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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초대석-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연기자 유인촌씨가 문화전략가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 5월 출범한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앞으로 3년간 연기자의 옷을 벗기로 했다. 유 대표가 재단을 맡은지 5개월만인 오는 10일 서울 동북부지역의 문화갈증을 해소할 이동식 공연장인 ‘빅탑시어터(big-top theatre)’를 개관한다. 그의 첫 번째 성과이자 문화산업전략가로서의 첫 발이다. 사실 그는 대형 공연장 등 다목적홀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시민들에게 선택과 집중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세분화·전문화된 문화공연장을 선호한다. “서울시의 문화 기반시설(인프라)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기반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고 규모가 큰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작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대로라면 대학로는 젊은이들의 실험의 장으로,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 공연의 장, 국립극장은 전통문화의 장으로 각각의 특성에 맞게 전문화해야 한다. 미술관도 종류별로 특색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서울 문화재단의 정책과 방향이다. 그의 작은 문화살리기는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놀이터를 창작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동네별로 있는 놀이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몇십년동안 같은 모습으로 방치돼 있지 않습니까. 놀이터를 아이들의 창작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지역 전역에서 놀이터 문화만들기 사업이 추진될 것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올 연말쯤 창작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놀이터를 일반에 공개하고, 건설회사와 설계전문가 등에게 놀이터의 중요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그가 연기를 떠나 재단 대표로 온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다. 특별한 자리는 아니지만 서울시 문화현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의 자리라는 점과 이명박 시장과의 친분 때문이다. 기회의 자리라는 점에서는 사실 이번 ‘외도’가 처음은 아니다. 연기자라는 명함말고도 대학교수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 전반을 살펴볼 수 있기는 재단 대표자리가 적격이라는 판단에서 대학교수보다는 문화재단을 선택했다. 3년 임기동안 서울시 문화의 새바탕을 깔아놓겠다는 포부까지 생겼다. 이명박 시장과의 친분은 8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진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때 이 시장을 만났다. 그 이후 유 대표는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에서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 역할을 하면서 개인적 친분이 두터워졌다. 유 대표는 “이 시장이 그동안 대형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밀어붙였는데 이제는 문화와 복지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장도 그 필요성을 알고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했습니다”고 말했다. 재단 대표이사직을 수락하면서 수입도 크게 줄었다. 3년동안 드라마 출연이나 광고촬영을 스스로 접었다. 그는 또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이 제출한 서울시 보조금 지원 요청을 가차없이 잘랐다. “서울시 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올린 저의 극단 공연작을 아예 대상작품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가슴아픈 경험이지만 서울 문화의 전체를 봐야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매달 극단과 극장에 들어가는 수입은 그의 광고출연료로 충당했다. 하지만 공공재단의 대표이사직을 맡는동안 일체 상업방송이나 광고출연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식구들의 원성도 많았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질적 발전에 ‘유인촌’이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배고픔은 잠시 잊기로 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2004-09-07
- “관료들이 보좌관 무시하는 풍토 바꿀겁니다” 17대 국회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전문성’의 증가다. 비단 국회의원 개인의 전문성이 증가한 것 뿐만 아니라 보좌진들의 전문성 증가도 괄목할 만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변호사 출신 보좌관의 등장이다. 17대 국회에는 총 5명의 변호사 출신이 의원들을 보좌하고 있다. 변호사 자격증이 ‘명예와 부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한국 풍토에서는 이들이 국회 보좌관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들 5명은 이런 시선에 오히려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 생활하면서 사실 벽도 많이 느꼈고, 돌파구를 찾아 국회로 왔습니다” 변호사 5인방 중 가장 맏형 격의 사람은 강문대 변호사(37·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 변호사 출신 보좌관 1호로 기록된 강 변호사는 민주노총 법률원 5년차 변호사로 일하다가 국회로 옮겨왔다. 산재 전문 변호사인 강 변호사는 민주노총에서 일하던 것과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법을 만드는 곳이니만큼 바로바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강 변호사와 동갑인 열린우리당 이원영 의원실의 김준기 변호사(37)는 다양한 경험을 찾아 국회까지 오게 됐다. 김 변호사는 법인 생활 1년, 개업도 1년 해봤지만 ‘공부만 했던’ 세월 때문인지 사회성과 인간관계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꼈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는 국회 보좌관 중에 변호사 출신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특히 “밖에서만 보던 것과는 달리 정치인을 하려면 자기희생 정신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 변호사는 최근 재정 신청 전면 확대 등의 법안을 내는데 주된 역할을 하는 등 변호사로서의 전문성을 톡톡히 보여주기도 했다. 윤승현 변호사(36·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실)는 거의 연수원 마치자마자 국회로 들어온 케이스. 국회로 들어온 동기는 김준기 변호사와 비슷하다. 법인에서 4개월 정도를 근무했지만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한다. 윤 변호사는 “사법은 만들어진 규범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곳이었다면 국회는 규범을 창출하는 곳”이라면서 “법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각의 범위가 제약되는 면이 있는데 반해 여기 생활을 하다 보니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법에서 문제점을 찾게 되고, 생각도 유연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세원 변호사(35·열린우리당 안병엽 의원실)와 이호찬 변호사(33·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실)는 둘 다 미국 뉴욕 변호사 출신인데다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도 갖고 있다. 이 중 강 변호사는 한국 홍콩 등에서 7년 정도 국제금융 전문 변호사로 일했고 1년은 외국계 은행에서 일할 정도로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강 변호사는 “정부와 경제 분야가 서로 유기적인 순환관계를 이뤄야 한다”면서 국회에서 일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이호찬 변호사는 미국 로펌에서 2년여간 일하다 귀국했다. 이 변호사는 세법과 증권법 전문 변호사로 마침 재경위 소속인 박 의원실에서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재경부 관료들이 보좌관은 물론이고 의원들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면서 “그러나 의원들도 많이 달라졌고 보좌관들도 많이 달라지고 있어 경제관료들도 많이 긴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원들을 보좌하며 입법활동에서 보람을 발견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불만이 없을 리는 없다. 이들이 가장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역시나 급여 문제다. 개인차는 있지만 적게는 3분의 1정도가 깎였거나, 절반 가까이 깎인 사람도 있었다. 이호찬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변호사들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가는 곳이 보좌관직”이라면서 “한국 상황은 아직 열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2004-09-08
- [전문가 진단] IT 분발에 달렸다 6일 증시는 최근 장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다. IT는 여전히 약세를 보였고 내수주가 선두에서 이끌었다. 외국인이 대거 매도에 나섰지만 프로그램 매수가 이를 견제하면서 그나마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무너질듯하던 820대가 연명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증시가 기로에 선 것이다. 주가가 820대를 딛고 재도약하는가 아니면 추락하는가는 IT의 분발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수주는 사실 자기 기량을 100% 발휘한 상태다. 국민은행을 비롯한 은행주가 아직 상승여력이 남아있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상승으로 숨이 턱까지 오른 모습이다. 사실 IT는 더 이상 나빠질게 없다는 현실이 반전의 모멘텀이 될 수있다. LCD가격은 7∼8월 사상유례없는 폭락을 거듭했다. 가격폭락은 수요 하락을 동반했다. IT로서는 최악의 세월이었던 셈이다. 9월에는 LCD하락폭이 다소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수요 증가도 이뤄질 전망이다. 반전의 단초는 미약하지만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결합해서 IT가 회생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에 달려있다. 시장이 언제 어떻게 IT 재도약을 외칠지는 섣불리 예측할수 없는 것이다. 외국인 매도세도 무기력한 IT의 영향이다. 외국인은 6일 삼성전자를 대거 매도했는데 이전에도 외국인은 자신들이 사서 꼭지를 만들고 자신들이 팔아서 바닥을 형성하곤 했다. 언제나 삼성전자의 극과 극의 현장에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물론 이번의 경우에도 외국인들이 대거 팔았기 때문에 바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전 저점에서 10%도 오르지못한 40만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매도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2004-09-06
- [문화, 문화인]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장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장은 1955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을때부터 지금까지 50여년동안 국어 연구의 외길을 걸어 왔다. 생애의 3분의 2 이상을 국어연구에 바친 셈인데도 남 원장은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국사람이라면 나서부터 죽을때까지 국어와 함께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게 아마도 남 원장의 생각일 것이다. 남기심 원장은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국어에 적합한 유전자 및 두뇌구조를 갖추게 된 만큼 국어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국어연구원이 하는 일을 설명해달라. 사람이 말을 만들고 말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말이 잘 갖춰져야 삶에 질서가 있고, 말이 잘 다듬어져야 그 삶이 윤기 있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언어는 문화를 창조하는 바탕이 된다. 어법이 바로 서고 어문 생활이 가지런해야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문화 창달도 기여할 수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이같은 언어 기능을 수행하도록 국가 어문 정책 관련 연구를 주관하는 기관이다. 각종 어문 규정을 제정하고 국어사전을 편찬, 어문의 표준을 마련해 국어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한편, 국어를 순화, 보급하고 국어 자료를 수집, 가공하며 국어 유산을 모아 보존해 국어 생활의 향상을 꾀하도록 하는 게 국어연구원의 역할이다. 대학과 연구원은 국어 접근방식에서 차이가 있을텐데. 대학에서는 국어를 세계 7000여개 언어중 하나로 놓고 국어의 언어학적 원리 및 언어사용이 심리적 사실 혹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연구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역사주의, 구조주의, 실존주의 등이 있다면 언어도 이같은 시각으로 살펴본다는 얘기다. 물리학 또는 화학에서 법칙을 찾듯 국어를 다루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연구원은 국어 사용을 중점에 둔다. 국민들이 효과적으로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국민언어생활을 살펴보고 언어생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국어연구원에서 할 일이다. 언어는 정보전달 외에 일체감 등 정서적, 감정적 역할도 일정부분 담당하는 만큼 이에 대한 정책적 연구도 병행하게 된다. 국어사용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면. 영어는 보통 중학교부터 6년이상 중요과목으로 배움에도 불구하고 실제 외국인과 만나면 우리는 거의 벙어리가 된다. 반면 모국어는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유치원 나이면 거의 다 배운다. 지식면에서 훨씬 미숙한데도 말이다. 이는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국어에 적합한 유전자 및 두뇌구조를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말글을 잘 쓰게 되면 정보흡수 및 전파가 빠르게 된다. 예를들어 우리나라 6학년 학생이 1000개의 어휘를 사용하고 평균 어휘력과 해독력이 70점인데 같은 나이의 일본 학생이 훨씬 많은 어휘를 사용하고 독해 및 말하기 듣기에 능하다면 이 아이들이 커서 서로 경쟁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언어능력의 차이는 지식차이를 불러오고 이는 곧 문화수준, 교양수준 차이 뿐 아니라 기술력, 노동력 등 경쟁력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국어는 도구로서의 언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국어는 엄마 품에서 배운 말이다. 이를 통해 가족, 친구, 사회, 민족이 서로 소통하게 된다. 여기서의 소통이란 뜻이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정이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외국어 원서를 이용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도구로서의 언어’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나 국어는 이같은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뜻과 정이 통하는 기호체계인 국어로 연구 및 지식흡수는 물론 사랑, 미움 등 감정도 정확히 표현할 수 있고 싸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국어는 정보전달 도구 위에 정서공유 및 일체감 형성 등 훨씬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국제경쟁력을 내세우며 조기영어교육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말은 많이 할 줄 알면 좋은 것 아닌가. 영어 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많이 가르치는 것이 좋다. 문제는 충분한 준비 및 연구,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초등학교나 중학교때 유학을 간 학생들은 이른바 제3세계 학생들과 어울리며 수준 낮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중간에서 정체성 혼란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아예 말을 배우는 단계에서 외국에 간 학생들은 한국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기정체성을 세우기 전에 외국어를 접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또 미국 이민 자녀들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말과 영어를 같이할 경우 한국말을 잘할수록 영어를 빨리 배우고 잘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조기영어교육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 하는 것은 한계가 많다고 본다. 말은 그 언어환경, 문화속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조기영어교육은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국어 오염 및 훼손문제에 대한 우려도 높다. 언어 오염 및 훼손문제는 우리나라만, 이시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시대든지 항상 제기돼 왔던 부분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은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들어오면서 요즘 국어 오염 및 훼손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는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다. 언어도 문화인 만큼 문화가 흘러들면 말도 흘러들기 마련이다. 예전에 우리글이 없어 수천년동안 한자를 빌려 썼지만 우리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말이라는 것은 사람 일생과 비슷하다. 새로운 물건이나 제도, 문물 등이 생기면 말도 새로 생기고 변하면 같이 변하고 없어지면 같이 없어지게 된다. 앞으로 ‘지게’나 ‘나무꾼’ 같은 말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반면 도우미, 새내기, 먹거리, 나들목, 민소매 이런 말들이 새로 생겼다. 물론 연구원은 국어 오염 및 훼손, 외래어 남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정부가 정해서 따라오라는 방식으로 국어 순화운동을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등을 적극 활용, ‘국어 순화를 함께 하자’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남기심 원장은 55 서울고, 64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대학원 졸 67 미국 워싱턴대 수료 74년 문학박사(연세대) 67~77 계명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 77~2001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78 문화부 국어심의회 위원 89~98 한글학회 감사·이사 91 연세대 국학연구원장, 95 연세대 문과대학장 97 국어학회장 98 한국언어학회 회장 2001 국립국어연구원장(현) /장유진 기자 yjchang@naeil.com 2004-09-01
- 유성수 대전지검장, 검찰동호지 월간 ‘검찰가족’ 8월호 권두언 기고문 송광수 총장께서 취임하신 이후 검찰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외부인사가 검찰 내부개혁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개혁을 추진하였고, 옴브즈만제도를 도입하여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우리를 알리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권위주의적인 기질을 불식시키는 데도 많은 힘을 쏟았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하여 검찰 수사권 행사의 중립성 확보를 이루어 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내부에 대한 기강 확립에도 힘을 쏟아 사정없이 제 살 도려내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선자금 수사가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보다는 일부 정치권에 의하여 ‘검찰권력의 무소불위적 행사’라고 매도되면서 우리의 권한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기소권까지 부여받는 고비처를 신설하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가을에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움직임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 주변에 우리의 우방은 하나도 없다. 대선자금 수사에 박수 치던 국민들조차 요즘엔 우리 편이 아니다. 전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일을 너무 철저히 잘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는 셈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세월 속에서 검찰만 그대로 버틸 수 없다. 세월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면 우리도 빨리 변해야 한다. 다만, 21세기 앞날을 내다보며 우리의 앞날을 우리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고 우리 기능의 일부가 외부기관에 의해서 재단되고 설계되고 있는 점이 가슴 아플 뿐이다. 세월 속에 우리가 변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2가지 원칙은 있다. 그래도 우리가 맡은 일은 제대로 하여야 한다는 점과 스스로에 대한 자정 노력은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검찰은 변해도 검찰이기 때문이다. 2004-08-31
- <신문로 칼럼>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박석무 2004.08.26)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어느 날 새벽, 이메일 하나가 왔다. 자신을 중학생이라 밝히고는 우리 다산연구소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질문을 해온 것이다. “다산연구소에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본받으려는 분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인가요? 저는 아직 학생이라 잘 모르겠는데, 이번 국사 숙제로 다산 정약용선생님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요. 우연히 책장을 뒤지다가 박석무 선생께서 지은 라는 책을 찾았는데, 다산연구소의 이사장이신 박석무씨께서 쓴 책이시더라구요. 예전에 이모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저한테는 “네가 읽기엔 너무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읽기 어렵더군요. 숙제에 참고나 할까 하고 펴봤는데,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얘기하려 하는지 질문 좀 드릴께요…”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다산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은데 글이 어려워 알 수 없다는 내용 같아서 글을 쓴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어려워 못 읽겠다는 중학생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다가 쉽게 써서 누구나가 읽기 편한 책을 내자는 목표로 저술한 책이었건만, 어려워 읽지 못한다는 중학생의 글을 읽고 보니 난감한 생각을 피할 길이 없었다. 책이 간행되자마자 대한출판문화협회 ‘이달의 청소년도서’로 까지 지정되었는데. 정말로 크게 반성할 일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내용으로 글을 썼더라도 독자들이 어려워 읽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학계나 출판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중학생이 보낸 글의 전부를 인용했다. 다산 정약용은 누가 뭐라해도 조선왕조 5백년동안 최고의 학자이자 탁월한 경세가였다. 문장과 시에도 매우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 시대 가장 큰 사표로 여겨야 할 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관련 학자들의 문제로 인하여 일반 국민들이 다산에 대하여 막연히 실학자다, 목민심서의 저자다 라는 이외에는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없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와 같은 다산연구가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러 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누구나가 읽을 수 있는 다산 일대기 하나 제대로 저술해내지 못했으니,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실제로 그러한 책임을 하나 벗고자, 지난해에 다산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냈지만 중학생의 눈으로 읽을 수 없다니 할 말이 없다. 세상이 썩고 병들어 일반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세상을 그대로 두고는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수수방관할 수가 없다면서, 나라의 모든 법제를 새롭게 개혁하고, 모든 공직자들이 백성을 위한 일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청렴한 정신을 회복하여 백성을 살려내자는 뜻으로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실학 관계 저서를 남긴 분이 다산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만 기득권을 인정받고 큰소리치며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벽파들의 등살에 떠밀려 국사범이라는 중죄인이 되어 18년이라는 긴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원한이나 보복의 마음을 버리고 나라와 백성을 살려내는 방책의 모색에 전념하여 그만한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 나라와 백성 살리는 방책 모색 다산연구소는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로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중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더욱 할 일이 많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필자의 저서부터 다시 풀어쓰는 일을 시작해서, 모두가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산의 일대기부터 저술해야겠다. 다산으로 돌아가서, 다산을 통해서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하겠다면서 다산이 누구인가를 알게 해주는 책도 없다면 말이 되겠는가. 1762년 경기도의 광주,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에서 태어나 75세를 일기로 1836년 2월 22일 마현의 옛집에서 세상을 떠난 다산, 비록 170년이 다되는 세월이지만 이제야 그분은 부활하셔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살려내야 한다. 그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의 저서들을 쉽게 번역하여 한글세대들이 제대로 읽을 수 있게 해주고, 또 그분에 대한 많은 해설서들을 저작하여 누구나가 읽고,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다가 갔으며, 뒷날에 어떤 일이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가를 알게 해야 한다.그리고 우리 모두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너무 높고 깊은 그의 학문을 쉽게 알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학자들이 노력할 일이 바로 그 일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2004-08-26
- 김기용씨가 인권위원에게 보낸 2차 진정서 진정서 진정인 이 름 : 김 기 용 주민번호 : 410901-0000000 주 소 : 서울 강남구 논현동 000-00 전화번호 : 02-000-0000 - 진정내용 - 저는 2002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 ''가혹행위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번호 02진인1243을 진정한 사람입니다. 동 진정은 귀 위원회에서 접수하여 귀 위원회 조사국 소속 신ㅇㅇ 조사관이 약 20개월에 걸친 철저한 조사 결과 담당 검사의 인권침해 행위를 밝혀내서 2004년 3월 2일 담당 검사 정ㅇㅇ를 수사하도록 인권위원회가 검찰에게 의뢰하게 되었으나, 검찰에서는 서울고검 임ㅇㅇ 검사에게 조사토록 했고 동 임ㅇㅇ 검사는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검찰 편들기를 하여 혐의 없다는 통보를 2004년 5월 24일 사건번호 2004 진정 51호로 해 왔습니다. 귀 인권위원회 전원 위원회에서 2004년 6월 그 결과를 논의한 결과 동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확인된 인권침해 사실을 수사하라는 것이므로 검찰에서 검찰 내규에 의거 한 사람의 검사가 내사 종결 처리한 것은 잘못으로 재수사하라는 방향으로 의결되었으며, 귀 위원회에서 감찰에게 다시 수사의뢰를 했던 것 입니다. 진정인은 현재의 진행상태를 지켜보면서 또다시 전과 같은 사항이 반복되는 것 같은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다시 진정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현재 검찰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두 번째 수사의뢰를 진정사건으로 접수하여 서울고검 김ㅇㅇ 검사에게 배정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아직까지 본 진정인에게는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본 진정인이 우려 하는 것은 본 건을 검찰에서 진정사건으로 접수한 것은 지난번과 같이 내사종결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귀 위원회에서 위원회법에 의하여 수사의뢰를 한 것은 담당검사를 수사하라는 것이며 혐의를 내사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나, 검찰에서는 그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 위원회에서는 검찰이 정식사건으로 받아들여서 사건번호를 부여하여 기소 여부를 분명히 표시한 회신을 기대하고 그 회신 내용에 따라 차후의 제정신청 등의 수순을 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의 수사의뢰로는 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본 건은 1999년 9월 18일 발생하여 기소권 소멸시효가 2004년 9월 18일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 위원회와 검찰의 견해차이로 인해 그 해결이 늦어질 경우 본 진정인은 2년여의 세월에 걸친 귀 위원회의 조사를 제대로 밝혀보지도 못하고 좌절당하는 또 한번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결과가 될까봐 노심초사하여 본 진정서를 쓰고 있습니다. 본 진정인은 이 진정건이 귀 위원회에 접수 된지도 만2년이 지났으며, 20여 개월에 걸쳐 귀 위원회 소속 조사관이 철저히 조사하여 담당검사의 범죄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어째서 수사의뢰와 같은 불확실한 방법을 통해서 검찰로 하여금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귀 위원회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여서 확인된 범죄를 바로 고발 처리하여 검찰과의 법률적 이견도 없애고, 처리도 확실하게 하므로써 시간도 단축하고 기소 시효도 지킬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진정으로 애원합니다. 존경하는 위원 여러분, 본 진정인이 당한 가혹행위 및 인권침해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서 다시는 저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2004.8 진정인 김기용 2004-08-24
- <내일시론>이해찬 정동영 황우석(정세용 2004.08.24) 이해찬 정동영 황우석 8월 10일 오후 7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50대 초반의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문리대 72학번 마당 모임. 모임 멤버인 이해찬 총리가 친구들을 초대한 것. 대학교수 언론인 공무원이 많았다. 매달 모일 때는 참석자가 20명 안팎. 그러나 이날은 40명이나 모였다. 게스트로 수의대 72학번인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참석했다. 세계적인 학자로 떠오른 황 교수. 그는 배아줄기세포연구와 한국의 미래에 대해 특강을 했다. 명성만큼이나 명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고 전망한 것. 그는 밤세워 연구하는 청년 과학자 등 우리 젊은이들이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데다 애국심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과학자들이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날 황 교수는 마당 회원으로 추천됐다. 실세총리, 외교안보팀장, 그리고 세계적인 생명과학자 모임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참석했다. 그는 공관에 초대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친구를 대표해 건배를 제의했다. ‘대독총리’가 아니라 실제로 국정을 총괄 지휘하는 ‘실세총리’라며 이 총리의 건승과 친구들의 우정을 기원했다. 정 장관은 지난번 우리당 총무 경선에서 자기가 이 총리를 지원했다면 그가 총무가 됐을 것이고 그렇다면 총리가 못됐을 것이라며 총리가 된 것은 자신의 ‘선견지명’이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총리도 초대에 응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자신도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온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황우석 교수를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세계적인 과학자로 호칭했다. 그리고 정동영 장관에 대해서도 차기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치켜세웠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못하는 이 총리의 성격상 우리당의 차기 주자로 가장 유력한 사람은 정 장관이고 그가 대통령이 될 확률도 가장 높다는 소리로 들렸다. 정치권의 실세인 두 사람이 서로 협력 상생하지 않고 갈등 반목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찌할 가 걱정하던 친구들의 근심을 그들은 이날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걱정해주는 친구였다. 대부분 6.25전쟁 중이나 전쟁 직후에 태어난 72학번은 불운한 세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입시에 시달렸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0월유신이 터져 암울한 시기에 젊은 시기를 보냈다. 하숙방과 다방 그리고 막걸리집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을 목말라했다. 유신시절 그들에게는 미래와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때로는 격렬히 반항해 경찰서와 교도소를 들락거렸으나 그들은 군사독재의 총칼 앞에서 좌절과 낙망에 익숙해진 세대였다. 낙망을 때로는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년문화로 달래기도 했으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불운한 세대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고 5월광주항쟁에 이어 12.12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탄생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87년 넥타이를 맨 채 거리시위에 나섰던 72학번은 어느덧 50대 초반이 되어 사회 중심에 진입했다. 참여정부의 세대교체 바람에 힘입어 우리 사회 각계의 정상에 오르는 인물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 살리기 과거 청산에 앞장서야 … 거짓말 말실수는 금물 정치권만해도 이 총리와 정 장관 이외에도 천정배 우리당 총무가 서울법대 72학번. 얼마전 부친의 경력 문제로 사임한 신기남 우리당 전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1학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유신시절 대학을 다닌 70년대 초반 학번이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 뿐 아니다. 학계 실업계 공직 등 각계에서 70년대 초반 학번인 50대 초반의 인사는 그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일제하에서 친일할 일도 없었고 전쟁 중 용공에 가담할 기회도 없었던, 그러나 군부독재의 쓰라린 경험과 경제성장의 기적을 체험한 50대 초반은 분명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경제를 살리는 중심이 되는 것. 또 일제에 국권을 뺏긴 1905년이 백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과거사를 정리해 후손에 물려주는 것. 또 그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그것은 선배인 50대 후반과 60,70대를 존중하고 386 등 후배들을 포용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말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최근의 교훈이기도 하다. 정 세 용 논설 주간 2004-08-24
- <내일시론>고용허가제, 기대와 우려(문창재 2004.08.20) 고용허가제, 기대와 우려 ‘현대판 노예’란 말로 비판받던 외국인 근로자 고용제도가 지난 17일부터 정식 고용허가제로 바뀌었다. 그들도 한국인과 똑같이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임금체불이나 재해를 당해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일부 영세 기업인들이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해 인권후진국이란 손가락질을 받은 일을 상기하면 제도 시행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리 정부와 인력송출 양해각서를 체결한 태국 필리핀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여섯 나라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길이 열려, 구인난에 시달려 온 중소기업인들이 주름살을 펴게 되었다. 이웃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이란 미담이 들려올 날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외국인 고용업주는 임금 및 퇴직금 문제, 산업재해 등에 대비해 보증보험, 출국만기보험과 신탁, 귀국비용보험과 신탁, 상해보험 등 네 가지 보험에 들어야 하므로 외국인 근로자들은 훨씬 안정적인 노동환경에서 일하게 된다. 그렇다고 수많은 외국인이 불법체류하는 사회적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외국인 근로자와 그들의 고용자 모두가 불안한 눈으로 이 제도의 출범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새 제도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3년이란 세월은 외국인이 원하는 돈 벌기에는 너무 짧아 우선 고용기간을 3년으로 못박고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을 대상에서 제외한 일이다. 3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이 손에 넣으려는 돈을 벌기에는 너무 짧다. 그들은 대개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쓰고 들어왔다. 일자리를 알선받고 입국수속 하는 데 쓴 그 비용은 대개 빚이다. 그것을 갚고 그 정도의 돈을 모아서 귀국하려면 적어도 4~5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빚도 갚지 못한 상태에서 3년이 지났을 때, 예 감사합니다 하고 순순히 돌아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묻는다.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불법체류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고용자 입장에서도 우리 말과 관습에 익숙해지고 노동 숙련도가 높은 사람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정 들만 하면 내보내야 하는 제도가 불법 체류를 생산하고 있다”는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불법체류자 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은 법정 체류기간이 지나도 귀국하지 않고 처벌과 강제송환의 위험을 무릅쓰고 숨어서 일하고 있다.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빚을 갚고 목표로 세운 목돈을 손에 쥐기 전에는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까. 17만 명이 넘는 불법 체류자 문제를 풀려면 과도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나라도 불법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량한 장기 거주자들에게 사면혜택을 주지 않는가. 고용허가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주지 않는 것도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장치를 하지 않으면 취업질서가 어지러워져 고용자들이 골탕을 먹게 되겠지만, 너무 경직된 규정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돈을 벌려고 온 사람들은 단돈 10만원이라도 더 주는 일터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규제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도 좋고 그들도 좋은 방향으로 제도 보완해야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고용허가제와 병행하도록 한 것도 불법체류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적은 임금으로 3D 인력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그 제도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는 중소기업주들의 요구로 정부는 두 제도 병행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가 존속하는 한 불법체류 외국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용돈 정도의 임금을 받는 연수기간이 지난 뒤 제 발로 귀국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 국민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중소기업이 존재할 수 없을 만큼 한국의 경제는 발전했다. 우리도 좋고 그들도 좋은 방향으로 새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가야 한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 나가서 당하는 차별과 박대가 억울할수록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문 창 재 객원논설위원 2004-08-19
- 이산가족 상봉 후 후유증 크다 수십년만에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들이 짧은 상봉 후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어 편지왕래 확대, 면회소 설치, 고령자 고향방문 등 후속조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타게 찾던 부모와 형제, 남편과 부인을 반세기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은 상봉에 대한 기쁨보다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불면증이나 우울증, 의욕상실 등에 시달리고 있다. 고령의 이산가족의 경우, 상봉 후 수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상봉을 하지 못한 이산가족도 오랜 세월 누적된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이재운 위원장은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신청했다가 매번 떨어져서 비관 자살한 사람이 1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팜트리클리닉 김선재 원장은 상봉 후 이산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일종의 상사병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며 정신의학적으로는 “적응장애나 우울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집신경정신과 유남재 원장은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이 채워졌다가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슬픔이 과대화된 상태”라며 “일시적인 증상이라면 괜찮지만 지속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과 적십자사측은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나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는 없다는 반응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한 세미나도 개최하면서 간간이 공허감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는 있어도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상봉 후의 허탈감으로 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현재까지는 상봉 추진에 에너지를 투입해 왔다”며 “적십자사의 자원봉사조직이 전국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니까 이산가족 상봉 후 사후대책이 뭐가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독거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자 등 취약계층 이산가족을 상대로 정신과 치료 및 자원봉사자 상담 등을 알선하거나 상봉행사 직후 남쪽 집결지에서 일괄적인 정신감정을 받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김선재 원장은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전화통화나 서신교환을 추진하거나 금강산 또는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을 방문토록 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박탈감이나 절망감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이산가족끼리 모임을 조직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확대와 면회소 건설에 따른 상시적인 이산상봉 기회를 만들기 위해 북측 당국과 협의중이다. 하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어 이미 고령인 이산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려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재운 위원장은 “80세가 넘은 사람은 조총련 인사들의 고향방문처럼 죽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라도 하고 죽게 해야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겠냐”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문했을 때 80세 이상은 고향방문을 교환하자고 제안한 만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연제호 기자 news21@naeil.com 200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