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51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30대후반 여성고용률 급감 결혼·출산 늦어져 … 여성 전체고용률 50% 넘지 못해여성의 고용률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결혼과 함께 출산시기가 늦춰짐에 따라 30대 후반 여성의 고용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고용률은 15세이상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인구 중 실제 취업한 사람의 비중으로 취업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확대되면서 2007년 여성의 고용률이 48.9%까지 뛰어올랐으나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아 지난해에는 47.8%까지 내려 앉았다. 2000년에는 47.0%였다. 30대 후반인 35~39세의 여성들이 취업시장에서 큰 폭으로 이탈하고 있다. 30대 후반여성의 고용률은 2000년 57.7%에서 2007년과 2008년에는 57.4%까지 소폭 하락하는데 그쳤지만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9년에는 54.9%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54.3%로 추가 하락했다. 2년만에 3.1%p나 낮아진 것이다. 30대 초반은 2000년 47.3%에서 상승세를 타다가 2006년에 50%를 넘어섰고 금융위기로 2009년에 50.1%로 낮아졌으나 곧바로 회복, 지난해에는 52.9%로 올라섰다. 20대 초반과 후반의 여성 역시 2000년 고용률이 각각 56.3%, 52.5%였으나 4년제 대학진학률 상승과 졸업 연기 등으로 20대 후반의 취업률이 급증하면서 고용률이 역전됐다. 2003년엔 각각 56.5%, 58.1%로 20대 후반의 고용률이 20대 초반을 앞질렀고 이후 간격이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48.7%, 66.2%로 벌어졌다. 20대 후반여성이 가장 높은 고용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2007년부터 40대 초반을 앞지르며 고용률이 가장 높은 세대에 올랐다.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고용률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2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하락폭이 눈에 띄었다. 2000년 61.2%였던 20대 초반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53.5%로 낮아졌고 30대 후반 역시 59.3%에서 55.9%로 떨어졌다. 반면 20대 후반은 55.9%에서 69.8%로 큰 폭으로 높아졌으며 30대 초반 역시 48.8%에서 54.6%로 급등했다. 40~50대 여성들의 일하려는 의욕도 빠르게 높아졌다. 40대가 64.3%에서 65.8%로, 50대가 53.5%에서 57.9%로 뛰어올랐다.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7
- “일하고 싶은 열정이 취업의 문을 연다” 컴퓨터 켜지도 못하던 아줌마가 웹디자이너로 취직 … 3년간 밤새며 준비구청 문화센터·여성부 새일센터 활용 … "쇼핑몰 창업해 평생 일할 것"지난 13일 오후 7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공단 길로 꼬불꼬불 인도했다. 중소기업 '스톤닥터'가 콘테이너건물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웹디자이너 권복녀 씨(만 42세)가 마무리작업에 한창이었다. ◆일하고 싶은 열정 = 권 씨의 가슴엔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는 상고를 졸업한 후 모 회사에 취업했다가 종교색채가 너무 짙어 그만뒀다. 삼성물산에서 경리직으로 재취업했다. 부모님의 교통사고로 그만둘 때까지 5년간 근무했다. 막내였고 결혼전이었던 권 씨는 1년간 병치레를 도맡았다. 삼성물산 경리경험은 27살에 대우차 영업점에 취업하기에 충분한 경력이었다. 그는 영업점에서 영업사원들의 모습을 2년간 지켜봤다. 영업의 맛과 기술'을 간접적으로 습득했다. 권 씨는 "나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화장품 영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경리에서 화장품 영업으로 = 권복녀씨는 보고 배운대로 했다. 그는 "영업하던 직원이 너무 힘들어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고객 중 이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삿짐을 날라 줬다'고 했다"면서 "'아,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영업에 거부감이 없었다"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강하게 덤비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창가'만 빼고 다 갔다. 단란주점과 다방은 점심과 저녁 사이, 또는 저녁과 밤 사이에 간식 갖고 찾아가면 좋아했다. 식당에 가서는 설겆이도 하고 서빙도 했다. 다방에서는 식사를 하다가도 '빨리 와서 같이 먹자'고 할 정도였다.그는 "처음엔 아는 척조차 안하더니 자꾸 가니까 식구처럼 대해 줬다"면서 "영업이라는 것이 김장도 해주고 인간적으로 가까워져야지 그냥은 안된다"고 말했다. ◆10여년간의 공백을 깨고 = 29살에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아이 3명을 낳고 길렀다. 막내 아이가 4살되던 때인 지난 2007년, 40세로 접어들면서 '일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권 씨는 "돈도 필요했지만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발화점은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데에 있었다. 그는 "동사무소에 갔다가 누구든지 쓸 수 있는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 데 켜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결국 파워버튼을 찾지 못해 그냥 나왔다"면서 "오면서 생각하니 한심하고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학원에 가면 좋지만 한 과목에 수십만원을 내면서 배울 수는 없었다. 그의 눈에 '컴퓨터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성남시 수정구청 문화센터의 플랜카드가 들어왔다. 워드, 플레시, 포토숍 등 기초과정을 다녔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하루 3강좌(3시간)씩 6개월동안 배웠다. 그는 "처음엔 10%만 알아들었는데 자꾸 듣다보니 금방 습득이 돼 재미가 붙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삿집센터 홈페이지를 만드는 작업은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그는 "남편이 동업하고 있는 이삿집센터 홈페이지를 만들다 보니까 원하는 게 제대로 안됐다"면서 "문화센터에 가봤더니 기초 이상의 여러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동지들 = 권 씨는 '새일센터 홈페이지'를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새일센터는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여성 새로 일하는 센터의 준말이다. 출산, 육아 부담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국에 90개가 운영되고 있다. 직업상담, 직업교육훈련, 사후관리 등 종합취업지원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그는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어쩌다가 경기새일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갔다"면서 "홈페이지를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찾던 자바 스크립트, HTML, 웹디자인 등 프로그램이 모두 열려 있었다. 그는 이를 두고 "맘속에 간절히 원하면, 바라면 이뤄진다"고 표현했다. 그는 "어설프게 원한 게 아니다"면서 "잠을 못 자도록 간절했다"고 말했다. 새일센터에 가보니 한 반에 20명되는 사람들이 모두 '열정덩어리'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배우고 싶어했고 모든 사람이 목표가 있었다"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인데 오후 5시까지 가지 않고 서로 과제를 하면서 물어보고 도와줬다"고 전했다. 집에 가서는 네이트의 메신저프로그램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과제를 했다. 그는 "과제 때문에 새벽 2~3시는 기본이고 1주일에 몇 번이나 밤을 샜다"면서 "과제를 안 해가도 뭐라고 하진 않지만 목표가 있으니까 자신에게 떳떳하려고 숙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공부하니까 아이들도 제 일을 스스로 하고 처음엔 '그래 한번 해보라'던 남편도 스스로 아침 챙겨먹고 나가더라"고 덧붙였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 = 3년전만 해도 일자리를 찾아 새일센터를 찾는 사람은 40대 전후가 주류였다. 요즘은 30대 중반까지 내려갔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권 씨는 "사교육비가 여성들을 취업전선으로 끌어 당기고 있다"면서 "그러나 공부해 놓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10명이면 10명 모두 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 때문에 취업전선에 뛰어들려고 했다가 아이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오전 10~오후 6시까지 딱 하고 퇴근하면 좋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늦을 수도 있다"면서 "돈 몇 푼 벌겠다고 초등학생인 아이를 남의 손에 종일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부를 해놓고도 기껏해야 아르바이트 수준인 재택근무 밖에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중학생에 진입하게 되면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 식당에서 서빙도 안 시키고 설거지만 해야 한다"면서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것도 나이 들어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내 일이 생기니 내 꿈이 생겼어요" = 3년간의 공부를 거쳐 그는 해외에서 건설관련 약품을 독점공급하는 '스톤닥터'의 홈페이지 관리와 상품포장 디자인을 같이 맡고 있다. 취급하는 상품이 많아 관리하는 홈페이지만 3개다. 그는 "배우기 시작하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또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마트계산원정도만 원했는데 일보다는 개인 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서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쇼핑몰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2~3년 일하다가 쇼핑몰로 창업을 하려고 했는데 회사가 너무 좋아서 좀더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 회사의 제품이 우수해 이것을 인터넷에서 파는 쇼핑몰 대리점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장님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다"면서 매일같이 사업구상에 빠져 있음을 보여줬다. 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또 "내 일이 없을 때는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일을 생기고 연봉도 2000만원정도 되니까 집을 장만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면서 밝게 웃었다.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7
- 이주여성 정착 돕고 다문화 알리고 서울 은평구 '대조동, 아시아를 품다'한글 배운 여성들 자국 문화 가르쳐"오늘 얼마나 열심히 했나 볼까? 공책에 스티커 붙여줄게. 어떤 게 좋아?"13일 오후 5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주민자치회관. 9년 전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데이지 마르코스 박(37)씨가 초등학생 여섯명과 함께 영어수업을 진행 중이다. 1월부터 시작한 '꿈나무 어린이 영어회화 교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30분간 열린다. ◆필리핀 출신 주부가 영어 선생님 = "데이지 선생님은 필리핀 팡가시난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지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던 경력자예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연말 주민자치월례회의에서 그 경력을 활용한 정규강좌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김지영 대조동주민센터 주무관의 설명이다. 강좌 개설로 데이지씨는 매달 20만원 가량을 살림에 보탤 수 있게 됐고 지역 아이들은 단돈 1만원에 질 높은 회화 수업을 듣게 됐다. 데이지씨의 숨은 재주를 발굴한 건 대조동주민센터. 지난해 그가 대조동으로 이사온 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인 '대조동, 아시아를 품다'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대조동 전체 1만3600세대 가운데 다문화가정은 1%가 채 안되는 105가구. '아시아를 품다'는 그 가정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그들을 통해 아시아 각국 문화를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 출발은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전하는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었다. 동주민센터 작은도서관인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전명순(49·불광동)씨가 제안했다. 2007년 개설된 한국어교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다."수업에 참여한 중국 여성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졌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지식이 실제와 크게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이걸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면 좋겠다' 싶었죠."전씨는 "단순한 한국어교실과는 다른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학특강으로 시범사업을 해봤다. 노래 부르기, 만두 만들기, 의상 체험 등 문화체험 중심으로 '중국을 배워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정원이 찼다. 주민자치위원회에 마을의제로 제안하고 이주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건의했다. 그 덕에 몽골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주민자치회관에서 자국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어린이꿈나무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인 주부들이 보조교사로 참여, 도움을 준다. 이제는 캄보디아 베트남에 러시아 인도네시아까지 9개국 문화강좌가 열린다.◆문화적 포용력 키우는 계기 = 이주여성들은 대신 우리말 교육과 함께 문화 예술 요리 등 실내수업과 소풍 운동회 등 야회체험활동을 한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이름도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라고 붙였다. 전명순씨는 "처음에는 수업참여도 자원봉사자들이 챙겨야 했는데 이제는 한국인 봉사자를 이끌어가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여성들도 생겼다"고 평했다. 인근 갈현동이나 역촌동에서도 이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조동을 찾는다.남우현 대조동장은 "결혼이주 여성들에게는 수혜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서 긍지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포용력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교실 학생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변신한 데이지 박씨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라며 "아이들에게 다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7
- 혹시 나도 성인 ADHD?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하면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흔히 알고 있는데, 어른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산만하고 충동적, 공격적인 경향을 보인다면 ADHD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주부는 집 안 정리를 잘 못 하고, 냉장고에 썩는 음식이 즐비하다거나, 자주 울적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멀게만 느껴지던 성인 ADHD, 혹시 나는 아닐까? 이번 기회에 점검해보자. case 1. 박지영(가명·45) 주부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평소에도 지갑이나 수첩을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고, 책을 읽어도 집중을 못 하고 이해가 잘 안 됐다.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생기면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결국에는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등 생활하는 데 불편을 많이 겪어왔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산만하고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자주 들었다.case 2. 두 아이의 엄마인 이소민(가명·33)씨는 살림을 깔끔하게 하지 못하고 정리 정돈을 힘들어했다. 술과 담배를 못 끊는 문제로 남편과 갈등했고, 둘째 출산 후 6개월이 지나도 계속 기분이 우울하고 자살 충동까지 느껴 병원을 찾았다. 초기에는 우울증으로 진단 받아 항우울제를 복용했지만, 이씨의 성장 과정과 문제 행동을 검토한 결과 성인 ADHD로 재진단이 내려졌다. ADHD 치료 뒤에는 충동적인 부분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집 안 정리 정돈이나 아이들 챙기는 것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case 3. 회사원에 다니는 김정훈(가명·40)씨는 일할 때 집중이 잘 안 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든 케이스. 게다가 일의 효율이 떨어져서 마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늘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한 군데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여러 번 옮겨 다녔고, 회의 시간에는 다른 사람이 의견을 얘기할 때 중간중간 말을 가로막아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김씨는 결국 자신의 행동에 문제를 느끼고 평가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고, 어릴 때도 부산스럽고 산만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것이 원인이 되어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약물 처방 치료 2주 후 상기 증상들이 호전되어 집중이 잘 되고, 일하는 데 재미가 있다며 만족스러워 고 있다. 산만한 아이, 성인 ADHD 되는 경우 많아위의 사례를 보면 ADHD를 진단 받는 성인 남자들은 대체로 업무 집중력에 문제가 있거나 대인 관계로 힘들어하다 병원을 찾은 케이스가 많고, 성인 여자들 중에는 주로 결혼 후 살림과 정리 정돈을 힘들어하고 출산 후에는 건망증과 우울증을 겪는 케이스가 많았다. 이에 대해 보라매병원(서울의대) 신경정신과 최정석 교수는 “성인 ADHD는 집중을 못 하고 쉽게 지루해하며, 사소한 자극에 주의가 분산되는 증상을 보인다”면서 “약속을 잘 잊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간단한 일도 마무리하기 어렵고 잦은 실수를 반복하다 보면 대인 관계가 힘들고, 사회생활 하는 데 여러 문제들이 동반된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들의 주된 공통점을 보면 어린 시절에도 산만하고 충동적이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뇌 질환 전문 변한의원 변기원 원장은 “성인 ADHD는 어려서 ADHD 증상이 치료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증상이다. 불안, 초조, 불면, 주의력 결핍, 충동성, 강박, 우울 등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가정생활에도 지장을 준다”고 전한다. 선천적으로 뇌에 문제를 타고난다는 설이 유력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에게까지 이어지는 ADHD의 원인은 무엇일까? 경희의료원 신경정신과 반건호 교수는 “성인 ADHD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뇌영상 연구, 신경전달물질 연구, 유전학적 연구 중에서 특히 신경전달물질 연구에 나타난 ADHD의 과잉 행동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고, 주의력 문제는 노르에피네프린, 충동성은 세로토닌과 주로 관련된다는 가설이 지배적이다”라고 설명하면서 “현재로는 선천적으로 뇌에 문제가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뇌의 특정 부분 기능이 떨어졌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변기원 원장은 “양방에서는 유전적인 원인을 강조하여 주로 약을 처방하는데, 문제는 ADHD가 마치 전염병처럼 늘고 있다는 거다. 10년 전에 비해 무려 10배 정도 환자가 늘고 있다. 유전적인 원인이 사실이라면 이렇게까지 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지는 변 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알려진 원인으로는 유전, 환경, 신경화학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설은 아니다. 단 공통적인 특징은 뇌의 불균형이다. 인간의 뇌는 불균형을 유발하는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자극(게임이나 비디오, TV 등)에 노출되면 ADHD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반대로 좌우 뇌의 기능을 고루 올리면 이런 질환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ADHD는 환경에 많이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ADHD는 만성적, 약물과 인지 행동 치료 꾸준히 성인 ADHD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의 문제가 게으르거나 성격이 나빠서 생긴 것이 아닌 타고난 병임을 알게 해주는 것. 그다음으로는 뇌에 작용하는 약물 치료가 효과적이다. 대개 약물을 복용하면 2~3주 지나 효과가 나타나지만, 1주 만에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DHD는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질환이므로 약물 치료 기간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방법이나 기술은 약물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없다. 인지 행동 치료를 통해 체계적인 계획 세우기, 조직화 방법 등을 습득하면 분노와 충동 조절을 익힐 수 있다. 결혼한 환자는 가족 치료와 부부 치료가 동반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좌우 뇌의 기능적인 불균형을 진단하고 낮아진 뇌의 기능을 올리는 치료를 하는데, 이때 영양과 산소, 자극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은아 리포터 identity94@naver.com 도움말 반건호 교수(경희의료원 신경정신과)·변기원 원장(변한의원)최정석 교수(보라매병원 신경정신과)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7
- “손을 꼭 잡고 친구처럼 연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2008년 2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러브’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씨가 제작과 연출을 맡았고 김진태, 전양자, 황범식 등 내로라하는 중견 탤런트들이 출연했다. 이 뮤지컬은 노인이 직접 출연했으며 출연한 배우들의 평균연령이 60.6세, 최고령 배우는 76세였다. 바로 이런 사실이?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애초에 일반 배우들을 선발할 때 55세 이상으로 참가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실시해 최종 23명이 합격한 것이다. 합격자 중에 권영국(70)씨와 윤이남(65)씨는 실제 부부로 부부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현재 이들은 양재노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S_엔터테인먼트 소속 실버 모델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60세 이후에 뮤지컬 배우와 실버모델까지 하면서 젊은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인생을 펼쳐나가고 있다. 또한 건강하고 할 일이 많아 늘 바쁘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아 하루가 금방 간다. 무엇보다 이들은 언제나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은퇴 후에는 무슨 일이든 함께해 권영국씨와 윤이남씨는 27세와 22세에 중매로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2남 1녀를 연년생으로 줄줄이 낳아 열심히 키웠다. 권씨는 직장일로 늘 바빴지만 틈틈이 가족과 여행을 하기도 하고, 회사일로 좋은 식당에 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나 다음에 꼭 가족과 함께 다시 찾는 가정적인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가정에서는 모든 일에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중심을 지켰다. 그 덕분에 아내인 윤씨는 평생 다정한 어머니, 사랑스런 며느리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평생 백점짜리 남편과 살았다고 말한다. 리더쉽이 강하며 성격이 급한 남편이 화가 났을 때 내성적이며 조용한 아내는 늘 한발 뒤로 물러서서 참고 받아주면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남편은 언제나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고 말한다. 아내보다 직장생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던 권씨는 50세가 되던 해에 앞으로 모든 것을 아내와 함께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다. 은퇴 후에는 둘이서 봉사와 운동을 함께 다니고 것은 물론이고 스포츠 댄스, 가야금, 창, 사진 찍기 등 모든 것을 함께 배웠다. 같이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가 더 이해하고 한층 가까워졌다.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이들은 할 이야기가 많아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의 서막예전엔 지금처럼 노래방 기계가 없이 실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도 권씨는 팝송이나 일본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척척 부를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났었다. 하지만 윤씨는 집안에서 살림만 했던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남 앞에 나서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이런 두 사람이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7년 4월, 충무아트홀과 어린이문화예술학교에서 60대 이상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뮤지컬 실버파워’ 2기에 참여서 부터다. 그해 11월, 뮤지컬을 배운 수강생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마이웨이’를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했다. 그때 뮤지컬 ‘러브’ 관계자가 이 공연을 관람했고 수강생들에게 러브 오디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오디션을 거쳐 러브에 정식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다. 러브에서 권씨는 특별한 배역이 없이 춤과 노래를 연기했고, 윤씨는 치매 걸린 아돌프 부인 역을 맡았다. 남편은 “아내는 연기력이 아주 좋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치매에 걸린 것으로 알았다니까요”라고 자랑하면서 “이렇게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을 진작 알았다면 젊었을 때 연기 공부를 시켜보는 건데 아쉬워요”라고 말한다. 윤씨 역시 “무대에 서면 떨리지도 않고 저절로 몰입이 됩니다. 저도 제가 그런 끼가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두 사람은 러브에 출연하기위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섰을 때 정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1967년 12월, 그들은 지금 세종문화 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었고 결혼 40주년이 되던 해에 결혼식을 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뮤지컬 배우로 다시 섰기 때문이다. 권씨는 현재 중구 구립예술단 단원으로 매일 매일 연습하고 또 무대에 선다. 윤씨는 광고 모델로서 라이너 생명, 롯데 과자 쌀로별 등 광고를 많이 찍었다. 또한 ‘사랑의 힘’이란 주제로 배우들이 원불교 교무, 천주교 수녀님 역할로 등장하는 공익광고에도 참여했다. 광고주들은 윤씨가 배역을 잘 소화하고 연기를 잘해 소비자의 반응이 좋다고 평을 한다. 노년은 아름다워요즘도 윤씨는 유치원에서 어린이 구연동화를 하고, 권씨는 독거노인을 찾아 밑반찬도 전하고 말벗도 되어준다. 또 윤씨는 플루트를, 권씨는 색소폰을 연습해 봉사하는 곳에서 노인 생신 잔치가 있으면 연주를 하기도 한다. 최근엔 두 사람이 함께 복지회관에서 ‘노후의 삶이 행복한가’라는 주제로 강연도 하고 있다. 이 부부는 노년을 바쁘게 지내면서 자신감 있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말한다. “노년에는 욕심과 아집을 버리고 결승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마음을 합쳐 즐겁게 살아야지요”라고 말하며 두 사람은 두 손을 꼭 잡는다. 사진 스튜디오ZIP 박찬웅 작가 이희수 리포터naheesoo@dremawiz.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7
- 광주학생관현악단 제 6회 정기연주회 25일 오후 5시 30분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공연장초겨울의 문턱에서 사랑과 감동을 선사할 청소년 음악회가 열린다. 광주학생관현악단에서는 오는 25일 오후 5시 30분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공연장에서 제 6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랑의 선율’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며, 1부에서는 광주시립교향악단 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흥규 지휘자의 지휘로 ‘피가로의 결혼 서곡’, ‘헝가리 무곡 제 5번’, ‘페르시안 마치’ 등의 곡이 연주된다. 2부에서는 한국음악협회 광주지회장이며 광주청소년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있는 윤재근 지휘자의 지휘로 ‘시인과 농부’, ‘어린이 정경 중 제 17번 트로이메라이’, ‘헝가리 댄스 1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제 4악장’ 등이 연주된다. 또 소프라노 김선희씨와 바리톤 윤원중씨가 특별출연해 감동의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광주학생관현악단은 지난 2005년 서부교육지원청에서 창단해 바쁜 학업속에서도 꾸준히 연주 활동을 해왔으며, 해마다 정기연주회를 비롯, 찾아가는 사랑의 콘서트, 세계제주관악제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광주학생관현악단에서는 2011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단원을 모집한다. 자세한 문의는 서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조 한다. 문의 062-600-9637조 안 리포터 annarbor11@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0-11-29
- 재일교포 2세 30년만에 간첩누명 벗어 "형량 깎아주겠다" 가족회유 증언대 세워 … 법원 사형선고과거 군부정권 "한국말 잘하고 민족의식 강하다" 간첩 혐의'두 개의 조국'으로 갈린 모국에서 한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몰리던 시대가 있었다. 이헌치(59)씨. 13일 서울고등법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15년간 옥살이를 했던 세월은 되돌릴 수 없었다.이씨는 1952년 일본 오사카 출생 재일교포 2세다. 전범국 일본에서 어려서부터 차별을 겪었다. 민족의식을 소중히 여긴 재일교포들일수록 차별이 심했다. 그는 모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한국어를 능숙히 배웠다. 그리고 1977년 한국에 들어와서 79년엔 삼성전자에 특채됐다.1980년 국군보안사령부. 전두환의 쿠데타와 군부독재정권을 떠받친 공포의 권력기관이었다. 보안사 간부들은 검찰이나 중앙정보부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했다. 보안사 출신들이 정권실세로 위세를 날렸다.보안사는 '재일본 조총련 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 출신, 국어실력이 출중한 학생, 민족의식이 강한 학생'을 간첩혐의 중점대상자로 찍고 감시했다.이씨는 세가지 요건에 맞았다. 1981년 영장없이 보안사로 연행됐다. 19일간 불법구금된 채로 고문을 당했다. 한해 전 결혼한 부인도 끌려갔다. 양수가 터져 실려 갔고, 병원에서 첫아이를 낳았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갓 태어난 아이를 5분간 보여준 뒤 "아이를 빨리 보고 싶으면 자백하라"고 회유했다. "형량을 깎아주겠다"는 회유에 넘어간 형이 이씨의 간첩혐의를 입증 진술하는 비인도적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안사의 형량회유는 사기였다.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수사검사는 정형근 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씨가 검찰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자 정 검사는 그를 다시 보안사로 돌려보냈다. 다시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정형근의 행위는 다른 검사들보다 유별났다. 지난해 말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전주비빔밥 주인 간첩사건의 경우 보안사 수사관이 구치소로 면회를 와 압박했다. 혐의를 부인했을 때 다른 검사는 피의자를 다시 수사기관에 돌려보내진 않았다.대법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두차례 옥중자살을 기도했다. 96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진술이 강요됐고 유죄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서울고법 형사9부(최상열 부장판사)는 "불법 체포와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제출된 증거 중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 범죄 증명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20여일간 밀입북해 교육을 받은 뒤 한국 기업체에 취직, 국가기밀 등을 탐지해 보고했다는 덮어씌워진 혐의가 벗겨졌다. 이씨는 재판 직후 "실감이 나지 않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군부독재정권이 발표한 재일교포 간첩은 줄잡아 100여명. 해방되자마자 두동강 난 반쪽 조국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재일교포들은 분단세력의 눈에는 공안취약세력이었다. 일본에 있는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회'는 13일 "국가보안법으로 만들어진 재일동포희생자는 100명이 넘지만 명예회복을 한 이들은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3명에 불과하다"며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위를 대신할 국가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지난해 12월 재일동포재심변호인단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진병기 기자 ji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4
- 다이어트 위해 설사약 먹다 변비로 수술까지?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변비를 치료하기 위해 30대 주부 P씨가 찾아왔다. 살을 빼려고 단식원에도 다섯 차례나 갔었다는 그녀는 놀랍게도 거의 10년 동안 매일 설사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음식을 먹고 나면 수시로 설사약을 먹어요. 그렇지 않으면 살이 찔 것 같아 불안하거든요. 그래선지 설사약 없이는 스스로 변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결혼도 했고 지금처럼 계속 설사약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장운동 검사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그녀의 대장은 연동운동이 전혀 되지 않는 ‘게으른’ 상태까지 와있었다. 특히 횡행결장 부위가 아주 늘어져서 정상 크기의 3배 정도로 커지는 바람에, 이미 변비약을 먹어도 듣지 않는 지경이었다.변비 치료를 위해 장세척약을 1주일에 1번씩 복용케 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으나 임신이 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치료를 미뤄야 했다. 근본 치료는 출산 후 하기로 했다.그러나 출산 후에도 그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치료를 하루 이틀 미루었고, 결국에는 장세척 치료도 효과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남은 방법은 복강경 수술을 통해 무력화되어 그저 파이프 역할만 하는 대장을 전부 제거하는 것뿐이었다.P씨는 오로지 변비 때문에 수술을 한, 아주 드문 경우다. 일반적으로는 변비가 만성이 되어 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정확한 진단을 통해 원인과 증상을 파악한 후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식습관 개선과 배변훈련, 운동요법 등을 실시하면 대부분 증세가 호전된다. 수술은 선천성 거대결장증이나 직장류 등 배변활동과 연관된 기관에 이상이 생겼을 때만 실시한다.P씨의 경우 반복적인 설사약 복용과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 섭취 불균형으로 인해, 대장 근육이 스스로 운동하는 기능을 잃어버린 특발성 대장무력증으로 진행된 상태였다. 대장이 장 내용물을 항문 쪽으로 내보내는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장폐색 등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변비 치료를 3개월 이상 했어도 전혀 변을 볼 수가 없을 때는 장기능 검사를 통해 특발성 대장무력증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변비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특히 상당수 젊은 여성들이 심각한 변비를 앓고 있다. P씨처럼 몸매 관리를 위해 시도하는 다이어트가 대장과 항문 기능을 약화시켜 변비로 진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장의 자기조절 기능에 무리가 온 것을 모른 채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하고 그냥 견디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변비는 가벼운 질환이 아니다. 감기가 만병의 원인으로 발전하듯 변비도 쉽게 생각하고 방치하면 장질환이나 각종 항문병으로 이어진다. 여드름을 유발해 젊은 여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피부를 망칠 수도 있다. 일시적 변비가 아니라면 단순한 설사약 복용이나 무작정 참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이동근 대표원장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6
- 가스공사 통영본부 3200만원 성금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본부장 김성모)는 11일 통영시(시장 김동진)를 찾아 지역의 소외계층세대에 월동용품 및 인재육성장학기금 지원과 다문화가정 고향보내기 후원금으로 총 32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하였다.직원들의 포상 적립금 200만원은 통영시 인재육성장학기금으로, 1500만원은 결혼이주민을 위한 다문화가정 고향보내기 후원금으로,1500만원은 신애원 외 4개소 시설단체에 월동용품으로 전달하게 된다. 김성모 본부장은 "예년에 비해서 혹한이 잦은 동절기에는 공사에서 준비한 월동용품으로 주변 소외계층의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는 무료급식, 반찬배달 사업에 9년동안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설치 사업, 1사 1연안 가꾸기 사업과 1사 1문화재 지킴이 운동 등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5
- [새책마당]마오II 존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창비. 1만3천원개인의 상실, 매스미디어의 횡포, 군중의 폭력성 등을 주제로 한 미국작가 돈 드릴로의 신작. 주인공 빌 그레이는 세계적인 작가지만 은거하면서 더 이상 작품 출판을 거부하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끊임없이 그를 대중 속으로 소환하려 한다. 그의 눈에 비친 현대적인 매스미디어와 테러리즘은 과잉된 이미지와 소비주의, 집단주의에 사로잡힌 군중의 광기어린 작태일 뿐이다. 그는 사진작가 브리타에게 촬영을 허락함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고 출판업자의 제안으로 기자회견에 나가기로 결심하지만 테러집단의 방해로 기자회견이 무산된다.이 작품은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통일교의 집단결혼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영적인 결혼을 맹세하는 것에대한 기대와 흥분의 도가니지만, 관중석에 있는 캐런의 부모는 멀쩡한 딸을 꼬드겨 납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 그 광적인 종교의 정체를 의심한다. 작가는 "미래는 군중의 것"이라는 선언으로 개인의 죽음을 알린다.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1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