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대전 플라워랜드 14일 착공 대전 플라워랜드 조성공사가 14일부터 시작된다. 대전 플라워랜드는 중구 사정동 대전동물원 인근 3만여평에 조성되며 총공사비 270억원이 투입돼 2008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플라워랜드에는 사계절정원 장미원 무궁화원 분수거리 등 10개의 테마 정원이 들어서고 대전동물원과 연결되는 나비를 형상화한 모양의 42m 보도육교가 설치된다. 플라워랜드에 조성될 10개 테마(10景)는 △제1경 푸르름이 있는 녹음 경관 △제2경 은빛날개 나비다리 △제3경 문화의 숨결 축제의 거리 △제4경 물안개 피는 연못 △제5경 환상의 나라 4계절 광장 △제6경 5감 체험의 장 야생초화원, 허브원 △제7경 향내 짙은 장미원 △제8경 분수거리 △제9경 꽃길따라 꿈길따라 미로원 △제10경 천년의 세월을 담은 전통정원 등이다. 플라워랜드는 이 같은 ‘테마가 있는 꽃이야기’를 모토로 10개 테마별로 특화된 정원과 조형시설이 자리 잡게 되고 계절 구분 없이 관람객들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사계절 꽃 단지로 조성된다. 이번 공사는 대전도시개발공사가 시행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시공한다. 대전시 관계자는 “플라워랜드가 완공되면 인근의 동물원, 뿌리공원과 연결되는 보문산 관광벨트를 이뤄 중부권 최고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김신일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4-13
- 홍현주?최영주 박사가 조언하는 ‘맞춤 영어교육법’ 영.어.공.부.법 아이 성격 따라 달라요 영어 공부도 아이 성격에 맞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영어교육학 박사인 홍현주 씨와 심리학 박사 최영주 씨가 그들. 아이 성향을 잘 아는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그들에게 내 아이 성향에 맞는 영어교육법을 벤치마킹해보자. 취재 조수진 리포터 사진 이의종 기자 대한민국 엄마들은 똑같은 꿈을 꾼다. ‘제발 우리 아이 영어 좀 잘했으면’ 하는 꿈이다. 바람이 큰 만큼 영어 정복에 대한 해결책도 가지가지. 영어교육이 백가쟁명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다소 역사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성공적인 영어 공부법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이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맞춤 영어교육이라는 점. 영어교육컨설팅 벤처 회사 세쿼이아를 운영하는 홍현주(영어교육학) 최영주(심리학) 박사는 “영어 공부에 앞서 아이 성격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아이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부모야말로 가장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며, 또 영어 실력이 좋은 엄마만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다소 안심되는 말도 들려주었다. 홍현주 박사는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국내 대학과 미국 현지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그 실전 경험을 담아 이란 책도 펴냈다. 이론에서뿐 아니라 현장에서 5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면서 그가 깨달은 사실이 ‘아이 성격에 따라 교수법을 달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 그의 이 같은 지론은 최영주 박사를 만나 더 힘을 얻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가 내 아이의 모든 면을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라고 세상 모든 일을 엄마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알고 있다고 믿는 거지요. 이런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성 검사나 성격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최영주 박사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가 적성 검사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덧붙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 자라면서 성격이 바뀌는 수도 있고 검사 자체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한 학교의 상담 교사나 대학 부설 심리 연구소 등을 이용하면 된다. “여성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하버드나 MIT에 간 대단한 아이들은 내버려두어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영어를 잘할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누가 참견하고 다잡지 않으면 책을 거들떠도 안 보는 아이, 영어라면 도리질부터 치는 아이들입니다.” 과잉행동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가운데는 산만한 아이들이 참 많다. 홍 박사는 이런 아이에게는 엄마도 같이 산만해져서 산만하게 영어를 가르치라는 다소 재미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산만한 영어 공부란 집 전체를 공부방으로 활용하는 것. 방은 리스닝룸으로 꾸며 하루 종일 영어 테이프가 돌아가도록 해둔다. 거실은 손이 닿는 곳곳에 책을 두고 리딩룸으로 삼는다. 화장실에는 영어 단어를 써서 붙여두고 양치질하면서, 볼일 보면서 단어를 욀 수 있게 하고, 아이 방에도 영어 단어와 문장을 써서 붙여둔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방법도 있다. 수준이 다른 두 권의 책을 선택해 쉬운 책은 아이가 스스로 읽게 하고, 어려운 책은 엄마가 읽어주거나 테이프로 듣게 해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수님도 이와 비슷한 공부법을 실천하시더군요. 그분은 본인 스스로 무척 산만하기 때문에 방 양쪽 끝에 책꽂이를 만드셨대요. 책 한 권 꺼내 들고 방 안을 가로지르며 읽다가 맞은편 서가에 꽂아두고, 거기서 또 새로운 책을 꺼내서 읽고. 이렇게 걸어 다니며 책을 읽으셨대요.” 홍 박사의 이야길 듣고 보니 산만한 아이를 공부시키려면 공부는 모름지기 바른 자세로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부터 버려야겠다. 최 박사에 따르면 “명랑 소년, 소녀들은 항상 생각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간혹 행동부터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명랑 소년들은 얼핏 보기에 엄청 영어를 잘하는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브로큰 잉글리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 먼저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사교적인 분위기에서 영어를 더 잘 배운다. 학원에 보내 가장 효과가 큰 것도 이런 아이들이다. 학원에서 또래와 영어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잘못된 영어를 고칠 수도 있다. 하루 10분 집중 듣기 시간도 필요하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키워드를 빈칸으로 비운 다음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문장을 완성하게 하는 방법. 실력이 좀 향상되면 듣고 받아쓰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읽기를 연습시킬 때도 과거형 어미-ed, 복수형 어미-s, 3인칭 단수 어미-s 등 얼렁뚱땅 넘기기 쉬운 부분을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치게 하면서 책을 읽힌다. 성격상 수다는커녕 말수도 별로 없는 아이들.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읽기나 쓰기는 곧잘 해내지만 말하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각본을 써보도록 한다. 먼저 대화체가 많은 동화책을 고른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가며 스토리가 이어지도록 적는다. 스토리가 완성되면 엄마, 친구, 동생과 역할을 나눠 대사를 읽어본다. 좀 익숙해지면 연극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아이들 말 좀 하게 만들려고 외국인 회화반에 집어 넣어보아야 수다스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치이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영어 회화에 대한 미련 버리기 힘들다면 차라리 회화책을 읽히는 편이 낫다. 이런 아이의 특징은 어느 순간이 되면 저절로 말문을 여니 참고 기다려야한다. 다그치는 것은 절대 금물. 닦달할수록 아이는 더욱 입을 다물 것이다. 영어뿐 아니라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이다. 영어 공부에 대해서도 자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성격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문제 풀이로 영어공부를 시키면 경쟁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격이라 공부 효과가 높아진다. “이런 아이들은 따로 회화책을 살 필요가 없어요. 일단 문제집을 풀게 합니다. 그다음 문제를 가리고 답만 보여주면서 이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을 만들어보게 합니다. 이게 바로 회화 공부죠.” 이런 아이는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지나친 경쟁심으로 다른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빼앗아버린다면 유창한 영어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 영어 공부에 앞서 매너를 가르쳐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아이들이다. 영어 학습은 끊임없이 영어와 가까워지게 하는 장기 프로젝트 몇 가지 유형에 따른 공부 방법을 알아봤다. 그러나 어찌 수많은 아이들을 단 이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홍현주 박사는 “이를 참고해 우리 아이에게 적합한 공부법을 개발해야 한다. 끊임없이 꾀를 내어 영어를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홍 박사는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머니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분이셨어요. 자식들 영어 공부시키기 위해 일제 소니 중고 카세트를 구입해 영어 테이프 60개를 매일 바꿔서 틀어주셨죠.” 영어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한 영어’ 하는 그의 뒤에도 이렇게 열성적인 어머니가 있었던 게다. “초등 6년은 긴 세월입니다. 아이 영어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조금씩 읽고 쓰다보면 그게 실력이 된답니다. 단 꾸준히 해야 한다는 사실 하나는 잊지 마세요.”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4-13
- 대전 플라워랜드 14일 착공 대전 플라워랜드 조성공사가 14일부터 시작된다. 대전 플라워랜드는 중구 사정동 대전동물원 인근 3만여평에 조성되며 총공사비 270억원이 투입돼 2008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플라워랜드에는 사계절정원 장미원 무궁화원 분수거리 등 10개의 테마 정원이 들어서고 대전동물원과 연결되는 나비를 형상화한 모양의 42m 보도육교가 설치된다. 플라워랜드에 조성될 10개 테마(10景)는 ▲제1경 푸르름이 있는 녹음 경관 ▲제2경 은빛날개 나비다리 ▲제3경 문화의 숨결 축제의 거리 ▲제4경 물안개 피는 연못 ▲제5경 환상의 나라 4계절 광장 ▲제6경 5감 체험의 장 야생초화원, 허브원 ▲ 제7경 향내 짙은 장미원 ▲제8경 분수거리 ▲제9경 꽃길따라 꿈길따라 미로원 ▲제10경 천년의 세월을 담은 전통정원 등이다. 플라워랜드는 이 같은 ‘테마가 있는 꽃이야기’를 모토로 10개 테마별로 특화된 정원과 조형시설이 자리 잡게 되고 계절 구분 없이 관람객들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사계절 꽃 단지로 조성된다. 이번 공사는 대전도시개발공사가 시행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시공한다. 대전시 관계자는 “플라워랜드가 완공되면 인근의 동물원, 뿌리공원과 연결되는 보문산 관광벨트를 이뤄 중부권 최고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4-13
- 납북자지원법안 기사 (1면 스트레이트용) 납북자지원특별법 통일부안 확정 송환노력 및 피해보상 등을 국가적 책무로 규정 귀환납북자의 경제적 지원 등을 규정한 납북자지원법률의 정부안이 마련됐다. 정부는 ‘납북피해자의 구제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통일부안을 확정하고, 6일 오전 당정협의를 거쳐 입법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법안은 3조에서 납북자의 실태파악 및 송환노력 경주, 귀환납북자의 재정착 및 생활안정 지원, 납북자가족 및 기타 납북피해자에 대한 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국가의 책무로 밝혔다. 그리고 1조에서 “귀환납북자가 국내에 재정착하는데 필요한 지원과 납북자가족의 생활지원, 납북피해자(귀환납북자, 납북자 가족, 기타 납북으로 피해를 입게 된 자)의 명예회복과 피해구제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며 지원 대상 및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지원대상자로 결정되면 법에 따라 귀환납북자 및 납북피해자는 위로금, 주거, 취업보호, 생계·의료 급여, 직업훈련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법안은 또 국무총리 산하에 ‘납북피해 구제 및 지원 심의위원회’를 두고 지원사항을 심의·의결, 피해보상금 지급 및 명예회복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법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납북피해자 지원재단’을 설립, 납북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위령사업, 납북자 관련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지원 등을 수행토록 해 납북자단체 지원을 위한 근거 규정을 두었다. 통일부는 상반기 중 법안을 국회에 제출, 하반기에는 심의위원회 출범을 위한 ‘정부준비기획단’을 발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김상범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내지용) 납북자지원법 놓고 남북관계 갈등 촉발될 듯 북한 도전행위로 받아들일 가능성, 송환문제도 난망 지난달 금강산에서 열린 제1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당시 북한 측이 남한 공동취재단의 ‘납북’ 표현을 문제 삼아 취재를 제한하고, 이에 기자단이 철수하는 등 ‘납북자’ 문제를 놓고 남북간 갈등이 촉발됐다. 뒤이어 이 사건을 두고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이 2일 KBS 1TV ‘미디어포커스’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을 두고 납북자 관련단체들이 비난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가 납북피해자의 구제 및 지원을 관한 법률(납북자지원법)안을 마련, 6일 당정협의를 거치는 등 제정절차를 밟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 납북자를 공식적으로 한번도 인정한 바 없다. 납북·나포 행위는 국제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것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한 당국이 납북자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를 법률로 공식화한다면 북한 입장에선 일종의 도전행위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이를 의식해 5일 통일교육협의회 초청강연에서 “가급적 북한이 모욕을 느끼지 않고 명분을 가질 수 있도록 (납북자지원법)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법률안이 규정한 납북자 송환도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납북자 송환은 남한 당국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고 북한이라는 상대방이 응해주어야 되는 문제다. 이 때문에 통일부도 송환을 위한 북한 설득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송환해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경제적 대가는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구제 대상이 너무 포괄적인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통일부안에는 납북피해자·귀환납북자·납북자가족 등으로 대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전쟁 시기 납북자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서도 문제로 지적돼 통일부가 수정안을 내는 등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전쟁 피해자를 보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전쟁시기 사망한 사람들과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세월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검증과정에서 대상자를 가려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4-06
- 브라운관 이미지에 묻힌 '지도자 브랜드' 화면 덕에 빨리 컸지만, 화면으로 위기 직면 방송사 앵커 출신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는 점에서 총선 등 각종 선거를 앞두고 영입 1순위에 꼽힌다. 단기간에 치러지는 선거의 속성상 대중적 인지도가 곧 지지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96년 정계에 입문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5대 총선과 16대 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라는 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지도가 높은 ‘방송사 앵커’ 출신이라는 이력이 적잖이 뒷심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올해로 정 의장은 정치권에 입문한 지 만 10년이 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 속에 정동영은 여전히 ‘언론인’이란 이미지가 가장 크게 각인돼 있다. 내일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정동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거나 연상되는 이미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언론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 가운데 11.9%로 가장 많았다. 10년 세월동안 앵커 출신 정 의장은 여전히 브라운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브라운관에 갇힌 정치인 이미지 = 정 의장이 앵커 이미지를 벗지 못한 데에는 정계 입문 이후 최장수 ‘대변인’으로 활약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앵커’에서 당의 입장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대변인’으로의 변신은 전달하는 내용은 바뀌었을지언정, 화면 등을 통해 ‘전달한다’는 업무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변에 능하다’가 4.4%를 기록하고, ‘깨끗, 신뢰’(4.2%), ‘똑똑함’(3.0%), ‘부드러움’(1.8%), ‘인상이 좋음’(1.0%), ‘편안함’(1.0%) 등이 비교적 높게 나온 것 역시 ‘앵커’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송과 정치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방송사가 정해진 시간에 여러 스탭들이 팀플레이를 통해 정제된 화면과 내용을 전달하는데 반해, 정치인은 매 순간 ‘생방송’될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 의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방송과 정치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정제되지 않은 화면과 발언이 그대로 노출될 위험을 앵커 출신 정치인 정동영은 간과했던 것이다. ◆양극화된 정치적 자질 이미지 = 정 의장의 정치적 자질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과 부정이 혼재돼 있다. 추진력과 리더십, 정치적 자질에 대한 이미지가 6.5%로 다소 높았지만, 자질부족과 약하다는 평가 역시 5.3%로 만만치 않았다. 이같은 결과는 10년 정치인 생활동안 ‘앵커’ 이미지를 뛰어넘을 뚜렷한 ‘정치인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풍’과 ‘국민경선 지킴이’ 등 정 의장이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울만한 정치적 이력은 정치권 내에서는 주요한 이슈가 됐을지 몰라도, 국민 피부에 와 닿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풍’ 등을 통해 ‘이중인격, 비겁, 야비’(2.6%)한 이미지가 생겼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열린우리당 대표(2.6%)와 통일부 장관(0.8%)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높지 않은 점은 우리 국민들이 직책을 매개로 정치인의 이미지를 형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학생, 운동권 이미지 ‘미미’ = 정 의장에 대해 ‘운동권’(0.6%)이나 ‘진보적’(0.5%)이라는 이미지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잘 차려 입은 옷을 입고 브라운관을 매개로 대중에게 각인된 정 의장의 이미지 속에 대학시절 민청학련에 연루돼 감옥에 갔던 일화나 옷을 납품하기 위해 청계천을 오가며 고학했던 어두운 기억들을 함께 보여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이 방송사 ‘앵커’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이전에 살아온 삶은 그다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7년 방송사 기자시절 앵커 정동영에게 비춰진 방송사 조명이 너무 밝았던 탓이다. 53년 7월27일 한반도에 ‘휴전선’이 그어진 날 태어난 정 의장은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70년대 들어 대학을 다녔다. 서울대 국사학과 72학번인 정 의장은 이해찬 전총리에게 ‘돌 던지는 것’을 배워 학생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고2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정 의장이 서울에 올라와 학생운동에 빠져 감옥을 오가는 것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서울로 상경, 단칸방을 얻어 청계천에 옷을 납품하는 가내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청계천이 복원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의장은 어느 일요일 홀로 청계천을 찾아 리어카에 옷을 싣고 평화시장을 오가던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분장하고 카메라 앞에 선 정 의장의 화려한 ‘앵커’ 이미지 이면에는 어두운 시대를 헤쳐오는 동안 깊이 패인 정 의장의 주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 의장에 대한 기타 이미지로는 ‘눈웃음’ ‘정의파’ ‘글로벌’과 함께 ‘오만하다’ ‘너무 개인적이다’ ‘무식하다’ ‘공격적이다’ 등도 있었다. 구자홍 기자 jhkoo@naeil.com 2006-04-04
- “국가권력 잘못 반드시 정리” 노 대통령 4·3 위령제 참석 … 국가원수로선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선 처음으로 3일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위령제 참석으로 현대사의 큰 비극이던 4·3사건 진상규명과 정리작업은 큰 매듭이 지어지게 됐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정리작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며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말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히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선거운동 때 4·3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조사 및 명예회복을 약속했으나 여러 정치상황으로 위령제 참석을 미뤄왔다. 취임 첫해인 2003년에는 진상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고건 총리가 대신 참석했고 2004년에는 위령제 참석과 사과 표명계획을 검토했으나 탄핵사태로 접어야 했다. 지난 해에는 국회에서 과거사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 벌어져 이해찬 총리가 참석했다. ◆“국가권력 불법행사 사과” = 노 대통령은 이날 제주도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위령제 추도사에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 되었던 잘못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오랜 세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0월 4·3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를 받고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이라고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며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1만2725명 희생자 인정 = 4·3사건은 1948년 좌우익 충돌과정에서 제주도에서 좌익세력에 의한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하자 군경을 투입, 1954년 9월21일까지 진압 및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 많은 양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부는 99년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2000년에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됐고 2002년에 1715명이 희생자로 첫 인정을 받았다. 2003년부터 ‘제주4.3 평화공원’조성작업이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제주4·3 진상보고서’가 확정됐고 노 대통령이 공식사과했다. 현재까지 4·3사건 관련 신고자 1만4373명 중 1만2725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4-04
- [신문로]친일파 문자작의 항변 친일파 문자작의 항변 박 연 철 (변호사) 김명인 시인의 ‘소화 14년’이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서류갈피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가슴 아프게 기록한 시다. “… 제국군대의 지까다비 뿌우연 먼지 중국대륙을 휩쓸던 때 국민복을 입고 작업모에 각반까지 두른 … 스물다섯 젊은 나이였을 나의 아버지 … 노무자로 끌려 다니면서 길림에서 봉천으로 봉천에서 다시 중경으로 … 열사의 조상을 갖지 못한 가계여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 희미한 사진속의 긴 세월 가라앉아 건너오면서 광산의 덕대로, 쌀장수로, 마침내 그것도 놓아버리고 …” 시인은 해방 전이나 후에나 마찬가지로 고난의 세월을 보낸 아버지를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시는 너무나 솔직하여 가슴을 몹시 아리게 한다. 우리는 늘 따뜻한 마음이 앞서서 잘못된 일을 쉽사리 덮어주거나, 그 반대로 비난하는 마음이 솟구쳐 전후의 배경과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제는 어지간히 많은 세월과 논쟁을 거쳐 왔으니 국권을 상실하였던 일제시대에 발생한 모든 일들을 냉철한 마음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일단락지어야 할 때가 왔다.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직면할 줄 알아야 하겠다. 선대들이 행한 일이라 하여 선대의 체질 정서 지력 등을 유전받고 재산과 습속을 계승하였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과 선대들을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스스로를 구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솔직한 고백 ‘소화14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선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복명하는 자세가 더 귀중하다고 생각된다. 일제시대의 친일행위자 가운데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록을 남겨놓은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반대로 해방 후에 자신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자서전을 남겨놓은 이들이 더 많이 눈에 뜨인다. 현 정부에서 과거청산을 위하여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정리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반론도 있고, 개별인물에 대한 반론도 지속되고 있다. 가시 돋친 설전과 비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나, 모두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설혹 정부가 관여하는 과거사정리에 이견이 있더라도 이미 시작된 작업이므로 자신의 알고 있는 바와 자료, 의견들을 반민규명위로 보내 주도록 하는 것이다. 일제시대까지 정리작업을 하다보면 자주독립의 가치가 무엇인지 저절로 우리 가슴판에 새겨질 것이라 믿는다. 일제시대에서는 자주독립운동사를, 해방 후 지금까지는 남쪽에서 민주화운동사와 경제발전사를, 북쪽에서 사회주의 흥망사를 확인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남북통일사’와 ‘국제화시대사’에 지난 근대사가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지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토요일 ‘서울 1945년’이라는 KBS 주말연속극에서 친일파 문자작의 열연을 주의깊게 시청하였다. 드라마속의 문자작은 친일파로서의 자부심과 신념, 가족과 형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강한 인간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모든 재산을 내어놓는 탄백(坦白)의 절차를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으로서 활동하던 시대가 지나갔으니 깨끗이 할복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려 하였다. 문자작은 극중에서 조선왕조는 그 백성에게 가난하고 비루먹은 생활만을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자기에게 꿈을 주었으며 자신이 입신양명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부르짖었다. 문자작의 왜곡된 삶 그러나, 문자작이여, 그대가 일제와 타협해가면서 그 제약 하에 모질게 자기발전을 도모하던 그때에도,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온갖 고난을 다 이겨내면서 민족자존을 지켜 낸 투사들이 적지 아니하였다. 일제의 어두운 장막이 갑자기 거두어지고 눈부신 자유의 들판에 서게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고 그 생명이 찬란하게 빛나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도로 한국인으로 환원되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국적이 회복되었고, 성명복구령을 기다리지 않아도 창씨개명이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족은 쇠멸되지 아니하였다. 문자작 그대가 탄백하고 새로운 시대의 일원이 되었더라면 조국의 품안에서 맨손으로도 더 나은 삶을 다시 살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3-30
- <신문로 칼럼>친일파 문자작의 항변(박연철 2006.03.30) 친일파 문자작의 항변 변호사 박 연 철 김명인 시인의 ‘소화 14년’이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서류갈피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가슴 아프게 기록한 시이다. 몇 군데를 인용한다. “… 제국군대의 지까다비 뿌우연 먼지 중국대륙을 휩쓸던 때 국민복을 입고 작업모에 각반까지 두른 … 스물다섯 젊은 나이였을 나의 아버지 … 노무자로 끌려 다니면서 길림에서 봉천으로 봉천에서 다시 중경으로 … 열사의 조상을 갖지 못한 가계여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 희미한 사진속의 긴 세월 가라앉아 건너오면서 광산의 덕대로, 쌀장수로, 마침내 그것도 놓아버리고 …” 시인은 해방 전이나 후에나 마찬가지로 고난의 세월을 보낸 아버지를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시는 너무나 솔직하여 가슴을 몹시 아리게 한다. 나도 소화19년도(1944년도)에 김해농업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0대의 아버지가 같은 국민복, 작업모에 각반을 두른 모습으로 동급생과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 흥아성전(興亞聖戰)과 총후보국 (銃後輔國)을 위하여 수시로 동원되어 사역당하던 당시 학생들의 빛바랜 복장이었다. 우리는 늘 따뜻한 마음이 앞서서 잘못된 일을 쉽사리 덮어주거나, 그 반대로 비난하는 마음이 솟구쳐 전후의 배경과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제는 어지간히 많은 세월과 논쟁을 거쳐 왔으니 국권을 상실하였던 일제시대에 발생한 모든 일들을 냉철한 마음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일단락지어야 할 때가 왔다.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직면할 줄 알아야 하겠다. 선대들이 행한 일이라 하여, 선대의 체질, 정서, 지력 등을 유전받고, 재산과 습속을 계승하였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과 선대들을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스스로를 구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선대들의 불안하였던 영혼이 우리를 향하여 염원하는 바일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선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복명하는 자세가 더 귀중하다고 생각된다. 일제시대의 친일행위자 가운데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록을 남겨놓은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반대로 해방 후에 자신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자서전을 남겨놓은 이들이 더 많이 눈에 뜨인다. 현 정부에서 과거청산을 위하여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정리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반론도 있고, 개별인물에 대한 반론도 지속되고 있다. 가시 돋친 설전과 비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나, 모두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설혹 정부가 관여하는 과거사정리에 이견이 있더라도 이미 시작된 작업이므로 자신의 알고 있는 바와 자료, 의견들을 반민규명위로 보내 주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사정리는 자료가 풍부할수록 진실에 가깝게 되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독단을 피하게 될 것이다. 일제시대까지 정리작업을 하다보면 자주독립의 가치가 무엇인지 저절로 우리 가슴판에 새겨질 것이라 믿는다. 일제시대에서는 자주독립운동사를, 해방 후 지금까지는 남쪽에서는 민주화운동사와 경제발전사를, 북쪽에서는 사회주의 흥망사를 확인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남북통일사’와 ‘국제화시대사’에 지난 근대사가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지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회의적이었지만,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민주공화정체를 선포하였던 것은 그 당시 비현실적이고 회의적이었으나 100년 가까이 세월을 지내면서 계속 그 꿈이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지각하게 된다. 우리들의 심장이 튼튼하여지고, 팔다리가 몰라보게 건강하여진 것이다. 지난 토요일 ‘서울 1945년’ 이라는 KBS 주말연속극에서 친일파 문자작의 열연을 주의깊게 시청하였다. 드라마속의 문자작은 친일파로서의 자부심과 신념, 가족과 형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강한 인간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모든 재산을 내어놓는 탄백(坦白)의 절차를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으로서 활동하던 시대가 지나갔으니 깨끗이 할복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려 하였다. 문자작은 극중에서 조선왕조는 그 백성에게 가난하고 비루먹은 생활만을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자기에게 꿈을 주었으며 자신이 입신양명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문자작이여, 그대가 일제와 타협해가면서 그 제약 하에 모질게 자기발전을 도모하던 그때에도,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온갖 고난을 다 이겨내면서 민족자존을 지켜 낸 투사들이 적지 아니하였다. 일제의 어두운 장막이 갑자기 거두어지고 눈부신 자유의 들판에 서게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고 그 생명이 찬란하게 빛나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도로 한국인으로 환원되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국적이 회복되었고, 성명복구령을 기다리지 않아도 창씨개명이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족은 쇠멸되지 아니하였다. 문자작 그대가 탄백하고 새로운 시대의 일원이 되었더라면, 그만한 역량이라면, 조국의 품안에서 맨손으로도 더 나은 삶을 다시 살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3-30
- <''이미지 정치시대'' 예비주자들의 초상> ③ 김근태 대중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넘어야 할 ‘벽’ ‘정직한 리더십’ 긍정평가 많지만 이미지 부각 안돼 김근태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 정치권에 몸을 실은 건 11년전인 95년이다.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정치에 입문한 뒤 3선 의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치며 여당의 차기주자군 대열에 합류했다. ‘정치인 김근태’에게는 “전문가들에게선 콘텐츠와 실력을 갖췄다고 인정받으면서도 국민들의 눈에는 대중정치인으로 각인돼 있지 않다”는 평가가 언제나 엇갈렸다. 올해 초 당으로 돌아와 지도부 경선에 뛰어든 김 최고위원은 변신을 시도했다. 어렵고 긴 말투를 짧고 간결하게 바꿨고, 지나치게 신중하고 수동적인 모습에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로 전환했다. 대중성 부족이란 꼬리표를 떼어 내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의 이런 노력은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정치인 김근태는 여전히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근태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물음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거나 ‘잘 모른다’는 반응이 600명을 넘었다. 특정 이미지를 제시한 나머지 응답층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운동권’이며 ‘약하다’는 느낌과 함께 ‘정직한 리더십’이란 긍·부정이 혼합된 이미지를 제시했다.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와 실시한 김 최고위원에 대한 이미지 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은 ‘운동권(73명)’, ‘리더십과 추진력(50명)’, ‘자질부족과 약함(46명)’, ‘깨끗함과 정직(35명)’ 순서로 답했다. ◆“운동권이고 약하다” =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 온 ‘우유부단’ ‘햄릿형’으로 해석될만한 이미지는 국민의 답변 속에 거의 없었다. 이런 점에서 김 최고위원의 스타일 변신 노력은 일정하게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생활 11년을 거치고도 ‘운동권’이란 답변이 가장 먼저 나온 점은 김 최고위원이 아직은 강력한 과거의 이미지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생운동, 재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혹독한 세월을 헤쳐온 그의 인생역정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달라진 사회와 미래를 끌어가기에는 ‘뒤쳐진 시간표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부정적 측면은 ‘차기주자 김근태’의 발목을 붙드는 요소다. 김 최고위원 자신도 ‘운동권’이란 과거 이미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당으로 복귀한 1월 초 그가 기자들에게 부탁한 첫마디는 “재야파란 말을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달라진 시대에 낡은 인식과 행태를 고집하는 세력으로 비친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차기주자로 거론되는 그에게 ‘자질부족, 약하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답이 46명이나 되는 것도 되새겨볼만한 대목이다. 확실한 미래주자로 신뢰를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정직한 리더십”이나 인지도 미약 = 반면,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춘 사람이란 국민들의 인식은 정치인 김근태가 키워가야 할 이미지 자산일지 모른다. ‘정직한 리더십’이란 그의 이미지는 2002년 3월 불법선거자금 고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이 있던 2000년 8월 당시 권노갑 의원에게서 불법선거자금 2000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정치권은 ‘순진한 바보’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신선하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에게 무엇보다 고민이 될만한 부분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답변이 439명, ‘잘 모른다’는 반응이 175명이나 되는 점이다. ‘김근태의 정치적 상표’가 불분명하고 대중인지도도 여전히 낮은 수준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김 최고위원에 대한 소수 이미지로는 ‘김대중과 유사하다’거나 ‘젊다’, ‘관료주의’, ‘날카롭다’ 등도 있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3-29
- [신문로]신입생 환영회와 술 신입생 환영회와 술 김 혁 종 (광주대 총장) 3월이면 전국의 대학은 신입생 환영회로 떠들썩하다. 신입생들은 적지 않은 시간의 입시 지옥 과정을 치러내고 사회로 진출하기 전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는 해방감과 함께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잦은 술좌석과 마주치게 된다. 이 신입생환영회가 잘못된 음주문화에 노출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던 학생이 실종 이틀만에 대학 인근 농수로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다친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이라 한다. 예전 어느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는 커다란 대접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는 신고식을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신입생 환영회와 술을 한데 섞어 그럴듯한 전설을 만들어 내고, 호기로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끔 한 대학이 어디 그 대학뿐이었으랴.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의 세태라고 별다를 것 없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요즘은 특히 어느 대학이고 가릴 것 없고, 주종 또한 막걸리에서 소주, 맥주, 양주에 심지어는 폭탄주까지 등장하여 신입생 환영회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대학생 음주, 도를 넘었다 술은 고금을 막론하고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최근에도 한 정치인이 술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혹자는 술이 문제라 하고, 혹자는 사람이 문제라 하지만, 귀책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술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폭력 등 각종 형사 사건들을 살펴보면 대개가 술과 연관된 사건들이고,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술에 취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선처를 해달라”는 하소연 일색이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하는 전문병원이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알코올 중독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도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인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의 알코올 중독 수치는 발표치보다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 대학교에서 대학생 음주 실태를 조사했더니, 일주일에 3회 이상 만취하도록 마시는 학생이 전체의 66%에 달했고 거의 매일 마시는 학생도 1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대학생들의 음주상태는 이미 심각한 상태를 넘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쁜 술버릇에 대해 관대한 문화가 나쁜 음주습관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술을 강권하는 풍토에서 이뤄지는 환영회야말로 신입생들에게 잘못된 음주문화를 습득하게 하는 온상이 될 수 있다. 대학 생활의 시작인 신입생 환영회에서부터 보여지는 잘못된 음주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차제에 올바른 음주예법과 문화를 가르치는 교과목을 신설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가 술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일부 대학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후배들간의 정을 쌓고, 의미 있는 대학생활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색 환영회를 갖고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술 없앤 이색환영회 지원해야 한 대학은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잘 돌봐 주겠다는 의미로 발을 씻겨주는 ‘세족행사’를 가졌고, 다른 대학은 재학생과 신입생간 체육대회로 대신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사회복지학부에서도 복지관 등을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신입생환영회를 대신했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일부에서 일고 있는 이런 의미 있는 신입생 환영회에 대한 대학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는다면 술을 없애고 의미 있는 행사로 환영회를 치러내는 모습이 모든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대학 밖의 기성세대들 또한 올바른 음주예법과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에 앞장서 젊은이들이 술로 인해 실족하지 않도록 하는 전도사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