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여자' 검색결과 총 779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주말을 여는 책]김용택의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38년 교편생활, 60년 인생 반추하며 70편 엮어내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김용택 엮음 / 마음의숲 / 7000원 겨울이 왔다. 전국시대의 지혜를 모은 ‘여씨춘추’는 겨울에 들어서는 달에 하늘의 양기는 올라가고 땅의 음기는 내려가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주역의 천지비(天地否), 소통이 사라지는 때다. 나뭇가지에 아직 걸린 잎들을 본다. 물 흐름이 막혀 파삭파삭 마른 잎들. 잠시 동안 화려했던 분장이 더욱 덧없다. ‘여씨춘추’는 이 달의 시령(時令)에서 이렇게 충고한다. “잘못된 일을 덮어 감추는 일이 없도록 한다.” 추위는 적어도 나목(裸木)의 진실을 동행한다.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 이 큰 상실의 고통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예감이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경제정책의 책임자는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 ‘1회 초’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작은 위안이라도 소중한 시절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입구에 들어서서 서로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나아가야 하는 장면인 것이다. 시인 김용택이 엮은 시 선집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에 대해 출판사의 책 소개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위로를 강조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는 일이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택하는 요즈음…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위로의 시들을” 엮었다고 알린다. 엮은이의 ‘서문을 대신해’에도 그런 기분이 읽힌다. “삶의 길이 끊기고, 사라질 때마다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읽던 시/그 시들, 내 삶에 해답을 가져다주던 시들을 모아/당신에게 보낸다.” 그런데 시에게 과연 그런 위로의 힘이 있는가? 이 배금주의의 시대에 목숨 같이 아끼던 재산을 날리고, 일자리를 빼앗기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사람들에게 시가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건 기껏 공허한 울림은 아닌가? 사실 시인이 조롱거리가 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동양으로 가는 배 위에서 기품 있는 큰 바닷새 알바트로스가 사로잡혀 뒤뚱거리는 모습에서 지상에 유배된 시인의 자화상을 보았지만, 실용주의라는 비정의 땅에 추락한 시가 제대로 걸음을 옮길 수 있겠는가? 나치의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이 생각난다. 그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찾아냈다. 이 절망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강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생존자는 자기가 겪고 있는 상황과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근원과 그 의미를 노래하는 것, 그건 바로 시의 본질적 기능이다.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세계는 시가 없어 매일 죽어간다”고 했지만 시 정신은 세계의 심장과 함께 뛴다. 나는 바로 그런 기분으로 이 시집을 펼치고 싶다. 가령 이 시집에 실린 괴테의 시 ‘용기’는 거침없이 이렇게 선언한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맑은 물, 그리고/친구들의 사랑/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나무는 잎이 떨어졌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나무는 당당하다. 생명에 본질적인 요소는 공기와 물, 태양과 사랑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은 너무 이르다. 가령 ‘당신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작자 미상)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지는 해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당신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만약 당신이 작은 꽃송이의 빛깔에서/아름다움을 찾는다면,/당신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애완동물의 부드러운 털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가? 다른 사람의 고통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저녁 식탁을 꾸밀 작은 장식품을 사는가? 그러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이 시는 격려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70편쯤의 시 가운데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덥힌 건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였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길거리에 나서면/고향 장거리 길로/소 팔고 돌아오듯/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국수를 먹고 싶다.” 사람들은 뒷모습이 슬프다. 앞에서 보면 폭군과 같은 사람들도 뒤에서 보면 연약하고 처량한 존재일 뿐이다. 이 “허전함”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를 바가 없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눈물자국 때문에/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어딘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큰 울림이 있다. 지구가 기우뚱한 각도로 태양을 도는 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은 필연이다. 계절의 순환이 어쩔 수 없듯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기순환의 불확실성은 인간 능력 밖이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철인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봄은 또 올 테고. 이 시집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으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옛날 물질적으로 정말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아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아내도 집도 잃고, 부모형제도 멀리 떨어진 채 목수네 집 헌 삿(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을 깐 방 하나를 얻고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누워 뒹굴면서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려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여러 날이 지나면서 세상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 자기를 마음대로 굴려간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박순철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칼럼리스트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21
- 서평 - 메인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기타 사토시 지음 양영철 옮김 말글빛냄 1만3000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사는 한국인들조차도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의 경찰 미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에 일본에는 강대국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아시안 게임조차 유치할 힘도 뜻도 없었던 때에 일본은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국가가 되었다. 국토의 면적도, 인구도, 국민소득도 우리가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생필품과 공산품들은 한국인에게 ‘하쿠라이’(舶來品)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라이’란 일본인들이 동경하던 서양 문명국 제품의 총칭이었다. ‘선박을 타고 먼 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좋은 물건’이라는 뜻의 일본어가, 역으로 우리에게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된 질 좋은 물건의 대명사로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일본을 일본인 자신이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선언한 책이 나와 화제다. 말글빛냄 출판사가 내놓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이다. 홋카이도 오비히로 축산대학 교수인 저자 스기타 사토시 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은 선진국이라기보다 개발도상국에 가까우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진국에 가깝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일본정부 주최로 열린 G-8 정상회의를 예로 들어, 지구온난화와 빈곤문제를 다루는 회의장소가 마땅히 교토(京都)가되어야 할 텐데,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개최된 사실부터 문제 삼았다.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인 교토의정서를 앞장서 실천할 의지와, 지구촌 빈곤문제 퇴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처사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첫 째 이유는 ‘후진적인 정치현실’이었다. 근년 일본국민 5,000만 명분의 연금기록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건을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의 표본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일본정부가 국민에게 군림하는 ‘행정지도’ 역시 일본을 후진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질타했다. 법 규정이 아니라 담당 관료의 재량권에 좌우되는 이 ‘행정의 전횡’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각종 법률의 규정을 애매하게 해 놓고 세부사항을 ‘성령’(省令) ‘규칙’ ‘통달’ 등 하부규정에 위임해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 같은 국제적인 말썽을 일으킨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정경유착과 낡은 선거제도에 관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일본정치를 왜곡시키는 두 번째 요인으로 재계의 대정부 로비를 들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경단련)이 거의 매일 자민당과 정부에 정책요구서를 들이미는 배경에는 연간 수십억 엔의 정치헌금이 있다”면서, 너무 많은 정당교부금과 불투명한 용도를 문제 삼았다. “지난 13년 동안 선거에서 불과 40%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자민당은 의회에서 80%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만약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실시된다면 자민당은 이미 단독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선거제도를 ‘후진국과 오십보백보’라고 표현했다. 선거기간 중 입후보자의 호별방문 금지와 후보등록 시 3,000만 엔에 이르는 공탁금 제도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법의 독립성도 문제 삼았다. 저자는 “삼권분립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그것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은 대학생이라도 알지 못 할 것”이라며, 그 원인을 법원이 위헌법률심시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해 홋카이도 나가누마 마을 보안림을 해제한 사건에 삿포로 지법 재판장이 위헌판결을 내린 1973년 ‘나가누마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 판결 이래 재판장이 도쿄에 진출하지 못 한 것은 위헌결정에 대한 법원행정 당국의 보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이래 60년이 넘도록 일본법원에서 내려진 위헌판결이 단 6건뿐인 사실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라고 했다. 과도한 중안집권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집권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나라였던 프랑스가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으로 크게 완화됨으로써, 이제 일본이 세계유일의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다고까지 단언했다. 이제 겨우 학급정원 40명을 벗어난 과밀학급 문제, 초등학생들까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어디서나 명문대학 출신만을 선호하는 학력사회, 교과서 검정으로 사상을 통제하는 교육행정, ‘학습지도 요령’이라는 관료의 전횡에 교사들이 신음하는 교육의 획일성, 유럽 사람들이 웃을 성교육의 경직성, 너무 비싼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이런 문제들이 모두 일본을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이름뿐인 남녀평등, 방치된 보육환경, 열악한 노동의 실태,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등을 들어 저자는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적용할 때 한국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선진국 담론이 한창이다. 환율약세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정권 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달성된 뒤로, 국민 일반에서도 선진국 편입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연 우리에게 ‘선진국 타령’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해답은 독자들 스스로 명쾌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2-12
- [주말을 여는 책]스기타 사토시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후진적 정치현실·행정의 전횡 … 이름뿐인 남녀평등·열악한 노동실태에 거부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기타 사토시 지음 / 양영철 옮김 말글빛냄 / 1만3000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사는 한국인들조차도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의 경찰 미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에 일본에는 강대국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아시안 게임조차 유치할 힘도 뜻도 없었던 때에 일본은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국가가 되었다. 국토의 면적도, 인구도, 국민소득도 우리가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생필품과 공산품들은 한국인에게 ‘하쿠라이’(舶來品)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라이’란 일본인들이 동경하던 서양 문명국 제품의 총칭이었다. ‘선박을 타고 먼 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좋은 물건’이라는 뜻의 일본어가, 역으로 우리에게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된 질 좋은 물건의 대명사로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일본을 일본인 자신이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선언한 책이 나와 화제다. 말글빛냄 출판사가 내놓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이다. 홋카이도 오비히로 축산대학 교수인 저자 스기타 사토시 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은 선진국이라기보다 개발도상국에 가까우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진국에 가깝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일본정부 주최로 열린 G-8 정상회의를 예로 들어, 지구온난화와 빈곤문제를 다루는 회의장소가 마땅히 교토(京都)가되어야 할 텐데,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개최된 사실부터 문제 삼았다.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인 교토의정서를 앞장서 실천할 의지와, 지구촌 빈곤문제 퇴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처사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첫 째 이유는 ‘후진적인 정치현실’이었다. 근년 일본국민 5,000만 명분의 연금기록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건을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의 표본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일본정부가 국민에게 군림하는 ‘행정지도’ 역시 일본을 후진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질타했다. 법 규정이 아니라 담당 관료의 재량권에 좌우되는 이 ‘행정의 전횡’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각종 법률의 규정을 애매하게 해 놓고 세부사항을 ‘성령’(省令) ‘규칙’ ‘통달’ 등 하부규정에 위임해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 같은 국제적인 말썽을 일으킨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정경유착과 낡은 선거제도에 관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일본정치를 왜곡시키는 두 번째 요인으로 재계의 대정부 로비를 들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경단련)이 거의 매일 자민당과 정부에 정책요구서를 들이미는 배경에는 연간 수십억 엔의 정치헌금이 있다”면서, 너무 많은 정당교부금과 불투명한 용도를 문제 삼았다. “지난 13년 동안 선거에서 불과 40%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자민당은 의회에서 80%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만약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실시된다면 자민당은 이미 단독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선거제도를 ‘후진국과 오십보백보’라고 표현했다. 선거기간 중 입후보자의 호별방문 금지와 후보등록 시 3,000만 엔에 이르는 공탁금 제도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법의 독립성도 문제 삼았다. 저자는 “삼권분립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그것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은 대학생이라도 알지 못 할 것”이라며, 그 원인을 법원이 위헌법률심시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해 홋카이도 나가누마 마을 보안림을 해제한 사건에 삿포로 지법 재판장이 위헌판결을 내린 1973년 ‘나가누마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 판결 이래 재판장이 도쿄에 진출하지 못 한 것은 위헌결정에 대한 법원행정 당국의 보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이래 60년이 넘도록 일본법원에서 내려진 위헌판결이 단 6건뿐인 사실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라고 했다. 과도한 중안집권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집권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나라였던 프랑스가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으로 크게 완화됨으로써, 이제 일본이 세계유일의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다고까지 단언했다. 이제 겨우 학급정원 40명을 벗어난 과밀학급 문제, 초등학생들까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어디서나 명문대학 출신만을 선호하는 학력사회, 교과서 검정으로 사상을 통제하는 교육행정, ‘학습지도 요령’이라는 관료의 전횡에 교사들이 신음하는 교육의 획일성, 유럽 사람들이 웃을 성교육의 경직성, 너무 비싼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렁?이런 문제들이 모두 일본을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이름뿐인 남녀평등, 방치된 보육환경, 열악한 노동의 실태,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등을 들어 저자는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적용할 때 한국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선진국 담론이 한창이다. 환율약세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정권 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달성된 뒤로, 국민 일반에서도 선진국 편입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연 우리에게 ‘선진국 타령’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해답은 독자들 스스로 명쾌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2-12
- [주말을 여는 책]볼프강 코른의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 고대문명 유물, 파괴되거나 강대국 박물관에 자리잡아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 볼프강 코른 지음 / 배수아 옮김 주니어김영사 / 1만원 인류의 공유재산인 고대문명의 유물들은 왜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파괴되고 오손되었을까. 그것들은 왜 제 자리에 있지 않고,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 박물관에 가 있는 걸까.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그 거대한 석조유물을 떼어내 옮겨갔을까. 그걸 빼앗긴 후손들의 기분은 어떨까. 역사유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중 이런 의문과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특히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본 사람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중국 같은 고대문명 유적지를 가본 사람들의 감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문용어를 사용한 고고학 서적은 너무 난해하고, 얻기 손쉬운 관광 안내책자 종류는 성에 차지 않아 궁금증을 풀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해설서가 나왔다. 독일의 과학 전문기자 볼프강 코른의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가 바로 그것이다. 도둑놈인가 구세주인가?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보물사냥꾼. 천재적인 발굴가는 교활한 사기꾼인가? 책의 첫 머리 목차 란에 나오는 이런 원색적인 의문문과 과격한 표현들이 독자의 관심을 자극한다. 자연스레 책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구성도 문장도, 노련한 저널리스트답다. 궁금해 하는 것들,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관심을 사 놓고는, 조금 지루한 전문분야로 안내해 준다. “고고학이 도둑질에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에는 사실여부를 알 수 없는 일화와 전설이 무궁무진하다. 고고학이 정식으로 학문대접을 받기 전에는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을까? 왕조시대 이후 이집트의 무덤과 피라미드는 어떻게 되었으며, 지난 200년 동안 북유럽의 거석유물 중 90% 이상이 사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묻고는 “고고학은 도둑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했다. 파괴되고 사라지고 강탈된 유물들에 관한 의문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 책의 제2장(도둑놈인가 구세주인가) 서두는 베를린 박물관 홀에서 100여명의 터키 청소년들이 “제우스 제단을 반납하라”는 플래카드를 펴들고 약탈문화재 반납을 요구하는 시위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터키의 고대 유적지 페르가몬 인근도시 학생들이 다른 일로 독일에 왔을 때의 일이다.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이 왜 베를린에 와 있느냐는 터키 청소년들의 항의가 타당하다는 공감도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세기 들어 산업 강국으로 등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는 산업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주도권을 쥐고 싶어서’ 대형 박물관을 지었고, 지중해 연안 고대유적을 약탈하듯 수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그리스의 뛰어난 유물들은 모두 땅속에서 파내야 한다. 그 땅은 유물들의 고귀한 가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적 없이 탄생한 그 예술품들은 오직 프랑스에서만 고향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설립자 자크 르브레통의 이 말을 인용해 코른은 “당시의 발굴은 발굴이 아니라 약탈이었으며, 19세기에 첫발을 뗀 고고학이란 학문은 국가차원의 노략질이었다.”고 단언했다. 엘긴 대리석이라 불리는 유물이 대영박물관에 자리 잡은 경위가 ‘국가차원의 노략질’을 증명하고 있다. 19세기 초반 고대유물에 열광하던 영국귀족 엘긴은 때마침 오스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했다. 그 때 그리스는 오스만 터키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손쉽게 아크로폴리스 발굴허가를 얻어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 보호자를 자칭하던 시대였다. 1801년 400명으로 구성된 엘긴의 발굴단은 파르테논 신전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인물상 17개와 벽 장식판 96개 가운데 56개를 떼어내 영국으로 실어갔다. 얼마나 많이 벽 장식물을 떼어냈던지, 우지끈 소리를 내며 천정이 무너지려고 했다. 급히 벽돌기둥을 쌓아올려 간신이 붕괴를 막았다. “그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의 석상과 장식물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섬세한 걸작들이 다 부서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그 현장을 목격한 아테네 시민의 코멘트 속에 약소민족의 비애가 응축되어 있다. 그런 약탈상을 보다 못한 영국시인 바이런은 1811년 출간한 시집에 ‘피 흘리는 나라’ ‘서글픈 유산’이라는 시를 써넣었다. 영국의 야만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룩소르와 아부심벨 등의 이집트 유물들도 그렇게 파괴되었고, 걸작들은 모조리 해외로 실려 나갔다. 유럽 열강들이 이집트 땅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 19세기 전반기, 13개나 되는 고대 신전의 벽이 모조리 헐렸다. 무함마드 알리 총독 시대 오스만 제국 관리들은 이집트 유적 발굴권을 헐값에 외국 발굴단에 팔아넘겼던 것이다. 유물을 더 빨리 더 많이 파내고 떼어내기 위해 유럽에서 기중기 같은 장비와 기계가 들어간 뒤로는, 파라오 시대의 찬란한 유적지가 급속히 폐허처럼 변해 갔다. 값지고 멋진 유물을 빨리 구해 오라는 본국정부 훈령에 따라, 이집트 주재 각국 대사들은 경쟁적으로 발굴과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적과, 신비에 싸인 트로이의 유물들도 그렇게 파헤쳐지고 파괴되어 강대국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그런 야만이 이제는 종식되었다고 보아도 좋은가. 이런 순진한 물음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과 미국의 골동품 수집가들이 고대 유물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이상, 유물들은 혼자서라도 무덤에서 기어 나와 국제 골동품 시장에 등장하고야 만다.”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0-31
- 가을의 절정, 억새밭 속으로 주말 나들이, 억새밭 어때요?가을이다. 길어진 여름 탓에 가을이 사라져 간다더니 어느날 문득 우리 곁에 와 있다. 하지만 도심 속에서 멋들어진 가을 냄새를 만끽할 수는 없다. 은행나무도 단풍도 이도저도 아닌 빛깔로 겨우 가을을 말하고 있다. 그래도 하늘을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청명한 하늘빛 등에 지고 가을산에 올라 보자. 시골처녀 마냥 수수하게 아름다운 억새가 한창이다. 가족과 함께, 때론 혼자 가을산에 올라 넓은 고원에 펼쳐진 무성한 억새 앞에 서면 잊고 살던 진정한 내가 억새처럼 호젓이 나를 기다릴지도.부산 근교에서 지금 가기 딱 좋은 억새밭 네 곳을 소개 한다. 도시락 싸고, 물통 하나 들면 마음은 벌써 억새밭이다.가족이랑 주말에 가기 좋은 억새밭 - 장산여자들이 등산하기 좋은 산이다.초보라도 1시간 30분만 오르면 억새를 만날 수 있다. 길이 좋아 적당히 땀이 날 정도.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장산은 해운대 신도시 내에 있는 대천공원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공원을 지나 잘 정돈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여기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신발 끈 단단히 묶고 자, 등반 시작이다.돌길이지만 비교적 잘 관리되어 오르기 쉽다. 가족 단위 등산객이 많아 어린 아이들도 눈에 꽤 띈다. 주말에도 그리 혼잡하지 않아 조용히 등반하기도 제격이다.약 40분쯤 부지런히 오르다 보면 골짜기 가득 바위가 흘러내리다 쌓인 곳에서 쉬어 가는 사람이 많다. 저 멀리 신도시를 내려다보며 삶은 달걀 하나 소금에 찍어 먹고 물 한 모금 마신다. 이렇게 금방 도심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땀이 채 식기 전에 길을 재촉하다 보면 주말에만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를 만난다. 거기서 좁은 길로 900m만 가면 바로 억새밭이다.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밭 중간으로 길이 나 있어 억새밭 속 깊숙이 들어가 사진 찍기 좋다. 막걸리 파는 곳 주변으로 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제각각이다. 거기서 다시 8부능선을 따라 15분쯤 가면 정상이다. 광안대교를 비롯한 해안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억새밭에서 그냥 가긴 아까운 풍경이다.내려오는 길에 3,500원짜리 국수 파는 집이 두 곳 있다. 출출한 등산객들로 늘 만원이다. 등산의 제 맛을 즐길만한 산 - 승학산부산 제 1의 억새밭으로 유명한 승학산(사하구 하단동)은 서쪽으로 구덕산이, 남쪽으로는 엄광산이 연결된 산으로 억새능선까지 오르는 4가지 코스가 있다.승학산은 해발 496m로 그렇게 높지 않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 이 곳에 와 마치 학이 나는 듯한 산세의 모습을 보고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얼마전 승학산을 다녀온 배영환(40·수영동)씨는 대신동 꽃마을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소개한다. 서대신동 꽃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30여분을 걷다보면 기상청 레이더관측소를 지나 헬기 선착장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억새풀을 감상하며 정상까지 20~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그 외 코스는 다소 가파르지만 엄궁에서 올라가거나 당리, 괴정에서 사하구청 뒤편 제석골로 통하는 코스, 통상 종주로인 동아대(하단캠퍼스)~잔등이~정상코스 등이 있다.동아대학교 뒤로 올라 승학산 정상을 거쳐 서대신동 꽃마을~구덕산~구봉산~수정산으로 이르는 코스는 부산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등산코스이기도 하다.너른 들판을 뒤덮은 하얀 억새꽃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바람따라 일렁이는 억새군락에 근심 한자락 내려놓으면 신선이 된 기분이다.평일에 가면 더 좋은 산 - 화왕산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 등반은 쉽지만 인파가 많은 산이다.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가기보다는 평일에 올라야 억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경상남도 창녕 화왕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저 멀리 화왕산이 보인다. 마음은 벌써 정상에 가 있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광장을 지나 제2등산로로 오른다. 처음에는 계단씩으로 완만하지만 억새밭 가까이 가면 조금 가파르다. 주말에는 등산객이 많아 길에 먼지가 많이 이는 편이다. 키 작은 아이들은 조금 힘들 수 있다.하지만 서문을 지나 배바위에 도착하면 가슴이 탁 트인다. 고원으로 형성된 억새밭이 경이롭다. 많은 사람들이 억새밭 속으로 흩어져 도리어 순간 한적한 느낌마저 든다. 억새밭 사이를 걷다보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람의 인적만 느껴진다. 인파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묘한 순간이다.어김없이 막걸리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억새풀 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보자. 억새가 어른 키만 하다.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다시 내려갈 일이 꿈만 같지만. 어린 아이나 부모님과 함께 가도 좋은 산 - 신불산아이들과 함께 차량으로 가기 가장 좋은 산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과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지점이다. 양산에서 배냇골로 넘어가다 보면 확 트인 곳이 나온다. 간월재까지 차로 이동하면 신불산 정상까지 30분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흐드러진 억새밭을 만난다.국내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이다. 이곳 억새는 키가 작아 멀리서 보면 잔디밭 같다. 억새도 좋지만 높은 산에서 다시 완만함이 잘 조화된 산세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산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정상에서 다시 영축산 중간까지 등반하는 것도 좋다. 산을 오르며 억새밭을 구경하다 다시 돌아 나오는 것이 적당하다.만약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언양 등억온천에서 신불산으로 올라가 영축산을 지나 통도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부모와 함께 등반하는 다부진 아이들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체력을 위해 찾았다 마음부터 얻어가는 것이 산인가 보다. 11월 초까지 억새가 한창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 산에 올라 아름다운 억새도 만나고 건강한 마음도 만들어 보자.김부경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2008-10-24
- 《주말을 여는 책》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겨울이 왔다. 전국시대의 지혜를 모은 ‘여씨춘추’는 겨울에 들어서는 달에 하늘의 양기는 올라가고 땅의 음기는 내려가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주역의 천지비(天地否), 소통이 사라지는 때다. 나뭇가지에 아직 걸린 잎들을 본다. 물 흐름이 막혀 파삭파삭 마른 잎들. 잠시 동안 화려했던 분장이 더욱 덧없다. ‘여씨춘추’는 이 달의 시령(時令)에서 이렇게 충고한다. “잘못된 일을 덮어 감추는 일이 없도록 한다.” 추위는 적어도 나목(裸木)의 진실을 동행한다.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 이 큰 상실의 고통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예감이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경제정책의 책임자는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에 “1회 초”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작은 위안이라도 소중한 시절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입구에 들어서서 서로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나아가야 하는 장면인 것이다. 시인 김용택이 엮은 시 선집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에 대해 출판사의 책 소개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위로를 강조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는 일이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택하는 요즈음...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위로의 시들을” 엮었다고 알린다. 엮은이의 ‘서문을 대신해’에도 그런 기분이 읽힌다. “삶의 길이 끊기고, 사라질 때마다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읽던 시/그 시들, 내 삶에 해답을 가져다주던 시들을 모아/당신에게 보낸다.” 그런데 시에게 과연 그런 위로의 힘이 있는가? 이 배금주의의 시대에 목숨 같이 아끼던 재산을 날리고, 일자리를 빼앗기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사람들에게 시가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건 기껏 공허한 울림은 아닌가? 사실 시인이 조롱거리가 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보들레르는 동양으로 가는 배 위에서 기품 있는 큰 바닷새 알바트로스가 사로잡혀 뒤뚱거리는 모습에서 지상에 유배된 시인의 자화상을 보았지만, 실용주의라는 비정의 땅에 추락한 시가 제대로 걸음을 옮길 수 있겠는가? 나치의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이 생각난다. 그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찾아냈다. 이 절망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강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생존자는 자기가 겪고 있는 상황과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근원과 그 의미를 노래하는 것, 그건 바로 시의 본질적 기능이다.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세계는 시가 없어 매일 죽어간다”고 했지만 시 정신은 세계의 심장과 함께 뛴다. 나는 바로 그런 기분으로 이 시집을 펼치고 싶다. 가령 이 시집에 실린 괴테의 시 ‘용기’는 거침없이 이렇게 선언한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맑은 물, 그리고/친구들의 사랑/이것만 있거든 낙심하지 마라.” 나무는 잎이 떨어졌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나무는 당당하다. 생명에 본질적인 요소는 공기와 물, 태양과 사랑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은 너무 이르다. 가령 ‘당신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작자 미상)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지는 해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당신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만약 당신이 작은 꽃송이의 빛깔에서/아름다움을 찾는다면,/당신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애완동물의 부드러운 털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가? 다른 사람의 고통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저녁 식탁을 꾸밀 작은 장식품을 사는가? 그러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이 시는 격려한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70편쯤의 시 가운데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덥힌 건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였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길거리에 나서면/고향 장거리 길로/소 팔고 돌아오듯/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국수를 먹고 싶다.” 사람들은 뒷모습이 슬프다. 앞에서 보면 폭군과 같은 사람들도 뒤에서 보면 연약하고 처량한 존재일 뿐이다. 이 “허전함”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를 바가 없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눈물자국 때문에/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어딘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큰 울림이 있다. 지구가 기우뚱한 각도로 태양을 도는 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은 필연이다. 계절의 순환이 어쩔 수 없듯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기순환의 불확실성은 인간 능력 밖이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철인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봄은 또 올 테고. 이 시집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으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옛날 물질적으로 정말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아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아내도 집도 잃고, 부모형제도 멀리 떨어진 채 목수네 집 헌 삿(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을 깐 방 하나를 얻고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누워 뒹굴면서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려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여러 날이 지나면서 세상은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 자기를 마음대로 굴려간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박순철 (칼럼니스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책 이름: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엮은이: 김용택 펴낸 곳: 마음의숲 값:7,000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1-21
- <그림편지> 금강-1 금강-1 어디나 똑같고, 똑같이 낯선 고향풍경들 전북 장수에서 진안 용담댐까지 발원지 수분리에도 외국인 며느리 금강상류 비경지대는 용담댐 물속으로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 시집온 새색시가 시댁의 김치맛을 익혀가듯 그 여자들도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 조병준.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지난해 금강 발원지 수분리에서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한상남씨를 만났습니다. 1973년 겨울 사진가 강운구씨가 ‘마을 삼부작’으로 수분리를 찍은 지 33년, 외국인 며느리가 이곳 수분리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사진가 권태균씨는 강운구씨의 제안으로 ‘마을 삼부작 30년 후’(권태균·열화당)를 찍었습니다. 30년 동안 수분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한마디로 ‘예전엔 가난해도 풍족해 보였는데, 지금은 풍족한지는 모르지만 가난해 보인다’는 게 강운구씨의 총평입니다. 30년 전 53가구에 살던 389명(남자 199명, 여자 190명)이 45가구 162명(남자 75명, 여자 87명)으로, 195명이나 되던 노동인구는 80명으로 줄었고, 55마리였던 소는 120마리로 늘었으나 돼지는 19마리였던 것이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 … 서른 해 동안 모든 이 땅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었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30년 후’ 서문 서른 해 동안 이 땅이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된 이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강운구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과 어울리는 곡선과 빛깔에서 붉고 푸른 빛깔의 얄팍한 직선으로 온 나라의 집과 마을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 그리고 느닷없이 전통과 익숙한 풍경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 모든 고향의 지명은 여전하지만 이제 모습은 어디나 똑같고 똑같이 낯설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수입곡물 먹고 자라는 토종 한우 000 ‘마을 삼부작 30년 후’를 펼치면 왼쪽 면에는 1970년대 강운구씨가 찍은 수분리 사진이 작은 크기로 실려 있고, 오른쪽 면에는 권태균씨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같은 장소와 인물을 찾아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 사진집은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그때가 좋았다거나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지금이 훨씬 낫다는 식의 단순한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불리는 변화가 불가피했다면 그것은 어떤 식이어야 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수분리 마을 입구에는 ‘우리 마을은 외지 방문차량 번호를 기록해서 관리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금강 상류에 있는 마을 곳곳에서 이런 경고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농촌지역에 도난사건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문구를 보고 외지인들은 ‘인심 사납다’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고추 한 포기 심어본 일이 없는 도시인들이 농작물을 도둑맞는 농촌사람들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외국인 며느리 문제도 그렇습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시각보다는 ‘마흔 넘도록 장가를 못 갔던 아들에게 시집온 태국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는 농촌 할머니들의 얘기가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도시 사람들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 좋아하지만 진짜 우리 농산물이 어디 있습니까. 한우가 먹는 사료의 대부분은 수입 곡물이고 토종 고추도 씨앗은 네덜란드산입니다. 벼와 콩, 도라지 등 몇몇 농작물 이외에는 대부분 외국 종묘회사가 종자를 공급합니다. 이런 책임까지 농촌에 돌릴 수 있을까요.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계시를 받은 샘 000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번째로 큰 강입니다. 동으로는 백두대간, 남으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한남정맥에 걸쳐 있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9810㎢에 이르며 전북과 충청권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약 1000리(395.9km)가 됩니다. 금강의 발원지는 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금강이 시작되는 공식적인 발원샘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입니다. 수분리 마을은 ‘물뿌랭이마을’로 불렸던 흔적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이 이곳을 금강의 발원지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읍에서 수분령 꼭대기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수분송’이라 이름붙은 커다란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수분리 마을로 들어가면 뜬봉샘까지 올라가는 마을 안길이 이어집니다. 마을에서 뜬봉샘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립니다. 임도를 타고 자동차로 접근해도 마지막 500m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뜬봉샘이란 이름에는 옛날 이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우 ‘뜸봉샘’으로 표기)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집니다.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000 뜬봉샘을 출발한 금강 물줄기는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 팔공산(1151m) 북쪽 계곡 물을 만납니다.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가 되는 겁니다. 장수군을 지난 금강 물줄기는 이제 진안군으로 들어갑니다. 백두대간 덕유산(1614m)에서 내려오는 ‘구량천’과 호남정맥 마이산(678m)에서 시작되는 ‘진안천’을 만나 제법 굵어진 금강 물줄기는 이제 무주·영동군을 향해 정북 방향으로 흐릅니다. ‘금강(錦江)’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비단결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이는 옥천까지 한양 방향으로 잘 올라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서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선시대 각 도별 지형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도별도’를 보면 하천 수계의 분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남·북한강, 임진강, 달천 등 한강 수계의 모든 물줄기는 한양으로 모입니다. 낙동강 수계도 마찬가지죠. 강원도 태백에서 지리산 동쪽까지, 모든 물줄기가 모여 부산으로 흐릅니다. 이들 하천은 세금 걷는 데 최적의 조건이죠. 반면 ‘충청도’ 지도를 보면 금강은 한양으로 올라오는 듯 보이지만 옥천에서 방향을 틀어 서해바다로 가버립니다. ‘전라도’ 지도를 볼까요? 만경·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섬진강이 모두 제각기 다른 곳으로 흐릅니다. 충청도보다 더 심란합니다. 너른 들판에 여러 개의 강은 제각기 다른 곳으로 흐르니 당연히 지역색과 자주성이 강한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지방색이 중앙 조정의 눈으로 보면 ‘반역’이 아니었을까요? 조선조의 광주사태, 기축옥사의 무대 0000 금강 본류와 덕유산에서 내려온 구량천이 만나는 ‘죽도’는 ‘조선조의 광주사태’로 불리는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 선생이 죽은 곳입니다. 죽도는 정확하게 용담호 만수위 선상에 있습니다. 만수위가 되면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아름다운 물굽이는 물속에 잠기고, 금강 물줄기가 휘감아 섬처럼 보이는 죽도는 진짜 섬으로 바뀝니다. 수몰 이후 죽도로 들어가는 길은 끊어졌습니다. 산 위로 우회도로가 났고 옛 죽도 유원지 언덕은 서서히 별장지로 바뀌고 있죠. 이곳 죽도에서 구 용담면까지 금강은 전형적인 감입곡류로 곳곳이 영월 동강처럼 아름다운 바위·절벽지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용담댐 건설 이 비경지대는 모두 물속에 잠겼습니다. 용담댐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강 한가운데 수석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하나 서 있습니다. ‘섬바위’라는 이름의 이 바위는 다행히 용담댐 바로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수장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섬바위 물속으로 들어가면 발이 저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 2008-11-17
- “왕성한 수요, 회복세로 돌아설 것”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전문 연구진 30여명 집필 ‘2007~2008 중국 부동산 대전망’ 한국어판 출간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부동산 전문 연구자들이 연차 보고서 형식으로 매년 발간하는 ‘중국부동산 발전보고(중국 사회과학문헌출판사 발행)’ 정식 한국어판이 ‘중국 부동산 대전망(디지털미디어리서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중국 현지에서도 부동산 관련 책자로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매년 4월에 개최되는 출판기념 및 보고회에는 국내외의 많은 매체들이 참석해 중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신력 있는 평가와 전망을 보도하기도 한다.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중국 경제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저자들은 중국은 이미 1년 전부터 부동산 조정기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나우펑뤠이, 리징궈, 샹지아오웨이 등의 핵심 필진들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중국은 1998년 부동산 시장의 시장화 개혁 이후 약 10여년 동안 빠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오다 2007년 제 4분기 이후 시장 조정이 시작됐지만 도시화 추진에 의한 왕성한 유효수요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들이 시장 조정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것은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는 미국의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대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위안화 절상으로 인한 수출 감소 등 거시 환경이 변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정부가 지급준비율을 최고 17%로 상향하는 등 통화량에 대해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기행위가 억제되고 부동산 기업의 자금원인 은행 대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셋째는 부동산 투자의 문턱이 높아졌고 위험 부담은 강해졌다. 특히 두 번째 주택구매에 대한 새로운 대출 규정의 시행은 투자 및 투기 수요를 크게 감소시켰다. 넷째는 주택 가격의 지나친 상승으로 주택 실수요자인 대다수 근로자 계층은 관망할 수밖에 없게 됐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조정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 일본과 달리 아직 주택보급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중국시장에서 조정기를 거치면 수요가 분출되면서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부동산 대전망’은 사회과학원 소속 전문 필진이 대부분으로 모두 30명의 전문 필진이 참여하고 있으며 114개 이상의 각종 통계자료와 도표 그림이 실려 있어 중국 부동산에 관한 체계적이며 실증적인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부동산 시장을 보다 깊게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0-31
- 서평-메인 서평 볼프강 코른 지음, 주니어김영사 발행 인류의 공유재산인 고대문명의 유물들은 왜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파괴되고 오손되었을까. 그것들은 왜 제 자리에 있지 않고,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 박물관에 가 있는 걸까.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그 거대한 석조유물을 떼어내 옮겨갔을까. 그걸 빼앗긴 후손들의 기분은 어떨까. 역사유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중 이런 의문과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특히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본 사람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중국 같은 고대문명 유적지를 가본 사람들의 감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문용어를 사용한 고고학 서적은 너무 난해하고, 얻기 손쉬운 관광 안내책자 종류는 성에 차지 않아 궁금증을 풀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해설서가 나왔다. 독일의 과학 전문기자 볼프강 코른의 가 바로 그것이다. 도둑놈인가 구세주인가?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보물사냥꾼. 천재적인 발굴가는 교활한 사기꾼인가? 책의 첫 머리 목차 란에 나오는 이런 원색적인 의문문과 과격한 표현들이 독자의 관심을 자극한다. 자연스레 책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구성도 문장도, 노련한 저널리스트답다. 궁금해 하는 것들,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관심을 사 놓고는, 조금 지루한 전문분야로 안내해 준다. “고고학이 도둑질에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에는 사실여부를 알 수 없는 일화와 전설이 무궁무진하다. 고고학이 정식으로 학문대접을 받기 전에는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을까? 왕조시대 이후 이집트의 무덤과 피라미드는 어떻게 되었으며, 지난 200년 동안 북유럽의 거석유물 중 90% 이상이 사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묻고는 “고고학은 도둑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했다. 파괴되고 사라지고 강탈된 유물들에 관한 의문에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 책의 제2장(도둑놈인가 구세주인가) 서두는 베를린 박물관 홀에서 100여명의 터키 청소년들이 “제우스 제단을 반납하라”는 플래카드를 펴들고 약탈문화재 반납을 요구하는 시위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터키의 고대 유적지 페르가몬 인근도시 학생들이 다른 일로 독일에 왔을 때의 일이다.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이 왜 베를린에 와 있느냐는 터키 청소년들의 항의가 타당하다는 공감도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세기 들어 산업 강국으로 등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는 산업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주도권을 쥐고 싶어서’ 대형 박물관을 지었고, 지중해 연안 고대유적을 약탈하듯 수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그리스의 뛰어난 유물들은 모두 땅속에서 파내야 한다. 그 땅은 유물들의 고귀한 가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적 없이 탄생한 그 예술품들은 오직 프랑스에서만 고향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설립자 자크 르브레통의 이 말을 인용해 코른은 “당시의 발굴은 발굴이 아니라 약탈이었으며, 19세기에 첫발을 뗀 고고학이란 학문은 국가차원의 노략질이었다.”고 단언했다. 엘긴 대리석이라 불리는 유물이 대영박물관에 자리 잡은 경위가 ‘국가차원의 노략질’을 증명하고 있다. 19세기 초반 고대유물에 열광하던 영국귀족 엘긴은 때마침 오스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했다. 그 때 그리스는 오스만 터키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손쉽게 아크로폴리스 발굴허가를 얻어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 보호자를 자칭하던 시대였다. 1801년 400명으로 구성된 엘긴의 발굴단은 파르테논 신전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인물상 17개와 벽 장식판 96개 가운데 56개를 떼어내 영국으로 실어갔다. 얼마나 많이 벽 장식물을 떼어냈던지, 우지끈 소리를 내며 천정이 무너지려고 했다. 급히 벽돌기둥을 쌓아올려 간신이 붕괴를 막았다. “그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의 석상과 장식물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섬세한 걸작들이 다 부서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그 현장을 목격한 아테네 시민의 코멘트 속에 약소민족의 비애가 응축되어 있다. 그런 약탈상을 보다 못한 영국시인 바이런은 1811년 출간한 시집에 ‘피 흘리는 나라’ ‘서글픈 유산’이라는 시를 써넣었다. 영국의 야만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룩소르와 아부심벨 등의 이집트 유물들도 그렇게 파괴되었고, 걸작들은 모조리 해외로 실려 나갔다. 유럽 열강들이 이집트 땅을 놓고 각축전을 벌인 19세기 전반기, 13개나 되는 고대 신전의 벽이 모조리 헐렸다. 무함마드 알리 총독 시대 오스만 제국 관리들은 이집트 유적 발굴권을 헐값에 외국 발굴단에 팔아넘겼던 것이다. 유물을 더 빨리 더 많이 파내고 떼어내기 위해 유럽에서 기중기 같은 장비와 기계가 들어간 뒤로는, 파라오 시대의 찬란한 유적지가 급속히 폐허처럼 변해 갔다. 값지고 멋진 유물을 빨리 구해 오라는 본국정부 훈령에 따라, 이집트 주재 각국 대사들은 경쟁적으로 발굴과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 유적과, 신비에 싸인 트로이의 유물들도 그렇게 파헤쳐지고 파괴되어 강대국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그런 야만이 이제는 종식되었다고 보아도 좋은가. 이런 순진한 물음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과 미국의 골동품 수집가들이 고대 유물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이상, 유물들은 혼자서라도 무덤에서 기어 나와 국제 골동품 시장에 등장하고야 만다.” (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 )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0-30
- 훈민정음 4개국어 번역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립국어원(원장 이상규)은 한글날에 즈음해 훈민정음을 영어ㆍ중국어ㆍ몽골어ㆍ베트남어 등 4개 국어로 번역 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번역본은 국내 출판사인 도서출판 생각의나무에서 ''훈민정음''이란 제목으로 출판됐으며 4일 한글주간 선포식 때 공식 선보인다. 국어원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훈민정음을 외국인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영어본의 경우 훈민정음의 가치와 특징을 쉽게 해설한 글과 원문 및 그 현대 한국어 번역을 첨부했으며 부록으로는 원본의 참맛을 보게 한다는 취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영인 수록하기도 했다.훈민정음 해설은 서울대 김주원ㆍ이상억 교수가 맡았고 원전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강신항 성균관 명예교수가 담당했으며 영어판 번역은 신상순 전남대 명예교수가 했다.훈민정음은 세종이 직접 지었다는 서문과 새로 개발한 문자의 음가 및 운용방법인 ''예의'' 편이 본문처럼 되어 있고 이를 해설한 ''해례'' 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합자해, 용자례의 순서로 등장한다. 권말에는 정인지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http://blog.yonhapnews.co.kr/ts1406/taeshik@yna.co.kr(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8-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