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성공의 열쇠는 차별화” 쌀농사에서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 억대 소득을 올린 젊은 농군이 화제다. 전남 진도군 채원준(33·사진)씨는 오색 쌀을 재배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씨는 10년 전부터 고향으로 내려와 논 6만평에서 검정 쌀을 재배했다. 아버지 채기송(60)씨가 15년 전부터 검정 쌀을 재배해 온 터라 생산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검정 쌀이 노화방지와 항암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판매도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재배 초기 판매처 부족으로 가격이 들쭉날쭉했고, 소득도 별 볼일 없었다. 젊음이 무기였던 채씨는 이때부터 고정고객 확보, 우체국 택배 등을 활용해 판매처 확보에 정열을 쏟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고정 고객도 점차 늘어갔다. 채씨는 7년 전부터 연간 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순수익으로 1억원을 남겼다. 부러울 게 없던 그에게 4년 전 위기가 찾아왔다. 검정 쌀 재배 농가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그냥 주저앉기에는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채씨는 이때부터 ‘칼라 쌀’ 생산에 눈을 돌렸다. 1년 동안 발이 닳도록 전남도 농업기술원을 찾아 다녔고 칼라 쌀을 생산하는 호주와 대만 등을 쫓아 다녔다. 3년 전 칼라 쌀 생산에 성공했고 지난해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그는 지난해 칼라 쌀 10톤을 생산, 올 5월까지 3000만원 소득을 올렸고, 추석 명절 때 전량을 판매하면 약 1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채 씨는 “칼라 쌀은 일반 쌀보다 무려 다섯 배나 비싸게 판매된다”며 “고정 고객이 점차 늘고 있어 1억원 이상 고소득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진도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5
- <내일시론>북핵(北核)은 어디로 갔는가 북핵(北核)은 어디로 갔는가 그토록 달리고 싶던 철마(鐵馬)가 17일 드디어 북으로 달리게 됐다. 남북간 철도 연결의 역사적 의미가 각별 함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한 것 같다. 그런데는 철도연결 행사가 공사를 끝내 놓고도 실행이 세 번씩이나 무산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가봐야 가는가 보다’하지 않겠느냐 하는 체념적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탓도 있지만 남북문제가 무엇 하나 시원스레 되는 게 없이 비실거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문제 난항의 핵심에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결코 비상할 수 없게 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핵문제는 또한 남북, 단둘이 만나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런 구조적 난해성 때문인지 최근에는 북한이 결국 핵포기를 안하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비관적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작년 베를린에서 나왔던 9·19합의에 이어 금년 베이징에서 2·13합의가 이루어졌을 때의 희망적이고 밝은 전망과는 다른 분위기다. 2·13합의는 첫단추부터 끼워지지 않고 있다. 영변핵시설을 폐쇄키로 했던 1단계 초기조치마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생존위한 핵보유라는 비관론 경계해야 1단계 조치는 4월 14일까지 완료키로 돼있었으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5월 14일까지로 시한을 1차 연장했던 것인데 연장시한마저 넘긴 15일 현재도 아무런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핵’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느낌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불길한 전망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비관론의 논거로는 국가 안보를 위해 천신만고 끝에 핵실험까지 마친 북한이 그 핵을 쉽게 포기하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핵을 가져야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고 남한과의 군비경쟁에서 한참이나 밀려 있는 북한은 남한의 군사적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결코 핵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북한이 설령 핵을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되더라도 대가를 극대화 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최종 시기는 부지하세월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BDA자금을 풀어내는데 이만한 시간을 끌고 있다면 영변시설 봉인보다 훨씬 어려울 대상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에서는 또 어떨 것인가 하는 우려들이 제기될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외 협상에서 문제를 세분하고 단계마다 흥정을 하는 이른바 슬라이스(slice)전술에 익숙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철도 연결문제만 해도 북한은 열차운행을 17일 행사 1회로 국한했다. 철도운행 때마다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측 지도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그들 몫이지만 이런 가정들이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의 명분은 이라크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 핵이 안보를 보장해주기보다 해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 때 미국은 북한 핵시설 폭격 시나리오를 실제로 입안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북핵 포기토록 만드는 게 우리가 할일 남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론도 근거가 박약하다. 북한의 몇백배가 많은 경제기반을 갖고 있는 남한이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그 산업시설의 태반이 무너지기 때문인 것이다. 북한의 핵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다같이 극력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전략적 국가이익에 전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만에 일이라도 핵보유를 고집하는 사태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저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동북아의 현재 세력구도는 그럴만한 지렛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포기 시한이 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종 시한을 정해놓아도 안 지키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9·19합의 때 최종목표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실수로 보인다. BDA문제 하나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한다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언제 실현 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가능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으로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임 춘 웅 객원 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16
- 인터뷰: 검정 쌀 재배로 억대 소득 올린 채원준씨(사진) “성공의 열쇠 차별화” 쌀농사에서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 억대 소득을 올린 젊은 농군이 화제다. 전남 진도군 채원준(33·앵무리)씨는 오색 쌀을 재배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씨는 10년 전부터 고향으로 내려와 논 6만평에서 검정 쌀을 재배했다. 아버지 채기송(60)씨가 15년 전부터 검정 쌀을 재배해 온 터라 생산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더군다나 검정 쌀이 노화방지와 항암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판매도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판매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재배 초기 판매처 부족으로 가격이 들쭉날쭉했고, 소득도 별 볼일 없었다. 젊음이 무기였던 채씨는 이때부터 고정고객 확보, 우체국 택배 등을 활용해 판매처 확보에 정열을 쏟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고정 고객도 점차 늘어갔다. 채씨는 7년 전부터 연간 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중 순수익으로 1억원을 남겼다. 부러울 게 없던 그에게 4년 전 위기가 찾아왔다. 검정 쌀 재배 농가가 늘어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그냥 주저앉기에는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채씨는 이때부터 ‘칼라 쌀’ 생산에 눈을 돌렸다. 1년 동안 발이 닳도록 전남도 농업기술원을 찾아 다녔고 칼라 쌀을 생산하는 호주와 대만 등을 쫓아 다녔다. 3년 전 칼라 쌀 생산에 성공했고 지난해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그는 지난해 칼라 쌀 10톤을 생산, 올 5월까지 3000만원 소득을 올렸고, 추석 명절 때 전량을 판매하면 약 1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채 씨는 “칼라 쌀은 일반 쌀보다 무려 다섯 배나 비싸게 판매된다”며 “고정 고객이 점차 늘고 있어 1억원 이상 고소득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진도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6-05
- 신문고를 울려라 신문고를 울려라 서초구 ‘민정진언’ 재현 현대 서울 도심에 신문고가 되살아난다. 서울 서초구는 16일 서초 탄생 19주년을 기념하는 구민의 날 행사를 열며 조선 태종시대 ‘신문고 민정진언’을 재현한다. 서초구는 지역에 소재한 문화유적과 연계된 시민문화축제를 열기 위해 신문고 민정진언과 함께 헌릉제향, 관직개편 임명식, 왕자교육 등의 재현행사를 준비한다. 지역 주민과 학생 등 5000여명이 내곡동 헌릉과 서초구청 광장에서 600년 세월을 넘나들며 축제를 즐기게 된다. 행사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전문가 고증을 거쳤다. 행사 백미가 될 심문고 민정진언은 오후 4시 서초구청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연극인 무용가 등 연인원 120여명이 의상 도구 등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주민들이 진정할 법한 내용을 극 형식으로 꾸민다. 서초구 관계자는 “태종대왕과 원경왕후 문무백관 호위군사 기장대 등이 출연하는 행사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현장을 눈앞에서 되새겨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는 우면산 산성화 등 환경문제와 양재천 정비 등 한강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해 구청 차원에서 조치할 수 있는 답안도 제시할 계획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15
- 87년체제는 끝났는가 - 6월항쟁과 7·8월노동자 대투쟁 주역들에게 듣는다 광주항쟁이 삶에 미친 영향은 - 1980년 5월 광주와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7·8월 노동자대투쟁은 2007년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큰 축이다. ‘1987년 체제’를 해석하고 미래의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볼 때 지난 세월 두 사람의 경험은 실사구시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한 사람은 호남출신으로 광주항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한 사람은 영남출신으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광주항쟁이 본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홍순계 : 나는 3사관학교 병원 행정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자대 배치를 막 받을 때 광주항쟁 터졌다. 우리 또래 얘기해보면 누구나 박정희 체제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상태가 있었고 나도 그랬다. 그러나 대학 들어와서 박정희 신화가 깨졌고 방황하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데모하고 구속될 때 현실도피 비슷하게 군대를 갔다. 4학년 때였다. 논산훈련소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리 듣고 충격이 컸다. 저렇게 쉽게 죽는구나…. 갑갑하고 부끄러웠다. 역사의 현장에서 밀려나있는 것 같고, 부채의식을 갖고 군대 생활했다. 그런 부채의식이 6월 항쟁 때 열심히 한 바탕이 되기도 했다. 송해주 : 나는 대학교 2학년 때였다. 5월 13~14일까지 거의 매일 시내 가두시위에 참석했다. 5월 17일 계엄군이 학교에 진입하면서 학생 가두시위보다 시민이 참여한 형태로 바뀌었다. 17일 이후에는 학생이 주축이 되기보다 시민이 직접 나서서 싸웠다. 군인들이 진주한 상황에서 서로 총을 잡고 싸우는 상황이 되다 보니 학생인 나 같은 경우는 뒤로 빠지게 됐다. 17일부터 항쟁이 끝날 때까지 현장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했다. 매일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고, 도청에 진주한 계엄군과 총격전 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러다가 7월이 돼서 2학년 1학기를 못 마친 채 군대에 갔다. 홍 본부장이 부채의식을 말했는데, 5월 그때를 직접 겪은 사람은 5월이 되면 이상한 심리상태에 빠지게 된다. 부채의식이 있으니까 직장에서 노조를 하면서 이거라도 잘해야지 생각했고, 그래서 때로는 격렬해진 면도 있다. 홍 : 광주에 있었어도 부채의식이 있었나. 송 : 나 같은 구경꾼이 아니라 앞에 나서서 총을 들고 싸운 사람도 있었으니까. 명동성당 농성을 이끈 힘은 - 1987년 6월 두 사람은 한 자리에 섰다. 항쟁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구심에는 명동성당 농성이 있었다. 그힘은 어디에서 나왔나. 홍 : 6월 10일 밤 학생들이 경찰 진압에 쫓겨 명동성당에 들어가면서 농성이 시작됐다. 우리는 15일부터 들어갔다. 당시 명동성당이 구심점이 돼 참 든든했다. 남대문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점심시간이 되면 명동에 밥 먹으러 가자며 직원들 데리고 나와 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시위에 참여했다. 낮에는 넥타이 맨 남자직원이 많았다면 저녁에는 여직원들도 많이 참여했다. 85년 1월 노조를 만들었는데 잘 안 됐다. 단체협상도 안 될 정도로 노조가 안 되는 게 사회 민주화가 안돼서 그런 것이고 직장 민주화보다 사회민주화 정치민주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식이 있었다. 80년 광주항쟁 때 부채를 탕감한다는 차원에서도 열심히 나섰다. 당시 우리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연대했던 경험이 있었다. 송 상무도 6월 항쟁 전에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알았다. 당시 범한화재(현 LIG손해보험) 노조는 내부가 분열돼 거의 와해된 상태였는데 연대활동을 통해 범한화재 이상재씨를 복직시켰다. 한 사업장의 힘만으론 안 되지만 연대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무슨 일만 있으면 몰려다녔다. 명동성당 농성도 조합에서 단련된 조합원이었기에 가능했다. 송 : 이상재씨 복직투쟁하면서 사무직 노조가 연결됐다. 전두환이 4·13호헌조치를 발표하고 한국노총에서 호헌지지를 표명했을 때 네트워크가 확산됐다. 6월항쟁이 터졌을 때는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그해 6월과 7·8월의 관계는 - 85년에는 노조 하나 만들기 참 어려웠지만, 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조합이 생겼다. 대기업, 사무직 등 전 분야로 노조가 확산됐다. 특히 사무직들은 6월 항쟁과 7· 8월 투쟁에 모두 참여했다. 두 투쟁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홍 : 전두환 하야가 목표였는데 6·29선언이 나와서 김이 빠졌다. 나중에 보니 6·29도 큰 승리였는데 당시에는 허전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2년 동안 못했던 단체협상도 이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부들 중심으로 단협을 체결하라며 단식농성을 했고 조합원들이 자꾸 모여들면서 성공했다. 그때가 7월초인데, 이게 소문이 났다. 광화문에서 넥타이 맨 사무직이 노조한다는 게 울산지역 생산직노동자에게 알려졌고, 그들에게 자극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 조합원들의 역량이 성숙해 그 힘으로 단협이 잘 됐다. 자신감을 갖고 사회민주화에서 다시 직장민주화로 내실을 다지는, 구체적인 우리 문제로 돌아오는 계기가 7·8월 대투쟁이었다. 사무직에서 생산직으로 확산된 것이었다. 송 : 7·8월 대투쟁은 너무 산재하고 밀린 숙제가 많아서 불가피하게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가 있긴 했지만 형태만 존재했고 노·사는 형식상 평등도 없었다. 6월항쟁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민주화가 화두가 돼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수평적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87년체제 비판에 대해서 - 이른바 ‘87년 체제’가 형성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진보와 개혁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후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산과 함께 87년 체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념대립의 고조, 부의 양극화 심화에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자칭 평화개혁진보세력은 최근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잇따라 외면당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 무능론’이든 ‘진보적 이념의 몰락’으로 표현하든 87년체제는 실패한 것인가. 홍 : 그것은 분명 아니라고 본다. 87년 체제는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에 기여했다고 본다.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오면서 많은 발전을 해왔다. 민주적 제도가 정착되고 많이 투명해졌다. 권위주의도 타파됐다. 언론과 긴장관계도 높아지니까 작은 부패도 바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독재 기준으로 보면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한 질서에 대한 향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민주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다. 혼란이라고 보는 것은 극단적인 평가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것은 87년 체제의 한계라기보다 세계화시대의 문제점이다.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인 정부가 집권했어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양극화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 송 : 정치의 민주화는 상당히 진전되었고, 그 진전되는 과정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정치문제만큼 문제의 본질을 치열하게 인식하고 해결해가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생각을 한다. 외환위기 이후 거세게 진행되는 세계화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통찰해 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경제체질을 바꾸고, 국가의 미래 과제에 힘을 모으는 게 필요했지만 민주세력이 이 문제에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듯 하다. 이 순간에도 세계화의 흐름은 나름대로 법칙성을 가지고 진전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 민주화세력에 대한 국민의 편견은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보와 개혁을 대체할 시대정신이 있다고 보는가. 홍 : 일자리가 문제다 양극화가 문제다 하면 그것을 해결하는 게 시대정신이고 그것 해결하는 게 개혁이다. 문민정부 이후 15년간 집권한 시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그런데 현실에서 문제를 시원시원하게 풀어가지 못한다. 왜 그런가. 이젠 각 부문의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각 부문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권을 다투다 보니 늦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 누르지 2007-05-30
- 건강신서 인체 면역력이 가장 좋은 치료제 최근 아토피성 피부병이나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고통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횟수도 늘고 있지만 일시적으로 나아질 뿐 근복적 치료는 숙제로 남아 있다. 세계적인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는 병의 원인치료를 위한 해답을 면역에서 찾을 것을 주문한다. 각종 만성질환과 암과 같은 불치병도 자율신경인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화를 유지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면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생활의 균형을 잃었을 때 질병이 생긴다고 진단하고 병을 고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생활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균형을 깨는 대표적인 네가지는 △장시간 노동 △마음의 번뇌 △냉방이나 찬 음식 △약물 남용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생활습관을 고치는 처방으로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채소 해조류 버섯을 즐겨먹기 △업무 스트레스 덜 받기 △과로하지 않기 △자극적 음식 덜먹기 △따뜻한 물로 반신욕하기 △종합비타민제 복용하기 △암치료 3대요법 시술받지 않기 등을 들고 있다. 면역처방 101/아보 도오루 지음/황소연 옮김/전나무숲/1만1000원 당뇨병을 친구삼을 수 없나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해마다 30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당뇨로 인한 사망률도 인구 10만명당 35.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수위다. 국민 100명당 8명은 당뇨병 환자이므로 이제 국민병으로 불릴 만하다.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저자는 10년을 당뇨병과 함께 살았다. 그 기간의 절반을 병을 방치하다시피한 ‘불량환자’였다.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한 저자는 술과 담배를 벗삼아 하루단위 마감을 지키며 바쁘게 살았다. 그러면서 그가 깨우친 것은 당뇨병을 친구로 삼고 평생 함께 가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도리어 건강한 삶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뇨병 환자로서 지켜야할 필수적인 수칙을 실천하다 보면 자연히 건강체가 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환자 수칙을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 약속장소까지 운동 삼아 걷고, 음식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가려 먹는다.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건강식품만 찾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래사는 병, 당뇨/이영만 지음/페이퍼로드/9900원 일상에서 실천하는 우울증 퇴치법 치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오랜 세월을 고통받았던 환자였다. 저자는 열네살부터 마흔살까지 우울증을 앓았다고 말한다. 가장 괴로운 점은 한창 인생을 즐겨야할 시기에 아무 의욕도 없이 삶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료법을 체득하게 됐다. 이 방법을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계 각지에서 우울증 치료법에 대한 조언과 문의가 쇄도했다. 그는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인 방법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또한 이론적인 내용은 줄이고 실천법을 친절히 설명하는 것에 노력을 쏟았다. 특히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방법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검증됐다는 점에서 신뢰를 더해주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일은 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가지 방법마다 2%씩 삶을 상승시킨다고 보면 마음에 드는 방법 50가지만 골라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삶을 200%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우울을 없애는 행복의 기술 50가지/폴 빈센트 지음/김무겸 옮김/김한규 감수/물병자리/8900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29
- “강릉 연곡 소나무숲을 지켜주세요” “소나무숲에는 소나무와 함께 공생하고 있는 많은 생물들, 그리고 오랜 세월 공생해온 문화와 기억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 5만원을 기부한 한 시민 생명의숲이 도심지 아파트 조경수로 팔려나갈 예정이었던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 마을숲 기금을 모금한다. 소나무숲은 마을 주민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예전처럼 마을을 지키게 됐지만 이 소나무를 사들인 조경회사의 손실을 어떻게 보상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조경회사는 수 차례 협상 끝에 이미 굴채한 소나무 10그루의 반출을 허용하되 분을 떠놓은 나머지 19그루는 4500만원에 매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시민 기금으로 조경업체에 보상을 한 뒤 10여 그루가 뽑힌 숲의 빈 자리는 지역 조경업체 등이 기증한 소나무로 채울 예정이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07
- 한국관광공사 추천 5월의 가볼만한 곳 한국관광공사 추천 5월의 가볼만한 곳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재래 장터 수백년 역사 전통 … 재래시장 쇠퇴에도 불구하고 인기 누려 장터는 따뜻한 음식과 흥정하는 소리, 지역 특산물로 가득 찬다. 비좁은 통로에서 더 좋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한 상인과 주민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먹거리에는 아이들이 부모 눈치만 보고 있다. 동전 몇 개를 놓고 흥정을 벌이더라도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별로 없다. 결국엔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며 넉넉한 인정과 양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래장터는 교통이 발달하고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점점 추억속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현존하는 장터는 과거 향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예전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장터는 추억의 장소이자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호기심 천국이다. 무좀부터 주부습진까지 뭐든 고친다는 만병통치약 ‘두꺼비 기름’은 아직도 팔린다. 변한 게 있다면 아토피에도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는‘5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전국의 유명 장터를 추천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 벌교5일장 = 일제시대 당시에 곡물방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요무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벌교 읍내에는 남도여관, 술도가, 포목상, 금융조합 등과 같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여럿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건물들이다. 소설에서는 좌우익 간에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로 묘사돼 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은 국도 2, 15, 27호선과 경전선 철로가 모두 지나가는 교통요지다. 교통이 편리한 덕택에 외지인들의 왕래가 잦고 일제시대에도 상업이 번창했다. 지금도 벌교읍에는 전남 동부에서 첫 손에 꼽힐 정도로 규모가 큰 5일장이 들어선다. 4일과 9일 장이 열리는 날이면 고흥, 승주, 낙안, 순천, 화순, 보성 등지에서 몰려든 장꾼들로 인해 번화했던 옛 풍경이 모처럼 만에 되살아난다. 장이 서는 날이면 평일에도 벌교역 앞의 도로 양쪽에는 이른 새벽부터 매일장이 형성된다. 벌교 인근의 농촌과 어촌에 사는 촌로들이 직접 농사짓거나 갯벌에서 채취한 각종 농수산물을 들고 나와 팔고 돌아가는 반짝시장이다. 별교5일장에는 공산품보다는 해산물과 농산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의 농수산물이 당일이나 그 전날에 채취한 것이라 아주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여주장 = 삼국시대부터 신륵사 앞 조포나루는 한강 4대 나루로 불리며 충주에서 한양까지 풍물을 실어 나르던 중간 기착지였다. 통행량이 워낙 많아 더불어 발전한 것이 여주장이다. 여주장은 5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뼈대 있는 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장들처럼 세월이 지나 여주5일장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달력의 끝자리가 5와 10인 장날이 되면 여주 상리부터 하리까지의 사잇길과 골목골목에 좌판이 들어선다. 5일장을 따라 다니는 떠돌이 장꾼들의 좌판부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끼고 온 오리, 토끼, 강아지, 씨암탉에 흑염소까지 나와 있다. 10살부터 부모님을 도와 만두를 빚었다는 간판도 없는 만두집은 장날에만 문을 여니 문전성시를 이룬다. 장터 주변에는 여주장을 번성시켰던 황포돛배가 있다. 옛 모양을 재현한 것이다. 여주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통틀어 아홉명의 왕비를 배출했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도 여주에 있어 가족들이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다. 5월 내내 펼쳐지는 여주도자기 축제도 많은 볼거리를 선사해준다. ◆ 영동지역 최대 장터 ‘뒷드르장’ = 정조 20년 (1796)부터 열린 강원도 동해시 북평장은 일명 ‘뒷드르장’이라고 불린다. 장터 인근 지명은 뒷드르, 뒷드루, 뒷드리 등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삼척의 북쪽 들판 가운데 있기 때문에 북평, 또는 후평, 즉 뒷드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북평장은 전국에서 성남 모란장, 전북 익산장에이어 세 번째 안에 드는 대규모 장터로, 고성에서 삼척에 이르는 영동광역권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5일장이 날로 쇠퇴의 길을 걷는데 비해 북평 5일장은 아직 활력이 넘쳐난다. 옛날부터 이곳에 시장이 형성된 것은 강릉, 삼척과 통하는 교통의 편리성에 기인한 것으로 수산물, 임산물, 공산품 등의 집산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상권 장악이 이루어지자 북평 지역에 거주하던 상인들은 힘을 모아 삼일상회를 세우고 일본인들과 상권 주도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북평장의 상징이었던 우시장(쇠전)은 현재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직 우시장길이라는 길 이름은 남아있다. 소의 거래가 부진해지고 도축장도 없어짐에 따라 자연히 우시장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북평장에서 가장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곳은 어물전이다. 예전에는 어물전을 ‘고기장거리’라고도 했다. 냉동어물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도로변에 즉석 수족관까지 차려놓고 산 오징어 등을 파는 상인까지 생겨났다. 어물전은 큰 길 옆까지 진출해서 장날이면 교통체증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천장 아니면 갈 곳이 없다 = 대구, 경주, 포항, 안동방면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인 영천은 5일장이 열리는 2일과 7일이면 인근지역까지 술렁거릴 정도로 인파가 북적거린다. 대구 약령시장, 안동장과 더불어 경상도 3대 시장인 영천장은 금호강 원류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된 곡식과 팔공산과 보현산 자락에서 생산된 복숭아, 사과, 포도는 당도가 높고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에도 동해안의 생선을 하루 만에 군위, 안동, 달성, 경산까지 보낼 수 있었으며, 내륙의 농산물과 면직, 약초를 동해안으로 보낼 수 있었던 사통팔달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영남 최대의 장터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인근 산에서 캐온 쑥과 냉이, 도라지 등 풋풋한 봄나물이 좌판에 깔려 있다. 한 움큼 얹어 주는 덤은 시골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살가운 풍경이다. 동해안의 갓 잡아 올린 생선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오징어채, 명태채등 건어물도 빼곡하다. 특히 영천장의 명물인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토막 내 솥에 쪄낸 뒤 소금으로 간을 해 숙성시켜 먹던 경상도의 귀한 음식이다. 예로부터 돔배기를 꼬치구이로 요리해 제사상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인근 한약거리를 포함해 시장 한바퀴를 서둘러 둘러보는데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장터의 1지구는 곡물류, 2지구는 수육 골목, 3지구는 잡화, 4지구는 신발, 의류, 그 외 생선가게가 몰려 있어 종목별로 둘러보면 더욱 효율적이다. 한약골목 이외에도 경부고속도로 근처에는 대규모 생 약재를 취급하는 유통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저렴하게 한약재를 구입할 수 있다. “잘 가는 말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라는 속담이 있다. 인근 각 고을에서 아무리 빨리 가도 영천장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02
- 굼뜬 회복, 경기 ‘상저하저’ 우려 3월 산업생산 이어 서비스업도 둔화 설비투자 꿈틀 건설경기 기지개 조짐 체감경기 회복 오랜 기다림 지속될 듯 경기회복 기대감이 갈수록 줄고 있다. 지난연말 이후 속도가 붙던 경기상승세가 올들어 설연휴를 기점으로 한풀 꺾이는 가 싶더니 봄이 되자 답답할 정도로 굼뜬 행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정부가 말한 ‘상저하고’경기흐름이 ‘상저하저’로 끝나는 것 아닌가 불안감이 들 정도다. 특히 최근 통계청이 잇달아 발표한‘3월 산업생산’과 ‘서비스업생산’은 연말이후 최근까지 유지해 오던 완만한 상승세마저 벌써 정점에 도달한 것 아닌가 우려되고 있다. 다만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점 등은 하반기 경기회복의 불씨를 어렵사리 살려 놓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물론 가계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한 것으로 나타나 하반기 회복 할 것이라고 정부 전망도 갈수록 설득력을 잃게 하고 있다. 체감경기 회복을 느끼기 위해선 좀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할 듯 하다. ◆부동산업 감소로 돌아서 =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서비스업 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3월 서비스업 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증가했다.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은 지난 1월 5.0%에서 2월 6.7%로 확대되며 1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해 지난달로 상승세를 마친 셈이다. 더욱이 전달인 2월에 비해 1.2%나 줄어든 것이어서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도매업은 자동차 판매가 전년 동월비 9% 증가해 호조를 보였지만 산업용 중간재나 건축자재 등이 부진해 2.7% 증가에 그쳤고 소매업도 설 특수 효과가 사라지면서 전년동월비 3.0% 증가해 전월 9%에 비해 증가세가 대폭 둔화됐다. 특히 부동산 및 임대업은 전년동월비 2.5% 증가에 그쳐 전월 7.1%보다 4.6%포인트나 줄었고 지난 한해 증가율 10.2%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부동산업의 경우 0.4% 감해 지난 2004년 12월(-5.4%) 이후 2년 3개월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 이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거래량도 급격히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선행지수 제자리 = 통계청이 내놓은 3월 산업활동동향 역시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3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증가하는 데 그쳤고 전월 대비(계절조정)로는 0.4%의 감소했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0.4로 기준선(100)을 소폭 웃돌았으나 2월에 비하면 0.3포인트 떨어졌고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는 4.9%로 2월과 같은 수준이었다. 제조업의 활동수준을 나타내는 평균가동률 역시 81.4%로 2월(82.0%)에 비해 낮아졌다. 또 소비재 판매 증가율이 지난해 3월보다 7.3% 늘어나는 데 그쳐 2월(12.1%)보다 크게 둔화 됐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6.4% 늘어났고 국내 기계수주액도 5.1%의 증가율을 보였으나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1, 2월에 비해서는 크게 둔화된 모습이었다. 다만 1.4분기 전체 설비투자와 국내 기계수주액은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2%, 15.2%씩 늘어나며 1년전 같은 기간보다 회복조짐을 보였다. 건설부문의 경우 건설기성은 민간건설 부문의 위축으로 작년 동월대비 증가율이 2.0%에 그치며 올들어 가장 부진한 모습이었으나 건설 수주는 공공과 민간부문이 모두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3월보다 32.0%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5-01
- <기고>세계 제일의 저작권 시장 진출을 위하여 한미 FTA협상이 2006년 2월 개시 선언되고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수차례 협상이 진행됐다. 이제 긴 협상도 일단락되고 싫던 좋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동안 온 국민의 머릿속에 한미 FTA는 가장 크고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을까한다. 한미 FTA 협상은 각 분야별로는 지금보다 더 유리해지기도 하고 불리해지기도 한다.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한 것을 보면 약간씩 우위가 교차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각각의 협상별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부각되고 이것에 대하여 사안별로 충분하게 논의되고 검토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구조의 고도화를 위하여 지식기반 서비스의 육성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우리산업에 접목시켜야 한다. 한미FTA는 이러한 국내경제 여건과 세계경제의 변화와 지역주의, 세계화 추세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의 선택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에서 저작권 관련 중심사항을 보면 기술적 보호조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제한 문제, 저작권 보호기간 문제, 일시적 저장의 복제 포섭여부 등 중요쟁점사항이 논의됐다. 이러한 사항은 이제 더 이상 우리와 거리감이 있고 낯설은 것만은 아니다. 저작권법, FTA 충격완화 기대 지난 2006년 12월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통과된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파일공유 사이트 운영자가 권리자의 요청을 받을 경우 저작물의 불법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영리· 상습적인 침해행위에 대해 친고죄의 일부폐지로 변경했고,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불법복제물의 수거· 폐기· 삭제 권한을 부여한 것 등 선진국에서 저작권보호를 위해 문제되었던 사항에 대한 해법을 담고 있다. 동 법은 6월 29일 발효되며, 이로 인해 적어도 지적재산권 분야에 한정해서는 한미FTA의 충격이 완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는 저작권법에 근거해 허락받지 않고 무단으로 음원을 사용하는 사업자를 유료화로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FTA로 대변할 수 있는 세계화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제기구인 디덱스 (DDEX)에 가입하여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고, 한 걸음 나아가 이들을 리드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가정, 기업,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의 문화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비보이(B-boy)’가 그것이다. 비보이 문화가 들어온 이래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세계무대를 향한 꾸준한 도전과 경쟁으로 이제는 세계 비보이계의 흐름을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 한미FTA도 이런 방향으로 가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보다 먼저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를 보자. 싱가포르와 미국간 FTA는 2004년 1월 발효됐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아시아 첫 협정국이 됐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후 경제가 더 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양국의 교역량이 증가하고 미국의 직접투자가 지식집약, 창조산업인 제약, 소프트웨어, 영화, 게임산업 분야에서 증가하였고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개혁이 가속화되었다. 미국과 FTA를 통해 싱가포르는 기업 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향상돼 동남아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우리는 이러한 싱가포르의 경우를 타산지석의 지혜로 삼아야 한다. 개방을 통해 신규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의 시장은 더욱 확대하고 투자가 부족한 산업은 투자를 촉진하고, 기술이 부족한 산업은 기술을 촉진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한미FTA를 통해 시장을 개방했다고 경제적 성과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미 FTA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국민적인 합의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것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노력하여 괄목할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한미FTA에서 실보다는 득을 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경제는 대내 구조조정과 발전전략을 통하여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