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내일시론>남북관계 북핵 종속은 아마추어리즘 남북관계 북핵 종속은 아마추어리즘 방코델타아시아 계좌의 송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북핵 초기이행조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남북관계도 이에 묶여서 단서를 단채 조건부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 40만톤의 쌀을 지원하기로 합의했지만, 핵의 초기이행조치와 맞물려 놓았다. 지금 북핵과 한반도 정세를 다루면서 우리는 미래의 한반도전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남북관계를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체계로 연동시켜 진행하고 있는 접근법이 한반도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남북관계가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체계로 편입된 시점은 지난해 9월 워싱턴의 한미정상회담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펴지 않을테니, 미국은 이를 의심하지 말고 북한을 직접 상대하여 핵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11월 하노이에서 나온 부시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발언은 이에 대한 화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속내도 모르고 ‘중재자’역할도 못하고 이로써 참여정부 내내 유지해온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의 병행전략은 무력화되었고, 외교안보진영도 재편됐다. ‘이종석 체제’가 막을 내리고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외교안보정책을 총괄 선도하게 됐다. 외교안보정책의 팀장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됐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밀렸고, 통일부를 가리켜 ‘외교부 통일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나도는 판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로 편입시켰으니 북핵문제라도 잘 풀리고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북핵해결의 올바른 정책판단도 그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북핵팀은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문제를 단순히 ‘기술적·금융절차적 문제’라고 강변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BDA 문제를 국제금융시스템에 복귀하는 승부수로 보고 있음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3월17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 북핵외교팀은 ‘기술·절차적 문제여서 하루이틀이면 풀릴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지금 이를 더 이상 입에 올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자신의 정세판단 오류를 만회하기 위해서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돌출발언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갔다. 우리 북핵팀은 아직도 북의 속내에 대해 판단유보이다. 북한이 곧 미국을 상대로 마지막 요구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한달을 허송세월했고, 미국을 상대로 진정한 해법을 조언하는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정통으로 다뤄온 인사들은 일찌감치 BDA문제는 기술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국제금융시스템 복귀에 맞물린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라인에서 입지가 약해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저자세 시정하고 ‘선점의 기회’ 활용해야 남북관계가 국제관계를 반걸음 뒤따라가는 현재의 정책이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북핵해결 후 닥칠 사태 때문이다. 초기이행조치가 완료되고 이어서 핵불능화단계가 진행되면 미·중·일·러 등 세계4대강국의 북한 선점경쟁은 불길처럼 번질 것이다. 특히 폐쇄되고 낙후된 국가에 재건명목으로 진출한 경험이 풍부한 미국의 자본이 북한을 휩쓸 것이라는 전망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서구자본의 유입이 제한된 지금이 ‘선점의 기회’이다. 북핵만 해결된다면 우리의 입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다. 진정한 프로기질은 공동목표와 자기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치열함에 있다. 의장국인 중국이 불법금융기관으로 지정된 BDA를 구제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 사태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납치자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온 일본은 미운털이 박혔지만, 결국 이 문제가 테러지원국 해제단계에서는 상당한 쟁점이 될 정도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남북관계의 병행발전은 저들처럼 억지스럽지도 않은데 우리 스스로 지나친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북핵해결이 본격화되기 전에 반드시 되짚어 보고 정책방향을 새로 수정해야할 한반도 미래전략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부의 외교안보 고위책임자는 최근 미국은 30~40명의 학자들이 핵 해결 후 한반도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은 미래의 상황을 가정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우리는 이런 면에서 부족하다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진 병 기 외교통일팀장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26
- <내일시론>남북관계 북핵 종속은 아마추어리즘(진병기 2007.04.26) 남북관계 북핵 종속은 아마추어리즘 방코델타아시아 계좌의 송금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북핵 초기이행조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남북관계도 이에 묶여서 단서를 단채 조건부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 40만톤의 쌀을 지원하기로 합의했지만, 핵의 초기이행조치와 맞물려 놓았다. 지금 북핵과 한반도 정세를 다루면서 우리는 미래의 한반도전략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남북관계를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체계로 연동시켜 진행하고 있는 접근법이 한반도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남북관계가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체계로 편입된 시점은 지난해 9월 워싱턴의 한미정상회담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펴지 않을테니, 미국은 이를 의심하지 말고 북한을 직접 상대하여 핵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11월 하노이에서 나온 부시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발언은 이에 대한 화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참여정부 내내 유지해온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의 병행전략은 무력화되었고, 외교안보진영도 재편됐다. ‘이종석 체제’가 막을 내리고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외교안보정책을 총괄 선도하게 됐다. 외교안보정책의 팀장 역할을 맡아줄 것으로 기대됐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역량이 달려 밀렸고, 통일부를 가리켜 ‘외교부 통일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나도는 판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북핵 국제공조의 하부로 편입시켰으니 북핵문제라도 잘 풀리고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북핵해결의 올바른 정책판단도 그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북핵팀은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문제를 단순히 ‘기술적·금융절차적 문제’라고 강변해 왓다. 하지만 북한은 BDA 문제를 국제금융시스템에 복귀하는 승부수로 보고 있음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3월17일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 북핵외교팀은 ‘기술·절차적 문제여서 하루이틀이면 풀릴 것’이라고 강변했지만, 지금 이를 더 이상 입에 올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자신의 정세판단 오류를 만회하기 위해서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돌출발언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갔다. 우리 북핵팀은 아직도 북의 속내에 대해 판단유보이다. 북한이 조만간 미국을 상대로 마지막 요구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한달을 허송세월했고, 미국을 상대로 진정한 해법을 조언하는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정통으로 다뤄온 인사들은 일찌감치 BDA문제는 기술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국제금융시스템 복귀에 맞물린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라인에서 입지가 약해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남북관계가 국제관계를 반걸음 뒤따라가는 현재의 정책이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북핵해결 후 닥칠 사태 때문이다. 초기이행조치가 완료되고 이어서 핵불능화단계가 진행되면 미·중·일·러 등 세계4대강국의 북한 선점경쟁은 불길처럼 번질 것이다. 특히 폐쇄되고 낙후된 국가에 재건명목으로 진출한 경험이 풍부한 미국의 자본이 북한을 휩쓸 것이라는 전망은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서구자본의 유입이 제한된 지금이 ‘선점의 기회’이다. 북핵만 해결된다면 우리의 입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다. 진정한 프로기질은 공동목표와 자기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치열함에 있다. 의장국인 중국이 불법금융기관으로 지정된 BDA를 구제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 현재 사태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납치자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온 일본은 미운털이 박혔지만, 결국 이 문제가 테러지원국 해제단계에서는 상당한 쟁점이 될 정도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남북관계의 병행발전은 저들처럼 억지스럽지도 않은데 우리 스스로 지나친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북핵해결이 본격화되기 전에 반드시 되짚어 보고 정책방향을 새로 수정해야할 한반도 미래전략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부의 외교안보 고위책임자는 최근 미국은 30~40명의 학자들이 핵 해결 후 한반도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은 미래의 상황을 가정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우리는 이런 면에서 부족하다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진병기 외교통일팀장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26
- 교통사고 유자녀 돕기 12년 내일녹색교통 (공동대표 하충식·46·창원 한마음병원장)은 1995년 마산과 창원지역을 중심으로 10명의 회원이 중심이 돼 만들어 졌다. 이 단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거나 편부·모 가정으로 전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96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교통사고 유자녀 22명에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비전액과 잡비를 지원해 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다. 우정실(여·23)씨도 이 단체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치고 한마음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했다. 하충식 내일녹색교통 공동대표는 “정실이가 어려운 형편에도 훌륭하게 자랐다”며 “초등학생 꼬맹이가 커서 어엿한 간호사로 한마음병원에 취업해 기쁘다”고 말했다. 정실씨가 이 단체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당시 정실씨는 뺑소니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뺑소니 가해자가 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아 정실씨는 보상도 한푼 못받았다. 어린 정실씨가 의지할 곳은 언니밖에 없었지만 언니네도 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내일녹색교통이다. 내일녹색교통은 장학사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유쾌하게 웃는 하루를 만들기 위해 놀이공원으로 ‘화려한 외출’을 했다. 해마다 5월이면 내일녹색교통은 한마음병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교통사고유자녀, 학대받는 아동, 고아원 어린이 등 250여명과 함께 하루 종일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하 대표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최고”라며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러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23
- <밥일꿈>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곽 용 덕 (밀레니엄 서울힐튼 과장)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난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때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었다. 12살 시골 소년의 눈에 비친 교과서에서만 보던 서울의 모습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한창 건설중인 63빌딩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였고 인천 맥아더 공원의 동상앞에서 비둘기 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당시 숙박을 남산 기슭의 허름한 여관에서 했었는데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던 남산타워의 아름다운 모습 또한 적지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분명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에 와본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이 매력적인 도시의 그 모든 것들을 매일매일 즐길 수 있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로 정말로 부럽기만 했다. 얼마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했었는데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서울로 청계천을 구경하고 돌아오셨단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아, 청계천 좋더라! 너는 서울에 사니까 자주 가봤지? 부럽다, 부러워!!’ 라고 하신다. 순간 정신이 멍~했다. 청계천이라!! 그래 청계천이 있었지…. 출퇴근 길에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그 청계천을 부모님께서는 일부러 하루 시간을 내어 서울로 구경을 오셨다는 사실에 그저 내 주변에 대가없이 주어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내가 그렇게 후회스럽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갖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공간에 유배되어 있다면 단조롭게 느껴졌던 서울의 일상에서 과연 어떤것들을 가장 절실하게 그리워할까? 개인마다 그 대답이 틀려지겠지만 ‘남산걷기, 북한산 등반, 청계천 산책, 한강둔치 산책, 내가 하고있는 일에 더욱 몰두해 보는 것, 연락이 끊겼던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기..’ 등이 아닐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도 있는 듯 한데..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런것들이다. 따지고보면 돈이 많이드는 일도 아니고 또 커다란 결심을 해야 실천에 옮길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 당장 작은 결심만 하면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내일 출근길에는 운동화 한켤레를 회사로 가져와야 겠다. 봄꽃으로 물든 호텔앞 남산을 거닐기 위해서다. 봄꽃 만발한 남산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신바람이 난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잘 알려진 묘비 문구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의 외침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봄날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8
- 기고- 한미 FTA협상이 2006년 2월 개시 선언되고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수차례 협상이 진행됐다. 이제 긴 협상도 일단락되고 싫던 좋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동안 온 국민의 머릿속에 한미 FTA는 가장 크고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을까한다. 한미 FTA 협상은 각 분야별로는 지금보다 더 유리해지기도 하고 불리해지기도 한다.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한 것을 보면 약간씩 우위가 교차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각각의 협상별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부각되고 이것에 대하여 사안별로 충분하게 논의되고 검토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구조의 고도화를 위하여 지식기반 서비스의 육성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우리산업에 접목시켜야 한다. 한미FTA는 이러한 국내경제 여건과 세계경제의 변화와 지역주의, 세계화 추세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의 선택으로 보인다. 저작권법, FTA 충격완화 기대 이번 협상에서 저작권 관련 중심사항을 보면 기술적 보호조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제한 문제, 저작권 보호기간 문제, 일시적 저장의 복제 포섭여부 등 중요쟁점사항이 논의됐다. 이러한 사항은 이제 더 이상 우리와 거리감이 있고 낯설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12월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통과된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파일공유 사이트 운영자가 권리자의 요청을 받을 경우 저작물의 불법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영리· 상습적인 침해행위에 대해 친고죄의 일부폐지로 변경했고,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불법복제물의 수거· 폐기· 삭제 권한을 부여한 것 등 선진국에서 저작권보호를 위해 문제되었던 사항에 대한 해법을 담고 있다. 동 법은 6월 29일 발효되며, 이로 인해 적어도 지적재산권 분야에 한정해서는 한미FTA의 충격이 완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는 저작권법에 근거해 허락받지 않고 무단으로 음원을 사용하는 사업자를 유료화로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FTA로 대변할 수 있는 세계화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제기구인 디덱스 (DDEX)에 가입하여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고, 한 걸음 나아가 이들을 리드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가정, 기업,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싱가로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우리의 문화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비보이(B-boy)’가 그것이다. 비보이 문화가 들어온 이래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세계무대를 향한 꾸준한 도전과 경쟁으로 이제는 세계 비보이계의 흐름을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 한미FTA도 이런 방향으로 가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보다 먼저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를 보자. 싱가포르와 미국간 FTA는 2004년 1월 발효됐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아시아 첫 협정국이 됐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후 경제가 더 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양국의 교역량이 증가하고 미국의 직접투자가 지식집약, 창조산업인 제약, 소프트웨어, 영화, 게임산업 분야에서 증가하였고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개혁이 가속화되었다. 미국과 FTA를 통해 싱가포르는 기업 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향상돼 동남아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싱가포르의 경우를 타산지석의 지혜로 삼아야 한다. 개방을 통해 신규 시장을 창출하고 기존의 시장은 더욱 확대하고 투자가 부족한 산업은 투자를 촉진하고, 기술이 부족한 산업은 기술을 촉진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한미가 FTA를 통하여 개방했다고 경제적 성과가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미 FTA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국민적인 합의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것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노력하여 괄목할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한미FTA에서 실보다는 득을 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경제는 대내 구조조정과 발전전략을 통하여 저성장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7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밀레니엄 서울힐튼 홍보부 곽용덕 과장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난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때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었다. 12살 시골 소년의 눈에 비친 교과서에서만 보던 서울의 모습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한창 건설중인 63빌딩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였고 인천 맥아더 공원의 동상앞에서 비둘기 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당시 숙박을 남산 기슭의 허름한 여관에서 했었는데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던 남산타워의 아름다운 모습 또한 적지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분명히 추억으로 남아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에 와본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이 매력적인 도시의 그 모든 것들을 매일매일 즐길 수 있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로 정말로 부럽기만 했다. 얼마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했었는데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서울로 청계천을 구경하고 돌아오셨단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아, 청계천 좋더라! 너는 서울에 사니까 자주 가봤지? 부럽다, 부러워!!’ 라고 하신다. 순간 정신이 멍~했다. 청계천이라!! 그래 청계천이 있었지…. 출퇴근 길에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그 청계천을 부모님께서는 일부러 하루 시간을 내어 서울로 구경을 오셨다는 사실에 그저 내 주변에 대가없이 주어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내가 그렇게 후회스럽고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갖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공간에 유배되어 있다면 단조롭게 느껴졌던 서울의 일상에서 과연 어떤것들을 가장 절실하게 그리워할까? 개인마다 그 대답이 틀려지겠지만 ‘남산걷기, 북한산 등반, 청계천 산책, 한강둔치 산책, 내가 하고있는 일에 더욱 몰두해 보는 것, 연락이 끊겼던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하기..’ 등이 아닐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도 있는 듯 한데..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런것들이다. 따지고보면 돈이 많이드는 일도 아니고 또 커다란 결심을 해야 실천에 옮길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 당장 작은 결심만 하면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내일 출근길에는 운동화 한켤레를 회사로 가져와야 겠다. 봄꽃으로 물든 호텔앞 남산을 거닐기 위해서다. 봄꽃 만발한 남산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신바람이 난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856-1950)의 잘 알려진 묘비 문구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의 외침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봄날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7
- <신문로>‘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 ‘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 정 태 석 (광주은행장) 세상에서 가장 이자가 높은 은행은 어떤 은행일까?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 그것은 ‘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이다. 그에 반해 이율이 가장 낮은 것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그냥 쌓아두는 것으로, 언젠가 만기가 되어 엄청난 액수로 불어나 자신에게 청구될 뿐이다. 어쩌면 넌센스같이 들리는 이 말은, 유명작가인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그의 저서에서 남긴 것으로, 인생에서 도전은 하면 할수록 유리하고 도전하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삶은 살아있기 때문에 변화해야 하고 도전해야 한다. 처음 도전할 때, 우리는 용기를 갖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완벽에의 충동을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두 번째 도전은 첫 번째 도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 도전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마치 운전면허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딴 후 초보운전을 하는 동안 도로 한 가운데에서 엔진시동을 꺼뜨리기도 하고, 잘못된 차선으로 가는 바람에 10분이면 도착할 곳을 2배나 걸려서 도착하는 것과 같은 크고 작은 실수들이다. 첫 도전에서는 용기 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초보 시절이 지나가면,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된다. 전방을 주시하면서 전진만 하던 초보시절과는 다르게,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며 출퇴근만 하던 때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등 일상생활에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 의미가 다르다. 첫 번째 도전이 용기를 갖고 일을 시작하는 실행과 실천이 필요하다면, 두 번째 도전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둘러보고 분석하고, 성공을 향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처음 시작하는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한 다음에는 반드시 최선이라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활동이 가정에서 조직에서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으며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끝없이 도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요즘처럼 바쁜 세상 속에서는 도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처음부터 포기하기도 하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하게 시작만 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두 번째 도전을 맞이하기 힘들다. 일단 실행과 실천으로 시작했으면, 최선이라는 노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고(知難不難), 어려움이 닥쳐도 이기고 나아가며(迎難而上), 어려운 줄 알고도 뛰어들어(知難而進), 절대 도피하지 않고(永不退縮),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不言失敗)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에서는 실패를 겪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 실패는 겪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를 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가에 대한 고찰과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을 배워야 한다. 두번째 도전, 최선의 노력 중요 두 번째 도전을 훌륭하게 이루어낸 사람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민속 화가인 애너 메리 로버트슨이 있다. 그가 처음 붓을 잡고 그림을 시작한 것은 78세로, 시골 아낙네이자 다섯 아이의 엄마로 거의 인생을 정리할 시점이었다.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한 그는, 오른손의 관절염으로 그림 그리기가 어려워지자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요양원에서는 의사의 청진기를 훔친 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으면 청진기를 돌려주지 않겠다”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꽃피워 나이의 장벽, 세월의 장벽마저 초월했다. “삶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는 로버트슨의 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끝없는 도전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우리 삶의 두 번째 도전을 당당히 시작하기를 바란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3-26
- <신문로 칼럼>''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정태석 2007.03.26) ''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 광주은행장 정태석 세상에서 가장 이자가 높은 은행은 어떤 은행일까?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 그것은 ''도전''이라는 이름의 은행이다. 그에 반해 이율이 가장 낮은 것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그냥 쌓아두는 것으로, 언젠가 만기가 되어 엄청난 액수로 불어나 자신에게 청구될 뿐이다. 어쩌면 넌센스같이 들리는 이 말은, 유명작가인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그의 저서에서 남긴 것으로, 인생에서 도전은 하면 할수록 유리하고 도전하는 것이 성공하는 인생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삶은 살아있기 때문에 변화해야 하고 도전해야 한다. 처음 도전할 때, 우리는 용기를 갖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완벽에의 충동을 갖고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두 번째 도전은 첫 번째 도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 도전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마치 운전면허 시험을 치루고, 면허를 딴 후 초보운전을 하는 동안 도로 한 가운데에서 엔진시동을 꺼뜨리기도 하고, 잘못된 차선으로 가는 바람에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배나 걸려서 도착하는 것과 같은 크고 작은 실수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초보 시절이 지나가면,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된다. 전방을 주시하면서 전진만 하던 초보시절과는 다르게,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며 출퇴근만 하던 때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등 일상생활에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도전이다. 첫번째와 두 번째는 그 의미가 다르다. 첫번째 도전이 용기를 갖고 일을 시작하는 실행과 실천이 필요하다면, 두 번째 도전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둘러보고 분석하고, 성공을 향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처음 시작하는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한 다음에는 반드시 최선이라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고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활동이 가정에서 조직에서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으며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끝없이 도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요즘처럼 바쁜 세상 속에서는 도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처음부터 포기하기도 하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하게 시작만 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두 번째 도전을 맞이하기 힘들다. 일단 실행과 실천으로 시작했으면, 최선이라는 노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고(知難不難), 어려움이 닥쳐도 이기고 나아가며(迎難而上), 어려운 줄 알고도 뛰어들어(知難而進), 절대 도피하지 않고(永不退縮),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不言失敗)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에서는 실패를 겪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 실패는 겪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를 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는가에 대한 고찰과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을 배워야 한다. 두 번째 도전을 훌륭하게 이루어낸 사람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민속 화가인 애너 메리 로버트슨이 있다. 그가 처음 붓을 잡고 그림을 시작한 것은 78세로, 시골 아낙네이자 다섯 아이의 엄마로 거의 인생을 정리할 시점이었다.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한 그는, 오른손의 관절염으로 그림 그리기 어려워지자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요양원에서는 의사의 청진기를 훔친 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으면 청진기를 돌려주지 않겠다"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꽃피워 나이의 장벽, 세월의 장벽마저 초월했다. “삶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는 로버트슨의 말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끝없는 도전과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우리 삶의 두 번째 도전을 당당히 시작하기를 바란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3-26
- <김영호 칼럼>구심점 없는 통합신당 논의(2007.03.07) 구심점 없는 통합신당 논의 김 영 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정당정치란 정당의 정강-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 집권당과 반대당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지지기반의 이익을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는 정치체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지형은 반대당의 독주와 집권당의 소멸로 표현된다. 대선가도의 선두권에는 한나라당 주자끼리 각축을 벌이고 그 후미에는 뚜렷한 주자가 없다. 열린우리당이 자구책으로 통합신당을 논의하나 미궁에 빠진 상태다. 이런 형국에 국민의 반쪽은 정치적 지향점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이다. 비주류출신 ‘노무현의 대통령’ 탄생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탄핵구출’ 또한 같다. 국민들은 다시 4-13 총선에서 급조정당 열린우리당에게 과반수의 의석을 몰아줬다. 이런 정치적 사건마다 그 뒤에는 이 나라의 온갖 모순을 교정해달라는 국민적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그것을 너무나 쉽게 등지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이 청와대의 덫에 걸려 입만 열지 귀는 열지 않은 채 말이다. 그 실망과 좌절이 여러 차례 재-보선에서 분노로 표출되었다. 열린우리당은 영패의 연속을 맛봐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집권세력의 연이은 실책이 한나라당에게 바친 반사이득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번번이 선거결과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로 민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5-31 지방선거는 열린우리당에게 산사태 같은 참패를 안겨줬다. 정치적 탄핵이란 해석이 가능했다. 그들은 잠시 기겁하는 표정을 짓는가 했더니 빠른 복원력을 갖고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흠집투성이 수구적 인사들을 너무 많이 중용했다. 요직에 포진한 ‘386’들이 민심을 거역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쏟아지는 숱한 말이 국민을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첫 손가락을 꼽을 만한 말이 한나라당한테 권력을 통째로 넘겨 줄 수 있다는 느닷없는 연정론이었다.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불쑥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는다고 야단이다. 그것도 반대의견을 매도하면서 말이다. 대선국면이 달아오르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맴돌며 탈출구를 모른다. 급기야 열린우리당에서 ‘실용’과 ‘쇄신’을 말하던 세력과 ‘개혁’과 ‘변화’를 말하던 세력이 나눠 탈당을 결행했다. 국민이 만들어준 제1당이 제2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대통령이 탈당했으니 집권당도 아니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우리에 갇혔는지 대선주자들의 지지율도 저점에 얼어붙어 뜨기를 마다한다. 정치생명을 재촉하는 시각은 멈출 줄 모르는데 말이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을 논의한다고 하나 세월만 허송하는 느낌이다. 이대로 가면 또 다른 탈당사태가 이어질 듯싶다. 그런데 통합신당 논의구조를 보면 현실적 긴박감이 보이지 않는다. 6월까지 통합신당을 만들어서 국민경선제를 추진한다니 말이다. 6월이면 대선국면은 중반전에 돌입한다. 잠재적 지지자들이 그 때까지 한가하게 열린우리당의 재창당이나 바라보리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을 말하면서 중도개혁과 평화개혁을 표방하고 나섰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그 실체가 사학법 재개정과 출자총액제한제 완화를 둘러싸고 드러났다.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의 대체적인 정책방향은 진보를 가장한 보수이다. 정체성은 위기로 치닫고 실정은 거듭되는데 반성을 모르니 지지세력이 이탈할 수밖에…. 진보의 가치가 훼손된 데 따른 실망의 표시다. 열린우리당이 시민운동가나 덕망가 몇 사람을 영입한다고 국민적 지지를 되찾으리라고 믿는다면 오판이다. 민주당과 합당하면 호남지역에서 세력규합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면 정권창출은 고사하고 국회의원 당선도 어렵다. 당명이나 바꾸고 간판을 새로 포장한다고 통합신당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니다.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제3지대에서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정당 창건에 나서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살길은 버릴 사람은 버리고 신당작업을 주도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지도력과 정치력을 발휘하는 인사가 나온다면 그가 대통령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 제3의 주자도 입지를 구축해줘야 영입이 가능하다. 국민의 절반은 개혁과 변화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갈구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열린우리당이 그 구심점에 나서길 바란다. 시간은 열린우리당의 편이 아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3-07
- <중국여행 가이드>따리(대리), 시안(서안), 이엔안(연안) 따리(大理) : 어촌의 아침 백족(白族) 자치주의 인민정부 소재지이며 경치가 아름다운 창산(蒼山) 아래에 따리시가 자리잡고 있다. 따리는 전미엔, 전장 고속도로가 교차되는 곳이며 전시의 교통 중심지이다. 따리는 나라에서 지정한 대외 개방도시이며 또한 국가가 처음으로 비준한 24대 역사문화 도시의 하나이자 44개 명승구역의 하나이다. 따리는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간직한 옛 도시다. 당나라 시기의 남 소국(邵國)과 송나라 시기의 따리국은 모두 따리를 수도로 정했으며 따리에 유구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가 있는 풍부한 문물 고적을 남겨 놓았다. 따리는 앞으로는 이해를 굽어보고 뒤로는 창산(蒼山)을 끼고 있다. 서로 교차된 바둑판 모양의 거리와 웅장한 남북 성루는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으며 성루에 새겨진 ‘문헌명방(文獻名邦)’이라는 네글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옛날 따리의 동서남북에는 모두 성문이 있고 위로는 성루가 있었으나 후에 훼손되었다. 성안의 민가는 돌벽과 중국식 푸른 기와로 지었고 창문마다 용과 봉황을 그려놓아 예스럽고 소박하다. 따리의 맑은 샘물은 시내 골목골목을 흘러 ‘집집마다 물이 흐르고, 꽃을 키운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도시 서북쪽의 숭성사(崇聖寺) 삼탐(三塔)과 도시 서남쪽의 홍성일탑(弘聖一塔), 강산(巷山) 아래의 원세조평운남비(元世祖平雲南碑)와 매년 열리는 삼월가(三月街), 이 모두가 따리의 정취를 돋보이게 한다. 시안(西安) : 병마용의 신비 시안은 중화민족의 발상지이며, 인류문명의 기원을 이루며 최고수준의 선사시대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고대에는 창안(長安)이라고 불리었고, 섬서성의 정치, 경제,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이며, 창안(長安) 등 5개현을 관할하고 있다. 황허(黃河)유역 관중(關中)평원의 중부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친링(秦嶺)산맥과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웨이허(渭河)와 인접해 있다. 시안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옛 도시이다. 역사상 서주, 진, 서한, 신망, 동한, 서진, 전조, 후진, 서위, 북주, 수, 당 등 13개 왕조가 모두 시안을 수도로 정했다. 또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시안에서 일어났다. 서한 말기의 츠메이(赤眉)군, 당나라 말기의 황소(黃巢)군,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농민봉기군이 짧은 기간 시안에 정권을 세웠다. 또한 근대사의 유명한 ‘시안사변’도 여기에서 일어났다. 이로 인해 시안에는 모두 314개의 주요문물 보호지역이 있으며, 그 중 국가급과 성급만 84개에 달한다. 시안에서 출토된 문물은 무려 12만여 개에 달하는데 희귀한 국보가 꽤 많다. 비림(碑林), 대소 이엔타(雁塔), 종로우(鍾樓), 반파의 유적(半坡遺址), 명나라 성벽(明城牆) 등이 있으며 한성, 당성, 아방궁, 장락궁, 대명궁 등 고대 유적 및 화청지, 진시황 병마용(兵馬俑坑) 등이 있다. 혁명 근거지로는 팔로군 옛터가 있다. 또한 시안은 중국 북방 중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공업기지이자 가장 큰 상업 중심지이고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이엔안(延安) : 장정군의 유적지 이엔안은 섬서성 북부의 황토고원 중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황하에 이어져 있고 산서성과 인접하며, 서쪽은 감숙성과 인접해 있다. 이엔안은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역사 고적으로는 국무원에서 공포한 전국 주요 보호지역인 헌원 황제릉과 국가급 주요문물 보호지역인 자장종산석굴(子長鍾山石窟) 등이 있다. 자연경치로는 이엔안 황하호구폭포(黃河壺口瀑布), 전국에서 가장 큰 야생 목단꽃 군락과 화목란의 고향인 만화산(萬花山) 등이 있다. 또한 이엔안은 혁명성지로서 중국 현대사에서 주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 현존하는 옛 혁명 거주지가 무려 14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 마오쩌둥의 옛 거주지를 비롯,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팔로군 총지휘부 소재지인 왕가평(王稼坪),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옛터인 봉황산(鳳凰山), 보탑산, 대추원, 양가령 등이 유명하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