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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로>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야(최용식 2005.08.18) 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야 최 용 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소련의 붕괴 이후 지적 좌절을 맛봐야 했던 우리나라 진보세력은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소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였다. 유럽 인민의 생활수준이 높은 것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이것을 사민주의의 결과로 내세운다면 진보세력의 존립당위성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당하여 IMF의 경제신탁통치를 받은 후에는, 이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 국민들은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중심형의 영미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는 반면에, 사회통합형의 유럽식 경제로 성공한 나라들도 있다”고 대비시키면, 국민 지지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고, 실제로도 그랬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도 이런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비는 심각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영미식 경제’라는 것이 오랜 세월 존재해온 전형적인 형태는 결코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식 사민주의’는 영국에서 먼저 태어났다고 해야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워 복지사회 건설을 추진했고 집권에도 성공했었다. 대대적인 ‘국유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오류 반면에, 지금 진보세력이 ‘유럽식 경제’로 칭송해마지 않는 나라들은 당시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의 전형적인 ‘영미식 경제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심지어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도 마찬가지였었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가 힘을 합쳐 임금상승을 억제하여 산업경쟁력을 먼저 키웠고, 이를 통해 고용을 보장받으려 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왜 상황이 지금처럼 반전된 것일까? ‘사민주의’에 입각한 정책들이 국가경제를 장기침체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세계대전에서 더 결정적인 피해를 입었던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성장률이 훨씬 낮아졌고 실업률도 높았으며 물가상승률까지 높아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으며, 결국 1976년 말에는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록펠러 빌딩이나 콜럼비아 영화사 등이 패전국이었던 일본에 팔려나가는 비극을 맛봐야 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국내 진보세력이 말하는 소위 ‘영미식 경제’이다. 국내 진보세력이 무조건 적대시하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 등은 1980년대 이후에야 이렇게 등장했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독일이나 프랑스는 그와는 정반대로 점차 사민주의에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국과 미국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1980년대 이후에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며,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오히려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사민주의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독일의 사민당이나 프랑스의 사회당도 이제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복지와 재정을 축소하고 시장이 더 잘 기능할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정체가 이렇게 변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기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었다. 1970년대에 영국식 복지사회를 흉내 냈던 네덜란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고, 가장 강력한 사민주의를 내세웠던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나라들은 1990년대 초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 나라들은 지금처럼 변신했던 것이다.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 21세기는 좌우를 뛰어넘어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이념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까지는 우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좌측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좌파들이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이동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만, 지금은 좌파도 변해야 할 때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념을 고집하는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이념의 중앙선을 넘어 우측으로 간 좌파가 지배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고, 국민들의 생활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2005-08-31
- 당내 ‘대연정’ 이해 분위기 확산 30일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고 나온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연정론’의 ‘진정성’에 공감을 표했다. 송영길 의원 등 통영 워크숍에서 대통령의 연정론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인사들조차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찬장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2선후퇴, 임기단축” 발언에 대해서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결단을 강조하는 과정에 나온 발언”이라며 ‘2선후퇴나 임기단축’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일정한 선을 그었다. ◆“찡한 감동 받았다”=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연정론은 수많은 세월 (대통령) 본인이 겪어온 지역구도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총정리돼서 표출 된 것으로 하루이틀하다 끝날 문제가 아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국 정치인 모두 깊이 고민해볼 사안”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정서적으로 대통령에게 찡한 감동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대통령이 정치는 선택의 예술이다고 말했는데, 아마 결단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통령 자신이 결단하고 여당이 결단하고 한나라당이 결단하면 대한민국에 상생의 정치문화가 탄생할 수 있다. 실천해보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이화영 의원은 “우리 것을 주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정치문화로 변모할 길이 없다는 대통령 제안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도 “(청와대 만찬을 통해) 대통령의 진실한 속내를 알게 된 게 달라진 점”이라며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공은 이제 여당에게로 =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구체적으로 여당이 지역구도 극복 방안 마련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대통령의 큰 꿈을 함께 실현해 낼 수 있는 여당의 실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라며 “대통령에 의존하는 여당이 아니라, 팀 플레이하는 여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봉주 의원은 “어차피 ‘통’은 굴러가기 시작했고, 통 위에 우리당이 서 있다”며 “가만히 서 있다가 떨어질거냐, 비틀거릴거냐, 스스로 뛰면서 통을 굴릴거냐 선택의 기로에 있다”며 “태스크포스팀 등을 꾸려 당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영 의원은 “당이 본격적으로 불합리한 선거구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정개특위 등을 재가동해서 야당에 협상안을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보쌈하듯이 해서야”= 그러나 청와대 만찬 이후로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이강래 의원은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자리였다”면서도 “연정은 결혼과 같은 것인데, 보쌈하듯이 할 수는 없는 만큼 야당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2선후퇴나 임기단축’ 발언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갑원 의원은 “대통령의 말씀은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병두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돈 안드는 깨끗한 정치와 당정분리를 통해 1인 보스정치를 극복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이 지역구도 극복인데, 이를 위해 대연정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며 “‘권력의 반이라도 내놓겠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 ‘2선후퇴나 임기단축’ 등으로 이어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 비춰볼 때, 내년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새판짜기를 위한 개헌 등 극단적인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범 구자홍 기자 jhkoo@naeil.com 2005-08-31
- <동정>농협중앙회 송석우 축산경제대표이사 농협중앙회 송석우 축산경제대표이사는 25일 충북대학교로부터 지난 40년간 축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송 대표이사는 충북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한후 66년 농협에 입사해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40년의 긴 세월을 축산분야 외길을 왔다. 축산단체협의회장, 축산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농축산물무역정책심의회 위원, 제12차 아시아태평양축산학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협동조합발전과 관련 석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은 바 있다. 2005-08-25
- <신문로>소버린, 두산, 씨티은행, 그리고 X-파일(유철규 2005.07.29) 소버린, 두산, 씨티은행, 그리고 X-파일 유 철 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경제학) 한국경제의 핵심 기업들을 둘러싼 분쟁과 불법, 그리고 사회적 무책임과 음습한 뒷이야기들이 뒤엉켜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SK와 소버린 자산운용간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었고, 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터져 나왔다. 씨티은행이 대출금리를 속여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고발이 있었고, 그 와중에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재벌의 정치자금 배분과 선거 개입의 생생한 현장을 엿보게 하는 X-파일 사태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지난주 소버린 자산운용이 (주)SK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여 1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수익을 거두고 철수했다. 이로써 2년 4개월여를 끌면서 재벌 소유구조의 취약성과 그로 인해 투기자본에 노출된 한국경제의 위험성을 드러내 온 SK의 경영권 다툼이 한 매듭을 지었다. 소버린이야 투기펀드의 본연에 걸맞게 단기이득을 극대화한 것뿐이지만, 우리 경제에 남긴 상처는 매우 크다. 스스로 “장기투자를 하는 인내심있는 가치중심의 투자자” 라고 내뱉은 거짓에 휘둘려 투기자본의 유치와 보호가 세계화인 양 부화뇌동한 한국의 정책당국과 여론 주도층의 문제점,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신과 허탈감은 오래 남을 것이다. 투기자본에 노출된 한국경제 거의 같은 시기 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알려졌다. 가족회의에서 회장직을 물러나게 된 인사가 새로 회장이 된 다른 형제를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투서함으로써 드러난 일이다. 당연히 비자금 문제와 관련된 불법외환거래 및 세금 포탈 문제가 이슈로 되었다. 그 긴 세월 재벌개혁 운운했으면서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그룹회장’이라는 유령직책이 합법적인 기업 지배구조위의 실세로 군림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녁 가족회의에서 회장직 교체가 결정되었다고 두산그룹측이 밝혔다는 점이다. 그 동안 만들어 놓은 기업 지배구조의 합법적 절차와 기구들은 다 어디가고 오너가족끼리 모여 결정했다는 사실을 거리낌없이 밝힐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재벌개혁의 현주소이다. 이어 나온 것이 한국씨티은행의 대출금리 사기 혐의 고발이다. 작년 2월 한미은행을 인수합병하여 탄생한 한국씨티은행은 당시 경제부총리가 이례적으로 명시적으로 지목하여 “씨티은행은 우리나라 은행산업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축사했던 회사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은행, 소위 선진금융기법을 선도할 수 있는 은행 하나 가져보자는 기대 속에서 탄생한 은행이라 했다. 그 엄청난 정부 당국자의 기대는 단일 주주가 100% 소유한 시중은행을 탄생시켰다. 전국규모의 은행을 100% 단일 주주에게 맡긴다는 발상은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일이었다. 고발한 한미은행 노조에 따르면, 그 선진은행이 무려 2년 3개월에 걸쳐 변동금리부 대출금리를 금리가 하락하는 가운데 낮추지 않고 고정금리로 이자를 받아 부당이득을 취해 왔다 한다. 더 가관인 것은 변동금리 조건이라는 것이 3개월마다 내려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금리인하를 요구하지 왜 지금 문제를 제기하냐고 강변하는 것이 은행의 입장이다. 경제권력 내부감시기능 개선을 이제 우리는 X-파일을 통해 이 모든 사건들의 줄기와 해법을 일부나마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분과 의무는 작은데 집중된 권력과 이득이 과도하게 큰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를 뒤흔들 재벌의 경영권 분쟁은 반복될 것이며, 그 권력을 지키고 뺏기 위해 장막은 점점 두터워 질 것이며 그 장막 뒤에서 무슨 짓이든 일어 날 수 있다. 비단 재벌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경제의 목줄을 쥘 수 있는 은행을 100% 소유한 대주주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은행노조의 경영진 고발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재벌이든 은행이든 내부 감시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시장이 재벌과 씨티은행을 감시할 수 있는 길이 막혀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경제권력의 내부감시 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제도화하는데 정부 당국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크다. 2005-07-29
- 세계평화축전 DMZ에서 막 올라 경기도 주최, 내달 1일부터 9월 11일까지 … 한반도 평화 모색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 테드 터너 등 참석 분단과 아픔의 상징 DMZ 일대에서 ‘평화, 상생, 통일, 생명’을 주제로 한 세계평화축전이 오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열린다. 광복 60년, 분단 60년을 맞아 경기도가 준비한 이번 행사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분쟁지역을 포함한 21개국의 평화운동가들과 주요 인사들이 참석,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오는 9월 11일까지 42일간 계속되는 평화축전은 공연 100회, 전시 2회, 학술대회 5회, 놀이체험 15개 등 분단 현장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술, 체험 행사로 꾸며진다. 우선 이번 축전의 주제인 상생과 나눔을 보여주는 ‘생명촛불 파빌리온’점등식에 손학규 경기지사, 동티모르 구스마오 대통령, 리마살라 유니세프 부총재 등이 참석, 남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으로 평화로운 세상에 다가설 수 있는 기부문화를 선보인다. 파빌리온은 높이 2m, 직경 40㎝ 원통형 대형촛불(영원한 촛불)과 공중 걸이용 촛불 3천여개가 50m 길이에 펼쳐진다. 온-오프를 통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1만∼5만원을 내면 12∼72시간 자신의 촛불을 켤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 기부금은 유니세프에 전달돼 북한 어린이를 포함한 전 세계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또 파빌리온과 더불어 이번 축전의 주요 행사 중 하나는 30여개의 ‘통일기원 돌무지 장승’이다. 기원의 의미를 담은 장승과 돌무지를 현대적으로 재현, 돌판을 쌓아 올라가는 돌무지 장승은 1인당 1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희망 메시지를 적어 넣은 800개 인조벽돌이 부착돼 완성된다. 이 역시 파빌리온과 같이 온라인 접수가 가능하지만 영구 보존되는 점이 다른 점이다. 기부금은 북한 어린이를 돕는 기금으로 쓰이게 된다. 이와 함께 다양한 공연들이 행사 기간 동안 열린다. 세계 대립지역의 음악가들이 참여하는 음악의 언덕 콘서트를 비롯해 월드뮤직, 재즈, 인디락, 힙합, 국악 등이 DMZ 밤 하늘에 울려 퍼진다. ‘평화’에 걸맞게 총소리 없는 현란한 불꽃놀이도 선보인다. 통일동산에서 임진각까지 10㎞에 걸쳐 전 세계 5대양, 6대주를 대표하는 보통 인물 사진 95점(1.8mX2.4m)을 내걸어 상생과 평화를 강조하는 ‘자유로 얼굴전’도 개최된다. 또 60년 분단의 세월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DMZ를 하늘에서, 땅에서 찍은 사진전도 개최되고 전쟁 등의 이유로 전 세계 각지로 헤어져 연락이 끊긴 가족들의 만남을 도와주는 국제적 만남 프로젝트도 열린다. 아울러 학술행사로는 도라산 평화인권 강연회 시리즈, DMZ 포럼(고양 한국국제전시장), 생명문화포럼(파주 출판단지) 등이 열린다. 특히 27일부터 개최되는 도라산 강연회는 광복 60년을 맞이하여 세계평화와 인권향상에 기여한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과 사나나 구스마오 현 동티모르 대통령, CNN 창립자 테드 터너 등이 참석, 남한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 관계자는 “참여가 확실시되던 북한 윤이상 오케스트라의 참가가 끝내 무산돼 아쉽다”며 “하지만 이번 축전이 생활 속에서 나눔과 상생,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평화축전이 열리는 임진각 일원의 ‘평화누리’는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3만평 규모로 단일공연장으로서는 국내 최대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 2005-07-27
- <밥일꿈>사랑하는 사람의 눈빛(박경석 2005.07.14)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박 경 석 (우리투자증권 이촌동 지점 부장) 지금은 중학교 2학년 학부형이지만 16년 전에는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가지고 연애하던 신입사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복학 4학년 때, 현재의 아내를 만나 열애하던 시절이었는데, 둘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하며 함께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회사에서 무주에 하계휴양소를 운영한다는 공문을 보았고 그 공문을 본 전 무지개를 보는 워즈워드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퇴근 후 공문을 가지고 쏜살같이 아내에게 달려가 무주의 덕유산을 놀러가자고 했고 아내도 신나라하며 좋아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장인어른 되실 분이 무척이나 완고하셔서 도대체 허락해 주실지가 걱정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젊은 남녀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리 흔하지 않은 때였다. 우리들은 무슨 쿠데타라도 모의하는 참모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공모하였지만 좋은 수가 안 떠올라서 결국은 이실직고 하고 허락을 얻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에 찾아 뵙기로 약속을 정하고 아내에게는 내가 이야기 할 때 지원사격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느 새 결전(?)의 금요일이 다가오고 퇴근을 하던 나는 길에서 고등하교 동창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친구녀석이 대뜸 한다는 말이 “그런 말 하러 가면서 맨 정신에 하러가는 놈이 어디 있냐. 한잔 하고 가야지”하며 사무실 근처 삼겹살 집으로 나를 이끌었고 어떨결에 끌려간 나는 소주 각 2병에 이차로 맥주 각 3병의 정량을 초과한 음주 상태로 장래의 처가집으로 향했고, 술에 취해 할 말은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여행예정일이 하루 앞둔 날 장인어른은 나를 집으로 오라고 전화하셨고 하시는 말씀이 “이야기 다 들었네. 난 자네가 요즘사람 같지 않게 풍류를 아는 것 같아 좋아. 나도 젊은 시절에 유랑극단도 따라 다녀보고 가수 한다고 여기저기 기웃대 보기도 했네… 젊은 사람 기분을 알지. 풍류를 아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 남을 실망시키지도 않고…”하시며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당당하게 여름휴가를 함께 떠나게 되었고 회사직원들이 우글대는 그곳에서 닭살 커플로 이름을 날리며 신나게 놀고 왔다. 세월은 흘러 장인어른께서는 지병인 간경화로 앓아 눕게 되셨고 그러던 어느날 간호하던 나를 옛날에 그 눈길로 바라보고 계셨다. 옛날에는 그 눈빛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그때서야 나는 그 눈빛이 말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그건 사랑하는 딸을 자네에게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그 눈길로 바라본 지 얼마 안되어 장인어른께서는 다시는 못 올 곳으로 떠나 가셨지만 우리의 여행을 허락하시고 병석에서 나를 바라보시던 그 눈빛은 내 가슴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은 가슴속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되는가 보다. 2005-07-14
- 근대의 여명을 개척한 혁명적 부르주아지의 삶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장 마생 지음, 양희영 옮김, 교양인, 2만9000원 근·현대 인류역사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가져온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정치적으로 절대군주제를 쓰러뜨리고 공화정의 신기원을 개척해 근대 국민국가의 길을 열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봉건적 구질서를 해체하고 신흥 부르주아지의 지배권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근대 정신사상 세계의 이정표를 마련한 것도 프랑스 혁명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 대혁명은 오늘의 서구사회를 있게 한, 그리하여 현재의 인류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형성한 인류역사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어떠한 혁명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민중의 피와 목숨을 요구하기도 하며, 선각자들의 위대한 고뇌와 선견지명이 혁명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또한 천지가 개벽하는 혁명의 과정에서 기득권층과 중간계급의 동요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에서도 왕권을 중심으로 귀족과 성직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구세력에 맞서 혁명적 투쟁을 전개한 민중과 이들의 벗이 된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있는 가하면, 구질서와 지배체제에 야합하고 변절하는 기회주의적 혁명세력은 필연적으로 분화과정을 거친다. 이 책의 주인공 로베스피에르는 1789년 촉발된 대혁명의 기간 중 사실상 유일하게 혁명적 절개와 지조를 유지하며 민중의 이익을 결사적으로 옹호한 혁명가이다. 자그마한 지방도시의 재판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통해 형성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그의 민중사랑은 1789년 삼부회의 소집과 함께 제3신분의 대표로 의회에 진출해 수도 파리에 입성하면서 찬란하게 꽃피우게 된다. 삼부회→제헌의회→입법의회→국민공회 등을 거쳐 1893년 공포정치가 시작되고, 1894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과 5년의 세월동안 그는 의회안과 밖에서 새로운 나라의 건설을 위해 불꽃같이 살았다. 그는 의회에서 일관되게 민중의 위대성과 구체제의 죄악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1790년 5월 18일 로베스피에르는 의회에서의 발언을 통해 국왕은 결코 ‘국민의 대표’가 아니며, ‘국민의 의지를 집행할 국민의 대리인이자 피위임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어떠한 권력도, 그것이 아무리 위엄 있는 것이라 해도 민중의 대표라는 자격을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로베스피에르는 의회 내에서 수많은 개혁적 조치들도 제안하고 대다수가 부결됐지만 뚜렷한 족적도 수없이 남겼다. 성직자의 결혼을 허가하고, 구질서에서 무한정의 권한을 누리던 성직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성직자 민사기본법’을 제정했으며, 공명정대한 재판소의 조직과 함께 수없이 터져 나오는 혁명적 민중들의 각종 소요에 대한 옹호책을 제시했다. 특히 외국과의 전쟁에 대한 일관된 반대는 그의 선견지명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혁명의 초기 프랑스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것은 사실상 그의 일관된 전쟁반대 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배세력은 끝내 1792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시작했으며, 이로 인한 식량부족과 물가폭등으로 혁명의 분위기는 더욱 앙양되었다. 이처럼 혁명의 기운이 높아지자 로베스피에르는 반혁명 세력의 근거지인 루이 16세의 폐위와 새로운 의회의 구성을 요구했으며, 민중들은 1792년 8월 10일 왕이 살고 있는 튈르리 궁을 습격해 왕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1793년 6월 최초의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국 프랑스를 수립했다. 국민공회의 출범과 함께 의회는 상퀼로트(민중)의 요구사항을 받아 들이 수밖에 없었으며, 속속 관련 법률들이 제정됐다. 민중들의 합법적인 공포정치가 구세력을 엄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들은 분파가 갈라지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통파(온건파)는 로베스피에르를 과격파라고 비난했으며, 에베르파(과격파)는 그를 온건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실권을 장악한 이후 끝내 이들 과거의 동지들을 처형할 수밖에 없었으며, 혁명은 그를 최후의 승자로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민공회 의원들은 정파를 막론하고 한데 뭉쳐 로베스피에르에게 어떠한 반론의 기회도 보장하지 않은 채 혁명력 2년 테르미도르 9일(1794년 7월 27일)그를 체포했으며, 그는 다음날 단두대의 이슬로 스러졌다. 비록 36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혁명적 지조와 민중에 대한 열정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살아났다. 그는 1790년 12월 5일 의회연설에서 “민중의 이익과 소망은 천부의 것이며 인류의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이익이다. 민중을 비탄에 빠뜨린 폐해는 언제나 부자들로 인한 것이었다. 누가 우리의 영광스러운 혁명을 수행했는가. 부자들인가. 권력자들인가. 민중만이 혁명을 열망할 수 있었고 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해 혁명의 주체가 민중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책은 로베스피에르의 생생한 연설과 문서가 되살아나 혁명의 한가운데로 이끄는 마력을 느끼게 할 것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2005-08-22
- <내일시론> 광복 60년,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문창재 2005.08.12) 신문에서 읽은 통계기사 하나가 광복절 연휴를 맞는 한국인들에게 새삼 격세지감을 안겨 주었다. 8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이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중요 선진국들에 버금가는 큰 나라가 되었다. 선박 건조량은 세계 최고, 외환 보유고와 전자제품 생산액 4위, 조강 생산량 5위, 자동차 생산량 6위, 저축률이 7위다. 그보다 국내총생산(GDP)과 국가경쟁력 11위, 수출액 12위라는 성적표에서 더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국토 면적은 비교할 것도 없고, 총인구 25위인 나라가 중요 분야에서 그런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만 하다. ‘변방’에서 민주화 모범국가로… 오늘의 ‘성적표’에 자부심 이러한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의미를 거듭 반추하게 되는 것은 광복 6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 때문이리라.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풀려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나라를 만든 것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독일과 일본이 세계 제2,3위를 다투는 강대국이 된 것을 우리는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성공을 남들이 기적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시점에 우리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제로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독일과 일본은 소련과 미국 같은 초강대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만한 실력을 가졌던 나라들이다. 부흥에 시간이 좀 걸릴 뿐, 충분한 잠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20세기 초까지도 깜깜한 근대문명권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나라, 오랜 세월 외국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60년 만에 이렇게 일어선 것은 누구나 놀랄 ‘한강의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 사이 국토와 민족이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여러 번의 정변과 정치 경제의 혼란을 겪은 나라다. 지정학적으로는 냉전시대 양대 이데올로기 충돌의 최전선이었다. 그렇다 해도 경제와 기술면에서 세계 10위 안팎의 성적을 거둔 것만을 성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성취는 민주화다. 그것도 국민대중이 반세기 넘게 독재와 맞서 싸워 이긴 결실이기에 더욱 값진 성공이다. 군부독재로 인상 지워졌던 나라가 아시아의 민주화 모범국가가 되어 개도국들의 모델이 되었다. 아직 일제잔재를 다 청산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제전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월드컵 축구 4강에도 올라 보았다. 문화면에서도 세계적인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고, 아시아 각국에 ‘한류’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갖가지 행사와 이벤트가 줄서 있는 가운데, 멀지 않은 장래에 국민소득 4만 달러, 경제 세계5강을 내다보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장밋빛 일색이기는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할까. 경제만 성공하면 더 부러울 게 없을까. 이런 생각 끝에는 언제나 아쉬운 것, 미진한 것이 찌꺼기처럼 남아 개운치 못한 기분이 된다. 개인의 이웃관계에서처럼, 나라도 잘 사는 만큼 의롭고 인정 많은 도덕국가가 되어야 비로소 성공은 완결된다. 인류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제몫을 다 해야 한다. 아직은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돈을 더 벌어 불쌍한 나라들도 도와주고 인류사회 정의구현에 기여하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보듯, 그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을 돕는 일은 자기 몫을 줄여가며 하는 것이지, 쓰고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는 세계의 이웃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은 나라다.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감수한 파병지원까지 받았다. 이제 그 빚을 갚고 감사의 뜻을 표할 때가 되었지만 지금 국가예산의 대외원조액은 우리 국력이 부끄러울 정도다. 하루 빨리 일제잔재 청산하고 민족통일 이룩해야 다른 과제는 일제잔재의 청산과 하루 빨리 민족통일을 이룩하는 일이다. 지구상의 여러 분단국가들 가운데 한국만이 아직 갈라져 있다. 통일이 늦을수록 민족의 동질성은 훼손된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놀라게 된다. 광복 60주년을 맞으면서 생각해보는 우리의 지향은 나라의 도덕성과 민족통일 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 창 재 객원 논설위원 2005-08-12
- 인터뷰 - 대전 홍도동사무소 자원봉사자 이은영씨 이은영(대전 서구·75)씨는 정년퇴직 후 18년을 매일같이 대전 동구 홍도동 동사무소에 출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과거 통장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지난 88년부터 동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씨는 구청 통근버스를 타고 직원들과 함께 정시에 출근해 우선 동사무소 공무원들 일손 돕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씨는 구도심 지역이라 지번이 복잡한 홍도동의 지형과 거주자들의 내력을 훤히 꿰고 있어 지번을 찾지 못한 민원인들의 안내를 도맡고 있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세금고지서 등 각종 고지서를 통별로 분류하는 작업도 이씨의 몫이 된지 오래다. 세월이 지나면서 비교적 간단한 출생신고와 대형폐기물접수 처리, 민원안내 등도 이씨가 맡게 됐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한학을 배운 이씨는 직원들이 모르는 한자도 척척 해결한다. 이 씨는 “전산화가 되면서 자원봉사 할 일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아직 사람이 할 일이 남아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웃들에게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큰 아들이 이미 공직에서 정년퇴직 했을만큼 연로한 나이지만, 이씨는 여전히 ‘청년’의 모습 그대로다. 이씨는 장기 군복무(18년)와 전매청 근무(20년) 경력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연금으로 노후생활을 하고 있다. 이 씨는 “날이 궂어 출근길이 걱정이 되는 날은 가끔은 집에서 쉬고 싶을 때가 있다”면서도 “정시에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동사무소 직원이나 주민들한테서 전화가 와 쉬지도 못 한다”고 활짝 웃었다. /대전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2005-08-15
- <신문로 칼럼>국민은 실패한 정권 원치 않는다(윤장현 2005.08.08) 국민은 실패한 정권 원치 않는다 광주YMCA 이사장 윤 장 현 누가 누구를 나무라고 있는가? 도대체 TV뉴스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지친 것보다 더한 허탈과 분노에 황당해 하고 있다. 폐유 찌꺼기가 뭉쳐있듯 자본과 언론, 정치권력, 정보기관이 클러스터를 이루어 기득권을 누려왔던 수많은 세월들 속에 불쌍한 국민들만 통치당해 왔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고 그리도 자랑스러워했었는데 말이다. 2005년 8월이다. 일본의 오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새롭게 광복의 의미를 새기고 못다 이룬 민족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다짐해야 될 이 시점에 추악한 지배층의 뒷거래로 경축의 잔치는 이미 퇴색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냉정하게 되짚어보자. 우리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고해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준엄한 역사적 소명으로 온 국민이 받아들인다면,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광복의 출발점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핑계대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유신정권,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의 폭정과 그 후유증도 우리 국민은 슬기롭게 이겨내고 역사의 발전을 견인해 오지 않았는가? 이번 일도 철저한 진실규명과 올바른 사법적 처리로 의혹을 남김없이 밝혀준다면, 다시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현명한 우리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는 계기 만들어야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북경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큰 줄기를 잡아가고 있다. 최소한 남과 북의 긴장의 정도가 어느 때보다도 화해의 길로 발전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에 대한 공격의 가능성도 해소될 것이며, 따라서 한미관계도 발전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제 민생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내부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먼저 다가오는 8·15 광복절 특사가 특정 정파의 시혜용이 아닌, 온 국민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대화합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서로 정파적 시각에서 견제하지 말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화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 8월말 경에 발표한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신뢰는 물론 국민의 민생에 직결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리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다. 시장의 원칙을 존중하되 대다수 서민층들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실질적이고 효과적이 처방이 되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8월 하순이면 참여정부 출범 후반부를 맞게 된다. 여소야대의 참여정부 출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여대야소의 4·15총선, 보선참패로 인한 여소야대에 이르기까지 혼미를 거듭하는 전반부를 보낸 참여정부가 이제 반환점을 돌아섰다. 민생의 어려움과 국정지지도 하락이 성적표가 아니겠는가? 다행히 대통령도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대타협의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진정성에 대한 신뢰문제로 정치권은 표면적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은 실패한 정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실패를 야당은 당연히 반사이익과 집권의 기회로 삼겠지만 실패한 정권의 최대 피해자는 온 국민인 것이다. 숫자논리로만 집권당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주요 포스트에 최고 인재 등용을 참여정부는 대연정이든 소연정이든 야당에게 협조를 구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국정운영의 주요 포스트에 최고의 인재풀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국정정책에 맞는 코드인사도 중요하지만, 민생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국민의 코드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정의 후반부를 이끌어가야 한다. 야당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정치 전문가집단, 공직자의 협력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역구도 타파’,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이를 위한 선거제도 개선책은 국회와 시민단체를 통하여 국민을 상대로 당당하게 풀어갈 수 있다고 본다. 광복 60주년을 기쁨으로만 경축하기에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의 상황이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여당, 야당, 국민 모두가 새로운 민족의 광복을 이룩하겠다는 진정성만 있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0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