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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_메인 2월 여행은 바닷가 별미를 찾아서 관광공사 추천‘2월의 가볼만한 곳’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겨울바다만큼 정취가 있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환상적인 해안 풍경을 즐긴 뒤 겨울철 제철 별미를 즐기는 것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는 ‘2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새조개로 유명한 충남 홍성, 곰치국의 강원 삼척, 포항 구룡포 과메기, 여수 별미여행 등 4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쫄깃쫄깃한 ‘조개의 명품’ = 홍성은 겨울별미여행으로 제격인 곳이다. 홍성읍 남당리 포구가 대표적인 어촌 관광지역이다. 새조개는 조개껍질 안의 육질이 새의 부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조개는 약간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조갯살이 다른 조개처럼 퍽퍽하지 않고 쫄깃쫄깃하여 과연 ‘조개의 명품’ 이라 할만 하다. 새조개 요리로는 샤브샤브가 가장 많이 알려진 방식이다.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야채국물에 조개를 데쳐 먹은 후 칼국수나 라면을 끓어먹는 방식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3일부터 3월 4일까지 열리는 새조개 장터는 새조개 요리 축제, 맛보기 체험, 해변마라톤 대회, 새조개 캐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광천읍에 있는 광천시장은 200-300미터 토굴에서 발효시킨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하다. 갈산면 옹기마을은 5대째 전통옹기 제조를 고집하고 있는 곳이다. 직접 전통옹기를 만들면 집으로 배달해주기도 한다. 영화 ''조폭마누라‘를 촬영했던 곳으로 눈에 익기도 하다. 매현리에 있는 ‘그림이 있는 정원’이라는 3만평 정도의 아름다운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총 1330여종의 식물을 보유한 수목원이다. 자연 수목과 아름다운 연못과 암석도 볼 수 있어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미를 느낄 수 있다. 수목원 시설 이외에도 카페테리아 ‘메이’, 미술관 ‘더 갤러리’ 등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가족 및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도 적당하다. 홍성군청 문화관광과 : 041-630-1224 ◆뱃사람 해장국의 으뜸 ‘곰치국’ = 삼척은 50개가 넘는 동굴이 발견된 ‘동굴의 도시’다. 유일하게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환선굴은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로 천연기념물 17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약 5억 3천만년 전에 생성된 신비롭고 경이로운 동굴 내부는 긴긴 세월동안 자연이 빚어낸 별천지이다. 곰치는 길이가 1m 가까이 될 정도로 대형 어족이다. 주로 얕은 바다의 암초지대에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으며, 육식성으로 모든 종류의 어류나 무척추동물을 잘 먹는다. 성질이 사납고 대담하며, 이빨이 날카로워서 잠수부들이 물리는 수도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그물에 곰치가 걸리면 살이 흐물흐물하고 모양이 징그러워 그냥 내다 버렸다. 이때 물속에 빠질때 소리가 ‘텀벙텀벙’ 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긴 모양과는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아 귀하신 몸으로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살이 무른 곰치 몇 토막에 잘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푹 끓여낸 곰치국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과 입안에서 살살 녹는 살점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뱃사람들에게 해장국 중 으뜸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서 ‘물곰은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했다. 곰치는 얼리면 살이 풀어져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서 삼척, 동해 지역에서만 곰치국을 맛볼 수 있다. 문이 : 삼척시청 관광개발과 033-570-3845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숙성시킨 생선회 ‘숙성시킨 생선회’라 할만한 과메기가 어느 해부터인가 겨울철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6년전까지만 해도 과메기는 향토음식에 불과했다. 싱싱한 생선회도 아니고 비릿한 냄새와 맛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과메기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포장마차나 선술집은 물론이고 고급 일식집에서도 기본 안주로 등장할 정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호남지역에서 홍어가 위세를 펼치고 있다면, 영남지역에는 과메기가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싱싱하지 않지만 과메기도 ‘생선회’다. 과메기가 되기 위해선 3~4일긴 겨울 해풍을 맞으며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반복해야 제맛이 난다. 포항시내에서 호미곶까지 925번 해안도로가 ‘과메기 벨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메기 생산의 최적지다. 과메기란 용어 때문인지 이런 물고기가 따로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으나 과메기란 ‘숙성된 꽁치회’에 다름 아니다. 물론 60년대만 하더라도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어 양도 부족하고 기름기가 많다보니 대안으로 꽁치가 애용되기 시작했다. 이 꽁치도 국내산이 아니고 대부분 원양산이다. 겨울철 국내산 꽁치는 살이 실하지 않아 원양산을 사용해 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과메기 덕장으론 구룡포가 으뜸이라면 과메기 음식점으로는 포항시내 죽도시장과 근처 과메기 요리 전문식당들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시장, 대구의 서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함께 전국 5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로 꼽히는 죽도시장에는 과거 임금님 진상품이기도 했던 겨울철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포항까지 가서 과메기 말고도 물회와 피데기는 반드시 먹고 가야 하는 음식이다. 포항 겨울 해풍을 맞은 덜 말린 오징어인 피데기도 포항의 별미로 죽도시장 등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문의 : 포항시 문화공보관광과 054-270-2243 ◆겨울철 먹거리 넘치는 여수 = 남도의 맛은 다채롭기로 소문나 있다. 그중에서도 한려수도 여수의 대표 별미인 금품생이구이, 서대회, 붕장어요리는 제철에 먹지 않을 경우 후회만 남겨준다. 우선 이름부터 약간 생소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나는 ‘금풍생이’는 다른 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여수지방의 특산품이다.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물고기라서 뼈가 억세지만 뼈와 가시에 붙어 있는 속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있다. 금풍생이는 딱돔의 일종으로 구이 요리가 일반적이다. 이 생선은 여수의 아낙들이 남편에게는 구워주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애인에게만 내놓는다고 해서 ‘샛서방고기’라고 한다. 별칭에 남도의 감칠맛 나는 구수한 향이 묻어 있어서 더욱 구미를 당기는데, 내장은 물론 머리까지 아삭하게 씹어 먹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고 한다. 대는 생긴 것은 가자미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길쭉한 편으로,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서대회는 서대의 부드러운 살코기와 막걸리 식초, 설탕의 새콤달콤함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밥 한 그릇은 그 자리에서 뚝딱이다. 다음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여수의 자랑거리인 붕장어는 소금유이와 양념구이, 장어뼈와 내장을 넣어 고아낸 장어탕이 침을 흘리게 한다. 최근에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관광객과 낚시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백야도이다. 2005년 4월에 백야대교가 설치되어 차량운행이 가능해졌으며, 여수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통해서도 섬까지 들어갈 수 있다. 문의 : 여수시청 관광문화과 061-690-2036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31
- 옛사람이 쓰던 친숙한 그 말 입에 익은 우리 익은 말 - 글쓰기에 좋은 말글 사전 김준영 도서출판 학고재 1만5000원 옛사람이 쓰던 친숙한 그 말 대감 친구, 산삼 재상…. 언뜻 낯설고 귀에 설지만 곰곰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와 닿는다. 대감(이) 친구(라고 허세 부리는 이)와 산삼(으로) 재상(자리를 산 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사내 보쌈 당했다, 샛서방이 강짜한다, 벼락불에 볶은 콩 팔아먹듯 한다…. 모두가 고사성어다. 흔히 고사성어라 하면 중국의 옛 사람이 한 말이나 중국의 역사상 사건 또는 중국 문헌에 기록된 설화에서 이루어진 말 등 ‘중국’만 떠올린다. 우리 선인들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또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고사성어는 익은 말이다. 입에 익고 귀에 익은 친숙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고사성어는 멀게만 느껴진다. 국어학자 김준영(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은 “학자들이 같은 말이라도 우리말로 표현하면 사상성이 없는 하찮은 말로 여기고 한자어로 표현하면 뜻이 깊은 말처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그래서 우리 것은 “문헌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김준영이 그 ‘문헌’ 만들기에 도전했다. 오랜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익숙해진 말들을 정리해 ‘토종 말글 사전’을 펴냈다. 익은말 358가지를 정리하기까지 30여년이 걸렸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며 “익은 말들을 십분 활용해 풍부한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익은말은 생생하면서 박자와 가락이 있다. 저자의 조언대로 말맛이 살아있는 글쓰기에 좋은 재료다. 더불어 익은말에는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이 되는 설화나 역사적 사건이 따른다. 때로는 우습기 그지없고 때로는 조금 서글프기도 한 배경 이야기들이 있어 책장을 슬슬 넘기기만 해도 술술 읽힌다. 그래도 기억에 박히니 ‘익은말’이라 그렇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5
- 이정민 교수 인터뷰 교정본것 -김명호 전 교수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교수집단의 ‘패거리 문화’가 있다는 극단적 비판도 나오는데, 이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학에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패거리’ 문화가 종종 심각한 문제를 빚고 대학의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 매사 적당히 편하게 넘어 가려는 소수가 패거리를 형성해 다수가 되고, 원칙을 고수하고 잘못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말살한다. 대학당국도 문제가 일어나면 아픔을 참고 신속히 잘못을 시정하기 보다는 감추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성향이 짙다. 또 법은 저울로도 비유되는데 저울질이 잘못되었거나 저울을 아예 치워놓고 판결한 것 같다. 12년이 지난 지금의 성균관대는 임용·재임용 제도가 많이 개선되어 똑같은 잘못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김 전 교수가 판사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1995년 성균관대 입시 수학 문제 오류 지적과 시정 요구에서 출발해 재판 과정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진행을 보면 김 교수가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인으로서 극단적인 방법은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저항’이었다지만 끝까지 피했어야 할 방법이다. 오히려 옳지 않은 일로 인해 억울한 일이 일어나는 데 대한 사회적 방어세력을 구축하는 운동에 온 힘을 바쳤더라면더 긍정적이고 전폭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교수가 학계에 더 이상 의지할 수 없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은데. 학과 교수들은 문제 오류 검토를 외부로 끌고 나가 ‘해교’ 행위를 했다고 상투적인 방법으로 몰아 세웠을 것이지만, 학과 범위에서 도무지 해결이 안 되고 채점위원에서조차 밀려난 상태에서 택하지 말았어야 할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학교도 갈등 초기에는 다소 조정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민감한 입시문제 오류가 걸려 있어 결국 패거리 세력에 동조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 같다. 미국 과학지 사이언스에서도 정의에 대한 대접이 교수직 박탈이냐며 김 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권위있는 수학자들이 지지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수학회나 고등과학원에서는 법원의 감정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전문학자 집단이 참-거짓이 명백한 문제에 대해 ‘참이다 거짓이다’를 가리기를 거부한 것은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그래도 국내 44개 대학에 재직중인 189명이나 되는 수학교수가 시험문제가 오류임을 인정해주었다. 이는 뒤집을 수 없는 큰 힘이다. -김 전 교수의 학자적 자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외부평가에서 ‘내용이 정밀하고 창의적인 면이 많다’면서 최고수준인 ‘수’를 받았다. 재판부도 학과의 ‘우수연구자’ 선정 대상이 되는 SCI 논문을 3편이나 내 만점을 초과하는 점수이므로 ‘논문들을 부적격이라 판정한 것’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사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회도 개인 회원들의 집합체이고, 법인체가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닌 터에, 재판부가 외형적인 권위에만 매달려 증거를 채택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판사는 원래 공판정에서 편파성이나 외부 영향 없이 재판의 진행을 맡는 사회자 역할이다. 그런 가운데 양측의 주장과 입장이 공정하게 드러나야 한다. 배석주심판사가 나중에 변명을 했지만 김 교수는 재판이 공정하지 않았고 느꼈던 것 같다. 사법부는 공판중심주의로 나가겠다며 공판정의 진행 과정을 전부 녹음 녹화하여 위증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김 전교수의 녹음 허용 신청은 거부됐다. 문제의 핵심은 입시문제 오류지적과 시정 요구 그리고 재임용 평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평가에서의 학문적 자질과 교육자적 자질 사이의 관계와 비중 문제이다. 재판부는 그 관계나 비중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도 어떤 판사한테 걸리면 양형이 무겁고 어떤 판사한테 걸리면 가볍다는 평가가 다 나온다고 한다. 가볍게 주는 판사만 ‘자질’이 좋은지 양형이 무거운 판사 또는 사형선고를 해 본 판사는 퇴출시켜야 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재발방지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학사회의 자정 능력이 더 길러져야 한다. 1995년 생각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교수공정 임용을 위한 모임’을 발족시켰다. 많은 부당 사례를 신고 받았고 많은 사례를 해결했다. 이때 언론의 뒷받침이 중요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감사원, 교육부 등의 도움도 컸다. 특히 고등교육법에 타교 출신을 3분의 1 이상 뽑게 하는 조항이 생겨 ‘내 사람’ 심기에 제동이 걸리고 타교 출신도 임용될 수 있게 됐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마음이 바뀌는 데는 세월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김명호 교수 사건도 우리 사례집에 들어 있다. 전형적인 ‘괘씸죄’ 적용의 재임용 탈락으로 분류돼 있다.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어 도울 수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막을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타교 출신 임용 조항을 넣는 법률개정 이후 제보 건수가 줄어드는 등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서 회원 300명의 동의를 받아 ‘교육선진화 운동본부’의 ‘교수공정 임용’ 부서로 활동하기로 했다. -이번 재판에서 이른바 ‘가정교육’이 대학교수의 역할에 해당하는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는데. 대학교수의 역할을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대학교수의 학생교육은 하급학교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이미 성인 취급을 받는 학생을 대상으로 전문지식을 전수하고 지식창출의 씨앗을 심어주되 그 과정에서 교실 접촉, 개별 면담을 통해 학습 또는 연구 내용을 매개로 해서 인격적으로 상호 교류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맺어진 사제 간의 관계가 끈끈하고 지속적이어서 아름다운 면도 있다. 주례까지 부탁한다. 그만큼 학문 선진국보다는 아직도 교수에게 전인간적인 존경과 기대가 크다. 물론 인격적인 지도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 교수나 판사를 성직자 이상의 성직자이기를 바라는 정서가 남아 있다. 대학교수의 역할에서 어두운 면은 학습-연구 부진 학생의 문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중국계 박사과정 학생이 지도교수를 포함해 여러 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학습부담 때문에 명문대에서 자살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유사한 일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평소에 학교, 학부모, 사회가 예방에 힘써야한다. -김 전 교수는 “나는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 좀 다른 것 같다. 질문에 대한 김 전교수의 답은 누군가가 이미 지적했듯이 원고인 자신이 다투는 쟁점을 비켜 피고인 학교 측 쟁점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데 대한 임기응변적인 반발의 답이어서 비중을 둘 이유가 없다. - 학문적 성과 외에 자질까지 교수의 자격으로 본다면 사학재단이 주관적 평가로 교수신분을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요즘 대학가는 부교수까지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추세인데 임용과정에서 재단의 전횡을 방지할 방법이 있는가. ‘교육자적 자질’의 구성요소가 무엇이냐 또 어떻게 다툼이 없이 수긍할 평가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즉 고도로 복잡, 미묘하고도 섬세한 것이라 당사자를 수긍시킬 수 있는 평가는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대학이 강의 과목들을 제대로 소화했다든지, 새로운 교양과목을 개발했다든지, 특별히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좋았다든지 등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방법으로 단순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대학들은 본능적으로 내게 편한 사람, 고분고분하기만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제도를 악용할 것인지, 현명하게 능력 있고 장래성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제도를 활용할 것인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사학법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괘씸죄’로 억울하게 탈락한 교수가 구제될 수 있게 길을 열어주고, 이런 사건의 재 2007-01-30
- 15인의 귀촌·귀농인이 말하는 ‘농촌 성공스토리’ 마을 역사 이해하고 결부시키면 성공확률 높아져 … 현지 정보에 촉각세워야 귀촌·귀농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0년내 꼭 귀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도 상당수 달한다. 하지만 준비없이 무턱대고 농촌으로 이주했다가 낭패보기 싶상이다. 농림부는 성공사례집 ‘내 인생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발간해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책자에 나온 15명의 귀촌인이 말하는 농촌생활 경험을 유형별로 재구성해봤다. 강원 화천 ‘산속호수마을’로 귀촌한 김명웅씨. 김씨가 이곳 산골 벽촌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잘 나간다’는 소믈리에(와인감정사)였다. 그는 제주 신라호텔, 서울 신라호텔, 부산 롯데호텔 등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하지만 김씨는 ‘성적 제일주의’라는 전쟁 같은 교육풍토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2000년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하게 이곳에 정착했다. 전북 고창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진영호 대표도 금호그룹 이사로 재직하던 1992년 귀촌을 감행했다. 진 대표는 당시 그룹 내 동기들 중 최초로 이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길 탄탄대로도, 주변의 만류도 농촌으로 향하는 그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과감한 선택, 철저한 준비 물론 이들이 한순간 감정에 휩싸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이후 정착을 위한 준비도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도시에서 실패했으니 농촌으로 가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편안한 도시에서도 실패하고 어떻게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농촌을 전원생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충남 부여 백제 인동마을 김은환씨는 농촌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도시에서보다 더 큰 각오와 열정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조언했다. 98년 대기업 홍보실 등에서 근무했던 경북 봉화 관북마을 송성일씨는 전에 농사를 지어보거나 구경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농사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아무 고추밭에 들어가서 고추 따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루 일당 2만1000원. 그 일당을 받고 보름 이상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일했다. “농사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보다도 힘들어요. 농사일은 되게 단순하거든요. 허리를 구부린 상태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거죠.” 농사일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을의 주민들에게도 냉담한 시선을 받기 일쑤다. 마침 송씨가 귀농을 했을 때는 IMF 사태가 막 터졌을 때라 ‘저 사람이 지금은 여기서 살지만 떠날 거야’란 생각에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생활 속에서 노인 분들하고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마음을 서서히 열어주시더라구요. 지금은 하다못해 형광등 하나를 갈아도 저한테 부탁하고…” 가족이 가장 든든한 우군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귀촌·귀농 성공을 위한 키포인트다. 경기 화성 창문아트센터 박석윤 대표가 2000년 귀촌을 결심하자 아내는 울면서 결사반대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원래 살던 일산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1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다. 꾸준한 설득 끝에 차츰 아내 역시 박 대표의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두 아들 박건우(고2)·박현우(중1) 군은 방송반, 사물놀이반 등을 통해 농촌학교 재미를 빠져있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94년 전남 보성에서 안착한 웅치관광농원 김규태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적극적인 내조도 있어야 해요.” 김 대표는 79년부터 바로 이곳 제암산 줄기에 있는 땅 2만4000여 평을 구입했다. 당시 구입가는 1000만원. 김 대표는 토·일요일마다 이곳에 내려와 천천히 가꿨다. 부인은 매일 상주했다. 아들 셋도 적극적으로 아버지 일을 도왔다. “우리 식구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모두 즐겁게 헌신했어요. 집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 셋도 아버지 일에 헌신했지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근무하다 충남 부여로 귀촌한 김은환씨는 오랜 시간 아내와 논의했지만 결국 온 가족이 귀촌하는 것은 시일을 두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공주에 있는 아파트에 머물렀고 이후 3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몸이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내에게 자신의 신념과 삶의 철학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아내가 서울여상 출신이어서 은행금리로 재테크를 잘 하고 경제에 대한 눈이 밝았어요. 97년부터 밤과 표고버섯으로 흑자가 나니까 아내 얼굴이 밝아졌지요.”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밤과 표고버섯 등으로 재미를 본 김은환씨는 올해 3월 정부로부터 국유림 15만평을 빌려 밤나무를 심었다. “밤나무 그늘 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많아요. 고사리·취나물·다래순·토란줄기·고구마순·무우청·머위순·인동초·둥글레·까치수염·비비추…” 김씨는 이 작물들을 부여군 공동브랜드 ‘굿뜨레’로 상품화시켰다. 장터를 열어 마을 특산물을 판매한 것은 호응도 좋고 수익도 높았다. 김씨는 또 틈새시장을 고민하다 원추리라는 마을 야생화를 발견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이 먹는 꽃이었다. 동면한 동물은 몸이 굳어 있어서 배설기능이 마비되어 있는데 이 꽃을 먹고 나면 이뇨작용이 촉진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예뻐 조경으로도 좋았다. 덕분에 마을 수익이 급성장했다. 현재 85개 농가가 이 꽃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핀 야생화 덕분에 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 이름도 새로 짓게 되었다. 현대 건설에서 다니다가 10년 전 고향으로 귀촌을 결심했던 나종년씨도 수익모델 창출에 집중했다. “마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과 결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을엔 유명한 고찰인 ‘옥룡사’가 있어요. 이곳 도선국사 설화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득도를 하고 일어서면서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나뭇가지에서 물이 나와 그 물을 드시고 바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바로 ‘고로쇠’입니다." 나씨는 고로쇠로 된장을 만들었는데 임산자원(고로쇠 물), 농산자원(콩), 수산자원(소금)을 제대로 이용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고로쇠 된장은 연 매출이 2억이나 된다. 시골은 노력하면 그만큼 풍성함으로 선물한다. 2000년 SK에서 이사로 퇴직해 경남 하동에서 정착한 영진다원 손영기 대표는 귀촌한 지 7년째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농사가 ‘서툴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한 해 녹차 농사는 3000만원 가까운 수익을 선물한다. 바쁜 수확기에는 동네 분들의 도움을 얻기도 하지만 수확 외의 생산은 전부 부부가 한다.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30
- 오피니언면 인터뷰 -김명호 전 교수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교수집단의 ‘패거리 문화’가 있다는 극단적 비판도 나오는데, 이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학에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패거리’ 문화가 종종 심각한 문제를 빚고 대학의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 매사 적당히 편하게 넘어 가려는 소수가 패거리를 형성해 다수가 되고, 원칙을 고수하고 잘못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말살한다. 대학당국도 문제가 일어나면 아픔을 참고 신속히 잘못을 시정해 떳떳해지기보다 감추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성향이 짙다. 또 법은 저울로도 비유되는데 저울질이 잘못되었거나 저울을 아예 치워놓고 판결한 것 같다. 12년이 지난 지금의 성균관대는 임용·재임용 제도가 많이 개선돼 있어 똑같은 잘못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김 전 교수가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95년 성균관대 입시 수학 문제 오류 지적과 시정 요구에서 출발해 재판 과정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진행을 보면 참기 힘들었겠지만, 지성인으로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택하지 말았어야 한다.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저항’이었다지만 끝까지 피했어야 할 방법이다. 저항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옳지 않은 일로 인해 억울한 일이 일어나는 데 대한 사회적인 방어 세력을 구축하는 승화된 운동에 온 힘을 바쳐 쓰기로 했다면 더욱 더 긍정적이고도 전폭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교수가 학계에 더 이상 의지할 수 없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은데. 학과 교수들은 문제 오류 검토를 외부로 끌고 나가 ‘해교’ 행위를 했다고 상투적인 방법으로 몰아 세웠을 것이고 지만 학과 범위에서 도무지 해결이 안 되고 채점위원에서조차 밀려난 상태에서 택하지 말았어야 할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학교도 갈등 초기에는 다소 조정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민감한 입시문제 오류가 걸려 있어 결국 패거리 세력에 동조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 같다. 미국 과학지 사이언스에서도 정의에 대한 대접이 교수직 박탈이냐 하며 손을 들어주고 거기 권위 수학자가 지지해주었음에도 우리 수학회나 고등과학원에서는 법원의 감정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전문 학자들의 집단이 참-거짓이 명백한 문제에 대해 ‘참이다 거짓이다’를 가리기를 거부한 것은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그래도 국내 44개 대학의 189명이나 되는 수학 교수가 시험문제가 오류임을 인정해주었다. 이는 뒤집을 수 없는 큰 힘이다. -김 전 교수의 학자적 자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외부 평가에서 ‘내용이 정밀하고 창의적인 명이 많다’면서 최고수준인 ‘수’를 받았다. 재판부도 학과의 ‘우수연구자’ 선정 대상이 되는 SCI 논문을 3편이나 내 만점을 초과하는 점수이므로 ‘논문들을 부적격이라 판정한 것’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라 볼 수 없다’고 배척했다. -사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회도 개인 회원들의 집합체이고, 법인체가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닌 터에, 재판부가 외형적인 권위에만 매달려 증거를 채택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판사는 원래 공판정에서 편파성 없게 외부 영향 없이 재판 진행을 맡는 사회자의 역할이 중심이다. 그런 가운데 양측의 주장과 입증이 공정하게 드러나야 한다. 배석주심판사가 나중에 변명을 했지만 김명호 전 교수는 공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느꼈던 것 같다. 사법부는 공판중심주의로 나가겠다며 공판정의 진행 과정을 전부 녹음 녹화하여 위증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김 전교수의 녹음 허용 신청은 거부됐다. 문제의 핵심은 입시문제 오류지적과 시정 요구 그리고 재임용 평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평가에서의 학문적 자질과 교육자적 자질 사이의 관계와 비중 문제이다. 재판부는 그 관계나 비중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도 어떤 판사한테 걸리면 양형이 무겁고 어떤 판사한테 걸리면 가볍다는 평가가 다 나온다고 한다. 가볍게 주는 판사만 ‘자질’이 좋은지 양형이 무거운 판사 또는 사형선고를 해 본 판사는 퇴출시켜야 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재발방지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0년 전 교수공정임용 모임을 주도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단체가 계속 활동을 했다면 김 전 교수 사건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은가. 대학사회의 자정 능력이 더 길러져야 한다. 1995년 생각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교수공정 임용을 위한 모임’을 발족시켰다. 많은 부당 사례들을 신고 받았고 많은 사례를 해결했다. 이때 언론의 뒷받침이 중요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감사원, 교육부 등의 도움도 컸다. 특히 고등교육법에 타교출신 3분의 1 이상을 뽑게 하는 조항이 생겨 ‘내 사람’ 심기에 제동이 걸리고 타교 출신도 임용될 수 있게 됐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마음이 바뀌는 데는 세월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도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김명호 교수 사건도 우리 사례집에 들어 있다. 전형적인 ‘괘씸죄’ 적용의 재임용 탈락으로 분류돼 있다.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어 도울 수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막을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타교 출신 임용 조항을 넣는 법률개정 이후 제보 건수가 줄어드는 등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서 회원 300명의 동의를 받아 ‘교육선진화 운동본부’(전화:2266-8355)의 ‘교수공정 임용’ 부서로 활동하기로 했다. -이번 재판에서 이른바 ‘가정교육’이 대학교수의 역할에 해당하는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는데. 대학교수의 역할을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대학교수의 학생교육은 하급학교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이미 성인 취급을 받는 학생을 대상으로 전문지식을 전수하고 지식창출의 씨앗을 심어주되 그 과정에서 교실 접촉, 개별 면담을 통해 학습 또는 연구 내용을 매개로 해서 인격적으로 상호 교류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맺어진 사제 간의 관계가 끈끈하고 지속적이어서 아름다운 면도 있다. 주례까지 부탁한다. 그만큼 학문 선진국보다는 아직도 교수에게 전인간적인 존경과 기대가 크다. 물론 인격적인 지도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 교수나 판사를 성직자 이상의 성직자이기를 바라는 정서가 남아 있다. 대학교수의 역할에서 어두운 면은 학습-연구 부진 학생의 문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중국계 박사과정 학생이 지도교수를 포함해 여러 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학습부담 때문에 명문대에서 자살하는 학생들도 생긴다. 유사한 일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평소에 학교, 학부모, 사회가 예방에 힘써야한다. -김 전 교수는 “나는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 좀 다른 것 같다. 질문에 대한 김 전교수의 답은 누군가가 이미 지적했듯이 원고인 자신이 다투는 쟁점을 비켜 피고인 학교 측 쟁점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데 대한 임기응변적인 반발의 답이어서 비중을 둘 이유가 없다. - 학문적 성과 외에 자질까지 교수의 자격으로 본다면 재단이 주관적 평가로 교수신분을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요즘 대학가는 부교수까지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추세인데 임용과정에서 재단의 전횡을 방지할 방법이 있는가. ‘교육자적 자질’의 구성요소가 무엇이냐 또 어떻게 다툼이 없이 수긍할 평가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즉 고도로 복잡, 미묘하고도 섬세한 것이라 당사자를 수긍시킬 수 있는 평가는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대학이 강의 과목들을 제대로 소화했다든지, 새로운 교양과목을 개발했다든지, 특별히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좋았다든지 등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방법으로 단순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대학들은 본능적으로 내게 편한 사람, 고분고분하기만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제도를 악용할 것인지, 현명하게 능력 있고 장래성 2007-01-30
- 15인의 귀촌 귀농인의 ''농촌에서 성공하기'' 과감한 결정, 정착을 위한 치밀한 준비 강원 화천 ‘산속호수마을’로 귀촌한 김명웅씨. 김씨가 이곳 산골 벽촌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잘 나간다’는 소믈리에(와인감정사)였다. 그는 제주 신라호텔, 서울 신라호텔, 부산 롯데호텔 등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하지만 김씨는 ‘성적 제일주의’라는 전쟁 같은 교육풍토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2000년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하게 이곳에 정착했다. 전북 고창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진영호 대표도 금호그룹 이사로 재직하던 1992년 귀촌을 감행했다. 진 대표는 당시 그룹 내 동기들 중 최초로 이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길 탄탄대로도, 주변의 만류도 농촌으로 향하는 그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과감한 선택, 철저한 준비 물론 이들이 한순간 감정에 휩싸여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이후 정착을 위한 준비도 구체적이고 치밀했다. “도시에서 실패했으니 농촌으로 가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편안한 도시에서도 실패하고 어떻게 농촌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농촌을 전원생활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충남 부여 백제 인동마을 김은환씨는 농촌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도시에서보다 더 큰 각오와 열정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조언했다. 98년 대기업 홍보실 등에서 근무했던 경북 봉화 관북마을 송성일씨는 전에 농사를 지어보거나 구경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농사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아무 고추밭에 들어가서 고추 따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루 일당 2만1000원. 그 일당을 받고 보름 이상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일했다. “농사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보다도 힘들어요. 농사일은 되게 단순하거든요? 허리를 구부린 상태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거죠.” 농사일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을의 주민들에게도 냉담한 시선을 받기 일쑤다. 마침 송씨가 귀농을 했을 때는 IMF 사태가 막 터졌을 때라 ‘저 사람이 지금은 여기서 살지만 금방 떠날 거야’란 생각에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생활 속에서 노인 분들하고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마음을 서서히 열어주시더라구요. 지금은 하다못해 형광등 하나를 갈아도 저한테 부탁하고…” 가족이 가장 든든한 우군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귀촌·귀농 성공을 위한 키포인트다. 경기 화성 창문아트센터 박석윤 대표가 2000년 귀촌을 결심하자 아내는 울면서 결사반대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원래 살던 일산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1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다. 꾸준한 설득 끝에 차츰 아내 역시 박 대표의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두 아들 박건우(고2)·박현우(중1) 군은 방송반, 사물놀이반 등을 통해 농촌학교 재미를 빠져있다.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94년 전남 보성에서 안착한 웅치관광농원 김규태 대표는 도시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적극적인 내조도 있어야 해요.” 김 대표는 79년부터 바로 이곳 제암산 줄기에 있는 땅 2만4000여 평을 구입했다. 당시 구입가는 1000만원. 김 대표는 토·일요일마다 이곳에 내려와 천천히 가꿨다. 부인은 매일 상주했다. 아들 셋도 적극적으로 아버지 일을 도왔다. “우리 식구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모두 즐겁게 헌신했어요. 집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 셋도 아버지 일에 헌신했지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근무하다 충남 부여로 귀촌한 김은환씨는 오랜 시간 아내와 논의했지만 결국 온 가족이 귀촌하는 것은 시일을 두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공주에 있는 아파트에 머물렀고 이후 3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몸이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내에게 자신의 신념과 삶의 철학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아내가 서울여상 출신이어서 은행금리로 재테크를 잘 하고 경제에 대한 눈이 밝았어요. 97년부터 밤과 표고버섯으로 흑자가 나니까 아내 얼굴이 밝아졌지요.”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밤과 표고버섯 등으로 재미를 본 김은환씨는 올해 3월 정부로부터 국유림 15만평을 빌려 밤나무를 심었다. “밤나무 그늘 밑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많아요. 고사리·취나물·다래순·토란줄기·고구마순·무우청·머위순·인동초·둥글레·까치수염·비비추…” 김씨는 이 작물들을 부여군 공동브랜드 ‘굿뜨레’로 상품화시켰다. 장터를 열어 마을 특산물을 판매한 것은 호응도 좋고 수익도 높았다. 김씨는 또 틈새시장을 고민하다 원추리라는 마을 야생화를 발견했다. 긴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이 먹는 꽃이었다. 동면한 동물은 몸이 굳어 있어서 배설기능이 마비되어 있는데 이 꽃을 먹고 나면 이뇨작용이 촉진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예뻐 조경으로도 좋았다. 덕분에 마을 수익이 급성장했다. 현재 85개 농가가 이 꽃을 재배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핀 야생화 덕분에 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마을 이름도 새로 짓게 되었다. 현대 건설에서 다니다가 10년 전 고향으로 귀촌을 결심했던 나종년씨도 수익모델 창출에 집중했다. “마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과 결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을엔 유명한 고찰인 ‘옥룡사’가 있어요. 이곳 도선국사 설화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득도를 하고 일어서면서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나뭇가지에서 물이 나와 그 물을 드시고 바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바로 ‘고로쇠’입니다." 나씨는 고로쇠로 된장을 만들었는데 임산자원(고로쇠 물), 농산자원(콩), 수산자원(소금)을 제대로 이용한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고로쇠 된장은 연 매출이 2억이나 된다.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30
- 한강철책 제거 전 생태계 보전대책을 윤 순 영 사)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강철책 제거 전 생태계 보전대책을 최근 국방부와 김포시, 고양시는 올림픽대로 종점 김포시 고촌면 전호리에서 걸포동까지 10.6km, 일산방향 행주대교에서 일산대교까지 12.9km 등 총 23.5km의 철책을 제거한다는 데 합의했다. 반세기를 넘는 분단의 흔적을 지우고 남북한 평화 정착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데서 국방부와 김포시, 고양시의 조치에 뜻을 함께 한다. 하지만 한강하구 철책이 제거되기도 전부터 나오는 김포시와 고양시의 한강하구 개발계획에 심히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김포시는 김포 신도시 개발과 함께 한강하구를 체육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또한 고양시는 장항습지 일대의 철책선이 제거되면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강하구 생태계 파괴 안된다 우리는 1980년대 파주에서 서울을 잇는 자유로가 건설되면서 한강하구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된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1000여 마리 넘게 한강하구를 찾았던 ‘재두루미’는 자유로 건설 이후 대부분 일본의 이즈미로 둥지를 옮겼고, 한강하구에 재두루미가 다시 찾아오기까지는 15여년의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다. 한강하구의 철책이 아무런 보완조치 없이 제거된다면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 4종, 멸종위기 야생동물 22종 등 수십종의 야생동물이 서식·도래하는 한강하구 생태계는 영원히 파괴되고 말 것이다. 분단시대의 상징인 철책이 해당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경제권 및 생활권을 제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철책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원시생태계가 조성됐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강하구는 인간과 함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다. 또한 원시상태를 유지한 한강하구는 도시화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연의 선물’을 간직한 도심 속 허파요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무한의 생명적 가치가 깃든 곳이다. 환경부는 2006년 4월 이후 한강하구 일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에는 장항습지, 산남습지, 시암리습지 등 대규모 습지가 포함되었고, 저어새의 서식지인 김포시 유도도 포함되었다. 이 가운데 일부지역은 람사습지 등록을 추진하는 등 장기적으로 DMZ와 연계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강하구 지역 고촌면 신곡수중보에서 하성면 전류리까지는 재두루미의 먹이터이자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 지정 과정에서 제외돼 심각한 훼손 우려를 안고 있다. 한강시민공원과는 차원이 다른 곳 이 지역의 철책이 제거될 경우 급격한 개발압력이 밀려들게 되고, 이로 인해 김포시 고촌면에서 전류리에 이르는 한강하구의 생태계 훼손은 물론 재두루미의 잠자리인 장항습지와 김포시 홍도평야 먹이터의 생태계 교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강하구 습지는 일본의 쿠시로 및 이즈미, 홍콩의 마이포 습지와 견줄만한 자연자산이다.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태계가 유린된 한강시민공원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이러한 자연자산에 대한 보호계획 없이 우선 철책부터 제거하자는 인간 편의적 계획이 수립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30
- <중국여행 가이드>중국망 추천 여행지 10선 강남지방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곽(물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10대 수곽이 있다. 아래에 강남 10대 수곽의 애칭과 특징을 소개한다. ◆안창 : 소흥의 민속마을 안창은 본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으나 수곽의 여행 열풍이 일어난 이후, 그 열기에 몸살을 앓은 마을 중 하나이다. 안창은 문화 명성지인 소흥에 인접한 마을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청대의 지방 관서 장관의 고문이 살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절강성 소흥 소재. ◆광푸 : 향설해매화의 고향 지금의 광푸는 골목 곳곳마다 교각과 정자가 있던 옛 강남 수곽의 오래된 마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천년의 역사가 남긴 자취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광푸에 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마을의 장관이라 할 수 있는 등위산 구릉지대의 매화를 보러 간다. 매화 관광은 강남 수곽지역의 공통된 풍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강소성 소주 소재. ◆주쟈쟈오 : 현대 도시 사이의 옛 마을 주쟈쟈오(주가각)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대가 고풍스런 정취로 물씬 풍기는 곳이었으나 거친 경제의 물결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이곳은 상하이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 여행하기에 편하다. 상하이 같이 큰 도시 주변에 이처럼 오래된 수곽이 존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상하이 인근 소재. ◆무두 : 오나라 문화의 화수분(보물단지) 오나라 왕은 전설적인 미인 서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로인 ‘고소대’를 건설했다. 건설 당시 다량의 목재가 사용되었는데 그 목재는 물살을 따라 산 아래 강 하류로 연이어 쌓이며 긴 수로를 형성했다. 무두(목독)라는 지명이 여기에 기인한다. 250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강소성 소주 소재. ◆남쉔 : 가장 풍요로운 마을 남쉔은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한갓 작은 마을이 아니다. 이곳은 근대역사상 보기 드물게 부유한 마을 중 하나로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교각조차도 당당하며 화려한 모습이 다른 곳들과 사뭇 다르다. 이곳이 어떻게 이런 부유함을 누릴 수 있었을까? 남쉔에는 ‘도처가 나무이며, 집집마다 누에가 있고, 가정마다 비단을 짠다’는 말이 있듯 농경시대의 풍요가 부유함으로 이어졌다. 절강성 호주 소재. ◆뤼즈 : 고상한 소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지명을 발음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강남에서는 비교적 작은 수곽이지만, 그렇다고 뤼즈는 근처 ‘조우주앙’의 간섭을 받을 일도 ‘남쉔’의 눈치를 볼일도 없는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있다. 그저 강물따라 세월따라 조용히 계절을 맞으면 되었다. 얌전하고 내향적인 소녀같은 인상의 마을. 강소성 소주 소재. ◆우젼 : 문화가 숨쉬는 마을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모순(矛盾)’이 유명한만큼 우젼의 명성도 그에 못지않다. 역사상 이 작은 마을에서 64명의 진사와 161명의 거자(명청시대 과거 시험의 하나인 향시에 합격한 사람)를 배출하였으며 모순의 고사와 션저민 등의 명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절강성 가흥 소재. ◆통리 : 원시림과 강의 조화 기자는 영화에서 처음 이곳을 보고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와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베니스보다 오래된 수곽도시인 이곳은 유명한 청대의 거대한 원림인 ‘퇴사원’을 보유하고 있다. 퇴사원은 15줄기의 작은 강으로 분할된다. 통리는 49개의 작은 교각들을 지닌,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곳이다. 강소성 소주 소재. ◆시탕 : 꿈속의 수곽 시탕이 생겨난 지 겨우 600년이 흘렀으니, 강남 수곽들 중에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명청대 건축물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이곳의 가치는 다른 수각과 남다르다. 이곳에 오면 시와 그림이 저절로 떠오르고 세상사가 문득 이상향의 선경으로 느껴지리라. 강소성 가선 소재. ◆조우주앙 : 중국 제일의 수곽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수곽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이곳이다. 조우주앙을 좋아했던 화가 천이페이가 그린 ‘고향의 다리’라는 그림도 상당히 유명하다. 너무 유명하다보니 이곳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하루 만 명도 넘는다. 조우주앙이 이 모습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런지, 그것이 걱정이다. 강소성 소주 소재.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29
- “정권교체가 이 시대 최고 개혁” “개헌논의·남북정상회담 반대 … 수구좌파 외 모든 분 동참 기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26일 오전 10시 당사에서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민생경제회담’을 제안하면서도 최근 정치행보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강 대표는 “민생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대통령과 만나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도 “(노 대통령은) 정치놀음에서 손떼고 민생과 대선의 공정한 관리에 전념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강 대표는 또 노 대통령에게 △개헌논의 중단 △남북정상회담 반대 △‘관리내각’ ‘민생내각’ 구성 △‘바다이야기’와 JU 사건 철저한 수사 △민족자존심 지킬 것 등 5가지를 요구했다. 강 대표는 개헌과 관련, 차기 정권에서 국회가 주도해 국민 뜻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으며, 남북정상회담은 정권연장에 악용되거나 자칫 북핵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강 대표는 또 국무총리를 비롯한 여당 인사와 대선자금을 불법 수수한 인사들을 내각에서 배제하고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인물들로 ‘관리내각,’ ‘민생내각’을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도박·사기게이트인 ‘바다이야기’와 JU 사건의 몸통에 대한 철저한 수사도 거듭 촉구했다. 바다이야기와 JU사건의 경우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특검을 통해 낱낱이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노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에서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을 꼬집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17대 대선, 나라의 명운 가를 분수령” = 강 대표는 참여정부 4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고, “정권교체가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이라며 12월 대선을 겨냥해 정권교체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강 대표는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분수령이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날개 없이 추락하느냐를 결정짓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나라를 구하고 경제를 살리는 절체절명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강 대표는 노무현 정부를 ‘민심을 외면하는 세력’ ‘과거에 집착하는 세력’ ‘우물안을 맴도는 세력’ ‘편 가르기 코드 세력’으로 규정하고,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무능한 정권은 끝장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대선을 진정한 정책경쟁으로 이끌기 위해, ‘희망 대한민국’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며 “각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하는 미래전략기구를 당내에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전략기구에서 나라의 틀을 다시 짜고 재도약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내놓을 것이며, 수구좌파를 제외한 선진화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나라당의 문을 활짝 열어놓겠다고 강조했다. ◆‘희망 경선’ 3대 원칙 제시 = 강 대표는 당내 논란이 되고 있는 경선과 ‘후보 검증’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강 대표는 “2월 초 경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경선 시기와 방법을 논의할 것이며, 주자들의 정책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문제도 협의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또한 내부 경선과 관련 ‘공정 경선’ ‘정책 경선’ ‘상생 경선’의 3원칙을 제시했으며, 당 주도로 경선을 치르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강 대표는 “당이 정한 경선 원칙과 룰은 엄격히 지켜져야 하며, 저를 포함한 당직자들은 엄정 중립을 지킬 것”이라며, “대선 주자들도 당당하게 경쟁하고 깨끗이 승복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 한다”고 덧붙였다. ◆2월 임시국회, 비상 민생국회 돼야 = 강 대표는 “2월 임시국회가 비상 민생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 바람과 동떨어진 개헌이나 정계 개편으로 개점 휴업할 수 없으며, 민생법안은 민생법안대로, 정치법안은 정치법안대로 무엇이 국리민복과 부합하는지 따져서 처리하겠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의 투자를 위해 글로벌 표준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도 풀고, 기업과 지방이 주도하는 일자리 창출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며 “신산업과 신기술이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감세와 규제 완화 그리고 지방투자촉진특별법 제정에 여당의 대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강 대표는 또 당이 추진하는 반값 아파트 공급과 후분양제 확대 등을 통해 서민주택을 국가가 책임지고, 공공분양원가의 공시항목을 늘리고 검증장치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고, 국가장학기금을 신설해 매년 1조원씩 꾸준히 출연토록 하고 장학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빈곤층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일하려는 의지’ 자체를 담보로 자활에 필요한 종자돈을 빌려주는 ‘사회책임연대은행’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간기업이 출연키로 한 돈이나 휴면예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국민연금과 관련해선 그동안 당에서 주장해온 ‘기초연금제’ 도입을 재확인했으며, 불법파업에는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상생의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강조하고, 경제단체 및 노총과 정례간담회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26
- <문창재 칼럼>“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하는 말만 나온다. 왜 이리 허망한지 몰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8명에 대한 대법원 최종판결이 무효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후 한 사형수의 아내가 독백처럼 토해낸 말이다. 누가 죽고 싶어 죽었나. 32년 세월을 싸워 원하는 판결을 얻었건만 허망하기만 하다는 그 말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하였다. 오래 힘이 되어준 문정현 신부 가슴에 머리를 묻었던 한 사형수 부인의 슬픈 얼굴은 온통 물기로 번들거렸다. 청상으로 살아온 오랜 고통의 세월이 깊은 주름살로 패인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에게 뒤늦은 명예회복이 무슨 소용인지를 묻고 싶었다. 두 차례의 인혁당 사건은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사건이었다. 아무 실체도 없었던 두 번째 사건이 첫 사건보다 형량이 가혹했다는 점만 보아도 조작성을 알 만하다. 1964년 8월 중앙정보부(중정)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사건이 되지 않는 것을 기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에 사표로 저항하였다.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으로 조작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불온서적, 판매금지 된 책 한권도 찾아볼 수 없었다. … 피의자 전원이 수사 중 고문당했다는 말만 하고 앉았고, 인민혁명당 그런 말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고 했다.”(학민사 발행 사법살인-1975년 4월의 학살) 증거물 하나 없이 중정에서 송치되어 온 국가보안법 위반 국가변란 기도사건이라는 것을 연장수사까지 해보아도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당시 서울지검 이용훈 공안부장과 장원찬· 김병리 검사는 사건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표를 냈다. 검찰 수뇌부는 숙직검사를 시켜 기소하게 했지만 서울고검의 재수사를 통해 14명은 공소취하하고 12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반공법 위반으로 공소변경해 재판에 회부하였다. 1심판결 결과는 도예종과 양춘우 피고인에게만 각각 징역3년과 징역2년 형이 선고되었을 뿐, 나머지 피고인은 모두 무죄였다. 이런 사건이 10년 뒤 8명을 무더기로 교수대에 세운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으로 조작되었다. 1975년 4월 중정은 1차사건의 주모자 도예종 등이 인혁당재건위원회를 결성해 국가변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씌워 무더기로 잡아 들였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민청학련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수립을 기도했다는 것이 중정의 발표 내용이었다. 무려 253명이 구속되어 군법회의에 묶여간 전대미문의 조작극이었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주축이었던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조차 대부분 재판 도중에 석방되었지만 인혁당 재건위 사건 8명에게는 무죄였던 사람에게까지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겨져 1975년 4월 8일 드디어 전원에게 사형을 확정한 ‘역사적’인 판결이 뒤따랐다. 그 판결을 보도한 TV 뉴스에 놀란 국민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인 다음날 새벽 8명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렇게 서둘러 형을 집행할 이유가 무언가, 왜 유가족에게 전해진 유언들이 조작되었는가, 왜 영결식장으로 가던 유해들이 기동경찰의 완력으로 화장터로 끌려가 강제 화장을 당했는가. 이런 수많은 의혹들은 그 후 30 여 년 동안 금기중의 금기가 되어 입에 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야만을 합법화 해주었던 1975년 4월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23일 서울중앙지법의 재심판결은 ‘겨울 공화국’ 시절 잘못된 법원의 결정에 대한 사법광정의 의지로 볼 수 있겠다. 너무 늦었어도 다행한 일이지만, 이번 결정을 사법살인 종언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사법살인이 재연될 수 없도록 사형 제도를 폐기하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옳지 못하다. 그 주체가 국가와 제도라 해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있는 한 사형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 권력의 심리다. 한국을 사형폐지국가로 올해로 10년째 사형집행이 없는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명문규정으로 확실하게 사형제도 폐지를 못 박을 필요가 있다. 앰네스티는 2006년을 ‘한국의 사형제도 폐지의 해’로 정해 집중 캠페인을 벌였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형제도 폐지 입장을 공식화 했고, 법무부도 폐지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여야 의원 175명도 제도 폐지 결의안을 내놓았다. 분위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남은 것은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한국을 세계 119번째 사형 폐지국가로 만드는 일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