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여 해경, 70%이상 보건휴가 사용한적 없어 대한민국 여성 해경의 처우개선이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공무원들은 매월 1회 보건 휴가를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해경 71%는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 해경들은 또 업무 분장 시 남·여경 차별도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79%가 ‘차별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통영·고성)이 지난 8월22일부터 9월3일까지 2주간 전국여성해양경찰 2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확인됐다. 이번 설문조사는 편지를 이용했으며, 234명 중 130명이 응해 55%의 응답률을 보였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 해경들이 ‘보건휴가’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상사의 눈치 때문에’(60%), ‘사용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16%), ‘과중한 업무 때문에’(7%) 순으로 대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남성위주의 직장 문화 속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여성들의 권리 행사가 현실적으로 불가한 것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여 해경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성에 대한 편견 해소’(42%), ‘여성편익시설확충’(36%), ‘적절한 업무분장’(14%)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함정근무자의 경우 가장 힘든 점으로는 ‘여성편의시설 부족’(47%), ‘여성에 대한 편견’(40%), ‘격렬한 업무강도’(3%) 순으로 응답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선상의 경우 여성 화장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는 등 편의시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김명주 의원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남성위주의 경찰조직 문화가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단계로 발전되어야 한다”며 “최근 여성경찰관의 증가추세에 맞춰 이들의 인권과 품위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근무환경이 빠른 시일 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10-05
- 동도와 서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다 오후 1시30분, 취재팀을 태운 해양경찰청 소속 헬기가 한강을 출발한 지 3시간만에 독도 상공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본 독도 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고 동도와 서도는 푸른 바다 위에 보석처럼 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독도 바다에는 동도와 서도만 있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 부속 도서의 수는 89개나 된다. 독도는 북위 37.14′26.8″, 동경 131.52′10.4″(동도 최고위점 기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전체 면적은 부속 도서를 합쳐 총 18만7453m²(5만6705평)에 이른다. 독도의 주소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가 아니다. 2000년 3월20일 울릉군의회의 ‘울릉군 리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의결로 독도는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라는 주소를 새로 부여받았다. 독도에는 독립된 우편번호도 있다.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2003년 1월1일 독도에 우편번호 ‘799-805’를 부여했다. 독도는 국유재산법 제6조의 규정에 의한 행정재산으로 현재 등기부상 해양수산부의 재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울릉군수가 2004년 7월에 공시한 독도의 공시지가는 2억6771만1388원이다. ◆다양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석학의 보고’ = 헬기는 동도와 서도를 큰 원으로 한 바퀴 선회한 후 동도 선착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는 세찬 동풍이 밀려왔다. 독도 주변 해상의 파도는 4~5미터. 특히 동쪽바다의 파도가 매우 거셌다. 동도나 서도의 동쪽 바다는 수중취재가 불가능한 날씨였다. 파도가 없는 날엔 투명한 거울처럼 잔잔하던 동도와 서도 사이의 파식대(파도에 깎인 넓은 평탄면)에도 동쪽에서 밀려온 파도로 형성된 거센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동도와 서도는 원래 한 덩어리였다. 수십만년의 세월 동안 한덩어리였던 섬이 파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지금처럼 둘로 나눠진 것이다. 독도의 지질은 그만큼 연약하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베개용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면서 물 위로 솟구친 섬이다. 독도는 용암이 대기와 접촉할 때 생기는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 다양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화산섬으로 ‘암석학의 보고’로 불린다. 해저화산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오랜 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 작용에 의해 원래 모양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에 1미터급 ‘혹돔’ 나타나 = 수중촬영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내일은 더 파고가 높아진다는 일기예보였다. 수중팀은 일단 장비를 꾸리고 해양수산부 소속 250마력 쌍발엔진 립보트에 몸을 실었다. 1차 다이빙 포인트는 서도 서남쪽에 있는 2개의 여(작은 바위섬)에서 서도 남쪽 어민숙소까지로 잡았다. 독도바다에 대한 설렘을 안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수심계 바늘이 서서히 움직였다. 5미터, 10미터, 15미터 … 먼저 ‘감태’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감태는 남해나 제주와 달리 센 해류에 견디기 위해 짧고 넓은 잎과 강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시야도 좋았다. 20여미터 이상 탁 트인 시야에 ‘전갱이’ 무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감태 군락 사이로 ‘뿔소라’가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나 남해바다 뿔소라보다 훨씬 크다. 그 옆으로는 열대어종인 ‘줄도화돔’과 ‘철줄돔’, ‘베도라치’가 물살에 몸을 싣고 평화롭게 유영한다. 더 깊은 수심을 타자 바위틈과 굴 속에서 씨알이 제법 굵은 ‘참돔’들이 촬영팀을 신기한 듯 맞이한다. 캄캄한 해저 굴 속으로 들어가다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켰다. 헉! 갑자기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어림잡아 1미터가 넘는 ‘혹돔’이 취재진을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대형 혹돔은 비디오카메라의 강한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태를 뽐낸다. 독도 바다 고기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사람 구경을 거의 못해서 경계심이 없는 것이다. ◆생활쓰레기와 건축폐자재 마구 버려 = 시간이 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2차 다이빙을 위해 휴식시간을 줄이고 동도로 향했다. 동도 서쪽 바다의 다이빙 포인트 수심은 30~40미터. 이곳 수심을 벗어나면 300미터 심해로 이어지는 절벽이다. 물살이 거세지면서 서도 쪽보다 시야가 흐렸다. 게다가 심한 조류 때문에 자꾸만 몸이 심해 쪽으로 밀렸다. 등대와 독도 수비대 건물이 있는 동도 앞바다는 서도와 딴판이다. 평소 생각해 온 청정지역 독도 바다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바닥까지 내려가자 온갖 생활쓰레기와 건축 폐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도 바다 밑바닥은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폐기물로 가득했다. 상해서 버린 듯한 날계란 200여개도 10리터짜리 사각 깡통 옆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출수(물 밖으로 나감)하기로 한 방파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좀 더 깊은 수심으로 내려갔다. 이곳 바닥에도 철근 조각과 깨진 플라스틱 배관들이 널려 있다. 동도 앞바다는 1차 다이빙 장소인 서도와는 달리 물고기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각종 쓰레기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은 흔적이 역력하다. (독도 하로 이어짐) 독도 = 글·사진 전호성 남준기 기자 수중사진 = 해성수중엔지니어링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26
- <독도>상 상 동도와 서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다 파도에 깎여 둘로 나뉘어져 … 동도 바다 밑엔 생활쓰레기와 폐건축자재 오후 1시30분, 취재팀을 태운 해양경찰청 소속 헬기가 한강을 출발한 지 3시간만에 독도 상공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본 독도 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고 동도와 서도는 푸른 바다 위에 보석처럼 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독도 바다에는 동도와 서도만 있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 부속 도서의 수는 89개나 된다. 독도는 북위 37.14′26.8″, 동경 131.52′10.4″(동도 최고위점 기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이다. 전체 면적은 부속 도서를 합쳐 총 18만7453m²(5만6705평)에 이른다. 독도의 주소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가 아니다. 2000년 3월20일 울릉군의회의 ‘울릉군 리의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 중 개정조례’ 의결로 독도는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라는 주소를 새로 부여받았다. 독도에는 독립된 우편번호도 있다.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2003년 1월1일 독도에 우편번호 ‘799-805’를 부여했다. 독도는 국유재산법 제6조의 규정에 의한 행정재산으로 현재 등기부상 해양수산부의 재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울릉군수가 2004년 7월에 공시한 독도의 공시지가는 2억6771만1388원이다. ◆다양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석학의 보고’ = 헬기는 동도와 서도를 큰 원으로 한 바퀴 선회한 후 동도 선착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동도 독도경비대 막사 위에도 헬기장이 있지만 아직 번식 후 둥지를 완전히 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괭이갈매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착장을 택했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는 세찬 동풍이 밀려왔다. 독도 주변 해상의 파도는 4~5미터. 특히 동쪽바다의 파도가 매우 거셌다. 동도나 서도의 동쪽 바다는 수중취재가 불가능한 날씨였다. 파도가 없는 날엔 투명한 거울처럼 잔잔하던 동도와 서도 사이의 파식대(파도에 깎인 넓은 평탄면)에도 동쪽에서 밀려온 파도로 형성된 거센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동도와 서도는 원래 한 덩어리였다. 수십만년의 세월 동안 한덩어리였던 섬이 파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지금처럼 둘로 나눠진 것이다. 독도의 지질은 그만큼 연약하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베개용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키면서 물 위로 솟구친 섬이다. 독도는 용암이 대기와 접촉할 때 생기는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 다양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화산섬으로 ‘암석학의 보고’로 불린다. 해저화산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오랜 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 작용에 의해 원래 모양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눈앞에 1미터급 ‘혹돔’ 나타나 = 수중촬영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내일은 더 파고가 높아진다는 일기예보였다. 수중팀은 일단 장비를 꾸리고 해양수산부 소속 250마력 쌍발엔진 립보트에 몸을 실었다. 1차 다이빙 포인트는 서도 서남쪽에 있는 2개의 여(작은 바위섬)에서 서도 남쪽 어민숙소까지로 잡았다. 독도바다에 대한 설렘을 안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수심계 바늘이 서서히 움직였다. 5미터, 10미터, 15미터 … 먼저 ‘감태’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독도 감태는 남해나 제주와 달리 센바람에 견디기 위해 짧고 넓은 잎과 강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시야도 좋았다. 20여미터 이상 탁 트인 시야에 ‘전갱이’ 무리가 카메라에 잡혔다. 감태 군락 사이로 ‘뿔소라’가 무리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나 남해바다 뿔소라보다 훨씬 크다. 그 옆으로는 열대어종인 ‘줄도화돔’과 ‘철줄돔’, ‘베도라치’가 물살에 몸을 싣고 평화롭게 유영한다. 좀 더 깊은 수심을 타자 바위틈과 굴 속에서 씨알이 제법 굵은 ‘참돔’들이 촬영팀을 신기한 듯 맞이한다. 캄캄한 해저 굴 속으로 들어가다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켰다. 헉! 갑자기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어림잡아 1미터가 넘는 ‘혹돔’이 취재진을 향해 서서히 다가섰다. 대형 혹돔은 비디오카메라의 강한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태를 뽐낸다. 독도 바다 고기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사람 구경을 거의 못해서 경계심이 없는 것이다. 독도 주변 해역이 풍성한 황금 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 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쓰시마 난류가 교차하는 이곳은 플랑크톤과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해저 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 등의 해양 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생활쓰레기와 건축폐자재 마구 버려 = 시간이 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2차 다이빙을 위해 휴식시간을 줄이고 동도로 향했다. 동도 서쪽 바다의 다이빙 포인트 수심은 30~40미터. 이곳 수심을 벗어나면 300미터 심해로 이어지는 절벽이다. 물살이 거세지면서 서도 쪽보다 시야가 흐렸다. 게다가 심한 조류 때문에 자꾸만 몸이 심해 쪽으로 밀렸다. 등대와 독도 수비대 건물이 있는 동도 앞바다는 서도와 딴판이다. 평소 생각해 온 청정지역 독도 바다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바닥까지 내려가자 온갖 생활쓰레기와 건축 폐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도 바다 밑바닥은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폐기물로 가득했다. 상해서 버린 듯한 날계란 200여개도 10리터짜리 사각 깡통 옆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출수(물 밖으로 나감)하기로 한 방파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좀 더 깊은 수심으로 내려갔다. 이곳 바닥에도 철근 조각과 깨진 플라스틱 배관들이 널려 있다. 동도 앞바다는 1차 다이빙 장소인 서도와는 달리 물고기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각종 쓰레기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은 흔적이 역력하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25
- 천재성은 감탄 부르지만 인격은 존경심 유발한다 “혼탁한 세상, 인격이야말로 진정한 재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새무얼 스마일즈의 이 말은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인용하는 격언중 하나다. 19세기 작가이자 정치개혁가, 의사이면서 저널리스트에 도덕주의자인 새무얼 스마일즈는 그의 유명한 저서 ‘자조론’을 통해 이같은 말을 남겼다. 그의 책 ‘자조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수성가에 대한 꿈과 용기,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었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한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성공학의 고전이 됐다. 21세기북스에서 이번에 펴낸 ‘인격론’은 새무얼 스마일즈가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접고 책을 통한 개인의 변화를 꾀하는 길을 선택한 이후, ‘자조론’에 이어 두 번째로 쓴 책이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이어 ‘검약론(1875년)’, ‘의무론(1880년)’ 등을 출간했다. 1871년에 출간된 ‘인격론’은 2005년 요즘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효용이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는 불법과 비리가 판을 치던 과거를 씻고 도덕성과 깨끗함이 통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불법도청과 이를 통해 드러난 정경유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보여주는 또다른 상징이다. 낡고 비정상적인 옛날방식을 버리고 정상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한국사회에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개인과 조직의 인격적 고결성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말에 담겨 있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재성은 항상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다”라는 말로 인격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흔히 ‘빛나는 천재성’을 갈망하지만 결국 양심의 힘인 인격의 높고 낮음이 인생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얘기다. 그는 이미 ‘자조론’의 마지막장 ‘최고의 재산, 인격’에서 인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자조론을 통해 “인간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를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을 의무가 있다. 적절한 방법으로 훌륭한 인격을 키우고자 노력하다 보면 동기가 생기고, 인격이 고양됨에 따라 인성에 대한 개념도 확고해지면서 동기도 활력을 띠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격론’은 어찌보면 ‘자조론’ 마지막 장에 대한 각론인 셈이다. 저자는 이 책 ‘인격론’을 통해 인격은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며 인격의 구성요소들을 성공적으로 갈고닦은 인물은 누구인지, 그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격을 닦았는가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다섯 장을 할애해 인격의 구성요소인 용기, 자제, 의무와 진실함, 성격, 태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 인격을 닦는 경험으로서의 일, 경험을 통한 수양, 책과의 사귐, 교우관계와 본보기, 결혼생활을 다루고 있다. 인격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정에 대해서도 빼먹지 않고 다루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성공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풍부한 사례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인격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결정적인 삶의 순간이나 특별한 습관들을 살펴보다 보면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교훈과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타협’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격론’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은 타협이 아닌 매진이, 의무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하면서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는것이 성공의 첩경임을 알려준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회피할 때 이미 우리는 실패의 공식에 들어섰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해제를 맡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보라. 1분도 좋고 5분도 좋다. 어느새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이 솟아날 것이다.” 공 소장은 또 “‘인격론’은 각 개개인의 인격적·도덕적 각성에 필요한 힘을 채워주는 비타민 같은 책이다.”, “자신을 초월해 이루고자 한 바를 성취할 수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이겠는가, 인격의 뿌리인 의지와 줄기인 지혜가 결합된 힘이 없다면 인생은 막연하고 무의미할 것이다.”와 같은 말들로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원래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공부 한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의회개혁에 관심을 갖고 1838년에는 아예 ‘리즈타임즈’지를 인수해 사회개혁에 대한 견해를 알리는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사회개혁에서 개인개혁으로 포커스를 돌렸다. ‘자조론’과 ‘인격론’ 등 그의 유명한 책들은 이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20
- 인격이 최고의 재산이다 인격론 새무얼 스마일즈 지음 /정준희 옮김 /공병호 해제 21세기북스 /1만5000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새무얼 스마일즈의 이 말은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인용하는 격언중 하나다. 19세기 작가이자 정치개혁가, 의사이면서 저널리스트이자 도덕주의자인 새무얼 스마일즈는 그의 유명한 저서 ‘자조론’을 통해 이같은 말을 남겼다. 그의 책 ‘자조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수성가에 대한 꿈과 용기,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었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한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성공학의 고전이 됐다. 21세기북스에서 이번에 펴낸 ‘인격론’은 새무얼 스마일즈가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접고 책을 통한 개인의 변화를 꾀하는 길을 선택한 이후, ‘자조론’에 이어 두 번째로 쓴 책이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이어 ‘검약론(1875년)’, ‘의무론(1880년)’ 등을 출간했다. 1871년에 출간된 ‘인격론’이 2005년 요즘 한국사회에서 어떤 의미와 효용이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는 불법과 비리가 판을 치던 과거를 씻고 도덕성과 깨끗함이 통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불법도청과 이를 통해 드러난 정경유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보여주는 또다른 상징이다. 낡고 비정상적인 옛날방식을 버리고 정상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21세기 한국사회에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개인과 조직의 인격적 고결성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재성은 항상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다”라는 말로 인격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흔히 ‘빛나는 천재성’을 갈망하지만 결국 양심의 힘인 인격의 높고 낮음이 인생의 성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얘기다. 그는 이미 ‘자조론’의 마지막장 ‘최고의 재산, 인격’에서 인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자조론을 통해 “인간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를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을 의무가 있다. 적절한 방법으로 훌륭한 인격을 키우고자 노력하다 보면 동기가 생기고, 인격이 고양됨에 따라 인성에 대한 개념도 확고해지면서 동기도 활력을 띠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격론’은 어찌보면 ‘자조론’ 마지막 장에 대한 각론인 셈이다. 저자는 이 책 ‘인격론’을 통해 인격은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며 인격의 구성요소들을 성공적으로 갈고닦은 인물은 누구인지, 그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격을 닦았는가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다섯 장을 할애해 인격의 구성요소인 용기, 자제, 의무와 진실함, 성격, 태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 인격을 닦는 경험으로서의 일, 경험을 통한 수양, 책과의 새귐, 교우관계와 본보기, 결혼생활을 다루고 있다. 인격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정에 대해서도 빼먹지 않고 다루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성공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풍부한 사례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인격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결정적인 삶의 순간이나 특별한 습관들을 살펴보다 보면 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교훈과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타협’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격론’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은 타협이 아닌 매진이, 의무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하면서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는것이 성공의 첩경임을 알려준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회피할 때 이미 우리는 실패의 공식에 들어섰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해제를 맡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보라. 1분도 좋고 5분도 좋다. 어느새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이 솟아날 것이다.” 공 소장은 또 “‘인격론’은 각 개개인의 인격적·도덕적 각성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각성에 필요한 힘을 채워주는 비타민 같은 책이다.”, “자신을 초월해 이루고자 한 바를 성취할 수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이겠는가, 인격의 뿌리인 의지와 줄기인 지혜가 결합된 힘이 없다면 인생은 막연하고 무의미할 것이다.”와 같은 말들로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원래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공부 한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의회개혁에 관심을 갖고 ‘에든버러 위클리 크로니클’이라는 언론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838년에는 아예 ‘리즈타임즈’지를 인수해 사회개혁에 대한 견해를 알리는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사회개혁에서 개인개혁으로 포커스를 돌렸다. ‘자조론’과 ‘인격론’ 등 그의 유명한 책들은 이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5-09-20
- [책소개]노동운동은 과연 위기인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노동운동은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노동자들의 개인주의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노조운동을 둘러싼 안팎의 여건이 최악의 상태로 인식되고 있다. 이 책 ‘노동의 힘’은 노동운동의 역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연구하고 이를 정리한 책이다. ‘1870년대 이후의 노동자 운동과 세계화’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산업사회가 생성·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소요와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산업별·국가별 전개과정을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결국 19세기 후반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성된 전투적이고, 집단화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1930년대 미국의 대량생산 산업노동자들의 전투성을 거쳐, 60~70년대 서유럽으로 재차 확산돼 계급 갈등과 투쟁이 재현된다. 이후 1970~80년대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이 세계 노동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지난 1백년 동안 보도된 9만1947건의 각종 보도기사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만 10년의 세월을 거쳐 지난 2003년 출판한 이 책은 올해 미국사회학회가 ‘최우수 출판상’으로 선정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2005-09-12
- 노동운동은 과연 위기인가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노동운동은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노동자들의 개인주의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 노조운동을 둘러싼 안팎의 여건이 최악의 상태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책 ‘노동의 힘’은 노동운동의 역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연구하고 이를 정리한 책이다. ‘1870년대 이후의 노동자 운동과 세계화’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산업사회가 생성·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소요와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산업별·국가별 전개과정을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결국 19세기 후반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성된 전투적이고, 집단화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1930년대 미국의 대량생산 산업노동자들의 전투성을 거쳐, 60~70년대 서유럽으로 재차 확산돼 계급 갈등과 투쟁이 재현된다. 이후 1970~80년대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이 세계 노동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저자는 향후 21세기에 이러한 노동대중의 전투적 투쟁현장으로 중국이 부상할 것임을 예측한다. 지난 1백년 동안 보도된 9만1947건의 각종 보도기사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만 10년의 세월을 거쳐 지난 2003년 출판한 이 책은 올해 미국사회학회가 ‘최우수 출판상’으로 선정했다. 2005-09-12
- 태풍-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 ‘치욕의 합중국’(United States of Shame) ‘치욕의 합중국’(United States of Shame) 사망자 실종자가 1만 명에 이른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참상을 보도하는 신문의 현장르포기사 제목이다. “부시 정부의 자국민에 대한 무관심이 미국을 치욕의 합중국으로 만들었다”는 칼럼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 10여 일간 신문 지면을 도배질했던 카트리나 관련 기사들의 제목을 대충 훑어보면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슈퍼 돔 탈출 생지옥’ ‘일부 이재민 폭도로 돌변’ ‘약탈, 성범죄, 총격-무법천지화’ ‘병원과 구호헬기에까지 총격’ ‘식량도, 치안도, 부시도 없었다’ ‘시신의 도시-인육 먹었다는 소문까지’ 총질과 약탈과 방화의 미국 … 일본은 방재선진국 입증 유일한 초강대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미시시피 강 둑이 무너져 온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어도, 열흘이 넘도록 물이 빠지지 않으니 구조도 구호도 복구도 지지부진이다. 성난 이재민들의 총질과 약탈과 방화행위에 속수무책인 나라,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독수 때문에 환경재앙이 시작되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는 수십만의 이재민들 모습을 보고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미국 역사상 네 번째로 강력한 태풍이었다는 카트리나가 북상할 때 관계당국과 전문가들은 정확히 예보하고 경고하였다. 시속 160마일의 파괴적인 폭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 부근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정확히 찍어 예보하면서, 약 100만 가구가 강풍 때문에 집을 잃을 것이며, 30피트가 넘는 파도로 해안지역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래서 피난민 차로 고속도로가 마비되었고, 해안의 석유 생산 및 정유시설 가동을 중지시키는 등 피해예방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고 적절하지 않았다. 특히 피해가 발생한 뒤의 구호 및 구조 활동에 많은 비판이 집중되었다. 해당지역에 긴급사태가 선포되었는데도 대통령은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비서실장을 비롯해 부통령 국무장관 등이 모두 휴가를 가고 없었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제방붕괴 경고도 무시되었다. “흑인 도시가 아니었다면 이렇겠느냐”는 푸념은 인종차별에 대한 노골적인 항변으로 들린다. 여기에 비해 일본열도를 훑고 지나간 14호 태풍 나비의 피해가 미미한 것은 자연재해 대처에 미국과 일본이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풍속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강수량에서는 나비도 엄청난 위력을 가진 A급 태풍이었는데, 일본은 사망자 실종자를 합쳐 30명이 안 된다. 큐슈(九州) 미야자키 지역 강수량은 무려 1321mm였다. 1년 치 강수량이 하루 사이에 쏟아졌는데도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은 일본이 재해에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도 과거에는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면 수백, 수천 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한 해에 5~6개의 태풍이 상륙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큐슈 남쪽 가고시마는 ‘태풍의 명동’이라고 불릴 만큼 태풍이 잦은 곳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치수와 사방사업에 온 힘을 기울였고, 홍수와 지진 같은 재해에 대비해 건물과 각종 시설물을 견고하게 만든 것이 오늘날 방재 선진국이 된 비결이다. 울릉도 등 여러 곳 물난리는 방재정책에 문제 많다는 증거 나비가 비켜간 한국 남동부 지방에서 사망 실종 4명의 피해가 발생하고 울릉도 등 여러 지역에 물난리가 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일부지역 강수량이 583mm나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반도 안 되는 비로 도시가 물바다가 되고, 단전 단수로 도시기능이 마비된 것은 아직 우리의 방재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증거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NDMS)이 부실하다는 감사원의 현장점검 결과는 우리가 얼마나 자연재해에 취약한지를 말해준다. 소방방재청이 특급 지진해일 모의정보를 발령하고 20분 뒤에 접수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전국 234개 일선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14%에만 접수가 되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앞으로도 태풍은 한반도를 향해 올라올 것이다. 치산치수와 재난관리를 소홀히 하면 우리도 부끄러운 나라가 되고 만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2005-09-09
- <신문로>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야(최용식 2005.08.18) 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야 최 용 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소련의 붕괴 이후 지적 좌절을 맛봐야 했던 우리나라 진보세력은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소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였다. 유럽 인민의 생활수준이 높은 것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이것을 사민주의의 결과로 내세운다면 진보세력의 존립당위성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당하여 IMF의 경제신탁통치를 받은 후에는, 이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 국민들은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중심형의 영미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에, 사회통합형의 유럽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도 있다”고 대비시키면, 국민 지지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고, 실제로도 그랬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도 이런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비는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영미식 경제’라는 것이 오랜 세월 존재해온 전형적인 형태는 결코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식 사민주의’는 영국에서 먼저 태어났다고 해야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워 복지사회 건설을 추진했고 집권에도 성공했었다. 대대적인 ‘국유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오류 반면에, 지금 진보세력이 ‘유럽식 경제’로 칭송해마지 않는 나라들은 당시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의 전형적인 ‘영미식 경제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심지어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도 마찬가지였었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가 힘을 합쳐 임금상승을 억제하여 산업경쟁력을 먼저 키웠고, 이를 통해 고용을 보장받으려 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왜 상황이 지금처럼 반전된 것일까? ‘사민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이 국가경제를 장기침체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세계대전에서 더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던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성장률이 훨씬 낮아졌고 실업률도 높았으며 물가상승률까지 높아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으며, 결국 1976년 말에는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록펠러 빌딩이나 콜럼비아 영화사 등이 패전국이었던 일본에 팔려나가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국내 진보세력이 말하는 소위 ‘영미식 경제’이다. 국내 진보세력이 무조건 적대시하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 등은 1980년대 이후에야 이렇게 등장했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와는 정반대로 점차 사민주의에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국과 미국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1980년대 이후에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며,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오히려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독일의 사민당이나 프랑스의 사회당도 이제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복지와 재정을 축소하고 시장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정체가 이렇게 변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기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었다. 1970년대에 영국식 복지사회를 흉내 냈던 네덜란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고, 가장 강력한 사민주의를 내세웠던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나라들은 1990년대 초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 나라들은 지금처럼 변신했던 것이다.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 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이념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까지는 우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좌측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좌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이동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만,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념을 고집하는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간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고, 국민들의 생활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2005-08-17
- <내일시론>태풍-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2005.09.09) 태풍-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치욕의 합중국''(United States of Shame) 사망자 실종자가 1만 명에 이른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참상을 보도하는 신문의 현장르포기사 제목이다. “부시 정부의 자국민에 대한 무관심이 미국을 치욕의 합중국으로 만들었다”는 칼럼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 10여 일간 신문 지면을 도배질했던 카트리나 관련 기사들의 제목을 대충 훑어보면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슈퍼 돔 탈출 생지옥’ ‘일부 이재민 폭도로 돌변’ ‘약탈, 성범죄, 총격---무법천지화’ ‘병원과 구호헬기에까지 총격’ ‘식량도, 치안도, 부시도 없었다’ ‘시신의 도시---인육 먹었다는 소문까지’ 유일한 초강대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미시시피 강 둑이 무너져 온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어도, 열흘이 넘도록 물이 빠지지 않으니 구조도 구호도 복구도 지지부진이다. 성난 이재민들의 총질과 약탈과 방화행위에 속수무책인 나라,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독수 때문에 환경재앙이 시작되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는 수십만의 이재민들 모습을 보고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미국 역사상 네 번째로 강력한 태풍이었다는 카트리나가 북상할 때 관계당국과 전문가들은 정확히 예보하고 경고하였다. 시속 160마일의 파괴적인 폭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 부근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정확히 찍어 예보하면서, 약 100만 가구가 강풍 때문에 집을 잃을 것이며, 30피트가 넘는 파도로 해안지역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래서 피난민 차로 고속도로가 마비되었고, 해안의 석유 생산 및 정유시설 가동을 중지시키는 등 피해예방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하고 적절하지 않았다. 특히 피해가 발생한 뒤의 구호 및 구조 활동에 많은 비판이 집중되었다. 해당지역에 긴급사태가 선포되었는데도 대통령은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비서실장을 비롯해 부통령 국무장관 등이 모두 휴가를 가고 없었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제방붕괴 경고도 무시되었다. “흑인 도시가 아니었다면, 피해자와 이재민 대다수가 흑인이 아니라면 이렇겠느냐”는 푸념은 인종차별에 대한 노골적인 항변으로 들린다. 여기에 비해 일본열도를 훑고 지나간 14호 태풍 나비의 피해가 미미한 것은 자연재해 대처에 미국과 일본이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풍속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강수량에서는 나비도 엄청난 위력을 가진 A급 태풍이었는데, 일본은 사망자 실종자를 합쳐 30명이 안 된다. 큐슈(九州) 미야자키 지역 강수량은 무려 1321mm였다. 1년 치 강수량이 하루 사이에 쏟아졌는데도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은 일본이 재해에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도 과거에는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면 수백, 수천 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한 해에 5~6개의 태풍이 상륙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큐슈 남쪽 가고시마는 ‘태풍의 명동’이라고 불릴 만큼 태풍이 잦은 곳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치수와 사방사업에 온 힘을 기울였고, 홍수와 지진 같은 재해에 대비해 건물과 각종 시설물을 견고하게 만든 것이 오늘날 방재 선진국이 된 비결이다. 나비가 비켜간 한국 남동부 지방에서 사망 실종 4명의 피해가 발생하고 여러 도시에 물난리가 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일부지역 강수량이 583mm나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반도 안 되는 비로 도시가 물바다가 되고, 단전 단수로 도시기능이 마비된 것은 아직 우리의 방재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증거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NDMS)이 부실하다는 감사원의 현장점검 결과는 우리가 얼마나 자연재해에 취약한지를 말해준다. 소방방재청이 특급 지진해일 모의정보를 발령하고 20분 뒤에 접수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전국 234개 일선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14%에만 접수가 되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지금 15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치산치수와 재난관리를 소홀히 하면 우리도 부끄러운 나라가 되고 만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200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