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회황찬란한 호수''로 생태여행 우쉬하이 관광지대는 쓰촨성 티베트족 자치간즈주 지우롱현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400㎢고 연평균기온은 섭씨 4.9도에 평균고도는 해발 1440m, 최고높이 해발 6010m다. 40여 곳이 관광지로 개발됐는데 끝없이 이어진 산봉우리, 호수, 원시삼림지대, 협곡 카르스트, 초원, 습지, 야생 동식물, 티베트 풍습과 불교문화 등이 볼만 하다. 설산, 포어예 봉우리, 라오런 봉우리, 시엔따이빙 강, 치스어하이 호수, 우쉬 온천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우쉬하이는 티베트어로 ‘휘황찬란한 호수’를 뜻한다. 호수는 눈 녹은 물이 계속 공급되고 지하수가 올라오면서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쉬하이 남쪽에 우뚝 솟은 빗 모양의 두개 산봉우리 중 높고 큰 모습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 랑구(설산)이고 유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스얼즈메이 봉우리다. 아름다운 우쉬하이는 우아하고 고요하며 신비로운 모습의 원시생태를 유지하고 있다. 고목이 하늘 높이 치솟아 원시림을 이루고 원생의 고산 저습지가 정취를 더한다. 서식하는 나무는 창빠오렁샨, 촨띠엔렁샨, 촨시윈샨, 홍화, 바이화, 두쥐엔 등 15종이 있다. 높고 큰 나무에 가득 달려있는 녹색 연기와 같은 송루어는 바람을 따라 춤추는데 그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초원에는 140여 종의 다양한 풀이 뒤덮고 있다. 구역 내에는 야생동물 50여종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중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가 1·2급 보호동물이 20여종이다. 진첸빠오(표범의 일종), 바이춘루(사슴의 일종), 니우링(영양의 일종), 샤오시옹마오(팬더곰의 일종), 두안웨이허우(원숭이의 일종) 등이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다수의 양서류, 파충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진귀한 약재와 버섯도 재배되고 있다. 이곳에는 티베트족과 이족, 한족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다채로운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3개 민족은 각자 자신의 전통문화와 풍습을 보존해오면서 서로 교류하며 민족간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해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우쉬하이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 J·F 로커가 샹거리라의 징시를 발견하고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국제적인 생태여행 상품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원시의 아름다움과 민족 고유의 풍습이 잘 보존돼 있어 고풍스럽고 신비한 운치를 맛볼 수 있다. 우쉬하이는 ‘공가명주’ ‘서부의 신비로운 경승지’로 불리며 관광객 홀로 생태·문화·탐험 여행이 가능하다. 우쉬하이 관광지 입장료는 1인 60위안으로 노새(40위안)· 말(160위안)을 이용할 수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7
- 조선조 당쟁과 요즘의 정치판 조선조 당쟁과 요즘의 정치판 김홍식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요즘 정치판을 보면 마치 조선 때 당쟁사를 보는 듯하다. 정치적 논쟁이라는 것이 사사건건, 민생은 팽개쳐버리고 사소한 것에 매달려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어느 시기 어떤 사건이랄 것도 없이 모두 천편일률적이다. 얼마 전에는 교육부총리가 논문을 중복 게재했다고 낙마하더니 이제는 헌재 소장의 임명 절차에 관한 사소한 잘못으로 국회가 공전 중이다. 가을 국회이니 국감에다 정부예산 문제도 있을 것이고, 크게는 미국과의 FTA 체결, 세계화시대 경제정책의 방향 설정, 빈·부와 도·농 격차의 해결, 노동자 농민의 문제, 학교 교육의 방향 설정 등 큰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정치권은 사소한 인사청문회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예전 당쟁도 살펴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다. 상복을 2년 입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3년을 입어야 하는가?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적임자인가? 청나라와 선린외교를 펼칠 것인가, 아니면 외교에 있어 명나라와 의리를 지킬 것인가? 지금 평가하면 공리공론이라고 비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인데, 이렇게 당쟁만 일삼다 보니 백성들은 임진, 병자의 병란을 겪었고 나중에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까지 당했다. 그런데도 서로 피를 토하고 싸웠던 이유는 뭘까. 단지 정권 쟁취만이 그들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세종과 성종, 영조의 정치에서 배우자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로 민생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가진 자는 배 두드리고 살지만 없는 자는 굶기가 일쑤다.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없으니 부랑아는 거리를 휩쓸면서 사회불안을 야기한다. 이런 사회문제를 당장 치유해야 할 텐데 처방을 내리고 치료하는 정치인은 하나도 없다. 이때 수신제가를 강조하는 성리학자들이 도학자라고 자처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한다. 현 사회문제를 고치려면 정치를 바르게 해야 하고, 정치를 바르게 하려면 수신제가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문제라고 비분강개한다. 백성들은 처음엔 환호한다. 우선 가슴에 맺힌 무언가를 뚫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 이들도 마찬가지가 된다. 본질 문제는 제쳐 두고 조그만 절차, 도덕 문제에만 매달려 정쟁으로 모든 시간과 정력을 허비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 벗어난 임금이 있다. 아마도 세종과 성종, 후기에는 영조 정도였을 것이다. 세종과 성종은 선대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정적들을 확실하게 제거해서 반대파가 적었다는 특징이 있을 것이고 영조는 임금 노릇을 오래도록 했으며(52년 재위) 탕평책을 썼다는 다른 점이 있다. 또 이들은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는 임금이었다. 특히 성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세종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아마도 똑똑한데다 겸손하기까지 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들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하면 소모적 당쟁에서 벗어나 나랏님 노릇을 잘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세종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고 오래도록 기용했다. 요즘은 YS 이래 언론에서 떠들기만 하면 장관을 바꾼다. 참여정부에서도 처음에는 퇴임까지 한배를 탈 것처럼 하더니, 청와대 조직은 물론이고 내각까지 겨우 1년을 넘기면 하마시킨다. 그러니 업무 파악도 못하고 조직 장악력도 떨어진다. 다음은 뚝심을 가지고 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성종은 훈구파를 몰아내기 위해 과거에 합격한 신진들을 대거 기용했으며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갔다. 여론을 앞세우는 언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냄비처럼 금방 끊고 식는다. 사학법을 개정했으면 계속 밀고 나가서 시행이나 해보고 재개정 논의를 해야 한다. 심하게 반발만 하면 밀리고 타협하니 개나 도나 반대를 한다. 심지어 반대를 위한 반대도 많다. 대중 정치는 연예인 바라보듯 선동적이다. 철학강의 듣듯 장기적 안목으로 보지 않는다. 정쟁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 오불관언하라. 잘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여론을 업고 돌파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물러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민생 문제를 걱정하는 청문회를 마지막으로 싱크탱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세종은 집현전을 만들어서 젊은 학자들에게 현실적인 학문을 독려하고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던 많은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 각종 위원회를 두는 것도 이런 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아웃소싱해서 시장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더니, 지금은 각 부처마다 너무나 많은 조직을 만들고 공무원 숫자를 늘리고 말았다. 정부의 외곽 조직을 줄이고 아웃소싱해서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많은 것을 단독으로 결정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렇지만 꾸준히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두뇌집단의 논의는 장려했다가 이 가운데 사람을 뽑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젠 제발 국회도 민생 문제를 걱정하는 청문회를 열었으면 좋겠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6
- ‘활명수’ 109년 동안 78억병 팔려 국내 최장수 상품인 동화약품공업(대표 윤길준)의 ‘활명수’가 109년동안 78억병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동화약품에 따르면 국내 최초 등록상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부채표 활명수는 1897년 처음 발매된 이래 올해까지 누적판매량이 78억병에 이른다. 이 제품은 1897년 당시 궁중에서 사용되던 생약비방에 양약의 장점을 취해 국민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活命水)는 11가지 순수생약성분으로 제조해, 과식, 소화불량, 식체 등에 효능을 발휘하면서 4세대에 걸쳐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브랜드인 셈이다. 많은 약 중에 유독 소화제인 활명수를 처음으로 만든 까닭은 당시 가장 흔한 질병이 위장장애, 소화불량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많은 양의 식사를 매우 빨리 먹기 때문에 위장병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활명수는 가마솥에 각종 한약건재와 물을 넣고 달여 진하게 한 뒤 몇 번의 여과를 거쳐 수입약제와 가루를 타서 배합하는 방식이었다. 탕약밖에 몰랐던 시대상에 비춰 보면 활명수는 양약의 제조방법을 적용해 탕약의 과학화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활명수는 전자동 액제생산라인에서 연간 1억병이 생산되면 매출 350억원,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세월이 흘러도 다름없는 것은 활명수의 약효”라며 “탄산가스를 첨가한 가스활명수를 발매하는 등 브랜드를 확장해 국내 소화제 시장에서 위치를 굳건히 했다”고 말했다. /범현주 기자hjbeo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5
- <기고>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과제 참여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균형잡힌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는 주거복지와 국가균형발전 시책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내년은 이러한 시책들의 성과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부동산거래, 세제, 금융, 공급 등을 총망라한 8·31 정책과 이를 이은 3·30대책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집값이 하향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시장은 전국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8·31 정책관련 법률 16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였고, 송파 신도시 등도 차질없이 추진해 가고 있다. 금년초 막연한 규제완화 기대로 국지적인 불안양상을 보이던 집값도 정책이 하나 둘 시행되고 3·30대책이 마련되면서 다시 하향 안정세로 돌아서고 상승 기대심리도 완연하게 꺾였다. 최근 발표된 실거래가격의 흐름 역시 이를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특히, 이달 25일부터 재건축 부담금 제도가 시행되고, 12월에 종합부동산세 부과, 내년 1월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조치 등까지 이루어지면 안정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어떠한 요인이 있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여 잦은 정책변경으로 시장 불안을 초래했던 과거와 같은 전철은 밟지 않을 것이다. 집값안정 토대로 주거복지 강화 정부는 8·31 정책 1주년을 맞아 얼마전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방향을 발표하였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는 전체 주택수의 2.7%에 불과하여 무주택가구들이 민간 전월세로 살 수 밖에 없고 임대료 상승 등 적지 않은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2012년까지 계층별 소득수준과 수요에 맞춘 여러 유형의 장기 임대주택을 총 주택수의 12% 수준까지 확대해 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 기간내에 국민임대주택 50만호 공급을 차질없이 추진해 가면서, 주택의 유형도 종전의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임대주택 건설’ 위주에서 탈피하여 저소득층에게는 국민임대와 도심내 매입·전세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이 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는 ‘10년 임대주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간 정책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던 중산층에게도 중대형 규모의 전월세형 임대, 매입임대 주택의 공급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계층이 좋은 조건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임대주택 공급체계가 마련되어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불식되고 주거문화도 ‘소유’에서 ‘거주’중심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참여정부는, 모든 지역이 균등한 기회를 갖고 고르게 발전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선진한국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의 지역발전 정책과 함께 수도권의 계획적 발전 방안을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착실하게 추진 중에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21세기의 미래지향적 모범도시’로 건설하고 있다. 현재 전체면적의 79%를 보상하고 기본계획을 확정하였으며, 금년 하반기에는 개발계획도 수립할 예정이다. 균형발전 위해 지혜 모으자 오랜 세월 반복되어 온 부동산 시장 불안과 수도권 집중에 따른 불균형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국가적 과제이자, 국민 모두가 자기지역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 지지, 성원을 보여주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이제 8·31 정책에 의해 시장 정상화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행정·혁신·기업도시 등 국가균형발전의 실질적 토대가 구축된 만큼,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하고 무엇이 국민의 요구인지, 국가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힘을 합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이러한 정책들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보내면서 적극 동참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1
- 치매노인 36만명 중 27만명 집안에 방치 치매노인 36만명 중 27만명 집안에 방치 주간보호시설 346곳 5590명뿐 … 일본은 1만여곳 동방예의지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치매노인들은 어떤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을까. 추정치이긴 하지만 공식 통계에 잡힌 치매 환자는 36만명에 이른다. 이 중 27만명이 노인복지시설이나 가정봉사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가정 등에 방치돼 있다. 치매환자 간병 등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약 3조원. 이 대부분을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 메워나가고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134개 보호시설은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고 월 200만원에 달하는 유료 보호시설도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치매 부모를 모시려면 온갖 집안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간병을 위해서는 성인 1명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야 한다. 맞벌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 가정의 경우 경제적 파탄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가족이 살려면 치매 부모를 버려야 하는 ‘현대판 고려장’을 정부가 방조하고 있는 꼴이다. ◆형제간 돌아가면 모시기는 절대 금물 = 치매환자와 보호자를 돕는 지름길은 병을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주변에 위험물이 없고 보호자가 참을성 있고 24시간 간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치매환자는 가정에서 돌보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많을 때는 빨리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것이 좋다. 치매 환자는 매 순간 위험에 노출되므로 돌보기가 그만큼 어렵고 간병인도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치매노인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심리적인 안정이다. 가족이나 일반인이 보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온 몸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한다.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몇 달씩 치매 부모를 모시는 일이 많은데,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존심 탓에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심신이 허약하고 불안정한 치매 환자에 이런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고문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치매는 신이 주신 마지막 선물” = 근래 들어 성인 자녀들이 출근할 때 치매노인을 맡겼다가 퇴근 때 집으로 모셔오는 ‘주간 보호시설’의 인기가 늘어나고 있다. 주간 보호시설의 경우 월 15만원대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자식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치매노인들도 집안에만 있을 때보다 전문 간병인의 치료를 통해 훨씬 더 활력을 되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설은 전국적으로 346곳, 이용할 수 있는 치매노인의 수도 5590명에 불과하다. 이웃 일본의 경우 전체인구 1억2000만명에 이같은 주간보호시설이 1만여곳이나 있다. 치매노인 간병을 국가가 책임지는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노인들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이 아니다. 노인들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 온 자로서 마땅히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 2018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이면 2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2020년에는 치매 환자가 57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치매 대책은 이제 일부 노년층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치매는 신이 주신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힘든 세월을 사느라고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를 다 지워버리고, 태어날 때 가졌던 맑고 깨끗한 생각으로 이 세상을 떠나라는.” 경기도 하남시의 노인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의 말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1
- 어깨 : 마오쩌둥 사망 30주년 “다양한 마오의 모습을 찾자” 열풍 신격화부터 온라인접목·경영서적 봇물 마오쩌둥 없이 지금의 중국을 생각할 수 있던가. 중국 인민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마오의 이미지가 다양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다. 30년전 9월 9일 마오쩌둥은 세상을 떠났다. 30년간 중국사회는 크게 변했다. 그 동안 마오 주석에 대한 인식도 점차 이성적으로 변했고 신화적 부분도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국에서는 마오의 존재감이 절절히 느껴진다. 마오쩌둥연구전문가인 중앙당교 후웨이시옹 교수는 “마오쩌둥의 현대 중국에 대한 영향은 다양하고 다층적이다”며 “인쇄매체에서 인터넷까지, 베이징에서 변경지역에 이르기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후 교수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자동차기사들이 마오쩌둥상을 걸어두고 악을 쫓고 있다 △후난식당에는 마오쩌둥상을 간판으로 걸어두고 있다 △시장지역에서는 마오쩌둥을 ‘대화불(부처)’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이들 눈에 마오쩌둥은 반인반신의 이미지이다”고 말했다. 쓰촨성 아바 장족자치주 출신인 다와는 마오 주석 기념당에서 “고향사람들 모두 베이징에 와서 천안문과 마오 주석을 볼 수 있게 된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마오 주석은 하나의 전설이고 그의 마을사람들에게 마오쩌둥은 평안을 지키는 신으로서 경배의 대상이다. 정보화시대의 도래에 따라 마오쩌둥 붐은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이미 몇 개의 마오쩌둥과 마오쩌둥사상 전문사이트가 개설됐다. 검색포털 바이두에 ‘마오쩌둥’을 입력하면 검색되는 웹페이지가 1470만개에 이른다. ‘마오쩌둥사상’을 입력하면 웹페이지 201만개가 검색된다. 마오쩌둥기념관 홈페이지(mzd.chinaspirit.net.cn/)에 매일 남겨지는 글은 200~300개를 넘나든다. 학술계의 마오쩌둥연구도 붐을 이루고 있고, 특히 올해는 마오쩌둥에 관한 연구토론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서점에서도 마오쩌둥 붐을 실감할 수 있다. 베이징 최대서점인 시단도서빌딩 1층에는 마오쩌둥 관련서적만 서가 4개를 차지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전략에서 비즈니스관리방안을 찾아내 이라는 책을 펴낸 저우다쟝은 “마오쩌둥의 거의 모든 전쟁이론과 지휘경험은 모두 비즈니스관리에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우다쟝은 마오쩌둥의 ‘농촌의 도시포위’전략을 사용해 건강식품 ‘뇌백금’을 히트시킨 스위쥬의 예를 들었다. 스위쥬는 수중에 50만위안을 자금을 갖고 1개 소읍을 공략한 다음 3년간의 시간을 두고 상하이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에서 마오쩌둥은 경영학 대가로 등장한다. 이는 저우다쟝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니다. 몇 개월간 이 책은 수요에 맞추기 위해 몇 판을 찍어내야 했다. 마오쩌둥의 ‘경영대가’로서의 신분이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촌으로 유명한 허난성 린잉현 난지에촌에서는 어디서나 “마오 주석의 책을 읽고, 마오 주석의 말을 듣고, 마오 주석의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하자”는 표어를 볼 수 있다. 중국인민대학 정치학과 샤오옌중 부주임은 “마오쩌둥이 경영학서적에 언급되는 것은 마오 주석이 인민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신화적 이미지를 남기지 않고 있음을 설명한다”며 “마오 주석에 대한 이성적이고 다양한 판단이 증가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실용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20
- 광주광역시, 지도층 리더십 ‘흔들’ 제목: 광주광역시, 지도층 리더십 ‘흔들’ 정·재계·교육계, ‘분열·혼란’ 조장.... 지역발전 위한 ‘담론’ 절실 광주광역시 정·재계·교육계가 총체적 혼란에 빠져있다. 지역 정계를 대표하는 박광태 광주광역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 생긴 앙금 때문에 여전히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재계 역시 상공회의소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까지 진행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계마저도 교육 기자재 납품비리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정·재계, 감정싸움으로 ‘허송세월’ = 박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5·31지방선거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지루한 ‘감정싸움’에 휩싸여있다. 화근은 박 시장이 제공했다. 박 시장은 지방선거 때 “지역 국회의원들이 광주의 현안 사업인 문화중심도시 예산을 오히려 삭감시켰다”고 주장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여기에 반발, 박 시장을 허위사실에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소했다.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자 내년 국비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김영집 광주클러스터사업단장은 “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추진하려면 국비확보가 절실한데 양측이 갈등과 반목만 일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역 경제계를 대표하는 광주상공회의소도 지난 3월 회장 선거 이후 파행 운영을 거듭하고 있다. 당시 회장 선거에 참여했던 금호그룹은 마형렬 당선자(남양건설 회장)가 불법 선거를 저질렀다며 광주지법에 ‘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선거 무효 소송’을 냈다. 광주상의는 이 때문에 회원이 두 쪽으로 갈리고, 3개월이 넘도록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계, 비리로 ‘몸살’ = 인재 양성을 책임질 교육계는 교육 기자재 납품비리 때문에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8일 교육 기자재 납품비리와 관련, 뇌물을 받은 윤 모 행정실장 등 2명을 구속하고, S중 박 모 교장을 불구속 입건했다. 광주지검 특수부도 지난 4일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광주시 교육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검찰은 이날 압수한 감사 및 예산집행 서류와 A 모 사무관 계좌에 대한 정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계가 비리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자정 노력을 전무하다. 교육계는 오히려 다음달 23일 치러질 교육감 선거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새로운 리더십 ‘절실’ = 시민들은 지역 정·재계·교육계 등이 혼란을 거듭하자 ‘발전의 호기’를 놓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광주는 최근 광산업과 자동차산업 활성화 등으로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고 있다. 지역 정·재계 및 교육계는 새로운 성장 기반이 본 궤도에 올라서도록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 박광서 전남대 교수는 “광산업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정·재계 및 교육계 지도층이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 지역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19
- <신문로>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당연하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당연하다 윤 국 한 (재미 언론인) 서울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20년 넘게 언론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우리 언론에 늘 선정주의와 주관적 감정이 넘치고, 차분하고 객관적인 논점은 너무 모자란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일부 국내언론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뒤섞어 이념투쟁에서 더 나아가 아예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 같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돌려받는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작전통제권은 56년 전 주권국가이긴 하지만 사실상 전쟁수행 능력이 없었던 우리 정부가 한국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급박한 상황에서 한-미 양국군의 긴밀한 작전수행을 위해 미군에 이양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때로부터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세계 12위 경제강국으로 자란 한국이 이를 되찾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자연스런 것이며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북한의 능력이나 남북관계, 한-미 간 변화하는 동맹관계에 비춰볼 때도 당연하고 또 무엇보다 한-미 간에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논리적 일관성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보다는 너무나 명백한 일을 놓고 철저히 이념 내지 정치 투쟁을 벌이다시피 하는 통에 이제 상당수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 이념투쟁 유감 보수언론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논리는 애초에는 그렇게 될 경우 주한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근거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한국의 작전통제권 인수에 대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측 고위 관계자들의 지지와 주한미군 계속 주둔 약속이 나오자 이번에는 다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부담과 국방비가 늘어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언론은 아예 익명의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이라면서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겨주기로 한 것은 ‘한국의 주장에 대해 홧김에 반감으로 나온 역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물론 이 보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고질적 방식, 다시 말해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면 누구의 발언이든 의도적으로 지면을 할애하는 일이 계속되는 건 지나치다. 럼스펠드 장관은 분명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약화하게 된 사례까지 제시하면서 북한이 더 이상 한국에 위협이 아니며, 한국은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 최고책임자가 이 같이 말했으면 언론은 미국이 평가하는 남북한의 군사력이나 북한의 군사력 실태 등을 취재해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념투쟁에 나선 우리 언론은 그러기에는 너무 바쁜 것 같다. 구미에 맞는 내용이 아니면 럼스펠드 아니라 부시의 말이라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사회에 보수와 진보가 있듯이 언론도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면서 각자 자기의 주장을 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수구꼴통’ 운운하며 보수파를 비난하는 이른바 진보진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주권이니 자주니 하면서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 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이번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수구꼴통 운운 보수비판도 문제 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 공개발언을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주권을 되찾는 일로 강조한 것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빼앗은 게 아니라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미군에 넘겼던 것이고, 또 미국은 지난 50여년 간 안보 등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준 가장 가까운 우방이다. 그런데 일부 진보진영은 이런 것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반미에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 해도 언론은 사안의 핵심과 노 정권에 대한 반감을 구분해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1
- <박석무 칼럼>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들 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중등교사들로 역사와 국어과목의 교사가 많았지만, 윤리·미술·체육에서 조경과목의 교사들까지 합세하여 대단한 실학기행이 되었다. 방학기간을 이용한 역사탐방이자 유적지답사의 길고 먼 여행이었다.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다산연구소가 주관한 실학산책 행사의 하나로 펼쳐진 아름답고 값진 기행에는 유명한 교수 6명에 취재기자단이 합해지고 주최측 인사들이 함께하여 도합 53명의 대단한 숫자였다. 국경일인 광복절에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의 다산유적지에서 출발, 수원의 화성을 관람하고 안산의 성호기념관과 묘소를 들른 뒤 예산의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과 묘소에서 조금 짬을 내서 냉수를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일로 남행, 전라북도 부안군 우반동에 있는 반계서당을 찾았다. 유형원·정약전 유적 관리 허술 거기가 어떤 곳인가. 희대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선생이 불후의 역작,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한 곳이 아니던가. 벼슬도 마다하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멀고 먼 산속에 숨어살면서 저술한 나라와 백성을 건질 국가경영의 마스터플랜인 대작, ‘반계수록’이 그곳에서 탄생되었다. 그런 곳인 ‘반계서당’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슬픔과 비탄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창문은 찢겨지고 문짝은 제대로 달려있지 못하고 대롱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나름으로는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사람들인데, 그곳이 그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서있어야 한다니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안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문화재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뿐이랴. 올라가는 길이나 주변의 환경정리도 너무나 허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나라 실학의 비조요 거장인 반계의 유적지가 그렇게 대접받는다면, 다른 유적지야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아찔한 생각만 들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당국을 고발하자고 소리소리 외쳤으나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해가 지는 무렵이었으나 혹독한 더위는 식을 줄을 모르고 덥기만 했다. 다시 차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밤늦게 목포에 도착해 잠을 자고 다음 날은 흑산도 행이다. 대형 페리호에 올라 바닷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정오 무렵에야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의 유배지인 사리(沙里)의 사촌서당(沙村書堂)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또 어떤 곳인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님으로, 큰 죄를 지은 바도 없건만 정치적 모함에 걸려 16년의 억울한 유배살이 끝에, 해배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한없이 억울한 손암이 유배 살던 집이 아닌가. 본디는 ‘복성재(復性齋)’라고도 했지만 책을 쓰고 학동들을 가르치던 곳이어서 마을 이름인 ‘사촌서당’이라고도 불렀다. 희대의 유명한 책, ‘현산어보(玆山魚譜)’가 저작된 곳이 아니던가. 그 무렵이야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인 바다의 물고기를 분류하고 해설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그런 책이 저술된 유서 깊은 유적지, 풍우에 찢겨나간 창문이나 덜렁거리는 문짝을 보며, 우리는 또 비애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안군 당국은 무얼 했으며 관계기관은 무엇을 하는가. 집은 그런대로 튼실하게 지었고 초옥이지만 볼품도 있었지만, 전혀 관리를 하지 않고 있으니 천리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야 어쩌란 말인가. 희대의 실학자가 집필하던 곳이자 시대의 억울함이 서린 그런 역사적 현장이 그처럼 소홀하게 방치되어서야. 더구나 집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의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이어서 너무나 기가 막혔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 미래없다 흑산도라는 매력에, ‘현산어보’의 산실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혹서를 무릅쓰고 천리의 먼 길을 찾아왔건만, 그런 흉가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 되면서, 곳곳에 문화유적지가 복원되며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야단이건만, 어찌하여 부안군과 신안군만은 그 모양 그 꼴인지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귀로에 들른 해남의 ‘녹우당’이나 강진의 ‘다산초당’은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러나 반계서당과 사촌서당에서 느꼈던 슬픔은 좀처럼 가시지 않아 돌아오던 차안에서까지 줄곧 비난의 이야기를 멈추지 못했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 위대한 학자의 업적을 찬양할 줄 모르는 백성들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반계나 손암과 같은 큰 학자들의 업적을 무시하는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오호애재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1
- 흑백에서 초고화질까지 기술개발 속도 빨라져 … 풀HD 시대 성큼 TV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36년 세계 최초의 전자식 TV 조직이 결성되고 영국 BBC 방송국이 매일 2시간의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TV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동안 TV 모양은 배불뚝이 브라운관에서 얇고 평평한 대형 평면화면으로 바뀌었고, 화질도 흑백으로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연색을 100% 재현하는 단계꺼지 발전해왔다. 일반적으로 TV변천사는 크게 흑백TV 시대 (1936~1953년), 컬러 TV시대(1954~1996년), 디지털 TV(1997~ )시대로 구분된다. 국내에서 TV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54년 미국 RCA 한국 대리점에서 20인치 수상기를 공개한 것이 처음이다. 그 뒤 1956년 TV방송국이 개설됐고, 1966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TV 수상기를 제작했다. 또 1972년 정부가 컬러TV 생산계획을 발표하고, 1980년대부터 국내 판매가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TV 개발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게 쫓아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TV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국내 TV가전업체들은 뛰어난 화질을 구현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선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국내에서 디지털 TV가 보급된 것은 200년부터다. 당시는 표준화질 (SD급) 디지털 TV가 50%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을 계기로 고화질(HD급) TV가 일반화되면서 SD급 디지털 TV는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국내시장에서 판매되는 디지털 TV중 90% 가량이 HD급이다. HD급 TV가 본격화된지 3~4년만에 이제 HD급을 넘어선 초고화질(풀HD) 디지털 TV가 등장하고 있다. 풀HD TV는 약 200만화소로 HD급 TV보다 2배, SD급 TV보다 6배 가량 뛰어난 선명한 화질을 구현한다. 그만큼 풀HD TV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스플레이뱅크는 2010년까지 풀HD TV시장이 전체 디지털 TV 시장의 58%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DVD라 불리는 블루레이 DVD에 이어 풀HD를 지원하는 비디오 게임기, 캠코더 등 영상 관련기기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어 풀HD TV시장도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