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전윤철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국회 통과 전윤철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7일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190명 중 찬성 171명, 반대 18명, 무효 1명으로 90%의 찬성으로 전윤철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전 원장은 제20대 감사원장으로 취임하면 감사원장 정년(70세)인 2009년 6월까지 1년 7개월간 차기 정권의 초반부 동안 재임할 수 있게 됐다. 전 원장은 인사청문회를 두 번 거친 유일한 공직자란 기록을 세월을 뿐만 아니라, 2009년 6월까지 재임시 전체 공직근무기간은 41년이 되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차기 정권까지 4대 정권에 걸쳐 정무직으로 근무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전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말 수산청장을 시작으로 1997년 3월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해 김대중 정부로 바뀐 2000년 8월까지 재임했고, 그후 기획예산처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11월 이후 감사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08
- 명사가 권하는 전통주 컬렉션 ② 전통소주 이슬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만든 술 조 순 이사장, “희석하지 않고 전통방식으로 만든 소주가 좋아” 소주(燒酒)는 이름 그대로 술을 불태워 만든 것이다. 가마솥에 술을 끓여 이슬을 받듯 소줏고리로 한 방울 한 방울 받아 모은 게 소주다. 우리가 시중에서 흔히 마시는 술은 알코올에 물을 타 희석한 것이니 ‘소주’라는 이름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위스키, 브랜디, 마호타이 등 세계적 명주들도 모두 증류식으로 만든 ‘소주’다. ◆위스키, 브랜디, 마호타이도 소주 = 한국 경제학의 큰 봉우리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조 순(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선조들이 빚어 마시던 소주를 다시 마실 수 있길 바란다. 조 이사장은 “나는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소주가 좋다”며 “우리 쌀로 만든 전통소주는 안동 뿐 아니라 내 고향 강릉에도 있었고 전국 곳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1335년경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국전통주연구소)되는 소주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하게 빚어 마셨다. 남쪽에선 여름철에 발효주를 담가 먹기 불편해 발효주를 증류해 소주로 먹었다. 찬 날씨 덕분에 북쪽으로 갈수록 소주가 발달했다. 관서감홍로, 이강고(이강주의 원류) 등은 알콜함량이 60~70% 정도까지 됐다. 열량 높은 술을 마셔 추위를 견딘 것이다. 서울 문배주, 경상도 안동소주 등은 지금도 유명하다. 전통소주를 만드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이 물이 따뜻해지면 증류할 술을 한 바가지 끓는 물에 붓는다. 술과 물이 섞인 게 다시 뜨거워지면 술을 두 바가지 붓고, 또 뜨거워지면 네 바가지를 붓고, 이렇게 두 배씩 늘려가 솥의 80%를 채운다. 찬물그릇을 솥 위에 올려 술의 수증기를 액화해 긴 관(소줏고리)으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받는다. 알콜도수는 증류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데 처음 나오는 게 독하고 나중으로 갈수록 알콜함량이 떨어진다. 소주는 재료와 빚는 방법, 계절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진도홍주는 소줏고리 귓대 밑에 생약재로 쓰이는 지초를 놓아 소주를 받은 술이다. 소주가 지초를 통과하는 순간 홍옥 빛깔이 물든다. ◆주세법 바꿔야 명주 생산 가능 = 좋은 술이란 무엇일까. 조 순 이사장은 “맛있고 건강에도 나쁘지 않은 술”이라며 “쌀로 만드는 소주는 막걸리 청주보다 술량은 적지만 훨씬 맛있다”고 말했다. 소주는 건강에도 좋은 술이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에 따르면 14세기 이후 빚어 먹었던 소주는 처음엔 약으로 사용했고 차츰 사대부나 부유층을 중심으로 번져 일반으로 확산됐다. 박 소장은 “우리의 전통 술 문화는 밥과 함께 먹는 ‘반주문화’였다”며 “쌀로 만든 밥을 먹을 때 쌀로 빚은 소주를 두 세잔 먹어 소화를 돕는 지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전통소주를 많이 마시지 못했다. 그는 “어릴 땐 가난해서 못 마셨고, 외국 유학을 하던 젊은 시절엔 위스키를많이 마셨다”며 “좋은 우리 술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석식 소주와 맥주 위스키 와인 등이 장악한 주류시장에 좋은 우리 술이 등장할 수 있을까. 전통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발렌타인’같은 소주(위스키)가 나오려면 제도 변화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박록담 소장은 “위스키는 17년 21년 30년 숙성시켜 먹는데 우리는 전통소주를 오랜 시간 숙성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긴 세월 숙성하면 그만큼 높은 가격으로 술을 팔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주세법은 그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세법을 개정해 좋은 술을 빚어 오랜 시간 숙성시켜 100만원 1000만원짜리 고급술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순 이사장은 “세계적인 명주를 내놓은 나라는 로마,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세계적 강국이었다”며 “우리도 부유한 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위스키 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이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대표 소주를 만드는 날을 기대해 보자.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08
- 전윤철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국회 통과 전윤철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7일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190명 중 찬성 171명, 반대 18명, 무효 1명으로 90%의 찬성으로 전윤철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전 원장은 제20대 감사원장으로 취임하면 감사원장 정년(70세)인 2009년 6월까지 1년 7개월간 차기 정권의 초반부 동안 재임할 수 있게 됐다. 전 원장은 인사청문회를 두 번 거친 유일한 공직자란 기록을 세월을 뿐만 아니라, 2009년 6월까지 재임시 전체 공직근무기간은 41년이 되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차기 정권까지 4대 정권에 걸쳐 정무직으로 근무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전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말 수산청장을 시작으로 1997년 3월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해 김대중 정부로 바뀐 2000년 8월까지 재임했고, 그후 기획예산처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11월 이후 감사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08
- [신문로]무안기업도시와 한중협력 무안기업도시와 한중협력 서삼석 (전남 무안군수) 전남 무안군이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를 유치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03년 9월 전경련은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도해야 하고 그 대안으로 기업도시 건설을 제안하면서 최적지로 무안군을 지목하였다. 우리 군에서는 정부에서도 경제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업도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전국 지자체중에서는 제일 먼저 중앙부처, 경제계 등의 동향을 파악함과 동시에 기업도시 유치 계획을 세웠다. 2004년 7월 무안군 기업도시 유치를 위한 워크숍을 광주 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였다. 무안기업도시에 대한 지역 경제계의 관심을 유도하고 무안기업도시가 단순히 무안군만의 일이 아닌 광주·전남권에 꼭 필요한 사업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 기업도시 범 군민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여 7만 군민의 의지를 하나로 결집시켜 나갔다. 그러나 유치 신청서를 접수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산업 교역형 기업도시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주할 기업을 모집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경련과 중견기업 연합회 등의 협조를 받아 기업을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지만 무안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무안군이 기업도시로서 입지의 우위성 등을 설명하고 이해 설득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 기업도시는 민간기업이 주도하여 정주생활권을 갖춘 복합도시 건설을 의미한다. 낙후된 지역에 기업도시 건설을 통하여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룩하는데 있다. 무안기업도시는 대중국 교역의 창구가 될 것이다. 무안기업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자본의 유치이다. 한국 기업들이 외면하는 무안에 중국 국가나 지방정부(중경시) 그리고 민간기업들이 무안을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 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보면 무안은 무안국제공항이 소재하고 전남 도청이 소재하는 행정의 중심이자 호남권 물류의 거점으로서 앞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조우추취(走出去) 경제정책에 의해 해외투자를 독려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자 OECD 가입국가인 한국은 투자지역으로서는 매우 매력있는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미 FTA협상 타결 등은 글로벌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우회 수출창구로써 무안기업도시는 매력을 갖고 있으며 최소한 30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한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중국자본 유치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금년 1월에 기업의 해외투자 승인을 하였으며 추가로 9월 말에 상무부는 해외 경제협력단지로 한중산업단지를 지정하였다. 한중 수교15주년을 맞아 무안에서 한·중간에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 지자체에서 중국 자본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볼 때 일찍이 중국을 무안기업도시의 한 파트너로 정하고 지난 2년 동안 노력해온데 보람을 느낀다. 지역민 성원과 정부배려 절실 무안지역은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1차 산업이 70%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고령화 등 심각한 농촌 문제를 안고 있는 시점에서 무안기업도시 건설은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서는 호남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안기업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참여기업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어린 성원과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무안기업도시는 순수한 민간 기업 주도에서 중국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국가간 협력사업으로 바뀌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무안기업도시는 중국기업이 대부분 입주하게 되며 세계화교인 센터등 대규모의 해외 자본이 유입되는 국제적 기능을 갖춘 도시가 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중요하다. 처음 무안의 미래를 위해 기업도시 유치를 결정한 초심을 잊지 않는다면 무안기업도시는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데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6
- <신문로 칼럼>무안의 미래 “기업도시건설”에 달렸다(서삼석 2007.11.26) 무안의 미래 “기업도시건설”에 달렸다. 무안군수 서 삼 석 무안군이 산업교역형 기업도시를 유치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러다. 2003년 9월 전경련은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도해야 하고 그 대안으로 기업도시 건설을 제안하면서 최적지로 무안군을 지목하였다. 우리군에서는 정부에서도 경제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업도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전국 지자체중에서는 제일 먼저 중앙부처, 경제계 등의 동향을 파악함과 동시에 기업도시 유치 계획을 세웠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2004. 7월 무안군 기업도시 유치를 위한 워크샵을 광주 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였다. 무안기업도시에 대한 지역 경제계의 관심을 유도하고 무안기업도시가 단순히 무안군만의 일이 아닌 광주·전남권에 꼭 필요한 사업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 기업도시 범 군민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여 7만 군민의 의지를 하나로 결집시켜 나갔다. 그러나 유치 신청서를 접수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산업 교역형 기업도시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주할 기업을 모집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경련과 중견기업 연합회 등의 협조를 받아 기업을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지만 무안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무안군이 기업도시로서 입지의 우위성 등을 설명하고 이해 설득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도시는 민간기업이 주도하여 정주생활권을 갖춘 복합도시 건설을 의미한다. 낙후된 지역에 기업도시 건설을 통하여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룩하는데 있다. 무안기업도시는 대중국 교역의 창구가 될 것이다. 무안기업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자본의 유치이다. 한국 기업들이 외면하는 무안에 중국 국가나 지방정부(중경시) 그리고 민간기업들이 무안을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 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 보면 무안은 무안국제공항이 소재하고 전남 도청이 소재하는 행정의 중심이자 호남권 물류의 거점으로서 앞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조우추취(走出去) 경제정책에 의해 해외투자를 독려하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자 OECD 가입국가인 한국은 투자지역으로서는 매우 매력있는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미 FTA협상 타결 등은 글로벌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우회 수출창구로써 무안기업도시는 매력을 갖고 있으며 최소한 30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한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중국자본 유치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정부는 이미 금년 1월에 기업의 해외투자 승인을 하였으며 추가로 9월 말에 상무부는 해외 경제협력단지로 한중산업단지를 지정하였다. 한중 수교15주년을 맞아 무안에서 한·중간에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 지자체에서 중국 자본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볼 때 일찍이 중국을 무안기업도시의 한 파트너로 정하고 지난 2년 동안 노력해온데 보람을 느낀다. 무안기업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성원이 필요하다. 무안지역은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다. 1차 산업이 70%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고령화 등 심각한 농촌 문제를 안고 있는 시점에서 무안기업도시 건설은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서는 호남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안기업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참여기업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어린 성원과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무안기업도시는 순수한 민간 기업의 주도에서 중국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국가간 협력사업으로 바뀌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무안기업도시는 중국기업이 대부분 입주하게 되며 세계화교인 센터등 대규모의 해외 자본이 유입되는 국제적 기능을 갖춘 도시가 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중요하다. 처음 무안의 미래를 위해 기업도시 유치를 결정한 초심을 잊지 않는 다면 무안기업도시는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데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6
- [개발제한구역 녹지보전과 불법양산의 사각지대]소하천 정비, 시작 전 3년 허비 수도권에 개발제한구역이 첫 도입된 후 36년동안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친환경적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오랜 세월 재산권 행사에 규제를 받아온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은 편법 개발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해당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부는 새로운 관리모델을 찾아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개발제한구역 현장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건교부 결정 늦고 국비 부족해 지연 기반시설 정비 등 직접지원 병행 필요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벌말취락지구 소하천 정비 현장, 2004년부터 시작한 사업이지만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소하천 종합계획을 세우고 도시계획시설 결정, 보상 협의, 실시계획 수립 등의 행정절차 이행에 들인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사업 진척이 더디다. 보통 시청에서 하는 사업이라면 연초부터 하는 것이 상식인데 벌말 소하천 정비사업은 2004년 10월에야 예산이 확정됐다. 경기도를 거쳐 건교부에 신청했지만 해가 바뀌어 10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결정된 것이다. 1년을 그냥 허비한 것이다. 4년째 사업이 제 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자 주민들의 지지도 사라진지 오래다. 주변 환경이 정비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되리라 기대했던 주민들은 아예 지원 사업을 잊어버렸다. ◆지가 상승 때문에 보상 장기화 = 성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주민지원사업이 벌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하남시가 추진한 5건 중 완료된 것은 1건에 불과하다. 경기도내 다른 시군 사정도 비슷하다. 특히 시흥 의왕 양평 남양주 구리 양주시가 완료하지 못한 사업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교부의 주민지원사업 확정이 늦고 국비 지원이 적어 보상 협의가 지연되면서 공사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은 시장·군수가 도로개설, 상하수도 설치 등의 생활편익사업과 마을회관 및 어린이놀이터 설치 등의 복지증진사업을 하려면 주민지원사업계획을 수립해 시·도지사를 거쳐 사업연도 3월말까지 건교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자연히 국비 확보가 늦을 수밖에 없어 지방비를 대야해야 하는 시군도 추경을 통해 마련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더구나 국비 지원이 미비하다 보니 사업지연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특별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한 해에 지원받는 금액이 3억원을 넘지 않는다. 하남이 올해 3억원 가량을 지원받았고 시흥이 2억3000여만원을 받았다. 경기도 전체적으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123개 사업에 지원받은 금액이 652억원이다. 한 사업 당 5억3000만원 밖에 안된다. 이것마저 몇 년에 나눠 지원하는 바람에 지가 상승에 따른 보상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토지소유자가 외지인이면 사업 자체가 취소되거나 장기 표류하기도 한다. 최근 경기개발연구원이 주민지원사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불만족스럽다고 답한 주민들이 57%인 반면 만족한다고 응답한 주민들은 7.6%에 불과했다. 하남시 박수조 주사는 “건교부에서 사업비가 얼마나 내려올지 모르다보니 일정대로 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며 “주민지원사업이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사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원금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훼손부담금 징수액 50%는 교부 =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주민지원사업은 개발제한구역 훼손부담금이 재원이다. 중앙부처나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에게서 징수하는 훼손부담금은 토지형질변경이나 형질변경이 수반되는 건축 등의 개발행위 시 부과된다. 2000년 13억원을 시작으로 2003년 이후 매년 1000억원 이상 걷히고 있다. 이중 2006년까지 경기도가 징수한 금액이 6713억원 중 4119억원이다. 무려 61%나 되는 금액이다. 다음으로 서울시가 569억원으로 많았고 인천 451억원, 대구 397억원 순이었다. 지난 5년간 경기도내 31개 시군 중에서는 시흥시가 679억원으로 제일 많았고 그 뒤를 과천 547억원, 하남 475억원, 의왕 287억원, 광명 245억원, 안양 234억원이 따랐다. 그런데 경기도에 교부된 금액은 1435억원으로 징수액의 35%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토지공사의 토지매입비 707억원을 제외하면 주민지원사업비와 관리비는 730억원이 안된다. 경기도 개발제한구역이 전국 면적의 1/3나 차지하는데도 주민지원사업비가 징수액의 17%도 안되는 것이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수도권인 서울과 인천이 30%인 것과 비교해도 한 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기도내 10호 이상의 집단취락 250개 중 주민지원사업을 벌이는 곳이 절반을 넘지 못한다. 당연히 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상수원지역이나 댐주변지역, 농림어업인 주민지원사업은 주택개량부터 학자금 지급, 전기료 의료비 정보통신비 지원, 교통비 및 난방비 지원, 영유아 양육비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비해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사업은 기반시설 확충 등의 간접지원에 한정돼 있다. 경기도 류흥수 담당은 “주민지원사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징수액의 50%를 지자체에 지원하고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직접지원 사업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2
- [내일시론]IMF 10년, 그 그늘은 아직 짙다 IMF 10년, 그 그늘은 아직 짙다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0년이 됐다. 한국경제가 구제금융을 받은 대신 IMF관리체제에 편입되어 건국 이후 처음으로 경제주권을 넘겨줌으로써 ‘경제 국치일’로 기록된 지 10년째를 맞게 됐다. OECD에 가입하여 축배를 들고 1년이 채 안돼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10년은 상실과 고통의 세월이었다. 또 도전과 치욕의 씻김굿 판의 세월이었다. 외환위기는 외화 유동성 부족과 정부의 환율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대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큰 몫을 했다. 곧 정부 관료의 무능과 안일, 기업의 무분별한 팽창경영의 합작품이나 다름없다. 외환위기 사태가 우리에게 안겨준 시련과 아픔은 가혹했다. 기존 시스템은 모두 무너졌다. 그 자리에 낯선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리잡고 새 주인이 됐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다. 30대 대기업 중 17개가 공중분해 되었다. 도산 기업과 은행은 줄줄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국내 상업은행의 자본 대부분을 외국인이 갖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여전, 단기외채 급증 외환위기 사태는 사회와 삶의 문화도 바꿔 놓았다. 평생직장의 의식도 무너졌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일상사가 되면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신규고용은 줄고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오륙도’ ‘사오정’ ‘이태백’의 신조어가 보통어가 됐다. 중산층은 몰락하고 양극화의 골은 깊어졌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난의 직접적 요인이었던 외환보유고가 2600억 달러로 세계 5위권으로 올라섰다. 수출은 연간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근접했고 주가도 200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기업부채비율도 100% 아래로 내려가 재무구조가 건전해졌다. 방만한 차입경영 분식회계 부패구조 등 낡은 틀이 많이 개선된 것이다. 투명성도 좋아졌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눈을 뜬 덕이라고 하지만,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얻은 자산이다. 그렇다고 IMF 터널을 온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한 겨울 뒤끝의 더 매서운 한파에 갇혀 있는 꼴이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여전하다. 단기외채가 다시 급증하여 10년 전의 환란 때의 수준에 이르렀다. 재정적자와 가계 빚이 위험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비교적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이다. 대립적 노사관계도 달라진 게 없다.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거미줄 규제는 오히려 후퇴했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져 가고 있다. 특히 고용 없는 성장과 잠재성장력의 위축은 이제 고착화된 듯 하다. 무엇보다 가슴 쓰린 것은 기업가 정신의 실종과 사회 총체적 활력의 저하다. 통합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것도 뼈아픈 상실이 아닐 수 없다. 경제활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투자부진은 기업가 정신의 실종 탓이다. 위험을 회피하며 단기 실적에 집착하기 때문에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 은행도 안정운행에 안주하려 한다. 해외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전과 역동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 조로화를 걱정하는 소리도 여기서 싹튼다. 규제 풀어 기업이 신바람나게 뛰게해야 도덕성의 회복도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청빈과 청부가 대접받게 되려면 승자독식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IMF 10년 째의 해에 맞추기라도 한 듯 새로운 위기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위기론의 진원을 살펴보면 결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질없는 논쟁에 갇혀 있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는 소리에 정부가 ‘되찾은 10년’이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논쟁에 앞서 필요한 반성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재발을 막고 앞으로 10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 어려워진다는 절박함을 모르는 것 같다. 앞으로 10년은 중요한 시기다.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규제부터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투자를 촉진하고 기업이 신바람 나게 뛰게 하면 희망이 커지게 된다. 경제가 잘 돌아 일자리가 많이 생기면 중산층이 복원되고 양극화 문제도 풀리게 된다. 정부가 치열하게 뛰고 국민이 금모으기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안될 일이 없다. 김진동 객원 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2
- [명사가 권하는 전통주 컬렉션] ⑥ 민속주 안동소주 작가 조정래 “안동포, 하회탈 만든 안동정신이 있어 신뢰할 수 있다” 얼굴은 거울에 비추고 마음은 술에 비춘다는 말이 있다. 술 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문화를 반영한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명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전통주를 추천하며 우리 정신문화의 현대화와 농식품산업 활성화를 희망했다. 작가 조정래는 “안동소주는 진짜”라고 말한다. 일제에 맞선 의병투쟁에서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민족사 100년을 소설 ‘아리랑’과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 32권으로 살려낸 작가가 ‘진짜’라고 말하는 안동소주는 어떤 술인가. ◆“소주는 독해야 한다” = 안동소주는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부터 명성을 얻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소주 유입 시기는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14세기 경으로 본다”며 “이때 안동 개성 제주에 몽고군의 군사 주둔지가 들어섰고, 이후 이들 세 지방은 각기 소주의 명산지로 이름을 얻었는데 그 중에서도 안동지방 소주를 최고로 쳤다”고 밝혔다. 안동소주가 유명해진 것은 지역 특산품인 마(麻)잎으로 향을 낸 독특한 누룩과 좋은 물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안동소주는 잔에 따라 놓으면 마시기 전에는 고량주 같은 향취가 느껴지는데 입안에 들어가면 목젖이 알알할 정도로 화끈하다. 조정래씨가 안동소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술이 독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순한 소주가 유행인데, 소주는 독한 술”이라며 “안동소주는 45도 전통 맛을 지켜 독하고, 빨리 취하지만 빨리 깨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연박 안동소주·전통음식박물관장은 “전통소주도 다양한 도수의 술이 나오는데 안동소주는 알콜함량 45% 한 가지만 고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민속주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씨 아들이다. 고집, 어쩌면 조정래씨가 안동소주에 반한 진짜 이유는 ‘고집’ 때문일지 모른다. 그의 삶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고집’이 가득하니까. 그는 1983년 소설 태백산맥 집필을 시작해 1989년 전 10권을 완성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에서 시작해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휴전까지를 다룬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아침 7시 기상,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아침밥, 오전 작업, 1시간 낮잠, 점심식사, 체조, 오후 작업, 저녁 식사, 뒤로 달리기, 잠깐 눈붙이기, 야간 작업’의 강행군으로 하루에 30장의 원고지를 써내려 갔다. 컴퓨터 자판이 아닌 육필로. 등장인물 486명, 원고지 1만6500장에 이르는 ‘태백산맥’을 통해 우리의 분단사가 비로소 복원됐다는 평을 들었고, 소설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출간되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당시 청년학생들에게 ‘분단’을 살아있는 주제로 깨우쳤다. 뿐인가. 태백산맥을 통해 벌교갯벌과 꼬막을 알았고 전라도 사투리에 녹아있는 민중의 힘을 느꼈다. 태백산맥 이후 작가는 세월을 거슬러 분단의 원인을 규명한 문제작 ‘아리랑’ 12권을 세상에 내놓았고 4·19와 5·16, 10월유신과 부마항쟁, 광주항쟁과 6월항쟁에 이르는 현대사를 ‘한강’ 10권에 담았다. 1983년부터 2002년까지 20년을 꼬박 써온 것이다. 평단에선 3세대에 걸쳐 할 일을 작가 한 사람이 해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동소주와 맥주 섞은 ‘바이오주’ 유행 = 안동소주는 예부터 조 수수 등을 사용하지 않고 쌀로만 술을 빚었다. 지금도 술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장작불로 술을 빚을 때는 불 조절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민속주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씨는 “시집와서 술을 빚을 때 불 조절을 잘못하면 그동안 한 일이 다 허사가 돼 속상했다”며 “술이 잘 내리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세한 불길을 조절하면서 소중한 곡식을 사용해 빚는 술이 잘 되기를 바라고 바라던 그 정신은 옛 맛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안동소주만의 고집으로 이어져 ‘안동소주’는 전통주를 대표하는 술 중 하나가 됐다. 조정래씨는 “안동에는 하회탈이 있고, 삼베로 유명한 안동포도 있다”며 “소주도 이런 안동의 특색이 있어 신뢰가 생긴다”고 말했다. 좋은 술이 계속 발전하려면 ‘소비자의 선택’과 ‘좋은 술 만들기’가 상호 작용해야 한다. 조정래씨는 “전통술을 대중화하려면 좋은 술이어야 하고 값이 적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박 관장은 “소비자가 전통주를 찾으면 매장 판매대 앞으로 진열하게 된다”며 “희석식 소주와 양주에 젖어있는 소비자들이 우리 쌀로 만든 옛 맛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안동소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바이오주’를 만들어 냈다.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인데, 안동시 관계자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보다 뒷맛이 좋고 가격도 훨씬 저렴해 선호한다”고 말했다. 안동=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1
- 日, 외국인 입국자 지문채취 본격 시행(종합) "내가 범죄자냐"..첫날 외국인 항의 이어져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16세 이상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 입국 심사시 지문 채취와 얼굴 사진 등록을 의무화한 개정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이 2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이에 따라 이날부터 일본 전국의 공항과 항만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입국심사시 지문 및 얼굴 사진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만 입국할 수 있게 됐다.이날 일본 수도권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에서는 오전 6시께 도착한 호주 시드니발 콴타스 항공 여객기와 태국 방콕발 일본항공 여객기로 입국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새 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됐다.승객들은 외국인 전용 입국심사대에서 줄지어 대기하다가 여권과 출입국기록카드 등을 제출한 뒤 관리들의 설명에 따라 양손의 인지(人指)를 지문 판독기에 올려 놓고 지문을 채취토록 했다. 또 심사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얼굴 사진을 등록했다.일부 승객은 이 제도 시행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듯 "왜 지문을 채취하느냐","우리를 범죄자로 보느냐"며 입국심사 관리들에게 설명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나리타공항에서는 지문 채취 등의 수속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외국인 입국자들이 한시간 이상 줄을 서 기다리는 불편을 겪었다. 또 부산발 페리가 도착한하카타(博多)항에서는 지문판독기의 에러로 여러 명의 입국자에 대해 지문채취를 단념, 심사관의 판단으로 입국을 인정하기도 했다.입국시에 지문과 얼굴 사진 등 생체정보를 채취하는 곳은 미국에 이어 일본이 두번째다.채취된 생체정보는 과거에 강제퇴거 처분을 당한 외국인과 국제형사경찰기구(ICPO), 일본 경찰 등에 의해 지명수배된 총 80만1천10만건의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와현장에서 조회된다.그러나 재일교포 등 특별 영주권자와 16세 미만자, 외교.공용 목적 방문자, 국가 초청자 등에 대해서는 지문 채취가 면제된다.일본 정부는 테러대책을 이유로 이 제도의 시행에 들어갔으나 일본변호사협회 등 시민단체 등은 "범죄 수사에 한정되지 않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비판을 제기했다.이날 법무성 앞에서는 새 제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외국인 등 60여명이 "외국인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지문날인 반대"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외국인 참석자는 마이크를 통해 "오랜 세월을 거쳐 지문날인 제도를 철폐한 역사를 잊고 외국인을 다시 차별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보수 언론도 "외국인을 범죄자 취급한다는 비판도 있다", "입국심사 대기 시간이 늘어나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4년 전 시행한 미국에서도 정보 누출 우려가 제기되고있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면을 소개했다. 일본의 외국인 입국자수는 지난해 약 810만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이 237만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choinal@yna.co.krlhk@yna.co.kr(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1
- 명사가 권하는 전통주 컬렉션 ⑥민속주 안동소주 “45도 독한 맛 지키는 진짜 소주” 작가 조정래, “안동포, 하회탈 만든 안동의 정신이 있어 신뢰할 수 있다” 작가 조정래는 “안동소주는 진짜”라고 말한다. 일제에 맞선 의병투쟁에서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민족사 100년을 소설 ‘아리랑’과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 32권으로 살려낸 작가가 ‘진짜’라고 말하는 안동소주는 어떤 술인가. ◆“소주는 독해야 한다” = 안동소주는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부터 명성을 얻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소주 유입 시기는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14세기 경으로 본다”며 “이때 안동 개성 제주에 몽고군의 군사 주둔지가 들어섰고, 이후 이들 세 지방은 각기 소주의 명산지로 이름을 얻었는데 그 중에서도 안동지방 소주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고 밝혔다. 안동소주가 유명해진 것은 지역 특산품인 마(麻)잎으로 향을 낸 독특한 누룩과 좋은 물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안동소주는 잔에 따라 놓으면 마시기 전에는 고량주 같은 향취가 느껴지는데 입안에 들어가면 목젖이 알알할 정도로 화끈하다. 조정래씨가 안동소주를 좋아하는 이유도 술이 독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순한소주가 유행인데, 소주는 독한 술”이라며 “안동소주는 45도 전통 맛을 지켜 독하고, 빨리 취하지만 빨리 깨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연박 안동소주·전통음식박물관장은 “전통소주도 다양한 도수의 술이 나오는데 안동소주는 알콜함량 45% 한 가지만 고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민속주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씨의 아들이다. 고집, 어쩌면 조정래씨가 안동소주에 반한 진짜 이유는 ‘고집’ 때문일지 모른다. 그의 삶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고집’이 가득하니까. 그는 1983년 소설 태백산맥 집필을 시작해 1989년 전 10권을 완성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에서 시작해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휴전까지를 다룬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아침 7시 기상,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아침밥, 오전 작업, 1시간 낮잠, 점심식사, 체조, 오후 작업, 저녁 식사, 뒤로 달리기, 잠깐 눈붙이기, 야간 작업’의 강행군으로 하루에 30장의 원고지를 써내려 갔다. 컴퓨터 자판이 아닌 육필로. 등장인물 486명, 원고지 1만6500장에 이르는 ‘태백산맥’을 통해 우리의 분단사가 비로소 복원됐다는 평을 들었고, 소설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출간되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당시 청년학생들에게 ‘분단’을 살아있는 주제로 깨우쳤다. 뿐인가. 태백산맥을 통해 벌교갯벌과 꼬막을 알았고 전라도 사투리에 녹아있는 민중의 힘을 느꼈다. 태백산맥 이후 작가는 세월을 거슬러 분단의 원인을 규명한 문제작 ‘아리랑’ 12권을 세상에 내놓았고 4·19와 5·16, 10월유신과 부마항쟁, 광주항쟁과 6월항쟁에 이르는 현대사를 ‘한강’ 10권에 담았다. 1983년부터 2002년까지 20년을 꼬박 써온 것이다. 평단에선 3세대에 걸쳐 할 일을 작가 한 사람이 해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동소주와 맥주 섞은 ‘바이오주’ 유행 = 안동소주는 예부터 조 수수 등을 사용하지 않고쌀로만 술을 빚었다. 지금도 술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장작불로 술을 빚을 때는 불조절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민속주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씨는 “시집와서 술을 빚을 때 불 조절을 잘못하면 그동안 한 일이 다 허사가 돼 속상했다”며 “술이 잘 내리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세한 불길을 조절하면서 소중한 곡식을 사용해 빚는 술이 잘 되기를 바라고 바라던 그 정신은 옛맛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안동소주만의 고집으로 이어져 ‘안동소주’는 전통주를 대표하는 술 중 하나가 됐다. 조정래씨는 “안동에는 하회탈이 있고, 삼베로서 유명한 안동포도 있다”며 “소주도 이런 안동의 특색이 있어 신뢰가 생긴다”고 말했다. 좋은 술이 계속 발전하려면 ‘소비자의 선택’과 ‘좋은 술 만들기’가 상호 작용해야 한다. 조정래씨는 “전통술을 대중화하려면 좋은 술이어야 하고 값이 적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박 관장은 “소비자가 전통주를 찾으면 매장 판매대 앞으로 진열하게 된다”며 “희석식 소주와 양주에 젖어있는 소비자들이 우리 쌀로 만든 옛맛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안동소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바이오주’를 만들어 냈다.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인데, 안동시 관계자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보다 뒷맛이 좋고 가격도 훨씬 저렴해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