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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고인돌 역사 여행 수십톤에 이르는 저 덮개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단지 몇개의 작은 굄돌이 거대한 덮개돌을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 것일까? 수천년 풍상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견뎌낸 그 균형의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놀라움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한 우리 민족의 유물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문화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전국적으로 3만개나 있다.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의 의미를 넘어 자기 영역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강성한 힘을 외부에 표시하는 상징물로, 때로는 종족이나 집단사회에서 모임이나 의식하는 신성한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이번 방학엔 아이들과 함께 큰맘먹고 청동기시대 거석문화 유산인 고인돌을 찾아 역사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어떨까? 가깝게 강화도에는 123기(강화군청 조사)의 고인돌이 몰려있다. 하점면 부근리 삼거리 신삼리, 내가면 오상리 고려산, 송해면 양오리, 양사면 교산리 등 강화도 지역이 초기 국가 형성 당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화도 고인돌은 2000년 11월 29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 공포된 바 있다. 두꺼비, 거북, 용머리 등으로 형상이 다양한 데다 돌마다 세월의 흐름을 보듬고 있어 고인돌을 보면 청동기 시대의 족장이 된 느낌이 될 것이다. 출발! 강화도 고인돌 여행 ▶먼저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은 승용차편으로 48국도를 이용 강화대교를 지나 강화시내를 직진하여 빠져나오면 강화서문 4㎞ 정도 더 직진하년 하점공단이 나오고 오른쪽에 ‘고인돌 공원’ 표지판이 보인다. 북방식 고인돌로는 남한에서 가장 큰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 보인다. 이 고인돌은 1964년 이래 사적 137호로 지정 보호되어 왔다. 길이 7.1미터, 너비 5.5미터, 무게 50여톤의 거대한 덮개돌이 지상 2.6미터의 높이로 들어 올려져 있는 모습에 조상들의 축조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고인돌 공원에는 짚으로 만든 움집과 고인돌 축제 때 쓰였을 돌과 소품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원시시대로 여행 온 기분이다. ▶하점면 신삼리 고인돌은 부근리에서 동촌을 지나서 가다보면 오른쪽 길 아래 무너진 고인돌 1기를 볼 수 있는데 고려산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고인돌 가운데 가장 해발이 낮은 곳에 있다. 무너져 있는 상태로 보아 논으로 경지정리하며 고인돌 주변을 채토한 때문이라 여겨진다. ▶신삼리 고인돌에서 동촌마을을 거텨 고려산 서북쪽으로 가면 산아래 삼거리 샘말이 나오는데 샘말에서 30~40분정도 다라 올라가면 탁자식으로 놓인 고인돌 여러 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시 신삼리에서 5㎞남쪽으로 가다보면 내가면 오상리 삼거리가 나오는데 강화시내로 가로 지르는 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약 600m 남짓 ‘고인돌식당’을 향해서 올라가다 보면 고개 오른쪽에 고인돌 하나가 납작하게 누어서 내려다보고 있다. 산에서 얼핏보면 그냥 넓적한 바위로 오인할 정도로 굄돌이 낮으며, 그 대신 굄돌에 비해 면적이 넓은 덮개돌이 올려져 있다. 이 고인돌에서는 홈을 파다 중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고인돌의 채석방법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렇게 고인돌 여행을 하다보면 고인돌 제작과정이 무척 궁금해진다. 고인돌 제작 축조과정에 대해서 유지만 전 김포문화원장의 도움말로 알 수 있었다. 먼저 큰돌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미리 판 구덩이 속에 넣는다, 그리고 이 받침돌이 흔들리지 않게 작은 돌로 옆을 가득 채워 튼튼히 다진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받침돌 2개 또는 4개를 똑같은 높이로 세우고 나서 받침돌이 파묻힐 만큼 흙으로 덮어서 작은 언덕을 만든다. 이 언덕의 경사를 따라 둥근 나무를 밑에 깔고 덮개돌을 끌어 올린다.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아마 힘센장사 300~500여명이 필요했다고 추측한다. 밀고 끌어서 올린 덮개돌이 받침돌 위에 놓인 다음 받침돌까지 파묻었던 흙을 치우면 고인돌이 완성된다. 큰 돌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데에도 과학적 기술이 필요했다. 먼저 바위결을 알아 취약한 부분의 틈새로 바짝 마른 나무로 쐐기를 꽂아 나무에 물을 부어 놓으면 나무가 불어서 쪼개지는 원리이다. 겨울에는 바위 틈새에 물을 넣어 두면 얼면서 팽창하여 갈라지게 하는 전통적이고 단순한 방법으로 쪼갤 수 있었다. 서두에 궁금했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당시의 건축 역학적인 축조기술과 채석기술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인돌 여행을 하면서 분명 이 땅에서 수 천년 전 뿌리 내린 옛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느끼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안내. 강화군청 관광개발사업소 930-3525 최선미 리포터 mongsil0406@hanmail.net 2002-07-10
- 외교를 움직이는 사람들(8) - 김경임 문화외교국장 “문화가 외교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는 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문화는 정치 혹은 경제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죠. 정치·경제가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탄력을 실어주기도 하구요.” 김경임(55) 문화외교국장의 ‘문화외교론’은 흥미진진하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보기 좋다. 과거에는 정치와 경제가 외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제는 문화가 외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정치 경제 중심의 외교 관계에 유연성을 주고, 문화 그 자체의 외교도 중요한 역할과 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목청에는 힘이 넘친다. 그는 나라마다 문화를 알리는 외교방식 내지 성격 또한 다르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공적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범위한 외교’를 문화외교의 특징으로 꼽는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우리나라를 외국에 이해시키고 문화, 예술을 전파하는 게 문화외교국이 하고 있는 일이죠” 김 국장은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인 만큼 그 대상이 무척 넓고 다양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문화외교 활동 영역에 더욱 더 한국적인 특색을 가미하는 것이 필수 요소라고 지적한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색깔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소재의 다양성과 더불어 독특한 특이성이 가장 우선시되는 요소죠” 김 국장은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한국의 문화 위상을 강조한다. “최근 들어 그 내용이 더욱 깊어지고 또한 다양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오로지 전통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췄었죠.” 그는 그동안 한국 문화외교가 전통문화에만 ‘공을 들였던’ 그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과거 이런 현상은 그만큼 독특하고 경쟁력 있는 우리만의 문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김 국장은 설명한다. 문화 경쟁력. 문화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창조된다. 문화 경쟁력은 기층 민족들의 삶속에서 의미있는 변화·적응의 단계를 거쳐야 가능하고, 이제 우리는 그 생존력을 감지할 수 있는 순간에 와있다. “이젠 전통문화 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악기 연주 등 클래식한 부분에도 상당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또한 대중문화 분야도 빠지지 않아요. 오페라 명성황후, 성악가 조수미 씨 등 한국 예술 수준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잖습니까” 김 국장은 요즘 새롭게 힘을 쏟는 분야로 ‘한국학’을 꼽는다. 한국학이란 외국의 교수, 학생, 지식인 등에게 ‘한국’을 올바로 알리고 이해시키는 학문이다. “한국학은 말 그대로 학문적인 영역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문화 예술과는 성격이 좀 다르죠” 김 국장은 미국· 유럽을 우선 대상지로 선정, 한국학을 집중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한다. 언어, 역사, 예술, 문화, 정치, 경제 등 많은 분야가 망라된 한국학은 우리나라와 외국간 물리적, 정서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중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기대하고 있다. 김 국장은 외교부의 홍일점 국장이기도 하다. 주로 문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외교관으로서의 상당한 세월을 보내왔다. 그에게도 외교관으로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그는 기억 저편에 고이 갈무리된 사건을 꺼내 오래 묵어 먼지가 쌓인 것들을 솔로 닦아내듯 조심조심 더듬었다. “80년대 중반, 미국 내 한인 불법 체류자가 상당히 많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87년 이들을 대대적으로 사면하는 법이 한시적으로 발효됐었죠.” 그는 뉴욕 영사로 있었을 당시를 기억했다. “그 법의 적용 여부는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죠. 결국 저를 포함 영사관 전체가 힘을 모은 결과 수많은 한인들이 영주권을 얻게 돼 불안정한 신분에서 벗어나게 됐죠. 그때의 기억이 제게는 개인적으로 아주 소중합니다.” 78년 입부한 김 국장은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협력’이라는 단어속에 잘 녹아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것을 많이 받아내는 것이 중요했지만 현대 외교는 한 마디로 협력입니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거나 이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윈-윈’(win-win)전략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봅니다.” 김 국장은 일방의 100% 성공은 불가능하지만 ‘서로가 승리’하는 길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것이 현대 외교의 키워드라고 말한다. 55세. 12회(78) 일본 2등서기관 (81 뉴욕영사(86) 벨기에 참사관(97) 문화홍보심의관 (2000) 2002-07-10
- ‘워싱턴 오리알 3인방’의 화려한 재기 워싱턴 ‘오리알 3인방’이 3년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당선자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당선자, 홍준표 의원이 그들이다. 이들 3인은 지난 99년 의원직 상실과 낙선 등의 불운을 겪은 뒤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비운의 세월을 보냈다. 이명박 당선자는 98년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위반 판결로 인해 출마가 좌절되는 불운을 겪고 98년 11월 워싱턴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를 했다. 손학규 당선자도 9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임창열 현 경기도지사에 패한 후 99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역시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를 했다. 홍준표 의원은 99년 3월 위반이 확정되기전 의원직을 스스로 사퇴한 후 도미해 마지막으로 워싱턴에 합류했다. 비슷한 처지와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에 체류하게된 이들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3인방은 분투를 삼키며 재기를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으로, 손 당선자는 경기도지사로, 홍 의원은 의원직 복귀를 다짐했다. 3인방은 귀국 후에도 서로 도우며 힘을 주었다. 가장 먼저 홍준표 의원이 복귀에 성공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치러진 10·25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을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명박 손학규 당선자가 만사를 제쳐놓고 자기 일처럼 가장 열심히 뛰어줬다. 지난 13일 끝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 손 두 당선자를 위해 홍 의원은 발벗고 나섰다. 홍 의원은 서울이 지역구이기 때문에 이명박 캠프의 유세본부장을 맞아 밤늦도록 서울시내 곳곳을 다니며 지원유세를 폈다. 그렇다고 손 당선자를 모른 척 한 것은 아니다. 홍 의원은 이재오 서울 본부장의 ‘유세책임자가 왜 경기도를 가느냐’는 핀잔을 들으며 경기도 부천과 시흥 등으로 지원유세를 가 손학규 당선자를 도왔다. 결국 이 손 두 후보는 당선돼 워싱턴 3인방이 모두 화려하게 재기한 것이다. 2002-06-19
- 8강 신화 이끈 히딩크 감독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라는 말로 승리를 갈구했던 거스 히딩크가 ‘축구변방’ 한국의 태극전사들과 함께 월드컵 8강 무대에 당당히 섯다. 한국 축구가 16강을 넘어 8강까지 오른 일등공신의 자리에는 이탈리아와의 결승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117분의 사투끝에 골든골을 터뜨린 안정환과 포르투갈전에서 승부를 가른 박지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55세의 네덜란드인 히딩크가 있었기에가능했다. 히딩크는 네덜란드 명문 PSV에인트호벤을 이끌고 국내리그 에서 3년(86-88년) 연속 우승했고 88년엔 팀을 유럽축구연맹챔피언스 리그 챔피언에 등극시킨 명장이다. 91년부터 93년까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의 사령탑을 지냈고 98년엔프리메라리가의 최고명문인 레알 마드리드를 맡아 도요다컵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95년엔 꿈에 그리던 네덜란드 국가대표 감독에 올라 96년 유럽선수권 8강,98년엔 프랑스월드컵 4강의 성적표를 썼다. 그러나 아마도 히딩크가 생애에서 가장 보람스러웠던 세월은 한국대표팀 감독 재직기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2월18일 한국 대표팀 감독 계약을 맺은 히딩크는 500여일만에 축구 후진국을 일약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밀어올렸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48년 비원이었던 ‘월드컵 1승’, `‘월드컵 16강’에 이어 누구도 믿지않았던 8강의 신화까지 창조했다. 히딩크는 선수로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67년 프랑스 1부 리그 리옹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네널란드, 미국 등의 프로팀을 떠돌다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02-06-19
- <신문로 칼럼>‘장대환’을 청문해야 하는 이유(김광동 2002.08.22) ‘장대환’을 청문해야 하는 이유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장대환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청문회가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른 첫 대상자였던 장상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시들해진 느낌이다. 그 이면에는 제왕적이라는 대통령도 힘을 못 쓰는 판인데 불과 6개월도 하지 못할 총리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는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총리인사 청문회에서 국회는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행할 국가 지도자를 검증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 떨어진 있는 공직자 상을 확고히 정립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국가적 재난인 수해(水害)상황에도 대통령이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민족 최대 기념일인 8·15 광복절에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따라서 ‘장대환 청문회’는 그가 각종 비리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권말의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국정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사람인지, 얼굴 마담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는 자질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특히 이번 총리는 빠른 시일내에 국정현안을 파악하고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총리직에 걸맞게 내각을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엄중한 시국이기 때문이다. 투기, 위장전입, 허위학력 등 의혹 줄이어 더불어 지금 우리사회에는 지도자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는 전환기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각 당의 대통령후보나 국회의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가지고 국민에 군림하며 자신의 치부와 특혜를 만드는 수단으로 휘두르던 구시대를 넘어서는 과정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인사청문회 제도는 민주적 선거와 함께 선진적 지도자상을 정립하고 강제할 수 있는 더 없이 중요한 시대전환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장 지명자에 대한 엄격한 검증과정은 새로운 공직자상의 전형(典型)을 만드는 작업이다. 지난 독재시절 군 수뇌부의 아들이 장기 유학 후 장인의 신문사에 들어가 2년만에 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것이 우리 국민에게는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청문회에서는 물려받은 부와 명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성취로 총리후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객관화되어야 한다. 총리는 선거에 의하지 않은 국가최고위 공직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부는 세습된다는 우리 사회의 봉건성만을 확인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만 믿고 살아가는 많은 국민을 좌절에 빠뜨릴 것이다. 우리는 장 총리지명자가 매일경제신문을 유력 신문으로 키워왔고 우리 경제를 지식기반경제로 이끄는데 기여한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여러 의문점은 시비(是非)를 분명히 가리도록 만든다. 9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여된 은행으로부터 39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개인자격으로 융자받은 사실이나 그의 신문사가 120억원을 4%대라는 특혜성 초저금리로 사용한 것 등은 정상적인 국민이나 기업에게는 분명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 외에도 막대한 재산형성과정이나 박사학위 취득 경위 등 너무나 많은 곳에서 정상적 절차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현정부 들어 급성장한 신문사 사장이 총리에 지명된 것은 DJ정부와의 깊숙한 유착과 거래의 결과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런 의혹은 김대중 정부 출범후 장대환씨가 제2건국위원회 위원직을 맡았고 정부 주도의 신지식인 상징으로 등장했던 점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국회는 부실한 청문회가 차기 총리의 부실한 국정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언론기관의 장이었던 인사라고 해서 언론이 봐주기로 넘어가고, 유권자에게 미칠 언론의 힘을 의식해서 정치인들이 우호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국민의 걱정에 귀기울이고 그것이 기우였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정 수행능력·도덕성, 철저히 검증해야 그렇다고 청문회의 검증과정이 ‘잘할 수 있냐’는 질문에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수사적 의지만을 표현하는 답변이 반복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방법은 결국 장 지명자가 지난 세월동안 어떤 업적을 이루었으며,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거를 검증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총리직을 갖고 그가 수행할 미래를 가늠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장 지명자가 최소한 정상(正常)적 길을 걸어온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문절차를 끝낸 각 정당은 국민 앞에 떳떳이 당론을 제시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공당의 기본자세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만약 짧은 청문기간으로 명확한 당론 도출이 어렵다면 무리한 당론 강요보다는 인사문제라는 성격을 고려하여 국민대표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도 불가피한 방법일 것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2002-08-22
- 강원여성/한국여성경제인협회 강원지회 회원 후평주유소 대표 이경숙 중간: 지난해 산업자원부로부터 품질인정서 수상 ‘저 기름장사꾼입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 이경숙 사장(후평주유소 대표)은 사업가다운 컬컬한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했다. 올해로 12년째 한자리에서 그야말로 ‘기름장사’를 하고 있는 이사장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주유소를 경영, 지난해에는 산업자원부로부터 고객 서비스 만족도에서 품질인증서를 받는 등 영서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인정서를 획득한 주유소가 되었다. 그동안 ‘신용’하나로 사업을 시작, 지금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품질에 대한 신용으로 지금까지 일관, 국가에서 인정하는 당당한 서비스업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사장이 주유소를 경영하게 된 것은 91년 남편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면서부터. 당시에는 경쟁업체가 그리 많지 않아 사업이 번창하는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춘천에서는 드물게 직영이 아닌 자영업으로 ‘쌍용 S-oil’을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다. 정유사와의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이사장의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사업은 신용과 의리입니다. 많은 주유소가 직영화가 되어 우후죽순 생겨 과다경쟁이 되기도 하지만 사업초기부터 같이 시작한 현 정유사를 배신할 수 없지요.” 이사장은 지금도 영업일선에서 뛰고 있다. 오는 고객을 앉아서 맞는 것이 아닌 각 기관이나 단체의 입찰에도 참여해 당당한 사업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병원이나 학교나 회사를 방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간: 다양한 고객이벤트 행사실시에 호응 “일하는 여성이 다 비슷하겠지만 여성사업자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한 두번 쯤 마음고생이 있었을 겁니다. 더구나 주유소는 남자들의 고유영역처럼 비춰지는 고정관념 때문에 한동안 힘들기는 했지만 현재는 세월이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동종업계의 과다경쟁으로 인해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12년 동안의 단골고객과 꾸준한 이벤트 행사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이사장은 시기적절한 이벤트행사의 전문가로 계절별 사은품연구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지난 발렌타인데이때는 남성고객들에게 사탕을 준비,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 쑥스러워 아내에게 애정표현이 약했던 남자들이 예쁘게 포장된 선물로 점수를 많이 땄다고 다시 찾아오는 시너지효과를 맛보기도 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강원지회 초기멤버로 누구보다 현장에서 애쓰고 회원들의 상호교류에 힘쓴 숨은 일꾼이기도 한 이사장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강원지회가 회원사들간에 상호교류와 타의 모범이 되는 협회로 거듭나기를 누구보다 기원하고 있다. 평소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신념으로 자녀교육에도 힘써 2남1녀 모두 바르고 옳게 자라준 것이 감사하다고 한다. /춘천 원보경 리포터 pkwon1@hanmail.net 2002-08-11
- 고양 실업축구단 창단 추진 ''CU@K리그''의 꿈을 남기고 월드컵이 폐막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물론 그 열기가 많이 식긴 했지만 청소년 축구 교실이나 조기 축구회를 통해 축구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양시에 아마추어 실업 축구단 창단이 추진되고 있다. 차질 없이 축구단 창단이 성사되면 경기 북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생기는 축구단이 되는 셈이다. 경기 북부 지역은 현재 변변한 대학 축구단조차 없는 실정. 프레이즈 실업축구단(단장 여승철)은 5년의 역사를 가진 팀이다. 이 축구단을 처음 창단한 여승철(37·화정은혜서부교회 목사)씨에 따르면 불우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팀을 창단했다고 한다. "불우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많은 설득과 기도를 시도했지만, 어긋난 행동을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축구지요. 하루 7시간 이상 몸을 부대끼면 축구를 했습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의 양만큼 행동도 달라졌습니다." 선도의 목적으로 시작한 축구가 젊은이들의 인생을 바꿔놓는 발판이 됐다. 5년의 세월동안 변변한 후원자가 없었지만 이 축구단은 축구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업을 통해 팀을 유지해왔다. ''싸커 1번지''라는 축구 식당을 운영하고 초등학교 축구교실에 강습도 나가는 등 자신들의 힘으로 축구단을 꾸려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량이 성숙됐다는 자신감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인정해 주는 정식 축구단이 되고자 한다. 현재 18명의 선수들이 이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앞으로 30명 정도의 선수와 10여명의 10대 후반의 예비 선수로 팀을 꾸려나갈 계획이다. 초·중·고 시절의 경력보다는 오로지 실력만을 선수 선발의 잣대로 삼겠다는 것이 이 팀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축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는 윤성태(46·약사)씨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윤씨는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고 순전히 동호인일 뿐이지만 5년 전부터 이 팀을 이끌고 있다. 휼륭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축구 실력이 뛰어난 26세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이 축구단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축구단의 이름 ''프레이즈(PRAISE)''처럼 팬들이 찬탄할 수 있는 팀이 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물론 그 찬탄은 뛰어난 축구실력에 대한 칭찬이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확인된 축구에 대한 애정이 우리 고장에 뿌리내리고 있는 실업 축구단에 대한 관심과 격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031-967-7911) 조수진 리포터 jinjean@orgio.net 2002-08-06
- 미 유권자 표심, 민주당으로 급선회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30일 초강력 기업개혁법에 서명하며 기업부정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천명한 것으로 ‘경제지도력 부재’를 비판하며 총공세에 나선 민주당진영과 시장신뢰회복을 통한 경제표심잡기 경쟁에 돌입했다. ◇부시, 초강력 기업개혁법 서명=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1929년 대공황후 가장 획기적이고 강력하다는 기업개혁법안에 서명하며 기업부정 엄정 처벌을 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이스트 룸에서 법안마련을 주도했던 민주당의 폴 사베인스 상원재무위원장 등 여야 상하원의원 20여명과 최근 출범시킨 기업범죄척결 태스크 포스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명식을 갖고 “이제 기업범죄자들은 더이상 손쉽게 돈을 벌지 못할 것이며 대신 고통의 세월을 맞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업개혁법은 독립적인 회계감독기구를 신설, 기업과 회계회사간 유착소지를 차단하고 기업들의 장부조작, 회계부정과 관련, 우편통신을 통한 허위 재정정보로 투자자들을 속이는 기업책임자 사기일 경우 현행 징역형 보다 4배 늘린 최고 20년형에 처하고, 증권사기행위엔 새로 처벌조항을 규정, 최고 2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대통령은 민주당의 폴 사베인스 상원재무위원장이 주도한 법안으로 자신의 당초 구상보다 훨씬 강도를 높였음에도 즉각 동의하고 서둘러 서명함으로써 심각한 정치경제적 파장을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주진영, ‘부시 때리기’ 총공세=최근의 경제불안감으로 승기를 잡은 것으로 판단한 민주당진영은 그동안 자제해온 이른바 ‘부시 때리기’로 11월 중간선거는 물론 2004년 차기 대선까지 겨냥한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특히 차기대선 도전을 꿈꾸고 있는 민주당의 자천타천 대선 주자들이 조지 부시대통령의 경제와 외교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탐 대쉴 상원 원내총무와 리차드 게파트 하원총무, 조셉 리버맨 전 부통령후보, 존 케리상원의원,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 등은 29일과 30일 교대로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지도회의(DLC) 연례정책회의에서 90년대 경제호황과 주식시장 활황, 연방재정흑자, 저실업률 등이 부시 행정부에선 무책임한 세금감면 때문에 주식시장 불안, 경제위축으로 바뀌었다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리차드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이날 “우리는 부시대통령의 입을 주시하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도, 진정한 행동도 듣거나 볼 수 없다”면서 경제문제, 세금관련공약 파기로 재선에 실패했던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공격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차기 대선 도전을 꿈꾸고 있는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단지 대외정책에선 전쟁만을, 대내정책에선 무책임한 세금감면만을 외쳐왔다”며 정책과 지도력의 총체적 부재로 몰아붙였다. ◇표심 변화, 민주당 승기=최근의 기업회계부정에 따른 경제불안으로 국민여론이 바뀌어 민주당이 경제정책에서 공화당을 압도하기 시작,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전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각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다. CNN방송과 USA 투데이, 갤럽의 공동여론조사 결과 부시대통령은 대통령업무 지지율에서는 69%를 유지, 소폭하락으로 선방하고 있으나 경제정책과 기업부정스캔들 다루기 등에선 국민 여론의 신뢰를 잃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특히 어느 당이 미국 경제를 더욱 잘 다룰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민주당 42%, 공화당 37%로 응답, 5월의 공화 43% 대 민주 34%에서 크게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당장 선거를 실시할 경우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유권자들은 민주 47% 대 공화 40%로 대답해 민주당이 승기를 잡고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의 공동여론조사에서도 부시대통령은 여론지지율에서 2주전보다 3포인트 떨어져 이 조사에선 9.11 테러사태이후 처음으로 70%대 이하인 69%를 기록했으며 경제정책 지지율 57%,기업부정 다루기 만족율 53%를 기록했으나 미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여론은 17%에 불과, 부시경제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5907@naeil.com 2002-07-31
- <클릭! 이사람>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조사한 이정희 변호사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무거워지죠. 사건 현장에 다녀오면 아이 얼굴 한번 더 보게 돼요.” 법무법인 ‘덕수’의 이정희(34) 변호사. 이 변호사가 엄마의 마음으로, 여성의 입장으로 말머리를 떼는 사건은 지난 6월 13일 발생한 ‘의정부 미군궤도차량 여중생 살인사건’이다. 사건은 초기 묻힐 듯 보였다. 전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온몸을 내던지고 있을 무렵이라 두 여중생의 사망 소식이 끼여들 틈은 없어 보였다. 언론은 무심했고, 미군 측의 자체 조사 결과 ‘누구에게도 과실이 없었다’는 발표는 지금까지의 여느 미군관련 사건처럼 ‘안타깝지만 잊으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몇몇 네티즌들의 ‘우리의 여동생이 살해당했다’는 절규는 너무 약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50여 일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은 처음으로 ‘재판관할권 포기’문제를 놓고 당황해 하는 미군의 모습을 보고 있다. 사건 직후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연이은 취재기자 폭행사건 및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진상조사단 활동, 미군측 재판관할권 포기 요청, 그리고 항의시위와 서명운동…, 숨가쁘게 각계의 대응이 이어졌다. 특히 하루아침에 친구를 잃고 울부짖는 교복 입은 여중생들의 모습이 차츰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축제에 정신이 팔려 여동생이 죽어간 것도 몰랐다는 자성과 ‘안하무인’격인 미군에 대한 항의가 ‘붉은 악마’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날아든 미8군사령관 다니엘 자니니 중장의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 약속. 이 변호사는 이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있었다. 6월27일부터 약 일주일간에 걸친 진상조사단 3명중에 유일하게 여성 변호사로 참여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여전히 미군관련 사건에 소극적인 정부의 모습과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피해자들, 그리고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이 변호사가 진상조사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민변 산하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고 ‘윤금이양 사건’ 때부터였으니 햇수로 따져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군범죄와 ‘밀접한(?)’ 사이였다. 2000년에는 ‘이태원 여종업원 살해범 미군 매카시 상대 손해배상사건’을 맡아 승소했고, 미군공여지역지원 및 주민권익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입안하고 용산 독극물 방류사건이 발생 후 형사재판관할권 개정작업에도 참여했다. 대책위가 의뢰한 진상조사 활동에 ‘미군범죄 및 주한미군지위협정 관련 전문가’인 이 변호사가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2002-07-30
- 동아리탐방 - 분당여성합창단 "처음엔 그저 음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죠. 노래 부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 사람들. 하지만 이곳 분당여성합창단을 통해서 함께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됐죠. 음악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구요." 분당여성합창단의 서성자 단장은 사람들과 만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30여명의 단원들 모두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온한 얼굴이다. 분당여성합창단은 요즘 한창 바쁘다. 늘 매주 월, 수 2회에 걸쳐 연습을 해왔지만 지금은 여느 때보다 더욱 설레이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한다. 올 가을 10주년 기념 음악회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10주년. 강산도 한번 변한다는 세월. 그러고보니 분당 여성합창단은 분당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인들 그것도 주부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10년을 지속해왔다는 건 대단한 일이예요. 힘든 일도 많았었죠. IMF 때에는 많은 단원들이 그만두기도 했고, 후원을 얻기도 어려웠었죠. 하지만 지금 분당이 ''천당 아래 분당''이란 말을 듣는 것처럼 저희 여성합창단도 최고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고 여겨져요." 지금 초창기 맴버들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꼭 참석하여 격려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든든한 선배들 역시 그네들만의 자랑거리다. 노래를 사랑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여 10년이란 시간을 서로 나누는 동안 분당여성합창단이라는 나무는 매우무성하게 자라온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늘은 많은 사람들에게 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서성자 단장은 몇 년전 교도소에서 열었던 공연을 잊지 못한다. 처음엔 모두들 어둡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경직되어 있었는데 노래가 한곡 한곡 연주될 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더니 음악회가 한참 진행된 후에는 같이 따라부르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 뿐만 아니라 단원들도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자신의 감성뿐만 아니라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 그런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래서 분당여성합창단은 고아원, 양로원 등의 위문공연을 자주 연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늘 가까이에서 음악을 나누려고 한다. "저희는 무엇보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연주자와 관객이 구별되지 않고 모두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어우러져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음악회요." 공원이나 지하철 역사 안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던 것도 이런 의미에서 였다. "저희들은 참 대단한 행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노래를 잘 하는 재능만으로도 행운인데 이렇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음악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 주거든요. 우리집 아이들은 제가 조수미보다 노래를 더 잘한대요. 거리공연을 열면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자랑을 하더라구요." 여전히 그네들을 가장 기분좋게 해주는 건 가족들의 칭찬인 모양이다. 10월 말쯤 열릴 ''10주년 기념 연주회''는 좀 성대하게 열 계획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와 남성합창단의 협연으로 구노의 ''장엄미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매우 스케일이 커서 여느 합창단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곡이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추억의 팝송, 민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실력있는 합창단으로 자리매김한 이들에겐 협연을 요청하는 것도 후원을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오히려 후원을 자청하고 나서는 곳도 있을 정도이다. 현재 연습을 하고 있는 마사회는 개장 축하 연주가 계기가 되어 장소 제공과 후원을 자청하고 나섰으며 대우자동차정비사업소 역시 그네들의 든든한 후원자다. "여성합창단(019-399-9521)은 늘 열려 있습니다.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열정이 남못지 않다고 자신하시는 분은 누구든 환영합니다." 정재은 리포터 nieve12@hanmail.net 2002-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