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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로 칼럼>현대 대북사업과 ‘검은돈’ 커넥션(김영호 2003.08.14) 현대 대북사업과 ‘검은돈’ 커넥션 김영호 시사평론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검찰조사로 드러난 정몽헌 회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간의 ‘검은돈’ 커넥션은 정회장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일을 벌였으나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풀려 그를 죽음으로 압박하지 않나 싶다. 대북비밀송금과 분식회계, 정치성 자금 ‘150억+α’, 팽창경영에 따른 계열사 집단부실화, 재산권 분규에 따른 형제간의 반목과 알력. 이런 것들이 말이다. 금강산 자락에서 태어난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씨는 고향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모양이다. ‘금강’이란 상호를 갖은 기업을 여럿 창업했으니 말이다. 성공한 사업가 정씨는 금강산을 개발하려는 뜻을 품고 금단의 땅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동토에는 아직도 해빙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 때가 1989년 2월이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1998년에야 그의 원대한 꿈이 빛을 보게 된다. 그것은 DJ정권의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노구를 가누기 어려워 위업을 그의 5남 몽헌씨에게 맡긴다. 몽헌씨의 북쪽 나들이가 잦아들면서 대북송금에 관한 숱한 말을 뿌리더니 급기야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말로만 무성하던 대북비밀송금이 실체를 드러냈다. 현대그룹이 남북정상회담 전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하고 현물 5000만달러 어치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밀송금으로 말미암아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었다. 산업은행의 불법대출 4000억원 말고도 상당액을 계열사를 통해 조달했으니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는 혐의까지 쓰게 됐다. 남북사업 구실로 비자금 조성, 정치권 로비 특검조사에서 그는 DJ정권의 실세 박지원씨에게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외에도 ‘+α’라는 규모를 알 수 없는 정치자금도 뿌렸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불법송금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한편 150억원에 관해 세 차례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가 ‘150억+α’의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갔지만 그 폭발력이 그를 무던히도 압박했을 것 같다 금강산 사업을 상업적으로만 판단하면 사업성이 없다. 처음부터 막대한 적자가 예상됐던 사업이다. 30년간 독점사용 대가로 6년3개월간에 걸쳐 9억4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매월 2500만달러를 송금하며 헉헉거렸다. 너무 힘겹자 해로관광 100달러, 육로관광 50달러로 조정됐지만 최근까지 3억8880달러나 송금했다. 그런데 관광객은 1998년 이후 52만명에 불과하다. 한 해에 이만한 수가 가도 수지가 맞을까 말까한데 말이다. 몽헌씨 계열사는 대부분이 가사상태에 놓여 있다. 금강산 사업을 담당한 현대아산은 자본금 4500억원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다. 대북송금을 분담했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계열에서 분리되어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한때 금강산 사업을 맡았던 현대상선은 자동차 운반사업을 매각하여 겨우 숨통을 트는 형국이다. 또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영, 현대투자증권 등 금융3사는 제3자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358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그의 장모가 최대주주이다. 팽창경영은 부실화의 또 다른 불씨였다. 그는 IMF 사태의 충격파를 예사롭게 봤던 것 같다. 당시 DJ정권은 재벌에게 감량경영, 부채감축, 구조조정, 계열분리를 독려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국민투신에 이어 한남투신을 인수하여 금융업의 확장을 노리는가 하면 LG반도체도 인수했다. 금융차입에 의존하여 사업규모를 확장하는 한편 현대건설을 지주회사로 삼아 전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는 형제간의 재산권 분규를 일으켰던 것이다. 수익성 없는 ‘정몽헌사업’ 시장논리로 풀어야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씨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분할승계라는 2세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세간의 사업영역은 오래 전부터 구획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현대건설을 차지한 몽헌씨가 형 몽구씨의 자동차와 동생 몽준씨의 중공업을 넘나보다 골육상쟁을 빚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에 포진한 부친의 비서출신인 가신들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또 그는 당시 ‘정치적 힘’을 과신하지 않나 싶다. 현대아산은 더 이상 대북사업을 이끌 능력도 재력도 없다. 대북사업은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맡기에는 수익성도 없다. 정부가 맡아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구심점이 겨우 현대그룹 계열사간의 연결고리 노릇을 했을 뿐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체로 나가야 한다.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주는 교훈은 정경유착의 검은돈 커넥션을 근절해야 기업도 나라도 산다는 것이다. 2003-08-10
- <내일시론>경제특구 성공의 조건(김진동 2003.08.07) 경제특구 성공의 조건 김진동 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인천이 경제자유지역(경제특구)으로 지정됨으로써 특구시대를 열게 됐다. 경제특구 지정은 특정지역을 외국 기업에 개방, 세제 금융 등 각종 지원과 규제완화를 통해 매력적인 우대조치를 함으로서 외국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 향상의 기폭제로 활용하겠다는 국가적 발전전략 수단의 하나다. 그러자면 외국 기업과 기업인이 자유스럽고 안정된 환경에서 기업활동을 하도록 제도와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특혜적 유인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경제특구는 김영삼정부 때부터 추진되어 왔으나 밑그림도 그리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다가 이제야 첫 단추를 끼게 된 것이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 구축이라는 야심찬 그림의 첫 페이지라는 점에서,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는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업규제, 악성 노사분규, 고임금이 걸림돌 그러면서도 너무 늦게 출발한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인천 경제특구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시발을 찾을 수 있고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오래가지 못해 실패한 경험을 안고 있다. 외국에선, 특히 경쟁국에선 이미 앞서 개발하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멕시코 아일랜드 네덜란드 중국 싱가포르 등 국가들에선 괄목할 만한 발전 기틀을 다져놓고 있다. 북한까지도 무역특구를 지정한 데 이어 경제특구를 시도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경제특구에 관한한 후발국인 셈이다. 후발국인만큼 선발국의 성패사례를 가려내 교훈으로 삼고 벤치마킹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선점국과 사활을 건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경제특구의 궁극적 목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특구는 그 실현을 위한 단기적 수단일뿐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특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실현을 위한 실험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세계 일류기업, 최고 수준의 기술이 자연스레 모여드는 환경이라 한다면 굳이 특정 지역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붇고 일부 기업에만 특혜를 부여하는 비민주적 반시장적인 실험실을 만들 까닭이 없다. 따라서 전국이 특구와 다름없는 경영환경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경쟁력 있는 국가, 글로벌 시대의 일류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으로서의 특구는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의 조건은 만만치 않다. 외국기업이 한국진출을 꺼리고 이미 진출해 있는 자본이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규제와 노사갈등, 고임금이 꼽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미줄처럼 기업을 조이는 각종 규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노사분규, 경쟁국에 비해 훌쩍 높아진 임금수준으로는 외국의 좋은 기업을 유치하기 어렵다. 외국 기업은 말할 것 없고 국내 기업까지 생산시설을 외국으로 옮기는 해외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그래서 산업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현실에 유의해야 한다. 전국이 기업하기 좋은 경제특구처럼 되어야 이같은 의식과 관행 그리고 시스템의 개혁 없이 손쉬운 세제지원 정도만으로 빼앗긴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또 하나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경제특구 완성엔 적어도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정권적인 단기 치적의 하나로 추진한다면 실패를 예비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을 초월하여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더불어 국내기업에도 외국기업과 동등한 대우로 유치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기업은 열악한 경영환경 때문에 해외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역차별 때문에 그같은 제조업의 해외이전 가속화에 불을 질러서는 안된다. 정부는 인천에 이어 곧 부산과 광양에도 경제특구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성급하게 서둘 일이 아니다. 인천의 성공이 담보된 다음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외국의 특구하고 경쟁해야 할 형편에 우물안 경쟁을 하다보면 자원의 낭비가 불가피해지고 어느 한 쪽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진동 객원논설위원 2003-08-07
- ‘원폭 2세’ 대책 촉구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에 의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들에 대한 국가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인권사회단체들이 나섰다. 일본 히로시마 원촉투하 58주년을 하루 앞둔 5일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아시아평화인권연대 등 9개 인권사회단체들은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대위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58년전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인해 인간다운 삶은 물론 생명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원폭 2세 환우들은 정부의 외면 속에 오랜 세월 질병, 빈곤과 싸우다 소리없이 죽어가야 했던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며 정부의 시급한 의료·생계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공대위는 또 “원폭후유증 환자들의 역사적·사회적 고통을 피해자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만 전가시켜 온 정부는 이들의 건강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해왔기에 국가인권위에 진정, 정부의 대책마련을 정책권고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원폭 2세인 김 모씨도 부산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몸무게 37kg의 깡마른 체구에 폐기능 70%가 손상된 김씨는 현재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선천적인 면역체계 결핍으로 지금까지 15차례나 폐렴이 재발했던 김씨는 “자신의 병이 1945년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어머니에 의한 모체유전 때문이며 함께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태어난지 1년 6개월만에 죽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0년부터 91년까지 진행됐던 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폭피해자 1세 1932명 중 41.4%가 1명 이상의 자녀가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4자녀 이상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답한 사람도 23.6%에 달했다. 현재 김씨와 같은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들은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낙인과 결혼·취업 등에서의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대위는 이후 전국에 흩어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원폭2세 환우들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정부의 법적·제도적·외교적 노력을 촉구해나갈 계획이다. / 정애선 기자 sjung@naeil.com 2003-08-06
- 역사와 꽃 향기가 있는 피서지 ■ 연꽃향기 그윽한 마을, 무안 고고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의 하얀 연꽃. 7월에서 9월 사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여름내내 피는 백련 꽃은 밤이면 별빛에 오므라들었다가 낮이면 피기를 계속한다. 연꽃 백련지를 비롯해 나무 위에 눈이 쌓인 듯 하얀 백로·왜가리서식지, 바다에서 물놀이나 낚시를 할 수 있는 홀통·톱머리·조금나루유원지 등이 있는 전남 무안은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여 가족과 친구들과 같이하면 오붓하고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일로 IC에서 820번 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과 논밭을 지나 백련지에 이르면 멀리 하얀 지붕, 논밭 사이사이에 연꽃을 재배하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수생식물자연학습장 및 잔디 위에서 뛰놀 수 있는 축구장 등을 구비하고 있으며, 8월 중순 백련대축제를 대비하여 풍성한 체험 및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무안군청 옆 삼거리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용월리 상동마을은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다. 해 질 무렵이면 수천마리의 백로와 왜가리들이 찾아들어 장관을 이루는데 마을의 관측소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있노라면 새끼새가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먹이 받아 먹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 역사가 있는 피서지, 거제도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최초의 승리를 거둔 옥포항과 6.25때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한 거제 포로수용소유적지, 잘 정비된 해안도로에 해금강 등의 절경, 해안 곳곳의 백사장, 몽돌, 기암괴석에다 외도해상공원을 포함한 아름다운 관광자원이 어우러진 해양 관광도시다. 거제시청에서 2분 거리에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6.25 당시 인민군 15만, 중공군 2만 등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했던 곳.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의 유혈살상이 일어나는 등 이데올로기 대립의 현장이기도 했으며 휴전후 포로 귀환 및 송환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등을 재현하여 지난해 유적관을 개관했다. 전쟁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생동감 있는 기록물, 영상자료, 모형을 전시하여 전쟁의 비극과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으로 영화배우 안성기, 정준호 등이 출연한 ‘흑수선’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14번 국도를 계속 따라 거제박물관을 지나 58번 지방도로를 달려가면 옥포대첩 기념공원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올린 곳이 이곳 옥포항이다. 거제도는 해안선이 길고 복잡해 해수욕장이 무척 발달되어 있다. 남서부지역에는 구조라, 와현, 학동몽돌, 여차몽돌, 명사 및 죽림해수욕장이 있고 동북부지역에는 황포, 구영, 농소몽돌, 흥남 및 덕포해수욕장 등이 있다. 특히 새알같이 둥글고 작은 몽돌이 늘어져 있는 몽돌해수욕장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몽돌의 크기가 규칙적으로 분포되어 있어 맨발로 밟으면 지압 역할도 할 수 있다. 이 중 학동몽돌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깨끗하며 어린이와 함께 야영하기에도 좋으며 해안변의 절경과 함께 유람선을 이용하여 해금강-외도 관광도 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33호 동백림과 팔색조 도래지를 비롯하여 해금강의 비경도 볼 수 있다. 섬 남부의 가라산(해발 580m)과 노자산(559m)을 비롯하여, 섬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계룡산(566m) 등 3∼4시간 등산하기에 적당한 산이 많으며 노자산 자락에는 거제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 내에는 콘도, 방갈로 등 숙박시설이 있고 텐트야영도 가능하다. ■ 정선 오대천과 백석폭포 짙푸른 강물, 푸른 들판과 휘돌아 흐르는 계곡, 자갈밭 등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산들과 함께 아늑한 조화를 이루는 곳. 도시민들의 마음속에는 먼 곳처럼 느껴지지만 실지로는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자동차로 15분 안팎의 가까운 거리에 래프팅, 낚시, 계곡·폭포 탐방, 여름산행, 농촌체험 등 다양한 레저활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선군 북평면이 있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를 빠져 나와 정선 방면 표지를 따라 59번 국도를 달려가면, 도로 양편에 넓은 과수, 채소밭들이 연이어지고, 들판 너머에는 고산준봉이 마치 수호신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한가운데를 흐르는 오대천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북평면 나전리에서 조양강과 만나는 하천으로, 하류로 내려가면서 특히 가리왕산과 그 일대 장전계곡, 단임골, 숙암계곡 등 지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오면 청정수를 받아 물이 맑아지며, 간간히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계곡의 절경과 함께 어우러진다. 꼬불꼬불한 59번 국도를 따라 평창군 진부면 신기리, 수항계곡이 있는 수항리와 막동리를 지나면 장전계곡이 오대천과 합류하고, 계곡 아래로 래프팅을 즐기는 피서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군 관광안내소 옆 숙암샘터에서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인 뒤 500m 정도 가면 하늘에서 은빛 물결이 일렁거리는 듯한 백석폭포가 나타난다. 백석봉(1170m)의 한 줄기 끝에서 오대천을 향하여 떨어지는 116m의 폭포로 수량이 많고 거의 수직에 가깝게 떨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안겨 준다. ■ 해수욕장의 천국, 고흥 전남 고흥군은 등록된 해수욕장만도 10곳이 넘어 해수욕장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금도의 익산, 금장, 연소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뒤 적대봉을 보거나 덕흥, 나로도, 염포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며 야영한 뒤 봉래산 삼나무 군락지에서 삼림욕을 할 수도 있으며 남열해수욕장에서 몸을 풀고 팔영산에 올라 봉화대에서 다도해국립공원을 전망해 볼 수도 있다. 고흥군 77번 국도를 따라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15분 남짓 가면 거금도다. 거금도에서 가장 유명한 익금해수욕장은 반달처럼 휘어진 2.5km 해변에 고운 은빛 모래밭으로 형성되었으며, 익금해수욕장과 구릉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금장해수욕장은 모래 대신 자갈이 깔려있는 것이 특징으로 두 곳 모두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야영하기가 적당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연소해수욕장은 면소재지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100년생 송림이 가장 잘 우거진 해수욕장 중 하나다. 거금도로 가는 배는 녹동항에서 아침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발포리 방향으로 77번 국도를 따라 해안선을 가다보면 백로와 왜가리 떼로 뒤덮인 동령산을 볼 수 있으며 동령산 허리를 구불구불 돌아 나오면 발포해수욕장이 나온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며 특히 신경통, 부인병 등에 특효가 있는 모래찜질로 유명하다. 15번과 77번 도로를 이용하여 연육교를 건너면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어디든 구석구석 다닐 수 있다. 외나로도의 나로도(신금)해수욕장은 바다 100m정도를 걸어 나갈 수 있을 만큼 완만한 경사, 주변에 350년 이상 된 노송들이 특징이다. 염포해수욕장은 해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청색 자갈이 예쁘게 깔려 또 다른 멋을 감상할 수 있다. ■ 반딧불을 찾아, 봉화 경북 봉화군에는 8월에서 9월 중순까지 날씨가 좋은날이면 반딧불들이 밖으로 나와 산이나 들에서 춤을 추는데 특히 청량산 부근에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청량산 도립공원은 870m의 높이에 층층이 깎여있는 연화봉, 향로봉 등 12봉우리, 금생굴 외 7개의 굴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가 정겹게 자리한다. 청량사 부속건물인 응진전 가는 길에는 이 황 선생이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한 청량정사와 바로 옆에 나그네들이 오고가다 땀을 식히며 차 한잔하고 갈 수 있는 산막인 산꾼의 집이 있다. 이 길목 중간 바위 밑 ‘총명수’는 최치원 선생이 마셨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물은 무미건조하다. 큰바위 아래 조그마한 암자인 응진전은 동풍석이 바람이 날리지 않으려 큰바위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자연의 힘의 대단함을 또 한번 느끼게 한다. 군내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석천계곡과 청암정은 그 유명한 닭실마을로 통한다. 청암정 가기전 왼쪽 논둑으로 다리하나를 건너 약 500m정도 더 하 2003-07-29
- <신문로 칼럼>우리 참여 없이 우리 운명이?(정달영 2003.07.28)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 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단만 하여도 약 100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최병우(崔秉宇) 기자가 쓴 휴전협정 조인식 기사의 한 부분이다. 최 기자는 조인식에 걸린 11분간을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이라고 표현했다. 편집기자가 붙였을 기사 제목은 ‘기이한 전투의 정지’였다. 기사의 종결부분에는 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죽으로 장정(裝幀)하고 금자(金字)로 표제를 박은’ 협정 부도(附圖), 그 안에 ‘우리가 그리지 않은 분할선이 울긋불긋 우리의 강토를 종횡으로’ 금 그었으리라 상상하면서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묻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는 이런 말로 계속된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곳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자문자답하였다. 10시 12분 정각, 조인작업은 필하였다.” ‘기이한 전투의 정지’로부터 50년 그날 1953년 7월 27일은, 3년 넘게 무류(無類)의 동족상잔과 처절한 자해를 거듭한 한국전쟁이 ‘기이한 전투의 정지’로 일시 중단된 날이다. 꼭 50년이 지났다. 그때 아직 20대였던 최 기자는 이 기사를 쓴 5년 뒤 급박한 전쟁 상황이던 금문도(金門島) 취재 길에서 타고 있던 상륙용 주정(舟艇)이 침몰, 대만해협 격랑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는 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들 중 전장에서 순직한 전몰기자가 17명이나 되는데 그 전원이 외국인이었던 것에 대해 ‘고마운 한편 부끄럽다’고 평소 자주 말하던 터였다. 마치, 그 빚 아닌 빚을 한국 기자를 대표해서 나 스스로 갚는다는 듯이, 그는 그렇게 취재 전선에서 산화하는 길을 찾아 걸었다. 기록을 보면 6?25 발발 당시 서울에는 전쟁 발발 제1보를 특종한 UP 통신의 재크 제임스 기자를 포함 4명의 외국인 기자가 있었다. AFP 모리스 샹텔룹 기자는 서울 철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북한에 3년이나 억류됐다. 미군 참전과 함께 한국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외국 취재진은 7월 9일 INS 통신 레이 리차즈 기자가 첫 희생자가 된 것을 시작으로 7월 한 달에만 6명이 전사했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이 그런 것이고 위험에 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가슴 한 쪽을 잡아당기는 무엇인가가 남는다. 최병우 기자의 휴전 조인식 기사에 나오는 ‘한국의 운명이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상황,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라는 자문(自問)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생각이 그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의 운명이 남의 손으로 결정되고 농락되는 역사를 숱하게 보아 왔다. 제 운명의 속절없음을 멍청히 바라만 보는 ‘구경꾼’일 뿐이다. 지난 역사에서 그랬을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진행되는, 또는 다가오는 역사에서도 그러할 개연성이 높다. 내 땅에서 전쟁이 나도 나보다 남이 앞장서고, 당연히 내 일인데도 나는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인 듯이 젖혀놓아지는 상황이라면 어찌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인가. 정전체제 50년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가까이 있고 평화는 언제나 아득히 먼’ 세월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과 그 평화는 시작과 끝이 모두 내 손 아닌 남의 손에 달렸다. 오로지 타율이다. 1994년에 실제로 진행됐던 한반도 핵전쟁 위기는 민족 절멸을 초래할 일촉즉발의 무시무시한 상황 전개였으나 한국은 대통령조차 손톱만한 정보도 없었다. 우리는 깜깜히 모른 사이 우리의 운명이 제 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6·15 정신 폄하 … 더 멀어진 평화체제 그렇다면 지금 2003년 7월은 어떤가. 혹시라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전쟁의 음모, 전쟁 발발의 위협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민족에게 닥쳐올 운명에 대해 우리는 대처할 능력, 대처할 방법이 있는 것일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주체적 접근과 해결은 2000년 6·15에 이룬 남북정상의 포옹으로 기적과도 같은 진전과 희망을 던져 주었으나, 그 희망이 오늘 어떻게 흠집이 나고 폄하되며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지 현실은 차라리 눈물겹다. 50년 전 휴전협정 조인식장의 풍경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 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역사에서 소외시키는 데 열심이다. 지금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다. 2003-07-28
-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을 찾아서 화성(華城). 수원시내에 들어서면 어느 곳에서든 옛 성곽을 쉽게 볼 수 있다. 북쪽 장안문과 남쪽의 팔달문, 서쪽 화서문과 동쪽의 창룡문 등 동서남북 4개의 관문을 잇는 길이 5744m의 성이 시내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이 1796년 축성한 화성은 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속에서도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돼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양주 배봉산에 묻혀있던 유해를 수원 남쪽 화산으로 옮기면서 2년 10개월에 거쳐 화려하고도 웅장한 성곽을 쌓아올렸는데 이것이 화성이다. 수원을 효의 고장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성에는 4개의 관문을 비롯해 적의 동태를 관찰하는 공심돈(空心墩)과 군사를 훈련시키던 2개의 장대(將臺), 통신시설인 봉돈(烽墩), 포루( 樓), 각루(角樓) 등 30여개의 문화재가 있다. 이 중 아름답기로 빼어난 곳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 불리는 동북각루. 화홍문의 동쪽 언덕 정상에 있으며 바깥쪽에는 용연(용지)이라 불리는 연못이 있고 성이 외부로 돌출되어 있어 주위 경관이 무척 수려하다. 2층으로 된 누각은 돌 벽돌 목재를 함께 쓰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화려하고 우아한 미를 뽐내고 있다. 달밤에 방화수류정이 용지에 비치면 달빛을 타고 선녀가 내려오는 듯한 환상에 잠기는데 이를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 중 제일로 꼽는다. 방화수류정 바로 아래에는 수원천 위에 석교로 만든 7개의 홍예수문을 둔 화홍문이 위치해 있다. 7개 수문을 통해 흘러 넘치는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켜 만드는 무지개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홍관창’이라 하는데 이 또한 수원팔경의 백미다. 화홍문에서 장안문 화서문을 지나 경기도청 뒷길을 따라 곧장 오르면 해발 143m의 팔달산 정상이 나타난다.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수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엔 독수리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모습의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선명하게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서호(西湖)와 함께 파란색 논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팔달산 정상에는 사방을 내려다보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2층 구조의 서장대와 누각 없이 벽돌로 쌓아올린 팔각형 모양의 높이 3m 서노대가 발길을 이끈다. 댕. 댕. 댕. 관광객들은 ‘효원의 종’을 세 번 타종하면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팔달산 아래 동쪽 기슭, 화성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화성행궁(華城行宮).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을 참배할 때 머물던 곳이다. 총 576칸으로 이뤄져 그 어떤 행궁보다 대규모로 건설되었는데 이는 정조가 1804년 양위 이후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노후를 보낼 시설로 지었기 때문이다. 주거와 행사를 위한 각종 건물과 휴식을 위한 부대시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웅장하면서도 정성스럽게 건설되었으며 ‘華城行宮’이라는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이다. 화성행궁의 정전(正殿) 건물인 봉수당에서는 1795년(정조 19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가 거행되었는데 봉수당에 이르려면 정문인 신풍루을 거쳐 좌익문과 중양문 등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의도적으로 파괴된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96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돼 지난해 1단계로 전체 576칸 중 482칸이 복원되었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2010년까지 완전 복원할 예정이다. 효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궁중 유물의 전시와 행궁에서 행해진 각종 의례를 재현해 조선시대의 궁중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24반 무예’ 등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전통공연 한마당을 제공할 계획이다. 2003-07-14
- <신문로 칼럼>이제 미래 노사관계를 논하자(이원덕 2003.07.10) 이제 미래 노사관계를 논하자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87년 민주화 이후 16년의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 노사관계는 크게 변했다. 그러나, 개발연대의 노사관계 모형을 대체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이 때문에 때로는 법과 원칙이 흔들리고, 예측가능성이 낮아 노사관계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지난 8년간 만불소득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노사관계의 불안이라고도 한다. 노사대립과 투쟁 때문에 외국인은 투자를 꺼리고 우리 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 평가기관인 IMD는 금년에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인구 2천만명 이상 30개국 가운데 꼴찌인 30위라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노사관계에서 개발연대 모델을 대체하는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여 정착시키는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미래노사관계 모델은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식은 사회적 합의주의가 발달되어 있으며 노사정 대화와 근로자의 경영참가가 보편화되어 있다. 또한 경제위기시에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이다. 70년대까지 노사갈등-저성장-고실업으로 이른바 ‘네덜란드병’을 앓고 있던 나라가 고용창출·노동시장 유연성제고·임금인상자제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대타협에 성공함으로써 ‘90년대에 노사안정-고성장-저실업을 실현한 것이다. 유럽, 영미식 아닌 새 노사관계 모델 필요 영미식은 유럽식과 달리 시장원리에 기초한 신자유주의를 중시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노동권과 경영권이 분리 되어왔다. 노사갈등해결방식에서도 노사정 대타협보다는 법과 원칙이 지배해왔다. 유럽식과 영미식 가운데 어느 하나의 모델이 우리나라의 미래노사관계 모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미래노사관계는 우리의 현실과 역사성 위에서 모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식과 영미식의 이분법적 구분도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다. 유럽식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분권적 노사관계 시스템 등 영미식 요소를 도입하는 반면, 영미식은 작업장 수준에서의 근로자 참여(Employee Involvement) 등 유럽식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80년대 이후 국제노사관계 모델의 수렴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노사관계는 현실적합성과 역사적 전통을 고려하고 유럽식과 영미식의 장점을 취함으로써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한국적 노사관계 모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 노사관계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적 노사관계 관리시스템의 확립이 필요하다. 민주화 이후 지난 16년간 과도기적 노사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노사갈등 예측 및 예방조정기능이 무너진 데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작은 갈등의 씨앗이 증폭되어 큰 분규로 비화된 다음에 사후대처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개발연대에는 안기부와 경찰 등이 공권력을 통한 노사분규 예방과 탄압 등 통제적 노사관계 관리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통제적 노사관계 관리 기제는 무너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역할을 대체하는 민주적 노사갈등해결시스템은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위원회 등 공적조정기구의 예방조정기능을 강화하고, 민간전문가에 의한 사적조정서비스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를 담당할 수 있는 노사관계 전문인력을 양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적 관리시스템 확립, 전문인력 양성해야 노동관계법도 개선해나가야 한다. 개발연대에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대신 보상조치로 개별근로조건은 법적 강제에 의해 과보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노동기본권을 국제노동기준과 부합하는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개별근로조건을 현실에 맞게 규정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노동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통해 ‘실업 없는 직장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직업안정서비스를 선진화하고, 불가피한 실업기간 중의 생계보호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화시대의 선진적 노사모델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의 노력과 양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타협」이 필요하다. 이것은 근로자에게는 괜찮은 일자리를, 그리고 기업에게는 경쟁력 강화를 가져다주고 국민경제적으로는 대망의 소득2만불시대를 열기 위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국가과제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네덜란드 모델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은 바로 노·사·정의 타협과 절제의 미덕은 아닐런지. 2003-07-07
-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우리들의 생활은 어려워져 있고 아직도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과 우리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전망이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 GMS라는 교육을 받았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3일간 받는 교육으로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하는 사람을 제일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일해야 회사에 발전적인 제안을 할 수 있고, 팀워크가 좋아지고 회사가 경쟁력이 생겨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도 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고 나 스스로도 경영층이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한 식구로 생각해 준 적이 있는지 지난 세월을 더듬어 봐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몇 달 전 노사 협의체로 구성된 안전 보건위원회에서 새로이 개선된 안전화가 결정되어 현장에 지급되었다. 그러나 막상 신고 보니 예전의 안전화보다 사이즈가 작아 신발이 꽉 끼고 통풍이 안돼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당장 현장관리자와 대의원들을 통해 바꿔 달라는 요구들이 많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 6개월이 교환주기이지만 앞당겨 새 것을 지급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몇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많은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불편을 끼친 데 대한 사과 한마디 없었고 책임지고 어떻게 개선해 주겠다는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론은 있는데 실천이 없다. 이런 일들이 경쟁력을 갖춰 새로운 희망찬 회사로 거듭나는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고 본다. 2003-07-07
- 유통단신 뉴딤플, 새로운 변신(사진있음) 디아지오 코리아(대표이사 루츠 드숌프)가 판매하는 위스키 딤플이 7월 1일부로 새롭게 변신했다. 100년 이상의 세월동안 위스키 업계에서 독특한 패키지로 인정받아 온 딤플이 글로벌 위스키 브랜드 중 최초로 투명 라벨을 사용해 젊고, 현대적이고, 독특한 모습과 함께 업그레이드된 맛으로 거듭 태어난 것. 새로워진 뉴딤플은 투명 라벨을 사용하여 삼각형의 병에서 비쳐지는 호박색의 위스키 색상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고, 새롭게 추가된 황금색 캡과 정면 어깨라벨은 패키지에 한층 고급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하이트맥주, 농촌지역 지원 하이트맥주(대표 윤종웅)는 충북 괴산군 기성마을 등 전국 농촌 10곳에 숙원사업 추진금조로 한 곳당 5000만원씩 모두 5억원을 전달했다고 30일 밝혔다. 하이트맥주는 올해 ‘하이트’ 출시 10주년과 창사 70주년을 맞아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는 농촌을 돕기 위해 숙원사업 추진을 돕는 ‘하이트 고향의 꿈 대잔치’ 캠페인을 벌여왔으며, 농촌 185곳이 마을 사업 추진금을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서류 및 현장방문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농촌 숙원 사업은 녹색체험마을 조성, 마을회관 신축, 마을 연결 구름다리 신축, 돌담길 조성, 학생공부방 및 민속자료실 운영, 홈페이지 전산장비 구축 등이다. 하이트맥주가 이들 마을에 지원한 5억원은 하이트맥주와 프라임맥주의 판매대금 일부를 적립한 것이다. 경방, 영등포공장 폐쇄 경방은 오는 9월30일 영등포 공장의 조업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30일 공시를 통해 밝혔다. 경방 관계자는 “설비노후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이같이 결정했다”며 “설비 일부를 용인 및 광주 공장으로 이전하고 영등포 공장 부지에는 쇼핑 및 업무기능을 겸비한 대규모 복합단지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영등포 공장은 전체 생산액의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장 폐쇄로 매출은 다소 감소하겠지만 영등포 공장 비용이 감소하고 용인공장 제품의 고도화를 추진해 수익성은 개선될 것이라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현대홈쇼핑, Hmall과 통합 현대홈쇼핑은 다음달 1일 인터넷 쇼핑몰 Hmall(www.Hmall.com)과 통합한다고 30일 밝혔다. 현대홈쇼핑은 통합을 통해 회원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판촉 활동 등을 벌임으로써 상품 다양화 및 마케팅 활동 극대화, 기업 이미지 제고 등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홈쇼핑 방송을 시작한 지 1년6개월만에 자체 인터넷 사업 부문을 갖게 되며, 이를 계기로 선발 업체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다는 전략이다. Hmall도 홈쇼핑 상품과 백화점 상품의 판매 비중을 늘려 홈쇼핑 계열의 인터넷쇼핑몰과 차별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롯데마트, 최저가격 10배 보상제 롯데마트는 다음달 1일부터 매장에서 판매되는 전 상품에 대해 반경 5km 이내 타 할인점 가격보다 비싼 경우 차액의 10배를 현금으로 보상해 주는 ‘최저가격 10배보상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다만 곡물, 야채, 과일, 생선, 냉장육 등의 신선식품과 가전제품, 타 할인점 전단 상품 중 일별 한정판매 상품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2003-06-30
- [현장탐방] 24년의 기다림, 한택식물원 오늘 개원 우리나라 최대의 식물원인 한택식물원(원장 이택주)이 지난달 프리오픈 기간을 거쳐 5월 2일 개원식을 갖는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 30여만평 규모의 임야에 자리한 한택식물원은 1979년 이택주 원장이 첫삽을 뜬 이래 이날 개원식까지 오랜 세월을 준비해왔다. 24년의 기다림 끝에 성장(盛粧)한 처녀의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 것이다. 희귀·멸종위기식물, 자생식물 및 외래종을 포함, 약 6000여 종의 식물을 식재·관리하고 있는 한택식물원은 그 내용면에서 동양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다. 2002년 국가가 지정하는 식물원으로 2001년 사회 환원의 의미를 갖는 (재)한택식물원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2002년에는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식물 현지 외 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의거, 국가가 지정하는 수목원이 되었다. 비봉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한택식물원은 양지와 음지, 계곡과 습지 등 다양한 종의 자생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초본식물 1800여종과 목본식물 700종을 포함, 자생식물 2500종과 3500종의 외래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99년 특허를 획득한 ‘한택조개나물’ 등 50여종의 신품종과 100여종의 변이종이 선발중이다. 한택식물원은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크게 ‘동원’과 ‘서원’으로 나뉜다. 이 원장은 1979년 서원 지역에서부터 야생화를 심기 시작했다. 서원은 이번에 공개된 동원의 모태인 셈인데, 식물종 보호 및 번식장소로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있다. ‘보름에 한번은’ 방문해야 많은 이들이 ‘한택’ 하면 가장 먼저 자생식물을 떠올린다. 한택식물원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자생식물원’은 계곡을 옆으로 낀 자연림 속에 조성되었다. 1만 5000평의 부지에 1000여종의 우리나라 자생식물들이 각각의 생태 환경에 맞게 심어져 있다. 철마다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자생식물들을 제대로 보려면 ‘보름에 한번쯤은’ 와야 할 정도. 요즘 자생식물원에는 ‘광릉요강꽃’ ‘노랑무늬붓꽃’ ‘큰연령초’ ‘둥근잎꿩의비름’ ‘솜다리’ 등 다양한 법정보호식물들이 개화한 상태다. 구비구비 피어난 ‘홀아비꽃대’ ‘앵초’ ‘금낭화’를 보며 해발 240m 쯤이 되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제일 앞쪽에 있는 월가든을 비롯, 암석원, 숙근초원과 유리온실 등 식물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멸종위기종 자생지복원사업 이택주 원장은 우리 토종 야생화가 사람들 발에 밟히는 잡초로 여겨지던 때부터 우리 식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종자 하나, 돌 틈에 붙어 있는 풀 한포기까지 소중하게 수집해서 자체 번식시킨 자생식물만 2500여종. 그 중 일부는 자생지에서 이미 멸종위기 상태에 놓인 것들도 있다. “일반인들이 산에서 캐 온 ‘개불알꽃’을 심어서 죽이는 데 딱 2년 걸린다”는 이 원장은 지금까지 축적된 종 확보와 대량번식 등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생지 복원에 힘쓰고 있다. 설악산 ‘솜다리’(에델바이스)와 주왕산 ‘둥근잎꿩의비름’ 자생지 복원에 이어 몇해 전에는 울릉도 일대의 자생지에 ‘고추냉이’(와사비)를 복원하기도 했다. 200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