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어록’으로 정리한 박근혜 이정현 의원, 자료집 배포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004년 탄핵사태 직후 처음 당직을 맡았을 무렵부터 대선 경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4년간의 발언이 한 측근에 의해 자료집으로 정리됐다. 이정현 의원은 9일 “박근혜 전 대표 발언기사 모음 약식 자료집을 배부하고 왜 박근혜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인 답을 하기 위해 정리해봤다”면서 “박 전 대표가 7%였던 당 지지율을 53.8%로 끌어 올리면서 한나라당을 살려낸 과정에서 했던 발언들을 다시 읽어보면 현 난국을 푸는 해답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집에는 박 전 대표가 탄핵 역풍을 뚫고 121석의 제1야당으로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킨 시절부터 치열했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발언들까지가 낱낱이 정리됐다.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도중 피습돼 병원에 입원중이던 당시 “대전은요”라고 판세를 물었던 일화, 4년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갈한 비판 등은 아직도 회자되는 발언들.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발언들도 많다. 2004년만 해도 “계파는 만들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데 결국 이런 계파정치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됐느냐”며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당내 주요 계파의 수장이 돼 버린 것이 현실. 또 2004년엔 “대통령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막상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본선에서 이길 후보를 뽑아야 한다”, “설악산 울산바위가 날아와도 끄떡없이 이겨낼 수 있다”며 어느 때보다 지독한 경선전을 치러냈다. 악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 관련 발언도 눈길을 끈다. 취임 초엔 “(이 전 의원은) 내가 누구의 딸인지 몰라서 지난 총선에서 나에게 지원 유세를 부탁했느냐”, “저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한 분은 내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으나 결국 탈당을 안했다. 남아라면 정정당당하게 자기가한 말을 지키고 비판해야 한다”며 본인을 비판한 이 전 의원에게 강도 높게 맞섰다. 반면 2007년 11월엔 ‘아직도 경선인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이 전 의원의 비판에 “오만의 극치라고 본다”고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 현안과 관련한 입장도 간간이 눈에 띈다. 개헌에 대해선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또 최근엔 “공천을 잘못하면 좌시하지 않겠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등 공천 및 복당과 관련한 발언이 빈번했다. 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10
- 2. 대화와 타협의 정치 어떻게 구현할까 여 ‘숫자 정치’ 야 ‘오기 정치’ 탈피 관건 한나라, 설득과 양보 체득 절실 … 민주, 여론 업는 원내정치 펼쳐야 #장면 1 개원협상이 난항에 빠져있던 지난주 한나라당 의원총회장. 의총이 열리기에 앞서 몇몇 의원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즉석 ‘민주당 성토대회’를 가졌다. 한 초선의원이 “81석 밖에 안되는 X들이 버티면 단 줄 알아”고 거친 표현을 쏟아내자, 다른 재선의원은 “들어오기만 해봐. 우린 이래저래 합치면 180석 넘는다구. 저쪽은 우리 절반도 안되잖아. 찍소리 못하게 숫자로 눌러버려야돼”라고 받았다. #장면 2 등원을 놓고 민주당내 강경파와 온건파가 맞섰던 지난달 중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라디오프로에 출연해 등원반대론을 폈다. 박 의원은 “덜컥 등원했다가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를 하면 우리 당은 단상점거 외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했다. 소수야당의원들의 위기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발언이었다. 어렵사리 문을 연 18대 국회가 탄핵공방으로 허송세월했던 17대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화와 타협보단 대치와 마찰, 충돌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려를 증폭시키는 첫 번째 징조는 거대여당 출현이다. 총선에서 간신히 과반수를 넘긴 여당은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 순수무소속 등을 영입하면서 조만간 180석을 넘기는 거대여당으로 변모할 예정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81석)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거대여당은 오만에 빠지기 쉽다. 숫자로 밀어붙이면된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100석도 안되는 야당은 피해의식에 몰리면서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파행국회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강경파는 원내정치를 하기보단 수시로 길거리정치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의 국회를 만들기위해선 ‘숫자의 유혹’과 ‘오기의 유혹’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주문한다. 20년 넘게 한나라당을 지켜온 한 당직자는 “18대 국회가 성공하려면 거대여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면된다는 유혹에서 벗어나 끝없이 야당을 설득하고 양보하고 관용을 베푸는 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51%만 챙기는 정치도 주문했다. 이 당직자는 “의원 숫자로만 따지면 100%를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욕심을 내는 순간 정치는 파탄으로 빠진다”며 “51%만 갖겠다는 절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부각된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전문가는 “18대 국회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려면 여당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원내대표가 야당과 함께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지, ‘우리가 의원이 몇 명인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정치는 파탄난다”고 말했다. 야당에 대해선 ‘무조건 버티면 된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국민을 등에 업고 거대여당을 견제해야한다는 주문이다. 이현우 서강대교수는 “소수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론을 등에 업는 것”이라며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다수당이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야당은) 숫자가 적다고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오히려 몸이 가벼우니 신속성과 변화적응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자꾸 (국회 밖으로) 튀어나갈게 아니라 원내에서 룰을 지키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를 잘 헤아린다면 81석으로도 충분히 거대여당을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일 선출된 김형오 국회의장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례적으로 여야 대표를 직접 찾아가 만난다. 여야가 소통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김 의장의 바람대로 18대 국회가 대화와 타협이 살아숨쉬는 장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10
- [신문로]일본 나카우미 호수의 교훈 일본 나카우미 호수의 교훈 이인식 (2008람사르총회 민간추진위원장) ‘람사르 환경재단’이라는 특별한 기구가 경상남도에 만들어졌다. 보통 국제행사를 치르고 나면 무슨 무슨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 관례인데, 경상남도는 지속적 환경 경남 브랜드 구축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습지보전과 관리, 주민인식 증진사업, 종복원사업 등을 위한 물적 인적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번 제10차 회의에는 약 165개국이 참가, 각 나라의 습지보전 정책과 제3세계의 습지훼손을 막기 위한 다양한 국가간의 협력과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조류인플렌자와 물 문제로 인한 접경지역 국가 간의 분쟁에 대한 토론과 프로젝트도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해안갯벌과 내륙의 다양한 습지들이 지자체의 개발정책으로 훼손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생태환경인가, 지역개발인가 경남 사천만에 있는 광포갯벌의 생태적 우수성이 전문가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지만 조선산업 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만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을 살리는 길이라는 개발론이 판을 친다. 이런 논리 앞에 생태와 환경을 이해하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조차도 주민들의 현실적 요구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웃 일본도 1993년 쿠시로 람사르총회 개최 전후 아사하야만 갯벌매립과 나카우미방조제 건설에 대한 조직적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쿠시로, 이즈미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들이 습지보전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면서 습지정책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도 제5차 당사국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습지보존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쿠시로국제습지센터’ 설립을 서둘렀다. 설립 이후 15년 동안 쿠시로국제습지센터는 습지교육과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생태관광과 생물다양성 보존,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생태조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많은 주민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고 황새 따오기 등을 복원하기 위해 아름다운 도전을 하고 있다. 특히 시마네현 나카우미 호수 사례는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나카우미는 주민운동을 통해 국책사업을 백지화시킨 곳이다. 지금 나카우미는 다시 해수를 유통시키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역주민 요구로 간척사업 포기 간척을 위한 기반공사는 1981년에 완료된 상태였고 수문만 내리면 담수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어민과 시민들이 ‘수질악화’와 간척 후 ‘토지이용 문제’를 놓고 정부에 재조사와 검토를 요구했다. 이와 동시에 시마네대학에 기수지역연구센터가 설립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주민들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긴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조사와 연구작업을 병행해온 지역주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간척사업을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경남도의 람사르환경재단도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라는 제10차 람사르총회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9
- 신문로 람사르 환경재단이 나아갈 길 ‘람사르 환경재단’이라는 특별한 기구가 경상남도에 만들어졌다. 람사르라는 말은 이란의 해안도시의 지명이다. 1971년 이곳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국제협약이 비준되었다.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는 늪 갯벌 하구 산지늪 등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처를 보전 관리하는 나라별 정책을 만들도록 강제화하는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 2008람사르총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면서 총회 유치도시인 창원과 창녕이 경상남도에 속해 있는 터라, 경상남도지사가 제안해서 람사르환경재단을 만든 것이다. 보통 국제행사를 치르고 나면 무슨 무슨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 관례인데, 경상남도는 람사르총회 성공적 개최는 물론이고 개최 이후 지속적 환경 경남 브랜드 구축을 위한 내용이 있는 정책을 생산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습지보전과 관리, 주민인식 증진사업, 종복원사업 등을 위한 물적, 인적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람사르총회를 흔히 환경올림픽이라 부른다. 이번 제10차 회의에는 약 165개국이 참가, 각 나라의 습지보전 정책과 제3세계의 습지훼손을 막기 위한 다양한 국가간의 협력과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제적인 공동과제인 조류인플렌자와 물 문제로 접경지역 국가 간의 분쟁에 대한 조정을 위한 다양한 이해당사자간의 토론과 프로젝트도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해안갯벌과 내륙의 다양한 습지들이 지자체의 개발정책으로 훼손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경남 사천만에 있는 광포갯벌의 생태적 우수성이 전문가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지만 조선산업 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만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을 살리는 길이라는 개발론이 판을 친다. 이런 논리 앞에 생태와 환경을 이해하고 있는 지역 국회의원조차도 주민들의 현실적 요구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람사르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상남도의 남해안특별법 제정과 대운하 건설이 발표됐다. 이웃 일본도 1993년 쿠시로 람사르총회 개최 전후 아사하야만 갯벌매립과 나카우미방조제 건설에 대한 조직적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쿠시로, 이즈미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들이 습지보전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면서 습지정책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도 제5차 당사국회의를 개최한 활동을 바탕으로 습지보존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쿠시로국제습지센터’ 설립을 서둘렀던 것이다. 설립 이후 15년 동안 쿠시로국제습지센터는 습지교육과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생태관광과 생물종다양성 보존,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생태조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많은 주민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고 황새 따오기 등 습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종들을 복원하기 위해 아름다운 도전을 하고 있다. 특히 시마네현 나카우미 호수 사례는 특별히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신지호 나카우미는 주민운동을 통해 국책사업을 백지화시킨 곳이다. 지금 신지호는 다시 해수를 유통시키는 공사가 한창이다. 간척공사로 인해 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되고 어업 쇠퇴로 지역경제가 쇠퇴하자 간척사업을 반기지 않는 지역민이 늘어났다. 간척을 위한 기반공사는 1981년에 완료된 상태였고 이제 수문만 내리면 담수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어민과 시민들이 ‘수질악화’와 간척 후 ‘토지이용 문제’를 놓고 정부에 재조사와 검토를 요구했다. 이와 동시에 시마네대학 내에 기수지역연구센터가 설립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대학의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적 요구의 변화도 있었지만 긴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조사와 연구작업을 병행해온 지역주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간척사업을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경남도의 람사르환경재단도 습지의 현명한 이용을 통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이라는 제10차 람사르총회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9
- 민주당 지도부 6인의 새로운 도전 제목 : 민주당 지도부 6인의 새로운 도전 부제 : 기회이자 위기될 듯 … 추, 절반의 성공 6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6명의 민주당 새 지도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이미 열린우리당 시절 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질적 당 대표라기보다 ‘구원투수’ 성격이 짙었다는 일반의 평가다. 정세균이라는 상품을 본격적으로 정치시장에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정세균 대표는 여전히 ‘관리형 대표’라는 이미지가 큰 게 사실이다. 정 대표가 2년간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적 진로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송영길 의원은 이번 선거로 이른바 ‘386 정치인’의 선두주자가 됐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386세대’가 사회 중추로 자리잡는 상황에서 이 세대의 정치권 선두주자가 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송 의원은 이제 차차기 주자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위를 차지한 김민석 전 의원은 말 그대로 ‘기사회생’한 경우다. 이번 선거로 김 전 의원은 6년간 정치권 낭인을 끝내고 부활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86 대표주자’에서 급격히 추락했던 김 전의원 앞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가 높여있다. 박주선 의원 역시 오랜 기간 정치적 역경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3번 구속 3번 무죄’로 상징되는 고난의 세월을 최고위원 3위 당선으로 보상받았다. 박 의원은 18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공천을 받은 후 전국 최고 득표율로 당선된 바 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이제 동정심이 아닌 실력으로 검증받아야 하는 시험대에 들어섰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안희정 논산·계룡·금산 지역위원장의 당선은 ‘친노세력’의 부활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안희정을 놓고 보면 안 위원장의 당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에서 ‘정치인 안희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안 위원장은 ‘민주정부 10년의 계승과 혁신’을 선거내내 주장했다. 참여정부의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가 정치인 안희정의 첫 화두가 될 전망이다. 김진표 의원은 ‘관료 김진표’에서 ‘정치인 김진표’로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김진표 의원이 그동안 관료출신 정치인 보여줬던 한계를 과연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추미애 의원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정세균 대세론을 넘지 못하고 2위에 그쳤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지지율 1위를 차지함에 따라 향후 정치적 행보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7
- [밥일꿈]튀긴 강냉이, 볶은콩 사는 재미 튀긴 강냉이, 볶은콩 사는 재미 이점순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우리집 아파트 입구에는 토요일마다 ‘뻥튀기 할아버지’께서 오신다. 그러면 나는 늘 2000원 짜리 ‘튀긴 옥수수’ 1봉지나 ‘볶은 검은콩’ 1봉지를 산다. 그렇게 사다 놓으면 주말에 조금 먹고는 그대로 식탁 모퉁이에 얌전히 있다.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집 식구들이 그다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퇴근 후 남편이 TV를 보면서 거의 의무감으로 먹었다. 가끔 남편이 ‘먹지도 않으면서 왜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의 ‘뻥튀기 옥수수 또는 볶은 콩 사는 취미’(?)는 계속되었다. 어느날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엄마, 먹지도 않으면서 왜 또 샀어?” 물었다. 큰 아이의 질문에 나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광안리 바닷가의 앵벌이 토론 나는 대학을 부산에서 다녔다. 대학시절 ‘지우회’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주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여름 방학 때 우리 동기들과 같이 광안리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때, 아주 남루한 차림의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껌 한통을 들고 와서 우리들에게 사달라고 하였다. 그 당시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앵벌이’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되었던 시기였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외면하고 있었다. 나 역시 모르는 척하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데 동기 남학생이 나에게 “어지간하면 1통 사주라 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회 정의를 위해서 우리가 사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가 무엇이 진정한 사회적 정의냐고 반문하면서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결국 껌은 그 친구가 샀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앵벌이가 파는 껌을 사서는 안된다’로 토론회(?)를 마무리한 후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타향에서 ‘사람살이’의 이런저런 애환을 겪어가던 서른 즈음, 지하철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껌과 함께 슬픈 사연이 적힌 종이를 승객들 무릎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다이어트 식품이래” 광안리 바닷가가 불현듯 생생하게 스쳐가면서 나의 반론에 소금에 절인 배추가 된 친구의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말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쉰을 바라보는 지금, 젊은 시절 내가 그렇게 소리치던 사회적 정의의 색깔이나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소중한 1000원 2000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요즈음은 그 때 내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큰 아이가 ‘튀긴 옥수수’를 가끔 사서 “엄마! 같이 먹자. 옥수수가 다이어트 식품이래” 하면서 내 손을 잡는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2
- 전통교육 메이 수정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에 위치한 라벤나는 ‘모자이크 도시’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수도가 됐던 이곳에는 중세 기독교 미술의 대표적 형식이라 할 수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 가득하다. 고대 기독교와 비잔틴의 종교건축물들 내부에는 현란한 색상의 모자이크가 천정과 벽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의 예술적 완성’을 대표하는 8개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인류문화유산이다. 성 비탈레 성당과 클라세의 산타폴리날레 인 클라세 성당의 모자이크를 본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는 라벤나를 ‘지상 낙원’, 라벤나의 모자이크는 ‘색채의 교향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단테는 역적으로 몰려 고향 피렌체를 떠나 라벤나에서 말년을 보냈다. 1321년 9월 사망 직전 ‘신곡’을 집필했으며 라벤나 시내 성프란체스코 성당에 매장됐다. 성 비탈레 성당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527~565년)가 잃어버린 로마제국의 땅을 회복하기 위해 라벤나를 정복한 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도록 명령해 만들어진 성당이다. 성 비탈레 성당 내 모자이크는 파손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6세기 동로마제국의 문화와 종교, 예술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다. 모자이크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다양한 색상의 유리나 돌을 벽에 일일이 붙여서 장식하는 회화기법이다. 기원전 3세기 로마제국시대에도 사용됐지만 이를 최고의 예술 경지로 끌어올린 곳이 바로 라벤나다. 라벤나시는 1924년에 시립미술아카데미 내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모자이크 전문과정을 개설했다. 주당 18시간의 이론과 실기가 따르며 공공이나 개인으로 주문되는 대형 작품의 제작에 학생들이 직접 참가한다. 또 모자이크에 관련된 모든 전시회와 문화재관련 모임을 주도한다. 이어서 모자이크만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학교로는 ‘CISIM’(국제모자이크연구소)가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와 유럽연합체보조로 운영되며 고대 유적모자이크를 복제하는 작업과 현대건축의 실내외 디자인 장식 전문작업이 가능한 모자이스트(모자이크 세공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1년 과정인 700~1000시간의 수업이 12~15명으로 구성된 그룹단위로 진행되며 최종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모자이크기술 전문가 자격증을 얻게 된다. 그 외에 여름 단기코스도 있다. 일주일 단위로 초보자수준에서 고급수준까지 8개 반으로 단계적으로 조성된 실습위주 교육이다. 이 특별 여름단기과정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라벤나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특별교육의 하나는 모자이크 보수전문이다. 라벤나 소재의 모자이크 작품들만 해도 오랜 역사로 보수작업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시실리를 포함해 이탈리아 전역에 흩어져있는 모자이크의 보수와 보존은 문화재보호정책으로 중요한 영역이다. 이 때문에 보존기술과 보수작업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가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라벤나에는 특별히 보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모자이크보수전문학교’가 있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지도로 요르단의 고대 유적지의 모자이크 보수작업에 참가하기도 했다. 라벤나시는 그 외에도 대리석에 관련된 모든 분야의 기계설비나 모자이크제작에 사용되는 기구는 물론 대리석 관련 생산업체가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대적인 국제전시장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국제전시를 통해 도시의 대표예술인 모자이크전통을 알린다는 취지다.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관련업체의 전시품은 기계, 도구, 대리석뿐 아니라 채석이 소멸된 구 대리석 전시도 있다. 고유적지의 폐허에서 볼 수 있는 몇 종류의 대리석 기둥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리석 견본이 되기도 한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처럼 천년이 넘어서도 완벽히 보호 보존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문화재를 생명만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곳 사람들의 전통보존 의식에 의해서다. 그 뿐 아니라 수 천 년을 지나고도 전통기술이 전달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손으로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의 현명함에 있다. 그래서 현대모자이크도 세월의 변화에 따른 자재와 예술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천 년을 바라보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래를 기다린다. 이탈리아 전명숙 통신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2
- 유럽의 전통 직업교육]③ 유럽의 전통 직업교육]③1천년 비잔틴문화의 중심지 이탈리아 라벤나의 모자이스트 교육 글쓴이: 이지혜 준회원 정회원 우수회원 특별회원 조회수 : 4 08.06.30 20:52 http://cafe.daum.net/correspond-naeil/3y5c/85 [유럽의 전통 직업교육] 주: ③천년 비잔틴문화의 중심지 이탈리아 라벤나의 모자이스트 교육 부: 모자이크예술은 유네스코지정 세계인류문화재 유럽의 전통 직업교육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유럽의 장인정신과 지역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교육제도를 집중 조명할 것입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현악기, 모자이크, 향수, 시계 등은 전통과 교육을 융합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전통문화를 잇는 것이 가치 있게 평가되고 이에 대한 체계적 관심과 교육, 지원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에 위치한 라벤나는 ‘모자이크 도시’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수도가 됐던 이곳에는 중세 기독교 미술의 대표적 형식이라 할 수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 가득하다. 고대 기독교와 비잔틴의 종교건축물들 내부에는 현란한 색상의 모자이크가 천정과 벽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의 예술적 완성’을 대표하는 8개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인류문화유산이다. 라벤나시는 1924년에 시립미술아카데미 내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모자이크 전문과정을 개설했다. 주당 18시간의 이론과 실기가 따르며 공공이나 개인으로 주문되는 대형 작품의 제작에 학생들이 직접 참가한다. 또 모자이크에 관련된 모든 전시회와 문화재관련 모임을 주도한다. 이어서 모자이크만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학교로는 ‘CISIM’(국제모자이크연구소)가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와 유럽연합체보조로 운영되며 고대 유적모자이크를 복제하는 작업과 현대건축의 실내외 디자인 장식 전문작업이 가능한 모자이스트(모자이크 세공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1년 과정인 700~1000시간의 수업이 12~15명으로 구성된 그룹단위로 진행되며 최종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모자이크기술 전문가 자격증을 얻게 된다. 그 외에 여름 단기코스도 있다. 일주일 단위로 초보자수준에서 고급수준까지 8개 반으로 단계적으로 조성된 실습위주 교육이다. 이 특별 여름단기과정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라벤나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특별교육의 하나는 모자이크 보수전문이다. 라벤나 소재의 모자이크 작품들만 해도 오랜 역사로 보수작업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시실리를 포함해 이탈리아 전역에 흩어져있는 모자이크의 보수와 보존은 문화재보호정책으로 중요한 영역이다. 이 때문에 보존기술과 보수작업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가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라벤나에는 특별히 보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모자이크보수전문학교’가 있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지도로 요르단의 고대 유적지의 모자이크 보수작업에 참가하기도 했다. 라벤나시는 그 외에도 대리석에 관련된 모든 분야의 기계설비나 모자이크제작에 사용되는 기구는 물론 대리석 관련 생산업체가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대적인 국제전시장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국제전시를 통해 도시의 대표예술인 모자이크전통을 알린다는 취지다.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관련업체의 전시품은 기계, 도구, 대리석뿐 아니라 채석이 소멸된 구 대리석 전시도 있다. 고유적지의 폐허에서 볼 수 있는 몇 종류의 대리석 기둥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리석 견본이 되기도 한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처럼 천년이 넘어서도 완벽히 보호 보존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예술과 문화재를 생명만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곳 사람들의 전통보존 의식에 의해서다. 그 뿐 아니라 수 천 년을 지나고도 전통기술이 전달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손으로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의 현명함에 있다. 그래서 현대모자이크도 세월의 변화에 따른 자재와 예술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천 년을 바라보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래를 기다린다. 이탈리아 전명숙 통신원 ********* 주: 라벤나는 어떤 도시인가. 부: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비잔틴 모자이크의 성지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위치한 라벤나는 동쪽의 아드리아해로 열려진 도시다. 피렌체에서 열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한때 서 로마제국의 수도였고 동로마제국의 비잔틴문화가 교류된 ‘역사의 경계 도시’라 할 수 있다. 라벤나는 5세기 초 오노리오황제가 로마제국의 안전과 방어를 위해 밀라노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작은 지방도시에서 벗어나 황제거주의 수도로 화려한 성장을 보게 되었다. 이어서 갈라 플라치디아의 25년간의 섭정기간동안 모자이크가 최고의 예술경지에 달하게 됐다. 당시 건축된 수많은 교회들에 모자이크가 장식됐다. 1000년간 이어진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인 라벤나는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보물들이 간직돼 있다. 현재 라벤나에 남아있는 모자이크 작품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보존상태가 완벽하며 역사적 가치가 높다. 그 중 백미는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의 이 무덤의 천정은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별들 가득한 청색으로 빚어진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제작된 지 1500년이 지났지만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라벤나에서는 지금도 모자이크가 일반 실내건축의 응용미술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리석 바닥을 모자이크로 장식하는 평면기술과 벽면에서 직접 작업을 하는 대형 장식 또는 소형 패널 제작도 있다. 이탈리아 전명숙 통신원 ********* 주: 모자이크란?-돌을 통해 살아있는 예술을 표현하는 작업 부: ‘뮤즈의 일’이란 라틴어에서 유래…인내와 끈기 필요 모자이크는 중세라틴어 ‘뮤즈의 일’이란 뜻의 중세라틴어 ‘musàicum’에서 유래됐다.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형태를 완성하는 이 일은 뮤즈(시·음악 학예를 주관하는 9여신 중의 하나)의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란 의미에서다. 모자이크는 이미 기원전 2500년에 존재한 예술로 메소포타미아, 수메리 문화에서도 도자기 조각들을 사용하여 장식한 벽 모자이크기술이 있었다. 이후 로마제국시대에는 실내의 바닥을 경제적이며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는 흑백의 대리석 모자이크가 발전해 갔다. 현재 로마의 오스티카 안티카에는 대형 흑백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나 시실리 섬의 피아차 아르메리나에는 4000㎡의 다색 모자이크가 있는데 로마제국의 말기를 예감하는 듯 화려한 과거의 향수를 되새기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모자이크의 예술적 전성기는 5~6세기의 라벤나에서 이뤄졌다. 서로마제국 호노리우스 황제의 여동생인 갈라 플라치디아 황후는 5세기 초 25년간 라벤나 건축과 예술에 크게 기여했다. 그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 있다. 라벤나가 자랑 하는 모자이크 건축물 1호인 이 무덤은 내부가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이후 14세기 베니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자이크기술이 나왔으나 라벤나의 예술성을 갖추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이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 샤갈과 브라크, 클림트에 의한 현대 모자이크의 부활을 보게 된다. 샤갈은 이스라엘의 국회의사당과 프랑스 니스의 성경메시지 박물관, 니스 법과대학에 율 2008-07-01
- 밥일꿈 서울시교육청 이점순 장학사 ‘뻥튀기 옥수수’ 혹은 ‘볶은 콩’ 사는 취미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이나 연휴에도 놀이동산에도 한 번 가질 못해 가족들, 특히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에게 미안함이 늘 마음에 있었기에,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더위도 식힐 겸 작은 아이, 남편과 함께 집 주변 산책을 나갔다. 작은 아이는 나와 남편의 손을 잡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엄마예요, 저, 지금 엄마, 아빠와 산책 가요”라고 자랑하며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나와 남편의 손을 흔들며 신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엄마! 뻥튀기 할아버지야! ”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리곤 “엄마! 뻥튀기 사야지!”라고 하였다.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나를 쳐다보셨다. 그 순간 나는 ‘뻥튀기 옥수수’를 사려다 “먹지도 않으면서 왜 사느냐”는 남편의 핀잔이 생각나,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그만 사지 못하였다. 우리집 아파트 입구에는 토요일마다 ‘뻥튀기 할아버지’께서 오신다. 그러면 나는 늘 2,000원 짜리 ‘튀긴 옥수수’ 1봉지나 ‘볶은 검은콩’ 1봉지를 사곤 했다. 그렇게 사다 놓으면 주말에 조금 먹고는 그대로 식탁 모퉁이에 얌전히 있다. 왜냐하면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집 식구들이 그다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퇴근 후 남편이 TV를 보면서 거의 의무감으로 먹었다. 이런 횟수가 잦으니 남편이 ‘먹지도 않으면서 왜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고,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의 ‘뻥튀기 옥수수 또는 볶은 콩 사는 취미’(?) 계속 되자,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도 “엄마, 먹지도 않으면서 왜 또 샀어?”라고 물었다. 큰 아이의 질문에 나는 오히려 “엄마가 왜 사는 것 같니?”라고 반문하는 나를 의아해 하면서 쳐다보는 큰 아이에게 나의 대학 시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대학을 부산에서 다녔다. 대학시절 ‘지우회’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주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여름 방학 때 우리 동기들과 같이 광안리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때, 아주 남루한 차림의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껌 한 통을 들고 와서 우리들에게 사달라고 하였다. 그 당시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앵벌이’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되었던 시기였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외면하고 있었다. 나 역시 모르는 척하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옆에 와서 불쌍한 목소리로 “껌 하나 사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계속 나에게 사달라고 애원하였지만 나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동기 남학생이 나에게 “어지간하면 1통 사주라 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회 정의를 위해서 우리가 사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가 무엇이 진정한 사회적 정의냐고 반문하면서 급기야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저 껌을 사서, 그 수익금이 지금 껌을 팔고 있는 아이에게 돌아가면 나는 얼마든지 저 껌을 살 수 있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수익금은 앵벌이를 시키는 검은 조직들이 다 가로채기 때문에 나는 저 껌을 살 수 없고, 또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저 껌을 사서도 안된다’며 주장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우리 모두 저 껌을 사 주지 않으면, 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 국가의 복지제도가 어려운 사람들을 다 보살펴 줄 수 있으면 모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까 우리가 사 주어야 되며 그리고 앵벌이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 그 아이가 들고 있는 껌을 모두 사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반론을 제기하여 껌은 그 친구가 샀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앵벌이가 파는 껌을 사서는 안된다’로 토론회(?)를 마무리한 후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타향에서 ‘사람살이’의 이런저런 애환을 겪어가던 서른 즈음, 퇴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껌과 함께 슬픈 사연이 적힌 종이를 승객들 무릎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자, 세월 속에 가려졌던 광안리 바닷가가 불현듯 생생하게 스쳐가면서 나의 반론에 소금에 절인 배추가 된 친구의 생각이, 내 스스로 할머니의 껌을 사게 하였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지하철 내내 난 그 친구를 생각했고, 그 친구가 말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 후,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시장을 본 뒤, 생기는 비닐봉투 중 깨끗하고 마른 봉투는 모아 두었다가 일부러 재래시장의 난전이나 후미진 곳에서, 소량의 푸성귀 서너 가지로 앉아 있는 할머니한테 야채 이것저것 사면서 비닐 봉투를 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이사를 오면서 옛날에 다니던 재래시장과 멀어져 재래시장을 가지 못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아파트 입구에 ‘뻥튀기 할아버지’가 오시면서 어린 시절의 맛이 그립기도 하고, 또 할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튀긴 옥수수’나 ‘볶은 콩’을 사기 시작하였다. 쉰을 바라보는 지금은, 젊은 시절 내가 그렇게 소리치던 사회적 정의를 여전히 강조하지만 그 색깔이나 모양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에게도 ‘1,000원’ ‘2,000원’은 소중하고 큰돈이다. 그런데 ‘1,000원’ ‘2,000원’이 다른 사람에게는 ‘1,000원’ ‘2,000원’ 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의 일부를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더불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내 주변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할 때, 그 때야 말로 ‘사회적 정의’가 진정으로 실현되지 않을까……. 요즈음은 그 때, 나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큰 아이가 나 ‘튀긴 옥수수’를 가끔 사서 “엄마! 같이 먹자. 옥수수가 다이어트 식품이래.” 하면서 내 손을 잡는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7-02
- “NLL, 남과 북 잇는 평화의 바닷길 되길” 제2연평해전 6주년 기념식이 29일 오전 10시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의 제2연평해전전적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올해부터 정부 기념행사로 격상돼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치러졌으며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 한승수 국무총리, 여야 대표와 시민, 학생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한승수 총리는 기념사에서 “우리는 제2연평해전의 의미를 올바로 평가하지 못하고 고귀한 희생을 제대로 기리지도 못했다”면서 “그동안 참으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 머리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무한책임의지를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면서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거듭 밝혔다. 한 총리는 특히 “올해는 건국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며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면서 “이는 모두 호국용사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서 한 총리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평화정책을 확고히 추진하여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발생한 두차례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NLL이 남과 북을 잇는 평화의 바닷길이 되고 교류협력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용사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2002년 교전 당시 다리를 다친 이희완 대위가 불편한 몸으로 참석, 당시 상황에 대해 경과보고를 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 대위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그들이 숨지게 된 당시 상황을 전하자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미국의 한국전 참전 기념탑에 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을 설치하는데 기여한 매사추세츠주 한국전 추모협회 회장 대니얼 브랜녹 씨 등 3명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브랜녹 씨는 “한국전 참전용사로서 제2연평해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왔다”며 “뜻깊은 추모행사를 직접 보니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에 대해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29일 오전 10시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선제 기습공격을 가해 발생했으며 30여분 간 교전 끝에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서해교전’의 이름을 ‘제2연평해전’으로 바꿨으며 해군교육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에 각각 전사자 6명의 흉상을 세웠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