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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이사람-이완엽 광주프린스관광호텔 대표이사 광주시에는 관광호텔이 몇 개 안된다. 그나마 특급·1급으로 매겨진 대표 호텔조차 수년전부터 부도로 법정관리 상태다. 게다가 대출금 이자연체 등 경영난을 겪고 있어 ‘호텔업계 전멸’ 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 와중에 부도로 호텔을 다른 사람 손으로 넘긴지 6년만에 다시 사들여 재기에 성공한 중견 호텔리어가 있다. 바로 광주프린스관광호텔 이완엽(55)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정통 호텔리어 출신은 아니다. 그의 호텔생활은 88년 광주로 내려와 시티힐 호텔(현 프린스 호텔)을 건립하고 전무로 근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이전에는 몇 년 동안 교편생활을 했고 서울 여의도에서 큰 식당을 운영했다. 이후 주택산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경영능력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이 대표는 서비스업에 대해 체득했다. 이 대표 스스로 “호텔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가 좋으면 손님은 찾아오게 돼있다. 호텔의 장단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법이 필요한지, 서비스에 대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호텔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꿰고 있다. 뿐만 아니다. 고객들의 자동차 문을 열어주고 인사하며 고객을 모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직접 고객의 손발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호텔 경영 7년 만에 부도를 맞은 것. “건립할 때 투자비용이 너무 많았던 거죠. 부채비율이 높은데다가 당시(95년) 고금리(12.5%)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거기다 다른 투자 비용도 경영에 부담이 됐죠.” 50대를 눈앞에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바친 호텔리어 인생을 일단 접어야 했다. 좌절과 고통의 세월. 그렇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해 8월 영업권을 인수한데 이어 올해 3월 경매에 붙여진 호텔을 오너로서 인수한 것이다. “그토록 애착이 같던 호텔을 그만둘 수 없었죠. 분리 매각으로 접촉을 했고 인수문제가 쉽게 풀렸습니다. 그동안 뒤돌아보거나 좌우를 살필 기회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아무래도 밑에 있는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지난 2년동안 프린스 호텔은 시시각각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1층 공간과 매니저가 쓰던 2층 공간 200평에 각각 호프 바와 재즈 바를 만들었다. 라이브 무대와 악기 공연 등 삼삼오오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가격은 일반 대중음식 값 수준. 또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각 층의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재떨이를 식물 화분에서, 이제는 난 꽃으로 날마다 바꾸고 있다. “난 꽃으로 바꾸고 나니 고객들도 차마 담배꽁초를 버리지 못하더군요. 덕분에 객실 고객들이 아주 만족해 합니다.” 고객이 보고 느끼며 감동을 받는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십년 동안 고정화된 침실 침구세트를 집에서 덮는 이불세트로 바꿔나가고 있다. “기존 침구세트는 깔끔한 반면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은 떨어지죠. 그래서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포근함을 갖도록 변화를 준겁니다. 머리맡에 놓은 고객의견서마다 훨씬 좋다는 응답이었어요. 매달 객실 3∼4개씩 바꾸고 있습니다.” 커피숍의 화분들, 식사테이블의 냅킨조차도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각각 자리와 색상이 달라진다. 사우나 이용료도 8000원에서 3000원으로 대폭 인하해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나(간부)부터 솔선수범하고 모범이 되어달라”고 간부회의 때마다 강조한다는 이 대표는 실제 가장 먼저 일찍 출근하고 당직 지배인 올 때를 기다려 맨 나중에 퇴근한다. 오너지만 독립공간 없이 지하실에서 총무과 직원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운(?)도 따라줬다. 이를 둘러본 대출융자 은행원이 “경영력이 허세가 아니다. 믿고 돈 빌려줄 수 있겠다”고 한 것. 솔선수범도 좋지만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죠. 직원들 모두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인건비를 상승시켜 보상을 받으니까 힘들더라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재 인수 후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일하는 이 대표를 고객들은 ‘폼 내지 않는 오너, 일밖에 모르는 사람, 언제 와도 얼굴 볼 수 있는 호텔리어’라고 말한다. 그만큼 프린스 호텔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고 고객들의 신뢰도 크다. 임선진 기자 klims@naeil.com 2001-11-29
- <새책소개> 창틀에 갇힌 작은 龍 국경은 없어도 국적은 있어야 한다 이찬근 지음 / 물푸레 펴냄 / 380쪽 / 13,000원 / 산업은행,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맥킨지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 우리사회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자 이찬근 교수가 IMF 위기사태 이후 4년에 걸친 초국 적 금융자본 주도의 시장개혁으로 한국은 “창틀에 갇힌 작은 용”으로 추락했다고 진 단한 책. 우리에게 과연 영미식 시장 경제가 유일 대안인가? 우리나라와 같이 소규모 경제국은 특수성이 강한 미국식 모델을 추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렇다면 우리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 우리가 표방해야 할 모델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자생력 있는 제조업의 강고한 기반 없이 너무도 빨리 성급하게 다가온 금융 시대, 이 제 더 이상 국내 저축이 국내의 실물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실물경제와 유리된 한국 의 금융 시스템, 과연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에서 출발한 저자는 세계화와의 긴장관계로 인해 파열음을 내고 있는 국 민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대안정책으로 크게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금융과 산업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둘째, 은행과 기업간의 관계를 강화 해야 한다는 것. 셋째, 외자의 과도한 침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넷째, 재벌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 다섯째, 지방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것, 여섯째,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 책에서는 글로벌 금융자본 체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의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강행한 DJ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결코 반미, 반DJ가 아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금융 주도로 바뀐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DJ 정권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 데에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단, 중요한 것은 현실은 현실로서 인정하 되, 현실에의 무비판적 혹은 자포자기적 순응이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올바로 인식하 고, 국민경제 내부에서 작동 가능한 ‘작은 안전장치’를 끊임없이 고안해 가는 것이 다. SERI 전망 2002 이언오 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 392쪽 / 12,000원/ 삼성경제연구소 전문가들이 2002년에 전개될 경제 사회의 전체상을 개관하고 핵심이슈 들을 살펴본 를 출간했다. 이 책은 구체적 경제지표, 표면적 현상보 다는 구조와 트렌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국내외 경제, 금융, 산업, 기업경영, 공공 정책, 사회·문화, 남북관계 등 50여 개의 이슈들을 다루었다. 테러전쟁의 충격으로 세계 경제는 회복이 상당히 지연될 전망이고 국내에는 부실기업 처리 지연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잠재해 있고, 특히 2002년에는 2차례 선거가 예정되 어 있어 경제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크다. 이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방향이라도 알 수 있는 지도가 있어야 항해에 나설 수 있듯이 예측치를 좌표로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측치를 갖고 있어야 환경 변화를 감지 하고 자신의 위치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 출간된 이 유이다. 냉전과 대학 냉전의 서막과 미국의 지식인들 노엄 촘스키 외 지음 정연복 옮김 / 도서출판 당대 펴냄 / 381쪽/ 12,000원/ 이 책은 미국의 정부정책과 냉전이 미국대학에 유발한 갈등에 관한 최초의 책으로 냉 전이 지식인의 삶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하는 미국 New Press출판사의 ‘냉전과 대학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냉전은 정치적·지적 삶의 구조 구석구석에 침투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학구조 와 학과내용을 개조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변화, 정치이론가들의 자유민주주의의 재정의, 세계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조장된 지적 오만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비판적 학자들의 역할 등, 여러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1945년 이후의 세월은 미국의 지적 사고와 대학생활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 선구적인 책에서 월러스틴과 하워드 진을 포함하여 미국의 가장 저명한 지식인들 대부 분은 냉전 이후와 냉전시기 동안 정치적 반대와 학문의 자유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해 나갔는지 고찰한다. 위대한 제국 진시황가의 CEO들 진문덕 지음 원지명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 307쪽/ 13,000원 / 이 책은 진시황이 통일하기 전부터 통일왕국을 세운 후 국가전반에 걸친 중앙집권제를 정비해 나가고 멸망하기까지 700년 역사를 경영학적 관점에서 기업의 창업, 성장, 전 성, 쇠퇴, 멸망이라는 과정에 비유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재해석했다. 변방의 이름 없는 약소국에서 중원의 제후국을 물리치고 통일제국을 이루기까지 진시황을 비롯하 여 수많은 패자와 전략가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은 주왕의 몰락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중국인의 기원이 되는 5대 토템족의 이야기부터 서서히 중원의 패권을 획득하며 천하를 제패하고 항우와 유방에게 멸망하기까지 진나 라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다. 그 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그리고 단편적인 일화 중 심으로만 이해하던 중국 고대 역사를 진나라를 중심축으로 살펴본다. 특히 춘추전국시 대의 수많은 경세지략가의 이야기는 빠른 전개와 저자 특유의 일목요연하고 친절한 설 명으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성일권 편역 / 김영사 펴냄 / 246쪽 / 9,900원 / 미국 테러 사태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로 이 책은 김영사가 미국 테러 사태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을 모아서 필자 본인에게 출판을 제안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미 1978년에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하여 서구 중심주의와 제국 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 사이드는 테러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진단하고, 아랍 문제에 대한 지식인 들의 편견과 독선을 지적하였으며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V.S.네이폴의 비겁성과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흥미롭다. 또 미국 사회에 반(反)아랍-친(親)이스라엘 편견 을 조장해온 시오니즘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9·11 테러사건의 직·간접적 원 인이 된 이스라엘과 아랍의 뿌리깊은 갈등의 문제점과 양측의 평화공존 가능성을 모색 한다. 2001-11-28
- <내일시론>권노갑과 유금필 장군의 경우 (최영희 2001.11.19) 권노갑과 유금필 장군의 경우 (최영희 2001.11.19) 최영희 발행인 어젯밤 TV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병부령 최응은 태조 왕건에게 이렇게 고언한다. “저들이 하나를 원할 때 열을 주십시오”라고. 고려 태조 왕건이 있기까지 세 명의 의제 신숭겸, 유금필, 박술희의 공로야 그 크기와 양을 표현할 말이 없지만 유금필이 자신의 공과 왕건의 신뢰를 바탕으로 도가 지나치 자 왕건의 동생과 신료들이 삭탈관직을 건의한 것이다. 서경에서 황제를 대신해 만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격이 있다고 유금필을 감싸던 왕건을 최응은 그 한마디로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왕건이 삼한을 통일하고 탄탄대로를 가는 길 요소요소엔 꼭 있어야할 인물들이 지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금필의 면전에서도 삭탈관직을 주장하는 신료들, 일이 이리된 것은 유금필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폐하의 죄라고 직언하는 최응, “신하가 주 인의 자리를 더럽혔으니 더 할말이 없다”는 유금필. 그래서 왕건은 유금필을 삭탈관 직뿐만 아니라 유배까지 보내는 결단을 내린다. 왕건 실세 유금필 유배, DJ 실세 권노갑의 외유거부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권노갑 전 의원의 발언이 불길한 느낌으로 남는 것은 왜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내 정치, 대통령후 보 경선 등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 권 씨는 평소 해오던 일을 계속 할 것이 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가 ‘해오던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말이 많 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는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겠다 면 도와주고 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런데 그 ‘누가’가 문제이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해야할 사람에 대한 구별이 별로 없 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인사문제엔 그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유능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국민의 정부 인사는 국민의 불 만을 사고, 권 씨 자신이 각종 비리 의혹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하가 그 주인의 자리를 더렵혔다”는 실세 유금필 장군과 같은 비판을 받은 셈이 다. 공식 직함 없이도 실세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 다니고, 그가 있는 곳엔 기자들이 들 끓고, 다음 대권을 쥐겠다는 사람들도 그의 말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 권심’을 ‘김심’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권심을 물러나게 하라는 주장 이 민주당 내부에서 쏟아졌으니 그가 ‘해오던 일’이 분명히 당에 도움이 되고 박수 받을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도 시중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세들의 행적은 그들이 아직 실세인 이상 그 근 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절대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 이 가고 권력 누수가 생기면서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다. 설만 분분하지 근거가 나온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지 여론 조사에서 권노갑 전 의 원은 각종 비리의 의혹을 받아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었으므로 외유 등 스스로 물러나 라는 의견이 68.7%나 되었다. 비리나 권력남용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외유 등을 요구 할 수 없다는 의견은 18.3%였을 뿐이다. 신숭겸같은 충신은 오늘날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 권 씨는 “내게 신숭겸이 되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몰아대는 데 이렇게는 못나간다.”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신숭겸이 되고자 했다해도 이미 그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물론 필자는 본란을 통해 신숭겸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라 “신숭겸처럼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 닌데 동지라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말고 말없이 떠나라”고 고언한 적이 있다. 신숭겸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고려의 운명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 수도 있었으나 신숭겸의 충절로 고려를 이어가게 했다. 왕건은 지묘사를 창건해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으며, 오늘에도 그 같은 장수를 갖고 있던 왕건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세를 누가 만들어주나? 사랑하는 유금필을 유배보내라는 건의를 받고 진노한 왕건에 게 책사 최응은 물러서지 않고 지적한다. 바로 전하의 죄라고. 우리 청와대엔 지금 책 사 최응이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민주당 총재직 사퇴가 열을 준 것이라 생각하겠지 만 지금 국민들은 어젯밤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할 것 같다. “유금필을 삭탈관직하고 유배 보내도록 하라.” 태조 왕건의 준엄한 고함소리가 천년 이 훨씬 지난 지금 국민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일 수도 있다. 최영희 발행인 2001-11-28
- <클릭! 이사람> 이완엽 광주프린스관광호텔 대표이사 광주시에는 관광호텔이 몇 개 안된다. 그나마 특급·1급으로 매겨진 호텔조차 수년전부터 부도로 법정관리 상태다. 게다가 대출금 이자연체 등 경영난을 겪고 있어 ‘호텔업계 전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 와중에 부도로 호텔을 다른 사람 손으로 넘긴 지 6년만에 다시 사들여 재기에 성공한 중견 호텔리어가 있다. 바로 광주프린스관광호텔 이완엽(55) 대표이사다. 이 대표 스스로 “호텔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가 좋으면 손님은 찾아오게 돼있다. 호텔의 장단점,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법이 필요한지, 서비스에 대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호텔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꿰고 있다. 뿐만 아니다. 고객들의 자동차 문을 열어주고 인사하며 고객을 모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직접 고객의 손발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호텔 경영 7년 만에 부도를 맞은 것. “건립할 때 투자비용이 너무 많았던 거죠. 부채비율이 높은데다가 당시(95년) 고금리(12.5%)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거기다 다른 투자 비용도 경영에 부담이 됐죠.” 50대를 눈앞에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다 바친 호텔리어 인생을 일단 접어야 했다. 좌절과 고통의 세월. 그렇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해 8월 영업권을 인수한데 이어 올해 3월 경매에 붙여진 호텔을 오너로서 인수한 것이다. “그토록 애착이 같던 호텔을 그만둘 수 없었죠. 분리 매각으로 접촉을 했고 인수문제가 쉽게 풀렸습니다. 그동안 뒤돌아보거나 좌우를 살필 기회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아무래도 밑에 있는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지난 2년동안 프린스호텔은 시시각각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1층 공간과 매니저가 쓰던 2층 공간 200평에 각각 호프 바와 재즈 바를 만들었다. 라이브 무대와 악기 공연 등 삼삼오오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가격은 일반 대중음식 값 수준. 또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각 층의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재떨이를 식물 화분에서, 이제는 난 꽃으로 날마다 바꾸고 있다. “난 꽃으로 바꾸고 나니 고객들도 차마 담배꽁초를 버리지 못하더군요. 덕분에 객실 고객들이 아주 만족해 합니다.” “나(간부)부터 솔선수범하고 모범이 되어달라”고 간부회의 때마다 강조한다는 이 대표는 실제 가장 먼저 일찍 출근하고 당직 지배인 올 때를 기다려 맨 나중에 퇴근한다. 솔선수범도 좋지만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죠. 직원들 모두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인건비를 상승시켜 보상을 받으니까 힘들더라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재인수 후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일하는 이 대표를 고객들은 ‘폼 내지 않는 오너, 일밖에 모르는 사람, 언제 와도 얼굴 볼 수 있는 호텔리어’라고 말한다. 그만큼 프린스 호텔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고 고객들의 신뢰도 크다. / 임선진 기자 klims@naeil.com 2001-11-26
- 당진 한보철강 현장을 가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120만평 공단. - 현정부의 실패한 구조조정 상징물인 한보철강이 흉물처럼 버려져 있다. 한보철강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DJ정부 출범 1년 전에 부도나 무려 4년 10개월 동안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겉돌고 있다. 한보철강은 같은 시기에 부도를 맞았다가 현대차 그룹으로 넘어가 큰 이익을 내고 있는 기아차와는 묘한 대조를 보였다. 공장에서 만난 한보철강 관계자는 “꿈꿨던 일괄제철소는커녕 무용지물인 채로 몇 년이 지났다”며 “해를 넘길 때마다 감가상각비로만 수 천억원씩 까먹지만 매각 실패에 책임지는 관료는 찾을 수 없었다”고 정부를 원망했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열연공장과 철근 공장이 들어선 A지구와 일괄 제철소 설비인 코렉스 라인과 열연·냉연 공장이 들어서 있는 B지구로 이뤄져 있다. A지구는 그나마 철근공장으로 공장을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같은 A지구에 있는 열연공장은 98년 이후 생산 채산성을 이유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고, B지구도 한보철강 부도 이후 공장 건설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다. 공장굴뚝에 연기가 나지않게 되자 거대한 장치설비가 좋은 배경이 되겠다 판단했던지 98년 영화 ‘쉬리’팀이 영화 촬영지로 꼽았고, 서태지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겠다고 회사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한보철강 측은 많은 학생 등이 동원되는 행사에 혹 안전사고라도 날까봐 이런 종류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다. 쓸모 없는 B지구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직원들은 녹슨 한보철강을 숨기고 싶어했다. 공장에서 만난 총무과 신승주 과장은 B지구를 방문한 기자에게 “외벽이 녹슬어 보이는 수소공장의 외벽을 제외하고는 5년 동안 바다바람에 노출된 공장치고는 관리를 잘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완공을 못 봐 기계설비를 가동할 수 없지만 유지보수는 계속하고 있다”며 “특히 냉연강판 설비는 외국 실사단들도 첨단시설에 감탄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세월의 흔적은 한보철강을 비켜가거나 결코 숨길 수 없었다. 한때 120여만평(조성완료 94만평, 조성중단 25만평)부지에 ‘세계적인 첨단공 법인 코렉스 공법’을 자랑삼았던 한보철강은 4조9120억원 투자를 끝으로 그야말로 해풍에 몸을 맡긴 채 고철 덩어리로 버겁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B지구 설비 보존을 위해 매일 30여명의 관리인원이 투입되고 있고, 매년 유지보수비로만 40억원을 들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매각 지연으로 인한 설비자산의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01-11-21
- <클릭! 이사람>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원진숙 주임 “숲들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가르쳐줬어요.”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원진숙 주임이 갖고 있는 숲에 대한 느낌이다. 그녀는 신갈나무 가득한 숲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무의 숨결을 느끼면서. 바람에 스치는 갈잎소리,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들이 아침 인사를 하는 듯 하다.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원진숙 주임은 마치 숲속에서 인터뷰하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각종 꽃 이름과 나무이름,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원 주임이 산림 공무원으로 일한지는 올해로 5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원 주임은 어느덧 숲에 관한한 ‘전문가’가 다 됐다. 관심있는 분야에 애정이라는 양념을 더하면 누구나 일가견을 갖게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애정이 있으면 무엇이든 보이는 법이라고 했던가. 두달째 산림조사를 다니는 정선 두위봉 어귀에 처음 섰을 때도 원주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산의 형태를 정확히 예측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던 내게 산림청 공무원 시험은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학에서 산림자원보호학을 전공한 원 주임의 첫 발령지는 정선의 삽당령 고개. 산림입지조사작업 등을 하며 아버지뻘 되는 인부들과 함께 현지에 나가 감독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원 주임은 숲의 마력에 푹 빠지게 됐다. “말이 감독이지 오히려 그분들에게 나무의 열매를 보고 식용과 독초를 구분하는 법, 어떤 계곡에서 어떤 나물이 나는지 등을 많이 배웠어요. 수많은 야생화와 수목들이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숲의 숨결을 느낀 원 주임은 그 이후로 작은 풀 하나 그냥 스치는 법이 없다. 생소한 식물을 보면 반드시 사진을 찍어 식물도감을 일일이 찾으며 숲을 공부했다. 그러기를 5년. 원 주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숲 전령사가 됐다. “살아 숨쉬는 숲의 깊이를 알기에는 산림공무원 5년의 세월은 너무 미약해요. 숲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소리를 전달하는 중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오늘도 한 발 한 발 그들의 세상속으로 조심스레 걸어들어가야죠 .” 숲은 느낄수록 새롭게 다가온다는 원 주임은 시간이 닿으면 전국을 돌며 문화탐방기를 쓰고 싶은 소망도 가지고 있다. “숲은 진실로 그들 곁에 같이 서있을 때만 그들의 속내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숲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소중한 몸짓 하나하나로 시작된다는 것이 눈에 보이죠.” 원 주임은 아직 숲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원주 전관석 기자 sherpa@naeil.com 2001-11-13
- <국회의원 열전> 민주당 새 대변인 이낙연 의원 의원회관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에 들어가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책장 안에 가지런히 꼽힌 일본책들이다. 일본 명작에서부터 시사 관련 책에 이르기까지 어느 책을 들춰봐도 이 의원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책 한 구석이 접혀있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엔 줄이 그어져 있다. 책상으로 눈을 돌려보면 아사히 신문이 눈에 들어온다. 한달에 18만원씩이나 한다는 일본의 간판 신문을 매일 열독할 뿐 아니라 보관해 두고 있기까지 하다. 어느 국회의원이나 자신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이 의원은 일본 문제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갖고 있다. 기자 시절 3년 이상 일본 특파원으로 재직했던 경험을 살려 국회에 들어온 지난 2년간의 활동도 ‘일본통’으로 일관해 왔다. 국회에서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속해 있고, 당에서는 12일 대변인을 맡기 전 제1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았다. 모두 통일 외교 안보 분야를 다루는 곳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또 이 의원이 일본 왜곡 교과서가 한일 외교상 큰 이슈로 부각됐을 때 민주당 항의단의 일원으로 방일, 역사왜곡 시정을 촉구했던 것도 일본 전문가로서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내실을 착실히 쌓아온 이 의원은 이제 대변인으로 민주당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총재 사퇴라는 ‘큰일’을 겪은 후 대변인으로 임명돼, 어수선한 당을 정리하고 정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무겁다는 것이 이 의원의 소감이다. 이 의원은 또 “어눌하고 말수가 적다는 말을 들어도 좋으니 믿음이 가는 대변인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보다 발전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신뢰’가 가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을 평소 지론으로 삼고 있는 이 의원이 본격적인 시험을 거치게 된 셈이다. 이 의원이 국민들에게 매일 화면 등을 통해 얼굴을 보이는 대변인 코스를 통과하게 되면 대중적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국민들은 마음에 닿는 ‘감동의 정치’를 원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감동의 정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2001-11-12
- 클릭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원진숙 주임 “숲은 언제나 내게 행복을 가르쳐줍니다” “신갈나무 가득한 숲속에서 눈을 감으면 나무의 숨결이 가득 느껴집니다. 바람에 스치는 갈잎소리,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치 그들이 내가 온 것을 반기는 듯 합니다”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원진숙 주임은 마치 숲속에서 인터뷰하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각종 꽃 이름과 나무이름,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원 주임이 산림공무원으로 일한지는 올해로 5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원 주임은 어느덧 숲에 관한한 '전문가'가 다 됐다. 두달째 산림조사를 다니는 정선 두위봉 어귀에 처음 섰을 때도 원주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산의 형태를 정확히 예측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숲들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가르쳐줬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던 내게 산림청 공무원 시험은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학에서 산림자원보호학을 전공한 원 주임의 첫 발령지는 정선의 삽당령 고개. 산림입지조사작업 등을 하며 아버지뻘 되는 인부들과 함께 현지에 나가 감독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원 주임은 숲의 마력에 푹 빠지게 됐다. “말이 감독이지 오히려 그분들에게 나무의 열매를 보고 식용과 독초를 구분하는 법, 어떤 계곡에서 어떤 나물이 나는지 등을 많이 배웠어요. 수많은 야생화와 수목들이 나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숲의 숨결을 느낀 원 주임은 그 이후로 작은 풀 하나 그냥 스치는 법이 없다. 생소한 식물을 보면 반드시 사진을 찍어 식물도감을 일일이 찾으며 숲을 공부했다. 그러기를 5년. 원 주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숲 전령사가 됐다. “살아 숨쉬는 숲의 깊이를 알기에는 산림공무원 5년의 세월은 너무 미약해요. 숲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소리를 전달하는 중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오늘도 한 발 한 발 그들의 세상속으로 조심스레 걸어들어가야죠” 숲은 느낄수록 새롭게 다가온다는 원 주임은 시간이 닿으면 전국을 돌며 문화탐방기를 쓰고 싶은 소망도 가지고 있다. “숲은 진실로 그들 곁에 같이 서있을때만 그들의 속내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숲의 아름다움이 그들의 소중한 몸짓 하나하나로 시작된다는 것이 눈에 보이죠” 원 주임은 아직 숲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주 전관석 기자 sherpa@naeil.com 2001-11-11
- 발자국 자리마다 가락이, 꽃이 … 부적처럼 지녀 온 날 돌아가리 그 벼랑 앞/ 저물녘 진혼곡도 이제는 버릇되어/ 귀향이 망향 된다 해도 불러보는 그 안부……. (적(跡) 중) 시조시인 한춘섭(60) 씨의 첫 시조집 ‘적(跡)’(동학사)이 출간되었다. 1966년 으로 등단 이후 국문학자, 향토사학가로도 살아왔던 시인은 육신의 나이로 갑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주옥같은 시조들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등단 나이로는 삼십 오년만이다. 이번 시조집 출간은 최근의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등단하자마자 연례 행사처럼 시집을 묶는 근래의 시단 풍토를 보면, 한 시인의 이번 시조집 출간은 더디어도 한참 더딘 일이다. 더구나 , 등의 저서로 시조사 연구에 큰 획을 그어왔던 것은 물론, 활발한 시작발표를 해왔던 그이기에 ‘더딤’은 시단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가 인생을 한 바퀴 돌아온 갑년인데, 이 쯤이면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듯 싶었지요.” 시인의 나이만큼 채워진 꼭 60편의 시조들은 세월의 풍랑속에 거친 모서리를 깎아내고 둥그런 품으로 우리네 삶을 껴안고 있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선택된 시조들인 만큼, 시조집에서는 굵직한 밀도가 느껴진다. ‘한 무리 떠돌기를/ 솔잎 새 바람이듯/ 흐르는 머언 둘레/ 풀잎 새 이슬이듯(‘풍경’ 중)’ 낮은 목소리로 자연과 향토, 신앙과 민족혼을 노래해 온 그의 시조는 이제 한 권의 책으로 가슴을 열어보인다. 내용은 ‘시조시 앞에’, ‘고향 사계사’, ‘십자가’ 등 7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마다 순수서정, 향수, 신앙, 민족혼 등 주제와 시어, 표현법 등이 다양해서, 고전적인 시조의 작품성부터 대담하게 장르의 변형을 가져온 것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조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굵직한 역사의 장을 녹여낸 연작시조들이 눈길을 끈다. 8년간 연재하여 문단에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던 ‘녹슨 철마, 그 언저리’ 는 40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시조. 시인은 ‘바람은/ 남북 분계선/ 갈대 소리 썰고 있다(11편 중)’ 며 분단의 상흔을 어루만진다. 또한 ‘만세터 할아버지’, ‘탄천둑’ 등의 시조에서는 시인의 성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성남 골목골목의 이름을 짓기도 했던 그는 ‘내 핏줄 후대거니/ 팔도 사람 어울마당(성남이야기2 중)’ 으로 삶의 터를 영혼의 터로 승화시킨다. 한 시인은 중국의 좌익작가였던 노신(1881-1936)의 정신을 거울로 삼는다. 문학은 국민정신에 등불을 밝히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요즈음 팽배하는 개인의 신변잡기식 시들은 한 시인에게는 아쉬움이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시조가 고매한 차(茶)향으로 독자에게 와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아련하게 간직할 만한 향토와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후배시인들이 그의 향토미학을 가리켜 ‘내 뿌리를 가장 아프게 사랑한 이정표’ 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이제 됐다’ 고 하여 책으로 엮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반평생 시인의 궤적을 이렇게 엮어놓고, 시인은 또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跡)을 내딛고 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어있지 않을까. /고은주 리포터 milkypower@hanmail.net 2001-11-09
- 입은 거지, 벗은 거지 재수없는 친구 놈이 있습니다. 아니, 친구 놈도 아니지요. 만나기만 하면 꼬리한 눈으로 사람을 훑어보고 어디 구린 데는 없나 살핍니다. 그러면서 항상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어요. 마치 안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바란 양 말이예요. 자기한테 연락을 한 하면 무조건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요? 밥 먹고 할 지랄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그만 오퍼상을 하는데 일하는 직원이 없어서 얼마간 고생을 한 적이 있었어요. 출장 중에 다녀갔던 모양이지요? 얼마 만에 와서는 한다는 말이 참 꼴값이더군요. “문이 며칠 째 닫혀 있어서 어쩐 일인가,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했다. 전화해도 안받고, 휴대폰도 꺼 있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어서 걱정 많이 했어.” 망했나 했겠죠. 이상한 위로를 지껄이더군요. 그러면서 사무실 안을 휘휘 둘러 봐요. 뭐 수상한 낌새가 없나 하는 얼굴로 말이죠. 전화를 하자니 꼬리하고, 안 하자니 쓸데없는 말을 또 듣겠고 진퇴양난입니다. 교묘하게 사람 부아를 돋구는 취미를 가진 모양입니다. 이러니 어쩌다 생각만 떠 올라도 이빨에 실이 낀 것처럼 불편한 심정이랍니다. 원치도 않게 찾아와서는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살피고 정말 죽을 맛이랍니다. 멍청하게 한 10년 넘게 질질 끌려가며 괴롭힘을 당했답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지난 삼 년간 소식이 없더라구요. 지말대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요? 쓸데없는 전화질도 안하고 염장 지르던 인간을 안보니 살 것 같더라구요. 참 잘 지냈지요. 그런데 오늘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를 떨더군요.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했다나요? 그래서 3년 동안 잠수를 했나 보다고 생각했다며 여전히 떠벌이더군요. “야-. 밖에 나가니 우리나라가 보이더라구. 이번에 일 때문에 나가 있어 보니 앞이 보이는데 아찔한 기분이었다니까. 하하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쫘악 빼 입고 와서 묻지도 않는 내게 명함을 내밀며 그간 있었던 일을 자랑하더군요. 명함을 보니 온통 영어로 써있었어요. 내가 우물쭈물 들여다보자 한마디 거들더군요. “이번에 중앙아시아 건을 따느라고 바빴다. 하하하.” 세월의 허풍을 잡는 사내가 바로 이 이상야릇한 친구 놈이랍니다. 그 동안 이 인간한테 받은 명함이 줄잡아 30개가 넘습니다. 영어를 좀 하니 어떤 작자가 데리고 다니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했겠죠. 그럴듯한 명함 하나 만들어서 말입니다. “얼마나 나가 있었는데?” 내가 시큰둥하게 물었습니다. “아-, 한 이십 일 되나? 하하하. 너도 좀 시야를 넓혀 봐라. 그리고 옷 꼴이 그게 뭐냐?” 아이고, 몇 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다가 얼마 전에 외국을 다녀온 모양입니다. 그걸 가지고 마치 몇 년 동안 외국에 살다 온 양 떠벌이는 인간이 슬슬 불쌍해 보였습니다. 뭔 일을 꾸미는지, 아니면 거창하게 뭔 일을 하려고 하는지 관심도 없는데 자꾸 떠들어대더군요. 바빠 죽겠는데 말이죠. “야-. 입은 거지, 벗은 거지란 말도 있잖아, 임마. 넌 언제까지 이런 쬐꼬만 구멍가게에서 인생 조질래. 푼돈이나 만지고 얼굴 새카맣게 되도록 고생하고 말야. 하하하.” 어찌나 잘난 척을 하며 웃어 대는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꾹꾹 참았습니다. 실컷 떠들어라. 이제 정말 오늘로 끝이다, 임마! “배 고프냐?” 그 놈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게 나는지 나도 모르게 물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놈이 잘난 척은…. 미친 놈. 내 밑에서는 죽어도 일 못하겠다는 놈이 밥을 시켜 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더군요. 내참. 결국 그 잘난 척 하려고 온 것도 온 거지만, 밥 한끼 해결하려고 한 시간이 넘게 ‘하하하’ 허풍을 떨었더라구요. 이걸 내쳐, 말아. 밥 먹으며 내내 마음의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200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