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10년차 설계사들이 전하는 보험 트렌드 문패:10년차 설계사들이 전하는 보험 트렌드 제목:“보험시장, 10년 전과 전혀 달라요”(그래프) 부제: 가입목적 ‘질병보장’에서 ‘노후대비’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보험시장도 지난 10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고객들과 만나는 설계사들 눈에 비친 보험시장의 변화는 한층 생동감이 넘친다. 대한생명은 1월 5일부터 2주일간 10년 경력을 지닌 자사 보험설계사(FP) 512명에게 ‘IMF 10년, 보험의 변화상’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21일 공개했다. 보험가입 목적, 영업방식, 설계사 성공조건 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보험시장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조사에서 설계사들은 “1997년 이전에는 보험가입의 목적이 질병과 재해보장 등 단순한 보장설계였지만 이제는 노후대비가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3.5%가 2007년 보험가입 목적은 ‘노후대비’라고 꼽았다. 97년에는 ‘질병보장’이 51.3%를 차지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당시에는 노후대비 목적은 0.9%에 불과했다. 대한생명은 “소득증가와 삶의 질 향상 등으로 노년기 생활을 대비하는 풍조가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목적이 바뀐 만큼 고객들의 선호상품에도 변화가 있다. 97년에는 질병보장상품 46.5%, 재해보장보험이 39.1% 등의 순으로 인기였지만, 2007년에는 종신·CI(치명적 질병) 보험이 76.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설계사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도 시대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7년에는 두터운 인맥(59.5%)이 성공의 열쇠였다면, 현재에는 금융전문지식(57.5%)이 인맥을 대체했다. 설계사들이 활용하는 판촉물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97년에는 주방, 가전제품을 활용하는 경우가 62.9%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지만 현재는 교양잡지, 공연장 초대 등 문화서비스가 60.3%를 차지했다. 설계사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도 과거에는 보험아줌마(82.2%)였지만 이제는 재정설계사(44.2), 고소득전문직(37.7%) 등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22
- <내일시론>탈북자 1만명 시대, 대비는 있는가(임춘웅 2007.02.21) 탈북자 1만명 시대, 대비는 있는가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새터민) 수가 드디어 1만명을 넘어섰다. 탈북자는 북한에 식량난이 극심했던 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후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해 2002년에 100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019명에 이르렀다. 탈북자 2만명을 넘어서는데도 앞으로 5년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예상이다. 중국에 떠돌고 있는 탈북난민 10여만명은 여건만 되면 언제든 국내로 들어올 사람들이다. 이제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 당국은 탈북자 문제는 관계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남북문제와도 연관돼 있어 공개적으로 떠벌릴 수 없는 일이라며 조용한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문은 충분히 대처하고 있지만 밖으로 떠들 수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별 대책도 없이 조용한 대처라는 커튼 뒤에 숨어 우물우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를 일이다. 법적, 제도적, 사회적 준비 모두 불충분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탈북자 대책은 지극히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탈북입국자 수가 늘어 수용시설이 태부족해지자 사회적응 훈련기간을 6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시켜 출소 시키고, 정착금 사기가 늘자 정착금을 분할 지급해 사기 피해를 줄여 보자는 게 그나마 눈에 띄는 대책이 아닌가 한다. 인원이 늘면 시설을 늘리고 교육인원을 확충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현실은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 새터민에 대한 사후관리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시설의 한계만이 아니라 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원의 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물론 이런 현실은 예산부족이라는 문제에 귀결되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탈북문제대해 법적, 제도적, 사회적 기초가 안돼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예산부족의 문제 이전에 예산이 부족하게 된 우리사회의 탈북자문제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잘못돼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경우 1949년 분단이후 통독시까지 400여만명의 동독 난민을 받아들였다. 이런 말이 나오면 으레 나오는 반응이 독일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국력이 독일만 못하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지만 독일은 우리보다 못 할 때도 동독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1만명의 탈북자문제에서 예산 타령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80년대 후반 동독 주민들이 대량으로 체코와 헝가리로 빠져 나왔을 때 서독정부는 적극적으로 외교교섭을 벌여 이들을 서독으로 인도했었다. 서독은 조용한 외교를 하지 않았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 테오 좀머씨는 서독이 동독 주민들을 받아들일 때 서독에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면서 “민족 동질성 차원에서 남한은 탈북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이어 한국의 능력으로 탈북자 5만명 정도를 수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면서 통일을 원한다면 짐도 질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탈북자, 대북지원 차원서 접근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유럽방문길에서 대북 마샬플랜론을 폈었다. 북핵문제가 실마리를 찾게 되면서 대북지원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탈북자 문제도 대북지원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탈북자 지원체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데에는 우리민족의 잘못된 속성과 편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차별을 받아 문제가 되고 있다. 도와주어야 마땅한 일인데 우리사회는 약자인 그들을 오히려 차별하고 있다. 탈북자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면서 탈북자에 대한 차별을 피해 조선족 행세를 한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몽골에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를 화냥년취급을 했고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전쟁위안부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대도 반세기란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 하는 것은 야만이다. 이제 탈북문제는 조용한 대처로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5만이 아니라 10만, 100만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임춘웅 객원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20
- 박유하 교수 기고 요코이야기와 우리안의 가해성 2007년 정초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요코이야기’의 저자가 드디어 답변을 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자가 ‘가해자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그러나 그런 요구는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요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정책에 따랐다가 경험하게 된 국민들의 ‘수난’의 이야기이고 그 수난은 다름아닌 국가가 일으킨 전쟁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하나의 소설이 말할 수 있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다. 당시,수난의 주체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여성과 아이들이었다.쫓겨 내려가던 일본인들의 안전을 위해 여성들은 소련군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해야 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염병과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먼저 죽어간 것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아수라장 속의 피난열차에서는 열차 밖으로 버려진 죽은 아기를 쫓아 몸을 던진 엄마도 있었고 이들은 곳곳에서 집단으로 구덩이에 파묻혀졌다. 젊은 여자들은 호시탐탐 노리는 남자들을 피해 얼굴에 숯을 칠하고 머리를 밀어야 했는데 그 험한 수난의 길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어떻겐가 일본에 당도한 이후도, 아이들과 여자들에게는 고국은 아직 안식의 땅은 아니었다. 소련군과 조선인남성들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들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끔찍한 중절수술의 고통을 견뎌야 했고 제국주의의 상흔으로 남을 아이들의 존재를 불편해한 국가의 무의식이 시키는대로 죽어간 태아들은 지금도 일본 어딘가에 잠들고 있다.그리고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던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한 채 일본사회의 차가운 냉대 속에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上坪隆『水子の譜 ドキュメント引き上げ孤児と女たち』). 해방 후 60년이,결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세월이었던 것은 꼭 위안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그리고 피해자이면서도 ‘가해국의 일원’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위안부의 고통이 알려진 이후에도 자신들의 수난을 호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수난은 제국주의지배 일익을 담당한 결과이기는 하다.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가해국 안의 피해자의 고통은 누가 말해야 하는 것일까. 식민지 시대,만주와 조선은 엘리트지배계층뿐 아니라 본토 일본에서 기근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진 가난한 농민들과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이 흘러 들러간 곳이기도 했다. 국가가 권유하는 대로 ‘개척’이라는 꿈을 안고 새 삶을 찾아 만주를 찾아 떠났다고 한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들이 꾼 꿈이 자신의 행위가 남의 땅을 빼앗는 일이라는 사실에 무감각했던 허황한 꿈이었다고 해도 그 꿈을 꾼 죄는 결코 그들 자신만의 것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전쟁의 죄값은 결국 국민들이 치르게 마련이어서 원폭과 무차별 공습 이외에도만주에 있던 일본인들은 소련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몇 년씩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만주에서 일하던 저자의 아버지가 시베리아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런 상황 속의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피난길을 도와준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수난이 우리와 무관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보는 일은 우리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에 ‘강제징용’된 노무자들이 일본 땅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한다면 조선 땅 어딘가에 국가가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가 되고만 일본인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중요하다.그들의 죽음이 우리와 무관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창설 되지 않은 인민군’에 대한 언급도 비난의 대상이지만 앞서의 자료는 당시 ‘가짜 민병대’가 있었다는 증언도 하고 있다.이런 부분은 역사가들이 밝혀야 할 일이지만,이번 사태의 문제는 보통소설이라면 문제시되지 않았을 부분조차도 ‘의도적 왜곡’으로 간주된 데에 있다.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가시 돋힌 불신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우리는 좀 더 아는 일이 필요하다. 소모적인 규탄만이 계속되는 한 전쟁과 폭력의 복합적인 구조를 보는 일은 언제까지고 요원할 뿐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19
- 기고 디스플레이 산업의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며 디스플레이(Display)는 다양한 정보를 인간이 볼 수 있도록 화면으로 구현해 주는 영상표시 장치로 정보통신 시대의 핵심부품이며, ‘산업의 창’ 또는 ‘산업의 눈’으로 불린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디스플레이 장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사실 디스플레이는 20세기까지 TV, 모니터 등에 그 이름이 묻혀 있었으나, 21세기 들어서 TV, 모니터, 핸드폰 등의 제품 앞에 LCD, PDP, OLED와 같은 디스플레이 장치명을 사용하여 그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을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디스플레이는 21세기 정보화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의 하나이다. 하지만 지난 한해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은 환율하락,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적 여건이 악화되고, 신규투자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 패널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의 하락, 경영실적 부진 등의 여파로 근래 들어 가장 어려운 한해를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의 침체는 겨우 1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경기변동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어느 산업이건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드시 존재한다. 관건은 불경기를 슬기롭게 대처해서 불황의 정도를 얼마나 최소화 하고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의 성적에만 집착하여 조바심을 내고 자신감을 잃어간다면 이것이 작년 한해의 어려움보다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 산자부 주관으로 디스플레이 업계 CEO들이 만나 상생협력 협약식을 갖고 디스플레이 장비?부품소재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다짐하였으며, 정부에서도 기존의 R&D지원을 ''전략기술개발사업''으로 통합하여 핵심 원천기술과 중소기업 지원 등 취약분야의 R&D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되는 바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대규모 투자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장치산업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전후방 연관 산업의 공동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기업간 협력, 즉 상생(相生)이다. 각 패널 대기업은 회사 사정에 맞춰 지속적인 투자를 계획해야 할 것이고, 장비?부품소재 업체는 그 분야의 핵심이 되는 원천기술 확보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초에 패널 대기업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장비?부품소재 기업에 대한 투자 계획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점 또한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에서도 그간의 R&D 사업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혼재되고 산업의 특성이 아니라 복잡 다양한 사업별 특성에 맞추어 기술개발을 추진해 온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R&D 지원을 ''응용개발 위주의 선진국 추격형''에서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선도형''으로 재편하여 추진할 예정이다. 사실 그간 디스플레이 패널사업이 세계 1위를 달리면서도 항상 장비와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낮아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향후 디스플레이 산업은 장비와 부품소재의 핵심 원천기술 확보가 경쟁력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략적인 R&D사업 개편과 더불어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더해진다면 2007년이 디스플레이 패널뿐 아니라 장비?부품소재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여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패널 대기업과 장비?부품소재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설립을 통해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1위를 유지하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석태 한국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 회장 (주)케이씨텍 대표이사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15
- (기고)디스플레이 산업의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며 디스플레이(Display)는 다양한 정보를 인간이 볼 수 있도록 화면으로 구현해 주는 영상표시 장치로 정보통신 시대의 핵심부품이며, ‘산업의 창’ 또는 ‘산업의 눈’으로 불린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디스플레이 장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사실 디스플레이는 20세기까지 TV, 모니터 등에 그 이름이 묻혀 있었으나, 21세기 들어서 TV, 모니터, 핸드폰 등의 제품 앞에 LCD, PDP, OLED와 같은 디스플레이 장치명을 사용하여 그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을 알려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디스플레이는 21세기 정보화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의 하나이다. 하지만 지난 한해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은 환율하락,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적 여건이 악화되고, 신규투자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 패널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의 하락, 경영실적 부진 등의 여파로 근래 들어 가장 어려운 한해를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의 침체는 겨우 1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경기변동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어느 산업이건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드시 존재한다. 관건은 불경기를 슬기롭게 대처해서 불황의 정도를 얼마나 최소화 하고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의 성적에만 집착하여 조바심을 내고 자신감을 잃어간다면 이것이 작년 한해의 어려움보다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 산자부 주관으로 디스플레이 업계 CEO들이 만나 상생협력 협약식을 갖고 디스플레이 장비?부품소재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다짐하였으며, 정부에서도 기존의 R&D지원을 ''전략기술개발사업''으로 통합하여 핵심 원천기술과 중소기업 지원 등 취약분야의 R&D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되는 바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대규모 투자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장치산업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전후방 연관 산업의 공동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기업간 협력, 즉 상생(相生)이다. 각 패널 대기업은 회사 사정에 맞춰 지속적인 투자를 계획해야 할 것이고, 장비?부품소재 업체는 그 분야의 핵심이 되는 원천기술 확보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초에 패널 대기업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장비?부품소재 기업에 대한 투자 계획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점 또한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에서도 그간의 R&D 사업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혼재되고 산업의 특성이 아니라 복잡 다양한 사업별 특성에 맞추어 기술개발을 추진해 온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R&D 지원을 ''응용개발 위주의 선진국 추격형''에서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선도형''으로 재편하여 추진할 예정이다. 사실 그간 디스플레이 패널사업이 세계 1위를 달리면서도 항상 장비와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낮아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향후 디스플레이 산업은 장비와 부품소재의 핵심 원천기술 확보가 경쟁력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략적인 R&D사업 개편과 더불어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더해진다면 2007년이 디스플레이 패널뿐 아니라 장비?부품소재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여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패널 대기업과 장비?부품소재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설립을 통해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1위를 유지하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석태 한국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 회장 (주)케이씨텍 대표이사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15
- <이기송박사의 영화경제> 이기적 본능의 승화 ‘캐스트 어웨이’ KB국민은행연구소 / 경제학박사 연구위원 이 기 송 인간이 무인도에 가장 원초적인 상태로 홀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 공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심리적 변화과정을 겪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다. 이 영화는 ‘로빈슨 크루소’의 정통성을 그대로 재현한 본격 ‘무인도 생존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인 척 놀란드(톰 행크스 분)는 좌우명이 ‘우리의 주인은 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일(우편물 특급배달 서비스업체의 매니저)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애인 켈리(헬렌 헌트 분)에게 선물을 주며 ‘곧 돌아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뜻하지 않은 기상악화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락하게 된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무인도에 홀로 남겨져 선택의 여지없이 원시인이 된다.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무인도생활에서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켈리의 사진이 들어있는 시계와 자신의 피로 얼굴을 그려넣은 윌슨(Wilson) 배구공이 전부이다. 그는 무인도에서 4년여의 세월을 버텨낸 후 탈출하기로 결심,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튼튼한 뗏목을 만든다. 그리고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 바다 한가운데에서 힘겹게 구조된다. 하지만 무인도에서의 힘든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애인 켈리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 이 영화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기적 본능(selfish instinct)’과 이를 이타적으로 승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이기적(利己的)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 원동력은 이기심(self-interest)에 있다고 설파하였다. 물론 그는 인간의 이타적인 면도 지적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은 총체적으로 보면 이기적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동력은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기적 본능이 이타적 본능보다 우위를 점한다고 보았으며, 이 이기적 본능을 주어진 그대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맞고, 따라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인간이 오직 이기적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이기적 본능이 친절성, 박애심, 희생정신 같은 것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인간 심성의 근원적 측면에만 의존해서 사회를 맡기고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하겠다. 이는 ‘인간의 본능 중 가장 강한 본능인 이기심을 어떻게 하면 사회전체의 이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러한 이기적 본능을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도록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법경제학(Law & Economics)』이다. 인간 본성의 적절한 승화를 통해 보다 정의로운 사회와 효율적인 경제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법경제학의 근본적인 존립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4년여의 무인도 생활을 견뎌내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켈리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현실사회로 돌아왔을 때 켈리는 더 이상 주인공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자신을 지탱시켜 주었던 켈리와 몇차례에 걸친 만남을 갖게 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구걸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둘다 행복해 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법경제학의 테두리 내에서 상대방에게 이익(행복)을 주는 방향으로 자신의 이기적 본능을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주인공은 현실사회에서 켈리의 과거사랑을 되찾는데 연연하기 보다는 그녀의 현재 사랑이 영속되기를 바란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법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주인공의 이기적 본능은 켈리의 행복을 위해 이타적으로 승화됨으로써 그녀의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09
- <밥일꿈>나의 꿈, 그리고 社報(유유희 2007.01.19) 나의 꿈, 그리고 社報 - 대한생명 홍보실 유유희 대리 - "유희야 니 꿈이 무엇이니?"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던 꼬맹이 유희는 "난 대통령이 될꺼야" 라며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꼬맹이 유희가 대학을 막 졸업할 시점에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유희야 니 꿈은 무엇이니?" "내가 전공한 분야를 살려 기업체 홍보실에서 근무하고 싶은데..." 세월의 무게와 현실을 알아버린 꼬맹이 유희의 꿈은 대통령에서 이렇게 아주 작으마한 것으로 바뀌었고, 어머니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대통령, 과학자,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 연예인 등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잊은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은 꿈과 목표라도 자신의 현실에 맞게 재설정을 하고, 그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란 꿈은 못 이루었지만, 꿈꾸어 왔던 ''홍보맨'' 이라는 작은 꿈을 이루었다. 하고 싶은 일이기에 하루하루가 신바람 나고 자랑스럽다. 대한생명 홍보실과 인연을 맺은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내와 예쁜 딸까지 얻었다.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서,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책임감이 커졌다. 나는 대한생명 전 직원들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사보''를 만드는 크나큰 임무를 가지고 있다. 본사와 전국 방방곡곡에 분포되어 있는 지점과 영업소에서 굵은 땀방을 흘리고 있는 대한생명 가족들을 매월 취재하며, 그들의 사진과 기사를 자료로 남기고 있는 것이 내 임무인 것이다. ''업무''보다는 ''임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내가 하는 일이 대한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매월 대한생명 직원들의 땀냄새로 꾸며지는 사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생명 사보가 2007년 2월에 300호를 맞이하게 된다. 82년부터 창간되어 지금까지 매월 발행되어 왔던 것이다. ''2007년''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누구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최고의 2007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2007년 나에게 다시 한번 꿈과 목표를 묻는 기회가 생긴다면 난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대한생명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부심으로 사보 한권 한권을 만들어 가겠습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9
- <박영규 칼럼>문화 유산 보존과 복원(2007.02.07) 문화 유산 보존과 복원 서울 시내 곳곳에는 옛 도성(都城)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 중 세월의 향기를 풍기며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도 있다. 남산이나 인왕산, 북악, 신라호텔 뒤 등 민가가 인접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너진 채 방치된 곳도 있고 아예 사라져 자취를 감춘 곳도 적잖다. 대체로 시가지 구간이 그렇다. 훼손이 심한 곳은 숭례문에서 상공회의소 옆을 지나 서소문과 정동을 거쳐 사직터널 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중간에 드문드문 흔적이 엿보이지만 학교나 공관의 담장이나 주택의 축대로 남아있는 게 고작이다. 이 구간의 서소문과 돈의문(서대문)은 아예 정확한 자리마저 가늠할 길 조차 없다. 근래 30여 년 전부터 복원된 구간도 있다. 북악, 인왕, 낙산 구간에서 볼 수 있는데 9.7km를 넘는다. 전체 성곽 길이가 18.1km정도이니 절반을 넘는 규모다. 그런데 말끔히 복원한 곳이 오히려 생뚱맞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옛 자취대로 남아 있는 서울의 도성은 대체로 숙종 때 것이지만 태조와 세종때 축조한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도성의 축조기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태조가 처음 18km 남짓의 도성을 쌓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49일이다. 토목 건축공사를 후딱 해치우는 오늘날의 명성이 새삼스러운 건 아닌 모양이다. 이 공사를 위해 전국에서 동원된 인력은 12만 명 정도, 함경도에서 전라,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각도에서 차출한 백성들이다. 따라서 공사는 농한기인 정월과 이월을 택했다. 양력으로 치면 2월과 3월인 셈이니 아직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 때다. 이런 추운 계절에 12만 명의 인부를 어디서 재우고 먹이고 어떻게 통솔했는지 연구 과제다. 도성의 축조 구간은 97구간으로 나누었는데 실명제를 채택해 축조물 부분에 책임자의 이름을 남기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 공사를 대충 대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리라.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 아니었음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건국 초기에 왕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해 여름에 호우로 상당부분이 훼손되자 태조는 가을걷이가 끝난 후 다시 8만 명을 동원해 토성구간 일부를 돌로 바꾸고 4대문 중 일부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 세종 조에 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여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키도 높였다. 이때 전국에서 동원된 백성은 32만여 명, 공사기간은 38일이었다. 임진왜란 후인 숙종 조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보수가 이뤄졌다. 이때는 단기간이 아닌 5년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됐다. 성곽을 쌓은 돌도 지금의 형태대로 일정 규격의 장방형으로 다듬어 수축했다. 도성은 원래 외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구실을 제대로 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왕이 도성을 버리고 몽진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도성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없어진 부분까지 굳이 새롭게 복원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일이다. 허물어진 부분은 추려서 보존하되 굳이 새로 쌓을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옛 자취대로 남아야 그 역사적 향기가 더 묻어난다. 일제 때 도시계획 등으로 망가진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복원은 짝퉁일 뿐이다. 문화재에 있어 세월의 때는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무너진 자취를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하는 게 오히려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처럼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야 문화재적 가치가 더하다. 만약에 없어진 돈의문을 기존의 대로 한복판에 복원해 놓는다고 문화재적 향기가 피어날까? 볼썽만 사나워진다.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로 복원할 여력이 있다면 남은 부분을 더 잘 관리하고 관광자원 화하는 데 보다 힘 쓸 일이다. 도성에 얽힌 사연이나 그 건축사적 의미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홍보물을 더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보고 느끼게 하는 게 현명하다. 차라리 새로 짓는 공공건물이나 기념물에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접합해 후세에 남기는 것이 진정한 전통의 보전이 아니겠는가? 문화재란 인간의 삶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문화적 유산이다. 전통적 양식을 살리면서 현재의 삶에 맞는 문화적 유산을 후세에 남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07
- <신문로 칼럼>긴급조치 대법원 판사들의 참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배규식 2007.02.06) 긴급조치 대법원 판사들의 참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배규식(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의 과거 사회지도층에는 참으로 몹쓸 짓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으로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학살의 주범이면서도 인답지 못하게 그 책임을 현장 지휘관에게 돌렸는가 하면 대통령 재임 중 불법으로 상납받은 자금을 어떻게 하고는 재산이 29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뻔뻔스런 말을 한 일이 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불거졌을 때에도 당시 핵심 정책결정자들은 모두 발뺌을 했다. 저자거리의 필부들이야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 규모나 질이 뻔할 뿐 아니라 대개 법으로 처벌받고 주변 사람들로 버림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음으로써 벌을 받아 왔다. 그러나 과거 우리 사회의 일부 지도층들은 정말로 몹쓸 짓을 하고도 제대로 처벌받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1970년대 말 긴급조치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번 긴급조치 판결 판사명단 공개를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체육관선거에 의한 요식행위로 대통령을 뽑는 유신헌법을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도록 긴급조치로 묶어 놓았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는 사람들은 유신헌법은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평범한 진실을 용기있게 부르짖거나 술집에서 술김에 떠들어도 붙잡혀서 징역형을 선고받던 시절이었다. 막걸리 반공법 위반자가 속출하던 때였다. 당시 젊은 배석판사 역할을 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이번 긴급조치 판결 판사 명단을 보면서 당시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들은 한두 번도 아니고 대법원에 상고한 인혁당 사건, 수많은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 매우 무거운 선고를 내렸다. 인혁당 관련자들은 사형을 당했고 다른 긴급조치 관련자들은 무거운 선고를 받고 오랜 세월 징역을 살아야 했다.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은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존엄성을 마지막까지 부둥켜안고 가야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유린당한 법을 최종적으로 옹호하였으며,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판결로 많은 학생들과 인사들을 처벌하는데 앞장섰다. 이번 명단 공개 후 언론에 보도된 것은 당시 긴급조치 아래에서 판사직을 버려가면서 양심적으로 판결한 분들의 조심스런 목소리였다. 이 분들은 당시판결을 하면서도 고민한 판사들이 많았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인혁당 재심판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당시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은 ‘사법살인’을 하고도 누구도 참회하거나 반성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범죄적이거나 욕먹을 판결을 하고도 숨어 있으면, 지나간 일이니까 덮어두자고 할텐가? 우리의 역사는 긴급조치 시절 사법부 오욕을 써내려간 당시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의 판결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적 지도자 혹은 사회지도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범죄, 헌법 파괴행위, 법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는 단호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과거의 범죄나 몹씁 짓을 은폐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사위원회의 이번 긴급조치 판결문과 판사명단 공개가 당시 초년 판사들로서 부득이 1 - 2건의 긴급조치에 배석판사로 참여했던 분들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초점은 긴급조치의 모든 상고사건에서 무거운 판결을 내린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의 오욕의 판결행위에 대해 온전히 드러내는 데 모아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대법원장이나 대법원 판사들의 몹쓸 행위를 욕보이기보다 이들이 스스로 잘못한 점을 솔직하고 겸허하게 반성하고 참회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로부터 용서받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이 과거사위원회가 긴급조치 판결 판사들의 판결문과 명단을 공개하는 주요한 이유라고 나는 믿고 싶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05
- 겨울철 바닷가 별미를 찾아서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겨울바다만큼 정취가 있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환상적인 해안 풍경을 즐긴 뒤 겨울철 별미를 즐기는 것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는 ‘2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새조개로 유명한 충남 홍성, 곰치국의 강원 삼척, 포항 구룡포 과메기, 여수 별미여행 등 4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쫄깃쫄깃한 ‘조개의 명품’ = 홍성은 겨울별미여행으로 제격인 곳이다. 홍성 남당리 포구가 대표적인 어촌 관광지역이다. 새조개는 조개껍질 안의 육질이 새의 부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조개는 약간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조갯살이 다른 조개처럼 퍽퍽하지 않고 쫄깃쫄깃해 ‘조개의 명품’이라고 불릴 정도다. 새조개 요리로는 샤브샤브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야채국물에 조개를 데쳐 먹은 후 칼국수나 라면을 끓여먹는 방식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3일부터 3월 4일까지 열리는 새조개 장터는 새조개 요리 축제, 해변마라톤 대회, 새조개 캐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광천읍에 있는 광천시장은 200-300미터 토굴에서 발효시킨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하다. 갈산면 옹기마을은 5대째 전통옹기 제조를 고집하고 있는 곳이다. 직접 전통옹기를 만들면 집으로 배달해주기도 한다. 영화 ‘조폭마누라’를 촬영했던 곳으로 눈에 익기도 하다. 매현리에 있는 3만평 규모의 ‘그림이 있는 정원’도 홍성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총 133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연 수목과 아름다운 연못, 암석도 볼 수 있어 자연미를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시설 이외에도 카페테리아 ‘메이’, 미술관 ‘더 갤러리’ 등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 및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도 적당하다. 문의 : 홍성군청 문화관광과 041-630-1224 ◆뱃사람 해장국의 으뜸 = 삼척은 50개가 넘는 동굴이 발견된 ‘동굴의 도시’다. 유일하게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환선굴은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로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약 5억3000만년 전에 생성된 신비롭고 경이로운 동굴 내부는 긴 세월동안 자연이 빚어낸 별천지이다. 곰치는 길이가 1m 가까이 될 정도로 대형 어족이다. 주로 얕은 바다의 암초지대에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으며, 육식성으로 모든 종류의 어류나 무척추동물을 잘 먹는다. 성질이 사납고 대담하며, 이빨이 날카로워서 잠수부들이 물리기도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그물에 곰치가 걸리면 살이 흐물흐물하고 모양이 징그러워 그냥 내다 버렸다. 이때 물속에 빠질때 소리가 ‘텀벙텀벙’ 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긴 모양과는 달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아 귀하신 몸으로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살이 무른 곰치 몇 토막에 잘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푹 끓여낸 곰치국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과 입안에서 살살 녹는 살점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뱃사람들에게 해장국 중 으뜸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서 ‘물곰은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했다. 곰치는 얼리면 살이 풀어져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서 삼척, 동해 지역에서만 곰치국을 맛볼 수 있다. 문의 : 삼척시청 관광개발과 033-570-3845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숙성시킨 생선회 = ‘숙성시킨 생선회’라 할만한 과메기가 어느 해부터인가 겨울철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6년전까지만 해도 과메기는 향토음식에 불과했다. 싱싱한 생선회도 아니고 비릿한 냄새와 맛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과메기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포장마차나 선술집은 물론이고 고급 일식집에서도 기본 안주로 등장할 정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메기란 물고기가 따로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지만 청어 양도 부족하고 기름기가 많다보니 대안으로 꽁치가 애용되기 시작했다. 이 꽁치도 국내산이 아니고 대부분 원양산이다. 겨울철 국내산 꽁치는 살이 실하지 않아 원양산을 사용해 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싱싱하지 않지만 과메기도 엄연히 ‘생선회’다. 과메기가 되기 위해선 3~4일간 겨울 해풍을 맞으며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반복해야 제맛이 난다. 포항시내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진 925번 해안도로가 ‘과메기 벨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메기 생산의 최적지다. 과메기 덕장으론 구룡포가 으뜸이라면 과메기 음식점으로는 포항 죽도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시장, 대구의 서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함께 전국 5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로 꼽히는 죽도시장에는 과거 임금님 진상품이기도 했던 겨울철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포항까지 가서 과메기 말고도 물회와 피데기는 반드시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이다. 포항 겨울 해풍을 맞은 덜 말린 오징어인 피데기도 포항의 별미로 죽도시장 등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문의 : 포항시 문화공보관광과 054-270-2243 ◆겨울철 먹거리 넘치는 여수 = 남도의 맛은 다채롭기로 소문나 있다. 그중에서도 한려수도 여수의 대표 별미인 금품생이구이, 서대회, 붕장어요리는 제철에 먹지 않을 경우 후회만 남는다. 우선 이름부터 약간 생소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나는 ‘금풍생이’는 다른 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여수지방의 특산품이다.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물고기라서 뼈가 억세지만 뼈와 가시에 붙어 있는 속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있다. 금풍생이는 딱돔의 일종으로 구이 요리가 일반적이다. 이 생선은 여수의 아낙들이 남편에게는 구워주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애인에게만 내놓는다고 해서 ‘샛서방고기’라고 한다. 별칭에 남도의 감칠맛 나는 구수한 향이 묻어 있어서 더욱 구미를 당긴다. 내장은 물론 머리까지 아삭하게 씹어 먹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고 한다. 서대회는생긴 것은 가자미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길쭉한 편이다. 서대회는 서대의 부드러운 살코기와 막걸리 식초, 설탕의 새콤달콤함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밥 한 그릇은 그 자리에서 뚝딱이다. 다음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여수의 자랑거리인 붕장어요리이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뼈와 내장을 넣어 고아낸 장어탕이 침을 흘리게 한다. 최근에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관광객과 낚시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백야도이다. 2005년 4월에 백야대교가 설치되어 차량운행이 가능해졌으며, 여수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통해서도 섬까지 들어갈 수 있다. 문의 : 여수시청 관광문화과 061-690-2036 /오승완 기자 osw@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