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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칼럼>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들(2006.09.01) 우리를 슬프게 했던 것들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중등교사들로 역사와 국어과목의 교사가 많았지만, 윤리·미술·체육에서 조경과목의 교사들까지 합세하여 대단한 실학기행 단체가 되었다. 방학기간을 이용한 역사탐방이자 유적지답사의 길고 먼 여행이었다.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다산연구소가 주관한 실학산책 행사의 하나로 펼쳐진 아름답고 값진 기행에는 유명한 교수 6명에 취재기자단이 합해지고 주최측 인사들이 함께하여 도합 53명의 대단한 숫자였다. 국경일인 광복절에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의 다산유적지에서 출발, 수원의 화성을 관람하고 안산의 성호기념관과 묘소를 들러 예산의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과 묘소에서 조금 짬을 내서 냉수를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일로 남행, 전라북도 부안군의 우반동에 있는 반계서당을 찾았다. 거기가 어떤 곳인가. 희대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선생이 불후의 역작,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한 곳이 아니던가. 벼슬도 마다하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멀고 먼 산속에 숨어살면서 저술한 나라와 백성을 건질 국가경영의 마스터플랜인 대작, ‘반계수록’이 그곳에서 탄생되었다. 그런 곳인 ‘반계서당’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슬픔과 비탄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창문은 찢겨지고 문짝까지 제대로 달려있지 못하고 대롱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나름으로는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사람들인데, 그곳이 그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서있어야 한다니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안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문화재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뿐이랴. 올라가는 길이나 주변의 환경정리도 너무나 허술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나라 실학의 비조요 거장인 반계의 유적지가 그렇게 대접받는다면, 다른 유적지야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아찔한 생각만 들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당국을 고발하자고 소리소리 외쳤으나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해가 지는 무렵이었으나 혹독한 더위는 식을 줄을 모르고 덥기만 했다. 다시 차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목포에 늦어서야 도착해 잠을 자고 다음 날은 흑산도 행이다. 대형 페리호에 올라 바닷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정오 무렵에야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의 유배지인 사리(沙里)의 사촌서당(沙村書堂)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또 어떤 곳인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님으로, 큰 죄를 지은 바도 없건만 정치적 모함에 걸려 16년의 억울한 유배살이 끝에, 해배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한없이 억울한 손암이 유배 살던 집이 아닌가. 본디는 ‘복성재(復性齋)’라고도 했지만 책을 쓰고 학동들을 가르치던 곳이어서 마을 이름인 ‘사촌서당’이라고도 불렀다. 희대의 유명한 책, ‘현산어보(玆山魚譜)’가 저작된 곳이 아니던가. 그런 무렵이야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인 바다의 물고기를 분류하고 해설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그런 책이 저술된 유서 깊은 유적지, 풍우에 찢겨나간 창문이나 덜렁거리는 문짝을 보며, 우리는 또 비애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안군 당국은 무얼 했으며 관계기관은 무엇을 하는가. 집은 그런대로 튼실하게 지었고 초옥이지만 볼품도 있었지만, 전혀 관리를 하지 않고 있으니 천리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야 어쩌란 말인가. 희대의 실학자가 집필하던 곳이자 시대의 억울함이 서린 그런 역사적 현장이 그처럼 소홀하게 방치되어서야. 더구나 집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의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이어서 너무나 기가 막혔다. 흑산도라는 매력에, ‘현산어보’의 산실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혹서를 무릅쓰고 천리의 먼 길을 찾아왔건만, 그런 흉가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 되면서, 곳곳에 문화유적지가 복원되며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야단이건만, 어찌하여 부안군과 신안군만은 그 모양 그 꼴인지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귀로에 들른 해남의 ‘녹우당’이나 강진의 ‘다산초당’은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러나 반계서당과 사촌서당에서 느끼던 슬픔은 좀처럼 가시지 않아 돌아오던 차안에서까지 줄곧 비난의 이야기를 멈추지 못했다.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 위대한 학자의 업적을 찬양할 줄 모르는 백성들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반계나 손암과 같은 큰 학자들의 업적을 무시하는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오호애재로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1
- 광주광역시, 도약 향한 비전 없어 제목: 광주광역시, 도약 향한 비전 없어 정·재계·교육계, ‘혼란’ 조장 … 지역발전 ‘담론’에 협력해야 광주광역시 정·재계와 교육계가 총체적 혼란에 빠져있다. 정계를 대표하는 박광태 광주광역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고 지루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돈을 가진 재계 역시 상공회의소 의장 선거를 둘러싸고 법정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인재를 키워야 할 교육계마저 교육 기자재 납품비리 때문에 검찰과 경찰 수사에 홍역을 치루고 있다. 허탈해진 시민들은 “사회 지도층이 지역 발전의 비전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반목과 갈등을 조장 한다”고 정·재계와 교육계를 질타하고 있다. ◆ 정·재계, 감정싸움으로 ‘허송세월’ = 박광태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5·31지방선거 이후 4개월 동안 ‘감정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싸움의 원인은 박 시장이 제공했다. 박 시장은 지방선거 때 “지역 국회의원이 문화중심도시 예산을 오히려 삭감시켰다”고 얘기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여기에 반발, 박 시장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소했다. 양측은 고소 이후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운 채 감정싸움만 거듭하고 있다. 지역 재계를 대표하는 광주상공회의소도 지난 3월 의장 선거 이후 개점 휴업상태에 빠졌다. 당시 의장 선거에 참여했던 금호그룹은 마형렬 당선자(남양건설 회장)가 불법 선거를 저질렀다며 ‘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선거 무효 소송’을 광주지법에 냈다. 광주상의는 양측의 갈등 때문에 회원들이 두 쪽으로 갈리고, 3개월이 넘도록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는 파행을 겪고 있다. ◆ 교육계, 각종 비리로 ‘몸살’ = 지역 교육계는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 4일 시교육청 A사무관이 비자금을 조성, 관리했다는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압수수색을 전격 실시했다. 검찰은 압수한 감사와 예산집행 서류, 계좌추적 등을 통해 A사무관 비리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남지방경찰청도 지난달 25일 광주 모 중학교 교육기자재 납품비리 수사에 착수, 11개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신설학교 교육기자재 납품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S중 교장 등 관련자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수천만원의 뇌물을 건넨 업자 1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시교육청 홈페이지는 납품비리 사건 이후 “철저한 수사를 통해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 초당적 협력기구 필요 = 지역 정·재계와 교육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지역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박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루한 싸움을 지속하자 내년 국비 확보에 빨간불이 커졌다. 시민들은 사회 지도층의 반목과 비리 때문에 광산업과 자동차사업 활성화 등으로 모처럼 조성된 ‘지역발전의 호기’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박광서 전남대 교수는 “금형산업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때 지역 지도층이 개인의 이익 때문에 싸움만 벌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김영집 광주클러스터사업단장은 “선출직은 개인보다 공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지역발전을 위한 초당적 합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주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2006-09-19
- <신문로>내부로부터의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자 내부로부터의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자 정 태 석 (광주은행장) 대제국 로마! 로마는 세계 최강의 군대와 최강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나라로서, 서양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찬란한 발전을 거듭했으며,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재 대제국 로마는 남아있지 않고, 자취만 남아있을 뿐이다. 무엇이 로마의 멸망을 초래했을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여러 가지 견해를 통해 멸망 원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중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Toynbee)의 견해가 눈에 띈다. 그는 도전과 응전의 개념으로 역사적 흥망을 설명하며,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도전을 3가지로 분류하여 로마 멸망에 대해 말한바 있다. 토인비의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3가지 도전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이다. 토인비는 이 3가지 도전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본다면 기후의 변화나 흉년의 연속 등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이요, 오랜 세월에 걸친 게르만 족의 침입 등은 바로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이며, 정작 로마의 멸망을 앞당기게 만든 것은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인 인종의 혼합, 인구의 감소, 나약한 황제, 도덕과 질서의 타락 등이라는 것이다. 제국 내부로부터의 분열과 부패 때문에 로마가 멸망했다는 분석이다. 내부 분열과 부패로 망한 로마 최근 민간 경제 연구소들은 국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의 둔화와 유가급등,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으로 세계 각국의 경기가 침체됨에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경제성장률 하락까지 예상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도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오늘날의 기업과 국가경영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기업도 하나의 조직이며, 앞서 토인비가 말한 바와 같이 끊임없는 도전을 받으며 성장해가고 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가장 큰 원인인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조직을 분열시키고 자멸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 외부의 요소가 아닌 내부요소의 탓이 크다. 즉, 외부의 적은 우리가 미리 인지하여 대비할 수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인 자만심과 현실 안주는 대비하기도 힘들며, 가장 큰 위협요소가 된다. 따라서 조직의 지도자인 CEO는 조직의 가장 무서운 적인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내부의 분열은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하며, 이를 방치하면 결국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조직 전체에, 기업 생존에 직접적인 문제가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인재관리 부분도 내부로부터의 도전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옳다는 이념이 강했지만, 오늘날에는 그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바로 일관된 평등주의 사고의 불평등에 대한 고찰이다. 일관된 평등주의의 불평등성 조직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사회에서 일컫고 있는 평등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도리어 불평등한 조치이다. 일을 잘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오히려 업무효율을 낮추게 되어, 우수한 인재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직원들간에 분열이 발생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은 심각하게 기업경영을 위협하는 요소이므로 CEO를 비롯한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3가지 도전, 즉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을 현명한 판단과 지혜로써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21
- <밥일꿈>청소년 경제교육 강사의 보람과 꿈 청소년 경제교육 강사의 보람과 꿈 안 형 순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차장) 벌써 30년도 지난 오래 전의 일이다. 필자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서 중학과정 야학 교사로 강단에 선 경험이 있다. 당시 야학(‘참 삶 배움의 집’이라 하였다)은 주로 대학생 20여명이 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가르쳤는데 이중 일부 학생이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야학 교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그때의 제자들이 은행 지점장, 학원 강사, 회사 사장 등이 되어 무자격 교사인 필자를 사부님이라 불러 줄 때 그 행복의 크기가 얼마인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난해 봄부터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필자는 다시 청소년 경제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중·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경제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경제 원리나 개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뿐더러 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청소년들이 학창생활을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별 어려움 없이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머지않아 세상의 치열한 경쟁과 거친 파도를 극복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하는 염려를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노하우를 가르치는 심정으로 청소년들의 경제 마인드 함양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경제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주어진 제약조건하에서 어떻게 효용(만족)을 극대화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강의의 주제는 언제나 ‘잘 먹고 잘 살기’(이를 ‘제약조건하에서 행복 극대화하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건강과 자산을 이용하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어찌 한 두 시간으로 다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도 평상시 청소년들이 경제의 흐름과 기본 원칙들을 깨우칠 수 있도록,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의 모든 청소년들이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대로 행복하게, 즐겁게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경제교육 강사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14
- <밥일꿈>청소년 경제교육 강사의 보람과 꿈(안형순 2006.09.14) 청소년 경제교육 강사의 보람과 꿈 안형순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차장 벌써 30년도 지난 오래 전의 일이다. 필자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서울 금호동 달동네에서 중학과정 야학 교사로 강단에 선 경험이 있다. 당시 야학(‘참 삶 배움의 집’이라 하였다)은 주로 대학생 20여명이 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가르쳤는데 이중 일부 학생이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야학 교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보람과 즐거움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그때의 제자들이 은행 지점장, 학원 강사, 회사 사장 등이 되어 무자격 교사인 필자를 사부님이라 불러 줄 때 그 행복의 크기가 얼마인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난해 봄부터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필자는 다시 청소년 경제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중·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경제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경제 원리나 개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뿐더러 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청소년들이 학창생활을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별 어려움 없이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머지않아 세상의 치열한 경쟁과 거친 파도를 극복하고 훌륭한 사회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하는 염려를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노하우를 가르치는 심정으로 청소년들의 경제 마인드 함양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경제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주어진 제약조건하에서 어떻게 효용(만족)을 극대화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강의의 주제는 언제나 ‘잘 먹고 잘 살기’(이를 ‘제약조건하에서 행복 극대화하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건강과 자산을 이용하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어찌 한 두 시간으로 다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도 평상시 청소년들이 경제의 흐름과 기본 원칙들을 깨우칠 수 있도록,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그리하여 장차 우리의 모든 청소년들이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대로 행복하게, 즐겁게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경제교육 강사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14
- 9·11테러 5주년 ‘돌아선 미 국민 민심’ 5년전-단합과 애국심으로 극복 5주년-테러전쟁 승리회의론 팽배 9·11테러사태 5주년을 맞은 미 국민 사이에 테러에 대한 불안과 정부불신, 전쟁승리 회의론을 확산되고 있다. 5년 전 단합과 애국심으로 테러공포를 극복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관련기사 6면 ◆미국민 불만 폭발 직전 = 9·11 테러공격 5주년을 맞은 11일 미국민들의 민심은 롤러 코스터와 같다. 5년 전 미국민들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공포와 공황상태에 빠졌다. 미국민은 곧바로 성조기 아래 뭉치고 애국주의 물결속에 하나가 되어 국난극복 의지를 보였다. 세월이 흐르며 지울수 없는 상흔은 남았지만 공포감도 걷혔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06년 9월 11일, 미국민들은 새로운 불안감과 불만, 불신을 겪고 있다. 테러분자들이 언제든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불안은 높아지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강행해 재앙을 자초했다는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 나아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으며, 지구촌에서 더이상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까지 느끼고 있다. ◆이라크사태로 민심이반 가속 = 테러 발생 5년만에 미국을 다시 분열시키고 미국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킨 것은 역시 이라크 전쟁 강행과 이라크 사태 악화다. 절반의 대통령, 법원 대통령 소리를 들으며 백악관주인이 된 조지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직후 국난 극복을 지휘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80~9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적인 지지기반마저 잃어버린 30% 대통령으로 추락했다. 테러분자 소탕 보다는 사담 후세인 제거에 치중했고, 대책없는 이라크침공으로 미군희생만 급증하는 재앙을 자초했다는 미국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2003년 3월 20일 이후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미군 2655명이 목숨을 잃고 2만명이 부상했으며 전비는 4000억 달러나 들어갔다. 지난 5년간 국토안보 예산이 2000억 달러인데 비해 이라크 전비는 3년간 그 두배를 쏟아부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라크사태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때문에 미본토가 테러를 당하지 않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에 동조하는 여론은 날로 감소하고 있다 CNN 조사 결과 이라크가 테러전쟁의 중심이라는 부시 주장에 동조한 여론은 45%인데 비해 반박한 여론은 53%로 더 많았다. 이라크 전쟁이 가치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미국민들은 39%인 반면 가치 없다는 국민은 59%나 됐다. ◆테러전쟁 불구, 테러는 확산 = 테러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테러행위는 전세계로 확산됐으며 이른바 불량국가보다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국 대신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 인도네시아 발리 등지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가 속출했기 때문에 오히려 테러 공포를 전세계로 확산시켰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10일자 인터넷판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4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적과 아를 합쳐 18만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편에 섰던 스페인의 살리나스 정권이 교체됐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권좌에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1월 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9·11테러를 이용하는 안보선거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당 자리를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미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워싱턴= 한면택 특파원 han5907@ao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11
- <김정환 칼럼>농담의 역사 농담의 역사 김정환 (시인) 농담을 아는 대통령을 갖는 나라 국민은 행복하다. 국가통치라는 말의 각질을 대통령의 농담은 일순 벗겨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농담을 알았지만, 할 수 없었다. 해방 전후 행각을 배경으로, 정부 수립 후 ‘국부’와 치매의 격차 속에서 대통령 이승만이 농담할 여지는 없었다. 백범 김구가 대통령이었다면 만델라처럼, 농담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문화국가를 희망했고 농담은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농담을 몰랐다. 일제 정보장교를 지내고 해방 후 여순반란 주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경제와 공포의 규모를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늘린 그의 생애는, 집권 이전에도, 농담의 여지가 없다. 지지부진한 블랙 코미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DMZ 철책이 뚫리면 군대는 비상이 걸리고 다른 부대 5분대기조까지 긴급 투입되었다. 이것은 당연하다. 침투 간첩 한명을 못 잡으면 그 지역 사단장은 물론이고 군단장까지, 심지어 군사령관까지 모가지가 날아가던 때다. 사병들을 모아놓고 사단장이 독려하며 복창케 한다. ‘공비는 밤에도 수십킬로를 이동한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오줌도 누지 마라…. 하지만 이 복창 훈련은 역효과를 냈다. 사병들은 오히려 그 슈퍼공비에 오금만 저렸다. 이것은 당연하고, 며칠이 지나 지휘관들은 복창 내용을 바꾼다. 적은 지금 지쳤다. 한방에 때려눕힐 수 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고, 죽음보다 지지부진한 블랙코미디다. 이때 농담 및 문화와 정치 사이는 가장 멀다. 한마디로 박 전 대통령의 악화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농담을 몰랐을 것은 당연하다. 농담의 영혼마저 사라지고, 문화에도 천민자본주의가 깊고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의 시대는 대통령에 대한 조소 전통을 낳았다. 그리고, 막강하고 피비린내나는 권력에 대한 조소는 자기 거세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농담을 아는 것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각료들이 모두 노타이 차림으로 둥근 탁자에 앉아 회의를 하는 장면은 농담의 권위 혹은 성역마저 무너트리는 수준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내가 보기에, 가장 개혁적이었으나, 그들은 아마도 대통령의 농담을 막느라, 혹은 실수와 무지를 농담으로 위장하느라 많은 시간을 아깝게도 낭비했을 것이다. 그의 성명 내용을 보살피고, 발표 상황을 보살피는 참모진은 비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가 보기에, 해방 후 경륜과 식견이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지만, 농담을 하기에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쟁한 세월이 너무 길었고, 대선 시험을 너무 여러 번 치렀고 측근 혹은 가신에 대한 빚이 많았다. 너무 오래 보스를 모신 가신들은 당연히 조폭을 닮아간다. 김현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륜 미숙의 결과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은 갚아야할 빚이 너무 큰 결과였다. 농담의, 혹은 농담 부재의 역사만 일별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만큼 행운아는 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대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을 점치는 자가 `노빠`들 사이에서도 드물었으니, 그의 당선은 어느 걸작 드라마보다 극적이었고 빚이 없었다. 사회의식은 있으되 육체적 민주화운동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는 팔자는 비켜선 젊은 전문가 및 시민운동 그룹이 그의 곁에 있었으므로, 참모 운도 좋았다. 이 모든 것은 농담의 여지를, 정말 극적으로 창조하고 넓힌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은 농담의 여유는 물론 의지도 있어 보였다. 말과 서민 얕잡아본 참여정부 그러나 그 결과는, 이미 암담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청와대 홍보실은 연일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고, 진담이 아니라 농담이라고, 해명하는데 홍보 업무의 절반을 할애하는 지경이다. 대통령 패러디 코미디의 범람은 물론 말의 민주화를, 연예인 한류는 물론 `몸의 민주화`를 상당부분 시사한다. 하지만 농담은 가장 의사소통적인 문화 중 하나고, 의사소통이야 말로 문화의 질을 높이는 최적 경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진담 같은 농담 혹은 농담 같은 진담은 갈수록, 연예언어에 `포섭`된다. 연예 언어라고 무조건 저질적일 리는 없지만, 연예에 포섭된 정치 언어는 당연히 끔찍하다. 돌이켜보면 탄핵 소동은 이 모든 것을 돌이킬 수없이 악화시켰다. 문제들이 긴박하게 난무하고 정부는 안심하라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린다. 현정권은 `서민풍을 빙자, 말과 서민을 모두 얕잡아본 죄가 무엇보다 크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7
- <기고>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무덥던 여름이 엊그제였는데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세월의 흐름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아침마다 깨닫는다. 정부의 정책도 흐름과 맥이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범정부적 차원의 ‘장애인지원 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비록 일부에서 ‘알맹이 없는 정책’이라든지, ''''생색 내기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책이야 말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종합대책을 통하여 장애인 복지 재정이 대폭 확충된다. 현재 장애인 복지예산은 GDP대비 0.27%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이 이미 90년대에 1~2%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은 선진국의 1/4~1/8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점에서 이번 대책을 통해 4년간 1조원 5천억 이상의 재원이 장애인 복지에 추가로 투입된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요구와 어려운 형편의 장애인에 대하여 사회가 함께 돌아본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복지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기존의 장애인 복지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 진 점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의 대책들은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 져, 개별 장애인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이번 대책은 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함과 아울러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본인이 선택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 정책에 대한 관심이 복지부 차원을 넘어서 전 정부 부처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와 같이 이번 대책의 첫 출발은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마라톤을 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다룬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관람한 때부터이다. 많은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장애인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9개 부처가 모여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부처가 한자리에 모여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하여 현실 진단에서부터 장기적인 발전방안 까지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였다. 이를 통해 소득보장, 교육, 의료 등을 망라하여 3개 영역, 13개 세부 추진과제가 마련되었다. 물론 장애인 단체와 현장 방문을 통하여 장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었다. 장애인들의 욕구 수준에 비하면, 이번 대책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애인들의 욕구를 100% 충족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 대책은 완결판이 아니라 제2, 제3의 대책이 잇달아 나올 수 있는 기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번 종합대책은 2010년까지의 계획을 담고 있으며, 내년부터 집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예산도 준비되어 있다. 세부적인 실행 계획도 차질없이 추진될 것이다. 장애인 정책, 국민 모두를 위한 것 이 땅에 사는 모든 장애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 10명중 9명이 사고나 질병에 의한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다. 이점에서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야 말로 장애인 복지 발전의 출발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200만 장애인들이 아무런 차별없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장애인이 더 이상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장애인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이웃이며, 나아가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노 길 상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관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7
- <김정환 칼럼>농담의 역사(2006.09.07) 농담의 역사 농담을 아는 대통령을 갖는 나라 국민은 행복하다. 국가통치라는 말의 각질을 대통령의 농담은 일순 벗겨준다. 이승만은 농담을 알았지만, 할 수 없었다. 해방 전후 행각을 배경으로, 정부 수립 후 ‘국부’와 치매의 격차 속에서 대통령 이승만이 농담할 여지는 없었다. ‘대통령’ 김구는, 만델라처럼, 농담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문화국가를 희망했고 농담은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박정희는 농담을 몰랐다. 일제 정보장교를 지내고 해방 후 여순반란 주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경제와 공포의 규모를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늘린 그의 생애는, 집권 이전에도, 농담의 여지가 없다. 박정희 때 DMZ 철책이 뚫리면 군대는 비상이 걸리고 다른 부대 5분대기조까지 긴급 투입되었다. 이것은 당연하다. 침투 간첩 한명을 못 잡으면 그 지역 사단장은 물론이고 군단장까지, 심지어 군사령관까지 모가지가 날아가던 때다. 사병들을 모아놓고 사단장이 독려하며 복창케 한다. ‘공비는 밤에도 수십킬로를 이동한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오줌도 누지 마라… 하지만 이 복창 훈련은 역효과를 냈다. 사병들은 오히려 그 슈퍼공비에 오금만 저렸다. 이것은 당연하고, 며칠이 지나 지휘관들은 복창 내용을 바꾼다. 적은 지금 지쳤다. 한방에 때려눕힐 수 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고, 죽음보다 지지부진한 블랙코미디다. 이때 농담 및 문화과 정치 사이는 가장 멀다. 한마디로 박정희의 악화였던 전두환이 농담을 몰랐을 것은 당연하다. 농담의 영혼마저 사라지고, 문화에도 천민자본주의가 깊고 깊은 부리를 내렸다. 그의 시대는 대통령에 대한 조소 전통을 낳았다. 그리고, 막항하고 피비린 권력에 대한 조소는 자기 거세적이다. 노태우 는 농담을 아는 것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각료들이 모두 노타이 차림으로 둥근 탁자에 앉아 회의를 하는 장면은 농담의 권위 혹은 성역마저 무너트리는 수준이었다. 김영삼 의 참모들은, 내가 보기에, 가장 개혁적이었으나, 그들은 아마도 대통령의 농담을 막느라, 혹은 실수와 무지를 농담으로 위장하느라 많은 시간을 아깝게도 낭비했을 것이다. 그의 성명 내용을 보살피고, 발표 상황을 보살피는 참모진은 비대했다. 김대중 은, 내가 보기에, 해방 후 경륜과 식견이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지만, 농담을 하기에는 그가 박정희 와 경쟁한 세월이 너무 길었고, 대선 시험을 너무 여러 번 치렀고 측근 혹은 가신에 대한 빚이 많았다. 너무 오래 보스를 모신 가신들은 당연히 조폭을 닮아간다. 김현철 이 김영삼 의 경륜 미숙의 결과라면, 김대중 의 두 아들은 갚아야할 빚이 너무 큰 결과였다. 농담의, 혹은 농담 부재의 역사만 일별하더라도, 노무현 만큼 행운아는 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대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노무현 의 대통령 당선을 점치는 자가 `노빠`들 사이에서도 드믈었으니, 그의 당선은 어느 걸작 드라마보다 극적이었고 빚이 없었다. 사회의식은 있으되 육체적 민주화운동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는 팔자는 비켜선 젊은 전문가 및 시민운동 그룹이 그의 곁에 있었으므로, 참모 운도 좋았다. 이모든 것은 농담의 여지를, 정말 극적으로 창조하고 넓힌다.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은 농담의 여유는 물론 의지도 있어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미 암담하다. 노무현 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청와대 홍보실은 연일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고, 진담이 아니라 농담이라고, 해명하는데 홍보 업무의 절반을 할애하는 지경이다. 대통령 패러디 코메디의 범람은 물론 말의 민주화를, 연예인 한류는 물론 `몸의민주화`를 상당부분 시사한다. 하지만 농담은 가장 의사소통적인 문화 중 하나고, 의사소통이야 말로 문화의 질을 높이는 최적 경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진담 같은 농담 혹은 농담 같은 진담은 갈수록, 연예언어에 `포섭`된다. 연예 언어라고 무조건 저질적일 리는 없지만, 연예에 포섭된 정치 언어는 당연히 끔찍하다. 돌이켜보면 탄핵 소동은 이 모든 것을 돌이킬 수없이 악화시켰다. 문제들이 긴박하게 난무하고 정부는 안심하라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린다. 현정권은 `서민풍을 빙자, 말과 서민을 모두 얕잡아본 죄가 무엇보다 크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7
- 50대 눈밑 지방 제거 선호 평균수명이 늘면서 50, 60대는 예전과 달리 인생의 반환점을 은지 얼마 안된 시기이다. 하지만 마음은 청춘인데 피부는 청춘을 잃었다. 젊은 시절 ‘한 미모’ 했다는 사람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거울을 볼 때마다 탄력을 잃고 주름진 얼굴이 서글프다. 나이가 들면 특히 얼굴에 표시가 많이 난다. 윗 눈꺼풀이 늘어지면서 그나마 있던 쌍꺼풀도 파묻힌다. 눈밑 지방이 불룩해지면서 아래로 처지고 마른 사람은 볼살이 빠져 뺨이 움푹 들어가 보이기도 한다. 나이 들수록 성형만족도 높다 60세의 송영숙(안산 거주)씨는 최근 들어 거울 보는 일이 즐겁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거울을 볼 때마다 서글퍼하던 송씨는 요즘 거울 앞에 더 자주 앉는다. 쌍꺼풀 수술 한지 석 달째, 이제 자연스럽게 쌍꺼풀 자리가 잡혔다. 쌍꺼풀수술 할 때 눈아래쪽에 처져있던 지방층도 제거했다. 눈 위는 아직 붉은 기가 좀 남아 있지만 눈 밑은 수술 흔적 없이 말끔하게 나았다. 송씨는 “눈 성형을 하고 나니 눈도 시원해지고 젊어 보여 마음도 젊어진 기분이다”고 했다. 최근 들어 50대 이상 여성이 성형을 많이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성형률이 높아지고 있다. 쌍꺼풀을 하거나 눈밑 지방을 제거하면 당장 젊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일수록 성형에 만족도가 더 높다. 쌍꺼풀, 눈밑 지방 제거, 얼굴 미세지방이식술 등은 50대 이상이 가장 선호하는 성형수술이다. 나이들면 윗 눈꺼풀 늘어져 나이가 들면 윗 눈꺼풀(상안검)이 늘어나면서 있던 쌍꺼풀도 파묻히고 눈이 처진다. 눈꺼풀이 처지면서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쌍꺼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처진 눈꺼풀, 지방층이 많은 눈은 절개법을 이용한다. 절개법은 가장 일반적인 수술로 피부를 가르고 처진 눈꺼풀을 잘라내고 지방을 제거한 다음 시술하는 것이다. 눈꺼풀이 너무 두텁거나, 전에 쌍꺼풀을 했는데 인상이 강하게 보이는 사람은 눈썹 위를 절개하는 시술로 쌍꺼풀을 위로 당겨 올려주는 방법도 있다. 수술을 하고 나면 부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불그레한 기운이 남는다. 상처가 안정화되면 붉은 기운도 사라지는데 그때까지 3개월 정도 걸린다. 눈밑 지방층 제거 수술은 가장 빨리 만족감을 느끼는 수술이다. 눈아래 부분을 잘라 지방을 뽑고 늘어진 근육과 피부를 잘라낸다. 수술하는 동안은 수면마취를 하기 때문에 통증은 못느낀다. 미세지방이식술 각광 미세지방이식술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아랫배, 허벅지, 옆구리 등 그 사람의 몸에서 추출해낸 지방을 농축시켜 다시 얼굴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입가 팔자주름, 살이 없어 꺼진 관자놀이부위, 움푹 패인 볼살로 고민할 때 미세지방이식술은 아주 효과적이다. 수술 후에는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젊은 시절의 얼굴로 되돌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지방이식술 후 세포의 생착률이 낮아 3차례 이상 수술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시술 한번으로도 만족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의술의 발달로 지방세포 생착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세지방이식술은 살이 급격히 빠지지 않는 효과로 반영구적인 시술이다. 예전에 비해 비용도 저렴해졌다. 운동을 해서 생체나이는 젊은데 얼굴이 나이를 못 속이는 50~60대. 주름진 얼굴을 볼 때마다 삶이 우울하다면 성형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성형을 안 해도 되는데 자꾸 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올 때는 참 안타깝다”면서 “하지만 성형을 해서 삶에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나머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50∼60대의 성형은 긍정적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