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오피니언기고>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노길상 2006.09.07)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노길상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관 무덥던 여름이 엊그제였는데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세월의 흐름은 우리의 생각이나 느낌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아침마다 깨닫는다. 정부의 정책도 흐름과 맥이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범정부적 차원의 ‘장애인지원 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비록 일부에서 ‘알맹이 없는 정책’이라든지, ''생색 내기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책이야 말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종합대책을 통하여 장애인 복지 재정이 대폭 확충된다. 현재 장애인 복지예산은 GDP대비 0.27%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이 이미 90년대에 1~2%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은 선진국의 1/4~1/8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점에서 이번 대책을 통해 4년간 1조원 5천억 이상의 재원이 장애인 복지에 추가로 투입된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요구와 어려운 형편의 장애인에 대하여 사회가 함께 돌아본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복지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기존의 장애인 복지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 진 점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의 대책들은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 져, 개별 장애인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이번 대책은 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함과 아울러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본인이 선택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 정책에 대한 관심이 복지부 차원을 넘어서 전 정부 부처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와 같이 이번 대책의 첫 출발은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마라톤을 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다룬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관람한 때부터이다. 많은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들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장애인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9개 부처가 모여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부처가 한자리에 모여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하여 현실 진단에서부터 장기적인 발전방안 까지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였다. 이를 통해 소득보장, 교육, 의료 등을 망라하여 3개 영역, 13개 세부 추진과제가 마련되었다. 물론 장애인 단체와 현장 방문을 통하여 장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었다. 장애인들의 욕구 수준에 비하면, 이번 대책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애인들의 욕구를 100% 충족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 대책은 완결판이 아니라 제2, 제3의 대책이 잇달아 나올 수 있는 기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번 종합대책은 2010년까지의 계획을 담고 있으며, 내년부터 집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예산도 준비되어 있다. 세부적인 실행 계획도 차질없이 추진될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장애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 10명중 9명이 사고나 질병에 의한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다. 이점에서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야 말로 장애인 복지 발전의 출발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200만 장애인들이 아무런 차별없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장애인이 더 이상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아니라 장애인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이웃이며, 나아가 희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7
- “전통공예기술 포기 못해” 백골제작 40년 배영규씨 기능전승자 선정 산업인력공단, 올해도 5명 뽑아 활동 지원 “조상들이 오랜 세월동안 가꿔온 훌륭한 기술입니다. 남들은 중간에 다 포기했지만, 그 기술이 너무 좋아 버릴 수 없었습니다.” 5일 ‘2006년도 기능전승자 5인’에 선정된 백골제작자 배영규(55·서울 불광동)씨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기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백골(白骨)은 나전칠기, 화각공예 등 목공예에 쓰이는 골격 제작기능으로 못이나 금속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배씨는 1951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배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그를 지켜본 친척의 권유를 맡으면서부터다. 14살때 그는 전남 함평지방에 유명한 소목장인 장진섭씨 공방에서 수련을 쌓기 시작했고, 40년이 넘는 동안 나무를 가지고 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매달려왔다. 배씨는 다른 장인들과는 달리 상업성이 강한 물건보다는 작품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한 백골제작에 전념했다. 그 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숙련했고, 그 결과 ‘한국옻칠공예작품 공모전’에서 3회나 입상(90~92)했다. 1992년부터는 지금의 작업실겸 연구실인 ‘일송공방’을 설립해 백골제작과 관련된 소목공예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기법의 장점을 가미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배씨는 “아직 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재료가 너무 비싸 연구하기가 어렵지만 나무 성질에 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배씨에 대해 “나무특성과 구조적 이해를 겸비한 보기드문 장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김용달)은 배씨 이외에 민족고유의 전통기능을 계승·발전시켜온 5개 분야 장인을 ‘2006년도 기능전승자’로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기능전승자는 △전통빗자루제작에 이동균(65)씨 △낙죽에 조운창(62)씨 △배첩에 조경실(49)씨 △화살제작에 김병욱(44)씨 등이다. 이들에게는 5년간 매월 80만원씩의 기능전승지원금이 지급되고 노동부장관 명의의 기능전승자 증서와 흉장이 수여된다. 또 기능전승활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능전승자로부터 기능을 전수받는 기능계승자도 함께 선정해 이들에게도 매월 20만원씩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 95년부터 총 61개 종목에서 74명의 기능전승자를 선정하는 등 기능전승 활동을 적극 지원해오고 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5
- “전통공예기술 포기 못해요”(사진2장) 백골제작 40년 배영규씨 기능전승자에 선정 산업인력공단, 올해도 5명 뽑아 활동 지원 “조상들이 오랜 세월동안 가꿔온 훌륭한 기술입니다. 남들은 중간에 다 포기했지만, 그 기술이 너무 좋아 버릴 수 없었습니다.” 5일 ‘2006년도 기능전승자 5인’에 선정된 백골제작자 배영규(55・서울 불광동)씨는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기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백골(白骨)은 나전칠기, 화각공예 등 목공예에 쓰이는 골격 제작기능으로 못이나 금속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배씨는 1951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배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그를 지켜본 친척의 권유를 맡으면서부터다. 14살때 그는 전남 함평지방에 유명한 소목장인 장진섭씨 공방에서 수련을 쌓기 시작했고, 40년이 넘는 동안 나무를 가지고 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매달려왔다. 배씨는 다른 장인들과는 달리 상업성이 강한 물건보다는 작품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한 백골제작에 전념했다. 그 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숙련했고, 그 결과 ‘한국옻칠공예작품 공모전’에서 3회나 입상(90~92)했다. 1992년부터는 지금의 작업실겸 연구실인 ‘일송공방’을 설립해 백골제작과 관련된 소목공예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기법의 장점을 가미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배씨는 “아직 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재료가 너무 비싸 연구하기가 어렵지만 나무 성질에 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배씨에 대해 “나무특성과 구조적 이해를 겸비한 보기드문 장인”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배씨 이외에 민족고유의 전통기능을 계승・발전시켜온 5개 분야 장인을 ‘2006년도 기능전승자’로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기능전승자는 △전통빗자루제작에 이동균(65)씨 △낙죽에 조운창(62)씨 △배첩에 조경실(49)씨 △화살제작에 김병욱(44)씨 등이다. 이들에게는 5년간 매월 80만원씩의 기능전승지원금이 지급되고 노동부장관 명의의 기능전승자 증서와 흉장이 수여된다. 또 기능전승활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능전승자로부터 기능을 전수받는 기능계승자도 함께 선정해 이들에게도 매월 20만원씩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 95년부터 총 61개 종목에서 74명의 기능전승자를 선정하는 등 기능전승 활동을 적극 지원해오고 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4
- <신문로 칼럼>(윤국한 2006.09.01) 윤국한 (재미 언론인) 서울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20년 넘게 언론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큰 자괴감을 느낀다. 나는 우리 언론에 늘 선정주의와 주관적 감정이 넘치고, 차분하고 객관적인 논점은 너무 모자란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에 일부 국내언론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뒤섞어 이념투쟁에서 더 나아가 아예 정치투쟁을 벌이는 것 같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돌려받는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작전통제권은 56년 전 주권국가이긴 하지만 사실상 전쟁수행 능력이 없었던 우리 정부가 한국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급박한 상황에서 한-미 양국군의 긴밀한 작전수행을 위해 미군에 이양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때로부터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세계 11위 경제강국으로 자란 한국이 이를 되찾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자연스런 것이며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북한의 능력이나 남북관계, 한-미 간 변화하는 동맹관계에 비춰볼 때도 당연하고 또 무엇보다 한-미 간에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논리적 일관성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보다는 너무나 명백한 일을 놓고 철저히 이념 내지 정치 투쟁을 벌이다시피 하는 통에 이제 상당수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보수언론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논리는 애초에는 그렇게 될 경우 주한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근거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한국의 작전통제권 인수에 대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측 고위 관계자들의 지지와 주한미군 계속 주둔 약속이 나오자 이번에는 다시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부담과 국방비가 늘어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언론은 아예 익명의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이라면서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겨주기로 한 것은 ‘한국의 주장에 대해 홧김에 반감으로 나온 역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었다. 그리고는 “솔직히, 북한을 한국의 당면한 군사적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발언이 나오자 이번에는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한 군사전문가의 분석을 보도했다. 물론 이 보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고질적 방식, 다시 말해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면 누구의 발언이든 의도적으로 지면을 할애하는 일이 계속되는 건 지나치다. 럼스펠드 장관은 분명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약화하게 된 사례까지 제시하면서 북한이 더 이상 한국에 위협이 아니며, 한국은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 최고책임자가 이 같이 말했으면 언론은 미국이 평가하는 남북한의 군사력이나 북한의 군사력 실태 등을 취재해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념투쟁에 나선 우리 언론은 그러기에는 너무 바쁜 것 같다. 구미에 맞는 내용이 아니면 럼스펠드 아니라 부시의 말이라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사회에 보수와 진보가 있듯이 언론도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면서 각자 자기의 주장을 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수구꼴통’ 운운하며 보수파를 비난하는 이른바 진보진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주권이니 자주니 하면서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듯 한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는 이번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 공개발언을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주권을 되찾는 일로 강조한 것은 지나쳤다고 본다.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빼앗은 게 아니라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미군에 넘겼던 것이고, 또 미국은 지난 50여년 간 안보 등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준 가장 가까운 우방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은 이런 것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반미에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 해도 언론은 사안의 핵심과 노 정권에 대한 반감을 구분해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9-01
- <기고>‘새만금’은 국가발전의 원동력 될 것 수년간 지속된 찬반논쟁, 두 차례에 걸친 공사 중단과 재개.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 등 새만금사업은 많은 시련을 딛고 금년 4월 방조제 공사 착공 15년 만에 모든 연결공사가 완료되어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 회고해보면 지난해 12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새만금은 환경과 개발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치의 우월을 두느냐는 철학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국토이용계획을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보다 국가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정책선택의 문제”라고 밝힌 바와 같이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과 지혜가 모아진다면 새만금은 얼마든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든든한 터전이 될 것이다. 어디를 가든 동화처럼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네덜란드는 연간 화훼 수출량 세계 1위, 유제품 수출량 세계 3위라는 수치가 말해 주듯 전 세계 화훼시장과 낙농업을 석권하고 있는 선진 농업 국가이다. 그러나 농업부국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북해의 시련과 맞서 싸워 온 ‘개척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이 “신이 지구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국토의 60%를 간척을 통해 조성하였다. 대표적인 간척지가 20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며 새만금의 4배에 달하는 16만5000ha 토지를 조성한 쥬다찌 지구와 1953년 1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 홍수 이후 대대적인 제방축조와 댐 건설로 국민의 생명과 토지를 지켜 낸 델타지구를 들 수 있다. 이렇게 조성된 토지와 호수는 네덜란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철저한 수질관리와 농지보호 정책으로 치즈, 연유, 버터 등의 유제품 생산량과 수출량은 세계최고 수준이며 건강한 풀을 먹고 자란 소 한 마리의 우유 생산량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도시와 도시 사이 혹은 도시와 농지 사이에 자연경관을 맘껏 감상하며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쥬다찌 지구 내에 자연보호구역인 내추럴 파크를 조성하여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가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잊지 않고 지켜오면서 경제적 풍요는 물론 자연과의 공존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새만금을 개발하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날 갈등의 모델이었던 새만금사업은 방조제 완공을 기점으로 새로운 발전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갈등을 넘어 화합의 모델,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 수질문제 해결과 친환경적 개발이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환경기초시설과 축산분뇨처리시설 등 수질개선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고,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를 통한 점검·평가와 함께 보완대책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되고 있어 수질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것이다. 세계 최대 33km 방조제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고군산 군도가 함께 한 새만금. 새만금의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새롭게 탄생된 1억2000만평의 내부개발지는 미래농업을 실현하는 초우량 농지와 함께 생태공원, 철새관찰시설, 습지공원, 간척박물관 등 다양한 친환경 휴양·관광공간이 계획대로 착실히 조성된다면 세계적인 명품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우리 후손들은 새만금을 한국 간척역사의 ‘금자탑’이라 지칭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우리는 개발과 환경을 두고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이 두 가지의 소중한 가치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네덜란드와 같이 새만금간척지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여 미래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먼 훗날 후손들이 새만금을 보며 지금 우리세대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길 기대해 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31
- TV화질 어떻게 변해왔나 기술개발 속도 빨라져 … 풀HD 시대 성큼 TV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36년 세계 최초의 전자식 TV 조직이 결성되고 영국 BBC 방송국이 매일 2시간의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TV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동안 TV 모양도 배불뚝이 브라운관에서 얇고 평평한 대형 평면화면으로 바뀌었고, 화질도 흑백으로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연색을 100% 재현하는 단계꺼지 발전해왔다. 일반적으로 TV변천사는 크게 흑백TV 시대 (1936~1953년), 컬러 TV시대(1954~1996년), 디지털 TV(1997~ )시대로 구분된다. 국내에서 TV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54년 미국 RCA 한국 대리점에서 20인치 수상기를 공개한 것이 처음이다. 그 뒤 1956년 TV방송국이 개설됐고, 1966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제작한 TV 수상기를 내놓았다. 또 1972년 정부가 컬러TV 생산계획을 발표하고, 1980년대부터 국내 판매가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TV 개발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게 쫓아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TV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국내 TV가전업체들은 뛰어난 화질을 구현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선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국내에서 디지털 TV가 보급된 것은 200년부터다. 당시는 표준화질 (SD급) 디지털 TV가 50%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을 계기로 고화질(HD급) TV가 일반화되면서 SD급 디지털 TV는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국내시장에서 판매되는 디지털 TV중 90% 가량이 HD급이다. HD급 TV가 본격화된지 3~4년만에 이제 HD급을 넘어선 초고화질(풀HD) 디지털 TV가 등장하고 있다. 풀HD TV는 약 200만화소로 HD급 TV보다 2배, SD급 TV보다 6배 가량 뛰어난 선명한 화질을 구현한다. 그만큼 풀HD TV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스플레이뱅크는 2010년까지 풀HD TV시장이 전체 디지털 TV 시장의 58%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DVD라 불리는 블루레이 DVD에 이어 풀HD를 지원하는 비디오 게임기, 캠코더 등 영상 관련기기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어 풀HD TV시장도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31
- ‘새만금’은 국가발전의 원동력 될 것 수년간 지속된 찬반논쟁, 두 차례에 걸친 공사 중단과 재개.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 등 새만금사업은 많은 시련을 딛고 금년 4월 방조제 공사 착공 15년 만에 모든 연결공사가 완료되어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 회고해보면 지난해 12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새만금은 환경과 개발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치의 우월을 두느냐는 철학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국토이용계획을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보다 국가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정책선택의 문제”라고 밝힌 바와 같이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과 지혜가 모아진다면 새만금은 얼마든지 국가의 발전을 위한 든든한 터전이 될 것이다. 어디를 가든 동화처럼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네덜란드는 연간 화훼 수출량 세계 1위, 유제품 수출량 세계 3위라는 수치가 말해 주듯 전 세계 화훼시장과 낙농업을 석권하고 있는 선진 농업 국가이다. 그러나 농업부국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북해의 시련과 맞서 싸워 온 ‘개척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이 “신이 지구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국토의 60%를 간척을 통해 조성하였다. 대표적인 간척지가 20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며 새만금의 4배에 달하는 16만5000ha 토지를 조성한 쥬다찌 지구와 1953년 17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 홍수 이후 대대적인 제방축조와 댐 건설로 국민의 생명과 토지를 지켜 낸 델타지구를 들 수 있다. 이렇게 조성된 토지와 호수는 네덜란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철저한 수질관리와 농지보호 정책으로 치즈, 연유, 버터 등의 유제품 생산량과 수출량은 세계최고 수준이며 건강한 풀을 먹고 자란 소 한 마리의 우유 생산량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도시와 도시 사이 혹은 도시와 농지 사이에 자연경관을 맘껏 감상하며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쥬다찌 지구 내에 자연보호구역인 내추럴 파크를 조성하여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가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잊지 않고 지켜오면서 경제적 풍요는 물론 자연과의 공존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새만금을 개발하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날 갈등의 모델이었던 새만금사업은 방조제 완공을 기점으로 새로운 발전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갈등을 넘어 화합의 모델,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 수질문제 해결과 친환경적 개발이다.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환경기초시설과 축산분뇨처리시설 등 수질개선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를 통한 점검·평가와 함께 보완대책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되고 있어 수질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것이다. 세계 최대 33km 방조제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고군산 군도가 함께 한 새만금. 새만금의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새롭게 탄생된 1억2000만평의 내부개발지는 미래농업을 실현하는 초우량 농지와 함께 생태공원, 철새관찰시설, 습지공원, 간척박물관 등 다양한 친환경 휴양·관광공간이 계획대로 착실히 조성된다면 세계적인 명품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우리 후손들은 새만금을 한국 간척역사의 ‘금자탑’이라 지칭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우리는 개발과 환경을 두고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이 두 가지의 소중한 가치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네덜란드와 같이 새만금간척지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여 미래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먼 훗날 후손들이 새만금을 보며 지금 우리세대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길 기대해 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31
- <임춘웅 칼럼>용산 역사공원 선포식을 보고 용산 역사공원 선포식을 보고 임춘웅 (본지 객원 논설위원) 정부는 지난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란 색다른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대통령은 물론 3부요인이 두루 참석해 용산공원화 사업의 역사적 의미를 기렸다. 공원 하나를 만드는 데 3부요인이 대거 참석하고 거기에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정부는 용산기지 반환에 담겨있는 의미가 자못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원화 사업 선포식을 24일 갖게 된 것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들어온 게 1882년 8월24일 이어서 그날을 택했다고 한다. 지금 용산에 있는 미8군사령부가 2008년까지 평택으로 옮겨가게 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역사와 민족의 혼을 되새기는 공원을 만들어 후대에는 아픈 용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용산은 외세의 상징 청군은 지금으로부터 124년전 서울 용산에 주둔했다. 이어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고 러·일전쟁에서도 이기게 되면서 일본은 용산땅 300만평을 강제 수용했다. 1908년 일본은 이 자리를 아예 일본군의 영구기지로 만들어 버렸다. 45년 해방과 더불어 일본군은 물러갔으나 그 자리에 미군이 들어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군의 용산주둔을 청군이나 일본군과 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으나 장구한 세월동안 용산에 우리 군대 아닌 외국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번 미군의 용산기지 이전은 바로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에서 외국군대가 더 이상 장기 주둔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용산이 이처럼 여러 나라 군대가 계속해서 주둔하게 된 것은 용산의 빼어난 군사적 가치 때문이다. 용산은 한강에 접해있고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으며 궁성과도 가까워서 조선 정부를 압박하거나 회유하는데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용산은 그래서 그동안 우리에게 부끄러운 땅이었다. 6·25 전쟁 때와 그 이후 한동안은 가난한 한국백성들이 미군부대에서 군수품을 빼내 팔아 연명을 했던 서러운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의 특수층에게는 이곳 출입이 대단한 자랑이었다. 미8군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자면 8군 출입증인 특수 데칼(Decal)을 부착해야 했다. 이 출입증은 한국사회의 특수신분임을 광고하는 징표였던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출입증을 차에 달고 미군기지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고 골프를 치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이었고 커다란 위세였다. 80년대 초 어느 언론사에 취임한 어떤 사장님은 사장차에 8군 데칼이 없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출입증을 만들어 내라고 호통을 친 일이 있다. 관련된 사원들이 총동원돼 출입증을 만들어 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번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 선포식에 서울시장이 불참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반환되는 80여만평 전체를 공원화하느냐 아니면 일부를 개발하고 나머지를 공원화 하느냐 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그런 일로 역사적인 민족공원화 사업에 정부와 서울시 사이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서울은 세계 어느 수도보다 산이 많은 곳이다. 남산, 북한산, 관악산 등이 서울을 폭넓게 감싸고 있다. 때문에 자연공원 면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역사교육의 현장 돼야 중요한 것은 공원녹지의 면적이 아니라 용산 역사공원이 담아낼 내용이다. 뼈아픈 외세 강점의 역사현장을 통해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국민들에 경각심을 심고 후손들을 교육시키는 교육현장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요즘 미군에 넘어가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다시 찾아오는 문제로 시끄럽다. 작전권을 되찾아오는데 안보상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지 작전권 환수 자체를 마다하거나 그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황당하다. 어느 당에서는 작전권을 이양하지 말도록 미국에 사람을 보낸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조성될 용산공원은 바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넋 나간 후손들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도록 교육하는 산 역사교육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30
- <내일시론>용산 역사공원 선포식을 보고(임춘웅 2006.08.30) 용산 역사공원 선포식을 보고 임춘웅 본사 객원논설위원 정부는 지난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란 색다른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대통령은 물론 3부요인이 두루 참석해 용산공원화 사업의 역사적 의미를 기렸다. 공원 하나를 만드는데 3부요인이 대거 참석하고 거기에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정부는 용산기지 반환에 담겨있는 의미가 자못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원화 사업 선포식을 24일 갖게 된 것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들어온 게 1882년 8월24일 이어서 그날을 택했다고 한다. 지금 용산에 있는 미8군사령부가 2008년까지 평택으로 옮겨가게 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역사와 민족의 혼을 되새기는 공원을 만들어 후대에는 아픈 용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청군은 지금으로부터 124년전 이곳 용산에 주둔했다. 이어 벌어진 청ㆍ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고 러ㆍ일전쟁에서도 이기게 되면서 일본은 용산땅 300만평을 강제 수용했다. 1908년 일본은 이 자리를 아예 일본군의 영구기지로 만들어 버렸다. 45년 해방과 더불어 일본군은 물러갔으나 그 자리에 미군이 들어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군의 용산주둔을 청군이나 일본군과 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으나 장구한 세월동안 용산에 우리군대 아닌 외국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용산은 외세의 상징으로 부끄러운 역사 간직 이번 미군의 용산기지 이전은 바로 이 나라의 수도서울에서 외국군대가 더 이상 장기 주둔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용산이 이처럼 여러 나라 군대가 계속해서 주둔하게 된 것은 용산의 빼어난 군사적 가치 때문이다. 용산은 한강에 접해있고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으며 궁성과도 가까워서 조선 정부를 압박하거나 회유하는데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용산은 그래서 그동안 우리에게 부끄러운 땅이었다. 6.25 전쟁 때와 그 이후 한동안은 가난한 한국백성들이 미군부대에서 군수품을 빼내 팔아 연명을 했던 서러운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의 특수층에게는 이곳 출입이 대단한 자랑이었다. 8군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자면 8군 출입증인 특수 데칼(Decal)을 부착해야 했다. 이 출입증은 한국사회의 특수신분임을 광고하는 징표였던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출입증을 차에 달고 미군기지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고 골프를 치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이었고 커다란 위세였다. 80년대 초 어느 언론사에 취임한 어떤 사장님은 사장차에 8군 데칼이 없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출입증을 만들어 내라고 호통을 친 일이 있다. 관련된 사원들이 총동원돼 출입증을 만들어 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단순한 자연공원 아닌 역사교육의 현장 돼야 이번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 선포식에 서울시장이 불참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반환되는 80여만평 전체를 공원화하느냐 아니면 일부를 개발하고 나머지를 공원화 하느냐 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그런 일로 역사적인 민족공원화 사업에 정부와 서울시 사이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서울은 세계 어느 수도보다 산이 많은 곳이다. 남산, 북한산, 관악산 등이 서울을 폭넓게 감싸고 있다. 때문에 자연공원 면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원녹지의 면적이 아니라 용산 역사공원이 담아낼 내용이다. 뼈아픈 외세 강점의 역사현장을 통해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국민들에 경각심을 심고 후손들을 교육시키는 교육현장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요즘 미군에 넘어가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다시 찾아오는 문제로 시끄럽다. 작전권을 되찾아오는데 안보상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지 작전권 환수 자체를 마다하거나 그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황당하다. 어느 당에서는 작전권을 이양하지 말도록 미국에 사람을 보낸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조성될 용산공원은 바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넋 나간 후손들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도록 교육하는 산 역사교육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29
- 북한수재민에 대한 지원 절실하다 사회인사 10인의 특별성명 김명혁, 김홍진, 박종화, 법륜, 손봉호, 수경, 윤여준, 이부영, 이종대, 정성헌 서울 서초구 서초3동1585-16 정토회관 3층 평화재단 전화:02-581-0581 전송:02-581-4077 북한수재민에 대한 지원 절실하다 최근 한반도를 강타한 집중 폭우는 남북한 수재민들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 남한에서는 온 국민의 참여와 헌신 속에 수재민 구호와 피해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피해 복구를 위한 여건을 갖춘 남한과는 달리 각종 장비와 도로망, 그리고 구호식량 등을 갖추지 못한 북한은 수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당국의 대규모 미사일 발사사태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북한이 준전시상태로 돌입함으로써 북한의 피해상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친 인명피해만 일만여 명에 이르고 이재민은 무려 15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태 이후 남한은 식량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으며, 이에 맞서 북한도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중단시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태로 초래된 남북관계의 경색은 남북간의 인도주의적 사업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등 강경군사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당국이 져야 할 것이다. 이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6ㆍ15 남북공동선언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시키며 한국사회의 교류 ·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더욱이 그 같은 강경군사노선은 식량난과 수재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고, 가족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남북의 이산가족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강경노선으로 인해 정치적ㆍ외교적ㆍ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지라도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사는 남북한 주민들의 만남은 계속되어야 하고, 특히 기아와 수재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차제에 남북한 당국과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바이다. 1. 한국국민과 정부, 그리고 국제사회는 참혹한 수재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에 나서 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2. 한국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단행한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 중단조처를 조속히 해제하기를 호소한다. 3. 북한 당국은 중단시킨 남북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조속히 재개하기를 호소한다. 우리는 분단과 전란으로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남북의 주민들이 다시는 전란에 휩쓸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6. 08. 03 특별성명 참가자(가나다순) 김명혁(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당회장) 김홍진(한국희망재단 상임이사, 천주교서울대교구문정동교회 주임신부) 박종화(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경동교회 당회장) 법 륜(평화재단 이사장) 손봉호(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수 경(화계사 주지) 윤여준(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 이부영(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종대(전 대 우자동차 회장) 정성헌(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추진위 공동대표)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