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내일시론> 정치권, 표만 세는 ‘해충’인가(신명식 2001.11.27)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사이트가 있다. 해충구제업체의 홈페이지인데, 네티즌의 엉뚱한 질문에 워낙 진지하게 답을 하다보니 꽤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이 사이트에서 올해 최고의 히트작은 꽤나 엽기적이다. “국회의원이라는 해충이 있는데 어떻게 박멸할 수 있나요?” “샘플을 하나 보내주시면 연구해서 퇴치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요즘 정치권이 하는 일을 보면 이런 조롱을 받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벌이고 있다. 거대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며 분란이 한창이다. 교원정년 단축은 김대중 정부가 자랑하는 업적이다. 62세 정년을 63세로 되돌려놓겠다는 한나라당의 시도는 거대야당의 첫 작품치고는 너무 졸작이다. 하필이면 전 국민의 80% 지지를 받아 통과된 교육공무원법을 제일 먼저 손댈 것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이 내년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 비록 소수이지만 확실한 ‘표’를 의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과는 소탐대실이고, 긁어부스럼을 만든 꼴이 됐다. 학부모단체나 젊은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나라당은 29일 본회의 강행처리에서 한발을 뺐다. 그러나 26일 이회창 총재가 “기존 당론에 전혀 변화가 없다”며 “원칙대로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리자 다시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거대야당의 첫 작품, 교육공무원법 개정은 졸작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거대야당이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 일까. 이회창 총재는 11월초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제출방침을 밝혔다. 바로 한나라당 소속의원 전원명의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혹시 이 총재의 지도력에 흠집이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나라당이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10·25 보선을 통해 나타난 민의도 무시당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보선이후 ‘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추진하고 있는 몇 가지 입법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DJP공조를 바탕으로 밀어붙인 것이라하더라도, 불과 2~3년만에 원점으로 돌리기에는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은 것들이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북한 퍼주기’를 막는다며,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하려면 기금운용계획안을 회계연도 8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기금의 20% 이상을 변경하거나 5억원 이상을 사용할 경우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위원회 위원 선임을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가 각 3인씩 추천토록 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9명 중 2명은 대통령이, 나머지 7명은 국회에서 의석 비율로 추천하자고 주장한다. 야당은 국세청의 자의적 세무조사를 막기 위해 조사대상과 조건을 엄격히 명시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두 야당은 인사청문회 대상에 국무총리 이외에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금융감독원장 경찰청장 등을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은 위헌소지가 있다며 모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이런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야당 졸작 환호, 특소세 꼼수 즐긴 여당의 경박함 한나라당이 첫발을 잘못 딛자 민주당은 내심 환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당이 하는 것을 보면 영 미덥지 못하다. 한나라당을 국정상대로 생각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기보다는 특소세법 처리에서 보듯 꼼수나 즐기고,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한때’ 집권여당이라고 보기에는 함량미달이다. 이러다보니 민생 관련 입법조차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내년 1월 1일 시행예정인 건강보험재정 통합을 앞두고 여아가 통합이냐 분리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이 문제도 시민단체나 노조가 통합지지파와 분리파로 뚜렷이 갈리기 때문에 각 정당은 ‘표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쁘다. ‘위기의 농촌’도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운명이 갈리고 있다. 93년 우루과이라운드이후 우리가 시간을 벌었다고, 추곡수매가를 인상하며 농민표 얻기에 매달릴 때 일본은 농촌의 구조를 확 바꾸어버렸다. 6조원대의 UR대책 재원도 마련, 농가소득안정과 농업경쟁력 강화에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양곡유통위원회가 내년도 쌀 수매가 4~5% 인하를 정부에 건의하자 여야는 일치된 목소리로 ‘불가’를 외치는 형편이다. 할 일은 쌓여있는데, 정치권은 오로지 ‘표’ 만 세고 있다. 이래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이 세월만 갈 뿐이다. 정말 해충의 샘플을 하나 구해서 그 유명한 해충구제업체에 보내면 해법이 나올까. /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2001-11-28
- 부음 원로가수 원방현 씨 별세 오랜 세월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 ‘꽃 중에 꽃’을 부른 원로가수 원방현 씨가 16일 오전 5시4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47년 서울 중앙방송국 제1기 전속가수로 데뷔해 ‘봉덕사 종소리’ ‘달려라 청춘마차’ 등의 대표곡을 남긴 고인은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을 거쳐 치안본부 정보과에서 근무하다 5·16 직후 사임한 뒤 가수 활동에만 전념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연식씨와 아들 태선(썬스타 산업봉제기계 이사), 태철(아주레미콘 사원), 태건(자영업)씨가 있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서울 한양대병원 영안실. (02)2290-9457. ▲안병영(연세대 교수)씨 모친상, 김상용(서울대 명예교수)씨 빙모상, 15일 오후 2시30분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362-1099 ▲금경철(대전MBC 카메라 취재 부국장)씨 부친상, 15일 오후 9시 경북 포항시 포항시의료원(구 동해의료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54)248-8099 ▲박용갑(선문대교수)씨 빙부상, 16일 오전 5시40분 분당제생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031-705-8056 ▲이양용(한국후지제록스 총무부 차장)씨 모친상, 1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40분, (02)3010-2261 ▲이종한(씨트랜스해운 이사). 종경(홍콩소재 골든게이트 화이스트 대표)씨 부친상, 이태호(성우 전무이사). 이병태(태남전자 대표이사)씨 빙부상, 16일 오전 10시20분 서울중앙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 연락처 (02)3010-2268 ▲이문수(현대자동차 상무), 강수(전 서울시 공무원). 이대수(전 서울민사지법 공무원)씨 모친상, 16일 오전 11시 서울중앙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연락처 (02)3010-2295 2001-12-16
- <IT@기고> 그래도 희망은 벤처다(얼굴사진) 지난 몇 년간 우리 경제는 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신화를 이끌었던 일부 대기업들은 ‘대마불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힘없이 무너져 버렸으며, 경쟁력을 상실한 일부 은행들의 시장퇴출도 이어졌다. 한편 그 빈자리를 메워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벤처기업이 부각되면서 이른바 '벤처 붐'이 형성되었고 많은 스타벤처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엔 '거품'도 있었다. 일부 벤처기업이 코스닥 시장을 통한 머니게임에 몰두하면서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났고, ‘묻지마 투자’에 열을 올렸던 일부 투자가들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최근 벤처업계가 맞고 있는 어려움은 바로 이러한 거품이 걷히는 과정이라 보아야 한다. 벤처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닌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덕밸리는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연구원 창업이 활기를 띠던 지난 95년경부터 30여년 역사의 '연구단지'라는 자양분을 먹으면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약 700여개의 벤처기업이 최고의 기술수준을 자랑하며 21세기 지식·정보·벤처강국의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덕밸리는 전국 어느 곳과도 차별되는 그만의 특징을 뚜렷이 지니고 있다. 우선 타 도시의 경우 기존 기업이 벤처기업으로 전환된 경우가 주류를 이루는반면 대덕밸리는 연구원 신규창업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대덕밸리의 연구원 창업비율은 약 60%이며 업력 2~3년 미만 기업이 80%에 이르고 있다. 결국 대덕밸리는 젊고 미래의 잠재력으로 충만한 지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술창업의 경우 R&D 및 상업화 기간이 다소 길지는 모르나 일단 성공할 경우 그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대덕밸리의 진정한 가치는 현재의 성적표가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하나의 예로 지난 1년간의 대덕밸리 벤처기업의 수출실적을 보면, 올 9월말 기준 수출총액은 2700만달러로 아직 전국에서 12위에 불과하지만 그 신장율은 전국 2위로 나타났다. 대덕밸리의 빠른 성장을 짐작케 하는 통계이다. 놀라운 성적표는 또 있다. 지난 10월에는 종업원 30여명의 (주)지니텍이 반도체장비의 원천기술을 네덜란드 ASM사에 수출하여 2000억원의 매출예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대덕밸리가 기술력만 뛰어나지 실제 마케팅에는 약하지 않느냐는 일부의 시선을 불식시켜준 좋은 예이다. 대덕밸리는 그 이름을 갖게 된지가 이제 막 한 돌이 지났다. 오늘의 실리콘밸리가 있기까지 약 7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걸 보면 우린 이제 시작인 것이다. 앞으로 대덕밸리는 21세기 한국경제의 확실한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이렇게 되뇌어본다. ‘그래도 희망은 벤처다.’ 2001-12-11
- 사랑이 있어 포근한 겨울 <익산1면 꼭지> <사진2장 있음>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햇살 전하는 사랑의 전령사 숨은 선행 펼치는 시민… 환자 가족 위로하는 병원 직원들 힘겨운 세밑을 맡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티 없이 맑게 자라야 할 시절에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전하는 고만운 손길이 있는가 하면, 병원 직원들이 가족의 투병으로 힘겨워 하는 환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열어 이들을 격려하는 등 미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립 아동과 자매결연… 직접 키운 배추로 김장도 담가줘 익산시 중앙동 최헌수씨 등은 지난 6일 시내 한 예식장에서 ‘불우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후원의 밤’을 열었다. 환한 불빛이 가득한 행사장에는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즐거움이 떠나지 않았다. 행사장의 주인은 최씨 등과 지난 3월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한 가족이 된 함라초등학교와 이리초등 학생들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대신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먼저 배워야 했던 자립 아동들이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아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 등 누구보다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이다. 행사를 준비한 최씨 등이 이들 아이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3월. 극구 대답을 거절했던 최씨 등이 꺼낸 말은 “그냥 힘 닿는 선에서 돕고 싶었다”는 것이다. 함라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뒤 이리초등 아이들까지 함께 하게 됐다. 지금까지 17명의 자립아동에게 매달 20kg의 ‘사랑의 쌀’을 전하고 있다. 최헌수씨는 “더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너무 적어 오히려 부끄럽다”면서 “지역사회의 많은 분들이 나서서 함께 참여한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함께 참여한 배종산씨는 손수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해 아이들의 집에 전달했다. 배씨는 “정성들여 키운 배추로 아이들이 겨울을 날 생각을 하니 내가 부자가 된 것 같다”면서 오히려 자기가 더 고맙단다. 앞으로는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이 늘어나 아이들이 덜 힘들게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마련해 볼 계획이다. 물질에 앞서 사랑과 온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적지만 ‘내 것’을 전하는 이들 전령사 덕분에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투병중인 환자 가족과 함께한 격려 잔치 사랑의 전령사는 이들 뿐만이 아니다. 원광대학병원(원장 채권묵)은 투병중인 환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 잔치마당을 펼쳐 지친 삶에 활력을 넣어 줬다. 지난 7일 병원 로비에서 열린 잔치마당은 병원 직원들과 환자, 보호자 등 500여명이 한데 어우러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 오랜세월 중풍으로 10동 병동에 입원해 있는 정전모 환자는 ‘막내딸에게 고마움을 대신 전하겠다’며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나와 열창을 해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인공신장실에서는 박옥례 수간호사 등 간호사 8명으로 구성된 백댄서들이 만성신부전증으로 입원해 있는 안재영 환자와 함께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해 있는 가족을 간호하고 있는 김숙희씨는 “답답했던 생활이 시원해 진 느낌이다”면서 “특히 어렵게 느껴졌던 의사분들이 무대 의상을 입고 나와 훨씬 친해졌다”고 말했다. 채권묵 병원장은 “오랜 투병생활에 지쳐 있는 환자나 쉽지 않은 환자 간호를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세우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앞으로도 병원 직원들이 항상 함께 해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복지관 순회하며 무료진료하는 한의사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3년째 인술을 펼치는 한의사도 전령사중 하나이다. 부송한의원 임은규(37세) 원장은 지난 99년부터 격주로 부송사회복지관을 찾아 마을 노인들을 진료하고 있다. 부송사회복지관의 점심시간이 되면 어디라고 짚을 수도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쑤시고 결린 노인분들은 임 원장을 맞는다. 침도 놔주고 약도 주는 고마운 한의사의 선행 소문을 들을 노인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벌써 4번째라는 정필례(83세) 할머니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노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치료를 해 주는 선생님이 어디 많으냐”면서 “아프던 곳도 한번 왔다 가면 개운해진다”고 좋아한다. 노인을 위한 주간보호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는 임 원장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분들인데 기왕에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할 뿐”이라면서 “노인분들이 좋아하시니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말한다. 임 원장은 또한 “노인분들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시설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작은 힘이나마 열심히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밖에도 이름 모를 많은 시민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전하는 사랑과 온정이 있어 어느해 보다 포근한 겨울이 될 것이다. 이명환 기자 김윤실 리포터 mhan@naeil.com 2001-12-10
- 발자국 자리마다 가락이, 꽃이 … 부적처럼 지녀 온 날 돌아가리 그 벼랑 앞/ 저물녘 진혼곡도 이제는 버릇되어/ 귀향이 망향 된다 해도 불러보는 그 안부……. (적(跡) 중) 시조시인 한춘섭(60) 씨의 첫 시조집 ‘적(跡)’(동학사)이 출간되었다. 1966년 으로 등단 이후 국문학자, 향토사학가로도 살아왔던 시인은 육신의 나이로 갑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주옥같은 시조들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등단 나이로는 삼십 오년만이다. 이번 시조집 출간은 최근의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등단하자마자 연례 행사처럼 시집을 묶는 근래의 시단 풍토를 보면, 한 시인의 이번 시조집 출간은 더디어도 한참 더딘 일이다. 더구나 , 등의 저서로 시조사 연구에 큰 획을 그어왔던 것은 물론, 활발한 시작발표를 해왔던 그이기에 ‘더딤’은 시단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가 인생을 한 바퀴 돌아온 갑년인데, 이 쯤이면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듯 싶었지요.” 시인의 나이만큼 채워진 꼭 60편의 시조들은 세월의 풍랑속에 거친 모서리를 깎아내고 둥그런 품으로 우리네 삶을 껴안고 있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선택된 시조들인 만큼, 시조집에서는 굵직한 밀도가 느껴진다. ‘한 무리 떠돌기를/ 솔잎 새 바람이듯/ 흐르는 머언 둘레/ 풀잎 새 이슬이듯(‘풍경’ 중)’ 낮은 목소리로 자연과 향토, 신앙과 민족혼을 노래해 온 그의 시조는 이제 한 권의 책으로 가슴을 열어보인다. 내용은 ‘시조시 앞에’, ‘고향 사계사’, ‘십자가’ 등 7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마다 순수서정, 향수, 신앙, 민족혼 등 주제와 시어, 표현법 등이 다양해서, 고전적인 시조의 작품성부터 대담하게 장르의 변형을 가져온 것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조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굵직한 역사의 장을 녹여낸 연작시조들이 눈길을 끈다. 8년간 연재하여 문단에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던 ‘녹슨 철마, 그 언저리’ 는 40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시조. 시인은 ‘바람은/ 남북 분계선/ 갈대 소리 썰고 있다(11편 중)’ 며 분단의 상흔을 어루만진다. 또한 ‘만세터 할아버지’, ‘탄천둑’ 등의 시조에서는 시인의 성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성남 골목골목의 이름을 짓기도 했던 그는 ‘내 핏줄 후대거니/ 팔도 사람 어울마당(성남이야기2 중)’ 으로 삶의 터를 영혼의 터로 승화시킨다. 한 시인은 중국의 좌익작가였던 노신(1881-1936)의 정신을 거울로 삼는다. 문학은 국민정신에 등불을 밝히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요즈음 팽배하는 개인의 신변잡기식 시들은 한 시인에게는 아쉬움이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시조가 고매한 차(茶)향으로 독자에게 와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아련하게 간직할 만한 향토와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후배시인들이 그의 향토미학을 가리켜 ‘내 뿌리를 가장 아프게 사랑한 이정표’ 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이제 됐다’ 고 하여 책으로 엮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반평생 시인의 궤적을 이렇게 엮어놓고, 시인은 또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跡)을 내딛고 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어있지 않을까. /고은주 리포터 milkypower@hanmail.net 2001-11-09
- 입은 거지, 벗은 거지 재수없는 친구 놈이 있습니다. 아니, 친구 놈도 아니지요. 만나기만 하면 꼬리한 눈으로 사람을 훑어보고 어디 구린 데는 없나 살핍니다. 그러면서 항상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어요. 마치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바란 양 말이예요. 자기한테 연락을 한 하면 무조건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요? 밥 먹고 할 지랄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그만 오퍼상을 하는데 일하는 직원이 없어서 얼마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어요. 출장 중에 다녀갔던 모양이지요? 얼마 만에 와서는 한다는 말이 참 꼴값이더군요. “문이 며칠 째 닫혀 있어서 어쩐 일인가,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했다. 전화해도 안받고, 휴대폰도 꺼 있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 걱정 많이 했어.” 망했나 했겠죠. 이상한 위로를 지껄이더군요. 그러면서 사무실 안을 휘휘 둘러 봐요. 뭐 수상한 낌새가 없나 하는 얼굴로 말이죠. 전화를 하자니 꼬리하고, 안 하자니 쓸데없는 말을 또 듣겠고 진퇴양난입니다. 교묘하게 사람 부아를 돋구는 취미를 가진 모양입니다. 이러니 어쩌다 생각만 떠 올라도 이빨에 실이 낀 것처럼 불편한 심정이랍니다. 원치도 않게 찾아와서는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살피고 정말 죽을 맛이랍니다. 멍청하게 한 10년 넘게 질질 끌려가며 괴롭힘을 당했답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지난 삼 년간 소식이 없더라구요. 지말대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요? 쓸데없는 전화질도 안하고 염장 지르던 인간을 안보니 살 것 같더라구요. 참 잘 지냈지요. 그런데 오늘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를 떨더군요.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했다나요? 그래서 3년 동안 잠수를 했나 보다고 생각했다며 여전히 떠벌이더군요. “야-. 밖에 나가니 우리나라가 보이더라구. 이번에 일 때문에 나가 있어 보니 앞이 보이는데 아찔한 기분이었다니까. 하하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쫘악 빼 입고 와서 묻지도 않는 내게 명함을 내밀며 그간 있었던 일을 자랑하더군요. 명함을 보니 온통 영어로 써있었어요. 내가 우물쭈물 들여다보자 한마디 거들더군요. “이번에 중앙아시아 건을 따느라고 바빴다. 하하하.” 세월의 허풍을 잡는 사내가 바로 이 이상야릇한 친구 놈이랍니다. 그 동안 이 인간한테 받은 명함이 줄잡아 30개가 넘습니다. 영어를 좀 하니 어떤 작자가 데리고 다니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했겠죠. 그럴듯한 명함 하나 만들어서 말입니다. “얼마나 나가 있었는데?” 내가 시큰둥하게 물었습니다. “아-, 한 이십 일 되나? 하하하. 너도 좀 시야를 넓혀 봐라. 그리고 옷 꼴이 그게 뭐냐?” 아이고, 몇 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다가 얼마 전에 외국을 다녀온 모양입니다. 그걸 가지고 마치 몇 년 동안 외국에 살다 온 양 떠벌이는 인간이 슬슬 불쌍해 보였습니다. 뭔 일을 꾸미는지, 아니면 거창하게 뭔 일을 하려고 하는지 관심도 없는데 자꾸 떠들어대더군요. 바빠 죽겠는데 말이죠. “야-. 입은 거지, 벗은 거지란 말도 있잖아, 임마. 넌 언제까지 이런 쬐꼬만 구멍가게에서 인생 조질래. 푼돈이나 만지고 얼굴 새카맣게 되도록 고생하고 말야. 하하하.” 어찌나 잘난 척을 하며 웃어 대는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꾹꾹 참았습니다. 실컷 떠들어라. 이제 정말 오늘로 끝이다, 임마! “배 고프냐?” 그 놈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게 나는지 나도 모르게 물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놈이 잘난 척은…. 미친 놈. 내 밑에서는 죽어도 일 못하겠다는 놈이 밥을 시켜 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더군요. 내참. 결국 그 잘난 척 하려고 온 것도 온 거지만, 밥 한끼 해결하려고 한 시간이 넘게 ‘하하하’ 허풍을 떨었더라구요. 이걸 내쳐, 말아. 밥 먹으며 내내 마음의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2001-11-09
- 클릭! 이사람-이완엽 광주프린스관광호텔 대표이사 광주시에는 관광호텔이 몇 개 안된다. 그나마 특급·1급으로 매겨진 대표 호텔조차 수년전부터 부도로 법정관리 상태다. 게다가 대출금 이자연체 등 경영난을 겪고 있어 ‘호텔업계 전멸’ 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 와중에 부도로 호텔을 다른 사람 손으로 넘긴지 6년만에 다시 사들여 재기에 성공한 중견 호텔리어가 있다. 바로 광주프린스관광호텔 이완엽(55)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정통 호텔리어 출신은 아니다. 그의 호텔생활은 88년 광주로 내려와 시티힐 호텔(현 프린스 호텔)을 건립하고 전무로 근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이전에는 몇 년 동안 교편생활을 했고 서울 여의도에서 큰 식당을 운영했다. 이후 주택산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경영능력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이 대표는 서비스업에 대해 체득했다. 이 대표 스스로 “호텔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가 좋으면 손님은 찾아오게 돼있다. 호텔의 장단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법이 필요한지, 서비스에 대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호텔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꿰고 있다. 뿐만 아니다. 고객들의 자동차 문을 열어주고 인사하며 고객을 모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직접 고객의 손발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호텔 경영 7년 만에 부도를 맞은 것. “건립할 때 투자비용이 너무 많았던 거죠. 부채비율이 높은데다가 당시(95년) 고금리(12.5%)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거기다 다른 투자 비용도 경영에 부담이 됐죠.” 50대를 눈앞에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바친 호텔리어 인생을 일단 접어야 했다. 좌절과 고통의 세월. 그렇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해 8월 영업권을 인수한데 이어 올해 3월 경매에 붙여진 호텔을 오너로서 인수한 것이다. “그토록 애착이 같던 호텔을 그만둘 수 없었죠. 분리 매각으로 접촉을 했고 인수문제가 쉽게 풀렸습니다. 그동안 뒤돌아보거나 좌우를 살필 기회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아무래도 밑에 있는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지난 2년동안 프린스 호텔은 시시각각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1층 공간과 매니저가 쓰던 2층 공간 200평에 각각 호프 바와 재즈 바를 만들었다. 라이브 무대와 악기 공연 등 삼삼오오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가격은 일반 대중음식 값 수준. 또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각 층의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재떨이를 식물 화분에서, 이제는 난 꽃으로 날마다 바꾸고 있다. “난 꽃으로 바꾸고 나니 고객들도 차마 담배꽁초를 버리지 못하더군요. 덕분에 객실 고객들이 아주 만족해 합니다.” 고객이 보고 느끼며 감동을 받는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십년 동안 고정화된 침실 침구세트를 집에서 덮는 이불세트로 바꿔나가고 있다. “기존 침구세트는 깔끔한 반면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은 떨어지죠. 그래서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포근함을 갖도록 변화를 준겁니다. 머리맡에 놓은 고객의견서마다 훨씬 좋다는 응답이었어요. 매달 객실 3∼4개씩 바꾸고 있습니다.” 커피숍의 화분들, 식사테이블의 냅킨조차도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각각 자리와 색상이 달라진다. 사우나 이용료도 8000원에서 3000원으로 대폭 인하해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나(간부)부터 솔선수범하고 모범이 되어달라”고 간부회의 때마다 강조한다는 이 대표는 실제 가장 먼저 일찍 출근하고 당직 지배인 올 때를 기다려 맨 나중에 퇴근한다. 오너지만 독립공간 없이 지하실에서 총무과 직원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운(?)도 따라줬다. 이를 둘러본 대출융자 은행원이 “경영력이 허세가 아니다. 믿고 돈 빌려줄 수 있겠다”고 한 것. 솔선수범도 좋지만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죠. 직원들 모두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인건비를 상승시켜 보상을 받으니까 힘들더라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재 인수 후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일하는 이 대표를 고객들은 ‘폼 내지 않는 오너, 일밖에 모르는 사람, 언제 와도 얼굴 볼 수 있는 호텔리어’라고 말한다. 그만큼 프린스 호텔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고 고객들의 신뢰도 크다. 2001-12-10
- 겸암정 뚝향나무는 ‘영변의 약산 향나무’ 김소월 님의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영변의 향나무가 안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와룡 두루 진성 이씨 종택에 가면 특이한 모양을 한 향나무 한 그루가 있어 눈길을 끈다. 안두막한 높이에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펑퍼짐하게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보기에도 멋스럽다. 소백산에서 예고계를 넘어 금학산을 지나 수창산을 거쳐 와룡에 이르러 오룡봉이 우뚝 자리를 잡는다.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두루 종택은 소백산에서 줄기차게 이어온 뒷산도 수려하거니와 앞에 보이는 안산도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 600년을 지켜온 종가터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반달은 희망과 성장 발전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보름달이 꽉 찬 달이어서 기울어짐을 의미한다면 반달은 새로 채워지는 달로 생명의 약동과 번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흔히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뚝향나무는 바로 이 반달 모양의 안산을 바라보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종가에 딸린 경류정 마루에 앉아 있으면 한없이 넓게 퍼져나가는 향나무와 새색시의 입술 같은 반달의 안산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향나무의 푸른 기상과 안산의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집주인의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전설 속의 이정 장군 이 향나무는 퇴계 선생의 증조부이신 이정(李禎)공이 영변 약산에서 가져다 심었다. 이정 공의 용맹은 대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 제비원미륵상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만 예전에는 주위 바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비를 맞지 않게 했다. 그 높이가 돌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수십 길이나 되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없는 높은 곳이었다. 이정 공은 이곳을 자신의 무공 수련 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주위의 돌과 돌을 옮겨다니기도 하고 주위의 지형을 이용하여 무술을 연마하였다. 그리고 석불 지붕에 올라가 공중 회전하여 뛰어 내리는 훈련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다. 공이 최윤덕 장군-세종 때 여진족을 정벌한 공으로 우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使)에 이르렀다-을 따라 건주위(建州衛)에 종군했을 때의 일이다. 건주위는 조선 태종 때 여진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으로 건주본위, 건주우위, 건주좌위 등으로 나뉘었으며, 세종 때 최덕원, 이장(李藏)이 2차에 걸쳐 정벌하고 세조와 성종 때 각각 2차에 걸쳐 다시 정벌하였으나 완전히 소탕되지는 못했다. 이 건주위는 여진이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의 세력이 약한 틈을 타서 세력을 신장하여 청을 건설했던 험준한 산골이어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공이 이곳에 부임했을 때도 큰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아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호랑이는 인근 사람은 물론 가축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니 백성들이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래서 최덕원이 유능한 포수를 모집하여 호랑이를 잡으려고 할 때 이정 공이 자청하였다. “장차 오랑캐를 치려고 하는데 내가 미리 이 호랑이를 잡아 나의 용기와 근력을 시험해 보겠다”하고 즉시 말을 달려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호랑이는 이 공을 보자 으르렁대면서 말 뒷덜미를 박차고 뛰어 오르며 공격해 왔다. 공은 날쌔게 말머리를 돌려 호랑이를 활로 쏘아 나뒹굴게 하였으니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탄복을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이정(李禎) 공은 정주판관을 지낼 때 평안북도 약산 산성 축조를 한 공로가 있었다. 약산성은 평안북도 영변 서쪽 12km 지점에 있는데, 관아의 남쪽에 있는 운주루는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그 유명한 약산동대(藥山東臺)이다. 이 약산은 사방이 높은 암석으로 깎아지른 듯이 높아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의주 삭주 강계 등 인근의 군사를 모으기에 가장 좋으며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한 지역이다. 이정 공은 1429년 약산성을 무사히 축조하고 돌아올 때에 다른 재물은 다 버리고 향나무 세 그루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두루종택 앞에 심었고, 또 한 그루는 이정 공의 셋째 아들 판서공 계양이 온혜에서 터를 잡아 집을 지을 때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그루는 화분에 담아 기르며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며 곁에 두고 길렀었다. 그러다가 선산부사 시절 박근손을 사위로 삼게 되었다. 박근손(朴謹孫)은 선산(해평) 박씨로 육 자매(남백경, 류봉수,전보문, 이주, 박근손, 권종) 중 넷째 사위이다. 그 후 선산 부사를 마치고 돌아 올 때에 사위가 너무 사랑스러웠던지 화분의 향나무를 사위에게 주었다고 한다. 자랑할 것은 굳은 지조 세 그루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경류정 정자 앞에 서 있는 뚝향나무 한 그루뿐이다. 온혜 노송정 종택에 있던 것은 노송이 되어 여러 번의 전란과 관리의 잘못으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사위 박근손에게 준 한 그루도 잘 자라다가 임진왜란 때 전란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경류정에 있는 향나무는 600년의 세월을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공의 14대손 이만인(李晩寅)은 그가 쓴 경류정 노송기(慶流亭 老松記-松은 향나무를 가리킴)에서 “향나무는 차가운 계절에도 지조가 있는 나무이다. 지금 바야흐로 차가운 계절(일제시대)이 되어 곤궁하더라도 의리를 잃지 말고 절개를 지키기에 더욱 힘써서 조선의 근본 뜻을 더럽히지 말아야만 이 향나무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더불어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적고 있다. 지금도 그 후손들은 이만인의 다짐처럼 뚝향나무의 푸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구한말의 의병과 일제치하의 독립투사들의 기개도 이러한 향나무의 숨은 뜻이 담겨있었음일 것이다. 가문의 자랑이 높은 벼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굳은 지조를 지켰던 의병과 독립투사가 많았던 것이 자랑이라는 이 집안 어른들의 말은 올곧은 양반 정신이 이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었던 옛 어른들의 모습에서 그저 물질에만 의존하는 오늘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안동문화 지킴이 11호에서 새로 정리하였음. 김호태 경일고 교사 2001-12-10
- “상 받는 것 자체가 부끄럽네요” 정보화·세계화로 인해 개개인으로는 점차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지만 편해지는 만큼 우리 고유의 전통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기도 하다. '효(孝) 사상'이 사라져 가는 대표적인 전통가치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점점 개인적으로 변해 가는 세태와는 거꾸로 시조부와 시어머니를 모시며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며느리로서 조용히 집안 살림을 꾸려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용인시 삼가동에 사는 김미숙 씨(42). 김 씨는 지난 주 '제 1회 경기도 효행상 경로상'을 수상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돕고자 시간제 부업을 하면서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조부(93)와 시어머니(66)를 지극한 정성으로 묵묵히 수발한 김 씨의 헌신적 삶이 수상이유다. 김 씨는 "시어머니가 하는 대로 보고 배우며 똑같이 했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더 열심히 웃어른 섬기며 살라고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씨의 시어머니도 지난해 경기도 효행상을 수상했다. 역시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20여년 전 누이 네 명을 둔 외아들인 남편에게 시집와 겪은 고생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 했다. 무뚝뚝하고 술 좋아하는 남편에게 다정스레 감싸주기를 기대한다는 건 오히려 언감생심이 아니었을까. 역북동에서 '한솔기획'이라는 조그만 트로피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남편 한원식 씨(44)는 "외아들인 내게 시집 와 참 많은 고생을 했다"며 "묵묵히 집안을 꾸려나가는 아내가 대견하기 그지없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김미숙 씨가 워낙 말 수가 적어 남편 한 씨는 종종 답답하다고 한다. 화나거나 맺힌 게 있으면 서로 털어놓고 풀어야 하는데 도무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20여년에 걸친 인고의 세월이 어려움을 안으로 삭이는 방법을 김 씨에게 가르쳐줬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둔 김 씨는 자녀들이 반듯하고 모범적으로 커준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어른들 모시랴 부업하랴 제대로 돌볼 틈이 없었는데도 사춘기 겪는 티 한번 내지 않고 별탈 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취직을 했고 나머지 아이들도 학교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들이다. 남편 한 씨는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에게 용돈을 주면 모아놨다가 증조부 드시라고 빵·우유 등을 사온다"며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종종 발견한다"고 대견스러워했다. 얼마 전까지도 정정했던 시조부가 최근 거동이 불편해진 것이 현재 김미숙 씨의 걱정거리다. 일흔 살까지 지게를 지고 다닐 정도로 건강하셨던 시조부도 나이를 어찌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 정성이 부족해 건강이 안좋아지신 것 같다"는 김씨는 "빨리 예전의 정정하신 모습으로 회복되셔야 할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상으로 받게 될 상금을 시어머니께 드릴 계획이라는 김 씨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부업을 위해 총총걸음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2001-12-05
- <신문로 칼럼> 다시, 정치적 무관심을 경계한다(고세훈 2001.12.04) 내년 전반기의 지방선거와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부산하다. ‘정치적 경기순환’, ‘선거케인즈주의’ 등 말들이 시사하듯, 우리는 경제조차 선거를 위해 얼마든지 활용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작금의 정치현실이 가관일지언정 그것이 ‘정치계급’ 내부의 손익계산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에서 선거란 여론의 매개이며 그것이 정치엘리트의 충원 그리하여 정책산출에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엄연하다. 당연히 유권자 편에서는 정치적 무관심 그 자체가 부메랑과 같이 자기패배적 효과를 낳는다. 민주국가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낮은 투표율에서 일차로 드러난다. 한 때 저조한 투표율이야말로 마침내 우리가 선진국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라는 진단이 나돈 때도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가볍고 무책임한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선진국 가운데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나라는 미국 등 몇몇 앵글로색슨 국가들에 국한된 것이다. 원래 이들은 정치(국가)에 대한 시장의 우위, 즉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지분의 전통이 확연한 나라들이다. 따라서 이익대표체계로서 정당의 배열도 이데올로기나 이념적 지향과는 별무상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의 자정능력은 절망적 그러나 거기에서조차 최소한 절차적 수준에서 정치는 자신의 본래기능을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만일 민주적 기본질서나 관행이 왜곡되거나 위태로울 조짐이 조금이라도 비친다면, 아마 이 나라들의 모든 유권자는 만사를 제치고 투표장으로 달려가거나, 언론은 정치권으로 향해 연일 계속되는 시위 등 ‘참여폭발’ 현상을 보도하고 자극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외 서유럽의 이른바 정치선진국들에선 여전히 총선에 대한 국민적 참여율은 매우 높거니와, 거기에서 이념과 정책노선에 따라 조직된 정당체계는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끊임없이 유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해방이후 반세기 한국정치사란 통제 받지 않은 무소불위의 정치와 거기서 비롯된 폐해들의 누적사(累積史)에 다름 아니었다. 최근 시민사회 각 층위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진폭(振幅)에서 드러나듯, 시민사회의 거리(街)가 소란한 정도는 정당 등 이익대표체계가 불완전하고 정치사회가 불합리한 정도에 정확히 비례하는 법이다. 우리의 시민사회는 지난 세월 잘못된 정치가 형성한 각종 적폐들(계층, 부문, 지역 간 불균등 구조 등)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그것의 광정(匡正)을 하소연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갈등을 치유해야할 정치가 먼저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정치가 먼저 나서서 지역감정 남북긴장 빈부격차 등을 선동하고 있으니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전통적 의제들을 정치화시키는 이외에, 정치과정 자체를 민주화시켜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자정능력이 절망적이고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을수록 정치사회의 인적 재편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자명하다. 정치적 무관심은 결코 소극적 ‘의사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는 ‘적극적’ 권리포기다. 거기에는 비판마저도 포기한다는 ‘결의’가 동반되거니와 비판이란 비난이 아니기 때문에, 준엄한 책임추궁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책임의 이양 자체가, 그리하여 소위 ‘대리인 문제’의 소지 자체가 없다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추궁한단 말인가. 천문학적 예산이 낭비 유용 되고, 정치권 안팎으로 연결된 부패의 사슬은 끝이 없으며, 정쟁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고, 인사는 망사(亡事)로 치달아도, 우리는 결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왕왕 우리의 비판이 무책임한 냉소나 비난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정치만이 희망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정치는 근본적으로 무력하니 거리의 혁명만이 대안이라 외치고, 신(neo)-자유주의자들은 정치가 무능하므로 시장논리의 극대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이론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정치적’이라는 말도 사치에 불과하다. 오늘날 정치는 사람들의 일상에 너무 깊고 넓게 침투해 있어서 나와 내 이웃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정치가 쌓아온 업보가 엄청나서 정치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한국적 상황은 더욱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딜레마는, 정치가 혐오를 부추기고 타기(唾棄)의 대상일수록, 정치의 가능성마저 포기한다면 정말 희망은 없다는 역설에 있다. 일찍이 엥겔스는 “혁명은 투표소에서!”라고 갈파한 바 있다. 물론 엥겔스의 낙관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혁명적 개혁일수록 그것은 투표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계몽된 참여’가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 고세훈 고려대학교 교수 행정학과 2001-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