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김영호 칼럼>북한경제를 살려야 하는 까닭(김영호 2005.12.12) 북한경제를 살려야 하는 까닭 김 영 호 (시사평론가) 2년 전 평양은 가는 곳마다 아파트 외벽공사가 한창이었다. 외벽에 허술하게 붙인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흉하기도 하지만 누추해 보여 모두 떼어내기로 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거의 마무리되어 도시가 한결 산뜻해졌다. 오가는 시민의 옷차림도 밝아지고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들도 눈에 띈다. 20년도 더 된 낡은 자동차들만이 간간이 다니더니 요즈음은 드물지만 새 승용차들이 지나다닌다. 가는 곳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매점이 있고 흥정도 이뤄진다. 상점도 늘었고 식당에는 창 너머로 담소하는 손님들이 눈에 띈다. 밤의 평양은 더 달라졌다. 어둠이 깔려도 전등을 켠 집집들이 드문드문하더니 형광등을 켠 집들도 늘어났다. 전기사정이 좀 좋아진 모양이다. 밤이면 사라지던 자동차들도 긴 헤드라이트로 어둠을 가르며 굴러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지난 10년간보다 더 큰 변화가 조용히 이뤄진다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남쪽사람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긴장감도 없어졌다. 지난해 북한의 무역규모는 28억5670만 달러이다. 이것은 1991년 이후 최대규모이다. 이제야 겨우 동구권과 구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던 1989~1990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선 셈이다. 교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공산권 시장을 잃으면서 북한 경제는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15년간이란 긴 세월을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헤쳐 나오려는 형국이다. 중국과 남한과의 교역이 늘면서 말이다. 한국의 연간교역규모가 5000억 달러라는 점과 비교하면 북한의 경제규모가 얼마나 영세한지 말해준다. 통일은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 이 상태에서 통일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남쪽으로 돌아온다. 남쪽도 빈부격차의 심화로 갈등구조가 점점 첨예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감당할 능력이 없다. 여기에다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지 않아 남북간의 이해의 접점도 좁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의 그 날이 온다면 집단적 마찰이 적대감으로 번져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참화가 예견된다. 하지만 통일을 마다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경제교류를 확대하여 북한경제가 자립하도록 돕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의 인력-자원과 남의 자본-기술을 결합하여 공동번영의 길로 나가는 것이다. 남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해외투자를 북으로 돌리면 가격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 언어장벽이 없으니 기술-기능인력의 개발도 효과적이다. 개성공단을 서둘러 활성화시켜야 한다. 최대의 장애물은 북의 핵개발이다. 북은 폐쇄의 문을 활짝 열고 6자 회담을 조속히 성사시켜야 한다. 최근 알려진 바로는 북한이 외국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모양이다. 합영-합작 외국기업에게 내수시장을 개방하고 감세혜택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간의 교류는 민족간의 내부거래로 간주하여 남쪽 기업이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중국은 북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고 현지투자도 늘리고 있다. 중국투자가 증가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거래되는 공산품은 거의 중국산이다. 중국이 상권도 상당히 장악하고 있고 자원개발에도 활발하다. 북한경제의 중국의존도가 날로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를 말한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구려사를 침탈하려는 역사왜곡의 차원을 넘어선다. 북한을 자국영토로 편입시킬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책략을 깔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북반구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북은 해마다 식량 100만t을 외국원조에 의존해야 산다. 농업기술이 낙후하여 고질적인 식량난을 해소하기 어렵다. 비료만 원조 받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종자개량을 추진하는 한편 농자재를 체계적으로 공급받고 재배기술을 전수 받아야 한다. 이 문제도 남과 손을 잡아야 해결된다. 무엇보다도 자영농을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1988년 집단농장을 폐지한 베트남은 식량난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3대 미곡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남북교역액이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선다. 왕래인원도 9만명에 이른다. 함께 일하는 남북 일꾼도 개성공단 6000명, 금강산 1500명에 달한다. 북한주민의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남쪽의 경제적 우월성도 안다.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면 군사적 긴장도 완화된다. 서로 경제적으로 잃을 것이 많아지면 전쟁억지력을 발휘한다. 남북간의 경제교류는 긴 안목으로 보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2-11
- “복수노조 혼란 초래, 연기해야” 오는 18일 새롭게 취임하는 박대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장은 2007년부터 시행되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 “노노간 갈등과 분열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유예를 주장했다. 박 의장의 이 같은 주장은 양노총을 통틀어 상급단체 간부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처음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복수노조의 시행시기를 유예함으로써 단결권을 저해하는 문제는 있다”면서도 “노동자들내의 분열로 인한 노동운동의 손실에 비하면 올바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박 의장이 이처럼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배경에는 현재 상당수 노조간부들내에서 존재하는 복수노조에 대한 거부반응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의장은 “대세가 시행하는 것이어서 말은 못하고 있지만 복수노조에 대한 노조간부들의 우려가 팽배해 있다”며 “좀더 솔직해지자는 차원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의 이러한 주장 배경에는 박 의장 개인의 노조운동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노조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예전부터 조종사들과 일반직원간의 근로조건이나 생활수준의 격차가 컸다”며 “조종사노조가 생기고 나서 이러한 격차가 차별과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더라”고 지적했다. 1년 내내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하는 문제를 두고 허송세월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노동운동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정부나 사용자를 상대로 싸울 때는 싸워야 하지만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상실했을 경우 존립기반이 위태롭다고 했다. 박 의장은 “노정관계 갈등이 오래가고 있는데 불필요한 대립은 소모적이다”며 “최근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노총과 같은 상급단체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 보다 폭넓은 이슈를 제기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나 근로자들의 세금부담 문제, 연금문제 등 국가정책적 과제에 보다 깊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지역본부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서는 “순수한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임기중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지역본부의 위상강화를 위해서 조직강화와 재정자립에 중점을 두겠다는 공약사항의 철저한 이행도 약속했다. 그는 “지역본부에 새로 가입하겠다는 조직이 2만명 이상”이라며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 신규조직의 가입에 총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신임 의장은 지난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89년부터 노조대의원을 시작으로 95년부터 2002년까지 노조위원장을 내리 3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항공기 기본정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노조운동에서 그동안 합리적인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노총은 어떤 조직 공공·서비스노조 중심으로 재편 중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제조업이 지방으로 대거 이전하면서 버스·택시 등 공공서비스 분야와 금융권 및 대기업 사무직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현재 200여개 노조 20만명 안팎의 노조원을 포괄하고 있어 지역 노조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그동안 수도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지역차원 노조운동이 가장 미약했다는 지적도 받아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수 의장은 “조직 활동력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해 새롭게 조직을 충원하고 확대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15
- <김영호 칼럼>국회담장 헐어 열린마당 만들자(2005.11.14) 국회담장 헐어 열린마당 만들자 김 영 호 (시사평론가) 흔히 국회의사당을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른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나랏일을 논하니 거기에는 국민의 뜻이 배어있는 곳인가 싶다. 그런데 10만평이나 된다는 그곳은 높다란 돌담으로 둘러쳐 있다. 그 둘레 곳곳에는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전경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보기에도 근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그 뒤편 한가운데 웅장한 화강암 석조전이 지난 30년간 권위의 상징처럼 위용을 자랑해 왔다. 여의도에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은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에 착공되어 1975년 9월 1일 준공됐다. 대의정치를 말살한 유신체제가 모순되게도 민의의 전당을 지었던 것이다. 의사당은 본관, 의원회관, 도서관, 헌정기념관 등 부속건물을 포함하여 건평이 4만2,600평에 이른다. 본관은 경회루의 석주를 본뜬 높이 32.5m의 24개 열주(列柱)가 받치고 있다. 또 지붕은 밑지름이 64m나 되는 돔으로 형성되어 있다. 통일과 양원제에 대비하여 민의원-참의원 회의장이 있다. 지금의 본회의장은 민의원 회의장이다. 국회의사당도 숱한 정치적 풍상을 겪었다. 유신체제에서는 유정회 의원이라고 해서 정권이 임명한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 노릇을 했다. 1979년 10월 궁정동에서 울린 한방의 총성이 유신체제에 종막을 고했다.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신군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그 대신 탱크를 주둔시켰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의 족쇄를 끊고 이 나라에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차례로 들어섰지만 이 곳은 권위의식에 갇혀 변화의 미풍도 불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외곽의 정문에서부터 전경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왜, 무엇을 하려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리곤 의원실에 확인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방문일지에 기록하라고 한다. 더러 재수가 좋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도서관을 찾거나 토론회에 갈 일이 생겨도 정말 가기가 싫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 그런 일이 없다. 택시라도 타면 일단 정지하고 어디로 간다고 묻는 말에 대답하면 그만이다. 걸어서 들어가다가는 온갖 시비를 당하기 일쑤이다. 본관이나 의원회관에 들어가려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돌아가야 가야 한다. 본관은 뒷문으로 가려면 250m나 걸어야 한다. 입구에 설치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 경비에게 요건을 말하고 신분증을 주면 의원실에 확인한다. 이 절차를 거쳐야 방문증을 얻어 달고 들어갈 수 있다. 국회의원의 보증이 없이는 의원회관도 본관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본관에 위치한 기자실에 호소할 일이 있어도 의원실에 부탁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왜 외곽의 정문에서 군사정권이 일삼던 검문-검색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들이 국회를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 동안 국회경내를 개방하라고 요구했으나 들은 척을 하지 않아 공동대응하기로 했단다. 국회 경내에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자는 것이다. 건축물이 차지한 면적을 뺀 나머지 6만8000평은 광장, 도로, 공원으로 되어 있다. 이 넓은 공간은 꽃과 나무가 잘 가꿔져 어느 공원보다 훌륭하다. 이곳을 그 옆 벚꽃 길과 한강시민공원과 이으면 국민들이 찾고싶은 곳이 될 것이다. 또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의정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장이 된다. 그런데 사무처는 아름드리 향나무를 몽땅 뽑아내고 소나무를 심겠다는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다.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안문제를 말할지 모른다. 온갖 민원이 쏟아지고 시위로 경내가 소란스러울 거라는 이유로 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미국 국회의사당에는 담장이 없다. 그곳은 관광객도 쉽게 드나드는 늘 열린 공간이다. 회의장도 열려있다. 비단 미국뿐이겠는가? 어느 문명국이 의사당에 높은 담장을 치고 민의의 접근을 막겠는가? 지방관서들이 담장을 허물고 주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학교도 아파트도 담장을 헐어내고 이웃을 끌어안는다. 국회 의사당의 담장을 헐어내고 열린공간, 문화공간으로 만들자. 그곳은 결코 국회의원 299명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니 국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 그 담장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오랜 세월 그들은 폐쇄의 공간에서 민의를 외면한 채 탈법과 변칙을 예사로 알았다. 보는 눈이 없다고 말이다. 죽은 청계천이 살아났다고 많은 국민들이 기뻐한다. 국회의사당도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열린 마당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13
- 검찰은 수사로 승부해야 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취임한 지 1주일 가량됐다. 참여정부 이후 법무부 차관과 대검 차장을 지낸 ‘준비된 총장’이라는 점에서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정 총장은 취임사에서 요즘 경영인들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솔개론’을 사례로 들면서 검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솔개의 수명이 보통 40년이지만 일부 솔개는 최고 70년까지 사는데 그 비결이 뼈를 깎는 자기 구조조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 인권 보호하며 사법정의 세워야 정 총장의 취임사에는 검찰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솔개와 처지가 비슷하다는 절박한 심정이 담겨있다. 사냥감을 잡을 수조차 없게 노화된 발톱, 길게 자라 구부러져 가슴까지 닿는 부리, 짙고 두껍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힘겨운 깃털을 가진 늙은 솔개와 검찰이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 총장이 국민에 대한 봉사와 서비스를 거듭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검찰은 아직도 국민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며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존재 이유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후폭풍이 검찰을 강타하면서 검찰에는 ‘봉사활동’과 ‘친절캠페인’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검찰 수뇌부가 극빈자에게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어깨띠를 두르고 민원인을 상대로 친절캠페인을 벌이는 일도 필요하다. 검찰이 진정한 ‘인권의 수호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손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검찰은 죽은자의 원혼도 달랠 수 있는 수사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부당한 권력과 금력에 의해 자행되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그런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2002년 서울지검에서 진행한 ‘수지김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가 그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범 윤태식이 반공투사가 되고 그것을 안기부 등 국가 기관이 주도하고 은폐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였다. 살해된 수지김의 가족은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는 실어증을 앓다가 화병으로 사망했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오빠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큰언니는 정신병을 앓다가 변사체로 발견됐고 두 동생은 이혼 당했다. 반면 윤태식은 지문감식의 첨단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하며 승승장구했다. 2000년에도 사건의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국정원의 압력을 받은 경찰은 내사를 중단했다. 진실이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서 밀려오는 각종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벌여 공소시효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윤태식을 기소했다.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수지김은 남편의 납북을 기도한 여간첩이라는 누명을 영원히 벗지 못했을 것이다. 14년 동안 구천을 떠돈 수지김과 그의 가족에게 검찰은 공명정대한 수사로 최고의 봉사를 한 것이다. 정 총장은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는 28년간 검찰에 근무하며 특수·형사·공안·기획 등 주요 분야에서 다양한 사건을 맡아 처리했다. 평검사 시절 이철희·장영자 부부 금융비리 사건과 5공 새마을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고 서울지검 2차장으로 근무하던 99년 ‘총풍사건’을 지휘했다. 어떤 사건도 공명정대하게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정 총장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위해 자신에게 다가올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기업 관련 사건에는 관대’ 섣부른 걱정도 다만 기업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 때문에 두산그룹 총수를 불구속 기소한 것과 삼성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처리할 것이라는 섣부른 걱정도 나오고 있다. 솔개가 부리로 바위를 쪼아 새부리가 돋아나게 하는 등 반년동안 고통스런 재탄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냥’을 통해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검찰이 자기개혁을 선언하고 혁신에 나서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돈에 의해 왜곡된 진실과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경쟁력 갖추기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 기 수 기획특집팀장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30
- <내일시론>검찰 죽은자 원혼까지 달래는 수사로 승부해야(김기수 2005.11.30) 검찰 죽은자 원혼까지 달래는 수사로 승부해야 검찰은 수사로 승부해야 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취임한지 1주일 남짓 됐다. 참여정부 이후 법무부 차관과 대검 차장을 지낸 ‘준비된 총장’이라는 점에서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정 총장은 취임사에서 요즘 경영인들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솔개론’을 사례로 들면서 검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솔개의 수명이 보통 40년이지만 일부 솔개는 최고 70년까지 사는데 그 비결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 인권 보호하며 정의 세워야 정 총장은 취임사에는 검찰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솔개와 처지가 비슷하다는 절박한 심정을 담겨있다. 사냥감을 잡을 수조차 없게 노화된 발톱, 길게 자라 구부러져 가슴까지 닿는 부리, 짙고 두껍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힘겨운 깃털을 가진 늙은 솔개와 검찰이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 총장이 국민에 대한 봉사와 서비스를 거듭 강조한 것은 시기적절하다. 검찰은 아직도 국민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며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존재 이유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후폭풍이 검찰을 강타하면서 검찰에는 ''봉사활동''과 ‘친절캠페인’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검찰 수뇌부가 극빈자에게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어깨띠를 두르고 민원인을 상대로 친절캠페인을 벌이는 일은 필요하다. 검찰이 진정한 ''인권의 수호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손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검찰은 죽은자의 원혼도 달랠 수 있는 수사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부당한 권력과 금력에 의해 자행되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국민들이 불이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그런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2002년 서울지검에서 진행한 ‘수지김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가 그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아내를 살해한 파렴치범 윤태식이 반공투사가 되고 그것을 안기부 등 국가 기관이 주도하고 은폐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였다. 살해된 수지김의 가족은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는 실어증을 앓다가 화병으로 사망했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오빠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큰언니는 정신병을 앓다가 변사체로 발견됐고 두 동생은 이혼 당했다. 반면 윤태식은 지문감식의 첨단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하며 승승장구했다. 2000년에도 사건의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국정원의 압력을 받은 경찰은 내사를 중단했다. 진실이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서 밀려오는 각종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벌여 공소시효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윤태식을 기소했다.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수지김은 남편의 납북을 기도한 여간첩이라는 누명을 영원히 벗지 못했을 것이다. 14년 동안 구천을 떠돈 수지김과 그의 가족에게 검찰은 수사로 최고의 봉사를 한 것이다. 정 총장은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는 28년간 검찰에 근무하며 특수·형사·공안·기획 등 주요 분야에서 다양한 사건을 맡아 처리했다. 평검사 시절 이철희·장영자 부부 금융비리 사건과 5공 새마을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고 서울지검 2차장으로 근무하던 99년 ‘총풍사건’을 지휘했다. 어떤 사건도 공명정대하게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정 총장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위해 자신에게 다가올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바 있어 기대된다. 두산총수 불구속 기소 우려 다만 기업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 때문에 두산그룹 총수를 불구속 기소한 것과 삼성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처리할 것이라는 섣부른 걱정도 나오고 있다. 솔개가 부리로 바위를 쪼아 새부리가 돋아나게 하는 등 반년동안 고통스런 재탄생의 과정을 걷는 것은 ‘사냥’을 통해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검찰이 자기개혁을 선언하고 혁신에 나서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돈에 의해 왜곡된 진실과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기수 기획특집팀장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30
- ‘쌀’ 앞으로 10년이 문제다 10년만에 농가부채만 25조대로 늘어 농업과 농민 분리해서 정책 세워야 구조조정·인프라 구축에 전력 필요 논란 끝에 쌀협상 비준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리쌀과 수입쌀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정부는 쌀협상 비준대책으로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농업예산을 투입, 농업구조조정과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농업전문가들은 이같은 예산편성만으론 우리 농업의 체질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간 천문학적 농업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다. 농심(農心) 달래기식 숫자놀음을 벗어나 우리 농업의 미래를 냉정하게 설계하고 실제 경쟁력을 확보할 인프라구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15면 ◆선심성 농업예산으론 경쟁력 못갖춰 =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 농업의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향후 10년동안 45조원대 농업구조조정예산을 추가 투입, 관세화가 되더라도 쌀산업이 외국쌀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기간 우리 쌀값은 오히려 2배로 높아졌고 농가부채는 25조원으로 늘어났다. 또 당시 정부는 2004년까지 벼농사와 축산업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업농 15만가구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11월 현재 10만가구 남짓할 뿐이다.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20만명에게 전직교육을 실시한다고 하고도 실제 교육 이수 농가는 지난해까지 4만가구를 넘지 못했다. 장기전략에 입각해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천문학적 농업예산도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구조개선 사업이 아닌 농가 부채탕감이나 소득보전 등 선심성 예산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농업시설 투자나 유통개혁 같은 구조개선용 예산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 지난해 농가부채 탕감과 양곡지원 등에 투입된 비구조조정 예산은 4조원대에 이른 반면 생산기반 조성과 농업인 육성 등 구조조정 예산은 2조500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또 농수산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어민들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식’ 예산집행도 ''''10년 허송세월''''을 거들었다. 실제 2003년 러시아수역 명태잡이 쿼터가 28%가량 줄면서 어민들이 반발하자 명태잡이 어선을 줄이기 위한 특별 예산 7000억원을 긴급배정했다. 또 같은 해 마늘파동 당시에는 마늘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1조800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도 했다. ◆사탕발림식 예산집행 안된다 = 신기엽 농협 조사연구소 부장은 “향후 10년이 우리 농업의 존폐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번 국회 비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쌀을 포함한 모든 농업분야가 전면 개방되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정부는 이번 쌀협상 국회비준에 대해 농민들이 왜 자살까지 하면서 극렬하게 반발하는지 그 배경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농업정책이나 예산집행이 경쟁력 강화가 아닌 우는 아이 떡 주는 식으로 쓰여지면서 농정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농민들의 반발 무마를 고려하기 보다는 농촌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종오 농업기반공사 사장도 “정부가 농촌·농업종합대책으로 내놓은 119조원의 투자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안 사장은 “UR 이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예산배정 방식도 하향식보다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상향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우선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119조원의 농업예산도 여기에 맞게 쓰여질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 강화 문제와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을 분리해 예산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엽 부장은 “농업경쟁력 강화문제는 시장논리에서,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 문제는 사회복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책정된 119조원 예산은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프라구축에 집중투입해야 하며 수입쌀 시판과 함께 더욱 어려워질 고령농에 대해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범정부적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24
- 문패 : 쌀협상 타결, 앞으로 10년이 문제다 선심성 농업예산으론 경쟁력 못갖춰 구조조정·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농업·농민 대책 분리 필요 논란 끝에 쌀협상 비준안이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10년간 쌀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수입쌀의 의무수입물량은 2014년까지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40만8700톤)까지 늘어난다. 또 가공용으로만 공급하던 밥쌀용 수입쌀 시판물량도 내년에는 의무수입물량의 10%에서 2010년까지 30%로 확대된다. 우리쌀과 수입쌀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정부는 쌀협상 비준대책으로 향후 10년간 119조원의 농업예산을 투입, 농업구조조정과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약속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농업전문가들은 이같은 예산편성만으론 우리 농업의 체질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간 천문학적 농업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만 했기 때문이다. 농심(農心) 달래기식 숫자놀음을 벗어나 우리 농업의 미래를 냉정하게 설계하고 실제 경쟁력을 확보할 인프라구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UR 이후, 잃어버린 10년 =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 농업의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향후 10년동안 45조원대 농업구조조정예산을 추가 투입, 관세화가 되더라도 쌀산업이 외국쌀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기간 우리 쌀값은 오히려 2배로 높아졌고 농가부채는 25조원으로 늘어났다. 또 당시 정부는 2004년까지 벼농사와 축산업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업농 15만가구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11월 현재 10만가구 남짓할 뿐이다.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20만명에게 전직교육을 실시한다고 하고도 실제 교육 이수 농가는 지난해까지 4만가구를 넘지 못했다. 장기전략에 입각해 쌀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천문학적 농업예산도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구조개선 사업이 아닌 농가 부채탕감이나 소득보전 등 선심성 예산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작 농업시설 투자나 유통개혁 같은 구조개선용 예산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 지난해 농가부채 탕감과 양곡지원 등에 투입된 비구조조정 예산은 4조원대에 이른 반면 생산기반 조성과 농업인 육성 등 구조조정 예산은 2조5000억원을 조금 웃돌았다. 또 농수산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농어민들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식’ 예산집행도 ''10년 허송세월''을 거들었다. 실제 2003년 러시아수역 명태잡이 쿼터가 28%가량 줄면서 어민들이 반발하자 명태잡이 어선을 줄이기 위한 특별 예산 7000억원을 긴급배정했다. 또 같은 해 마늘파동 당시에는 마늘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1조800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도 했다. ◆농업 인프라 구축에 전력해야 = 신기엽 농협 조사연구소 부장은 “향후 10년이 우리 농업의 존폐를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번 국회 비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쌀을 포함한 모든 농업분야가 전면 개방되기 때문이다. 신 부장은 “정부는 이번 쌀협상 국회비준에 대해 농민들이 왜 자살까지 하면서 극렬하게 반발하는지 그 배경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농업정책이나 예산집행이 경쟁력 강화가 아닌 우는 아이 떡 주는 식으로 쓰여지면서 농정에 대한 불신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 농민들의 반발 무마를 고려하기 보다는 농촌도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종오 농업기반공사 사장도 “정부가 농촌·농업종합대책으로 내놓은 119조원의 투자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안 사장은 “UR 이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예산배정 방식도 하향식보다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상향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우선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119조원의 농업예산도 여기에 맞게 쓰여질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 강화 문제와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을 분리해 예산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엽 부장은 “농업경쟁력 강화문제는 시장논리에서,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 문제는 사회복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책정된 119조원 예산은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프라구축에 집중투입해야 하며 수입쌀 시판과 함께 더욱 어려워질 고령농에 대해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범정부적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24
- “돈벌이보다 까막눈 손님 도와줄 때 보람” 대서소는 관청이나 경찰소 근처에 가면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대서소엔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까막눈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민원서류를 검토하던 대서소의 아련한 풍경, 지금은 일부러 찾아가 만나보고 싶은 모습이다. “행정관청 문서가 한자 일색일 때 대서소 할 맛이 났지. 그 때는 오다가다 들르는 뜨내기 손님이 많아 항상 북적북적했어. 그런데 지금은 벌이가 안돼. 임대료도 내 주머니 털어 내는 걸 뭐…” 박병호(85)씨는 을지로3가 터줏대감이다. 이곳에서만 대서소 행정사 경력 30년이다. 행정사협회의 비공식 집계로 서울지역에서 가장 연로한 행정사인 박씨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갖가지 사연을 가진 민원인을 많이 만났다. ◆“줄어든 수입보다 사람 냄새가 더 그리워” = 서울에서 성공해보겠다고 부친의 논을 몰래 판 목숨 같은 돈을 떼였다며 내용증명을 요구하는 사람부터 허가 나지 않을 곳에 여관을 짓게 해달라며 서류를 만들어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까지 박씨를 거쳐 간 민원인은 헤아릴 수 없다. 사무실 주변 상가 사람들의 훈장 역할도 박씨의 몫이었다. 글을 모르는 까막눈 상인들이 업무가 끝난 시간에도 한글과 한자로 된 서류뭉치를 가져와 무슨 말인지 알려달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세월의 명암은 대서소를 비켜가지 않았다. 관공서들이 대민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에 반비례해 대서소를 찾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박씨는 줄어든 수입보다 사람 냄새가 더 그리웠다고 했다. “얼마 전만해도 문전성시를 이뤘던 사무실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더라고. 애초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했어. 사비 털어 임대료 내는 것쯤이야 뭐가 그리 대수겠어. 그런데 사람들이 끊기니까 뭔지 모르게 허전한 게, 많이 아쉽더라고. ‘늙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지.” ◆잘나가던 경찰에서 갑작스런 퇴직 = 박씨는 잘 나가던 경찰이었다. 강원도에서 오래 근무한 끝에 능력을 인정받고 당시 치안본부로 발령 받아 경찰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의 맛도 봤다. 경감 직위로 성북경찰서 사찰계장을 하던 무렵, 그는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경찰을 떠나야 했다. 한 5년간은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경찰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돈이 넉넉할 리 없었다. 하지만 박씨는 애초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76년에 을지로3가 임대건물에서 시작한 대서소도 공직에 있으면서 해왔던 일이라 자신이 있었지,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남들 다 친다는 타자기도 안배우고 손으로 직접 서류를 만들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덕분에 엄지와 검지, 중지손가락에 못이 심하게 박혔고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돈벌이에 성공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자식농사는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큰 아들은 지금 환갑이 훌쩍 넘어 은퇴했지만 방송국 책임 PD까지 올랐다. 둘째 아들은 미국 LA에 이민 가 건축업 관련 일로 돈 버는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목숨다할 때까지 사무실 지키고 싶어” = 박씨는 언제부터인지 노환으로 인해 귀가 어두워졌다. 행정사는 민원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이제는 업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풍기가 있어 거동마저 불편하다. 마음 같아서야 목숨 다할 때까지 사무실을 지키고 싶지만 욕심이란 걸 잘 안다. 박씨는 “평생 나 때문에 고생한 집 사람도 노환 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대서소를 접고 남은 기간 편히 지내려고 해”라고 말했다. 박씨는 평생 간직해온 좌우명을 보여줬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수첩에 볼펜으로 눌러 쓴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말이다. 커다란 액자에 보관된 일필휘지는 아니었지만 박씨의 인생여정이 담긴 글이었다.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적선지가필유여경 적불선지가필요여양)’ 박씨는 “덕행을 하는 자는 그 후손이 복을 받고, 덕행을 행하지 않는 자는 그 후손에게 재앙이 내린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내가 80여년 살아보니까 모두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더라고… 젊은이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기운 있을 때 남 많이 돕고 살아. 그러면 나중에 그대로 돌아오는 법이야”라고 말했다. “ 대서사 6명중 1명만 밥벌이” ‘대서사’라는 직업이 생긴 것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현대국가의 기틀이 마련되면서부터다. 이후 1941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조선광업 대서사 규제규칙’이라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1961년 제정된 행정서사법에 따라 ‘행정서사’라고 부르다가 1999년 이 법이 행정사법으로 전문 개정되면서 명칭도 ‘행정사’로 바뀌었다. 대한행정사회중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모두 6500명의 행정사가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5000여명 가량이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앙회는 3500명 정도가 행정사를 본업으로 삼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00명가량이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행정사를 출신별로 따져보면 일반 공무원 출신이 50%, 경찰출신이 3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교육공무원 등이 나머지 5%를 차지하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22
-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털자 흔히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말한다. 이런 법언도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는 통하지 않았다. 정보기관원의 지시에 따라 판결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다. 아니면 영달에 눈이 어두워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에 맞춰 사법정의를 팽개치기도 했다. 물론 올곧은 법관들이 있어 꺾이기를 마다하다하고 스스로 법복을 벗기도 했다. 억압과 질곡 속에 살아야 했던 그 시절 많은 법관들이 소신대로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사법부도 오랜 침묵을 깨고 부끄러운 과거를 말해야 한다.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식장에서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반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다. 그는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법부 수장의 준엄한 자기반성으로서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제 구실 못한 인권보장 보루 법원행정처가 이미 자료수집에 나섰다고 한다. 전국 주요법원에 협조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지난 1972~1989년 긴급조치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화염병처벌법 등과 관련한 판결문을 이른 시일 내에 수집해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한 세대 가까이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그 판결문의 갈피 갈피에서 사법정의가 실종된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더러는 피맺힌 원성이 귓가에 맴돌지 않을까 싶다. 군사독재 체재 아래서는 법의 지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총과 칼로 말했다. 그 시절에도 용기 있는 이들이 있어 철권체제에 온몸으로 항거하곤 했다. 이것이 이른바 시국-공안사건이다. 정보기관이나 검찰이 온갖 고문을 자행하여 올가미를 씌우면 어떤 판관은 ‘극형’, ‘극형’을 연발했다. 정보기관원의 주문형량대로 판결했던 것이다. ‘사법살인’이란 말이 나옴직도 했다. 기관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민사재판에도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종의 이권사업으로서 말이다. 그 때는 유능한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법원출입 기관원을 통하는 것이 승소를 이끌어내는 지름길이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인명이 한탄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반평생을 철창에 갇혀 통한의 세월을 보냈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 일가나 후손이 겪는 상처와 고통을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다. 세상도 바뀌었다니 잘못된 재판을 바로 잡아달라고 법원을 찾아 억울함을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심을 청구해도 청구권자와 청구요건이 극히 제한되어 피해회복의 길이 아주 좁다. 그러니 시국-공안사건은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본안에 대해 판단하기도 전에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해 버리고 만다. 열린우리당이 재심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확정판결에 중대한 잘못이 있으면 당사자나 유족의 청구에 의해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을 받는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구세력이 웬일인지 딴죽을 걸고 나서 난리를 핀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법부의 근간을 흔든다는 가당찮은 논리를 내세워서 말이다. 피해자의 잃어버린 명예는 영원히 매장되어도 좋고 시류에 영합한 법관의 더러운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묻는데 왜 사법부만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지 자문하기 바란다. 먼저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말하라. 무오류·불가침 성역은 없다 하 숱한 세월이 흐르다보니 많은 유신판사, 5공판사들이 이미 법원을 떠났을 것 같다. 인간의 기본권리마저 짓밟고 그것을 출세의 디딤돌로 삼은 인사들이 아마 아직도 건재할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도 인적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차제에 전관예우도 철폐되어야 한다. 그 더러운 유착관계로 끌어 모은 돈더미 아래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이들의 피눈물이 괴어있는지 안다면 말이다. 법복의 권위를 내세워 국민을 미물처럼 깔보는 그 교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도 지탄받아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사법부가 언제까지나 무오류, 불가침의 성역일 수는 없다. 경제적 약자, 사회적 소외자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따듯한 언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신임 대법원장의 가식 없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17
- “복수노조 혼란 초래, 연기해야” 노동|박대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신임 의장 오는 18일 새롭게 취임하는 박대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장은 2007년부터 시행되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 “노노간 갈등과 분열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유예를 주장했다. 박 의장의 이 같은 주장은 양노총을 통틀어 상급단체 간부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처음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복수노조의 시행시기를 유예함으로써 단결권을 저해하는 문제는 있다”면서도 “노동자들내의 분열로 인한 노동운동의 손실에 비하면 올바른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박 의장이 이처럼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배경에는 현재 상당수 노조간부들내에서 존재하는 복수노조에 대한 거부반응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의장은 “대세가 시행하는 것이어서 말은 못하고 있지만 복수노조에 대한 노조간부들의 우려가 팽배해 있다”며 “좀더 솔직해지자는 차원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의 이러한 주장 배경에는 박 의장 개인의 노조운동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노조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예전부터 조종사들과 일반직원간의 근로조건이나 생활수준의 격차가 컸다”며 “조종사노조가 생기고 나서 이러한 격차가 차별과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더라”고 지적했다. 1년 내내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체결하는 문제를 두고 허송세월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노동운동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정부나 사용자를 상대로 싸울 때는 싸워야 하지만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상실했을 경우 존립기반이 위태롭다고 했다. 박 의장은 “노정관계 갈등이 오래가고 있는데 불필요한 대립은 소모적이다”며 “최근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어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노총과 같은 상급단체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 보다 폭넓은 이슈를 제기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나 근로자들의 세금부담 문제, 연금문제 등 국가정책적 과제에 보다 깊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지역본부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서는 “순수한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임기중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지역본부의 위상강화를 위해서 조직강화와 재정자립에 중점을 두겠다는 공약사항의 철저한 이행도 약속했다. 그는 “지역본부에 새로 가입하겠다는 조직이 2만명 이상”이라며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 신규조직의 가입에 총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신임 의장은 지난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89년부터 노조대의원을 시작으로 95년부터 2002년까지 노조위원장을 내리 3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항공기 기본정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노조운동에서 그동안 합리적인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