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검색결과 총 4,713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얼굴, 개인사와 사회상’ 개인전 열어 ● 클릭 이사람 ┃강형구 화백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단순한 얼굴을 그린다기 보다는 이야기가 있고 상황이 전제된 표정을 그린다. 즉, 인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사상과 감정을, 그리고 사회상을 표현한다.”(작가노트 중) 18일부터 27일까지 분당 삼성플라자 갤러리에서 ‘얼굴, 개인사와 사회상’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강형구 화백의 얼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경우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을 그려, 12·12 구데타와 80년 5월 광주시민의 민주항쟁과 군의 진압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아니라 단식투쟁하고 있는 김영삼 총재를 그려 가장 김영삼 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고, 급변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월계관을 쓰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에서 일제시대의 나라 잃은 슬픔을 절로 느낄 수 있다.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얼굴은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준다. 강 화백의 그림은 극사실주의 중 ‘포토리얼이즘’으로 분류한다. 그림속의 인물이 금방이라도 말을 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강 화백은 사람의 얼굴 피부와 세포를 그린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역사적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과 표면뒤에 숨겨지고 연계된 개인과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얼굴에 모두 담아냈다. 또한 강 화백은 허구적 시간개념을 작품세계에 도입했다. 이미 죽은 인물이 세월이 흐른 현재 살아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84세된 박정희 전대통령이 ‘내가 사리지고 너희들이 일군 대한민국이 고작 이 정도야’하며 어디선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76세된 마린린 먼로, 78세된 J.F 케네디의 모습 등에서 우리는 강 화백의 무한한 창조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강 화백 그림 중 30%는 자화상이다. 강 화백은 “자화상은 나를 그린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가질 수 있는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강형구’라는 고유명사가 아인 강형구 대명사를 그려, 불특정 다수의 슬픔과 기쁨 고뇌 등을 대변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얼굴 작가’라고 하지만 강 화백은 자신의 작업 영역을 결코 인물에 국한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9년만의 칩거를 깨고 외출을 했다. 강 화백의 작업 중 가장 힘든 일은 독창화 시킬 수 있는 특정 소재를 확정하는 것이다. 맘에 드는 기록사진이 없는 경우, 특정 소재를 조각해 그것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옮긴다. 레오나드로다빈치, 손기정 선수 등이 이런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고 한다. 강 화백은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란 문구를 싫어한다. 감상자가 손으로 만져야만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만지라고 한다. 예술의 주체는 작가나 작품 뿐만 아니라 대중이며 일반인이라는 것. 그는 “나는 반성의 결과 작품에 손을 대면 큰 일 날 정도의 위대한 것을 제작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9월 1일~10일)과 조선일보 미술관(9월 1일~17일)에서 전시를 마친 강 화백은 분당 삼성플라자 전시회가 끝나면 미국으로 건너가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2001-09-19
- 클릭 클릭 이 사람 “노인문제는 21세기를 억누르는 난제” 연꽃마을 대표로 노인복지 앞장서는 김경한(법명 각현)씨 “현대사회에 가족 중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노인과 어린이입니다. 앞으로 노인문제는 21세기를 억누르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989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연꽃마을’대표로 한국 노인복지사업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10년 세월의 변화를 주도해온 사람, 김경한(각현스님)씨. 따가운 가을볕이 내리쬐던 12일 오후, 김 대표는 내달 6일부터 한달간 국내 최대규모로 열리는 노인작품전시회준비에 여념이 없다. “종이접기와 한지공예 등 30여 종류의 작품 1만여점이 전시될 것입니다. 노인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1968년 출가한 김 대표가 노인복지사업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0년. 법주사 부주지직을 사임하고 연꽃마을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 대표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무료양로원’건립이었다. 무료양로원 건립사업은 당시 운영난에 봉착해 존립자체가 어렵던 연꽃마을에서 설립목표를 세우고도 추진에 어려움을 겪던 사업이다. 김 대표는 먼저‘불우노인의 안식처를 우리가 건립하자’는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만에 2만5000여명의 후원회원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약 9억원이 소요된‘연꽃마을 용인 무료양로원’건립을 완성했다. 용인 무료양로원은 불교계가 후원금으로 완성한 최초의 무료양로원이었으며, 연꽃마을이 본격적으로 노인복지사업을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이었다. 이후 10여년 세월은 연꽃마을의 대상사업을 ▲수용시설사업 ▲의료사업 ▲재가노인복지사업 ▲무료식당운영사업 ▲일반노인복지사업 ▲노인문화사업 ▲아동복지사업 ▲자원봉사 보상제도 확립 등으로 확대시켜 나왔다. 같은 시간동안 김 대표에게 맡겨진 직함도 예사롭지 않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이사장을 비롯해 한국불교 사회복지협의회장, 경기도 노인복지시설협의회장 등 사회복지와 관련한 현직만 9개에 이르고,‘96 송파구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99년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91년 서울 광명의원을 시작으로 지난 4월 안성 경로의원까지 전국에 16개의 의원을 개원했고, 한달에 90가마의 쌀을 소비하는 10개의 경로식당, 7개의 노인복지센터와 6개의 수용시설이 문을 열었다. 노인문화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노인복지 신문과 출판사, 노인작품 전시관이 차례로 문을 열고, 수원 행복한 집을 비롯한 연꽃마을이 지었거나 운영하는 아동복지 기관도 4개에 이른다. 10개년 계획으로 99년부터 시작한‘안성종합노인복지타운’은 1차로 지난 4월 치매와 중풍을 전문으로 하는‘노인전문요양원’이 기공식을 갖고 원대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모두 1만여평 부지위에 세워질 이곳 노인복지타운에는 요양시설과 전문병원을 비롯, 연수원 사찰 전문대학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연꽃마을은 이제 240만 노인들이 함께 깃들고 사용하는 거대시설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불모지에 다름없는 노인문화 형성과 노인복지, 그 변화의 중심에서 대자대비의 불심을 실천해 가고 있다. “21세기의 종교는 교리를 팔아먹기보다‘실천행’을 통해서 교리를 실천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수원 정흥모 기자 hmchung@naeil.com 2001-09-16
- 클릭 이 사람-“노인문제는 21세기를 억누르는 난제” 연꽃마을 대표로 노인복지 앞장서는 김경한(법명 각현)씨 “현대사회의 가족 중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노인과 어린이입니다. 앞으로 노인문제는 21세기를 억누르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989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연꽃마을’대표로 한국 노인복지사업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10년 세월의 변화를 주도해온 사람, 김경한(각현스님)씨. 따가운 가을볕이 내리쬐던 12일 오후, 김 대표는 내달 6일부터 한달간 국내 최대규모로 열리는 노인작품전시회준비에 여념이 없다. “종이접기와 한지공예 등 30여 종류의 작품 1만여점이 전시될 것입니다. 노인문화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1968년 출가한 김 대표가 노인복지사업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0년. 법주사 부주지직을 사임하고 연꽃마을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 대표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무료양로원’건립이었다. 무료양로원 건립사업은 당시 운영난에 봉착해 존립자체가 어렵던 연꽃마을에서 설립목표를 세우고도 추진에 어려움을 겪던 사업이다. 김 대표는 먼저‘불우노인의 안식처를 우리가 건립하자’는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만에 2만5000여명의 후원회원을 모으는데 성공했고, 약 9억원이 소요된‘연꽃마을 용인 무료양로원’건립을 완성했다. 용인 무료양로원은 불교계가 후원금으로 완성한 최초의 무료양로원이었으며, 연꽃마을이 본격적으로 노인복지사업을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이었다. 이후 10여년 세월은 연꽃마을의 대상사업을 ▲수용시설사업 ▲의료사업 ▲재가노인복지사업 ▲무료식당운영사업 ▲일반노인복지사업 ▲노인문화사업 ▲아동복지사업 ▲자원봉사 보상제도 확립 등으로 확대시켜 나왔다. 같은 시간동안 김 대표에게 맡겨진 직함도 예사롭지 않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이사장을 비롯해 한국불교 사회복지협의회장, 경기도 노인복지시설협의회장 등 사회복지와 관련한 현직만 9개에 이르고,‘96 송파구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99년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91년 서울 광명의원을 시작으로 지난 4월 안성 경로의원까지 전국에 16개의 의원을 개원했고, 한달에 90가마의 쌀을 소비하는 10개의 경로식당, 7개의 노인복지센터와 6개의 수용시설이 문을 열었다. 노인문화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노인복지 신문과 출판사, 노인작품 전시관이 차례로 문을 열고, 수원 행복한 집을 비롯한 연꽃마을이 지었거나 운영하는 아동복지 기관도 4개에 이른다. 10개년 계획으로 99년부터 시작한‘안성종합노인복지타운’은 1차로 지난 4월 치매와 중풍을 전문으로 하는‘노인전문요양원’이 기공식을 갖고 원대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모두 1만여평 부지위에 세워질 이곳 노인복지타운에는 요양시설과 전문병원을 비롯, 연수원 사찰 전문대학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연꽃마을은 이제 240만 노인들이 함께 깃들고 사용하는 거대시설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불모지에 다름없는 노인문화 형성과 노인복지, 그 변화의 중심에서 대자대비의 불심을 실천해 가고 있다. “21세기의 종교는 교리를 팔아먹기보다‘실천행’을 통해서 교리를 실천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수원 정흥모 기자 hmchung@naeil.com 2001-09-15
- 얼굴에 핀 검은 꽃 '검버섯' 검버섯(aging spots)은 '저승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맑고 투명한 얼굴의 피부에 거뭇거뭇 얼룩을 만드는 검버섯은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처럼 피부미용을 해치고 노화를 실감하게 하는 슬픈 상징으로 보인다. 검버섯은 지루각화증이라고 지칭하는 진한 갈색 타입의 반점과 거뭇거뭇한 노인성 흑자를 합쳐서 말하고 있는데 각화증은 피부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편평한 세포의 층이 변한 것으로 염증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반점 부위가 표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검버섯은 겉이 사마귀모양으로 커지는 것도 있으며 표면에 비듬같은 것이 덮여 있기도 한다. 피부에 난 여러 종류의 점 검버섯 주근깨는 피부노화와 함께 햇볕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두드러지는 검버섯은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는 멜라닌 색소가 특정한 부위에 과다 분비되고 피부층에 침착되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검버섯은 햇볕에 노출되는 부위일수록 심하게 나타나고 주로 청·장년층에 시작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커지거나 색깔이 짙어지는 수가 많다. 젊은 시절에는 피부의 신진대사가 활발하여 윤기가 나던 머리 얼굴 목 등에 나이가 들면서 1∼2개씩 생기다가 어느날 갑자기 팔 등에 퍼부은 것 같이 많이 생겨 늙음을 부정하지 못하고 한숨짓게 된다. 보통은 30세 이후부터 눈에 잘 띄지 않게 발생하기 시작하다가 50∼60대에 이르면 현저하게 그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나 요즘에는 운전 테니스 골프 등 야외활동을 즐기는 30대에서도 종종 발견을 할 수가 있다. 남녀 누구에게나 생기며 집안 내력에 따라 병변이 많이 나타나거나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는 양성 피부 질환으로 유전적 경향이 있다. 검버섯 악성종양 우려 검버섯이 자극을 받은 경우를 자극성 검버섯이라고 부르는데 이 때는 약간의 가려움증이 있을 수 있으며 검버섯 표면 위에 딱지가 앉거나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는 악성 종양 즉 피부암과의 감별이 필요하다. 검버섯과 유사한 모양으로 생기는 광선각화증은 암으로 이행될 수 있으나 검버섯은 양성종양으로서 악성화되지는 않고 단지 미용상에 문제가 될 뿐이다. 검버섯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성인에게서 갑자기 가려움증을 동반한 검버섯 수가 증가하고 빨리 커지면 내부장기에 악성종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시일 수도 있으나 그러한 경우는 피부과에서 자세한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피부 자극이나 염증을 입으면 자극성 검버섯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자극이나 염증을 피하도록 한다. 검버섯 병변이 가려워질 때 크기가 갑자기 커질 때 진물이 날 때 딱지가 앉을 때 출혈이 생길 때 등은 합병증의 위험이 있으므로 전문의의 진료를 받도록 한다. 검버섯을 제거하는 방법은 냉동요법이나 전기 소작술, 피부를 녹이는 연고요법, 국소탈피술 레이저 요법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적으면서 효과가 탁월한 레이저 치료가 많이 선호되고 있는 추세이다. 검버섯이 있는 부위만 선택적으로 침투하여 정상세포는 가만히 놔둔 채 문제세포만 공략하기 때문에 부작용 없이 원상 회복이 가능하다. 단 시술이후에는 약간의 발적이 있으나 곧 가라앉으며 딱지가 떨어지는 1∼2주 후엔 깨끗한 피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물론 피부의 체질이나 검버섯의 크기나 부위에 따라 치료 후 색소침착이 올 수 있으나 이것은 차츰 없어지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술 후 한동안 과색소 침착이 오래 갈 수도 있으므로 햇빛을 조심하고 시술 후 꾸준히 재생제와 미백제 등으로 꾸준히 피부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검버섯도 점과 같이 완전히 뿌리를 제거해 주어야만 그 자리가 깨끗해지므로 여러 차례 시술을 하더라도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느긋한 마음이 좋은 결과를 낳는 법이며 무엇보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미경 리포터 mikigold@hanmail.net 2001-09-12
- <신문로 칼럼>분단 56년과 21세기의 과제(한상범 2001.08.14) 분단 56년과 21세기의 과제(한상범 2001.08.14) 한상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우리 민족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주의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지도 어언 56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의 상황을 따져보면 그 당시의 이란 바로 분단으로 이어졌다. 일제 패망 후 민족 최대의 과제인 일제잔재청산과 통일 자주 민주국가의 건설은 좌절된 채, 남북의 분단과 전쟁, 정전과 남북대치로 이어져왔다. 그러면서도 한 가닥 전기의 마련으로 1972년의 을 시발로 1980년대 말 이래 냉전체제 해체란 국제정세의 변화를 타고 1990년대의 남북 양 정부의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간 기본합의서 채택 및 2000년의 6·15공동선언에까지 어렵사리 이르렀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이 처한 현실여건을 냉철하게 돌아보면서 우리의 과제를 분명히 해보자. 먼저 우리는 해방 56년이기 보다는 56년으로 이어오면서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구조의 실체를 솔직하게 드러내 살펴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해방후에 일제지배자를 배제시킨 자리에, 그에 대신 들어앉은 친일파 기득권 세력이 실세가 됨으로써 일제잔재와 그에 기생하는 부패세력 지배구조가 재생산 유지되어 오는 것을 극복 청산치 못했다. 이러한 치욕적 모순구조를 그대로 둬 두고선 21세기로 미루어진 통일과 민주화란 과제는 이룩해낼 수 없다. 친일파 부패 기득권층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쳐서 군사정권 하에서 그 위세와 위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세력으로서 역기능을 해왔다. 김구선생의 암살과 조봉암 당수에 대한 사법살인부터 군사정권에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의 사형 등 잇따른 음모에는 항상 친일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전쟁국가’ 복귀하려는 일본을 경계해야 최고 지시자로부터 하수신인 고문기술자까지가 대체로 친일의 전과가 있는 반민족 분자인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정권을 틀어쥐고 과 를 내세워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거세해온 것이 친일파 세력임을 확인하고도 남을 일이다. 오늘날 당장 민족문제로 화급한 일은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밀실흥정으로 체결한 굴욕적 한입협정을 개정토록 조치하고, 일본정부가 우익세력과 야합하여 자행한 역사교과서 왜곡과 일본우익의 평화헌법 폐기의 시도 등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보다 분명하고 강력하게 내세워 대처해 나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나라안의 반민족 친일세력과 그 아류를 청산해야 한다. 지금 일본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패전이전의 군국주의 체제로 정비해 >로 복귀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구실로 이용하려고 안달하는 모험주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구한말 20세기초엽의 사태의 재래가 아닌가 하는 악몽에 사로잡히게 된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극동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그들의 으로 내세우며 한국을 희생시켰다. 1875년 일제의 함포외교를 미국이 지원하였고, 1905년 에선 미국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인정했다. 우리 민족은 1919년 3·1운동에서 윌슨의 민족자결의 원칙을 한국에 적용되는 줄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이란 독일 점령지역이나 식민지의 민족을 독일제국의 지배에서 떼어놓자는 제국주의적 이권(利權)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러한 실책은 1945년 일제 패망 당시에도 되풀이했었고, 지금 냉전 종결후의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21세기 정보기술(IT)혁명과 세계화의 변동이라는 전환기에 우리 민족이 살아남고, 통일과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선 상황인식이 정확하고 그에 따른 노선이 건실해야만 한다. 지도층이 예로부터 시행착오를 되풀이해 오면서 치명적 타격을 입힌 것 중에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의 미숙과 착오가 있다. 국제관계에선 영원한 적도 또한 벗도 없다. 우리는 1950년대에 중국을 라고 증오와 적대를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은 국교를 맺고 있어 세상이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 민족생존, 민주대의 내세워 정도로 나가자 그런데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한국의 친일적 기득권 세력은 아직도 일제식 의 발상이나 그 아류인 반공주의 메카시즘의 수법을 버리지 않고 만능의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이론에 따라 논박할 수 없으면 ‘용공좌경 빨갱이’로 몰아친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주의는 기득권의 옹호의 대명사이지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가 아니다. 요즈음은 란 말을 이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나 란 여전히 재벌독점 특혜이고 메카시즘적 반공주의의 모략일 뿐이다. 결국 개발독재로 소수의 살찐 자들이 군사독재의 을 그리워해 ‘박정희의 망령’까지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21세기를 맞아 우리가 단호하게 민족생존과 민주주의의 대의를 올바르게 내세워 만난을 무릅쓰고 정도로 나가야 한다. 한상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2001-08-18
- <탐방 - 개교 10년 전주주부학교 > 전주 금암동에 위치한 전주주부학교(교장 이명광, 진북동)에 들어서면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전주주부학교는 10년 전, 밤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주부들을 위해 몇 몇의 뜻 있는 야학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 후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부학교가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찾아오는 주부들이 많았으나 해가 바뀌어가면서 차츰 그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회원수가 줄어들면 운영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련만 박영수 교감은 "갈수록 찾아오는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배우는 것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이들보다 배운 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부들 중 일부는 남편 몰래 다니기도 하고 또 남편이 아내 몰래 등록을 해놓고 나중에서야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며 학교문을 두드리는 주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신감이 생기고 생활하는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무시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던 주부들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대학교에까지 진학하면서 가족들도 자랑스러워하는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이다. 보람된 일 만큼 가슴아픈 일도 많다. 못 배운 것을 한으로 품고 살아온 주부들은 하나, 둘 배워가면서 "공부처럼 쉽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며 입을 모은다고 한다.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는 수업을 격일제로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한 과정을 마치면 상위 과정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보는데, 뒤늦게 공부에 맛을 들인 주부들이기 때문에 검정고시 합격률도 매우 높다고 한다. 지난 봄의 경우는 한 반 전체가 모두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에서 4월의 고입검정고시와 5월의 중입검정고시에서는 정선주 주부와 노애성 주부가 각각 59세와 69세의 나이로 전북최고령으로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아직은 많은 수가 고등학교 과정으로 끝을 내지만 욕심이 많은 주부들 중에는 대학에도 진학해 사회에 나가 자기 일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4년제 대학 진학자는 전주대 4명, 원광대 2명 정도지만 방송통신대에는 20여 명 정도가 진학했다. 한 주부는 방송통신대 4년 동안 유아교육과 교육학 학위를 동시에 따내기도 했다고 한다. 박영수 교감은 "엊그제도 방송통신대에서 졸업논문을 쓰고 들렀다는 옛 제자가 찾아와서 담소를 나누었다"며 주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이 찾아올 때가 가장 보람되고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늘상 보람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영수 교감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주부들이라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는 주부들을 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특히 98년도 IMF 때문에 중도 포기자가 가장 많았고, 그 이후에도 가족의 병 수발이나 남편의 실직으로 주부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박영수 교감은 "나이 들어서 정말 어렵게 배우겠다고 찾아 온 주부들이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찾아 올 때면 그런 이야기를 해야하는 본인만큼이나 가슴이 아프다"며 "어디가서든 배움에의 열정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고 말했다.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졸업식과 동창회 전주 주부학교의 16, 17기 졸업식이 지난 7일에 있었다. 50여 명의 졸업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평생에 처음으로 졸업식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졸업식은 늘 눈물바다가 된다. 이날 있었던 동창회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이순자(64, 금암동) 주부는 "작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한다는 할머니를 보고 용기를 내서 등록을 했다"며 "자식들도 대학까지 공부하라고 응원해주고 나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해 늦깎이 공부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딴 주부들은 평생 처음으로 여고 동창회를 갖는다. 주위에서 여고 동창회에 간다고 할 때가 가장 부러웠다는 주부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첫 동창회를 열고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창회를 갖는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공부한 이들인지라 그 어떤 동창회보다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돈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가족같은 학교 전주주부학교에 재직중인 9명의 교사들은 차비 정도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80이 넘어서도 배우겠다는 의지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찾아와 침침한 눈을 빛내며 앉아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마 어느 누구라도 쉽게 그만둘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주부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는 다른 학교들보다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학생들도 교사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어머니뻘 되는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자세도 깍듯하다. 오는 13일까지 전주주부학교가 제20기 학생을 모집한다. 배움에의 욕심을 가지고도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이를 위해 주부학교는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주주부학교 : Tel. (063)271-6050 신은정 리포터 purmye@korea.com 2001-09-07
- 그랜드문화센터 '규방공예' 조선조여인들의 섬세한 공예가 되살아났다. 한복과 자수, 매듭, 바느질하는 행위는 조선조여인들에게는 필수덕목이었지만 현대화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가면서 규방문화는 퇴조하고 폄하되어 잊혀져왔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 인고의 세월을 바느질로 소일해오던 옛여인들의 감각이 고스란히 밴 '규방공예'는 의외로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강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손으로 만드는 수공예품이 만드는 이의 정성과 세상에서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함 때문에 독특하고 나만의 것을 가지려는 주부들 뿐 아니라 요즈음 인테리어경향이 젠스타일을 비롯한 오리엔탈무드로 흘러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 인사동거리에는 조그만 조각보 한 장, 다기보, 바늘쌈지는 물론 조각노방등으로 만든 손가방등이 외국인뿐 아니라 외국것에 식상한 우리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선뜻 사게 되지 않는다는게 일반주부들의 입장이다. '규방공예'는 바늘과 천을 가까이 하여 사각바늘방석부터 항라조각보, 오방색쪽보등을 적은 재료비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예술품과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배우는 강좌이다. 그랜드문화센터의 '규방공예'강사 김하나씨는 "바느질하면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주부들도 있지만 자투리천으로 알뜰하게 조각보가 만들어지고 바늘쌈지가 만들어질 때의 만족감은 다른 공예보다 훨씬 크다"고 하면서 이는 아무래도 우리 정서 어딘가에 있는 한국인의 멋을 끄집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누구나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한다. 초급과정 12주동안 규방공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사각바늘방석 항라조각보 골무 1인용다기보 가위집 오방색쪽보 등을 만들고 나면 자신이 직접 스케치하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다 어머니의 옷장에 머무르던 한복감등 작은 천까지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에는 아트숍 등에 납품하거나 공예작가로 활동할 수도 있는데 우리 고유상품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반면 아직 전문가는 많지 않아 전문직업으로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랜드백화점 9월학기 강좌로 매주 금요일 12시10분∼13시30분까지 강좌가 있다. (031-910-2728)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2001-09-05
- 구미·여성열전/구미시민복지회관 인력개발과 김영자 과장 구미시민복지회관 김영자 과장에게 남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자유스러움. 빛 바래지 않은 소녀티. 일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에도 충실한 그녀는 30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에게 오늘도 짤막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내 마음과 똑같은 시 한 편 있어 보냅니다. - 당신의 영자로부터 - 인생의 참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삶의 여유로움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일까. 언제든 자신의 것을 퍼 내어줄 줄 아는 푸근한 누이 같은 그녀의 곁엔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미래의 주인공’ 근로청소년과 바쁜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자기개발에 충실한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이면 조잘 재잘 병아리 유치원생들까지. 모두 김 과장에겐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하는 움직이는 과거의 모습이란다. 노인대학에서는 또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하루일과가 그 자체로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91년 근로청소년복지회관(96년 여성복지회관 통합 현재 구미시민복지회관)상담실장으로 공무원 생활의 첫 발을 내디디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10년. 47세로 입사하여 이제 머리가 히끗히끗 노년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었다. 그야말로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칠 때가 된 것이다. 복지회관의 김경배 관장은 “사실 우리 회관의 산증인 이예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참 다복하신 분이 바로 김 과장이예요”라며 직책을 떠나 모든 부분에서 물 흐르는 듯한 삶을 산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도 갈등의 순간은 많았다. 결혼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는 남편과의 갈등. 결혼 초엔 보수적인 성향의 남편 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았다고. “부부는 영원한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서로 체면을 지켜야 할 나이고 갈등을 지나 서로 의지하고 좋은 동료처럼 살아가지요”라며 세월을 잘 다듬어 살아온 중년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비친다. “결혼하고 두 아이 키우느라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김치냄새 풀풀 풍기며 생활할 때도 있었죠” 40대 초반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돌아본 자신의 모습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는 김 과장은 주변의 권유로 당시 매일신문사에서 주최한 자기성장 프로그램에 참가하게된다. 교육을 받으면서도 “나한테까지 투자할 수 있겠나”하고 그녀는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단상담 교육을 통하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나’를 발견해 가면서 대학원에서 상담관련 공부를 마치게 됐다. 당시 대구공고에서 학교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과장이 말하는 상담학이다. “상담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입니다. 포장된 내 모습을 하나하나 벗겨 가는 것이지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하며 상담자와 하나가 되어 인생을 풀어 가는 것입니다”김 과장이 말하는 상담학이다. 김과장이 여성들에게 꼭 들려줄 얘기가 있다면,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오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자기개발에 힘쓸 것을 주문한다. 복지회관에서 교육을 하며 특히 주부들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4개월을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출발점이며 그것이야말로 약속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또한 여성의 가장 소중한 특권이라면 뱃속에서부터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것이라며 자녀를 위한 희생이야말로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는다. 이제 김 과장은 퇴직후의 일들을 한번씩 구상한다. ‘조용한 집에서 개를 기르는 할머니’그녀의 조그만 꿈이다. 김 과장이 동물을 별나게 좋아하는 것은 그녀 주변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또 한가지가 있다면 노인들을 위한 전화상담소를 운영하고 싶다. “노인들은 참 외로워요.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나 자신 그 분들과 같은 모습으로 같은 위치에서 얘기 나누면 더 공감하는 부분도 많을 테고…” 요즘 김 과장에겐 결코 쉽지 않은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가정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정폭력 상담사례 앞에서 그녀의 여린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커 가는 구미 속에서 시민복지회관이 다 챙기기에는 역부족일까? 오늘도 이리저리 뛰며 교육을 계획하고 상담을 연구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바쁘기만 하다. ●김원지 리포터 wongee@lycos.co.kr 2001-09-04
- 경기도 공직협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공직자의 두 얼굴 ‘공직자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 최근 경기도 공무원직장협의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직자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하는 두 편의 글이 나란히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의 글은 청렴강직하고 부정을 몰랐던 마산시의 한 퇴직공무원이 갑자기 찾아온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내를 위해 적은 글’황혼곡’. 또 다른 한편은 공직생활 15년동안 꼬박꼬박 일기를 써 왔다는 광주시 모 구청 공무원의’도덕적 양심으로 당신(간부)들을 고발함’이란 제목의 글이다. 전자의 글은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국장직을 퇴임한 공무원이 전재산인’달랑 집 한 채를 병원비에 쏟아붓고 몸뚱아리 하나로’아내의 건강을 기원하는 뭉클함으로 단 몇 시간만에 200여회의 조회 수를 넘어섰다.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자식있어 부자로다/라는 말로 시작한’황혼’은 잘 쓰여진 한편의 정형시.’노을 황혼 빛누리에 비칠 때/ 아내는 손잡고 바둑이 앞세우고/ 아들옆에 소근소근/ 세월 나누며 산길을’회고하며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에 반해 후자의 글은 비자금, 상납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작성한 일기를 발췌해 옮긴 고발성이 강한 내용으로 공직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치부를 여과없이 들춰내면서 격렬한 논쟁을 공직내부로 불러들이고 있다. ‘추석 이틀전’ (생략)긴급 계장(담당주사)들의 회의가 열렸다.(중략) 잠시후 계장이 다가와 이번 추석때 현금 120만~150만원정도가 필요한데 계별로 10만원씩 걷고 나머지는 서무계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다면서 돈을 걷었다. 없는 돈 탁탁털어 3만원을 뜯겼다. 더럽다. 하지만 서무담당 정말 대단하다. 우리과 예산서 아무리 살펴봐도 꽁돈 생길때가 없는데 어디에서 그 많은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돈 제조기인가보다…. 나란히 올린 추석전 3일간의 일기에는 공직사회의 상납고리가 서슴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읽는 이들 사이에 또 다른 논쟁을 부르고 옮기면서,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 공직사회의 차분한 정리와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는’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이루자’는 제안과 함께 관련 없는 간부들에 대한 사과를 함께 적고 있다. / 수원 정흥모 기자 hmchung@naeil.com 2001-09-05
- 골고루 꼴값, 구경한번 하세요 한없이 나른한 친구, 아시죠? 언제나 변함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친구말이예요.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듯이 말이죠. 옛날부터 그랬어요. 언제나 같은 말만 하고, 똑같은 문제로 맴맴 그랬어요. 결혼생활도 변함없이 맴맴 하더군요. 장장 18년 동안 말이죠. 생각만 해도 나른해 지는 거, 이거 그냥 미친답니다. 언제나 문제거리를 들고 와요. 와서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죠. 앵무새를 날마다 삶아 먹는 모양이에요. “애 아빠가 또 직장을 옮겼어. 속 터져 죽겠어.” 이 정도는 누구나 결혼생활 하면서 겪는 일이죠.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시댁 때문에 속 터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요? 변함없이 나른하게 주절거리다가 가는 그 친구 뒷모습을 보면 내가 울화통이 터져요. 친구 남편이 맘에 들고, 안 들고 하는 잣대는 딱 한가지잖아요? 친구를 고생시키면 나쁜 놈이고, 호강시키면 좋은 사람인 거요. 그 친구 남편은 이런 면에서 전자에 속합니다. 아직도 사글세 단칸방에서 살아요. 애 셋을 데리고요. 내, 참! 돈이야 뭐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런 저런 속이나 안 썩히면 나른한 기분이 들지도 않을 거예요. 그 남자 허파는 세월 지나도 곰팡이가 쓸지 않나 봐요. “자기 나이 체면도 있고, 어떻게 쬐꼬만 차를 끌고 다니냐면서 그랜저를 몰겠다고 난리야. 아마 모르긴 해도 나 몰래 끌고 다니는 거 같아. 아유, 속 터져.” 이런 남자를 이뻐 할 수 있겠어요? 이런 나른한 친구, 다들 한 두 명씩은 다 있지요? 오늘은 그 친구가 원치도 않는 남편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왔답니다. 겨우 집 장만은 했어도 아직 집들이 할 형편은 아니거든요. 짐정리도 덜 끝난 상태라 좀 어수선했어요. 뭐 우리사이에 어떠냐고, 그러면서 그야말로 들이닥쳤어요. 슈퍼타이 달랑 한 개를 흔들며 말이죠. 형편이 어려우니 들여다 봐주는 것만도 고마워야 하는데, 그 남자 면상을 보니 슬슬 내 마음이 꼬이더라구요. “이거, 이거, 뭐 집이 이럽니까. 하하하. 썰렁하네. 썰렁해.” 이러면서 가구하나 변변한 게 없다고, 휑한 운동장 같다며 어찌나 퉁박을 주던지. 그 인간, 누가 가구점 점원 아니랄까봐 이방 저방 온 데를 다 돌아다니며 가구점검에 열을 올리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거실에 쇼파 하나는 제대로 된 거 들여놔야지, 하하하.” 묻지도 않는 말을 혼자 지껄이고 돌아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 미운 놈 떡 하나 줄 요량으로 점심준비를 했답니다. “쯧쯧쯧. 아이고, 이건 또 뭐야? 아이고, 쯧쯧…….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구만, 없어.” 부엌까지 들어와 엉성한 식탁을 가리려고 천을 떠다가 덮어씌운 거 까지 들춰 내며 혀를 차더라구요. 남편보기가 너무 민망한건 둘째치고, 친구년 한테 화가 뻗치대요? 어째 이런 꼴을 보고 웃기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정말 나른한 년이지 뭡니까. 잡담 한마디 : 아, 아! 정말 나른하네요. 미운 놈이 똥싸는 격이군요. 그렇다고 똑같이 똥싸고 뭉갤 수 없고 말이죠. 그 인간 밥 속에 주먹만한 돌 덩어리나 하나 얹어 줘요. 먹다가 이라도 부러지면 한동안 그런 짓 못하겠죠, 뭐! 아이고, 나른하다-아. 2001-09-05