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여자' 검색결과 총 779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호암 이병철 탄생 100주년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21세기 경영화두는 사람이다. 경영과 관련한 다양한 이론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경영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고도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은 드물다. 경제가 복잡해지고 세계화 될수록 그 시대에 맞는 인재를 잘 길러내 적재적소에 써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일찍이 1930년대에 사업보국의 뜻을 품고 사람을 중심으로 경영에 헌신, 오늘의 삼성을 키워낸 호암 이병철의 기업가정신을 살핀다.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세간에서 자주 하는데 나에게 그 이상 즐거운 일은 없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은 경영의 요체로 항상 사람을 꼽았다. 그는 사람을 잘 뽑아서 잘 키우는 데 혼신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인재경영’을 그룹 경영원칙으로 삼았다. 기업이 영속하려면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누구보다 앞서 간파했던 것이다. 21세기를 맞는 요즘 경영의 화두로 사람의 문제가 더욱 중시되는 것을 보면 호암은 몇 세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인 셈이다. 인재를 중요시한 호암의 족적은 삼성그룹의 역사 곳곳에 남아 있다. 1938년 대구 서문시장 근처의 수동(현 인교동)에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개업한 호암 이병철은 1개월쯤 뒤 일본 와세다대학 시절 친구인 이순근을 지배인으로 앉혔다. 주변에서 신설회사의 경영을 지배인에게 맞기면 안 된다며 반대를 했지만 호암은 특별한 사안을 제외하곤 이순근에게 일임했다. 이순근은 호암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일했고, 삼성상회가 그 후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됐다. ‘의인물용 용인물의(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유명한 경구가 당시에 생겨났다. 해방 뒤인 1948년 서울에서 삼성물산공사를 세워 생필품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시작한 호암은 큰 성공을 거뒀다. 창립 1년 반 만에 일본의 강압통치 때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거대 무역회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한국전쟁은 삼성물산공사를 파탄시켰고 호암은 빈털터리가 됐다. 구사일생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대구로 내려간 호암에게 새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암은 1939년 대구의 조선양조장을 인수했는데,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동안 사실상 방치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회사 직원들이 3억원이라는 거금을 비축했다 사업을 재기하라며 호암에게 건넨 것이다. 호암의 사람 보는 눈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호암의 사람 중심 경영원칙은 제일모직 공장 건설 과정에서도 발휘됐다. 호암은 여성 근로자들이 숙식할 기숙사에 당시로는 최상급의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아, 부지 전체가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보일 정도로 꾸몄다. 호암이 기숙사나 조경에 그토록 마음을 쓴 것은 종업원을 가족처럼 대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면 작업능률도 반드시 향상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런 호암의 생각이 종업원들에게 전달된 것인지, 제일모직은 착공 1년 반 만에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직물 선진국 제품에 못지않게 질 좋은 옷감을 생산했다. 1960년대에 삼성이 교육에 투자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호암의 인재관을 알 수 있다. 삼성은 1964년 자금 부족으로 운영난을 겪고 있던 대구대학을, 이어 1965년 성균관대학을 각각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진출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런데 당시 대구대학의 인수금액은 서울에서 웬만한 일류대학 하나를 인수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호암은 “교육·문화의 서울 집중을 막고 지방에도 골고루 대학을 키워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정난과 내분으로 운영난에 빠져있던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한 것도 인재육성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삼성이 1950년대 중반 도입한 사원공채·사원연수 등은 호암의 인재경영 원칙이 기업 제도로 구체화된 사례다. 이제는 일반화된 이 제도는 삼성이 우리나라 기업가운데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당시 극히 이례적이었다. 경제·사회가 아직 성숙되어 있지 못했고 기업 자체가 채 궤도에 오르지 못한 때였다. 그렇지만 호암은 공채를 통해 고급인력을 모았고, 그 결과 삼성은 최고의 재원을 지닌 기업이 됐다. 호암의 인재경영 원칙에 대해 오늘날 세계의 경영석학들이 공감을 피력한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잭 웰치는 “나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가, 책임감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그리고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호암은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춘 경영자였다. 특히 인제제일주의에 관해서는 호암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2008년 말 일어난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돈) 중심 경영방식이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도 자본중심의 관점에 경도됐다면 위기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재를 중심으로 하고 자본·토지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기에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삼성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병철 전 회장의 인재중심경영은 100년 전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나왔다. 20세기 초 조선은 개화된 일본에 비해 자본이 적고, 토지가 넓은 중국에 비해 왜소한 현실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시대에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체득한 호암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성장하는 자본의 중요성을 깨달아 이를 결합해 근대적 경영으로 나아갔으니, 호암의 사업보국 정신이 이렇게 형성됐다. 21세기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삼성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게 됐다. 하지만 호암이 평생을 바쳐 확립하고자 한 ‘인재 제일주의’가 유지되는 한 삼성의 미래는 충분히 기대할 만할 것이다. 호암의 연보 1910년 2월12일 경남 의령 출생 1926년 12월5일 박두을 여사와 혼인 1930년 4월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경과 입학 1936년 3월 마산 협동정미소 창업 1938년 3월 대구서 삼성상회 창업 1948년 11월 삼성물산공사 설립 1953년 8월 제일제당 설립 1963년 2월 동양TV방송 설립 1963년 7월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1965년 9월 중앙일보 창간 1967년 10월 한국비료 헌납 1969년 1월 삼성전자 설립 1974년 8월 삼성중공업 설립 1982년 12월 삼성반도체통신 발족 1985년 5월 256KD램 양산공장 준공 1987년 11월19일 별세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호암의 인재경영 관련 어록 ◆모든 것의 시초는 인간이며, 모든 일의 중심은 인재이다. 60년을 넘는 나 자신의 인생체험과 40년에 걸친 기업경영의 직접 체험을 통해 내가 절실하게 통감해온 것은, 모든 일은 그 규모의 대소를 불문하고 결국 사람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1973, 9. 22. 중앙일보 창간 8주년 기념사에서 ◆기업은 사람이다. 기업은 문자 그대로 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이 소박한 원리를 잊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유포되고 있지만 돈을 버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1980. 7. 3 전경련 강연에서 ◆나는 50여 년간의 경영활동을 통해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으로 인재양성에 남다른 정력을 쏟아왔고 이를 실천해왔다. 삼성의 정장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인재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1985. 4. 22 KBS 방송대담에서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랬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2010-02-12
- [주말을여는책] ‘나는 서 있다’ 차 미 례 언론인. 번역가 전범석 지음 예담 9800원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전신마비 환자가 된 의사의 투병기록 “의사로서 환자를 포기할 수 없듯이 나의 삶 또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쓰러졌다. 사회적으로 쓰러지는 것 말고, 그냥 쓰러졌다. 쓰러지는 사람들은 두가지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 쓰러진 것도 모르고 쓰러진 사람. 현기증을 느껴 손을 짚거나 방어동작을 하면 부상이 적지만, 돌연 의식이 끊기는 후자는 뇌진탕으로 심각한 중증장애에 이를 수 있다. 나는 평소 다니던 무술관에서 서있다 갑자기 통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져 시멘트 기둥 모서리에 오른쪽 관자노리와 얼굴을 찍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2008년 여름의 일이다. 잠시후 의식이 돌아왔을 땐 얼굴과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머리가 다 깨진 듯 아파서 봉술 연습하던 무술인들의 무기에 잘못 강타 당한 줄 알았지만, 혼자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송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뇌파 검사와 초음파검사등 여러가지 뇌 검사를 다 했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박상의 내출혈로 턱밑에 큼직한 피주머니가 혹처럼 늘어졌을 뿐이다. 오래전 이 병원에서 받은 암수술이 뇌종양으로 전이된 게 아닌가해서 의료진은 뇌검사를 집중적으로 했지만 그건 일단 완치 판정을 받았었고, 주치의인 방영주 박사도 그건 원인이 아니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쓰러진 원인을 탐문( 취재)하기를 그치지 않는 동안 수많은 지인들이 비슷한 경험담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욕실에서 쓰러진 사람, 침실에서 쓰러졌다 반시간 만에 깨어난 사람, 일하다 말고 쓰러지는 것을 동료가 받아주어 뇌손상을 면한 사람.... 마치 이 세상이 쓰러진 사람으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나는 서 있다’의 저자 전범석 박사도 쓰러진 사람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서울대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운이 나빴다. 무쇠처럼 단련된 몸의 중년 남자가 남한산성 등산중 정상에 서자마자 갑자기 통나무처럼 쓰러져 바위에 부닥쳤다. 앞니들이 깨지며 충격을 흡수한 덕에 더 심한 뇌손상과 사망은 면했지만,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머리부분과 언어만 온전할 뿐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2004년 여름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기록을 남겼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자신의 병을 잘 아는 그는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하고 직접 메모를 할 수 없으니 구술을 받아 적게 했다. 이를 악물고 재활치료에 매달려 9개월만에 두 발로 걸어나왔고 3년만에 진료실에 복귀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그는 운이 좋았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파킨슨병과 이상운동 질환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 자신의 증상의 정체를 파악하고 수술후 투약과 처방까지 지시할 수 있었다. 그 숱한 쓰러진 사람중에서 병원 구급 팀에게 “ 내가 C5 콰드리플레지아 (5번째 경수부위에 생긴 척수손상)여서 헬기가 있어야겠습니다. 위치는 남한산성 벌봉 정상입니다”라고 침착하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병원에 후송돼 수술을 받고 전신마비에서 다시 일어서기까지 몸의 상태와 변화를 먹는 것, 배변, 물리치료과정까지 부끄러움 없이 세밀하게 기록했고, 의사로서의 모든 권위의식과 환자로서의 모든 절망을 다 넘어서는 과정( 두가지가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을 글로 남겼다. 그가 서문에서 “ 이 책은 달콤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중인 투병기록이며, 아직 시련 속에 있거나 고난이 끝나지 않을 사람을 위한 글이다.”라고 밝혔듯 절망, 분노, 원망, 후회, 자기연민같은 환자들 고유의 심리적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솔직히 돌아보고 이를 가감없이 기록했다. 특히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Why me?)라는 억울함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이기고 자신의 기나긴 싸움의 과정을 냉철하게, 긍정적으로 기록한 점에서는 많은 환자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감탄과 존경을 자아낼 만 하다. 서평가로서나 그 이전의 일간신문 출판담당 기자로서 필자가 습관적으로 의심스럽게 살피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첫째는 성공학 책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종류의 ‘하우투 북 How-to book’ 들이다. 처세술을 포함해서 요리, 스포츠등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책은 그 종류와 출판 물량이 하도 많아서 진위 여부나 수준 여하를 가리기도 힘들다. 책에 적힌대로 따라 했다가는 실패에 이르기 십상인 부실한 내용도 많아서, 신문에 실을 때면 긴장해서 내용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경험담과 소설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자전류나 체험기들이다. 선거철에 쏟아지는 정치가들의 선전용책처럼 무가치하고 목적이 뻔한 책들이 많다. 아니면 너무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만의 감상이나 경험담을 과장하거나 미화한 책도 많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아예 서평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지만, 그래도 모래 속에서 금을 찾듯 간혹 좋은 체험담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기 힘든 아이템들이다. 내가 병원에서도 해답을 못구한 ‘쓰러짐’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얻으려고 읽게 된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책이다. 솔직하고 정확한 기록이야말로 인류공유의 귀중한 자산이다. 책은 저자가 전신마비로 누워있다가 T베드( 환자의 몸을 강철 프레임에 묶어 세워주는 장치)신세를 지며 조금씩 일어서서 마침내 두 발로 진료실에 복귀하기까지의 경험과 긍정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하늘은 최고의 의사인 그를 쓰러뜨렸지만, 그는 환자의 고통을 몸으로 체험하고 희망과 절망을 논할 줄 아는 철학자가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절망에 내몰린 환자들이 병원 시스템에 묶인 채 과로와 무관심 속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의사 대신 이런 ‘아군’을 갖게 되다니, 멋지지 않은가. 그처럼 쓰러진 모든 사람들이 ‘나는 서 있다’고 외칠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0-02-12
- 이용훈 대법원장, 한참 부족한 ‘약속 지키기’ 대법원이 발간한 ‘역사 속의 사법부’는 당초 지난해 1월 나올 것으로 예정됐지만 진통 끝에 1년이 지난 후 모습을 드러냈다.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담을 것인지 상당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실린 결과물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높다. 이용훈 대법원장(사진)은 2005년 9월 26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신시절 등 암울한 시기의 사법부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시 판결 경향을 조사해서 적당한 시기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26일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사과했다. 하지만 과거의 판결 경향을 조사해 발표하겠다는 약속은 ‘역사 속의 사법부’ 책자에 관련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일단은 지켰지만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친다. 대법원은 ‘역사 속의 사법부’ 제3장 형사재판 관련 서문에서 “법원은 형사재판을 하면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주요 판결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면서 단순 기술했다. 평가나 반성은 철저히 배제했다. 이진성 사법사편찬위원회 위원장도 발간사에서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시각으로 손쉽게 과거의 잘못을 매도하고 단죄하는 것도 역사를 대하는 옳은 길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객관적 자료와 근거에 따라 사실을 냉정하게 서술하되, 가치평가로 사실인정에 갈음하려 해서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역사 속의 사법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이지만 법원의 인권 보호 노력 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내용으로 채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0-01-14
- “뭐든지 뚝딱! 손으로 만드는 건 모두 자신 있어요~” 뚝딱 뚝딱! 재료만 있으면 뭐든지 예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손을 가진 그녀의 집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놀이터에서 만난 동네 아줌마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금방 친해지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만들기(?) 솜씨까지 빼어나서 언제나 인기 만점인 달서구 대천동의 전인혜 씨(31). ‘인테리어 좀 한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 자자한 ‘손잡이닷컴’에서 리폼어워드 1위를 차지한 그녀의 행복한 리폼의 세계에 들어가 본다.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4살 딸아이와 소꿉장난 하듯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집은 마치 어느 인테리어 잡지의 한 페이지를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집안 살림 하나하나 얼마나 공을 들이고, 애정을 쏟았는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가구 리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쁜 천들로 옷이며 커튼, 이불까지도 직접 만들어 쓴다고 하니 그녀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말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 “주변에 아는 엄마들이 처음엔 구경만 하다가 요즘엔 자꾸 가르쳐 달래요. 그래서 요즘은 이집 저집 다니며 가르쳐 주느라 바빠요.전인혜 씨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처음엔 다들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만 하고 도전해 보려고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막상 해 보면 ‘내 스타일 대로 만들어 내는 즐거움과 보람’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리폼이나 DIY의 장점은 실패해도 다시 고치기가 쉬운 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완벽한 상품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대로, 나에게 맞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겁내지 말고 일단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그녀는 “요즘은 인테리어 사이트나 잡지에 워낙 잘 나와 있어서 조금만 공부하면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다”며 “재료도 원하는 대로, 원하는 양만큼 살 수 있어 정말 편리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늘 엄마에게 들어왔던 말이 “니꺼만 만져라”였단다. 꼼지락 꼼지락 만들기 좋아하는 그녀가 얼마나 집안 살림들은 이리저리 옮기고 색칠해 왔는지 그 말 한마다에 다 이해가 갔다.“결혼 전, 친정 싱크대 색깔이 맘에 안 들어서 흰색 페인트를 사다 칠했는데 어찌나 줄줄 흘러내리는지 다 망쳐서 난리가 났었다”며 제대로 잘 바르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서 알아보고 난 다음, 결국 성공하게 됐다고. 그때부터 책상이며, 책장이며 칠하고 만들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 엄마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결국 그런 손재주도 엄마를 닮은 것 같다”며 웃는다. ‘타샤의 정원’의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어그녀의 집엔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게 없다. 아기자기 예쁜 소품 가구들부터 직접 만든 이불, 커튼, 게다가 딸아이 장난감까지…. 이런 거 다 만들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았겠다고 물으니 “가끔씩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 보면 쓸 만하고 깨끗한 가구들이 버려져 있거든요. 그럼 동네 엄마들 불러서 집으로 들고 와서 밤새도록 문지르고 칠하고 나면 완전히 다른 가구가 되어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버려진 나무 상자 하나도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단다. 센스쟁이 눈에만 띄는 값싸고 멋스러운 다양한 소품들까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가구 리폼뿐만 아니라 옷 만드는 재주도 남다른 그녀는 사실 티셔츠 한 장도 잘 안 사 입는 짠순이란다. 그 대신 서문시장에서 계절별로 예쁜 원단 한마 끊어 와서 딸아이랑 세트로 아기자기한 스카프 한 장 뚝딱 만들어 걸치고 나가면 웬만한 멋쟁이 부럽지 않다는 전인혜 씨. 어지간한 딸아이 옷가지도 모두 직접 만들어 준다.그녀는 “스커트나 조끼 같은 것들은 입히다 싫증나면 레이스 같은 것만 바꿔줘도 다시 새 것 같다”고 설명한다.명절 때나 가족 모임에, 또는 지인들 생일에도 직접 만든 스카프 한 장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면 다들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고. 먼 훗날 그녀는 ‘타샤의 정원’에 나오는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집을 가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은 게 꿈이고 희망이라는 그녀. “앞으로 열심히 돈 모아서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고 저만의 작업공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져요.”어쩌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상으로 느껴지는 지루한 하루가 그녀에게는 매일매일이 신나고 보람 있는 날들로 채워져 가고 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 마법 같은 손으로 앞으로의 행복도 뚝딱! 만들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선주 리포터 wd0918@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0-02-08
- 김 광 원 공권력과 씨름하기 김 광 원(참미디어연구소 대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전화로 소환통보를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소환하는 담당자의 성명과 소속, 사무실 호수와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고 자신이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신분인지, 아직 입건되지 않은 ‘참고인’신분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좀 희한한 내용의 책이 나왔다. 제목이 ‘쫄지마, 형사절차!’라고 돼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만든 형사절차 가이드북이다. 공동저자인 황희석 변호사의 서문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부터 민변은 ‘5분 대기조’였다. 여기저기서 체포된 시민과 학생들이 민변에 대처방법을 물었다. 접견요청이 쇄도했다. 집회현장의 인권침해를 막아달라는 부탁도 들어왔다. 민변은 나름대로 답변하고 현장에 달려갔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부족함이 남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절차가 위법한데도 무심코 응하여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시민이 있다. 다투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약식명령을 받고서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졸지에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인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경찰이나 검찰수사관의 소환에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위법한 공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시민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지식을 담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법치주의’가 평범한 시민에게 위압감을 주고 그들을 피의자로, 전과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민변 측의 주장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와 인권침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일종의 가정 의학서처럼,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응급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인권 지킴이’책자라는 설명이다. 황희석 변호사는 이 책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거리와 광장, 학교와 언론사, 성당과 사찰 및 교회, 그리고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시민들이 흘리고 겪은 땀과 고통의 흔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민변소속 변호사들이 각종 집회현장의 대열 사이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종합해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썼다. 황변호사는 일신의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나선 시민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할 책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10일은 61번째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민변은 세계 인권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국가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시민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을 민간단체인 민변이 안내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의 인권 현주소라고 할 만하다. 그뿐 만이 아니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민변과 인권단체연석회의가 펴낸 ‘2009 한국인권보고대회’ 보고서는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2009년의 인권상황을 ‘어두운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의 날은 2차대전 중에 자행된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기초가 됐다. 1991년 파리원칙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해 2001년 출범한 우리 국가인권위(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전담의 독립적 국가기구다. 그럼에도 불구, 이명박정부는 출범이전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시도했다. 더구나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과정에 대한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이후 인력감축과 인사 등을 통해 인권위 무력화작업을 벌였다. 인권위원장에는 인권과 거리가 먼 인사가 결정됐다. 2009년을 보내며 인권위가 사실상 형해만 남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권의 날 기념행사조차 둘로 나뉘었다. 인권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반면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많은 인권단체들은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수여가 발표됐다. 올해의 인권궤적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징표다. 그동안 유엔의 인권기구들은 물론 국제사면위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거듭해왔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석좌교수와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 등 세계적 지식인들과 정치인 등 20개국 173명이 세계인권의 날에 즈음해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2008년 촛불집회 탄압에 이어 올해에는 더 많은 진보단체와 민주적 시민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와중에서 나온 ‘쫄지마, 형사절차!’의 수익금 중 1%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다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들을 돕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저자들의 희망대로 이런 책이 쓸모없어져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지난날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5
- 대구시, 시티투어용 2층 버스 내년 4월 본격 운영 대구에도 시티투어용 2층 버스가 내년부터 도입된다. 대구시가 18일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도시관광활성화를 위해 도심 순환형으로 시티투어용 2층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국비예산 13억원을 확보해 네오플란사(JNP 6127S형)의 2층 버스 2대를 구입해 내년 1월 차량을 인수할 예정이다. 이 버스는 높이 3.9m, 차폭 2.5m, 차량길이 12.44m로 1층에는 휴게실를 갖추고 있으며 41명이 탑승할 수 있는 모델이다. 1대당 가격은 6억원이다. 시는 내년 3월까지 시험운행을 거쳐 4월부터는 본격 운행에 들어간다. 운행코스는 동대구역에서 엑스코, 오페라하우스, 약령시, 서문시장, 동성로,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범어사거리, 대구박물관 등을 거쳐 동대구역으로 돌아오는 순환형으로 운영되며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코스는 도로 주행여건을 고려해 설계된 것으로 현재 운행중인 시티투어버스와 연계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운영주체는 대구시시설관리공단이 맡아 관리 운영한다. 현재 시티투어용 2층버스는 서울시(2대)와 부산시(6대)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들어 울산시와 인천시가 운영하거나 도입할 계획이다. 대구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8
- [김광원 칼럼]공권력과 씨름하기 공권력과 씨름하기 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전화로 소환통보를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소환하는 담당자의 성명과 소속, 사무실 호수와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고 자신이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신분인지, 아직 입건되지 않은 ‘참고인’신분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좀 희한한 내용의 책이 나왔다. 제목이 ‘쫄지마, 형사절차!’라고 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만든 형사절차 가이드북이다. 공동저자인 황희석 변호사의 서문에 따르면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부터 민변은 ‘5분 대기조’였다. 여기저기서 체포된 시민과 학생들이 민변에 대처방법을 물었다. 접견요청이 쇄도했다. 집회현장의 인권침해를 막아달라는 부탁도 들어왔다. 민변은 나름대로 답변하고 현장에 달려갔지만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절차가 위법한데도 무심코 응하여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시민이 있다. 다투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인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 이 책은 경찰이나 검찰수사관의 소환에 어떻게 대처할지부터 위법한 공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시민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지식을 담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법치주의’가 평범한 시민에게 위압감을 주고 그들을 피의자로, 전과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민변 측의 주장이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와 인권침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일종의 가정 의학서처럼,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응급조치를 취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주는 ‘인권 지킴이’책자라는 설명이다. 황희석 변호사는 이 책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거리와 광장, 학교와 언론사, 성당과 사찰 및 교회, 그리고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시민들이 흘리고 겪은 땀과 고통의 흔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민변소속 변호사들이 각종 집회현장의 대열 사이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종합해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썼다. 지난 10일은 61번째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민변은 세계 인권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국가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시민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을 민간단체인 민변이 안내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 인권의 현주소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민변과 인권단체연석회의가 펴낸 ‘2009 한국인권보고대회’ 보고서는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2009년의 인권상황을 ‘어두운 회귀의 시대, 저항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의 날은 2차대전 중에 자행된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기초가 됐다. 1991년 파리원칙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해 2001년 출범한 우리 국가인권위(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전담의 독립적 국가기구다. 그럼에도 불구, 이명박정부는 출범이전부터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시도했다. 더구나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과정에 대한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이후 인력감축과 인사 등을 통해 인권위 무력화작업을 벌였다. 인권위원장에는 인권과 거리가 먼 인사가 결정됐다. 2009년을 보내며 인권위가 사실상 형해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권의 날 기념행사조차 둘로 나뉘었다. 인권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반면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많은 인권단체들은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인권추락상’수여가 발표됐다. 올해의 인권궤적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징표다. 세계가 한국 인권상황 우려 그동안 유엔의 인권기구들은 물론 국제사면위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거듭해왔다. 심지어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와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와 같은 세계적 지식인들과 정치인 등 20개국 173명이 세계인권의 날에 즈음해 이명박정부의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2008년 촛불집회 탄압에 이어 올해에는 더 많은 진보단체와 민주적 시민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쫄지마, 형사절차!’의 수익금 1%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다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들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저자들의 희망대로 이런 책이 쓸모없어져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지난날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5
- 이 대통령 “서민정책이 중심” 라디오연설에서 미소금융 강조 대선광고 ‘욕쟁이 할머니’와 해후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도 서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방송된 제30차 라디오연설을 통해 “최근 경기가 나아지는 것 같지만 서민들이 온기를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소액대출제도인 미소금융,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보금자리 주택 등을 언급하며 “이 세가지 서민정책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국민을 돕겠다는 정부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마침 내일(16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이 운영하는 미소금융재단 첫 사업장이 경기도 수원에서 문을 연다”고 소개한 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롯데, 포스코 등 6대 그룹이 시작했고 KB,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등 5개 은행에서도 차례로 사업장을 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같은 금융안전망이 전국범위로 촘촘히 만들어지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이는 기업이 자신들이 기부한 돈으로 직접 사업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10년간 2조 원이 목표였습니다만 덕분에 2천억 원 이상이 더 모일 것 같다”며 “그러면 영세사업자 20만 이상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대기업들이 서민들에게 직접 자활의 기회와 기쁨을 주는 일에 나선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모범사례이자 나아가 기업사에 있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인천에서 최근 옷가게를 연 이지은씨와 서울 수유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박진효씨 등 소액대출을 통해 자활의 기회를 마련한 서민들의 사례를 소개한 뒤 미소금융 참여기업 등에 대해 “소액대출이라고 하지만 대출받는 분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소중한 돈”이라며 “돈과 함께 진심과 애정을 아울러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저녁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광고에 나왔던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69)씨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서문시장을 깜짝방문, 대선 때 방문했던 손수제비집 김기순(82) 할머니 가게를 다시 찾은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최근 ‘대선 당시 도움을 줬던 서민들을 연말 중 꼭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밝혀 이같은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4
- 이 대통령 “서민정책이 중심”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도 서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방송된 제30차 라디오연설을 통해 “최근 경기가 나아지는 것 같지만 서민들이 온기를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소액대출제도인 미소금융,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 보금자리 주택 등을 언급하며 “이 세가지 서민정책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국민을 돕겠다는 정부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마침 내일(16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이 운영하는 미소금융재단 첫 사업장이 경기도 수원에서 문을 연다”고 소개한 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롯데, 포스코 등 6대 그룹이 시작했고 KB,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등 5개 은행에서도 차례로 사업장을 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같은 금융안전망이 전국범위로 촘촘히 만들어지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이는 기업이 자신들이 기부한 돈으로 직접 사업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10년간 2조 원이 목표였습니다만 덕분에 2천억 원 이상이 더 모일 것 같다”며 “그러면 영세사업자 20만 이상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대기업들이 서민들에게 직접 자활의 기회와 기쁨을 주는 일에 나선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모범사례이자 나아가 기업사에 있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인천에서 최근 옷가게를 연 이지은씨와 서울 수유시장에서 두부가게를 하는 박진효씨 등 소액대출을 통해 자활의 기회를 마련한 서민들의 사례를 소개한 뒤 미소금융 참여기업 등에 대해 “소액대출이라고 하지만 대출받는 분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소중한 돈”이라며 “돈과 함께 진심과 애정을 아울러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저녁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광고에 나왔던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69)씨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서문시장을 깜짝방문, 대선 때 방문했던 손수제비집 김기순(82) 할머니 가게를 다시 찾은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최근 ‘대선 당시 도움을 줬던 서민들을 연말 중 꼭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밝혀 이같은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4
- [신간]법전 스님의 ‘누구 없는가’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수행과 깨달음의 자서전 법전 스님 지음/ 김영사/ 1만4천원 참선에 들면 미동도 하지 않아 ‘절구통수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한 생을 참선수행으로 일관한 선승 법전 스님이 한 생을 돌아봤다. “행복에 이르는 길이 있는데 사람이 걷지 않을 뿐이다. 행복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 있으며,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수행이라는 길을 꾸준히 걸어보라. 오래 하다 보면 틀림없이 들어가는 곳이 있다. 반드시 깨칠 수 있으며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출가부터 수행의 과정, 종정에 이르기까지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에는 스님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제 죽을 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니 살아 있는 동안 참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서문처럼 참으로 열심히 수행해 온 스님은 아스라한 과거를 글로 옮겼다. 법전 스님은 열네 살에 산문에 들어와 다른 곳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수좌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훌륭한 스승과 선지식들을 모신 것을 청복으로 생각한다. 스님은 그 길을 ‘소풍 가듯 떠나온 길’이라고 했다. 어느덧 여든다섯. 스님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똑같다. 한 산중을 다스리는 총림의 방장으로 있어도, 또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 종정이라는 자리에 있어도 단순 담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스승인 성철 스님이 늘 공부하는 수좌들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하며 파계사 성전암에 머물면서 10년 동안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고, 법전 스님도 그 뜻을 따라 태백산 깊은 산골짜기에서 10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 해인사에 온 지 25년 동안 마을에 내려가서 밥 한끼 먹은 적이 없다. 옛 스님들은 한 산중에서 머물면서 보통 30~40년을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법전 스님은 ‘회향’에서 “24시간 가운데 자신이 활동할 때도 화두가 되어야 하고, 꿈에도 화두를 해야 하고, 숙면에 들어도 화두가 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그걸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삼매에 이르면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인연이 닿으면 바람소리, 돌을 던지는 소리, 혹은 상갓집 상주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깨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 역대 종정은 물론 고승 가운데 생전에 자서전을 출간한 스님은 찾기 어렵다. 선승은 본디 말이 없고 그저 수행할 뿐이며, 진리의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내면의 모습을 보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선승들이 입적한 후에야 후학들에 의해 행장과 법문집으로 스님의 자취를 더듬어가며 그 뜻을 좇고는 했다. 법전 스님 역시 ‘허공을 나는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사들의 본래적 삶의 모습인데...’라는 생각으로 자서전 출간 결정에 장고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불교 전통적인 수행자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후학들의 권청으로 출간에 이르게 됐다. 비로소 선승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출가의 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에 임해야 하며, 수행자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수행자의 세상을 향한 진정한 회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불교계 안팎의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됐다. 불교계에서는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통과해 온 법전 스님의 생애를 한국불교 역사의 맥을 꿰뚫는 귀중한 1차적 자료로 보고 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