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유승삼 칼럼]개혁 진영의 절망과 희망 개혁 진영의 절망과 희망 유승삼 (언론인) 개혁·진보 진영의 참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선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렵다. 현재의 주류 민심은 한마디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50년대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야당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 현재의 민심이 바로 그렇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BBK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 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도 바로 그런 ‘바꿔 보자’는 민심 탓이다.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인정한 것만 놓고 보아도 비리와 흠투성이다. 그런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원인이야 어떻든 ‘80’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20’의 대표를 지지하는 계급적, 정치적 몽매성과 자가당착도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에 이른다는 나라로서는 남부끄러운 일이다. 준비부족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러나 흠집투성이의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개혁진영 능력 부족에 있다. 우선 상대가 그렇게 비리와 흠집투성이인데도 그를 능가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개혁 진영은 반세기만에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획득한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물론 한나라당이 개혁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내건 구호이지만 개혁진영이 주어진 역사적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면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정부 수립 이래 지난 60년 간 이 땅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보수체제가 확립됐다. 경제 개발도 그런 냉전구조와 보수정치 체제 아래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여건에 진보적 가치를 접목하려면 거의 혁명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개혁 진영은 혁명에 준하는 개혁은커녕 사실상 현실에 안주했다. 보수 정권이 남긴 경제체제와 관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던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획기적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이 ‘배신의 10년’이란 비판을 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세월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불로소득의 10년’이었다. IMF사태의 위기를 불러 온 것은 보수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진 보수의 성채를 수선해 다시 번듯한 보수체제를 구축하고 그 성채로 향한 길마저 열심히 닦아준 것이 어이없게도 바로 개혁진영이었다. 보수 관료체제의 포로가 되어 IMF체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지난 10년이었다. 이는 개혁진영이 기존 보수체제를 바꿀 대안이나 현실 운용 능력은 없이 정권만 덜렁 잡았던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보수 세력이라면 현존하는 질서와 체제가 보수적이기에 정권만 잡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보수에 대항하는 세력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질서와 체제를 바꾸려면, 그리고 그것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현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과도적 부작용에 대한 주도면밀한 대책과 일시적 혼란과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획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개혁진영엔 선한 의지는 있었을는지 모르나 그런 준비는 없었다. 개혁진영이 처절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보수의 집권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진보의 대안을 준비하는 데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수의 역사는 무려 60년이 아니던가. 그런 보수의 성채가 한두 번의 공격으로 무너지리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이다. 5년 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에게 보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1970년부터 재벌들을 설득해 해리티지 재단, 올린 기금 교수직과 연구소 등을 세우며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보다 4배나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논쟁, 토론, 저술, 강연 등을 통해 먼저 보수주의자 내부의 행동을 통일하고 인맥을 형성하여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공화당의 오랜 백악관 장악과 의회 지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참패를 통해 자신의 무능력과 대안 준비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11
- [신문로]오픈소스를 쓸 때다 오픈소스를 쓸 때다 박태웅 (열린사이버대 부총장) 윈도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컴퓨터 운영체계다. 세계 퍼스널 컴퓨터의 대부분이 윈도를 쓰고 있다. 2001년 8월 ‘코드레드’라는 웜바이러스가 창궐해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4만3천여 개의 기관이 동시 피해를 입은 것, 그 1년반쯤 뒤인 2003년초 이른바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가 유독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도, 그 원인의 하나는 100%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윈도 독점체계에 있다. 한 종류의 닭을 좁은 양계장에 모아 기르면 효율은 높지만 돌림병에는 답이 없어 주기적으로 집단폐사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과 10년여 전만 해도 윈도 새 버전이 나오는 것은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세계 곳곳의 채 문이 열리지 않은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긴 줄을 지어 윈도 새 버전을 기다렸다. 로이터니 에이피니 하는 해외 통신사들은 그런 날이면 으레 새 윈도 버전이 담긴 상자를 들고 환호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세계로 내보냈다. 올초 마이크로소프트가 몇 년을 갈고 닦은 비장의 윈도 새 버전 ‘비스타’를 내놓았을 때 이런 기사가 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비스타’가 국내 인터넷 뱅킹, 전자정부서비스 이용, 게임 등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불과 10년이 채 못돼서 ‘시대의 총아’가 오갈 데 없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것이다. 설계도 공개한 무료 소프트웨어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것이 귀찮고, 바뀐 메뉴들이 성가시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몇 년이 된 일이다. 워드나 엑셀 등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금도 충분한데 왜 자꾸 개선판을 내놓는거야?’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놀라운’ 기능들이 계속해서 덧붙여지지만 우리는 늘 쓰던 기능 몇 가지를 쓸 뿐이다.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속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독점 탓이다. 새로 나오는 모든 컴퓨터에 비스타만 깔려 나오고, 예전 버전인 윈도98이나 윈도NT는 임의로 판매를 중단하고 지원을 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오픈소스’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설계도를 공개한 무료 소프트웨어다. 전 세계의 누구나 설계도를 볼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 무료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오픈소스로 만든 프로그램이 상용 제품의 완성도를 따라가기는 버겁다는 지적이 많았다. 돈을 받아가며 직업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 제품을 자원봉사자들이 어떻게 따라가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앞에서 보듯 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성능이 되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쓰기에는 충분하다. 상용 제품들이 언제부턴가 업그레이드를 위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는 동안, 오픈소스가 아주 안정된 품질을 갖추고 따라잡게 된 것이다.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과 같은 기본 소프트웨어는 물론, 인터넷을 즐기는데 필요한 브라우저에서 운영체계, DB에서 전문적인 CRM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품질을 가진 ‘무료’ 오픈소스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의 출현은 오픈소스의 발전에 날개를 달았다. 인터넷 자체가 전세계의 데이터 교환을 위해 ‘공개된 표준’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데다,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전지구적 규모로 오픈소스의 개발에 기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이선스 비용 아낄 수 있어 하지만 한국에서 오픈소스는 맥없이 초라하다. 유럽에선 이미 20%대를 훌쩍 넘은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돋보기로 봐야 보일만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IT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조차 오픈소스를 제대로 안다는 비율이 채 20%가 되지 않는다. 오픈소스를 사용하면 해마다 천문학적 수준의 라이선스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환경도 한결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열악한 소프트웨어산업 환경이라든가,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묻지 않고 개발자 머릿수로만 값을 치는 한심한 단가 산정과 같은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고질병들을 함께 고쳐나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픈소스에 기회를 줄 때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7
- <유승삼 칼럼>개혁 진영의 절망과 희망(2007.12.11) 개혁 진영의 절망과 희망 유승삼 칼럼 언론인 개혁·진보 진영의 참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선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렵다. 현재의 주류 민심은 한마디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50년대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야당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 현재의 민심이 바로 그렇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BBK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 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도 바로 그런 ‘바꿔 보자’는 민심 탓이다.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인정한 것만 놓고 보아도 비리와 흠투성이다. 그런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원인이야 어떻든 ‘80’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20’의 대표를 지지하는 계급적, 정치적 몽매성과 자가당착도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에 이른다는 나라로서는 남부끄러운 일이다. 준비부족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러나 흠집투성이의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개혁진영 능력 부족에 있다. 우선 상대가 그렇게 비리와 흠집투성이인데도 그를 능가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개혁 진영은 반세기만에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획득한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물론 한나라당이 개혁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내 건 구호이지만 개혁진영이 주어진 역사적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면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정부 수립 이래 지난 60년 간 이 땅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보수체제가 확립됐다. 경제 개발도 그런 냉전구조와 보수정치 체제 아래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여건에 진보적 가치를 접목하려면 거의 혁명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개혁 진영은 혁명에 준하는 개혁은커녕 사실상 현실에 안주했다. 보수 정권이 남긴 경제체제와 관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던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획기적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이 ‘배신의 10년’이란 비판을 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세월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불로소득의 10년’이었다. IMF사태의 위기를 불러 온 것은 보수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진 보수의 성채를 수선해 다시 번듯한 보수체제를 구축하고 그 성채로 향한 길마저 열심히 닦아준 것이 어이없게도 바로 개혁진영이었다. 보수 관료체제의 포로가 되어 IMF체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지난 10년이었다. 이는 개혁진영이 기존 보수체제를 바꿀 대안이나 현실 운용 능력은 없이 정권만 덜렁 잡았던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보수 세력이라면 현존하는 질서와 체제가 보수적이기에 정권만 잡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보수에 대항하는 세력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질서와 체제를 바꾸려면, 그리고 그것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현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과도적 부작용에 대한 주도면밀한 대책과 일시적 혼란과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획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개혁진영엔 선한 의지는 있었을는지 모르나 그런 준비는 없었다. 5년 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개혁진영이 처절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보수의 집권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진보의 대안을 준비하는 데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수의 역사는 무려 60년이 아니던가. 그런 보수의 성채가 한두 번의 공격으로 무너지리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에게 보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1970년부터 재벌들을 설득해 해리티지 재단, 올린 기금 교수직과 연구소 등을 세우며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보다 4배나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논쟁, 토론, 저술, 강연 등을 통해 먼저 보수주의자 내부의 행동을 통일하고 인맥을 형성하여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공화당의 오랜 백악관 장악과 의회 지배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참패를 통해 자신의 무능력과 대안 준비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11
- <신문로 칼럼>오픈소스를 쓸 때다(박태웅 2007.12.07) 오픈소스를 쓸 때다 / 박태웅 열린사이버대학교(OCU) 부총장 윈도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컴퓨터 운영체계다. 세계 퍼스널 컴퓨터의 대부분이 윈도를 쓰고 있다. 2001년 8월 ‘코드레드’라는 웜바이러스가 창궐해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4만3천여 개의 기관이 동시 피해를 입은 것, 그 1년반쯤 뒤인 2003년초 이른바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가 유독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도, 그 원인의 하나는 100%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윈도 독점체계에 있다. 한 종류의 닭을 좁은 양계장에 모아 기르면 효율은 높지만 돌림병에는 답이 없어 주기적으로 집단폐사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과 10년여 전만 해도 윈도 새 버전이 나오는 것은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세계 곳곳의 채 문이 열리지 않은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긴 줄을 지어 윈도 새 버전을 기다렸다. 로이터니 에이피니 하는 해외 통신사들은 그런 날이면 으레 새 윈도 버전이 담긴 상자를 들고 환호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세계로 내보냈다. 올초 마이크로소프트가 몇 년을 갈고 닦은 비장의 윈도 새 버전 ‘비스타’를 내놓았을 때 이런 기사가 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비스타’가 국내 인터넷 뱅킹, 전자정부서비스 이용, 게임 등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불과 10년이 채 못돼서 ‘시대의 총아’가 오갈데 없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것이다.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것이 귀찮고, 바뀐 메뉴들이 성가시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몇 년이 된 일이다. 워드나 엑셀 등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금도 충분한데 왜 자꾸 개선판을 내놓는거야?’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놀라운’ 기능들이 계속해서 덧붙여지지만 우리는 늘 쓰던 기능 몇 가지를 쓸 뿐이다.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계속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독점 탓이다. 새로 나오는 모든 컴퓨터에 비스타만 깔려 나오고, 예전 버전인 윈도98이나 윈도NT는 임의로 판매를 중단하고 지원을 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오픈소스’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설계도를 공개한 무료 소프트웨어다. 전 세계의 누구나 설계도를 볼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 무료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오픈소스로 만든 프로그램이 상용 제품의 완성도를 따라가기는 버겁다는 지적이 많았다. 돈을 받아가며 직업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 제품을 자원봉사자들이 어떻게 따라가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앞에서 보듯 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성능이 되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쓰기에는 충분하다. 상용 제품들이 언제부턴가 업그레이드를 위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는 동안, 오픈소스가 아주 안정된 품질을 갖추고 따라잡게 된 것이다.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과 같은 기본 소프트웨어는 물론, 인터넷을 즐기는데 필요한 브라우저에서 운영체계, DB에서 전문적인 CRM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품질을 가진 ‘무료’ 오픈소스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의 출현은 오픈소스의 발전에 날개를 달았다. 인터넷 자체가 전세계의 데이터 교환을 위해 ‘공개된 표준’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데다,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전지구적 규모로 오픈소스의 개발에 기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픈소스는 맥없이 초라하다. 유럽에선 이미 20%대를 훌쩍 넘은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돋보기로 봐야 보일만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IT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조차 오픈소스를 제대로 안다는 비율이 채 20%가 되지 않는다. 오픈소스를 사용하면 해마다 천문학적 수준의 라이선스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환경도 한결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열악한 소프트웨어산업 환경이라든가,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묻지 않고 개발자 머릿수로만 값을 치는 한심한 단가 산정과 같은 한국 소프트웨어산업의 고질병들을 함께 고쳐나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픈소스에 기회를 줄 때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7
- 태조 왕건의 도시, 남측 관광객을 맞다 개성관광 개시 …박연폭포와 고려 역사 유적 볼 수 있어 태조 왕건의 도시, 정몽주의 곧은 충절과 황진이의 애틋한 사랑이 서려 있는 곳. 고려 500년 도읍지인 개성이 5일 남한 관광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일반관광객과 국내외 취재진, 현대아산 관계자 등 330여명은 이날 오전 6시 서울 계동에서 10대의 관광버스에 나뉘어 타고 개성을 향했다. 출입국 수속을 밟고 군사분계선을 지나 개성까지 오는 데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남측 사람들이 맘놓고 개성을 둘러볼 수 있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시내에 가까워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개성 뒤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었다. 꼭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시내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찾은 곳은 개성에서 북쪽으로 27km 떨어진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담과 함께 송도3절로 꼽히는 곳이다. 폭포 위쪽으로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흐르는 계곡물이 박연을 만들고, 이 물이 37m 절벽 아래로 떨어져 고모담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시대 박 진사라는 사람이 이곳에 머물며 밤마다 피리를 불었는데, 피리소리에 반한 용왕의 딸이 박 진사를 못 속으로 끌고 갔다 해서 박연이 됐고, 박 진사를 찾지 못한 어머니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몸을 던진 곳이라 하여 고모담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모담 옆으로 용머리를 닮아 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에는 조선시대 명기인 황진이가 머리채를 물에 적셔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는 시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폭포를 돌아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관음사가 나온다. 관음사란 이름은 970년 법안국사가 천연굴 속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가져다두고 그 이름을 관음굴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 실제 대웅전 옆 관음굴에는 1.2m 크기에 관세음보살상 좌상이 신비로운 자태로 놓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현재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점심은 개성시내 한복판에 있는 통일관에서 먹었다. 식사는 개성 토속 음식인 ‘13첩 반상기’가 나왔다. 닭고기 신선로를 비롯해 돼지고기 및 생선구이 등이 13가지의 밥과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한 상을 이루고 있는 ‘13첩 반상기’는 기름지지 않고 담백했다. 식사를 마친 후 숭양서원을 들러 선죽교를 찾았다. 숭양서원은 원래 정몽주의 집터로 1573년 개성 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함께 서원으로 고쳐 세웠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은 곳이라 한다. 선죽교는 길이 6.67m, 너비 2.54m의 돌다리로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정몽주의 혈흔이라는 검붉은 자국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돌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게 북측 안내원의 설명이다. 그래도 당시의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고려박물관이었다. 원래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이 있던 이곳을 북측은 1988년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북측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중 고려청자는 뛰어난 색상과 아름다운 형상으로 인기를 모았다. 고려 패망 이후 60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는 왕씨 족보도 눈길을 끌었다. 왕씨 후손이라는 한 관광객은 “집안 어르신 모임 때 보여드릴 예정”이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역사 유적지를 옮겨다니며 개성 시내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개성관광의 특징이다. 개성 첫 관광의 최고령자로 참가한 김윤경 옹(87세)은 “50여년만에 고향땅을 밟으니 감개가 무량하다”며 “길과 건물 등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개성관광은 당분간 당일코스로만 진행된다. 요금은 1인당 18만원. 겨울인데도 예약자가 7000여명에 달한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이 개성을 다녀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앞으로 관광코스나 일정 등도 다양하게 구성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성=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6
- [밥일꿈]자전거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 자전거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 김남식 (대전시청 도로과 자전거도로팀) 어릴 적 자전거에 대한 추억을 되짚다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집에서 10리 정도 거리에 있는 5년제 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에 한동안 걸어서 통학했다. 몇 달에 걸쳐 아버지께 떼를 쓰고 심통을 부려 중고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다. 그 자전거가 얼마나 좋았는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티끌만한 먼지만 닿아도 반짝거리게 닦고 주무르며 애지중지했다. 자전거는 책보다 더 소중하게 다뤘던 나의 보물 1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질풍같이 달려오는 자동차 행렬에 밀려 자전거 타는 모습은 조용히 추억 속으로 잊혀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호회와 학생, 직장인들을 앞세워 다시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발해국 시절 태어난 ‘자행륜거(自行倫車)’ 이후 자전거의 생명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은 좀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자전거는 지금 막 부력을 받고 떠오르는 생활과 레포츠 수단 중 하나다. 때마침 주변 여건이 자전거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기름값, 비좁은 땅에 넘쳐나는 자동차로 인한 교통지옥과 주차난, 공해로 인한 환경오염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또 건강과 참살이 생활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가장 손쉽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자전거가 주목받고 있다. 지금 세계 패션 일번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벨리브(Velib)’라는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다. 벨리브는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무인 자전거 대여시스템으로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다. 저렴한 요금으로 자전거를 빌리고 목적지에서 반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파리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첫 선을 보인 이후 한 달 이용객이 약 150만 명으로 늘어났다. 프랑스가 수십 년 간 내놓은 정책 가운데 최고의 히트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우리나라도 대전을 비롯해 서울, 창원 등 자전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치단체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프리바이크(Free-Bike) 시스템’이란 사업명으로 무인자건거 대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전거는 돈이 크게 들지 않는 경제적 이동수단이다. 높아지는 기름값이나 교통체증과 관련 없이 달릴 수 있으며, 환경오염 걱정이 전혀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가 표방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지켜준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자전거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전거 행렬이 도심을 누비는, 녹색도시로 탈바꿈할 대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3
- [책소개]“나이 서른, 많이 고민하고 아파해라”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1만원 출판계에서는 10대와 20대 성장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중장년기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나은 삶,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책들이 독자들에게 삶의 지침서가 되고 참고서가 됐다. ‘그러면 30대는?’이라는 의문이 든다. 사실 30대를 의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인생에서 30대는 사회에 진출해 자기 위치를 잡고 인생의 다른 변혁기인 결혼을 준비하는 때다. 이렇다보니 조직에서, 사회에서 더 좋은 위치에 올라가게 하는 그런 류들의 책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연애지침서나 재테크, 직장내에서 성공하기 위한 처세술의 책들이 30대를 위한 것들이다. 외모를 잘 가꾸는데 도움을 주지만 내면은 다져주는 책은 거의 없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던져주고 있지 못하는 책이 홍수처럼 넘친다. 이른바 자기 삶과 조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책을 만나도 우리는 항상 ‘왜 성공을 하는데’라는 질문을 버리지 못한다. 30대들이야 말로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하다. 10대·20대와 다른 고민이 넘치고 상실의 시대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절정’인 30대를 위한 그런 책은 없다. 이러한 출판계 상황에서 시인 신현림이 펴낸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저자의 30대를 되돌아 본 책이다. 주변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가족사와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과정, 사회에서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싱글맘’으로 자리잡기 까지 과정이 담겨져 있다. 본인에게는 슬프고 서러운 세월이지만 독자들에게는 이질감이 남는다. 저자는 자신의 서른살이 치열했다고 이야기하지만 독자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30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데 노력한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적 부 대신 자신의 습작을 위한 노력만 벌였다. 하지만 그녀의 글에서는 하루하루 생존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던져준다. 신자유주의와 ‘1등’ ‘최고’ ‘혁신’만을 떠드는 지금의 30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에 자꾸만 손이 가는 것은 30대라면 누구나 해봄직한 고민들이 열거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거듭된 입시 실패로 10년 넘게 불면증에 시달렸다. 돈이 없어 헌책방에서 책을 사다 읽었고 문하생이나 대학이 아닌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며 자신을 추스렸다. 그야 말로 ‘헝그리’ 인생인 셈이다. 당연히 좌절의 깊이와 길이도 길었을터. 저자는 “현실의 어려움이 닥쳐 올 때마다 좌절이 오기를 불렀고, 학맥·인맥으로 얽혔더라도 실력이 이길 것”이라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결국 등단에 성공했고 여러 문학상을 받으며 전업시인과 사진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는 가족과 지인들이 끊임없이 저자에게 도움을 줬다. 저자에게는 배고픈 후배를 위해 피를 팔아 버린 선배도 있고 풋사랑을 키워 그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한 어설픈 사랑도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언제 어디서고 그를 위해 달려오던 친구들을 찬양한다. 저자는 “더 나이 들어서도 제일 가고 싶을 서른살, 곧 삼십대. 그때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더라. 그 시절 고독과 불안을 잘 이겨냈기에 가난도 외로움도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오승완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3
- (밥일꿈) 자전거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 대전시 자전거 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좀 더 낳은 환경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가끔은 자전거 업무가 골치를 썩이는 때도 있지만 어릴 적 자전거에 대한 추억을 되짚다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집에서 10리 정도 거리에 있는 5년제 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한동안 걸어서 통학을 했다. 그러다 몇 달에 걸쳐 아버지께 떼를 쓰고 심통을 부려 중고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다. 그 때는 자전거가 얼마나 좋았는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티끌만한 먼지만 닿아도 반짝거리게 닦고 주무르며 애지중지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책보다 더 소중하게 다뤘던 나의 보물 1호였다. 어느새 세월이 수십 년 흐르면서 질풍같이 달려오는 자동차 행렬에 밀려 자전거 타는 모습은 조용히 추억 속으로 잊혀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호회와 학생, 직장인들을 앞세워 다시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발해국 시절 태어난 ‘자행륜거(自行倫車)’ 이후 자전거의 생명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에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은 좀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자전거는 지금 막 부력을 받고 떠오르는 생활과 레포츠 수단 중 하나다. 때마침 주변 여건이 자전거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기름값, 비좁은 땅에 넘쳐나는 자동차로 인한 교통지옥과 주차난, 공해로 인한 환경오염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또 건강과 웰빙 생활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가장 손쉽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자전거가 주목받고 있다. 지금 세계 패션 일번지 프랑스 파리에서는 ‘벨리브(Velib)’라는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다. 벨리브는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무인 자전거 대여시스템으로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다. 저렴한 요금으로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은 목적지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파리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첫 선을 보인 이후 한 달 이용객이 약 150만 명으로 늘어났다. 프랑스가 수십 년 간 내놓은 정책 가운데 최고의 히트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관심이 지대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전을 비롯해 서울, 창원 등 자전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치단체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프리바이크(Free-Bike) 시스템’이란 사업명으로 무인자건거 대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전거는 돈이 크게 들지 않는 경제적 이동수단이며 에너지 걱정이 없고 교통체증과 관련 없이 달릴 수 있으며, 환경오염 걱정이 전혀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가 표방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자전거가 뜰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얼마 후 자전거 행렬이 도심 속을 누비는 녹색도시로 탈바꿈할 대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2-03
- [김진동 칼럼]그런들 어떠하리? 그런들 어떠하리? 김진동 (본지 객원 논설위원) 누구를 찍어야 하나.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 발이 부르트게 뛰는 대통령 후보들의 조바심 못지않게 유권자들도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고민의 세월’이 다가오고 있다. 12인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본격적인 본선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5년 전의 ‘함성’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유권자의 가슴을 적시는 감동도 없고 가슴을 파고드는 정책도 없다. 시선을 끄는 긴장구도도 없다. 언론기관마다 쏟아내는 여론조사라는 것도 그게 그거다. 순위나 지지율 변화가 거의 없어 ‘이미 끝난 선거’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최악의 대선’으로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 없는 대선’ ‘심심한 대선’으로 서둘러 규정하는 사람이 많다. 투표율이 60%선에 머물 것으로 예측될 정도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고민스럽겠지만 그 중 누군가 한 사람을 골라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수 없다. 최악의 대선, 심심한 대선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열 사람에게 불어보면 아홉 사람은 대통령의 덕목으로 도덕성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능력이나 이념은 그 다음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긴 해도 정치인 특히 최고 통치권자에게, 국민대다수가 첫 손가락으로 꼽듯이,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보면, 이상하게도 유권자의 판단과 실행의지는 모순되게 나타난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경선을 거치는 동안, 또 그 이후에 불거진 여러가지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도 지지 순위는 요지부동이다. 지지율이 다소 내려가기는 했지만 2,3순위와의 격차는 거의 그대로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변수라는 BBK사건은 검찰 손에 넘어가 머지않아 판가름 나게 되어 있다. 여론조사는 이 대목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나타난다. 많은 이 후보 지지자들도 이 후보가 BBK에 연루되었고 도덕성에 결함이 적지 않다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래도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도덕성은 묻지 마라. 경제만 살려달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거의 권좌 직전의 이회창 후보가 ‘도덕성 한 방’에 패배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진 현상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말인데, 어떤 방법으로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세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 불감증 탓인가, 아니면 정치 중독증 때문일까. 유권자들의 의사결정엔 이성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미국 학자의 ‘뇌’연구결과,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모순된 언행은 이성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어 단번에 알아차리고,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된 언행엔 부정적 감성의 신경회로가 꺼지고 긍정적 신경회로가 작동하더라고 한다. 그래서 지지후보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열광하는 ‘지지 후보 중독증’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보면 “도덕성은 묻지마” 현상은 경제 대통령 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를 살리는 것만큼 더 값나가는 화두는 찾기 어렵다. 경제 성장은 기대치 이하에서 맴돌고 일자리가 없어 청년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나라나 가계나 빚더미에 올라 앉았고 서민생활은 더욱 폭폭해져가고 있다. 희망조차 가물거린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고 서민도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유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마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이유다. 모두 경제 대통령이 될 터이니 표를 달라고 한다. 경제대통령 열병은 노무현 정부가 뿌린 씨앗이다. 지난 5년동안에 경제만 나빠진 게 아니라 기대했던 반부패와 깨끗한 도덕성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정부와 다르게만 하면 사는 사정이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경제 대통령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도덕성 위에 세워야 경제 튼튼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가 살아나게 된 까닭도 경제다. 반민주 반인권에도 불구하고 가난을 벗어나게 했다는 것만으로 독재는 묻히고 경제치적만 평가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도덕성 위에 세워야 튼튼하기 마련이다. 도덕성 기반이 없는 경제는 허망할 수 있다. 최근 삼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은 우리나라 4분의 1을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의 대 재벌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 삼성정서에 시달렸다. 끝내는 반칙과 부도덕성이 발가벗겨 질 위기를 맞았다. 잘 살게 되는 것도 방법과 과정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부자라고 다 부자가 아니다. 청부여야만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오래 간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9
- <김진동 칼럼>그런들 어떠하리?(2007.11.29) 그런들 어떠하리? 누구를 찍어야 하나.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 발이 부르트게 뛰는 대통령 후보들의 조바심 못지않게 유권자들도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고민의 세월’이 다가오고 있다. 12인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본격적인 본선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5년 전의 ‘함성’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유권자의 가슴을 적시는 감동도 없고 가슴을 파고드는 정책도 없다. 시선을 끄는 긴장구도도 없다. ‘도박’을 걸만한 신선한 얼굴도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기관마다 쏟아내는 여론조사라는 것도 그게 그거다. 순위나 지지율 변화가 거의 없어 ‘이미 끝난 선거’라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최악의 대선’으로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 없는 대선’ ‘심심한 대선’으로 서둘러 규정하는 사람이 많다. 투표율이 60%선에 머물 것으로 예측될 정도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고민스럽겠지만 그 중 누군가 한 사람을 골라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열 사람에게 불어보면 아홉 사람은 대통령의 덕목으로 도덕성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능력이나 이념은 그 다음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긴 해도 정치인 특히 최고 통치권자에게, 국민대다수가 첫 손가락으로 꼽듯이,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은 없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보면, 이상하게도 유권자의 판단과 실행의지는 모순되게 나타난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경선을 거치는 동안, 또 그 이후에 불거진 여러가지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도 지지 순위는 요지부동이다. 지지율이 다소 내려가기는 했지만 2,3순위와는 격차는 거의 그대로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변수라는 BBK사건은 검찰의 손에 넘어가 머지않아 판가름 나게 되어 있다. 여론조사는 이 대목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나타난다. 많은 이 후보 지지자들도 이 후보가 BBK에 연루되었고 도덕성에 결함이 적지 않다고 받아들이면서도 그래도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도덕성은 묻지 마라. 부패해도 좋다. 경제만 살려달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거의 권좌 직전의 이회창 후보가 ‘도덕성 한 방’에 패배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진 현상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말인데, 어떤 방법으로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세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 불감증 탓인가, 아니면 정치 중독증 때문일까. 유권자들의 의사결정엔 이성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한다. 미국 학자의 ‘뇌’연구결과,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모순된 언행은 이성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어 단번에 알아차리고, 지지하는 후보의 모손된 언행엔 부정적 감성의 신경회로가 꺼지고 긍정적 신경회로가 작동하더라고 한다. 그래서 지지후보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열광하는 ‘지지 후보 중독증''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보면 “도덕성은 묻지마” 현상은 경제 대통령 중독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를 살리는 것만큼 더 값나가는 화두는 찾기 어렵다. 경제 성장은 기대치 이하에서 맴돌고 일자리가 없어 청년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나라나 가계나 빚더미에 올라 앉았고 서민생활은 더욱 폭폭해져가고 있다. 희망조차 가물거린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고 서민도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에 유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마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선 이유다. 모두 경제 대통령이 될 터이니 표를 달라고 한다. 경제대통령 열병은 노무현 정부가 뿌린 씨앗이다. 지난 5년동안에 경제만 나빠진 게 아니라 기대했던 반부패와 깨끗한 도덕성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정부와 다르게만 하면 사는 사정이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경제 대통령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가 살아나게 된 까닭도 경제다. 반민주 반인권에도 불구하고 가난을 벗어나게 했다는 것만으로 독제는 묻히고 경제치적만 평가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도덕성 위에 세워야 튼튼하기 마련이다. 도덕성 기반이 없는 경제는 허망할 수 있다. 최근 삼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은 우리나라 4분의 1을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의 대 재벌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 삼성정서에 시달렸다. 끝내는 반칙과 부도덕성이 발가벗겨 질 위기를 맞았다. 잘 살게 되는 것도 방법과 과정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부자라고 다 부자가 아니다. 청부여야만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오래 간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