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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과 영서·영남엔 왜 다른 물고기들이 살까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에서 태백산맥(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기준으로 그 양쪽의 물고기들은 이미 빙하기 때부터 완전히 다른 별개의 수계에서 살아왔다. 낙동강 상류에 열목어가 서식하는 것은 낙동강이 고(古) 황하수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산천어’는 강원도 영동지역,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하천에만 서식하며 경북 울진 이남지역에는 살지 않는다. 울진 남쪽에는 산천어의 강해형인 ‘송어’조차 살지 않는다. 강원 영동의 산천어가 영서지역에 오면 외래어종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는 대부분 지질시대의 고황하(古黃河)와 고아무르강(古Amur江)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아무르강은 러시아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흑룡강, 중국에서는 헤이룽강(黑龍江), 몽골에서는 하라무렌이라 부른다. 신생대 제3기 선신세(鮮新世,Pliocene Epoch, 약 1200만년~200만년 전) 이후 해퇴기(海退期, regression : 빙하기 때 해수면이 낮아지는 현상)에는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에 육지로 연결되면서 태백산맥-대마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분수령을 갖고 있었다. 이 분수령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로 흐르는 하천과 일본 서남부의 하천들은 고황하(古黃河)의 지류로 연결되었고, 우리나라의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들은 고아무르강의 지류로 이어졌다. 해퇴기때 해수면은 평균적으로 지금의 해수면보다 150~180m 정도 낮아졌다. 현재의 서해 평균수심이 44m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고황하의 하구는 지금의 제주도 남서쪽, 동중국해의 최북단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후 신생대 제4기 홍적세(洪積世,Pleistocene Epoch,약 160만년~ 1만년 전)의 간빙기(間氷期, interglacial epoch)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지금의 서해가 만들어져 황하와 한강 등 현재와 같은 수계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 살던) 고황하수계의 물고기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황하와 격리된 채로 우리나라의 서남해로 흐르는 하천에 서식하게 되었고, 고아무르강수계의 물고기는 우리나라의 영동과 북한지역의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에 서식하게 되었다. 물고기 한마리가 어떤 계곡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는 거의 무한한 시간이라고 느껴질만큼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같은 강원도지만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간성군 북천의 ‘산천어’와 서해로 흘러드는 인제군 내린천의 ‘열목어’ 한마리 한마리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지질시대를 겪으며 태어난 존재들이다. 근래 들어 민물고기 연구나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런 활발한 문제제기와 토론이 오가고 있다. 이들의 토론은 단순한 수계 구분 정도를 넘어 △토종 민물고기 유전자 보전 문제 △양식장에서 방류된 물고기들이 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오가고 있다. 오히려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이 이들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2005-07-05
- <유승삼 칼럼>‘역사를 후퇴 시킨 죄’(2005.07.05) ‘역사를 후퇴 시킨 죄’ 유승삼 (언론인) 1980년대에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드러나던 1987년 12월 16일 밤의 슬픔과 분노를 아직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노태우 828만2738표(35.9%), 김영삼 633만7581표(27.5%), 김대중 611만3375표(26.5%). 그 날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분열만 없었더라면 민주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전두환의 7년이 불가항력적인 ‘빼앗긴 세월’이었다면, 노태우 정권 5년은 양 김의 개인적 탐욕과 분열이 빚어낸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그래서 그 때 국민은 더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씨는 차례로 개인적인 정치 야망을 달성했지만 국민은 그 잃어버린 5년을 영영 되찾을 수 없었다. 오는 2007년의 대선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1987년과 같은 역사의 지체와 후퇴를 목격할지도 모른다. 개혁 세력이라 자부했고 많은 국민도 그렇게 믿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인기는 지금 바닥에 떨어진 채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 이대로만 가면 집권 세력의 실패와 무능에 따른 반사 이익 만으로도 보수 세력은 정권의 재장악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정체성 허문 ‘악성코드’ 인사 4일 열린 국회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는 이 정권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보여 주었다. 열린우리당이 무엇보다도 개혁성 때문에 추천했다는 조대현 후보는 꼭 한나라당이 추천한 후보 같았다. 개혁성을 묻는 질문에는 “헌법재판관의 요건에 개혁성이 필요하다는데 이견이 있다”며 자신의 보수성을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질문 대상이 된 다른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도 ‘보수’와 ‘평범’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듣다 못한 한나라당 의원이 “견해를 들어 보니 열린우리당의 추천 이유와 전혀 맞지 않으니 용퇴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할 지경이었다. 야당은 현 정권이 ‘코드 인사’를 한다고 비난을 해 왔고 청와대와 여당은 이를 부인하기에 급급했지만 코드 인사가 나쁜 건 아니다. 자신과 정치적 이념과 정책적 지향을 같이 하는 인사를 동원해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권의 이념이나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연이나 개인적 친분에 따른 인사이다. 이런 코드 인사야말로 비난 받아 마땅한 ‘악성 코드’ 인사이다. 현 정권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주로 이런 무원칙한 인사, 연고주의적인 인사에서 비롯한다.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게 차라리 비용이 적게 든다”는 유시민 의원의 말처럼 현 정권은 실은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과 거리가 더 가까운 중도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워낙 극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보적, 개혁적으로 비치며 또 얼마간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 승리한 것도 그러한 상대적 진보성과 개혁성을 국민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이 나온 지 이미 오래 됐지만 이 정권은 정치적 레토릭에서만 이따금 개혁 냄새를 풍길 뿐이다. 특히 정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경제 부문에서는 계속적으로 보수주의자를 동원해 철저히 보수의 길을 걸어 왔다.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조대현 후보가 꼭 한나라당 추천 후보 같다’지만 실은 경제정책이 더 그런 꼴이다. 시장주의의 무조건적인 옹호, 성장 우선주의, 실용주의라는 이름의 각종 보수적 정책은 현 정권이 과연 한나라당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왼쪽 깜박이에 우회전’ 여전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서도 ‘비 서민적’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반짝 성과라도 났으면 좋으련만 결과는 참담하다. 경제는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산층은 갈수록 해체돼 빈부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고용불안과 청년실업률도 높아져 현 정권의 지지층이 많았던 20대, 30대, 40대층에서도 인기가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됐다. 현 정권이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우선 창당 정신으로 돌아가 한나라당과 다른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 무성격과 무능 때문에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어 역사를 후퇴시킨다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역사의 진전을 5년 지체시킨 양 김 이상으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2005-07-05
- <유승삼 칼럼>‘바보의 벽’을 깨라(2005.06.07) ‘바보의 벽’을 깨라 유 승 삼 (언론인· 카이스트 초빙교수) 필자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한 대학생으로부터 최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경상도 분이신 제 아버지는 무조건 노무현 대통령은 잘못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저는 노 대통령에 대해 특별히 호감이나 악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 괜한 반감이 생깁니다. 대통령이나 그 보좌역들이, 정말 아버지 말씀처럼 머리가 비고 아버지보다도 나라 일을 할 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리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지 않았겠느냐, 방송에선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느냐는 등의 말씀을 드려도 그것 역시 제가 잘못 이해한 것, 혹은 방송에서 조작·왜곡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성 기사 내용은 믿으시면서 말입니다” 증오의 고정관념에 갇힌 사회 이 학생의 아버지가 지닌 관점과 태도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 반대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관점과 태도이다. 언론계에 있다는 이유로 자주 주위로부터 이런저런 소문과 보도 등에 관한 확인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열이면 열, 그들이 기대하는 건 사실 확인이 아니다. 자신들이 이미 내리고 있는 판단과 믿음에 대한 동의와 그 판단과 믿음을 굳히기 위한 보충 자료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평가야 자유지만 사실만은 분명히 이러저러하다’고 고쳐 말해 주어도 믿으려는 기색이 전혀 없다.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되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선택적 지각’과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오지 않는 ‘바보의 벽’이란 개념이 있는데 요즘 우리 사회엔 이 두 개념이 중첩된 느낌이다. 노 대통령도 이런 현상을 잘 인지하고 있는지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정일기에 따르면 최근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는 한국 사회에 있는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정치는 “분노 때문에 시작했고” 청문회 스타 시절까지만 해도 “그 분노가 식지 않아서” 정치를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그러한 문제 인식과 태도 변화는 현충일 추념사에서 재확인된다. 이날 추념사는 ‘공동체적 통합’을 주조로 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의 해결과 함께 합리적 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은 적극 수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러시아 시인의 이런 일갈은 백번 옳다. 지난 반세기와 같은 야만적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조차 새기지도 않았다면 그는 양심을 지닌 인간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를 이끈 동력이었다. 그러나 군부 세력이 집권하던 때와는 달리, 절대 악이 사회의 전면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여전히 과거의 ‘분노와 증오’와 편 가르기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것은 방법상으로 문제가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은 ‘바보의 벽’에 갇혀 시대 변화를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치의 책무가 갈등의 해결에 있고 대통령은 정치의 정점에 위치하는 존재인 한, 사회가 극단적인 증오로 분열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에게도 그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노 대통령의 인식 변화는 자성의 결과라고 본다. 노 대통령도, 노 대통령의 반대자들도 독선과 배타주의를 버리고 민주 사회 기초인 ‘관용’과 ‘공존’에 우선 합의해야 한다. 우리 미래를 다투고 경쟁하라 우리들의 길은 여전히 멀고 멀다.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빈곤층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냉엄하다. 세계화는 기회적인 측면도 있지만 위협적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의 경제 상황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북핵 위기는 우리의 생존조차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다음 대통령에 뜻을 둔 사람들이 정말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주제는 실은 이런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으면서도 돌아서면 정치적 증오감에 그만 눈이 멀어 버리고 만다. ‘공동체적 통합’을 강조한 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올려진 어느 신문 인터넷 판엔 즉각 이런 댓글이 올랐다. “공동체적 통합을 저해하는 절대 요소는 노무현 대통령이며… 그가 대통령 직에 있는 동안은 해결되기 힘든 일…” ‘바보의 벽’을 깨라. 맹목적인 증오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2005-06-06
- [내일의 눈]추락한 노동계와 ‘박하사탕’ 영화 ‘박하사탕’을 보면 주인공이 “나 돌아갈래”라고 간절히 외치며 최후를 맞는다. 요즘 노동계를 보면 박하사탕의 주인공 모습 같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주인공은 세월이 지나면서 타락하고, 모든 것을 잃자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친다. 한국노총의 경우 노동자들의 쉼터인 복지센터를 건립하면서 리베이트를 받아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이 사건을 보는 노동자들은 “리베이트가 정상적인 회계 처리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예당초 시공비를 낮추어 예산을 아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노조의 취업장사에 대해서도 “공정한 규칙에서 선의 경쟁을 펼치는지 감시해야 할 노조가 오히려 돈을 받고 특정인을 취업시켜 준 것은 실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들의 가슴에 못 박는 짓”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는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70·80년대 개발독재에 밀려 노동자들이 생존권이 위협 받던 시절 노동계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임금요구와 노조지도부의 도덕성 상실은 ‘귀족노조’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국민들은 노동계가 대오각성하고 지난 역사에서 보여 주었듯 노동자의 진정한 벗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갈 때까지 가 버려 돌아오지 못할 때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친다면 슬픈 일이다. /기획특집팀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2005-05-27
- <권화섭 칼럼>‘월화수목금금금’의 교훈(2005.05.24) ‘월화수목금금금’의 교훈 권화섭(언론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주간 시간표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연구팀 전원이 주말을 잊은 채 1년 365일을 하루같이 연구에만 몰두해 왔고, 이런 그들을 보고 미국의 한 생명공학 권위자는 연구팀을 ‘군대’, 황교수를 ‘장군’으로 불렀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난치병 환자의 복제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낸 황교수 연구팀의 성과는 바로 이러한 스파르타식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어떻게 이런 연구팀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황교수 자신이 바로 그런 연구 생활을 해온 결과이다. 황교수는 10년 넘게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고, 연구실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또 열심이고, 제자들에게 엄격한 만큼 그들의 어려움을 챙겨주는 ‘자상한 아버지’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연구실 풍토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황교수의 연구 성과에 환호한다. 그러나 그 성과가 세계적 인정을 받기 이전에 그의 연구실 운영 방식을 알았다면 아마도 우리들 중 다수는 황교수를 “군대식이고 가부장적인 기피인물”로 여겼을 것이다. 스파르타식 강행군의 개가 한국인들은 한때 황우석 교수의 연구팀과 똑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전국민이 오로지 경제성장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뒤로 물린 채 앞만 보고 달려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이제 그런 세월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고, 또 오늘의 경제 문제를 풀어가는데 ‘막연한 향수’ 이상의 어떤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딜레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유럽과 같이 저성장-고실업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성숙된 단계’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전체적인 사회분위기는 독일 노조가 지난 1970년대 이후 주창해온 “적게 일하고, 함께 일한다”(work less, work all)는 구호와 동일한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수준을 자랑한다. 세계 공작기계시장에서 가장 정밀한 최고가 5%의 시장은 변함없이 독일의 차지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수준이 뛰어날지라도 남들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놀게 되면 경제성장은 정체하게 된다. 한때 유럽 대륙을 이끄는 기관차였던 독일경제는 오늘날 성장률이 1%대 밑으로 떨어지고 실업률이 12%에 이르는 가운데 1인당 소득은 EU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최근 한국민들은 지난 1분기 성장률이 2.7%로 떨어졌고 정부가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성장률을 5%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뉴스를 접했다. 실상 이런 상황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정부가 고집스럽게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고수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덜 일하고, 더 많이 챙기자”는 놀부 심사로 한참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2004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에드워드 프레스컷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가 저성장-고실업 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두 나라 노동자들이 미국 노동자들보다 적게 일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이 1820시간인데 비해 독일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각기 1480시간과 1467시간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두 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떨어지는 것은 그들이 미국 노동자들보다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두 나라의 세금이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에 그들이 더 일하려 하지 않는다고 프레스컷 교수는 설명한다. 성장 위해 사회적 혁신 필수 이런 프레스컷 교수의 분석에 대해 최근 하버드대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에드워드 글래저 교수와 다트머스대학의 브루스 새서도트 교수는 새로운 이론을 들고나왔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또 함께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금보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노동자들의 근로 행태를 결정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1981년 프랑스가 주 39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후 유럽 전역에 근로시간 단축 바람이 불었고 마침내 2000년에 주 35시간 근무제가 채택되었다. 유럽의 근로시간 단축은 국내에도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근로복지의 측면에서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우리의 성장잠재력과 실제 성장률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그 바람과 전혀 무관한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저임금 저기술 근로자들과는 별개로 일부 고임금 전문직 종사자와 CEO들의 이기주의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가 전체 노동자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은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지도층과 정치지도자들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팀으로부터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2005-05-24
- <밥일꿈>진정한 대학의 기능(채규근 2005.05.23) 진정한 대학의 기능 채 규 근 (안산 성안중 교사) 중간고사를 마치고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찾아왔다. 고 1학년 첫 중간고사인 셈이다. 고등학교 진학한 이후 녀석들과 첫 만남이라 고등학교 생활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레 시험 이야기가 나왔다. 녀석들은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선생님 장난이 아녀요.” “내신 때문에 시험기간은 살벌해요.” “한번 실수하면 대학은 영영 끝장예요.” 중학교 시절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벌써 대학 입학시험 공부에 찌든 수험생 같아 보였다. 친구끼리 필기노트도 빌려 주지도 않으며, 쉬는 시간에도 온통 끔쩍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몇 몇의 아이들을 보면 숨이 꽉 막힌다고 한다. 고1에겐 옆 친구들도 결국 하나의 경쟁 상대자로 보인다고 한다. 얼마 전 고1의 촛불 시위가 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징계를 하겠다는 교육부의 엄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 놓지도 않으면서 임시방편적인 대책만으로 급급하는 교육부의 태도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사실 대학 입시에 관한 문제점은 오랜 세월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역대 정권에서 많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제대로 된 입시안은 아직 없다. 교육이 바르게 자리 잡지 못한 원인중의 하나가 입시교육이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내신 위주의 학생 선발을 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생각인데 사실 이러한 대입안으로 비틀어진 입시교육과 공교육 정상화를 바로 잡겠다는 생각은 애시 당초 잘못된 생각이다. 대학도 변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학이 서열화 된 구도에서 온통 학생 선발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려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놓고 실제 인재양성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대학이 많다. 상아탑을 포기한 채 취업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이 지금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중학교 시절보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보다 대학에서 더 많은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 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는다. 마치 일류 대학 입학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 같은 기세로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비정상적이다. 아이들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잘못된 사회구조와 과도한 경쟁은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행복할 권리마저 빼앗아 버린다. 임시방편적인 입시안이 아닌 공교육 정상화와 아이들에게 행복권을 되돌려 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입안을 모색해야 한다. 2005-05-23
- “무슨 일 있어도 전쟁 막아야”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 한반도 위기설 등이 분분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사절단 초청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그런 책임을 함께 지자”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 국가 민족에게는 영광스런 전쟁이었을지 모르나 세계 평화, 세계 인류의 존엄과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위대했던 전쟁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예외가 없진 않지만 모든 전쟁은 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을 내걸고 이뤄졌고 또 영광으로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도 명분과 가치로 포장될 수 있는 전쟁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 배경과 관련,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말씀 하신 게 아니라,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사실 노 대통령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발언은 최근 이라크 전쟁이나 한반도 위기설 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전쟁방지와 관련한 외교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지만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외교관들이고 막상 전쟁이 나면 죽는 것은 군인”이라며 “전쟁을 막아야 하는 책임은 여러분들 손에 달려 있고, 여러분들이 전쟁을 결정할 수도 막을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신의 뜻’ ‘국가의 이익’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인권의 가치’ 등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세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한지 확신을 갖지 못하지만, 정치를 직업으로 하고 외교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권’이라고 하는 세계적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리셉션에는 주한 외교단장인 알프레도 웅고 엘살바도르 대사 내외를 비롯한 92개국 공관장과 주한 국제기구 대표 포함 외교단과 오 명 과기부총리, 정동영 통일, 반기문 외교, 윤광웅 국방장관, 정찬용 NGO대사, 현정택 경제통상대사, 박경서 인권대사, 도영심 관광 스포츠 대사 등 대외직명대사 등이 참여했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2005-05-20
- [기고]“처음 가진 이 마음, 변함없이” 박은영 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지난해 첫발을 내딛었다. 박 교사가 교직에 몸을 담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신참교사의 편지글을 통해 묵묵히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다수 교사들의 고민과 희망을 살펴본다. 이대영 선생님께 선생님. 아이들의 작은 입으로 매일 매일 듣고 있는 말이지만 제가 선생님을 부를 때면 언제나 아이들에게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듭니다. 제가 선생님을 부를 때의 그 벅차고도 떨리는 마음을 저의 아이들도 느끼게 될 날이 올 수 있을지 아직은 자신이 없네요. 처음 만난 아이들, 선생님이라는 이름. 아직도 저에겐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선생님 앞에선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라기만 한 제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과 같은 진짜 교사가 되어 서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고요. 지금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가슴 설레어 왔는지, 처음 가졌던 이 마음과 열성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기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에 혹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는지 매일 아이들을 돌려보내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마냥 예쁘기만 한 아이들에게 지켜야 하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자기에게 맞추어져 있는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도 돌릴 수 있는 아이들이 되도록 하는 것. 아이들에게 이론이나 지식을 전해주는 것,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저의 생각과 그것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부족하고 미숙한 것이었는지, 선생님의 뒤를 따라 걷게 된 이 길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뎌야만 하는 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늘 저보다 한발 앞서 걷고 계실 뿐이라고 하셨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간격이, 제가 채워나가야 할 세월의 발자국들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사소한 몸짓, 말 한마디에도 너무나 큰 영향을 받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자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대견하고 가슴 뿌듯하기도 합니다. 당당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한없이 너그럽지만 그릇된 일에는 단호한 모습. 하고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며 최고가 되고자 남보다 더욱 노력하는 모습. 그것이 제가 선생님을 통해 꿈꾸게 된 참된 교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일 앞에서도 언제나 저희를 믿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기에 저희는 선생님이 걸어오신 대로, 또 말씀해 주신대로 정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제가 가지고 있는 그 이상의 모습으로 저를 바라봐 주시고 격려해 주신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에 저는 더 나은 교사, 언제나 아이들에게 자신 있는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언제나 스스로를 다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헤아려 주시고 어렵고 힘이 들 때 조용히 뒤에서 위로해 주셨던 선생님. 교사의 길을 걸어가는 저희들에게 주어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그 작고 큰 감동들을 제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교실에서 저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만 가지면 된다고 하셨지요. 선생님이 제게 주신 사랑이 저의 마음에 심어지고, 제 가슴에 물든 선생님의 사랑이 이제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저의 아이들에게 전해지려 합니다. 제 아이들의 마음에도 저와 같은 따뜻한 사랑이 피어나, 그 아이들이 훗날 만나게 될 그들의 아이들에게 또다시 전해질 그 날을 꿈꾸어 봅니다. 묵묵히, 그러나 최선을 다하며 이 길을 걷겠습니다. 가끔 뒤돌아보시며 저의 시선이, 저의 열성이 언제나 올바른 곳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선생님의 마음을, 사랑을, 가르침을 …. 사랑합니다. 2005. 5. 15 제자 박은영 드림 2005-05-16
- “제도는 개선되는데 의식은 제자리” 은행장들이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딴청을 부리는 은행원들에게 강한 톤으로 불만을 털어놨다. 이는 ‘경쟁심화’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로 1분기 이익의 질이 떨어지자 은행장들의 심기가 밖으로 표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11일 월례조회를 통해 “아직도 상황인식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여져 대단히 안타깝다”면서 “제도적 개선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의식의 개선은 아직 크게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강 행장은 이어 “안일한 상황인식은 현재의 고통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얼마 후에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여름에 허송세월을 보낸 뒤 겨울의 모진 추위를 어렵게 지낸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 행장은 “최근 그룹 인터뷰에서 수동적인 업무자세, 부서이기주의 팽배, 낮은 업무지식, 권위주의적 리더십 등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아무리 차세대 전산망을 갖추고 타 금융기관과 업무제휴를 맺는 등 노력을 기울여도 수동적인 업무자세와 군림하려고만 하는 리더십으로는 전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경쟁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도 “영업력 강화를 위한 과제 중 조직이나 제도를 바꿈으로써 해결 가능한 것들도 있으나 가장 쉬우면서도 힘든 과제가 본부부서 지원이지만 아직 영업점이 느끼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영업중심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본부직원들을 꼬집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그 동안 제도나 시스템의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 노력을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영업현장으로부터의 개선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변화와 혁신노력을 쉼없이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발상과 차별화 그리고 고객재발견을 통해 기존의 경쟁틀에서 벗어나 고객과 조직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 나가야만 조직의 궁극적인 성장과 성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더 빨리 고객지향적으로 변해야 하고 우리의 변화된 자세와 역량을 고객에게 제공하는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영업점 섬기기와 고객만족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발상의 전환, 감성과 지혜를 더하는 것 등을 들어 남들과 똑같다면 가진 것을 모두 버릴 각오로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0.5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2005-05-12
- [책소개]조선 정신계의 수양이 과연 어떠한가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 한용운 지음 /동천 림효림 옮김 바보새 /1만2000원 “관(官)에 살면 항상 지켜야 할 두 가지 말이 있으니, ‘오직 공정하면 밝은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함이니라. 일을 결재하고 처리함에 공정하여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거나 어두운 구석이 없으면 명백한 치적이 생기고, 청렴하여 뇌물을 탐내지 아니하면 사람에 대하여 털끝만큼도 부끄러움이 없어서 정정당당한 위광이 생기는 것이오.” “가정에 살면 항상 지켜야 할 두 가지 말이 있으니, ‘오직 용서하면 심정을 평화롭게 하고 오직 검소하면 씀씀이가 만족하다’ 하는 것이 그것이라.” 좋은 문장은 시공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만해 한용운의 글이 그런 문장이다. 책 본문에서 인용한 앞의 글 ‘관직에 있을 때와 집에 있을 때’도 그렇다. 스님이 언급한 평범하면서도 간결하고, 그러면서도 스님이 하고자 하는 뜻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용운 선사의 저서 ‘정선강의 채근담’이 수십년 시공을 뛰어넘어 요즘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 또한 만해의 글이 좋은 문장이기 때문이다. 만해는 ‘좋은 문장은 특이하고 기이한 문장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면서도 가장 적절하고 간결하게 된 문장’이라고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는 만해의 저서 ‘정선강의 채근담’을 새롭게 엮어 낸 책이다. ‘정선강의 채근담’은 시인이자 민족지도자인 한용운 선생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일생을 수행하는 승려로, 민족수난기를 살면서 독립지사로 살아온 스님의 삶과 사상과 철학, 그리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처세술 등이 모두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풀뿌리 이야기’는 이같은 만해의 책에서 홍자성 선생의 원문은 과감히 생략하고 한 선사가 붙여 쓴 글만을 번역해 낸 책이다. 저자는 승려출신 시인 효림스님이다. 효림스님은 만해의 문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나름으로 애를 썼다. 번역자로서 견해는 최소화하고 요즘 독자가 읽기 어려운 부분은 새롭게 다듬었다.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 제목도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라고 고쳤다. 만해는 ‘정선강의 채근담’ 서문 말미에서 “사람은 사람이요 사물이 아닌데 사람으로서 사물의 부림을 받는 것은 사물의 변지라…. 시험 삼아 묻노니 조선 정신계의 수양이 과연 어떠한가? 과연 사물의 변지(騈指)를 면하였는가?”고 일갈했다. 스님이 처음 이 책을 발간한 시점과 지금은 적어도 반세기 이상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변지를 면하였는가’라는 만해의 질문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사람들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효림스님도 “만해의 글을 통해 사물의 변지를 면하고 민족수난을 극복하는 힘을 찾고, 산업자본주의의 인간성상실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효림 스님은 평소 만해의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다’라는 말을 화두로 삼고 있다. 현재 설악산 만해마을에서 정진하고 있으며 만해가 창간했던 ‘유심’지 대표이기도 하다. 효림스님은 만해정신의 재현을 통해 오늘날 어지러운 한국 사회의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품을 높게 이루려면 오직 한가지로 솔직하게 해야 하나니, 거짓됨이 없고 그 하는 일이 광명정대하여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에 밝게 비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니라. 그렇게 되면 그의 종적이 깊은 산, 험한 골짜기 속에 들어가 숨어 있어도 그의 덕과 명성은 도리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설악산 회주 오현스님은 추천의 글을 통해 “엣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찾았으니, 여기 만해 선사의 채근담이 바로 그런 글”이라고 말했다.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200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