회와 달라질까. 기대반 우려반이었건만 현재는 실망이다. 거대여당 한나라당은 포용력도 리더십도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은 미국발 경제위기 속에서 민생을 살려달라고 아우성인데 지난 10년을 청산하겠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겉으로는 사회적 대타협을 외치면서도 덧셈정치보다는 뺄셈정치를 하는 등 공존공영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을 진정한 국정파트너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정가 분석이다. 민주당 등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 속에서 국민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불만이 높은데도 지지도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민생법안은 산적해 있는데 정치적 다툼만 가득하다. ‘국회 개혁안’ 과감히 수용, 일하는 국회 됐으면 남은 정기국회도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월스트리트 발 경제위기에 정치권과 국민들이 똘똘 뭉쳐 이를 헤쳐가야 하건만 여야는 이해관계 속에서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많다. 쌀 직불금 국정조사의 경우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잘못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고 민주당 등 야당은 이명박정부의 실정에 조사를 집중시킬 방침이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싸움터로 변한 형국이다. 법안 심사와 새해 예산안 처리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규제완화와 감세가 대한민국호를 살리는 첩경임을 강조하고 있고 민주당은 ‘부자감세법’과 국정원법 개정안 등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할 것임을 공약하고 있다. 새해예산안 처리와 중요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격돌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민의를 수렴해 법안을 만들고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건만 현재로서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다툼이 예고된 것이다. 정말 바뀌어야 할 것 같다. 21세기 유일강국이라는 미국도 변했다. 투표권도 없던 흑인이 대통령이 됐는데, 불과 40년만에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라는 위업을 달성한 우리 국민이 정치라고 국회라고 개혁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마침 상시국회를 통해 싸우는 의원이 아닌 일하는 의원을 만들기 위한 국회 제도개선위 1차안이 나왔다. 이 안에 따르면 매달 1일 임시회는 자동 개회되고 국감도 연중 실시된다. 상시국감은 9월 1일 이전에 마무리해 이를 토대로 예산안과 법률심사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했다. 만시지탄인 것 같다. 그 언젠가 한 기업인은 기업은 2류이나 정치는 4류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지난 1950년대나 1960년대 막걸리 정치, 고무신 정치에 비해 오늘의 정치는 많이 투명해지고 깨끗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은 우리나라 각 분야 중에서 발전할 부분이 많고 쇄신해야 할 곳으로 정치 분야를 지목한다. 상시국감을 통해 국감 결과를 법안 심사와 새해 예산안 심의에 반영하고 매달 국회를 열어 일하는 국회의원상을 만든다는 개선위 시안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 같다. 이번 개선위안을 국회는 과감히 수용해 싸우는 국회가 아니라 일하는 국회상이 정립됐으면 한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불황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값이 폭락하면서 소비가 얼어붙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복지 분야의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서민들의 불안과 고통은 커지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가 올라 하루하루 지내기가 버거운데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국민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 민생정치 원해 한미 FTA법안 처리, 종합부동산세 문제,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개혁, 국정원법 개정안 등 정기국회 현안은 많다. 그러나 올해는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 한파에, 몰려오는 겨울에 몸과 마음이 추운 서민들을 위해서도 민생정치 대화국회가 절실하다. 덧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서민들의 추위도 어느 정도 물리칠 수 있다. 정치권이 국민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들을 살리려고 애쓸 때 2008년 겨울은 춥지 않을 수 있다. 한달여 남은 정기국회 기간 동안 숫자로 밀어붙이는 정치보다 대화와 타협하는 정치, 민생정치를 보고 싶다. 정세용 논설주간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11
-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출간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86) 여사가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한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출간했다. 자전적 수필집 ‘나의 사랑·나의 조국’(1992)과 1980년 당시 감옥에 있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를 묶은 서간집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1998)에 이은 이 여사의 세 번째 책으로 집필을 시작한 지 4년여만에 완성했다. 1922년 9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태어난 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치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험난한 세월을 거쳐 퍼스트레이디가 되기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 온 이 여사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함께 펼쳐진다. 책은 삶의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동지로 40여년을 함께 한 김 전 대통령과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지팡이를 짚고 무거운 걸음을 떼는 남편의 뒷모습이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네 차례 대선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1971년 95만표 차이로 패했던 첫 대선도전에 대해선 ‘전쟁에서 이기고 전투에서 진 선거,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진 선거’라고 평하며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1987년 두 번째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투표 사흘 전 보라매공원에 25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데 흥분한 것이 독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투표 이틀 전 후보 단일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데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지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1992년 세 번 째 대선에 대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보았으며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대선에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고 했다. 지식인으로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이 여사의 이야기는 또 한국 여성운동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이화고녀 졸업반 때 당시 조선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활란 박사처럼 되자는 꿈을 갖고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갓 남녀공학이 됐던 서울대를 다니며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 이 여사가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이화고녀에서 보낸 4년으로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거물정치인의 아내, 여성운동가로서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여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미쓰코시 백화점에 가서 신식 물건들을 눈요기했고 사철 내내 아름다운 교정을 거니는 여학교 생활이 가장 행복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졸업식 때 받았던 ‘종교상’이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하다고 회고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재야정치인 계훈제 선생과 한 때 부부의 연을 맺을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는 지인들 사이에선 알려진 내용이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다. 대학 졸업 무렵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위원장이었던 계 선생을 소개받은 이 여사는 그가 추구하는 꿈에 끌렸고 갓 해방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청춘으로서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지적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폐결핵에 걸렸고 당시 미국 유학과 연민의 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유학을 결정했지만 미안함과 병든 이를 돌보지 않은 죄책감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남편의 평생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생전에 세 번 육 여사와 만났다는 이 여사는 육 여사에 대해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의 야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롭다. 1982년 남편의 석방을 요청하러 처음 만났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면서 “때로는 바짓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라고 평한다. 또 친일 논란이 일었던 김활란 박사에 대해서는 “그가 정작 친일파였다면 일본어에 서툴지 않았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대목도 있다.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붙인 제목이다. 이 여사는 자서전 출간을 기념해 11일 서울 63빌딩에서 김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연다. 연합뉴스 황희경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10
- 한국화가 芝鄕 이숙자의 ‘삶과 색’ 고양시에 사는 즐거움의 하나라면 많은 예술가들이 바로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아주 가까이에서 대가의 작품이나 공연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11월 1일부터 12월 1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숙자의 삶과 색-한국 채색의 재발견’은 한국 채색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미술계의 한 획을 긋고 있는 미술계의 대가 이숙자 화백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 이 화백은 10여 년 넘게 중산동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전시에 앞선 오프닝 행사로 바쁜 이숙자 화백을 아람미술관에서 만났다. 평생 하고 싶은 일에 매달려 온 작가에게 세월도 비껴간 것일까? 1942년생, 40년 넘게 한국채색화의 전통성과 현대적 해석에 천착해온 작가의 모습은 그가 그린 청보리처럼 청정하고 이브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대 시절부터 한국화, 그 중에서도 사실화 계열의 채색화에 천착해 왔다. 1972년 제21회 국전 특선 수상을 시작으로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에는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1994년에는 제5회 석주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20여 회의 개인전과 수십여 차례 초대전과 단체전을 가진 바 있는 그는 고려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여 년 넘게 보리밭과 이브라는 주제에 매달려왔다. ‘보리밭과 이브의 화가’로 불리는 그는 잊혀져가는 한국의 전통 채색화를 고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재창조시킨 대표적인 한국화 작가로 평가된다. 그동안 작가의 많은 전시회가 있었지만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초기 작품부터 완숙의 경지를 더욱 생동감 넘치는 보리밭으로 표현한 최근작까지 시대별 특징이 드러나는 80여 점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깊다. 한국 채색화의 현대적 계승, 한국적 미학의 정체성 추구 이숙자는 한국미학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다. 우리의 전통 회화는 수묵과 채색이 공존해왔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채색화는 우리의 전통과 무관하게 일본의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인식되어 해방 이후 미술계에서 배척되어왔다. 이런 사회 풍조에서 한국 화가들은 한국의 전통회화로 수묵화를 주로 그렸고 주요 미술대회의 수상도 이들이 선점하면서 수묵화가 점차 한국화의 주류처럼 보여 지게 됐다. 그러나 작가는 채색화가 삼국시대의 고분벽화, 고려시대의 섬세하고 화려한 불화, 그리고 조선시대 민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으며 명목을 유지해온 전통적인 한국화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천경자, 박생광 선생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채색 기법을 습득하고 김기창 선생에게 사군자를 직접 사사 받으며 한국적 미감을 전통적인 채색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해왔다. 한국의 채색화는 아름다운 색채를 드러내는 재료의 속성 때문에 매우 오랜 인내와 시간, 그리고 장인적 기질을 요구한다. 작가는 몇 년씩 걸려 한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열정과 집념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보리밭과 이브에서 한국적 서정을 만나다 작가의 그림에서 전환점이 된 보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7년 우연히 경기도 포천에서 청맥밭을 만나면서부터. 이후 10여년 넘는 긴 시간동안 보리이삭과 보리수염의 끊임없는 탐구로 보리알 하나하나까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작가 특유의 부조기법을 창조하게 됐다. 이 기법은 전통적인 채색 안료인 석채(石彩)를 이용하여 선명한 색상과 입체적인 마티에르를 표현한 것으로 작가의 보리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없는 장려상 수상과 1980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한 작품도 보리였을 만큼 작가에게 보리밭은 늘 새로운 감동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주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작가의 동경은 여성 누드화 연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 누드화는 여체를 꽃과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작가의 심경이 담겨있다. 작가는 여성의 음부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대해 음부를 식물로 표현하자면 꽃이 되기 때문에 가리면 그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적나라하게 체모를 드러내고 건강하게 자연의 일부로 몸을 드러낸 이브는 남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곱고 다소곳한 감상용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만물이 소생하는 대지의 여신이자 어머니로서의 강인한 여성이다. 이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보리밭과 이브의 작가로 불리지만 그가 보리밭과 여체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90년대에 훈민정음과 석보상절의 판본체 디자인의 미적 감각에 주목하여 등의 연작으로 보리밭을 중심에 두되 그 변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으며 군우 시리즈, 일하는 여인 시리즈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특히 그가 북한여행을 통해 제작한 은 14.5m에 이르는 화폭 속에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장대한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작이다. “내 그림이 보리밭과 인체누드로 집약되지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 어떤 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작정은 없다. 보리밭과 이브도 한국적 색채를 가장 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었을 뿐”이라는 작가는 앞으로도 한국적인 미적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테마를 찾아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의도적이 아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숙자 화백. 이번 가을 여러 기관과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그의 귀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 등, 이번 전시는 한 예술가의 개인적 삶과 창작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문의 1577-7766)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7
- [신문로]고개 들고 세금 얘기하는 정부(신명식 2008.11.07) 고개 들고 세금 얘기하는 정부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금폭탄’으로 곤경을 치를 당시 유력한 대통령후보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금 이야기를 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좋은 곳에 아껴서 쓰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걸 못한다. 세금 많이 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느냐.” 이 말을 듣고 ‘을의 입장에 오래 서보아서 국민들 정서를 읽는 감각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 착각이었다. MB 정부는 세금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보다 조심성이 더 없다. MB 정부는 ‘강부자’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출범했다. 그만큼 혼났으면 몸조심 말조심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종부세를 대폭 인하하겠다면서 서민들의 재산세가 인상될 가능성을 언급해서 혼쭐이 났다. 이어서 소비증가와 별 연관이 없는 상속세 인하를 꺼내들었다. 점입가경으로 실물경제를 부양한다면서 부동산투기를 부추길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검토를 내놓았다. 경제수장의 이런 발언은 부자들의 푸념을 대변하는 것으로 들렸다. 표현하는 방식도 매우 고약했다. 강만수 장관은 국회에 나와서 종부세를 “시대의 아픔”이라고 했다. 또 “어떤 나라가 50% 60%씩 그렇게 양도세 중과세를 하냐”고 큰소리를 쳤다. 부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항변을 하는데, 도무지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중과세 폐지는 한나라당에서도 시기가 안 좋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부자들의 푸념 대변하는 장관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은 토목건설에 집중해서 건설을 살리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도 국가부채가 311조원인데 내년에는 사상최대 규모인 24조원의 재정수지 적자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차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할 빚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심만 잔뜩 썼지 국민들에게 정확한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도 한몫 안겨줬다. 공무원연금은 지금도 국가예산에서 연간 1조2000억원 정도를 지원해준다. 10년 뒤에는 연간 6조원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4일 국무회의는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적자는 모두 세금으로 채워줘야 한다. 정부가 이렇듯 하나라도 더 있는 사람 중심으로 세금을 쓰다 보니 지방 서민 중소기업은 온기를 느끼기 힘들다고 한다. 이럴 때 고용 늘리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우량 중소기업에 법인세를 대폭 인하해 주어야 한다. 세금으로 건설회사 유동성을 지원해주려면 서민들이 바가지 쓰지 않고 내집을 마련할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한다. 분양원가 공개가 제대로 됐다면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가 16만채에 달했을까. ‘좌파정책, 시장경제 부정’이라는 주장에 밀려 죽도 밥도 안된 짝퉁 분양원가 공개 정책 때문에 분양가는 5년 사이에 두배나 올랐다. 정부의 이런 편식 편애는 당분간 고쳐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때 제정신 가진 참모나 정치인들이 직언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국정운영에 창조성 있고 알찬 내용을 채워줘야 한다. 국민을 진짜 주인으로 섬기는 봉사정신을 보여야 한다. 부자들의 불만과 서민의 고통을 얼음장처럼 냉철하게 분석해서 균형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서민 고통, 부자 불만 같이 봐야 윗사람 눈치 보는 정치인 관료들에게 신영복 선생의 글 한구절 들려주고 싶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 30 정도의 여유, 여백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창조적 공간, 예술 공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거짓이나 위선, 아첨이나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 곳곳에 앉아 있는 함량미달의 불량품은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제 눈에 피눈물이 나는 법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러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7
- 우리 동네 반찬가게 추천이요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이 많아진 요즘, 반찬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네 반찬가게가 있어서 행운이라는 이들과 반찬을 한 번도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이들로 나뉘는 것이 요즘을 살고 있는 사람살이의 트랜드라고나 할까. 자기 집에서 먹는 반찬처럼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손맛이 담긴 동네 근처의 반찬가게를 찾아가봤다.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모녀의 정성이 담긴 ‘엄마손 반찬’ 충청도 예산이 고향인 백기숙씨는 상동 행복한 마을 상가에서 ‘엄마손 반찬’가게를 운영한다. 그 옆에는 어머니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이는 딸 박숙영씨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환하게 웃는다는 것. 반찬 맛도 좋지만 웃음 맛 또한 좋은 것이 이 집이다. 5년간 계산동에서 반찬가게를 했고 부천에서는 2년을 운영했다는데, 경기 불황에도 아랑곳 않고 바쁘게 뛰고 있다. 30~40대 맞벌이 부부들과 새댁들, 병원과 미용실, PC방이 주 고객층이다. 국산 청국장의 맛이 특별하며 부대찌개거리와 파김치, 연근볶음, 멸치볶음, 장조림 등 40여 가지의 반찬을 판매하고 있다. 밑반찬 종류가 많고 카레와 자장 볶음도 있다. “재료가 좋아야 손맛과 더불어 반찬 맛이 좋아져요.” 그래서 부평 깡시장, 삼산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이 집 반찬은 요일별로 메뉴가 달라진다. 똑같은 반찬을 만들지 않고 색다른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추천 메뉴는 김치. 시골에서 직접 빻아온 고춧가루를 재료로 만들어낸 김치는 강남의 압구정동까지 배달된다. 영화배우 이병헌의 집까지도 배달됐다고 하니 그 김치 한 번 맛보고 싶지 않은가. 한 팩에 1000원인 나물로 비빔밥을 해먹으려는 사람들도 자주 찾아온다. 이 집도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를 사용해서 반찬을 만든다. “한 번 맛 본 사람들은 또 찾아와요.” 딸 박씨는 “조미료보다 어머니의 손맛이 더 좋다, 그래서 상호가 엄마손 반찬”이라고 말했다. “시골서 가져온 도토리가루로 쑨 묵인데 맛 좀 보세요.” 백씨는 동네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손님처럼 환영했다. 회사원 김정란씨는 “주인장의 뛰어난 손맛 때문에 반찬 만드는 것을 잊었다고 할 정도로 자주 들른다”고 전했다. 오전9시30분~오후9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일요일은 쉰다. 문의 032-323-3020 장인 정신을 모토로 하는 ‘조은반찬’ 중1동 포도마을 앞 ‘조은반찬’은 김홍근, 박선경 부부가 운영한다. 리포터가 찾아간 시간, 남편 김씨는 맛깔스러운 파김치를 가지런히 담고 있었다. 8년간 요식업에 종사했던 이력답게 고객에 대한 장인정신이 배어있는 모습이었다. 주변의 오피스텔 사람들과 아파트 주민들이 단골이다. “처음엔 반찬가게가 동네 장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지역 장사를 벗어나 먼 곳까지도 택배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바쁘게 움직였더니 빚 청산을 했을 정도라고 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대로변이라 지나다 들어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 “저희 부부 성격이 워낙 깔끔해요. 새벽시장에 나가 재료부터 최상급으로 골라옵니다.” 반찬 가짓수는 40여 가지. 고객이 원하는 반찬은 모두 만들어준다. 특히 이 집 된장은 해남에서 농사지은 것을 간장을 빼지 않고 담근 것이라 인기가 높다. 인기 있는 반찬을 물었더니 매일 오는 손님을 위해 메뉴가 바뀌어서 딱히 인기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꼭 골라야 한다면 김치와 젓갈류가 맛있다고 추천했다. 이 집의 특징은 집들이, 백일상, 개업식, 제사상도 차려주는데 일반적인 맞춤상이 아니다. 필요로 하는 메뉴만 주문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팩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양을 담아주고 있다. 즉석반찬도 살 수 있다. 반찬가게로 출발하기 전에 주문예약을 해두면 된다. 직장인들도 퇴근 전에 반찬을 주문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오후 8시 이전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기대치보다 양이 많고 맛있다. 깔끔하다. 잘 먹었다. 집 반찬 같다”고 말했다. 생선구이를 주문하고 가면 생선을 즉석에서 전자레인지에 구워준다. 오전10시~오후10씨까지, 주말은 오후8시까지 운영한다. 격주 휴무. 문의 032-328-2644 세 자매가 운영하는 상1동 ‘진(眞)이 찬방’ 송내 로데오 거리 ‘진이찬방’은 김정래, 김정이, 김정숙씨 세 자매의 일터다. 지난 3년간 동네 사람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제공하는데 공력을 들이고 있다. 큰 언니 김정래씨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주방장을 맡았고, 둘째 언니 김정이씨는 서글서글하고 화통한 말솜씨로 매장을 운영한다. 막내인 김정숙씨는 차분하고 꼼꼼해서 부침개 부치는 담당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 집은 반찬 가짓수만 해도 100여 가지. 포기김치, 겉절이, 알타리, 오이소박이김치와 낙지, 꼴뚜기, 오징어, 명란 등의 젓갈,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나물 등 눈에 들어오는 반찬마다 맛 기운이 그득하다. 자신 있게 권하는 반찬은 ‘나물’. 다듬고, 자르고, 데쳐서, 볶는 등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한 번 해먹으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 반찬이다. 하지만 제철 나물을 오물조물 무치고 볶아서 정성껏 만들기 때문에 고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반찬은 우거지 들깨가루 볶음. 고소한 맛에 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단다. “화학조미료는 안 써요. 하지만 우리 집은 특별히 천연조미료라고 소개할 게 없지요. 그저 언니가 뚝딱 만들어내는 손맛이 천연조미료입니다.” 국과 찌개는 5가지 정도의 야채로 우린 국물을 쓰고, 고랭지 배추와 육쪽 마늘, 최상급 멸치와 새우젓을 재료로 해서 오랜 세월 음식 노하우가 배인 큰언니의 손으로 척척 만들면 끝! 맞벌이 부부와 오피스텔에 사는 싱글족, 임산부, 역세권 사무실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 “회사원들은 집에서 밥을 해 와서 우리 집에서 반찬을 사가 점심을 드시죠. 2년 동안 60여명이 단골로 찾아오고 있지요.” 세 명의 정예멤버는 하루 종일 손에 물마를 틈이 없다. 하지만 고객의 방문이 즐거울 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입을 모으는 세 자매의 웃음이 환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 문의 032-322-4355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7
- [김광원 칼럼]대북 산통깨기(김광원 2008.11.05) 대북 산통깨기 김광원 (언론인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4년 전 6·15 남북공동선언 4돌을 맞을 즈음이었다. 휴전선 155마일에 평화의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외신은 이를 ‘침묵의 소리’라고 했다. 서울서 100여리 밖,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변은 따뜻하고 살가웠다. 취재차 나선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남북은 그해 6월 15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그리고 전단 등을 통한 선전활동을 중지키로 했다. 50여년 간 휴전선을 마주하고 계속돼오던 남북의 선전전이 종식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즈넉한 강과 아름다운 산을 오가던 남북 간 상쟁(相爭)의 소리들이 꿈결처럼 사라져갔다. 휴전선 양쪽의 대형 확성기가 해체됐다. 선전 전광판의 철거가 이루어졌다. 휴전선이 평화의 소리를 되찾아가는 증거들이었다. 그 평화를 이루는 데 50여년이 걸렸다. 그러나 휴전선을 따라 현장을 밟던 감동의 기억은 4년 만에 아득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휴전선을 타고 넘는 전단이 다시 쇳소리를 내고 있다. 그 상쟁의 소리는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느낌이다. 북쪽으로 날려 보내는 남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민간단체들의 전단풍선들이 북쪽의 위협 메시지로 돌아오고 있다. 전단 통해 북 체제 격렬 비판 북한당국은 최근 남북 군사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을 통해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 중단 가능성은 물론 남북관계의 전면중단까지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그 전단의 제목은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에게’라고 다감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비닐종이 앞뒤에 깨알같이 박힌 내용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저주로 넘쳐난다. ‘6·25 전쟁과 진실’ ‘북조선이 망한 이유’ ‘김정일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등의 항목들을 통해 북한체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방과 함께 부인들을 소개한 뒤 가계도까지 그려 보여준다. “… 북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그 순간부터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북조선 인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못한 노예로 부리는 희대의 살인마임을 알게 됩니다 … 조선인민들이여! 앉아서 굶어죽지 말고 김정일을 반대하여 투쟁하십시오. 인민군 군인들이여! 인민을 향한 선군의 총대를 독재자 김정일에게 돌리십시오. 모든 간부들이여! 잔인한 살인마 김정일에게 충성하지 말고 인민과 자신에게 충성하십시오…” 과거의 체제선전 유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 내용들이다. 김 위원장을 가리켜 ‘아버지 김일성을 암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잔인한 독재자’라고도 주장한다. 북한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대남압박의 명분으로 전단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앞으로도 전단풍선 보내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몇년째 계속해온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 남북 간의 여러 합의를 고려할 때 전단사태가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이 “남북 당국 간 합의가 민간의 활동까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의 말이 이럴진대 다른 입들이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북한의 반응이나 남한의 대응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문제는 무엇보다 남북 간의 신뢰가 파국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말 대 말의 단계에서부터 좌초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북인식과 어법이 큰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수없이 해왔다. 심지어 햇볕정책에 관해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냉소적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할 정도다. 햇볕에서 화해협력정책으로 통일부가 외교통상부나 국방부의 하위기관처럼 돼버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통일부가 나서 교과서의 ‘햇볕정책’ 표현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바꾸어달라는 개정의견서를 내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관련부처의 관계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나서 민감한 남북관계 문제들을 거론해왔다는 언론의 지적이 뒤따랐다. 이 대통령은 더욱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잘못된 대응’으로 여긴다는 보도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러한 ‘산통깨기’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발 남북 간에 ‘침묵의 소리’라도 지키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하는 까닭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5
- 신문로 람사르 총회가 남긴 것 140개국의 2288명의 정부대표와 민간단체들이 참가한 습지보전국제회의가 끝났다. 10월 28일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된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가 8일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11월 4일 막을 내린 것이다. 정부 간 회의 전에 창녕 우포늪과 순천만에서 열린 3일 간의 국제민간환경단체회의에는 51개국 400여명이 참석하여 각국의 습지보전 정책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열띤 토론도 열렸다. 회의 시작 전 우려와는 달리 창원 국제회의장 안팎으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각자 규칙을 잘 지키면서 효과적으로 대외 홍보와 협상을 진행하였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은 일찍부터 조직적으로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였다. 우선,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에 산재한 습지인 새만금을 비롯한 갯벌 보전에 대한 정부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협상과 캠페인이었다. 다음으로 논의 생물다양성에 주목한 논 습지를 람사르 당사국협약총회에 의제로 채택되게 하여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3년 전, 람사르총회를 우간다 캄팔라에서 민간단체와 경상남도, 정부가 함께 유치한 것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공통의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칭 ‘환경올림픽’을 유치해놓고 새만금 물막이 공사는 정부가 강행하였다. 부분적으로는 서천갯벌을 보전하는 등 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서남해안의 갯벌과 낙동강하구 등 다양한 습지생태계를 현명하게 이용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은 부족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민간단체들은 장외투쟁을 선언하였고,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정책변화를 위해 자비를 들여가면서 한일민간단체포럼을 만들어 지혜를 모아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총회의 성과라면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쌀 농업의 터전인 논이 습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 통과된 논 습지 결의안의 정식 명칭은 ‘습지 시스템으로서 논의 생물다양성 증진’에 관한 결의안이었다. 그러나 논 습지의 총회 통과 과정까지는 많은 준비가 있어왔다. 지난 2005년 우간다회의에서 한·중·일의 습지보전운동가와 농업회생을 바라는 전문가들이 결합하여 현장에서 ‘논은 습지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람사르총회가 개최되기 전, 3년 동안 한일 양국 정부와 협상을 하기도 하고 언론을 통한 캠페인을 지속하였다. 마침내 2007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지역회의 때, 태국 의장이 “제10차 람사르 창원총회에서 논 습지를 의제로 다룬다”고 선언하였다. 이때 한일민간단체 논 습지 준비기획팀과 정부 대표단이 함께 환호하였다. 한일 민간단체들이 논 습지에 주목한 것은 논이 단순히 식량 생산지가 아니라 오랜 세월 커다란 습지로서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6000년 전 신석기시대 이래 쌀 농업은 아시아의 삶과 문화적 가치로 자리잡아왔다. 논은 단순한 농업의 터전만이 아니라. 자연문화유산이다. 애초 농림부는 환경단체의 반발을 묵살하고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식량안보를 위해 논을 확보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새정부는 새만금 매립지의 72%를 차지할 예정이었던 농지면적의 비율을 30%로 대폭 축소시키고 대신에 개발용지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데도 농림부는 침묵하고 있다. 습지보전운동가들은 이번 총회에서 논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위해 각국의 논 습지에 대한 부정적 발언에 긴장하면서 다양한 로비를 벌였다. 대표적으로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가 논의 현명한 이용과 관련하여 농약과 살충제 사용 감소에 대한 내용을 제안하고 호주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부적절한 논 지대 확장 및 개발이 습지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내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대만은 최근 식량에 대한 전 지구적 수요 증가가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STRP가 조사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논 습지 의제를 잘 활용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을 때이다. 향후 환경부와 농림부, 국토해양부 등이 민간습지보전단체와 농업단체들과 함께 물새 서식지 회복 공간으로, 농업의 회생을 도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덧붙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환경가치로서 논 습지의 긍정적 역할을 찾아내는 일도 정부의 몫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5
- 김광원 칼럼 칼럼 대북 산통깨기 김 광 원(언론인·참미디어연구소 대표) 4년 전 6·15 남북공동선언 4돌을 맞을 즈음이었다. 휴전선 155마일에 평화의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외신은 이를 ‘침묵의 소리’라고 했다. 서울서 100여리 밖,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변은 따뜻하고 살가웠다. 취재차 나선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남북은 그해 6월 15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그리고 전단(삐라) 등을 통한 선전활동을 중지키로 했다. 50여년 간 휴전선을 마주하고 계속돼오던 남북의 선전전이 종식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즈넉한 강과 아름다운 산을 오가던 남북 간 상쟁(相爭)의 소리들이 꿈결처럼 사라져갔다. 휴전선 양쪽의 대형 확성기가 해체됐다. 선전 전광판의 철거가 이루어졌다. 휴전선이 평화의 소리를 되찾아가는 증거들이었다. 그 평화를 이루는 데 50여년이 걸렸다. 그러나 휴전선을 따라 현장을 밟던 감동의 기억은 4년 만에 아득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휴전선을 타고 넘는 삐라가 다시 쇳소리를 내고 있다. 그 상쟁의 소리는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느낌이다. 북쪽으로 날려 보내는 남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민간단체들의 삐라풍선들이 북쪽의 위협 메시지로 돌아오고 있다. 북한당국은 최근 남북 군사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을 통해 삐라 살포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 중단 가능성은 물론 남북관계의 전면중단까지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그 삐라의 제목은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에게’라고 다감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비닐종이 앞뒤에 깨알같이 박힌 내용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저주로 넘쳐난다. ‘6·25 전쟁과 진실’ ‘북조선이 망한 이유’ ‘김정일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등의 항목들을 통해 북한체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방과 함께 부인들을 소개한 뒤 가계도까지 그려 보여준다. “…북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그 순간부터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북조선 인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못한 노예로 부리는 희대의 살인마임을 알게 됩니다 … 조선인민들이여! 앉아서 굶어죽지 말고 김정일을 반대하여 투쟁하십시오. 인민군 군인들이여! 인민을 향한 선군의 총대를 독재자 김정일에게 돌리십시오. 모든 간부들이여! 잔인한 살인마 김정일에게 충성하지 말고 인민과 자신에게 충성하십시오…” 과거의 체제선전 유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 내용들이다. 김 위원장을 가리켜 ‘아버지 김일성을 암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잔인한 독재자’라고도 주장한다. 북한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대남압박의 명분으로 삐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앞으로도 삐라풍선 보내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몇년째 계속해온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 남북 간의 여러 합의를 고려할 때 삐라사태가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이 “남북 당국 간 합의가 민간의 활동까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의 말이 이럴진대 다른 입들이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북한의 반응이나 남한의 대응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문제는 무엇보다 남북 간의 신뢰가 파국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말 대 말의 단계에서부터 좌초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북인식과 어법이 큰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수없이 해왔다. 심지어 햇볕정책에 관해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냉소적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할 정도다. 통일부가 외교통상부나 국방부의 하위기관처럼 돼버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통일부가 나서 교과서의 ‘햇볕정책’ 표현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바꾸어달라는 개정의견서를 내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관련부처의 관계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나서 민감한 남북관계 문제들을 거론해왔다는 언론의 지적이 뒤따랐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북한이 내 욕을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그 정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대통령은 더욱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잘못된 대응’으로 여긴다는 보도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러한 ‘산통깨기’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발 남북 간에 ‘침묵의 소리’라도 지키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하는 까닭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