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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로 칼럼>열심히 일한 ‘젊은 노인’ 떠나라?(김영호 2003.01.30) 열심히 일한 ‘젊은 노인’ 떠나라? 김영호 시사평론가 IMF 사태는 연쇄도산-집단해고라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무수한 일자리를 파괴했다. 금리폭등-환율앙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마침 도입된 정리해고제를 무기로 삼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저마다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해고기준을 고과점수로 삼으니 항의와 저항이 드셌다. 자연히 연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 문맹이라는 핑계도 있다. 해고대상을 나이 순서로 잡다보니 해고의 돌풍이 불 때마다 40대, 50대가 그 과녁이 되고 말았다. 새 천년의 개막을 알리는 요란한 팡파르는 이 나라 성장의 주역에게는 비운의 서막을 알리는 소리였다. 벤처라는 낯선 영어와 함께 무슨무슨 닷컴이 쏟아지는가 했더니 온통 벼락부자의 이야기가 넘쳐 났다. 언론에도 20, 30대의 주인공이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으로 가득 찼다. 벤처기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고 코스닥은 돈 공장인 양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골드러시는 IT개념이 부족한 40대, 50대를 철저하게 따돌렸다. 이제 웬만한 직장에서 50대는 멸종위기에 처한 신세다. 더러 살아남은 희귀종이 있다면 자리를 보존하려고 보호색으로 위장해 나이를 감춘다. 흰머리카락이 보일라 염색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보톡스로 주름살을 펴고 검버섯을 없애려고 박피수술도 한단다. 야생의 세계에서 약자가 살아남자면 주위환경에 맞춰 변색해야 한다. 그 생존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20, 30대 ‘돌풍’에 50, 60대 ‘몰락’ 위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국사회 기저에 흐르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표출됐다. 기성체제에 대한 변화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응집력이 노무현을 연호했던 것이다. 그것을 2030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구심점에는 쌍방향 교신시대를 연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 변화의 바람이 낡은 정치를 날려 버리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그 바람이 잘못 불어 세대간의 간극(間隙)을 더 벌리는 역풍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여망 또한 크다. 재벌의 성장배경에는 정경유착이 도사리고 있다. 크게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작게는 경제관료와 밀착해서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재계는 경기변동-시장변화보다는 권력이동에 따라 더 민감하게 작동한다. 정계-관계-금융계에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면 그들과 인맥을 맺으려고 부산하다. 2월 주주총회에서 신흥세력의 학연-지연-혈연에 맞춰 경영진을 개편하는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연고기반이 없다. 하지만 재계는 권력집단의 인적구성에 맞춰 변신하는 습성을 가졌다. 그것이 재계의 성장사이다. 새 정부의 인력구조가 젊어진다면 재계도 그 만큼 연소해질 것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재계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일고 있다. 재계의 고포(古鋪)인 두산, LG에 이어 삼성, 현대에도 3세가 사령탑에 앉기 시작했다. 재벌3세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일군 사람들이부담스럽다. 경륜보다는 혈기를 중용하여 호흡을 맞추려고 한다. 그것이 벌써 새해 인사에서 나타나 주요재벌의 사장단이 젊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흰머리’는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사회구조는 고령화하는데 고용구조는 연소화하고 있다. 의술의 발달로 팔순은 넘겨야 천수를 누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쉰 고개도 못 넘기고 일터에서 밀려나니 30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 남자라면 대학 나오고 군대 다녀오면 서른을 눈앞에 둔다. 그런데 20년을 벌어서 더 긴 세월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자녀진학, 자녀결혼으로 일생에서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시기를 말이다. 저금리로 퇴직금에서 나오는 이자는 용돈거리다. 국가경제 발전의 견인차였던 세대가 사회에서 거세되어 하루아침에 무능력자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세대차별 심각, ‘젊은 노인 살리기’ 시급 지난 5년간의 변화는 지난 100년간의 그것을 능가한다. 첨단기술의 발달속도는 광속을 닮았는지 동시대인이 따라가기에도 숨차다. 안방을 뛰쳐나온 전화의 이동성은 인간두뇌와 연결되는 신경체계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음성통화-문자교신-영상수신에 이어 결제기능도 맡는다. 인터넷은 ‘종이 없는 세상’으로 지구촌을 더 가깝게 만들며 인간의 감정마저 전이(轉移)한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에 밀려 아날로그 세대가 고아로 낙오하는 형국이다. 이제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약점은 나이다. 지방차별, 학벌차별, 여성차별, 용모차별이 심한데 연령차별 또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젊은 노인’의 부양은 자라나는 세대의 몫이다. 취약한 재정기반을 본다면 그 부담은 너무 과중하다. 하지만 세대교체라는 합주곡의 소리는 점점 요란해지고 있다. 새로 출범할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도 인식해야 한다. 김영호 시사평론가 2003-01-15
- 노총위원장, 조흥은행 매각 반대 삭발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22일 오후 조흥은행 본점에서 개최된 ‘금융산업노조 총파업전진대회’에 참석해 정부의 조흥은행 강제매각에 항의하며 삭발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투쟁사에서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의 전락 등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며 “정부가 모든 책임을 금융노동자에게 뒤집어 씌우고 강제합병과 대량해고를 자행한 결과 시중은행 대부분이 외국자본에 잠식됐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 특히 “정부가 합의사항을 파기하면서 출신은행인 조흥은행의 강제매각을 시도하는데도 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다른 조직에 가해지는 탄압과 구조조정을 어떻게 저지시키겠느냐”며 “이번 싸움에서 질 경우 노총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002-11-24
- <클릭! 이사람> 영원한 일꾼 오순부씨 예순 셋의 노인이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45일을 혼자 대우종합기계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22년 전 처음 해고된 이후 해고와 복직을 거듭하던 인생의 마지막 복직투쟁을 승리로 마쳤다. “80년 대우중공업 해고조치의 부당함이 가슴에 한처럼 남아있었어. 금년 8월초에 그 당시 대우중공업 해고 조치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자 복직을 결심했지.” 겨울공화국 원년인 80년도, 오순부씨는 대우중공업의 대의원으로서 노동조합 민주화투쟁과정에서 처음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강제합의각서에 따라 대우중공업의 위장계열사인 우일정밀에 입사했다. 하지만 열악한 근로조건에 맞서는 싸움으로 86년, 두 번째 해고조치를 맞았다. 3년간의 지리한 싸움 끝에 89년 복직을 얻어냈지만 92년 대선 때 ‘일하는 사람들의 대선참여운동본부’사건으로 다시 해고됐다. 이에 소송을 낸 그는 결국 해고가 아닌 명예퇴직을 하게 됐다. 오씨는 96년부터 지금까지 벽산아파트 경비로 6년을 근무했다. 이미 대우중공업 정년도 지난 나이다. 그럼에도 노동자 오순부는 젊은 시절의 해고의 아픔과 설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정부로부터 그 당시 해고는 잘못됐다는 ‘민주화투쟁인증서’를 받았다. 지난 10월 1일부터 대우종합기계(전 대우중공업) 앞에서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몇 년을 각오한 복직투쟁이었지만 ‘명예복직 후 곧바로 퇴직’안에 회사측이 합의하자 천막을 걷었다. “지금까지 노동자라는 자존심이 나를 지켜줬는데 이번 복직투쟁시 회사측이 뿌린 흑색유인물로 내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 회사측은 80년도 해고당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합의를 하고 대우중공업이 우씨의 생계를 돕기 위해 우이정밀에 취직을 시켜줬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또 우이정밀에서 1년 앞당겨 명퇴를 했는데 명예퇴직금을 받았다는 내용도 유인물에는 담겨있었다. “우이정밀에서 명퇴금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가슴이 상당히 아팠지. 하지만 난 명예은퇴식 하는 자리에서 말했듯이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이라고 생각해.” 이 변화된 세상에서 노사는 가슴을 열고 하나가 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해야 공멸을 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일 오전 11시 30분 대우종합기계 2층 강당에서는 한 직원의 명예퇴직 행사가 열렸다. 25살 젊은 나이로 대우중공업에 입사한 후 마흔까지 잔뼈가 굵은 세월이 공장바깥의 22년 세월과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 인천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2002-11-21
- 제목 :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었다" 40년전 ''이리시 남녀중고학생 미술연구회''가 ''아트회''로 다시 뭉쳐 전시회를 연다. 오는 12월 28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 2층에서 열리는 이번 아트전은 모두 48명의 회원들이 작품을 출품했다. 김금자 김계신 김문철 김상태 김선양 김수일 김수자 김영규 김영옥 김영춘 김용집 김중현 김형진 류일선 박운섭 박윤종 박진규 박춘희 방순덕 배영근 서용석 서희석 소 철 소 훈 송만규 양병호 이대남 이동근 이동철 이범수 이승훈 이영례 이종만 이진세 이중희 이형구 이형호 이희태 임흥순 유희택 정병윤 정철배 최 웅 채양원 하철경 황임규 황창훈 황순택 등이다. 이들 외에 김현철(작고) 방의걸 소병호(작고) 전병하 하 실 등 은사들의 초대전도 마련된다. 또래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11월 아트전이 열리자 한 회원은 이같이 말했다. 이 회원의 말마따나 아트전은 지난 4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1961년 당시 이리시에서 그림깨나 그린다는 학생들의 집합체였던 ''이리시 남녀중고학생 미술연구회'' 회원들은 당시 또래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익산역 근처 공보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이 전시회를 열라치면 제법 많은 수의 관객들이 몰려들어 어린 학생들의 기를 돋궈주곤 했다. 단골스케치 장소였던 익산대학(당시 이리농고) 뒤편 이른바 ''농고방죽''은 이들에게 ''방죽미술학교''로 불렸다. 아름답고 넉넉한 조림으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 방죽미술학교는 화판과 미술도구를 챙겨가지고 알아서 전공수업을 하던 ''근대적인 학습훈련코스의 실습장''이라 할 만했다. 한국화가 박종기는 농고방죽을 두고 "나와 우리들의 미술활동의 고향이며, 다정한 사람들의 따스한 미소와 마음이 묻어나는 마음의 미술관이 되어 있다"고 회상했다. 이같은 ''미술연구회'' 회원들의 열성을 두고 지금은 작고한 박항식 시인(詩人)은 "익산의 문화는 학생들이 이끌어간다"고 말했다. 아트 1회인 박진규는 "동서남북 / 신동들이 모여 / 풍경속에 스며들 듯 / 그리움 찾아서 노크할 때면 / 자연에서 자연으로 그림그리던 시절 / 향학열 불붙듯 타오르고 / 청춘의 품은 뜻 화폭에 담았으니 / 그것이 문학이요! 예술이요! 문화의 꽃이었다"고 노래했다. 이들의 불타는 향학열은 그후 1982년까지 22년동안 지속됐다. 익산 미술문화의 뿌리찾기 그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미술연구회 멤버들이 다시 모인 것은 95년. 몇차례 발기모임을 가진뒤 8월5일 정식으로 아트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솜리예술회관 개관 기념 익산미협 초대전에 32명의 회원이 작품을 출품하면서 이들의 존재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매년 분기모임을 갖고 회원 파악을 해 온 덕에 이제 회원수 107명의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김용집 회장은 "아트전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익산의 미술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하나가 되었던 우리의 모습은 이제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변화된 모습의 그 바탕에는 ''아트''가 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내리 3년째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박운섭(익산시 동산동)은 "아트전은 40∼50대의 세대에게는 옛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익산 미술문화의 뿌리를 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일람(一覽)을 권했다. 소문관 기자 mkso@naeil.com 2002-12-23
- 인권 영화제 상영작 소개 ▶ 먼지, 사북을 묻다 Dust dig or ask Sabuk(한국/이미영/2002년/80분/다큐멘터리) 광주항쟁 한달 전,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정선의 외딴 탄광촌, 사북의 광부들은 어용노조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거,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싸움을 전개했다. 곡괭이와 몽둥이로 무장한 광부들은 무기고와 화약고를 장악하고 3일동안 사북읍을 점거했다. 그 몇 일 낮과 밤이 사북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후 20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의 세월을 찾아간다 노조지부장 아내 린치, 술취한 광부들의 난동, 사북사태로 알려진 이 사건 뒤에는 무차별적인 연행과 고문, 20년간 남모르는 이들의 고통이 있었다. 이 영화는 사북사건을 경험한 사람과 우리를 야만의 시대로 데려간 사람 이 시대의 세례를 받은 우리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쓰여지지 않은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굴절되고 묻혀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북사건 관련자들이 제작팀에게 인터뷰에 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20여년간 그들의 기억에 깊숙이 숨어들은 치욕을 털어내고 외롭고 긴 침묵으로부터 이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란다. ▶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Rip it Up) (한국/이마리오/2001년/50분/Color/다큐멘터리) 작품은 68년부터 실시된 주민증은 사실 국민을 분류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파시즘적 제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지문날인은 그 통제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굴욕적인 지문채취를 마친 다음 비로소 ''국민''으로 권리와 의무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작품의 설명. 연출자 이마리오 씨는 2000년 5월부터 지문날인에 반대에 동참했던 인물. 작품의 동선은 행정소송까지 이어지는 이 씨의 투쟁과정을 따라가면서 주민증 반대자들의 논리와 정부의 주장을 교차시켜 놓고 있다. ▶ 장애도 멸시도 없는 세상에서(한국/전경진/2002년/23분/다큐멘터리) 이 작품은 고 최옥란씨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그녀의 처절한 인권 회복 운동과 생존에 대한 투쟁 그리고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되면서 그녀가 받은 돈은 26만원! 병원비와 주택비, 식사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매월 32만 5천원의 누적되는 적자에 절망감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세월들. 노점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수당으로는 하루 하루를 버티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녀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는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다만, 삶에 대한 절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친구(나는 행복하다 2)(한국/류미례/2001년/60분/다큐멘터리) 장애인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하면 흔히 그들에 관한 편견이나 소외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비장애인이 보는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친구는 이런 시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카메라는 가능한 장애인 스스로의 입장에 맞추어져 있다.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익숙해진 관계와 친근한 카메라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들의 생활에 따뜻하게 동화되게 만든다. 작품은 장애인 재활센터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일어난 문제를 스스로의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 호주제 폐지, 평등가족으로 가는 길(한국/오정훈/2001년/28분/다큐멘터리) 이 작품은 호주제의 문제점을 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므로 실제 피해 당사자들의 상황을 소개하고 법률적 문제점을 하나씩 점검하는 형태로 구성되어진다. 우선 호주제라는 것에 대한 개념 설명으로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호주가 결정되는 상황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호적에 대한 문제제기와 기본적 이해도를 가지게 한다. 호주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겪게되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호주제 폐지를 부르짖는 이들의 활동과 더불어 새로운 아니 평등한 가족의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여기에 사회각계의 유명인사들이 호주제 폐지 이후의 사회에 대한 전망을 통해, 호주제가 없어지는 것이 보다 활기차고 밝은 사회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 두꺼비 강의 눈물(한국/송원근, 소혜진, 신송희, 김세은/2002년/40분/다큐멘터리) 수자원공사는 2011년 물부족이라는 이유로 섬진강에 적성댐 계획을 발표한다. 이미 섬진강에는 1965년에 섬진강 댐이 건설돼 있는 상황이지만, 수자원공사는 전남광주 지방에 물부족 해결을 위함이라고 말한다. 지역주민들의 반발과 근거의 미비함으로 댐 건설은 유보된 상태이고, 수자원공사와 건설교통부는 댐건설부지의 재조사를 실시해 올해말에 다시 발표하겠다고는 계획을 발표했다. 40분이라는 런닝탐임을 가지고 있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구성과 글에도 정성을 다했다. ▶ 9.11(미국/2001년/28분/다큐멘터리) 9.11 테러로 인해 발생된 각종 휴유증과 잠재적인 폭력의 불안을 겪게된 뉴욕시. 9.11은 뉴욕시 전체에서 울려퍼지는 애도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9.11은 세계 무역 센터 테러의 원인이 된 미국의 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한편 아랍계 미국인들에 반하는 언론매체의 태도와 인종적 반발, 이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측의 반응에 대해서도 살피고 있다. ▶ 콜롬비아 치욕의 전쟁Colombia, the Dirty War(네덜란드/롭 브로워/1998년/27분/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는 그야말로 콜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열한 전쟁에 관한 것이다. 인권활동가인 Mario Calixto 와 그의 아내 Mireya의 경우는 콜롬비아의 그러한 상황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들 부부는 콜롬비아의 Sabana de Torres는 마을에서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그 지역의 인권위원회에서도 활동했었다. 그 이유로 그들은 지속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 번은 두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그들의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다행이 국제 평화군이 납치 당하거나 살해당할 뻔한 그들을 구해주었다. Mario와 그의 가족들은 지금 콜롬비아의 다른 지역에 숨어살고 있는 상황이다. Mario와 그의 아내는 더 이상 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인권을 향한 투쟁은 계속할 것이다. 2002-12-18
- <신문로 칼럼>한국 보수주의의 업그레이드?(임재경 2002.12.11) 한국 보수주의의 업그레이드? 임재경 언론인 이번 16대 대통령선거에는 흔히 말하는 30년만의 양자 대결이라는 점 이외에 몇 가지 눈 여겨 볼 특징들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이제까지 여론 형성을 주도한다던 인쇄미디어의 위력이 현저하게 쇠퇴한 반면 디지털미디어가 압도하는 징후가 역력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 때마다 ‘북풍’에 의존하던 보수진영 내부에 심상치 않은 균열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무언가 확실히 변하고 있는 것만은 많은 국민이 느끼는 대로다. 인쇄 미디어와 ‘북풍’의 위력 쇠퇴는 소수의 음모자들이 꾸민 결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대의 추이이며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낡은 세대가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따르는 부수 현상이다. (12월10일자)에 따르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홈페이지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33만명,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경우는 10만~15만에 달하며 자료 검색 분량은 전자가 1000만 쪽 분량, 후자가 280만 쪽 분량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는 다 짐작하는 대로 20대 30대가 주류를 이루며 일부 고학력 혹은 전문직에서는 40대에도 네티즌이 적잖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들은 모두 6.25전쟁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총 유권자자수의 과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북풍’으로 상징되는 옛날 방식의 공포분위기 조성용 선거 캠페인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9월 한국 갤럽이 조사한 바로는 한국 성인의 반 이상이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하였고, 다른 쪽으로는 2000년 11월 조사의 응답자 42%만이 남한의 현 수준 미군 주둔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선 여론주도, ‘보수 신문’이 인터넷에 맥 못춰 반세기 이전의 6.25 전쟁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보수진영은 올 3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국민경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과격분자”라는 흑색선전을 벌렸다. 100만부 이상을 인쇄하는 몇몇 일간지들의 균형을 잃은 장단에도 불구하고 그 약발은 이내 사그라졌다. 지나간 좋은 세월을 잊지 못하여 대두하는 세대와 화해할 줄 모르는 현상을 가리켜 독일의 심리학자 알렉산더 미체리히(Alexander Mitscherlich)는 ‘장송불능증’(葬送不能症, die Unfaehigkeit zu trauern)이라 정의하며 이것이 새로운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현재를 현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를 꽃피운 서독에서도 빌리 브란트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재산과 교양을 뽐내던 계층이 정치의 주도권을 여전히 장악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한 미군의 궤도차량에 깔려 목숨을 잃은 두 여자 중학생을 애도하는 촛불시위가 월드컵 대회의 붉은악마 응원단을 방불케 하는 시민 동원력을 발휘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지만 라는 ID의 젊은이가 인터넷을 통해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미국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리자고 호소하자 수만의 시민들이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광화문에 운집하였던 것이다. 보수진영 일각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미군철수론자로 몰며 SOFA개정안에 서명하고 사망한 여중생 부모를 찾아간 이회창 후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가운데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자처하는 어느 인쇄매체의 간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사과와 한미 행정협정 재개정을 요구함으로써 반미운동에 편승하고 있다”는 극언을 퍼붓는가 하면 심지어 “노무현 인기는 이회창 후보가 길을 터준 셈”이라는 역설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라는 ID의 한 시민은 격렬한 어투의 반론을 제기했는데 그 줄거리는 이랬다. “민주화 ·독립운동가들이 진짜 보수 우익” “ ... 보수, 우파는 그 사회의 핵심세력이야.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앞장서서 이행하며 그 사회를 주도하지. 우파와 좌파의 대결이라고? 나는 그렇게 안 봐. 이번 대결은 친일 잔당과 미제 추종 세력과의 한판이야 ... 당신들이 헛소리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거야 ... 외국에서 뭐라고 했다고 해도 금방 인터넷타고 게시판에 떠 ...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신교육 듣는 것하고 당신들 논리하고 똑같아. 당신들, 그거 누가 듣는 거 봤어? 당신도 듣기 싫잖아 ...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던(독립운동하던) 그들이 진짜 보수고 우익이야. 다신, 보수니 우익이니 이런 소리 하지마. 신성한 보수를 욕 먹이는 짓이야 ... 당신들 20세기 호강했잖아. 이제는 21세기야. 그만 물려줘. 역사의 순리야.” 내가 듣거나 읽은 것 가운데서 보수주의를 민족적 긍지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아주 드믄 논리였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회창 후보의 여중생 애도 행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보수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모습이다. 한번 업그레이드된 컴퓨터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을 나는 큰 위안으로 삼으며. 임재경 언론인 2002-12-11
- 원주인권영화제 10일 개막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10일부터 12일까지 상지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인권사회를 꿈꾸며''의 주제로 제7회 원주인권영화제를 열어 해외영화 2편, 국내영화 6편 등 총 8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개막작은 부산영화제 개막 초대작으로 2002 인권영화상을 수상한 이미영 감독의 이며 개막행사로 정지영 감독의 ''인권대통령을 꿈꾸며'' 초청강연회가 열린다. 는 상영시간 80분의 다큐멘터리로 광주항쟁 한 달 전인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정선 사북탄광촌을 배경으로 어용노조에 맞서 항거하는 노동자의 싸움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북사태 이후 20년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의 세월을 찾아간다. 이밖에 , , , , , , 등이 상영된다. 한편, 원주시민센터는 14일 간원도 청소년자원봉사센터에서 청소년인권토론회도 개최한다. 2002-12-09
- <반미물결에 초라한 대선후보들> 민심 뒷북치는 ‘눈치보기’ 노무현 노무현 후보는 “갈등이 있는 현장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현장리더십’을 자신의 새로운 모습으로 선전해왔다. 그러나 광화문 횃불시위 등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반미운동이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나, 주변부만 찾을 뿐 현장의 복판을 찾지는 않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가 민심의 깊이와 속도를 알아채고 대응하는데 뒷북치기를 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후보는 소파개정 운동에 대해 7일 “너무 나서면 억울한 여중생의 죽음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아무 말도 안했다. 또 미국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미국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표를 의식해 아무 말도 못하는 것으로 보일까 부담돼서 마음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요컨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소파개정운동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자기고백이다.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대통령만큼 무게가 있어야 한다”며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데 대해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액면대로 보면 노 후보가 집권했을 때도 외교문제로 분노한 민심의 현장에서는 그를 만나기는 어려워 보일 것 같다. ◇ 외교 갈등 번지는데 수습책 못 내놔 =소파개정운동에 적극적인 네티즌은 친노무현 성향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에 가깝다. 대선후보의 서약을 촉구하는 홈페이지에 보면, 서명한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비난이 집중된 반면, 서명을 거부하고 있는 노 후보에 대해서는 “한 지역의 유세보다는 효과가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 않겠냐”는 식의 충고성 글이 더 많다. 노 후보는 자신이 노사평화를 이룰 적임자라는 근거로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꼽고 있다.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는 신뢰를 무기로 설득 가능하다는 현장리더십을 홍보해왔다. 그러나 소파개정운동의 전개상황이 미국방한단의 취소 등 한미간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해 노 후보는 효과적인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국민경선제·후보단일화 때도 번번이 뒷북 =노무현 후보는 민심의 수용에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고수하면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노 후보는 민주당이 DJ탈당 후 진로를 모색할 때 국민경선제의 도입에 현실성을 문제삼아 소극적이었으나, 국민경선제는 가장 성공적인 정치개혁으로 평가됐다.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대해서도 노무현 흔들기라며, 정책과 노선의 차이가 있는 후보끼리 합칠 수 없다는 기준을 내세워 한달 이상 허송세월했다. 9일 현재 노 후보는 ‘대통령의 무게’를 소파개정 서약을 요구하는 ‘민심의 무게’보다 무겁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서명은 외교적 자질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수는 있어도 외교적 문제를 즉각 발생시키는 문제는 아니다. 이 때문에 오는 14일 10만 국민 촛불시위를 거치면서도 그가 끝내 서명을 거부할 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민심의 요구에 이런저런 기준을 세워 거부했다가 결국 뒷북치기로 수용했던 모습이 재현되지 마란 법이 없다. 민심뒷북치기는 김대중 대통령이 옷로비사건 수사 때 실정법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6개월간 사태를 지연했다가 민심의 결정적 이반을 불러왔던 사례 때문에 대통령의 자질 중 중요한 가늠자로 꼽히고 있다. 2002-12-09
- 탐방- 춘천남성합창단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남자들은 잘도 뭉친다. 게다가 한 번 뭉치면 잘 흩어지지도 않는다. 올 9월까지 춘천남성챔버콰이어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춘천남성합창단(단장 인현상)으로 활동하고 있는 30여 명의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1987년 1월에 창단된 이래 16년 째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1986년 죽림동 천주교 쌍투스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8명이 모여 남성중창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이 오늘날 남성합창단의 씨앗이 되었다. 창단되던 당시 단원들 대부분은 이삼십대였다. 그러다 누군가 결혼을 하게 되면 가서 멋진 화음으로 축가를 불러주고 회원들 개개인의 경조사에 참여하다 보니 가족과 같은 끈끈한 정이 세월과 함께 쌓여갔다고 한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귀에 귀걸이도 하고 힙합스타일의 옷을 잘 소화해 내 총각 같이 보이던 조민석(30) 씨는 이 모임의 막내란다. 95년부터 이곳에서 활동한 그에게 이 모임을 계속해서 참여해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묻자 "친밀감이요. 제가 막내인데 다 형님 같고 아버님 같이 느껴지는 가족같은 친밀감이 우선 좋구요 음악을 계속 접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또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창단멤버이며 가장 연장자인 김기영(62) 씨는 취미로 하는 것을 통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동생들과 친형제와 같은 유대를 느끼는 것이 좋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활동할 거란다. 세월과 함께 쌓여온 가족 같은 정 회원들간의 친분이 우선 순위처럼 강조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의 실력이 취미 수준에 머무른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전국합창대회에서 95년 96년엔 금상을 수상했고 97년엔 20여 개의 단체 중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영광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이들의 무대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11월에는 제17회 전일본국민문화제 -꿈의 페스티벌 돗토리-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합창제에 초청되어 우리나라의 가곡 ''고향''과 판소리 심청전의 뱃노래,농부가를 비롯한 민요 등을 부르고 오기도 했다. 인정받은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춘천국민생활관 예식장에 모여 김성환 지휘자를 중심으로 2시간 씩 연습을 하고 있다. 회원들 나이가 점차 노령화 되는 것이 문제 춘천남성합창단의 창단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현재도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상규(42) 씨는 "이제 우리 모임에 미혼은 없어요. 100% 다 기혼인데다가 문제는 회원들의 나이가 삼사오육십대로 점차 노령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라고 말을 꺼내자 한쪽에서 누군가 그게 무슨 문제냐고 장난처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쨌든 이렇게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이들이 12월 11일 수요일 저녁 7시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캐롤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애창곡들을 연주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재학 중인 한 단원의 아들이 찬조출연을 한다. 나이를 초월한 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노래하는 이들이 엮어내는 굵고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조율해 보면 어떨까? /김희은 리포터 baramchurrum@korea.com 2002-12-09
- 인터뷰 - 강덕기 전 서울시장 직무대리 “앞으로 고유문화를 간직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공동체로써 독립생활을 하는데 한계에 봉착할 것입니다. 자칫 다른 단체와 동화되거나 존립의미 자체가 퇴색할 수도 있습니다.” 한때 서울시장 직무대리까지 하면서 서울시청의 ‘강도끼’라고 불리던 강덕기(66) 21세기 도시정책개발원장은 최근 《도시경영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냈다. 43년간 몸담던 서울시를 떠난 후에도 아직 할 일이 있다고 판단해서일까. 강 원장은 서울시에 몸담아 오면서 나름대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책을 통해 서울의 도시개발 교통 환경 문화 복지 산업 등 서울시정 전반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다. 강 원장은 무엇보다 서울시를 비롯한 도시문제 해결의 키워드로 먼저 ‘문화’를 꼽았다. 그는 서울의 건축물을 예로 들으며 형식적으로는 좋아지고 있으나 내용 면에서 우리 문화와 국민정신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아쉬워했다. 난개발 등 도시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건축물에 문화와 정신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자체들이 시민의식 수호 차원에서라도 문화정책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서울시를 떠나 있는 요즘, 수십년동안 시에서 몸담았던 사람들을 ‘전문가 네트워크’로 한데 묶어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가 21세기 도시정책개발원을 만들고 도시경영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써낸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그는 서울시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흩어져 의미없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모여 시에 도움을 주자며 서울시 퇴직공무원들을 모으고 있다. “교수 등 도시 전문가들이 학교 등에서 여러 저작물을 내고 있지만 대부분 너무 어렵거나 실무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서울시의 한계를 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려 애썼습니다.” 강 원장과 도시정책 개발원 회원들은 각종 출판물에 대한 기고 및 저술활동 등을 통해 서울시를 간접적으로나마 도울 계획이다. 또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서울시의 연구활동에 직접 참여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한편 강 원장은 취임 100일을 맞은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강 원장은 “이 시장은 지금까지 경영적 측면에서 사회를 봐 왔던 만큼 아직 행정가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 시장이 서울시라는 큰 덩어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본격적으로 잘한다 못한다라는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