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포드 전 미국 대통령 타계 26일 미국의 제38대(1974~ 1977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사진)이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일하게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미국대통령,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중 최고령이던 제롤드 포드 대통령은 영욕의 세월을 묻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올들어 고령에 폐렴과 두차례 심장치료 등으로 고생하다가 26일밤 영면했다고 부인 베티 포드 여사가 밝혔다. 생존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고령이었던 포드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은 지미 카터, 아버지 조지 H 부시, 빌 클린턴 등 3명으로 줄었다. 연방하원의원을 25년동안이나 역임하다가 1973년 애그뉴 부통령의 사임으로 부통령직에 올랐고 1년반후에는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풍운아적인 정치경력을 기록한 포드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미국의 38대 대통령직을 승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 됐다. 그는 또 취임 이듬해인 1975년 4월 베트남전 종전을 맞아 미국 역사상 또 하나의 큰 상처와 수치를 다스려야만 했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han5907@ao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2-28
- <임재경 칼럼>‘너흰 정말 아니야’(2006.12.27) ‘너흰 정말 아니야’ 이해의 마지막 주를 맞으면서 ‘너흰 정말 아니야’하는 느낌이 밑도 끝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다 알듯이 민중 작곡가 윤민석의 히트 곡 제목인데 2004년 촛불시위가 한창일적 시민들의 가슴을 적시던 가락이다. 왜 이 노래 가락이 왜 지금 떠올랐을까. 보수 메디아들은 말할 나위 없고 정치의식 미분화 계층마저 입만 열면 대통령 노무현을 헐뜯는 풍조가 만연되는 이 세월의 덧없음에 내 나름의 감상(感傷)일는지 모르겠다. 12월 21일에 있었던 고건 국무총리 발탁은 실패작이란 발언을 빌미로 하여 노무현 대통령 때리기는 절정에 달한 듯한데 보수 메디아의 대통령비방 키워드의 하나는 “막말”이다. 대통령이 “막말”을 내뱉음으로써 나라 안이 시끄럽다는 투다. 이런 와중에서 노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 석상 “대통령이 할 말은 한 것 같은데 표현 과정에서 좀 절제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이리저리 시비에 휘말려…. 여러분 보기 민망하다”는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그 자신이 인정했듯이 노 대통령의 즉석연설은 회수와 빈도뿐만이 아니라 그 내용과 강도에 있어서 전임자들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출하다. 때로는 아니해도 될 말을 하는가 하면 ‘아! 저런 말은 앞뒤 계산을 하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건데, 대단한 결단이 군’ 하는 찬탄 불금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간에 대통령의 말이 시비를 몰고 온 것은 사실이나 보수 메디아들이 즐겨 갖다 부치는 ‘막말’운운을 그 자체가 막말이다. 사전에 나오는 ‘막말’의 정의는 “함부로 지껄이는 말. 혹은 속되게 마구잡이로 하는 말”로 돼있다. 단도직입하여 민주국가에서 ‘침묵은 금’이라는 서양 격언은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제왕이나 절대 권력의 집권자라면 몰라도 민주국가의 최고 정치 지도자는 말로 국민과 의사소통을 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말을 충분히 하지 않고도 국민을 이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초법적인 권력기관들을 동원하여 반대 계층 내지 반대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쪽으로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매스컴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게 둘째다. 원했건 원치 않았던 간에 노무현 정부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가 봉인된 상태로 출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인 고건 전 총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이 ‘막말’인지를 가려보자. 고건 전 총리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라는 것은 공지의 일이며 단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정당의 공천을 받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을 뿐이다. 노대통령의 발언 요지는 정부 출범당시 개혁과 보수로 양분되는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매개인물로 보고 그를 선택했는데 그런 기대가 어긋났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라고 나는 이해했다. 표현이 거칠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이것은 요새말로 하여 콘텐츠가 있는 훌륭한 메시지다. 고 건씨의 국무총리 발탁은 당시에 이미 개혁의 본격적 시동을 걸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이라는 세간의 말은 무색 무취의 중성적 평가라 하더라도 그가 아주 매끈하게 포장된 이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는 어느 직업 관료도 추종을 불허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김대중 국민정부에 이르기 까지 몇 차례의 걸친 정변을 거치면서도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는 것은 단순한 관운에 그치지 않고 그만이 간직한 신비스러운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쳤다. 정변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간 요직을 유지한 역사상의 인물로는 프랑스의 조셉 푸세(Joseph Fouche 1759-1820)가 꼽히는데 그는 대혁명 시 급진파로 출발하여 나폴레옹 집권기간은 물론이고 왕정복고 이후까지 경찰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푸세와 고건의 차이는 전자가 정권교체시의 장막 뒤에서 암약한 존재인데 반하여 후자는 그런 지모를 발휘한 흔적은 없다. 하지만 고건 씨가 이해가 상충나는 계층간의 통합을 모색할 적임자로 보기에는 어딘가 미흡하다. 그러므로 노무현 대통령의 은 따지고 들어가면 그자신이 고건 씨를 잘못 보았던 과오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얼마 전 타계한 전두환 쿠데타 시의 대통령 최규하 씨가 아무런 증언을 남기지 않은 것에 비추어 보면 비록 시비의 씨앗이 될지언정 대통령으로서 느끼고 생각했던 일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이런 증언은 뒷날의 민주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로울 것은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릇 대통령은 행정가가 아니고 큰 정치하는 자리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2-26
- <중국여행 가이드>눈을 즐겁게 해주는 쓰촨·윈난 기행(끝) 24일 오전 여관을 나서 비교적 먼 길을 걸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종착지인 리장에 도착하기 위해 8시에 하바촌과 바이수이타이로 향했다. ◆수억년이 침전이 만든 환상지형 = 이제 이번 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바이수이타이에 관해 언급할 차례다. 바이수이타이는 중뎬현에서 동남방으로 10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발 2380미터의 고산지대이다. 이곳은 물속 탄산칼슘이 햇빛으로 분해반응을 보여 수억년에 걸쳐 형성된 탄산칼슘 침전물이 지면을 뒤덮은 용암지형이다. 때문에 세월의 풍화와 용암의 작용이 연출해 낸 수만 가지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바이수이타이의 지형은 산을 따라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하며, 온천에서 생기는 석회질이나 규산질의 침전물이 무려 3평방킬로미터에 걸쳐 장관을 이룬다. 나시족어로 바이수이타이는 ‘바이보즈’라고 하는데 이는 ‘점차 커지는 꽃’이라는 뜻이다. 바이수이타이는 또 신이 내린 밭이라고도 불린다. 층층겹겹으로 이루어진 바위층이 사람들이 개척한 계단식 밭과 매우 흡사하다. 전설에 따르면 하늘의 왕모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경작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바이수이타이 왼편으로 가면 초승달처럼 생긴 샘이 있는데 맑은 물이 사방에 넘친다. 주민들은 선녀가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던 곳이라고 말한다. 음력 10월 초가 되면 수십 리 안에 여러 민족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1년에 한번 있는 전통명절 ‘이월팔’을 보낸다. 현지 나시족은 닭을 잡아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닭피를 사방 나무에 칠하여 존경과 숭배의 뜻을 보인다. 제사를 마치면 나무그늘 아래서 풍성한 식사를 한다. 사람들은 갈대로 만든 생황을 불거나 호금을 불면서 둥그렇게 모여 흥겹게 민속춤을 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곳에 모이며 여러 민족들이 한 데 어울린 채 며칠에 걸쳐 수천 가지의 노래와 춤으로 축제를 즐긴다. 25일 오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바이수이타이를 떠나 저녁 여섯 시 무렵 리장에 도착했다. 갑자기 무기력함이 밀려와 늘 지니던 사진기도 놓아 버렸다. ◆어떤 이든 매료시키는 도시, 리장 = 그 사이에 여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장의 여관은 대부분 보보스풍임을 알게 됐다. 모든 여관들이 인터넷을 제공하며, 정원의 소파에서 차를 마시게 해준다. 듣고 있으니 어떤 이는 리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도 좋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리장이야말로 연인들이 최고의 러브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여행할 이유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데서 리장의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장의 부드러운 시간’이라는 책을 읽은 생각이 난다. 6년 전 리장에 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리장은 너무 상업화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장이모우 감독이 찍은 영화 ‘인상. 윈난’의 촬영지가 급부상하는 중이라는 설명도 있다. 리장에서 대략 6킬로미터 떨어진 슈허라는 옛마을이 그곳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리장은 내게 둘도 없이 편한 곳이다. 언젠가는 슈허 같은 다른 도시에 그 지위를 양보하겠지만. /정리 김선태 기자 kst@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12-18
- <내일시론>‘좋은 대통령’ 될 수 있다(정세용 2007.01.23) ‘좋은 대통령’ 될 수 있다 지난 해 한 공무원이 펴내 화제가 됐던 책이 있다. 퇴직을 눈앞에 뒀던 산업자원부 서기관이 낸 것으로 책 제목은 과천블루스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공무원이 된 지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는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이 발전해 사회가 투명해지고 국가청렴위원회가 설치돼 공직사회의 내부감사기능도 발전했지만 공직사회의 부패와 비리는 여전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가짜공문''에 의해 집행되는 공무원 판공비와 출장비가 한 해 수백억은 될 것이라고 한다. 한 부처 차관은 1000원이면 만들 명패를 공금 2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국책은행이 ''신이 내린 직장''이 된 것은 퇴직 후 이들 은행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많은 재경부 고위간부들이 이를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보면 부아가 끓어오른다. 또 신도시 개발정보가 외부로 새나가는 과정을 보면 세금을 또박또박 내는 서민이 불쌍해진다. 건설교통부가 산하기관에 의뢰한 연구논문이 보고되면 건교부 다수 직원들은 이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되고 그들은 이 정보를 친인척에게 알려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매달 근로소득세를 꼬박꼬박 내고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법인세를 성실히 납세한 봉급생활자와 중소기업인으로서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물론 대부분의 공무원은 그들 말대로 국민의 공복으로서 많지 않은 봉급을 받으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 것이다. 산간벽지에서도 근무하고 섬마을에서도 2세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과천블루스에서 밝혀진 경제부처의 비리와 삼성장학재단에서 최근 드러난 교육부의 몰염치를 보면 아직 상당수 공무원은 ''공복''이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그룹의 사회환원기금 8000억원으로 출범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사무국 직원 11명 가운데 9명을 교육부 퇴직공무원 가운데 기용해 교육부의 ''낙하산 착륙장''이 됐다는 비난을 들어야했던 것이다. 참여정부에서는 정부혁신이 착착 진행돼 어느 정권보다 깨끗하고 효율적인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아직 도둑놈 심보를 가진 공무원은 많고 아직 상당수 정부기관은 국민들을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연금에 생각이 미치면 암울해진다. 정부가 마련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국민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나마 공무원 단체에서는 미흡한 연금개혁안도 반대하고 있다. 물론 전방 철책선과 산간오지 그리고 조그만 섬 등에서 한평생 국민에게 봉사해온 공무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권리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평생을 산업현장 등에서 밤낮없이 일하고도 노후의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이 공무원이 덜 낸 연금보험료를 대신 납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해답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국민에게는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거부한다면 공무원집단은 국민에게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기득권 집단으로 비춰질 뿐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헌법 정신에 따라 공무원들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헌법정신에 따라 모든 국민은 평등하지만 공무원의 경우 계급이 존재하고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은 최고위 공무원으로서 국군을 통수하고 전 공무원을 지도한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한 일이 많은데 많은 국민들이 왜 나를 ''나쁜 대통령''으로 생각하느냐"고 억울해한다고 한다. 옳은 얘기일지 모른다. 노 대통령은 사실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는데 앞장섰고 정경유착 철폐에 큰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힘으로 성취했다고 하지만 지난해 3000억달러 수출도 달성했고 올해는 국민소득 2만달러도 달성할 가능성도 많다. 이에 노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다. 깨끗한 정치도 중요하고 올곧은 언론도 중요하나 깨끗한 공직사회와 국민이 존경하는 공무원상 정립을 위해 공직사회 개혁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맞아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이 많은 공직사회에 인재들이 몰리고 있는 지금이 적기인지도 모른다. 공무원연금도 국민연금과 함께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혁하고 깨끗하고 국민에 서비스하는 공직사회 개혁에 성공할 경우 이 것만으로도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23
- 신명식국장의 ‘현장을 찾아서’ - 김관용 경북도지사 “지방, 잘산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중앙정부, 자원의 효율배분· 규제완화 최우선 해결해야 지방살길은 규제풀고 산업평화 정착 경쟁력 갖추는 것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추진력과 현장감, 특유의 친화력으로 60대 후반의 노령에도 민선 4기 경북도지사에 당선된 저력있는 단체장이다. 전국에서 가장 젊은 기초자치단체인 구미시장을 역임한 김지사는 구미의 성공신화를 경북도 전역으로 확산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캐치프레이즈’도 ‘지발 밥 좀 묵고 살자’였다. 요즘도 시군을 방문하면 도민들로부터 ‘밥 좀 먹자 지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김지사의 면모를 나타내면서도 경북도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 선거당시 반향을 불러 일어켰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도민들의 정서와 맥이 통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경북도지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지사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얼마전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열린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의 폐막식에 참가했다 돌아온 직후였다. 여독도 안풀린데다 감기몸살까지 앓고 있었다. 1시간 이상 진행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간혹 기침을 했지만 지역의 절박한 현안이나 관심사가 나올 때마다 열변을 토했다. 때론 절규하기도 했고 때론 답답함을 탄식하기도 했다.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생생한 현장소리를 들어봤다. - ‘경제는 세계로, 정치는 지방으로’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지방으로 직접 내려왔다. 김지사께서는 11년 구미시장을 역임하면서 구미시를 전국 기초자치단체중에서 소득이 제일 높고 가장 젊은 도시로 만들었다. 경북도지사를 맡아 짐이 더 무거워 졌다. 경북을 잘살게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클 것이다. 구미시 성장과정서 시장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자평해 주기 바란다. 그것이 도정에도 연결될 것 같다. 구미시민의 총체적 에너지를 결집하고 지역의 성장 엔진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얘기했다. 하나의 예로 98년 외환위기 당시 시민들이 이사를 떠나고 학생수도 줄어들었다고 했다. 시장이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특강을 하며 호소하다시피 했다. 다른 데도 다 어려우니까 생활터전인 구미를 떠나지 말고 함께 힘을 모으자고 했다. 그러면서 4공단을 조성했다. 미래에 대한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나고 보니 4공단으로 먹고살고 있다. 적중한 셈이다. 당시에 구미를 떠난 사람이 없었다. 시장 스스로도 서울에 있는 아들을 구미로 데리고 왔다. 그런 점에서 지자체장은 위기때마다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론적으로 안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치고 나가는 무모함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는 도전을 해야하고 갈등과 시련을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No risk, no return''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 구미시장에서 도지사에 오른 풀뿌리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분 중의 하나다. 김지사는 현장감과 친화력이 강점이라고 들었다. 경북도도 다양한 산업구조와 지역특성을 가지고 있다. 도지사로서 경북의 비전을 제시해야하면서도 균형발전, 갈등해소등을 이뤄내야 한다. 도지사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대강의 흐름이 잡혔는 지. 6개월 동안 도청 조직의 의식을 바꾸려고 했다. 일할 분위기를 만들고 일할 사람 우선의 조직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사기업은 망하면 사원들도 온전할 수 없다. 도민이 망하는데 공무원이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경북도는 사투리가 서로 다를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다. 포항권, 구미권, 안동권등은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질적인 도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해소하기 위해 공동의 꿈을 ‘일자리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목표를 정확히 제시했다. 목표가 ‘위대한 경북 찬란한 경북’식이 돼서는 안된다. 2010년까지 7만개 일자리 창출하기로 했다. 올해 당장 1만6천개를 만들어야 한다. 과정이 곧 목표고 목표가 곧 과정이다. 모든 것이 준비됐을 때 출발하는 것은 이미 늦다. 그래서 선거때 ‘지발 좀 묵고 살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도민들의 절박한 심정과 맞아 떨어진 것 같다. - 모든 자치단체가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 존재한다. 문제는 정부가 아무리 균형발전을 주장하지만 투자할 기업이나 인재는 지방의 기피하고 있다. 경북도의 특별한 복안은 있는가. 안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실정이다. 역사적 성공은 죽을 지도 모르는 위기감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역사상 실패는 지난 날의 향수에 젖어 있을 때 민족도 국가도 망했다. 우리는 지금 불행한 지방자치를 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밑으로부터 쟁취한 것이 아니고 통치권자가 어느 날 내려준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지금의 자치제도구조에서는 맨날 중앙에 안준다고 조르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지방자치 여건이 잘 돼 있었지만 성숙되기 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우린 이제 몇 년 됐냐. 수도권 규제완화와 관련해서도 수도권과 지방은 완전히 출발점이 다르다고 볼수 있다. 정부가 1차적으로 할 일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서울과 수도권에 쏟아 부었다. 지금와서 (지방에) 학교도 없고 비행장도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선 안된다. 지방에 준비할 시간을 줘서 지방의 출발선을 좀 당겨줘야 한다. 혼잡비용이 20조원이 넘는 서울과 수도권을 만드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말이 안되는 얘기다. - 정치권은 그런 논리로 설득을 할수 있지 모르지만 정작 투자할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 아닌가. 그건 이렇게 봅니다. 외국기업에게도 자본이 들어올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단 국내 대기업이 투자 안된다는 것이다. 노임이 원가의 65%를 차지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산업평화만 확실히 되면 기업들이 온다고 본다. 그리고 지방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 공장 하나 설립하는데 30개법이 관련되고 인허가 절차만 50개가 된다고 한다. 이래선 안된다. 우리 스스로는 안하면서 수도권에만 자꾸 대들고 있다. 지방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경북 동해안 900리에 그럴듯한 펜션하나 없다. 자연미를 살린 친환경적 펜션을 짓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 그 규제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야 정부가 다 가지고 있지. 산림청, 환경부, 건교부등이 다 가지고 있다. 그 것을 광역자치단체로 위임해야 한다. 광역단체장이 책임지면 될 것 아닌가. 선거직이 뭐야. 잘못하면 다음에 떨어 질 것 아니냐. 그런 것을 위해 투쟁을 해야 한다. 산골의 묵혀놓은 다단계 논도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여 있를 정도다. 북부권도 전부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문화재만 끌어 안고 있는 꼴이다. 그런 규제를 풀어줘야 돈이 들어온다. -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정부가 지방분권을 해줬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것을 틀어쥐고 시혜적으로 나눠주려는 중앙집권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으로 어떻게 깨야 하나. 불행한 지방자치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밑으로부터 변화를 갖고 쟁취를 했더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참여정부도) 처음에는 잘가고 있다가 집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지방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닫힌 빗장을 열어야 한다. 흩어지고 숨어진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출향인사도 찾고 외국인도 찾아야 한다. 국회의원도 동원해야 한다. 총체적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중앙의 그 큰 벽을 뚫을 방법이 없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다. 시골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데. 물러 설 수 없다. 계속 주장하고 투쟁한다. 그래서 대구와 경북이 뭉 2007-01-16
- <밥일꿈>나의 꿈, 그리고 사보 나의 꿈, 그리고 사보 유 유 희 (대한생명 홍보실 대리) “유희야 니 꿈이 무엇이니?”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던 꼬맹이 유희는 “난 대통령이 될꺼야”라며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꼬맹이 유희가 대학을 막 졸업할 시점에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유희야 니 꿈은 무엇이니?” “내가 전공한 분야를 살려 기업체 홍보실에서 근무하고 싶은데….” 세월의 무게와 현실을 알아버린 꼬맹이 유희의 꿈은 대통령에서 이렇게 아주 작으마한 것으로 바뀌었고, 어머니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대통령, 과학자,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 연예인 등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잊은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은 꿈과 목표라도 자신의 현실에 맞게 재설정을 하고, 그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란 꿈은 못 이루었지만, 꿈꾸어 왔던 ‘홍보맨’이라는 작은 꿈을 이루었다. 하고 싶은 일이기에 하루하루가 신바람 나고 자랑스럽다. 대한생명 홍보실과 인연을 맺은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내와 예쁜 딸까지 얻었다.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서,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 책임감이 커졌다. 나는 대한생명 전 직원들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사보’를 만드는 크나큰 임무를 가지고 있다. 본사와 전국 방방곡곡에 분포되어 있는 지점과 영업소에서 굵은 땀방을 흘리고 있는 대한생명 가족들을 매월 취재하며, 그들의 사진과 기사를 자료로 남기고 있는 것이 내 임무인 것이다. ‘업무’보다는 ‘임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내가 하는 일이 대한생명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매월 대한생명 직원들의 땀냄새로 꾸며지는 사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생명 사보가 2007년 2월에 300호를 맞이하게 된다. 82년부터 창간되어 지금까지 매월 발행되어 왔던 것이다. ‘2007년’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누구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최고의 2007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2007년 나에게 다시 한번 꿈과 목표를 묻는 기회가 생긴다면 난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대한생명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부심으로 사보 한권 한권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9
- ‘무노동 유임금’ 지방자치단체 간부들 많다 5급이상 간부 교육자 연중 1-3개월 허송세월 제도개선 시급 지난해 12월 중순 1년짜리 간부공무원 연수를 마친 모 지방자치단체의 A모씨는 교육수료후 한달째 집에서 놀고 있다. 교육이 끝났지만 특별한 보직을 받은 게 없어 집에서 쉬고 있다. 조만간 있을 소속 자치단체의 정기인사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소속 자치단체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 A씨는 교육기간중 해외 견학 두 번을 다녀왔으며 여름에는 방학을 겸한 휴가도 즐겼다. 충분한 재충전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교육을 수료한 후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 아침 늦게 일어나 동네 뒷산 한번 오르고 나면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교육기간중 배운 골프 연습장에 나가고 간혹 친구를 만나는 것 외에 업무와 관련된 일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연간 수백명 간부 공무원 ‘무노동 유임금’ 방치 12월 중순이후부터 다음해 1월까지 전국 시도에는 A씨와 같은 공무원들이 수백명에 이른다. 시도별로 10여명 안팎으로 계산할 경우 줄잡아 160여명 이상될 것으로 추산된다. 행자부 관계자는 시도별 교육정원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기교육 전후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인사시기가 맞지 않아 ‘무노동 유임금’으로 놀면서도 정상적으로 급여를 받는 5급 이상 간부공무원들이 나타나는 현상은 거의 매년 12월과 2월사이에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지방자치단체나 행자부등 직원관리와 감독기관들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경북도에는 지난해 총 15명의 5급이상 간부들이 장기교육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중순 수료후 집에서 쉬고 있다. 3급 2명과 4급 2명이 한달 가량 집에서 쉬고 있다. 이들 간부들은 지방혁신인력개발원과 국방대학원등에서 10개월간의 교육을 수료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중순 교육종료후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 경북도의 정기인사가 단행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경북도는 조만간 5급이상 간부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차기 교육대상자를 선발하고 교육이수자들에게는 보직을 부여할 계획이다. 대구시도 지난해 5급 이상 간부 12명을 지방혁신인력개발원과 세종연구소, 국방대학원등의 기관에 교육을 보냈다. 이들 교육수료자들은 지난해 중순이후부터 지난 1월 4일 정기인사발표때까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보냈다. 올해는 정기인사가 빨라져 공백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반면 올해 교육대상자들은 2월 중순 교육입교시까지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교육준비를 하고 있다. 약 한달 이상 공백이 생기게 된다. 대구시 교육훈련담당 관계자는 “교육은 통상 10개월이나 교육준비와 시도의 인사협의등을 고려해 12개월을 정원외로 인정해주고 있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인사협의 지연 등으로 공백기간이 장기화 될 경우 대안을 찾아 볼수 있으며 전적으로 단체장의 재량권에 따라 출근여부를 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인사부서에서 장기교육이수자와 준비자들이 교육전후 공백기간을 최소화하고 공백기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행자부 소속이지만 경찰은 총경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국방대학원 등에 장기교육을 보내고 있으나 교육종료후에는 바로 출근해 해당 지방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정상근무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의 경우 정기인사에서 정식보직을 받기 전까지 청장의 지시에 따라 순찰 등의 업무를 맡아 수행한다. 경북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같은 행자부 소속이지만 근무형태나 인력관리상 형평성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교육이 끝나면 출근하는 것이 공복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했다. ◆고급인력 방치는 예산낭비 대책세워야 행자부에 따르면 5급 이상 장기교육은 모두 3개 과정이다. 고위정책과정(3-4급 55세 이하), 고급간부과정(4급 55세 이하), 중견관리자과정(5급 51세 이하)이며, 1년 이상 국내외 장기 이수자와 1년이상 국내과정을 거친 뒤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은 제외하고 있다.. 시도별 교육대상인원은 시도별 인원대비로 배정하지만 현재 명확히 인원대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초 제도 시행 초기에 배정된 인원을 그대로 배정하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당장 인원대비로 고치면 해당 시도별 국장급 또는 과장급 정원이 줄거나 늘기 때문에 지자체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관행적으로 매년 배정해 오던 방식으로 인원을 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교육과정은 10개월이다. 1월과 12월에는 교육기관 업무계획 수립, 개보수 등을 이유로 교육과정을 개설하지 않고 있다. 실제 교육기간이 10개월인데도 1년으로 운영하는 것은 장기과정 운영시 결원보충을 별도정원으로 해야 하는데 별도정원을 허용하는 기준이 교육기간 1년 이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행자부 관계자는 “교육전후 1개월은 교육과 업무복귀 준비를 위한 기간으로 봐야 한다”면서 “해당 지자체들도 과장이나 국장급 고위 간부를 직위도 안주고 출근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장기교육전후 공백기간에 대한 근무행태를 규정하는 행자부 지침은 없고 중앙인사위의 ''국내장기교육과정 파견기관 운영에 관한 지침''을 준용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훈련준비와 직무복귀를 위해 2개월 범위 내에서 실제 교육훈련 기간 외에 필요한 교육훈련 기간으로 추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지방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 임용령 시행령에 ''별도정원 허용은 1년 이상 교육훈련을 받는 경우로 한다''로 규정돼 있어 공백기간을 없애려면 이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행자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출근을 하지 않은 채 짧게는 2-3주일씩 또는 길게는 2-3개월씩 아무런 조치없이 고위공직자를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공백기간이 장기화 될 경우 해당 자치단체장이 출근을 명령해 민생시찰이나 여론동향 점검등의 한시적인 업무를 부여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범택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9
- <신문로>우리가 입 하나에 귀가 둘인 이유 우리가 입 하나에 귀가 둘인 이유 성 유 보 (언론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우리는 지금 누구나 자기 생각을 무엇이나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87년 ‘6월 항쟁’이 가져 다 준 성과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언론자유가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누구나 다 말하지만 누구의 주장도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말도, 국회의 말도, 사법부의 말도 ‘말발’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말발’이 서는, 또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라도 있는가? 언론기관인가? 대학기관이나 학계인가? 사회원로들인가? 시민단체들인가? 종교지도자들인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말발’이 서는 사람이나 기관은 아무데도 없다. 누구나 자기 주장만 하지 남의 말은 거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디오나 TV의 시사토론 프로를 한번 보자. 토론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제멋대로’ 떠들지만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는다. 상대방들도 마찬가지다. 토론은 없고 논쟁만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프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당정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친구들 사이의 술자리에서도 일어난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니 목소리만 자꾸 높아져 간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말은 거의 없어지고 ‘소음공해’가 판을 치고 있다. 심지어 무수한 말들이 ‘소음공해’가 되어 대한민국을 떠돌아다니지만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가슴이 텅 빈 듯이 허전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강제력을 가진 권위라도 생겨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점잖게 말해서 ‘강제력을 가진 권위’이지 이것은 ‘독재로의 회귀’를 뜻한다. 해방감에 말하기 바빴던 20년 우리는 이제 언론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올 해는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직도 지난 20년 동안의 나라의 민주화와 선진화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지만, 우리가 20년을 허송세월 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언론자유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승만 정권 시대부터 우리는 말할 자유를 제대로 누려 본 적이 없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 이후 700년 동안 백성들은 지배자들의 명령만 들어야 했지 어떤 토도 달 수 없었다. 그 700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자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듯하다. 한번 상상해 보자. 수만 명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 진행도 없고 사회도 없이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이 언론자유인가? 우리는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독재자의 명령만 존재하는 일원주의 사회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말할 자유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민주주의 사회, 다원주의 사회가 독재 시대, 일원주의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규칙이다. “내가 말할 자유와 권리를 누리려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의 권리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진심으로 듣는 것이다. 듣는 척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 마디 듣고 한 마디 했으면 그리하여 말하고 듣고, 듣고 말하는 진정한 대화(Dialogue) 속에서 건전한 토론문화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 범인들도 남의 말 두 마디는 듣고 한 마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입 하나에 귀 둘을 가진 까닭이다. 이 규칙에 실천 순서는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또는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면 우리도 따라 하겠다고 해서는 부지하세월이 될 것이다.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먼저 참다운 언론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정치체제는 우리 국민들의 힘과 열정의 산물이다. 사람도 스무 살이면 성년이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우리는 진정한 언론자유를 다 함께 가짐으로써 ‘민주한국의 성년식’을 가졌으면 좋겠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7
- <신문로 칼럼>우리가 입 하나에 귀가 둘인 이유(성유보 2007.01.17) 우리가 입 하나에 귀가 둘인 이유 -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한다 성유보 언론인 한겨레신문사 초대편집위원장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우리는 지금 누구나 자기 생각을 무엇이나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87년 ‘6월 항쟁’이 가져 다 준 언론자유 시대의 성과이다. 이 우리시대의 언론자유가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누구나 다 말하지만 누구의 주장도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말도, 국회의 말도, 사법부의 말도 ‘말발’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말발’이 서는, 또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라도 있는가? 언론기관인가? 대학기관이나 학계인가? 사회원로들인가? 시민단체들인가? 사회단체들인가? 종교지도자들인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말발’이 서는 사람이나 기관은 아무데도 없다. 말의 공해가 싫어 ‘박정희 신드롬’? 위험천만 누구나 자기 주장만 하지 남의 말은 거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디오나 TV의 시사토론 프로를 한번 보자. 토론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제멋대로’ 떠들지만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는다. 상대방들도 마찬가지다. 토론은 없고 논쟁만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프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당정치에서도, 노사문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친구들 사이의 술자리에서도 일어난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니 목소리만 자꾸 높아져 간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말은 거의 없어지고 ‘소음공해’가 판을 치고 있다. 심지어 무수한 말들이 ‘소음공해’가 되어 대한민국을 떠돌아다니지만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가슴이 텅 빈 듯이 허전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강제력을 가진 권위라도 생겨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점잖게 말해서 ‘강제력을 가진 권위’이지 이것은 ‘독재에로의 회귀’를 뜻한다. ‘박정희 신드롬’도 이 과에 속한다. 그럴 리는 결단코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 같은 시대로 되돌아간다면 박정희 신드롬을 갖고 계신 분들만이라도 행복해 할까? 그 분들은 박정희 시대를 찬양하는데 반비례하여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정치 행태들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거침없이 토해내 왔지만, 독재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독재정권은 그 분들에게도 곧바로 재갈을 물릴 것임은 명약관화하고 그러할 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한다면 감옥가거나 고문당하거나 해고되기 십상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아니,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 감옥, 고문 또는 해고를 피하려면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몸살을 앓더라도 말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도 불안하면 말의 자유라는 개념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도록 최면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시사적인 이야기를 친구지간에 할 때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귓속말을 했다 “하기야 우리 같은 서민에게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담?”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언론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올 해는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직도 지난 20년 동안의 나라의 민주화와 선진화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지만, 우리가 20년을 허송세월 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언론자유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승만 정권 시대부터 70년 동안 우리는 말할 자유를 제대로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 이후 700년 동안 백성들은 지배자들의 명령만 들어야 했지 어떤 토도 달 수 없었다. 그 700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말 한 마디 하려면, 남의 말 두 마디는 들어야 그러나 이제는 언론자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듯하다. 한번 상상해 보자. 수천 명, 또는 수만 명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 진행도 없고 사회도 없이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이 언론자유인가? 우리는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독재자의 명령만 존재하는 일원주의 사회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말할 자유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민주주의 사회, 다원주의 사회가 독재 시대, 일원주의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규칙이다. “내가 말할 자유와 권리를 누리려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의 권리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진심으로 듣는 것이다. 듣는 척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하고 듣고, 듣고 말하는 진정한 대화(Dialogue) 속에서 건전한 토론문화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 범인들도 남의 말 두 마디는 듣고 한 마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입 하나에 귀 둘을 가진 까닭이다. 이 규칙에 실천 순서는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또는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면 우리도 따라 하겠다고 해서는 부지하세월이 될 것이다.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먼저 참다운 언론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정치체제는 우리 국민들의 힘과 열정의 산물이다. 사람도 스무 살이면 성년이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는 우리는 진정한 언론자유를 다 함께 가짐으로써 ‘민주한국의 성년식’을 가졌으면 좋겠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7
- <새책>옛사람이 쓰던 친숙한 그 말 입에 익은 우리 익은 말 글쓰기에 좋은 말글 사전 김준영 지음 학고재 / 1만5000원 옛사람이 쓰던 친숙한 그 말 대감 친구, 산삼 재상…. 언뜻 낯설고 귀에 설지만 곰곰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와 닿는다. 대감(이) 친구(라고 허세 부리는 이)와 산삼(으로) 재상(자리를 산 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사내 보쌈 당했다, 샛서방이 강짜한다, 벼락불에 볶은 콩 팔아먹듯 한다…. 모두가 고사성어다. 흔히 고사성어라 하면 중국의 옛 사람이 한 말이나 중국의 역사상 사건 또는 중국 문헌에 기록된 설화에서 이루어진 말 등 ‘중국’만 떠올린다. 우리 선인들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또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고사성어는 익은 말이다. 입에 익고 귀에 익은 친숙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고사성어는 멀게만 느껴진다. 국어학자 김준영(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은 “학자들이 같은 말이라도 우리말로 표현하면 사상성이 없는 하찮은 말로 여기고 한자어로 표현하면 뜻이 깊은 말처럼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그래서 우리 것은 ‘문헌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김준영이 그 ‘문헌’ 만들기에 도전했다. 오랜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익숙해진 말들을 정리해 ‘토종 말글 사전’을 펴냈다. 좋은말 358가지를 정리하기까지 30여년이 걸렸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며 “익은 말들을 십분 활용해 풍부한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익은말은 생생하면서 박자와 가락이 있다. 저자의 조언대로 말맛이 살아있는 글쓰기에 좋은 재료다. 더불어 익은말에는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이 되는 설화나 역사적 사건이 따른다. 때로는 우습기 그지없고 때로는 조금 서글프기도 한 배경 이야기들이 있어 책장을 슬슬 넘기기만 해도 술술 읽힌다. 그래도 기억에 박히니 ‘익은말’이라 그렇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7-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