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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마당 - ‘친일파 재산환수’ 이렇게 생각한다 “친일하면 3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 망한다는 인식 지워야” “친일파 후손들이 지금도 땅 내놓으라는 현실 어떻게 극복할까”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조사위원회가 18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나라를 팔아 일신의 영예와 부를 누렸던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가가 나서서 직접 조사하고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949년 반민특위가 해산된 이후 무려 57년만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이번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위원회의 출범에 맞춰 각계 인사들의 의견과 바람을 들어봤다. 헌법전문에 부합하는 법과 활동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최용규 2006년 8월 18일은 5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못했던 민족적 대과제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하는 날이다. ‘제 2의 반민특위’라 할 수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활동이 반민특위가 해산된 지 57년 만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일후손들의 재산반환소송에서 사법부는 입법부의 입법부작위에 기대어 민족정기에 어긋나는 판결을 종종 내렸고, 국민들은 이에 분노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고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2006년의 시작과 동시에 시행되면서 이런 소식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수한 핍박을 받아온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국가차원의 명예회복과 예우를 강화하고, 그분들이 친일파에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위원회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향후 공정하고 내실있는 조사활동으로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요즘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고귀속에 관한 특별법’의 위헌심판 제청을 걱정하는 우려스러운 격려를 많이 듣곤 한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최종판단을 해야 할 것이지만 헌법재판소가 건강한 국가기관으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판단을 한다면 당연히 이 법은 위헌시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법률이 없었던 입법부작위의 상태가 오히려 위헌이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다. 왜곡된 과거사를 해결하지 못해 생긴 사회적 갈등과 반목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한다”는 아우슈비츠 감옥에 새겨진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첫 발을 내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관계자 여러분께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엄격한 법적용으로 재산권 침해 막아야 대한변협 법제이사 변호사 민경식 주권을 빼앗기고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는 동안 침략자에게 아부하며 치부한 재산을 환수해 독립유공자 유족 등 지원사업에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정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정의를 구현하는 작업도 때에 맞아야 하고, 그 자체로서 형평성이나 소급입법금지 등 제반 헌법원리에 위반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재산환수작업이 시작되는 때에 맞춰 몇 가지 지적을 하고 싶다. 첫째 헌법 제13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원리에 비추어 볼 때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는 법 제정 당시부터 생래적으로 위헌의 소지를 담고 있으므로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누가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업무처리가 요망된다. 예컨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정의할 때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된 자” 인지 여부 등을 판단할 때 재량의 범위를 일탈하지 않도록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둘째 재산환수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제헌헌법 부칙에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해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한 일도 있다. 그 후 6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문제된 재산을 처분한 사람과 처분하지 아니한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형평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쁜 짓을 해서 모은 재산이라도 빨리 처분하면 된다는 식으로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마지막으로 과거 100년 내지 60년 전에 있었던 행위를 평가해 처분하는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자칫 특정 세력에 얽매여 ‘과거 들추기식’으로 빠져들면 당초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정신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해 엄청난 반목과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역사의 마지막 증인 심정으로 일할 것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 성균관대학교 교수 하원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규정하는 친일파와 친일파의 재산 범주는 다음과 같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볍법』에 의하여 위원회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는 범위는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친일재산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①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를 한 자 ②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 ③일본제국의회의 귀족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자 ④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자 ⑤독립운동에 참여한 자 등을 살상하는 등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위원회가 결정한 자이다. -친일재산은 러·일전쟁 개전시(1904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말한다” 법률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위원회가 왜 만들었는지는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역사가 그토록 어려워했던 20세기와 21세기의 가시밭길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정말 오래전에 청산되었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밀려 왔다는 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법률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 법률의 끝에는 이러한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제3자가 친일재산을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는 해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서 대부분의 친일재산은 이 단서조항에 해당한다. 이미 토지자산을 화폐와 주식으로 전환한 경우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직도 이름이 남아 있는 부동산이 주된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친일파의 후손이 지금도 땅 내놓으라고 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래서 이 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우리 역사의 마지막 증인이라는 심정으로 이 위원회를 운영하고자 한다. 국민 모두가 성원해 주길 기대한다. 귀속재산 공적영역에 적절히 사용해야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박한용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가 공식 업무를 개시했다. 60년 만에 다시 시작된 친일청산 작업인데다가 친일행위 당사자가 대부분 죽은 마당에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작년에 만들어진 친일반민족행위자조사위의 경우 정확한 역사 사실과 그 의미를 기록함으로써 그 죄상을 객관화하는 동시에 반성을 촉구하고 재발을 방지하자는 게 발족 취지라고 생각한다. 친일재산조사위는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된 재산을 조사하고 나아가 이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준체벌적 기능’을 안고 있기에 그 입법 취지가 더욱 2006-08-18
- <신문로 칼럼>내부로부터의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자(정태석 2006.08.21) 내부로부터의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자 광주은행장 정태석 대제국 로마! 로마는 세계 최강의 군대와 최강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나라로서, 서양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찬란한 발전을 거듭했으며,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재 대제국 로마는 남아있지 않고, 자취만 남아있을 뿐이다. 무엇이 로마의 멸망을 초래했을까? 많은 역사학자들이 여러 가지 견해를 통해 멸망 원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중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A.Toynbee)의 견해가 눈에 띈다. 그는 도전과 응전의 개념으로 역사적 흥망을 설명하며,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도전을 3가지로 분류하여 로마 멸망에 대해 말한바 있다. 토인비의 조직을 위태롭게 하는 3가지 도전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이다. 토인비는 이 3가지 도전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본다면 기후의 변화나 흉년의 연속 등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이요, 오랜 세월에 걸친 게르만 족의 침입 등은 바로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이며, 정작 로마의 멸망을 앞당기게 만든 것은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인 인종의 혼합, 인구의 감소, 나약한 황제, 도덕과 질서의 타락 등 로마제국 내부로부터의 분열과 부패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민간 경제 연구소들은 국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의 둔화와 유가급등,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으로 세계 각국의 경기가 침체됨에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경제성장률 하락까지 예상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도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오늘날의 기업과 국가경영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기업도 하나의 조직이며, 앞서 토인비가 말한 바와 끊임없는 도전을 받으며 성장해가고 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가장 큰 원인인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조직을 분열시키고 자멸하게 만드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 외부의 요소가 아닌 내부요소의 탓이 크다. 즉, 외부의적은 우리가 미리 인지하여 대비할 수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인 자만심과 현실 안주는 대비하기도 힘들며, 가장 큰 위협요소가 된다. 따라서 조직의 지도자인 CEO는 조직의 가장 무서운 적,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내부의 분열은 작은 것들,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하며, 이를 방치하면 결국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같이 조직 전체에, 기업 생존에 직접적인 문제가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인재관리 부분도 내부로부터의 도전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옳다는 이념이 강했지만, 오늘날에는 그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바로 일관된 평등주의 사고의 불평등에 대한 고찰이다. 조직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사회에서 일컫고 있는 평등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도리어 불평등한 조치이며, 일을 잘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오히려 업무효율을 낮추게 되어, 우수한 인재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직원들간에 분열이 발생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은 심각하게 기업경영을 위협하는 요소이므로 CEO를 비롯한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3가지 도전, 즉 자연환경으로부터의 도전,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도전, 조직내부로부터의 도전을 현명한 판단과 지혜로써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20
- <장행훈 칼럼>두 개의 스페인 두 개의 스페인 장행훈 (언론인 언론광장 공동대표) 지난 18일은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무대가 스페인 내전이었다는 정도 외에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역사가들이 지난 2000년 동안에 일어난 25대 내전(內戰)의 하나로 꼽는 대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유럽의 파시즘 진영과 반(反)파시즘 세력이 벌인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특히 세계 지성인들이 파시즘 반대 투쟁에 대거 참여한 사건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태리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휘하의 반정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4만 여명이 국제여단에 참가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발발 70년, 프랑코 사망 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금 내전 처리를 놓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과거사 덮은 민주화에 불만 내전 발발 70주년에 관한 특별한 행사 보도는 없었다. 그러나 프랑코 총통 사망 3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20일 마드리드에서 50km 떨어진 로스 카이도스 계곡에서는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코를 추모하는 미사가 거행됐다. 로스 카이도스는 프랑코 총통이 내전 중 억류한 공화파 전투원들의 노역으로 건립한 거대한 내전 희생자 묘지다. 프랑코의 대형 영묘도 그 속에 안치돼있다. 프랑코의 딸을 비롯해서 프랑코 지지 세력이 대거 미사에 참석, 그의 ‘위업’을 칭송하고 프랑코 시대의 구호를 외쳤다. 작년 5월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의 마지막 동상이 철거됐지만 프랑코 지지 세력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박정희 신화가 아직 건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에 희생된 공화파 지지자 수천 명이 모여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내전 희생자들(공화파)의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5년 이래 역사기록회복협회를 구성하고 프랑코에 의한 학살 희생자의 시신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은 과거사를 덮어둔 채 민주화를 추진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로 어떤 행사를 벌인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을 원치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화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 보수 인민당(PP)의 호세 아즈나르와 마누엘 프라가 처럼 프랑코 시대에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이 2004년까지 정부의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코는 죽었으나 역사의 심판을 받은 프랑코 체제가 스페인을 계속 끌고 간다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역대 스페인 정부는 정치적 파문을 우려해 과거사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2004년 가을 사회당의 자파테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파테로 총리는 우선 내전 희생자 실태조사를 위한 각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착수된 상태다. 우리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정의 복원 뒤에야 화해 가능 스페인 내전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들 이념만 고집하고 타협을 거부한 나머지 내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역사학자 라몬 메넨데즈 피달은 1930년대에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 카톨릭 교회와 진보적인 지식인층의 대립, 권위와 무정부주의의 충돌 환경에서 스페인 지도층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타협 없는 대결집단으로 갈라놓았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어느 쪽도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른 교훈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민주화를 추진한 것은 취지는 좋았지만 내전 희생자가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주장하고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일시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랑스의 월간 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근호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 총리가 앞으로 할 과업은 살육의 유산을 정리해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희생자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정의를 복원한 다음에야 (두 스페인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한 국가라야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7-24
- <장행훈 칼럼>두 개의 스페인(2006.07.24) 두 개의 스페인 지난 18일은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무대가 스페인 내전이었다는 정도 외에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역사가들이 지난 2천년 동안에 일어난 25대 내전(內戰)의 하나로 꼽는 대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유럽의 파시즘 진영과 반(反)파시즘 세력이 벌인 이념의 대결장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특히 세계 지성인들이 직접 파시즘 반대 투쟁에 대거 참여한 사건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원작을 쓴 헤밍웨이도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국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했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태리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 휘하의 반정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4만 여명이 국제여단에 참가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전 발발 70년, 프랑코 사망 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금 내전 처리를 놓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과거사를 덮어 둔 민주화에 불만의 소리 내전 발발 70주년에 관한 특별한 행사 보도는 없었다. 그러나 프랑코 총통 사망 3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20일 마드리드에서 50킬로 떨어진 로스 카이도스 계곡에서는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코를 추모하는 미사가 거행됐다. 로스 카이도스는 프랑코 총통이 내전 중 억류한 공화파 전투원들의 노역으로 건립한 거대한 내전 희생자 묘지다. 프랑코의 대형 영묘도 그 속에 안치돼있다. 프랑코의 딸을 비롯해서 프랑코 지지 세력이 대거 미사에 참석, 그의 ‘위업’을 칭송하고 프랑코 시대의 구호를 외쳤다. 작년 5월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의 마지막 동상이 철거됐지만 프랑코 지지 세력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박정희 신화가 아직 전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코에 희생된 공화파 지지자 수천 명이 모여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내전 희생자들(공화파)의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난 5년 이래 역사기록회복협회를 구성하고 프랑코에 의한 학살 희생자들의 시신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내전 중 학살된 희생자 수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프랑코 사망 후 스페인은 과거사를 덮어준 채 민주화를 추진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사 문제로 어떤 행사를 벌인 일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들추는 것을 원치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화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그 결과 보수 인민당(PP)의 호세 아즈나르와 마누엘 프라가 처럼 프랑코 시대에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이 2004년까지 정부의 총리와 장관으로 활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랑코는 죽었으나 역사의 심판을 받은 프랑코 체제가 스페인을 계속 끌고 간다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역대 스페인 정부는 정치적 파문을 우려해 과거사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2004년 가을 사회당의 자파테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파테로 총리는 우선 내전 희생자 실태조사를 위한 각료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말까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착수된 상태다. 우리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두 개의 스페인 스페인 내전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 사회 지도자들이 자기들 이념만 고집하고 타협을 거부한 나머지 내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역사학자 라몬 메넨데즈 피달은 1930년대에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 카톨릭 교회와 진보적인 지식이층의 대립 권위와 무정부주의의 충돌 환경에서 스페인 지도층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스페인을 타협 없는 대결집단으로 갈라놓았다고 비판하고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어느 쪽도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 하나의 교훈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민주화를 추진한 것은 취지는 좋았지만 내전 희생자들이 명예회복과 정의의 복원을 주장하고 과거사의 올바로 정리를 요구할 때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일시 덮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랑스의 월간 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근호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 총리가 앞으로 할 과업은 살육의 유산을 정리해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희생자-모든 희생자-들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정의를 복원한 다음에야 (두 스페인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한 국가라야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7-23
- ‘혹시 했는데 역시’ 노 대통령 지지도 연속 하락 지지도 5점척도 10.2% … 변화없는 스타일에 실망 5·31 지방선거후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내일신문·한길리서치연구소 정기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도는 5점 척도 기준으로 6월 12.4%로 떨어진 데 이어 7월 7-8일 조사에서는 10.2%를 기록,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4점 척도로는 6월 23.7%, 7월 20.2%이다.(표1) 노 대통령 지지도는 그동안 15%대에서 ‘심리적 저지선’이 형성돼 왔는데 지방선거 이후 이것이 무너져 내린 것. 이같은 수치는 역대 대통령 지지도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 마직막 해 한보·기아차사태이후 보인 8.2%에 근접한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가 1년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한 자리수’에 근접하는 지지도는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선거를 거치면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결과”라며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에도 기존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자 기존 지지자들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하면서 등을 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길리서치연구소 홍형식 소장은 이와함께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등에서 보여준 노 대통령의 국정방식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지지도가 내려앉았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 태도·한미FTA가 하락원인 = 노 대통령 지지도는 그동안 20%대를 오르내렸다. 올해 초 ‘유시민 개각파동’때 15.7%까지 떨어졌지만 그 후 점차 상승해 지방선거 전인 5월에는 21.4%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후 이 ‘하방경직성’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노 대통령 지지도의 지속적인 하락은 우선 지방선거 후 노 대통령이 보인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 지방선거를 통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이미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등 기존의 국정기조는 그대로 간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여왔다. 특히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 등은 국민들에게 ‘아집’으로 받아들여졌고 한미FTA 추진 등으로 그나마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 조차 지지를 철회, 지지도는 한 자리수를 위협하는 ‘위험수치’를 넘나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레임덕 저지선’ 위협하나 = 5점척도 기준으로 ‘지지도 10.2%’는 보기에 따라서는 ‘레임덕 지표’의 경계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수치이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노 대통령은 ‘생각은 있으나 운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노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게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으로도 여당이나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나 발언권이 거의 없어질 수 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도와 비교해보면 노 대통령 지지도 하락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표3)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내일신문 월 정기조사에서 5년 임기 내내 한번도 20%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5점척도) 호남이라는 절대적인 지지층이 하방경직성을 강하게 형성한 것이다. 때문에 임기말까지 나름의 정책을 펼 수 있었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96년까지 20%대 지지를 받다가 연말 노동법날치기 파동에 이어 집권 마지막해 한보·기아차 사태가 연이어 터지자 지지도는 10% 이하로 내려갔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이후 이른바 ‘식물대통령’을 면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와 다르다? = 청와대 참모진들은 그동안 “적어도 과거 대통령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노 대통령도 “지지도에 연연치 않겠다”며 옳은 길을 가면 언젠가 국민들이 평가해 줄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한 핵심참모는 “집권 초기 이미 탄핵사태를 겪었는데 새삼스레 무슨 레임덕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지지도만으로 임기말 현상을 거론하긴 무리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임기가 아직 1년반 이상 남았고 지지도 하락이 과거와 같은 ‘권력형 비리’ 때문이 아니란 점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최근의 지지도 하락에 대해 “현재의 지지도 수치는 국민들이 ‘세월만 가라’는 자포자기식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레임덕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노 대통령과 YS가 국민들에게 ‘오만’으로 비춰진다는 측면에서 닮은 꼴”이라며 “앞으로 노 대통령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올해 정기국회가 끝난 후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7-12
- <밥일꿈>중국동포의 ‘코리안드림’ 20年 중국동포의 ‘코리안드림’ 20年 김 용 필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 중국동포가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부터다. 이것은 1945년 남북분단 역사 이래 42년만의 재회이며 올해로 꼭 20년째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1987년 당시 중국동포는 한국에 친척이 있는 것이 확인되면 초청장을 근거로 홍콩주재한국영사관에서 발급해주는 한국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들어오는 절차를 밟았다. 이런 경로로 들어온 중국동포는 2000여명 정도였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중국조선족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아주 높았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본 한국은 가고픈 그리운 나라가 되었고, 한국에 갔다가 돌아온 고향사람들로부터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차차 ‘코리언드림’도 무르익었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를 분수령으로 해 중국동포들은 중국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1994년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 정책이 발표되면서 일산, 분당 등 신도시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언어장벽이 없는 중국동포가 단순노동인력으로 들어와 한국의 건설역군으로 톡톡한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불법체류에 따른 불안정한 신분에서 파생된 문제는 중국동포 당사자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갈등과 불신을 조장,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진통을 겪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25만에 달하는 중국동포들이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동포의 국제결혼도 9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2000년 이후 년간 2만명을 넘어섰다. 2004년 4월 국적법 개정으로 중국동포의 한국국적취득자도 급증했고 국적 신청자 또한 6만명이 넘는다. 한국에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열망으로 국적신청과 국제결혼을 많이 하게 된 중국동포 사회가 추후 어떠한 형태로 나아갈지 모르지만 분명 지난 중국동포의 코리언드림 20년 세월은 우여곡절의 세월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걸친 ‘동포귀국지원프로그램 실시’에 따라 상당수의 중국동포들이 재입국 희망을 안고 자진출국하고 고국에서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또한 동포방문취업비자(H-2)가 실시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하게 될 중국동포들의 역할에 기대와 관심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이제 우리는 중국동포를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로 더 이상 내몰지 말고 21세기 동북아시대 동반자로 인식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코리언드림시대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중국동포들은 이제 한국 사회·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7-07
- <밥일꿈>“자연재앙이 말하는 것”(박헌렬 2006.08.04) “자연재앙이 말하는 것” 박헌렬 교수 중앙대학교 몇백만년 전 인류 조상의 출현은 46억년 전에 탄생한 지구의 진화 역사에 비하면 눈 깜짝할 사이의 시간과 다름없다. 지구 역사를 1년이라고 본다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30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 조상들은 다른 동물처럼 오랜 기간 떠돌아다니며 수렵, 채취 생활을 했고 생명의 위협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인간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집단생활을 시작했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신석기시대인 B.C 8000년 경부터 원시농경을 시작하면서 인간은 이른바 ‘제1의 혁명’이라는 농업혁명을 통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문명시대가 열리고 청동기와 철기 시대를 거치며 농업은 점점 발전했다. 그러나 점차 늘어나는 인구의 식량과 물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른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제2의 혁명’이라 불리는 산업혁명을 통해 공업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동력, 즉 에너지원을 필요로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주된 연료원으로 사용했던 나무로는 도저히 그 필요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석탄이 연료로 쓰이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의 소비량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석탄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우주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대기중에 머무른다. 2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증가된 온실기체에 의해 지구의 표면온도가 올라가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점점 강화되었다. 산업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였지만 공업단지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자연에 점점 쌓여 1980년대 이래 대두된 여러 가지 지구환경문제를 유발시킨 것이다. 그 중 핵심적인 문제는 오존층 파괴에 의한 유해자외선 증가, 산성비에 의한 자연의 산성화, 생물종 다양성의 감소, 지구온난화 등이다. 온난화가 우리 일상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요즘 장마철에 나타난 재앙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산 정발산역의 침수에 의한 교통대란, 안양천 제방 붕괴에 의한 서울 시민들의 피해, 강원도 산간마을의 폭우 등 수마가 휩쓸고 간 참혹한 현장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났다. 더 이상의 재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기체 방출을 현저하게 줄이고 온실기체를 유발하는 화석원료를 대신할 풍력, 수력, 생물자원,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의 개발이 시급하다. 또한 산림 보존을 위해 토지를 무분별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환경문제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숙고하며, 에너지 절약을 위한 노력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국제협력을 통해 온실기체 감축노력에 전지구적으로 참여해서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도 현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04
- <박석무 칼럼>왜 고전국역원인가 왜 고전국역원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는 1965년에 설립되었다. 전통문화의 계승을 기치로 내세운 지 40년이 넘었다. 국가에서 도와주는 보조금이 운영비와 사업비의 중심이 되고는 있으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경제 10대국에 들어가는 나라치고는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사심없는 노력과 희생적인 공헌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룩해 놓았다. 한문으로 된 고전 102종류 984책을 국역하여 출판하였고, 2005년 10월로 기준하여 우리나라 역대 문집들을 총정리한 ‘한국문집총간’ 350책을 완간하였다. 최치원(고운)의 ‘계원필경’에서 한말의 학자 조긍섭(1873~1933)의 ‘암서집’에 이르는 662명의 문집 663종이 실렸다고 한다. 옛 책으로 3458권, 1억5만여자, 20년이 걸린 작업 끝에 이룩한 결과다. 한문고전 102종류 984책 국역 중국이 오래 전에 문헌 3458종 7만9582권의 ‘사고전서’를 발간한 것에 비하면 정말로 왜소하지만, 예산이나 동원된 인원으로 보면 그래도 훌륭하게 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런 결과로 우리는 귀한 한문고전의 원전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귀중한 민족의 고전들을 한문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학자들인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앞으로도 간행해야 할 문집총간이 수없이 쌓여있는 것도 문제지만, 완간된 350책의 문집총간만 번역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소요될지 계산하기도 힘든 상태이니, 막막하여 하늘을 쳐다보아도 답답할 지경이다. 각 대학의 도서관 한적(漢籍)부나, 공공도서관에 쌓여있는 그 많은 한문으로 된 고전들은 언제쯤이나 번역될 것인가. 그나마도 한문을 정규적으로 배운 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노쇠하거나 세상을 뜨는 지경이고, 본격적인 한문교육을 받은 사람은 수효도 적지만 완숙하게 한문을 번역하는 일에는 미흡하기 그지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한문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은 우리의 고전에는 까막눈이고 마는 사태에 이르지 않을까 태산 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 고전을 정리하고 번역하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당국의 협조를 얻어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를 확대 개편하여 가칭 ‘고전국역원’ 같은 정부출연기관을 세우자는 논의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국역자 양성이 시급하고, 미약한 재정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역사업을 위해서는 국가나 정부의 배려가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화의 전승이나 외부로부터의 수용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 창조 없이 어떻게 민족문화가 발전하고 나라의 융성이 뒤따를 수 있겠는가. 전통을 무시하고 고전을 천대했던 나라가 제 역할을 했던 경우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는 경제도 과거보다 무척 발전하였고, 고전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민족 고전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의미가 커진다. 경제적 조건이 우리보다 훨씬 취약한 북한에서도 고전번역사업에 열을 올리고 큰 성과를 거둔 것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번역되었고, 다른 고전들도 우리보다 앞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국회 법제정 서둘러야 거대한 문화사업은 민간단체나 개인들이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다. 우선 상업성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겠는가. 지방자치단체가 활성화되면서 지방의 갖가지 문화사업들이 속속 진행되는 것만 보아도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해야만 활성화된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게 된다. 아직 전통적 한문교육에 의해서 성장한 한학자들이 몇몇 분이라도 살아있는 지금 당장, 고전국역원을 세워 번역에 필요한 원전 독해력을 지닌 국역자 양성 사업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이 일에 시간을 천연시킬 이유가 없다. 정부와 국회는 급히 서둘러 고전국역원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일을 진행해야 한다. 큰 예산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이야기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에 보조하는 금액에 20억~30억원 정도만 더 출연하면 국역원은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애국자나 정부나 국회 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서둘러 시급한 국역원이 탄생되도록 도와주기 바란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03
- <박석무 칼럼>왜 고전국역원인가?(2006.08.03) 왜 고전국역원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는 1965년에 설립되었다. 전통문화의 계승을 기치로 내세운 지 40년이 넘었다. 국가에서 도와주는 보조금이 운영비와 사업비의 중심이 되고는 있으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경제 10대국에 들어가는 나라의 일로는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사심 없는 노력과 희생적인 공헌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룩해놓았다. 한문으로 된 고전 102종류 984책을 국역하여 출판하였고, 2005년 10월로 기준하여 우리나라 역대 문집들을 총정리 한 ‘한국문집총간’ 350책을 완간하였다. 최치원(고운)의 ‘계원필경’에서 한말의 학자 조긍섭(1873~1933)의 ‘암서집’에 이르는 662명의 문집 663종이 실렸다고 한다. 옛 책으로 3458권, 1억 5만 여자, 20년이 걸린 작업 끝에 이룩된 결과다. 중국에서 오래 전에 문헌 3458종 7만9582권의 ‘사고전서’를 발간한 것에 비하면 정말로 왜소하지만, 예산이나 동원된 인원으로 보면 그래도 훌륭하게 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런 결과로 우리는 귀한 한문고전의 원전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귀중한 민족의 고전들을 한문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학자들인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앞으로도 간행해야 할 문집총간이 수없이 쌓여 있는 것도 문제지만, 완간된 350책의 문집총간만 번역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소요될지 계산하기도 힘든 상태이니, 막막하여 하늘을 쳐다보아도 답답할 지경이다. 각 대학의 도서관 한적(漢籍)부나, 공도서관에 쌓여 있는 그 많은 한문으로 된 고전들은 언제쯤이나 번역될 것인가. 그나마도 한문을 정규적으로 배운 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노쇠하거나 세상을 뜨는 지경이고, 본격적인 한문교육을 받은 사람은 수효도 적지만 완숙하게 한문을 번역하는 일에는 미흡하기 그지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한문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은 우리의 고전에는 까막눈이고 마는 사태에 이르지 않을까 태산 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 고전을 정리하고 번역하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당국의 협조를 얻어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를 확대 개편하여 가칭 ‘고전국역원’ 같은 정부출연기관을 세우자는 논의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국역자 양성이 시급하고, 미약한 재정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역사업을 위해서는 국가나 정부의 배려가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화의 전승이나 외부로부터의 수용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 창조 없이 어떻게 민족문화가 발전하고 나라의 융성이 뒤따를 수 있겠는가. 전통을 무시하고 고전을 천대했던 나라가 제 역할을 했던 경우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는 경제도 과거보다는 무척 발전되었고, 고전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더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민족 고전에 대한 관심은 커질수록 의미가 커진다. 경제적 조건이 우리보다 훨씬 취약한 북한에서도 고전번역사업에 열을 올리고 큰 성과를 걷은 것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번역되었고, 다른 고전들도 우리보다 앞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거대한 문화사업은 민간단체나 개인들이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다. 우선 상업성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겠는가. 지방자치단체가 활성화되면서 지방의 갖가지 문화사업들이 속속 진행되는 것만 보아도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해야만 활성화된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게 된다. 아직 전통적 한문교육에 의해서 성장한 한학자들이 몇몇 분이라도 살아있는 지금 당장, 고전국역원을 세워 번역에 필요한 원전 독해력을 지닌 국역자 양성 사업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이 일에 시간을 천연시킬 이유가 없다. 정부와 국회는 급히 서둘러 고전국역원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일을 진행해야 한다. 큰 예산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이야기다. 현재 민추에 보조하는 금액에서 20~30억 정도만 더 출연하면 국역원은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애국자나 정부나 국회 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서둘러 시급한 국역원이 탄생되도록 도와주기 바란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03
- 금융면용 LG카드, 상반기 순이익 6406억원 매각절차를 밟고 있는 LG카드가 경영실적에서 대규모 흑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LG카드는 1일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개최된 ‘2006년 상반기 경영실적 설명회’에서 상반기에 순이익 6406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실적은 전년 동기 7716억원에 비해선 다소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지난해 2/4분기에 발생했던 1238억원 부실채권 매각이익을 제외하면 전년과 대등한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상반기 영업수익(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3701억원, 6284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소폭(각각 0.2%, 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정상자산은 전년 동기 대비 27.14% 증가한 10조 2262억원을 기록했으며, 총상품자산도 10.80% 늘어난 11조 8688억원을 기록했다. 대환 포함 금감원 기준 연체율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3.70%포인트 개선된 5.99%로 낮아져 5%대에 진입했고, 리스크 자산도 38.45% 감소한 1조 6426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대규모 이익 시현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2조 458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조정자기자본 비율이 업계 최고 수준인 30.73%로 높아졌다. 한편 영업측면에서는 취급액과 실질회원수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각각 4조 4906억원, 62만명 증가한 30조 1605억원과 1013만명을 기록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손보협회 창립 60주년 맞아 신규 CI발표(사진) 손해보험협회는 1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새로운 CI 및 60주년 기념 엠블렘을 발표하고 업계 유공직원에 대한 표창장을 수여했다. 손해보험협회는 이날 협회의 영문명칭을 현재의 Korea Non-life Insurance Association에서 손해보험 본래의 의미를 살리고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General Insurance Association of Korea로 변경했다. 이와 함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과 보장”, “고객 및 회원사에 대한 서비스”를 강조한 새로운 CI 와 고객, 회원사와 함께해온 지난 60년의 성과를 자축하는 60주년 기념 엠블럼을 발표했다. 안공혁 회장은 기념식에서 “1946년 8월 설립된 손해보험협회는 국내 손해보험산업과 더불어 60년의 세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며 “열린 사고와 적극적 자세로 손보산업 발전을 위한 최대 공약수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는 그 동안 손해보험산업의 발전에 공이 큰 동부화재 원승관 부장 등 손보업계 직원 15명에 대한 표창장 수여식도 함께 진행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현대해상 여름철 물놀이사고 예방 프로젝트(사진) 현대해상은 본격적인 여름철 휴가 시즌을 맞아 예기치 않은 물놀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물놀이 사고! 이제 그만’캠페인을 벌인다. 대한적십자사, 한국수자원공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캠페인은 본격적인 휴가 기간인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한 달간 실시된다. 전국 170여개 주요 해수욕장과 계곡, 역과 터미널 등지에서 피서객들에게 홍보전단 등을 나눠 주고, 전문적인 상담과 수상안전 지식을 보급한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어린이 수상안전캠프’와 ‘수상인명구조원 강습’ 등을 통해 안전교육을 실시하며, RCY 단원들을 대상으로 응급처치법 및 심폐소생술, 물놀이 사고 대처요령에 대한 교육도 시행한다. 흥국생명 ‘무배당 행복 두배로 보장보험’ 출시(사진) 흥국생명은 생존과 사망을 동시에 보장해주는 금리연동형 정기보험인 ‘무배당 행복 두배로 보장보험’을 2일부터 판매한다. 이 상품은 생존시에는 각종 축하금을, 사망시에는 사망보험금을 유족생활자금으로 지급하는 금리연동형 정기보험이다. 특히 저렴한 보험료로 부부형 가입이 가능해 실속파 부부들에게 적합하다. 이 상품은 실세금리를 반영한 금리연동형으로 공시이율에 따라 사망보험금 및 건강축하금, 해약환급금 등이 변동되며, 공시이율 상승시에는 사망보험금 및 건강축하금도 상승한다. 공시이율이 3.75%미만으로 하락할 경우에도 3.75%를 최저 보증한다. 현재 적용되는 공시이율은 4.9%이다. 미래에셋생명 ‘웰엔딩보험’ 출시(사진) 미래에셋생명은 31일 장례 서비스와 사망보험을 결합한 ‘미래에셋 웰엔딩보험’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 상품은 가입 고객이나 고객의 부모중 1명에게 사망시 ㈜효원라이프장례서비스의 550만원짜리 장례 서비스를 240만원에 제공한다. 가입 가능 연령은 만 15~70세로, 직업에 관계없이 무진단으로 들 수 있다. 30세가 사망보험금 1000만원, 15년간 보험료 납부 조건으로 가입할 경우 월 보험료는 남성 1만7400원, 여성 1만3200원이다. KB카드, ‘U축구사랑 KB카드’ 출시 KB카드는 울산현대호랑이축구단과 제휴해 국내 처음으로 지역연고 프로축구단을 기반으로 하는 ‘U축구사랑 KB카드’를 출시한다고 1일 밝혔다. 이 카드 회원은 울산문수축구경기장 입장시 새롭게 설치된 전용 첨단 Gate시스템을 이용해 3500원을 할인 받을 수 있다. 또 전국 주요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등을 이용할 때 2~3개월 무이자할부와 SK정유 주유시 리터당 70원 청구할인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이밖에도 일시불·할부 사용액의 0.2%포인트 적립은 물론 놀이공원 및 영화 예매할인 등 KB카드가 제공하고 있는 공통 부가서비스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금감원, 책자 발간 금융감독원 검사지원국 산하 보험리스크반과 사이버스터디그룹인 보험리스크연구회가 공동으로 보험과 리스크간 관계를 설명하는 책자 를 발간했다고 2일 금감원이 밝혔다. 이 책에는 리스크관리의 기본, 보험산업의 리스크관리, 보험리스크에 대한 이해, 리스크중심의 보험감독, 국제보험기구의 지급여력 개선 추세 등 보험부채 전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